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월요논단]종편 재승인 결과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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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논단]종편 재승인 결과를 생각한다 지면기사

    2011년 종합편성채널 4개, 첫 전파'신문방송 겸영 허용' 문제 우려 속정치적 편향·불공정·오보 등 논란TV조선·채널A 조건부 결정 불가피직접 광고판매 등 특혜 바로잡혀야2009년 한나라당은 야당과 국민 여론의 반대를 뚫고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핵심으로 하는 방송법 등 미디어법 개정을 강행했다. 이를 기반으로 2011년 12월 말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4개 신문이 지배하는 종합편성채널이 첫 방송을 시작했다.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은 여러 가지 우려를 안고 있었다. 종합편성 채널 도입의 문제점은 당시 승인 기본계획에 언급되어 있는 정책목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정책목표는 융합하는 미디어환경변화에 적극 대응, 방송의 다양성 제고를 통한 시청자 선택권 확대, 콘텐츠 시장 활성화 및 유료방송시장의 선순환 구조 확립, 경쟁 활성화를 통한 방송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이었다. 모두 방송영역에서 추진해야 할 목표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신문사에게 종편채널을 줘서 이 정책목표를 추진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의 규제 완화는 미디어환경의 변화와 여론지배력의 흐름 등을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중대한 정책적 사안인데도 준비 없는 전격 도입은 위험한 일이었다. 신문은 지상파방송과 함께 정치여론 형성력이 강력한 미디어이다. 신문여론시장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신문들의 여론 지배력이 보도를 하는 방송영역까지 넘어올 수 있다는 우려는 무시할 수 없었다. 미디어 소유 집중으로 정치적 다원주의가 위축되어 궁극적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아서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심각한 문제였다. 종편채널의 극심한 정치적 편향, 불공정, 오보, 막말 등 여러 가지 논란이 계속됐다. 2017년 두 번째 재승인 심사에서 TV조선이 기준점수에 미달했지만 조건부로 승인됐고 채널A도 겨우 기준점수를 통과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에서 중징계인 법정제재를 매년 4건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부여됐다. 그런데 행정소송과 조건이행 실적의 제출 기간 등 일부 행정절차의 허점을 활용하면 이

  • [월요논단]위기가 가져온 변화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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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논단]위기가 가져온 변화의 기회 지면기사

    정치등 모든 분야 영향준 바이러스과학기술 발전도 모든 것 해결 못해우리 삶 '궁극적 가치' 깨달음 필요 그동안 욕심 채우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 다함께 '당면문제' 노력할 때'너희가 와야 학교는 봄날'. 어느 학교 앞 현수막에 걸린 문구이다. 도서관에서 이용자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너무도 공감이 가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문구였다. 두 달 이상 도서관 문을 닫고 있어 온기가 없어진 공간과 새로 들어와 한 번도 독자를 만난 적 없이 이용자를 기다리고 있는 새 책을 보면서 코로나19가 만든 변화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도서관도 이용자가 와야 봄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사회 변화에 우리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바이러스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고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결된다.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생활을 돌아보면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과는 전화통화와 SNS로 소통하고 있고 필요한 물건은 주로 인터넷을 이용해 주문한다.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 얼굴도 모른 채 온라인학교에 등교하고 최대한 바깥 외출은 삼간다. 거리의 사람들은 영화 속 장면처럼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 닦기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외출 후 집에 들어오거나 장소를 옮길 때마다 손을 자주 잘 닦게 되었다. 시간강사, 자영업자, 공연기획에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수입이 줄어 생계에 어려움이 생겼다. 정부와 각 지자체들은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각 지자체마다 지원금의 조건과 액수가 달라 논쟁이 되기도 했다.현재 코로나19의 확산은 주춤해지고 있지만 이 사태가 언제쯤 안정화 될지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계속 될 것이라 예측한다. 그러나 누구도 최적의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를 두고 손을 잘 씻는 등의 방역에 중점을 두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가 알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전 세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것과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전도 모든 것

  • [월요논단]코로나19 대창궐 시기에 떠올리는 김구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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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논단]코로나19 대창궐 시기에 떠올리는 김구의 소원 지면기사

    8세 성리학 시작 한학자에 배움도그의 이념은 '화이부동'과 잇닿아 개별국가 지향할 국제질서의 가치'뉴노멀' 새로운 표준이 現 문명 대안경제·군사력 아닌 문화의 힘에 초점코로나19 대창궐로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떠는 와중에 우리는 지난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을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친일이 아니라 독립운동이 우리 역사의 주류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최근 들어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가운데 한 대목을 떠올리고 있던 터라, 그러한 내용의 기념사가 나에게는 퍽 시의 적절하게 느껴졌다.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비난을 쏟아내고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는 코로나19의 모범적인 대응 사례로 우리나라를 꼽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장비와 자료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며 도움을 거부했던 국가의 경우에는 사과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현재 진행형인 만큼 속단은 피해야겠으나 대한민국의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사실은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싶다. 이러한 판단 속에서 떠올랐던 것이 김구 선생이 강조했던 문화의 힘이다."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서 실현되기를 원한다."김구 선생은 이러한 이념을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내가 보건대 이는 천하의 평화를 기획하는 방법론 측면에서 성리학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잇닿아 있는 듯하다. 기실 김구 선생은 여덟 살에 성리학 공부를 시작하여 17세에 과거에 응시한 바 있으며, 20세에는 한학자 고능선(高能善)에게 배움을 얻기도 하였다. 화이부동이란 무엇인가. 남과 사이좋게

  • [월요논단]일상을 넘어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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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논단]일상을 넘어 일상으로 지면기사

    코로나19로 '삶의 이중성'을 본다진부한 반복이지만 존재의 양면성감추임과 드러남통해 의미 일깨워자본 민낯·경쟁 이웃 이젠 벗어날때새로움을 성찰 현실화하는 결단을일상은 매우 이중적이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전도서'의 말처럼 일상은 늘 그렇게 되풀이되는 진부함이기도 하지만, 밤이 되면 어두움 속에서 그 진부함에 가려 보지 못하던 것들이 새롭게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든 아니면 그 고마움이든 반복되는 일상에서 빛이 사라진 세상은 놀랍게도, 보았지만 보지 못했던 사실을 다시금 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 되풀이 되는 일상이 진부함의 반복이 아니라 우리 삶과 존재가 그 아름다움과 의미를 드러내는 순간의 반복임을 알게 된다. 일상은 진부함과 지겨움의 시간이지만, 다른 한편 놀라움과 새로움의 자리이기도 하다. 일상은 삶의 이중성과 존재의 양면성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는 감추임과 드러남을 통해 그 숨겨진 의미를 알려준다고 말한다. 존재는 그런 순간을 간직한 사건 자체다.코로나19로 인해 이 일상의 이중성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성을 살면서 우리는 일상의 고마움과 아름다움, 그 의미를 새롭게 보게 된다. 일상의 진부함이 사실은 우리 삶의 전부임을, 그 진부함 안에서 순간순간의 새로움과 고마움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임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는 위기이지만,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는 갈라진 길 위에 선 선택의 순간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이것이냐 저것이냐! 그 선택의 시간은 우리 삶 전체가 걸린 절대적 순간이다. 깨어진 일상에서 진부한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있지만,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코로나19 이후 우리는 다시금 우리 삶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된다. 진부한 일상 속의 새로움을, 경쟁상대로만 보던 이웃의 고마움을, 성장과 풍요를 말하던 자본의 민낯을 새롭게 보게 된다. 공론장과 정론을 말하던 주류 언론이 당파적 이익에

  • [월요논단]코로나19와 의료 공리주의
    칼럼

    [월요논단]코로나19와 의료 공리주의 지면기사

    폭발하는 환자 伊·美 대응 지침보며선진국 의료시스템 붕괴 다시 생각사람생명 돈으로 환산 뼈아픈 현실영리보다 공공 의료 중요성 일깨워감염병들이 인간에 전하는 메시지젊은이인가. 고령자인가. 이탈리아의 의사들이 폭발적인 코로나19 환자를 놓고, 윤리적 선택에 고통스러워했다. 의료진들에겐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를 위해 의료자원을 비축하라는 지침도 내려진 바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국방물자생산법을 동원했다. 자동차보다도 마스크와 인공호흡기가 급한 현실. 선진국가의 의료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어떤 문제가 있었던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코로나19처럼 긴급하고 세계적 상황을 예측한 것은 아니지만 의료와 관련하여 선호공리주의를 주장한 학자가 있었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 피터 싱어(P.Singer)이다. '중증의 신생장애아는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일종의 선호적 공리주의를 주장했다. 1989년 6월 장애인 단체를 비롯한 독일 언론들의 격렬한 항의가 있었고, 결국 그의 심포지엄과 강연은 중단되었다. 그를 강연에 초청한 교수에 대해 해임 운동까지 일어났다. 그의 주장은 연명치료의 중단과 존엄사의 문제로까지 연계된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무엇이며, 삶과 죽음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하지만 돈이 들거나 생산성이 없는 인간 등에 대한 치료 포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비판을 받았다. 약자는 낳지도 살리지도 않는다는 나치의 논리라고 비난되었다. 7만명 이상의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나치의 '안락사' 계획을 상기시키는 극도의 분노를 독일인들에게 일으켰다. 생명의 신성성(Sanctity of Life)을 주장하는 종교의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료자원의 합리적 이용이라는 선호공리주의에도 불구하고, 생명조작의 추진이나 생명의 탈신성화를 추구하는 일종의 우생이데올로기로서 비판되었던 이유다.그런데도 세계적으로 긴급한 의료 현실이 의료진이나 의료 자원의 분배적 정의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지친 의료현장과 의료진들의 한계 그리고 의료시스템 붕괴의 가능성을

  • [월요논단]소수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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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논단]소수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지면기사

    연동형비례 첫 적용 총선 코앞인데취지 안맞게 소수당·후보 정보부족미래당 녹색당 정책·공약 무엇인지정의·민중당 어떻게 다른지 '깜깜'정확·공정 판단기준 적극소개해야4·15 국회의원 선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되는 첫 선거다. 소수 정당과 후보자에게 도움이 되는 선거제 개혁이 시도된다. 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으로 선거제 개혁의 방향이 흔들리고 있긴 하지만 소수정당의 비례대표 진출 가능성은 여전히 높을 것이다. 그런데 소수정당과 비례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이전부터 선거 또는 선거보도에서 신진·소수 정치세력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 배려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시민언론단체의 선거보도감시 준칙을 마련할 때도 신진·소수정당과 그 후보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언론중재위원회 세미나에서 '선거방송 심의규정'에는 '소수자에 대한 기회부여'란 내용이 있지만 '선거기사 심의규정'에는 그런 내용이 없으니 보완하자고 지적한 적도 없다. 이번 총선 보도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는 듯하다.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 논란으로 선거판이 복잡해졌다. 헷갈리는 이름의 비례정당이 등장하고 서로 비난을 주고받는다. 언론은 갈등과 충돌을 중계하고 지식인과 전문가가 등장해서 첨예한 비판을 가한다. 거대 양당과 언론이 정치혐오와 선거혐오를 만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 정당 추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선거제 개편을 주도한 민주당이 비례 위성정당에 참여하는 일은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언론은 비례위성 정당 추진의 피해자가 유권자 시민이고, 소수정당에 가야할 표가 거대 양당에 돌아가 민의와 표심이 왜곡될 거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를 '역병'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다 옳은 이야기다. 그렇지만 뭔가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대안이 될 수 있는 소수 정당과 소수정당 비례후보자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역에 출마하는 후보자와 비례대표 후보자들은 어떤 다른 기준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정의당과 민중당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미래당과 녹색당은 정책·공약이 무엇인지,

  • [월요논단]건강한 삶을 위한 생태적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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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논단]건강한 삶을 위한 생태적 각성 지면기사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 모른채농약·화학비료 무분별하게 사용식물 키우며 생명존중성 알리는그림책 '우리가족은 정원사…'몸살 앓는 '지구 회복' 중요성 알려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길어지고 아직은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지만, 자연의 약속은 늘 어김이 없다. 어느새 봄이 찾아와 생강 꽃이 피고 땅속 새싹들이 세상 밖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새들의 움직임도 바빠 보인다. 겨우내 얼굴 마주치기 힘들었던 이웃들도 밖으로 나와 종일 마당을 정리하고 도서관 주변 논, 밭의 주인들은 밭을 갈고 퇴비를 뿌리며 농사 준비를 시작한다. 도서관 정원에는 잡초들이 가장 먼저 초록을 자랑하며 하루하루 커가고 있었다. 잔디를 예쁘게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며칠 동안 호미를 들고 잡초를 뽑아내는데, 이웃으로부터 '잔디는 남고 잡초만 죽이는 제초제를 뿌려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야 했다. 잡초 때문에 고구마 농사를 망친 경험이 있기에 잡초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잡초보다 제초제가 훨씬 더 무섭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텃밭에 당근, 토마토, 고추, 오이 등을 키우고 있고 어느새 일곱 해를 반복하고 있지만 매번 수확이 형편없다. 어떤 때는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작물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고, 벌레가 다 먹어 먹을 게 없기도 하고, 당근이 새끼손가락 굵기인 적도 있었다. 농사일에 재주가 없고 부지런하지 않은 이유가 크겠지만 제초제와 농약을 쓰지 않는 것도 한 이유이다. 강화도 농촌 마을에 살면서 놀라운 것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화학농약을 사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가족이 먹게 될 작은 텃밭 채소에도 살충제와 제초제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라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화학농약 사용이 거의 일반화되어 있다.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 성장 촉진제 등 다양한 농약이 있고, 이것은 식물을 재배하는데 큰 편리함을 안겨주었다. 작은 텃밭이 아니라면 농약 없이 농사짓기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화학농약이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졌고 얼마나, 어떻게 유해한지 잘 모른

  • [월요논단]구원이 되지 못하는 종교 혹은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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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논단]구원이 되지 못하는 종교 혹은 진리 지면기사

    신천지·집회 주도 전광훈 목사진리 정답으로 알고 죽음 몰라'구원 약속… 야외 무감염' 장담진리·이념보다 삶의 가치 우선땐코로나19 극복할 동력 만들어낼 것대한민국 건국을 앞둔 1948년 상반기 문단에서는 김동리와 조연현의 논쟁이 벌어졌다. 김동리는 문학이란 구경적(究竟的) 삶의 추구라고 견해를 피력했던바, 이에 대하여 조연현이 종교와 문학의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던 것이다. 김동리의 답변은 이러했다. 종교란 기원하고 귀의해야 할 신(神)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까닭에 의존적인 반면, 문학은 스스로 사색하고 상상하면서 신을 찾아 나서는 행위인 까닭에 주체적일 수밖에 없다.김동리의 논리는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종교는 종종 진리(眞理)를 내세워서 다른 가치를 억압하곤 한다. 절대자에 의존하다 보니 결과론에 치우치는 경향을 드러낼 때도 있다. 예컨대 복덕(福德)을 기원하거나 현재 벌어진 사태를 신의 징벌로 수용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반면 문학은 주체적인 면모로 인하여 일리(一理)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또한 아무리 멀리 나아간들 작가는 결코 신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작가에게는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종교가 극단으로 치우쳤을 때 문학의 자리에서 그 한계를 적극적으로 심문했던 작가로는 알베르 까뮈를 꼽을 수 있다. '이방인' 말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신부(神父)에게 쏟아 부었던 발언이 대표적이다. 전염병이 창궐한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삼는 '페스트'의 주동인물 리유 또한 마찬가지다. '페스트'에는 파늘루 신부가 등장하는데, 작품 앞부분에서 그는 페스트의 창궐을 죄의 대가라고 강연하고 있다."이 재앙이 처음으로 역사상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에게 대적한 자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였습니다. 애굽왕은 하느님의 영원한 뜻을 거역했는지라 페스트가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태초부터 신의 재앙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아래 꿇어앉혔습니다. (중략) 반성할 때가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일에 하느님을 찾아뵙기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 [월요논단]검은 장막을 거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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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논단]검은 장막을 거두어 지면기사

    바이러스 원인 생태계 파괴한 인간사람 구원한다는 '맹목적 신앙'신의 아름다움을 공포로 팔아공동체 해체 죽음으로 몰아지금이야말로 지성적 성찰 필요새벽같이 와닿은 호소문은 '대구 경북을 살려내라'고 외치고 있었다. 진보운동 가운데 가끔 얼굴을 마주했던 동료 교수의 글이다. 초중등 교육을 대구에서 마쳤고, 지금도 많은 친척과 지인이 대구에 살고 있기에 그 호소가 참 가슴 아프다. 그 안에 담긴 정부를 질타하는 매서움이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다른 한편 이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일하는 분들과 그럼에도 장악 가능한 상태에 놓인 현 상황을 돌아보면 나름의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을 해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생물학적 바이러스가 생명을 위협한다면, 사회적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과 공동체를 해체시킨다. 그러나 그에 대한 두려움은 더 많은 증오와 탓을 만들어 우리 삶과 마음을 파괴한다. 중세 흑사병 사례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진실을 담고 있다. 알지 못하는 죽음의 그림자는 맹목적인 신앙과 증오를 부추기고, 이웃에서 마녀를 찾는다. 심지어 있지도 않은 자신의 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침내 몸이 무너지고 마음이 파괴된다. 있지도 않은 죽음의 유령이 존재를 파멸시킨다. 알지 못하면 두렵고 그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그만큼 커진다.바이러스에 백신이란 치료약이 있어야 하듯이 무지의 바이러스에는 지성의 백신이 필요하다. 증오와 음모의 사회적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이웃 사람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를 위한 공감의 백신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몸의 요구와 정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몸이 생리적 조건을 채워야 살아갈 수 있듯이 마음과 정신은 그에 걸맞은 지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지성은 전문지식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정신의 기본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성이라 부르는 마음과 정신의 기능이 작동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으며, 그 크기만큼 사람의 크기가 결정된다

  • [월요논단]코로나19와 동물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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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논단]코로나19와 동물의 역습 지면기사

    인간·경제우선주의가 불러온 사태중국을 '세계의 공장' 치켜세우며 도넘는 자연파괴·동물착취 부추겨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져'생명체 대한 새로운 야만' 자성할때'코로나19'. 마귀의 짓인가. 하나님의 심판인가. 우리들의 삶을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가 종교적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특정 종교 활동을 통해 급속히 환자가 늘면서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은 물론 유사 종교 간 비난도 거세다. 그 시작은 형체도 냄새도 없는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새로운 불안감이 갑자기 확대되면서 우리들을 더 위축시키고 있다. 졸업식도 취소되었다. 사진 몇 장으로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하다. 중국 유학생들로 대학캠퍼스는 긴장하고 있다. 식당도 거리도 한산하다. 한때 일본 크루즈 사태와 관련하여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를 우려했다. 하지만 우리의 4·15 총선이 제대로 실시될지 걱정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글로벌 체제에 연계된 중국 시장의 마비가 가져오고 있는 경제적 충격도 일파만파다. 조만간 사태가 진정이 되지 않는다면 헌법 제76조 1항의 대통령의 특별한 권한들이 발동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재정경제상의 위기타파를 위한 긴급명령뿐만 아니라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들이 실시될 수도 있다. 시시각각 늘어나는 환자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생각한다. 도대체 이 사태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종교적 차원에서는 마귀와 하나님 논쟁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전문가들은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한 팬데믹(pandemic)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을 경고해왔다.중국은 즉각 부인했지만 실험실의 동물로부터의 발병 가능성을 주목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중국의 발표처럼 야생동물의 식용과정에서 발생했을 수도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실험동물이든 식용의 과정이든 동물이 관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동물을 인간과 다른 차원에서 취급해왔다. 호모사피엔스에 기반을 둔 인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