오피니언
-
[경인칼럼] 소름 돋는 디지털문신 지면기사
한국인들의 일본 식민지배 콤플렉스처럼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 멍에를 지니고 산다. 아돌프 히틀러 통치 기간(1933∼1945) 내내 600만 유태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한 사건이다. 유색인종, 집시(로마니), 장애인들의 생명도 열등 인종청소란 구실로 앗아갔으나 유태인들이 절대다수여서 홀로코스트는 유태인 대학살로 이해되고 있다.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유태인 등에게는 왼팔 상박(上膊) 안쪽에 알파벳과 숫자로 조합된 개인식별 문신들을 새겼다.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유태인 등은 현대식 컴퓨터의 초기버전인 펀칭(천공)카드 시스템에 의해 특별관리되었다. 미국 인구조사국 직원 홀러리스(H. Hollerith, 1860~1929)가 천공(穿孔)카드에 개개인들의 성별, 국적 및 직업 등을 표시한 데서 비롯되었다. 홀러리스는 이 시스템을 사업화하고 1910년에 독일에 자회사 데호막(Dehomag)을 설립했으나 이듬해에 사업 전체를 다른 사람에 매각했다. 이 회사는 1924년에 상호가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으로 변경되었다. IBM의 독일 자회사 데호막은 나치 치하의 인구조사작업을 펀칭카드로 정리해 히틀러의 인종청소 프로젝트에 크게 기여했다. 디지털시대 선도자이자 미국의 상징인 IBM의 흑역사(黑歷史)이다.요즘에는 신체 특정 부위에 문신(타투)을 한 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통계에 따르면 약 1천300만 명의 국민이 눈썹 문신을 비롯한 각종 시술을 받았을 만큼 타투는 대중화됐다. 문신은 바늘로 살갗을 찔러 피부 속에 먹물을 침투시키는 행위로 작업도 어렵지만 지우기는 더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문양이나 크기에 따라 최하 수십만원 이상임에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경쟁적으로 피부를 훼손하고 있다. 국내 타투 산업의 규모도 1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죽어도 안 지워지는 잉크문신보다 더 고약SNS·신용카드 등 일상 상호작용 흔적 남아 그러나 잉크문신보다 훨씬 고약한 것이 디지털문신(흔적)이다. 잉크문신은 옷으로 가리거나 사망하면 없어 지지만 전자문신은
-
[경인칼럼] 분열의 정치는 통합의 정치를 이길 수 없다 지면기사
2015년 여당인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고, '정부 시행령을 국회가 수정·변경토록 요구'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이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분노가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란 말로 분출됐다. 2016년 유 전 의원은 공천을 받지 못했고 무소속으로 당선됐다.국민의힘은 집권당의 권위와 책무를 망각하고 있다. 대의와 명분은 사라지고 권력투쟁의 민낯을 여과없이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에 대한 적의와 적개심을 자극적으로 드러내고 '복수'를 공개적으로 다짐한 이준석 전 대표와 그를 쫓아내기에 당헌 개정까지 불사한 윤핵관 등 친윤그룹의 쟁투는 권력투쟁의 상도(常道)인 최소한의 절제를 명시적으로 배제한다. 국힘, 집권당 책무 망각 권력투쟁의 민낯만집권연대 균열 부르는 윤핵관 2선 후퇴해야 이 전 대표가 당 윤리위에서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당원권 6개월 정지의 중징계를 받고 이후 최고위원들의 사퇴와 지도부 해체, 최고위원회에서의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의결,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비대위원장 임명 주체의 변경을 위한 당헌 개정, 이 전 대표의 해임 등 일련의 절차는 보편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거칠고 의도가 명백히 읽히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이 전 대표의 대응 역시 정치적이지 않다. 정치란 여백을 남기고 타협을 위한 최소한의 출구는 열어놓는 것이다. 이 전 대표가 파부침주(破釜沈周)의 결연한 의지와 권력정치의 최후의 승자가 되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현 상황에 대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전 대표 역시 윤핵관과 마찬가지로 갈등 진원의 한 축이다. 정치는 상대가 있는 행위다.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권의 총체적 난맥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권력쟁투의 기저에는 차기 총선의 공천권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대선의 의미를 몰각하고 알량한 권력의 단맛에 취해 바닥없이 추락하는 지지율에도 변화할 줄 모르는 집권연합에 대해 국민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정권
-
[경인칼럼] 김동연의 '일 머리'와 정무 감각 지면기사
이달 초 김용진 경기도경제부지사가 취임 나흘 만에 물러났다. 역대 최단 재임이란 불명예 퇴임이다. 개원협상을 위한 도의회 여야 대표와의 저녁자리가 예기치 않은 화를 불렀다. 설전을 벌이다 이성을 잃고 선을 넘었다. 숟가락을 식탁에 내리쳐 가만있는 술잔을 공중에 부양하는 놀라운 신공을 시현(示現)했다. 처음엔 야당 여성대표와 다퉜다고 알려졌으나 여당 대표와 말싸움을 하다 사달이 났다고 한다. 무슨 연유로 부지사가 야당이 아닌 민주당 대표와 충돌한 건가.예견된 참사다. 김용진은 기재부 요직을 두루 거쳤고, 호조참판(戶曹參判) 반열에 올랐다. 국회의원도 심기를 살피며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지체 높은 자리다. 나라 곳간 열쇠를 쥔 힘 있는 부처 관리가 을(乙)의 심정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중앙부처 고위 인사가 서울 변방 지자체의 지방의원들을 대면할 기회도, 이유도 없었을지 모른다. 을의 얼굴로 중재를 자임했으나 과한 취기에 그만 자제력을 잃었다. 축적된 버릇은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道 최고위 간부·시군 부단체장 거의 제자리인사 흔들리면 조직 붕괴 뒤엉킨 타래 풀어야 지난달 말 경기도청 인사안을 보다가 멀쩡한 눈을 의심했다. 민선 8기 첫 사령임에도 최고위 간부들은 아무도 바뀌지 않았다. 행정1·2 부지사 모두 유임됐고, 실·국장들도 자리를 지켰다. 도지사 사진만 바꾸면 새 조직도가 필요 없을 듯하다. 신정부가 출범했는데 총리에 부총리, 장관들이 죄다 유임된 것과 다르지 않은 괴이한 일이다. 행정1 부지사는 이재명 전 지사의 대선 출마로 7개월 넘게 지사직 권한대행을 지냈다.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도청 인사가 꼬이면서 시·군 부단체장 인선도 엉켰다. 50만명 이상 대도시 부단체장은 전원이 제자리다. 부임지에서 3년을 훌쩍 넘긴 부시장이 수두룩하다. 소속 정당이 바뀐 지역의 단체장들은 '같이 일할 수 없는 사람과 동거를 하게 됐다'며 불편한 기색이다. 조율에 실패한 광명·구리 부시장은 공석으로 남았다. 큰 집과 맞서
-
[경인칼럼] '법치'가 아니라 정치를! 지면기사
제자백가 중 법가(法家)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秦)의 국가 사상이었다. 그런데 법가를 대표하는 상앙(商앙)과 한비자(韓非子), 이사(李斯)는 하나같이 비참하게 죽었다. 진효공을 도와 변방의 제후국에 불과했던 진(秦)을 중원 최강의 군사 대국으로 키웠던 상앙은 효공 사후 정적들의 탄핵을 받아 자신이 제정한 형벌인 능지처참을 당했다. 법가 사상의 완성자로 진시황을 매료시켰던 한비자는 그를 시기한 이사의 모함으로 독살당했다. 한비자와 이사는 모두 순자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제자였다. 옛 친구를 제거한 후 승상이 되어 최고 권세를 누리던 이사도 시황제 사후에 간신 조고(趙高)의 배반으로 길거리에서 처형되고 만다.진나라의 운명도 마찬가지, 진시황이 죽자 황제가 된 2세 호해는 전형적 혼군(昏君)이었다. 권력 암투와 내란이 격화되어 천하 통일 15년, 진시황 사후 3년 만에 제국은 무너지고 만다. 진 제국 멸망의 도화선이 된 진광·오승의 반란도 기실 엄격한 형벌 제도가 한 원인이었으니 법치로 세운 나라가 결국 법치 과잉으로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진왕조의 멸망사를 통해 법가의 정치사상적 가능성과 한계를 볼 수 있다. 법가와 법가의 나라 진의 흑역사는 2천년 전의 중국의 일이라 치부할 수 있겠으나, 새 대통령과 각료들이 남발하는 '법치주의'는 예사롭지 않다. 행정이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거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한다면 법치주의라면, 또 법치주의는 역사적으로는 절대주의 국가를 무너뜨리고 성립한 근대시민국가의 정치원리를 천명한다면, 무슨 이론이 있겠는가. 문제는 왜 지금 법치주의인가라는 질문이다. '법치'는 과거 치안본부나 국정원이 공안정국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혹은 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예고였다. 법률의 형식으로 행해지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횡포였다.법 앞에 평등은 당위론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믿는다.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은 그만큼 깊다. 약자들은 법으로 얽으면 걸려들지 않을 수 없지만 법의 허점을 아는 기술자들에게 법은 그저 성긴 그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
[경인칼럼] 우리나라 인물 백과사전 '조선고금명현전'(1922) 지면기사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타인의 수고요, 자연의 은혜다. 오늘 아침 내가 먹은 계란 프라이만 해도 닭과 닭을 사육한 농장주와 이를 운반하고 유통시켜준 물류관련 종사자들과 조리한 이의 수고다. 더 따져보면 사료를 만들고 공급하는 사람과 이를 운반할 차량을 만들고 도로를 뚫고 수리한 사람과 아스팔트 포장을 위해 원유를 시추하고 이를 유조선으로 운반한 사람과 정유한 사람 등 한 개의 계란 프라이가 내 식탁에 오르는 평범한 일상 하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노력과 수고와 은혜가 뒷받침되어 있어야 한다. 요즘 같은 IT세상에서는 웹 검색을 통하면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거의 다 얻을 수 있다.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그녀가 역사적 인물이든 작가든 연예인이든 검색만하면 거의 다 나온다. 요새는 대부분 역사적 인물이나 예술인보다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이 먼저 화면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소소한 정보도 입력한 이의 수고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물들을 정리한 이들의 노고와 연구가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정보다.한동안 세계 각국의 인물 정보를 얻으려면 '후즈후'(who's who)라는 세계 인명 백과사전을 이용해야 했다. 근대 조선에서도 이런 국내판 '후즈후'가 있었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2년 홍문사에서 나온 '조선고금명현전'(1922)이 그것이다. 지금이야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고급 정보나 전문 지식에 포함되지도 않지만, 이 같은 보편성을 만들어 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수고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조말 역사상 인물 889명과최치원 부터 조돈까지 77명의 초상화 정리 도서관이나 출판사정이 열악했던 그때 그 시절 삼국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역사상의 인물 889명과 더불어 동국문종(東國文宗)으로 통하는 고운 최치원의 초상화부터 죽석 조돈(竹石 趙暾)에 이르기까지 77명의 초상화를 정리해놓은 귀중한 자료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도 있고 낯선 인물들도 있으나 일체의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
-
[경인칼럼] 최저임금법은 방아쇠법 지면기사
근래 들어 손님이 뜸한 시간대인 오후 3∼5시에 '브레이크타임'(휴게시간)을 갖는 접객업소들이 크게 늘었다. 이 시간대에 지인들과 약속을 잡아야 하는 이들은 난감하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따금 단골식당을 찾은 식객들은 낭패감에 화가 치민다. 코로나19가 도심거리의 풍경을 바꿨다.브레이크타임은 노동자들의 과로 방지목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54조는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 이상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제공할 것'을 명시했다. 브레이크타임의 저변확대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매출 격감이 결정적이나 인건비 부담도 간과할 수 없다. 시간당 최저임금은 문재인정부 집권 초인 2017년에 6천470원이었으나 2022년에는 9천160원으로 5년 만에 41.6%나 올랐다. 파리만 날리는 오후에 가게 문을 열은 상태에서 직원들에게 휴게시간을 주려면 추가고용이 불가피하다. 시간당 최저임금 文정부 초기보다 41.6%↑업종별 차등적용 영세중기·소상인들 숙원 지난달에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경제계의 최대관심거리였다. 기업들이 임시직이라도 채용하려면 퇴직금은 고사하고 최저임금에다 노동자가 1일 8시간씩 주(週) 5일 근무 시 하루치의 주휴수당과 4대 보험까지 부담해야 하니 말이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들은 야간근무(오후 10시 ∼오전 6시) 직원들에게 주간(晝間) 임금의 1.5배를 부담해야 한다. 국내 4대 편의점그룹(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의 간판을 단 점포들 중에서 편의점 한 곳만을 운영하는 생계형 자영업자 비중이 70%인데 코로나19와 과당경쟁 등으로 전체 매출이 2∼3년 전 수준으로 주저앉았단다. 전국 80만 외식업체들은 식자잿값까지 가파르게 올라 더 불안하다.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은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숙원(宿願)이었다. 산업별 노동강도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음식·숙박업 등 서비스업종과 도·소매업 등 취약한 업종일수록 최저임
-
[경인칼럼] '공생'아닌 '소멸'로 갈 것인가 지면기사
한국정치의 성격을 규정짓는 말 중 '적대적 공생'이란 말처럼 정확한 말이 있는가 싶다. 물론 적대적 공생이란 단어는 비단 정치에서만 쓰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영정치가 위세를 발휘하는 한국정치에서 이 단어는 정치를 함축하는 상징적 용어다. 민주화 이후 5년만에 정권교체를 경험한 첫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에 진 책임에 대해 지지자들에게 성찰과 숙고로 답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친문 대 친명의 계파갈등이 그칠 줄 모른다. 오는 8월28일 전당대회에서의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다툼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의 권력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권력의 핵으로 하는 그룹들은 이 대표를 끌어내리는 데 일단 성공한 형국이다. '0.73' 매직의 함의를 두 정당 모두 잊고 있는 결과다. 대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힘에게 이 의미는 야당과 부단히 소통하고 문재인 정권 때의 정권을 변경할 때 충분히 협의하여 국회는 물론 국민일반의 동의를 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압도적 승리의 경우 이러한 절차가 생략될 수 있는 것에 대한 경계가 선거라는 집단지성으로 표출된 것이다. 민주당은 불과 0.73%라는 근소한 차이로 졌지만 5년만에 정권을 내 준 참담한 결과를 거울삼아 팬덤에 몰입되고 독선과 내로남불에 도취된 행태를 근본부터 바꾸고 진보의 본래의 가치를 찾으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 여야, 선거직후 당권잡기 권력투쟁에 몰입양당 당내 갈등 개선안된 공천제도에 기인 그러나 두 정당 모두 선거 직후부터 당권을 잡기 위한 당내 권력투쟁에 경쟁하듯이 몰입하고 있다. 여권은 정부 내의 여러 혼선을 노출하고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해묵은 안보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본질이 비껴가고 있다. 급기야 여권의 지지율은 임기 말 식물정권을 방불케 하는 30%대로 추락했다. 검수완박법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으로 번졌고, 야당은 여권이 검찰과 경찰을 장악하기 위해 좌동훈 우상민을 내세워 역대급 권력사유화에 나섰다며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총선은 아직 2년 가까이 남았다. 양당의 적대는 선거 전보다
-
[경인칼럼] 위장애민(僞裝愛民) 그만 보고 싶다 지면기사
민선 8기 전국 지자체장들이 지난주 취임했다. 재선한 박형준 부산시장은 '다시 살고 싶은 부산'을,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은 평생의 과업'이라며 소외계층을 찾았다. 울산시장은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을 주창했다. 취임사마다 명품, 미래, 환경, 복지, 첨단이란 말이 빠지지 않는다.4년 임기를 시작하는 단체장들 머릿속은 몽환적(夢幻的) 구상으로 충만하다. 수도권 단체장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의 꿈, 대한민국 미래를 만들겠다'고 한다. 8년 전 '인천을 대한민국 발전의 전초기지이자 창조도시로 만들겠다'며 취임했으나 재선하지 못한 이력을 지녔다.심술 폭우로 경기지사와 시장·군수 여럿이 취임식 대신 수해현장을 돌았다. 시정(市政) 청사진을 뿌리면서 아쉬운 속을 달랬다. 잘만 되면 산업단지에 기업들이 몰리고, 사통팔달 시원한 도로망에 대중교통망이 촘촘한 살기 좋은 명품도시가 멀지 않았다. 자녀들은 강남 8학군 못지않은 교육환경에,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임기 시작하는 단체장들 몽환적 구상 충만해주민들은 시큰둥… 시작은 늘 창대 끝은 미약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불과 한 달 전이나, 누굴 찍었는지 감감할지 모른다. 유권자 절반 가까이는 투표장에도 가지 않았다. 30여 년, 보고 듣고 경험한 게 있기에 기대치가 바닥권이다. 시작은 늘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재임 중 얄팍한 밑천에, 일그러진 인성이 들통 나 공천도 못 받은 전임자가 허다하다. 어떤 이들은 주어진 권한을 넘치도록 행사하다 법의 심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이런 사유로 재선 시장이 한 명도 없는 도농복합 지자체가 있다. 빛나는 전통은 맥이 끊기지 않았다.민선 8기가 이전과 다를 게 없을 거란 예견들을 한다. 보름 남짓 인수위를 보면서다. 어떤 당선인 주변엔 자리와 이권을 탐하는 식승(食蠅)들만 꼬였다고 혀를 찬다. 전·현 공직자, 개발사업자, 정당인, 토호, 각급 단체장 집단이 줄을 대려 애썼다는 후문이다. 여러 지역에서 인수위 구성을 둘러싼 잡음이 일었고, 점령군이란 위세가 여전했다는
-
[경인칼럼] 스케치 기사와 권력 지면기사
스케치 기사는 쓰지 말 것! 이 지시는 1986년 9월에 공개된 '보도지침'에서 10개월 동안 무려 20회나 반복적으로 나타난 주문이었다. '보도지침'은 제5공화국의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이 국내 신문과 방송 등을 통제하는 가이드라인으로 매일 각 신문사 편집부에 은밀하게 전달되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상황, 사태의 보도 여부는 물론 보도 방향과 내용, 특정 기사의 배치와 원고 분량, 사진의 사용 여부까지 규정하는 편집지침이었다. 보도지침의 기준은 간단하다. 언론이 대통령이나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기사는 키우고 정권에 불리한 사건, 야당이나 재야의 목소리는 축소하거나 아예 다루지 말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왜 하필 스케치 기사의 보도형식을 통제했을까? 스케치 기사는 팩트 위주로 간결하게 작성된 스트레이트(Straight) 기사와 달리 사건의 분위기나 정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보도문이다. 취재 현장에서 기자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림 그리듯'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이 현장 분위기나 모습을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 스케치 기사의 목적이다. 선거유세장 풍경이나 선거 당일 전국 곳곳의 투표장 풍경, 대규모 집회장의 모습 등은 스케치 기사가 적절하다. 현장성과 생동감 때문에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생생한 현장 분위기 그림 그리듯 기사 작성무소불위의 5공 시절 아예 금지 지침 선택 스케치 기사는 사건 현장에 대한 묘사적 글쓰기로 이뤄진다. 묘사의 글쓰기는 미학적으로는 언어를 사용한 회화적 재현에 해당한다. 묘사는 있는 그대로를 기술한다는 표면적 정의와는 달리 실제 재현 과정에서는 묘사 주체의 태도와 생각이 은연중에 배어들게 마련이다. 묘사 대상의 선택, 대상에 대한 느낌과 묘사문의 언어에 녹아 있는 뉘앙스가 그것이다. 묘사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포함될 수도 있다. 묘사문은 디테일로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정교한 글쓰기이다. 악마(신)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1면 톱의 제목보다 한 줄 스케치 기사가 강한 여운
-
[경인칼럼] 삼중당문고(三中堂文庫) 지면기사
시인 서정주를 키운 것은 '8할의 바람'이었고, 우리 세대 문청들을 키운 것은 '삼중당문고'였다. 인생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던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마치 군대 병영생활 같았던 학교에서 나를 지탱시켜 준 것은 친구들과 삼중당문고였다.시내버스비가 50원이던 그때 시절 방과 후 학교(북중학교)부터 세류동 집까지 꼬박 40~50분을 걸어서 다니며 아낀 돈으로 재개봉 동시상영관에서 철 지난 영화를 보거나 삼중당 문고본을 샀다. 학교도서관도 있었지만 모양만 도서관이었지 책도 많지 않았고 그나마 문이 닫혀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국어교과서와 자습서 외에 문학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길이 없었던 내게 수원 종로 일대에 즐비했던 서점들은 꿈의 거리요, 정신의 해방구였다. 주머니가 가벼운 중학생에게 접근이 가능한 책은 안현필의 '영어실력기초'와 완전정복 시리즈의 자습서들 그리고 삼중당문고가 거의 전부였다. 버스비를 아껴서 살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기에 신학기 집에서는 자습서를 사야 한다고 돈을 타내 헌책방에서 철 지난 전년도 자습서를 구입하고 그 차액으로 몇 권의 문고본을 더 샀다. 황순원의 '일월',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이광수의 '흙' 그리고 염상섭·김동인 등 주로 교과서에서 배웠던 작가들의 작품을 사서 읽었다. 버스비·자습서 살 돈 아껴 읽은 문학작품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삶의 지지대 역할 '안나 카레니나', '춘희', '여자의 일생' 등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봤고 '데미안', '지와 사랑' 같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나 '마의 산', '파우스트', '일리아드 오디세이' 등은 당시 서울대 법대생이었던 작은아버지의 서재에서 꺼내 읽었다. 헤세는 잘 읽혔으나 다른 작품들은 뭔지도 모르고 억지로 책장만 넘겼던 기억이 난다. 우리 문고본은 1927년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첫 권으로 시작한 이와나미문고(岩波文庫)의 영향을 받으며 세상에 나왔다. 1907년 박문서관을 세운 노익형이 1939년 도남 조윤제의 '교주 춘향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