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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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맞다고만 해줘야 우리 편인가 지면기사
지난달 27일 수원시의회 임시회가 열렸던 본회의장에선 시장과 한 야당 시의원 간 설전이 오갔다. 주제는 '경기남부국제공항 건설'과 '수원 군 공항 이전'. 화성시에 '상생협력센터'란 시설을 설치해 화성 지역 내 경기남부국제공항을 건설하는 사업의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려는 수원시의 홍보 정책 관련 실효성 여부가 쟁점이었다. 이 홍보 정책이 성과는커녕 지역 간 갈등만 부추긴다는 시의원의 지적에 시장은 발끈했다.시의원이 "(수원시가)1억 원 넘게 투입하면서 간판도 없으며 주민들은 알지도 못해 무슨 소통창구가 된다는 건지, 돈 낭비 아니냐"는 노골적 비판에 나서자, 시장이 "의원님 시각에서 잘못돼 보일 수 있지만 그걸 전체로 몰아가면 안 된다. 말을 가려서 했으면 좋겠다"고 받아쳤다. 이에 의장은 "(시장이)의원을 가르치려는 듯한 느낌이다. 자제해 달라"며 중재에 나섰다.시정 질의를 마치고 나자 해당 시의원은 '수원시의원이 화성시 옹호 발언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수원 군 공항을 이전하고 경기 남부지역에 국제공항을 짓기 위해 수원시가 투입하는 예산에 대해 실효성 문제를 제기한 걸 두고, 화성시 편에 선 발언을 했다는 오해를 받은 것이다.시 집행부의 정책을 분석해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잡도록 노력하는 게, 집행부를 견제하라고 시민들이 표를 던져 준 시의원의 본분이다. 경기남부국제공항 건설사업의 홍보 예산이 적절했는지, 낭비였는지는 당장 단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와 관련한 문제 제기 역시 그 자체를 두고 잘못됐다거나 반대 편에 선 발언이라고도 할 수 없다.시의원의 이번 발언이 마치 수원시가 경기남부국제공항 관련 예산을 전부 잘못 쓴 것처럼 비췄는지 살펴봐야겠지만, 경기남부국제공항 건설을 위해 수원시가 그동안 쏟아부은 예산도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 역시 빈틈없이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김준석 사회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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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가정의 달, 소외되는 부모가 없길 바라며 지면기사
수년째 딸아이와의 시간을 되찾으려는 아버지가 있다. 그는 2014년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지 못했다. 아이의 친모가 다른 사람과 이혼하고 300일이 지나기 전에 그의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민법에는 이혼한 지 300일이 지나지 않고 태어난 아이는 새로운 아버지 호적에 올리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친모와 헤어진 그는 소송을 통해 자신의 아이를 호적에 올릴 수 있었지만, 아이의 얼굴을 쉽게 볼 수 없었다. 주 양육자로 지정된 친모가 아이를 보여주는 것을 거부하고 있어서다.아이와 함께 살지 않는 부모의 면접교섭권은 법으로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주 양육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다른 부모는 손을 쓸 방법이 없다. 법원에 면접교섭 이행 청구 신청을 해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그가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생 딸아이는 손톱과 치아 상태가 엉망이었다고 한다. 참다못한 그는 양육자 변경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친모의 손을 들어줬다. 여전히 그는 아이를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다.지난 2월 출범한 부모따돌림방지협회는 그처럼 면접교섭 방해를 겪는 부모들을 돕는 단체다. 부모 따돌림은 이혼 가정 등에서 아이와 함께 사는 부모가 함께 살지 않는 다른 부모의 면접교섭을 방해하고, 아이가 거부하도록 '가스라이팅'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지난 2월 인천 남동구에서 계모와 친부 학대로 온몸에 멍이 든 채 사망한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의 친모도 부모따돌림 문제를 겪었다.미국, 영국, 호주 등 다른 나라에선 이미 부모 따돌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국내 가정 법원은 자녀와 비 양육 부모의 원만한 만남을 위한 면접교섭 센터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부모 따돌림 문제를 겪는 가정의 현황 파악도 못 하고 있다.얼마 전 그는 또 한 번의 양육자 변경 청구 소송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다시 긴 싸움을 시작한 그는 딸아이와 보낼 행복한 시간을 꿈꾼다. '가정의 달' 5월에도 가정에서 소외된 누군가는 사랑하는 자녀와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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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반지하 그곳엔 아직도 사람이 산다 지면기사
물이 그렇게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 체감한 건 지난해 8월이었다. 당시 누적 강수량 최대 690㎜의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경기도 전체가 쑥대밭이 됐다. 도로가 마비되고, 산사태가 발생하는 등 폭우는 공포 그 자체였다. 특히 반지하 주택 4천5가구가 침수돼 80억원 상당의 재산 피해와 최대 4천31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물은 그 이치대로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고통은 취약계층에 집중됐다.수습기자로 현장에 급파된 나는 나흘 동안 침수 피해 현장을 목격했다. 반지하 거주민들은 집안까지 차오른 물을 밤새도록 쓰레받기로 퍼냈고, 먹통이 된 냉장고를 지상으로 옮겨 햇볕에 말렸고, 다음날 비 소식에 짐을 리어카에 실어 인근 교회에 맡기고, 화장실 변기통에서 흐른 똥물에 젖은 옷과 서적들을 폐기 처분했다. 그 참상에 나는 때로 인터뷰하기보다 복구작업을 도왔다. 형식적인 백 마디 질문보다 당장 가용할 수 있는 하나의 몸뚱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이후 정부는 대책을 내놨다. 지하층·반지하층 주택을 공공이 매입 후 리모델링해 지상층을 공공임대주택, 지하층은 비주거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두 차례 실시한 공고에서 매입된 반지하 주택은 없었다. 기준에 적합한 매입 물량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비주택 거주자에게 지원하는 주거상향지원 사업도 더딘 상황이다. 적합한 매물이 부족해 시간이 지연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최근 취재차 박달1동을 돌아다녀 보니 여전히 취약계층이 거주하고 있었다. 한 공인중개사 말에 따르면 생계유지 여력이 있는 사람은 떠났고 홀몸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만 남았다고 한다.한 달 후로 다가온 이번 여름도 심한 폭우가 내릴 예정이다. 이제 남은 대안은 물막이판, 역류 방지시설 등 침수 방지시설을 통해 물을 막는 것뿐이다. 다행히 경기도가 침수 방지시설 설치를 지원한다고 한다. 그곳에 사람이 사는 만큼,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게 공동체 사회의 의무이자 존재 근거일 터, 확실한 지원을 통해 다시는 재난이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김동한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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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동포의 목소리 지면기사
어색한 눈인사로 시작해 영어와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해 대화를 이어나갔다. 처음 본 기자에게도 살갑게 대하며 할 말이 많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감사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고려인들과 오랜 시간 이어간 대화는 낯선 고국 땅으로 돌아온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했다.고려인은 일제 강점기 무렵에 항일 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조국을 떠나 먼 이국땅에서 살아야 했던 이들과 그 후손을 말한다.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만 7천여 명이다.주거와 일자리, 언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고려인들에게 자녀 보육료도 큰 부담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한 달에 수십만원에 달하는 보육시설 원비를 내긴 힘들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주민참여예산사업 일환으로 '재외동포(고려인) 자녀 보육서비스 지원사업'을 시범 운영했다. 올해도 같은 사업을 펼치게 됐지만,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올해 사업에 선정된 단체가 모두 연수구와 남동구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연수구와 남동구에 살지 않는 일부 고려인은 보육 지원금을 받기 위해 매일 아침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어린 자녀를 이끌고 연수구와 남동구로 가야 했다.인천의 다른 군·구에 사는 고려인들은 대략 1천여 명이다. 이들의 자녀는 단지 연수구와 남동구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받기가 어렵게 됐다. 서구에 사는 한 고려인은 자신이 직접 고려인 엄마들을 모아 서구에 사는 아이들이 몇 명인지 집계해 봤다며 가져온 종이를 보여줬다. 그가 보여준 종이에는 29명의 고려인 자녀가 서구에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혀 있었다.뜻하지 않게 차별을 겪어야 했던 고려인들의 아쉬운 목소리에 인천시 한 관계자는 내년 사업에는 모든 고려인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업이 시작된 후에야 연수구와 남동구가 아닌 지역에 사는 고려인들도 지원을 받고 싶다는 의견을 전해 들었다고도 했다. 다른 지역에 사는 고려인들도 똑같이 지원을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사업을 펼치기 전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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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잊히는 것과 잊는 것 지면기사
지난 3월의 첫날을 미안하단 말로 시작했다. 대학생 취재원들에게 부랴부랴 짤막한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상황이 해결돼서요. 마침 부서도 문화체육부로 바뀌었네요. 미안해서 어쩌죠." 무심코 쓴 '해결'이란 단어가 왠지 모르게 찝찝했지만, 괜찮다는 답신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 명에게서 응원 메시지까지 받으니 마음의 짐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렇게 기억에서 잊었다.'들랑날랑 혼삿길'이란 다큐멘터리를 처음 본 건 지난주였다. 장소는 영화관이 아닌 미술관. 고백건대 현대미술 전시를 관람할 때면 영상 작품은 힐끗 보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시각효과를 사용한 이 작품도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던 찰나, 장면이 바뀌고 주인공 '민기'의 아버지가 말을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민기'를 타일렀다. 분노하는 대신 온화한 태도로, 마치 교화시킬 수 있는 것이란 듯. '민기'의 정체성은 게이다. 문득 대학생 취재원들에게 보냈던 질문지가 떠올랐다.치열한 정쟁이 한바탕 벌어졌다. 지난 2월 경기도의회는 '성평등 조례'를 두고 시끄러웠다. 기본권인 '평등권'을 담은 이 조례를 상위법에 맞춰 용어를 남성과 여성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개정안이 나왔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당사자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가장 보통의 사람, 퀴어' 첫 기획 취재 때 만났던 '퀴어 대학생' 취재원들에게 오랜만에 연락했다. 당사자들은 지역 사회의 소외된, 지워진 존재들이 앞으로 더욱더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 될 거라 걱정했다.가스레인지 불을 끄니 주전자에 담겨 팔팔 끓던 물은 잔잔해졌고, 곧바로 차갑게 식었다. 결과적으로 위 개정안은 상임위에 상정되지 않았다. 정쟁은 일단락됐고, 구상해뒀던 기사도 작성을 멈췄다. 소수자가 마주하는 부당한 현실은 여전하지만, 그 사이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무섭도록 완전히 잊혔다. '해결'된 게 아닌데 함부로 쓴 단어 때문일까. 나조차도 쉽사리 기억에서 잊은 탓일까. 다시 마음이 불편해진다. /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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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유쾌한 기억 지면기사
무겁고 긴장되는 마음을 딛고 약속장소에 들어선 것도 잠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 보니 장장 2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어머니뻘 중년 여성 세 분은 기자가 질문을 채 건네기도 전에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만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개 우리 아들이 어디서 칭찬을 받았다든지, 우리 아들이 이제는 '에이스'로 불린다든지 하는 말들이었다. 서로 웃고 귀여워하다 보니 자연스레 취재도 잊은 채 박수를 치며 함께 웃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유쾌한 기억으로 남은 하루는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물론 가벼운 이야기들만 오고 가는 자리는 아니었다. 종종 산통을 깨는 아픈 질문을 건네야만 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금세 반전되곤 했다. "우리 애는 요새 요리에 관심을 보이더니 이제는 호박 같은 채소도 적당히 잘 써는 거 있죠"라는 말에 다 같이 기특해 하고, "우리 애는 아직도 손 인사를 손등을 앞으로 보이면서 해요. 글쎄 상대가 자기 쪽으로 손바닥을 보이면서 인사하니까 그대로 배운거죠(웃음)"라는 일화에는 모두가 손을 들고 따라 하며 귀여워했다.그런 하루를 마친 뒤 홀로 기록을 살펴보던 다음 날. 왜인지, 무거운 내용들만 자꾸 눈에 밟혔다. 통상 취재 당시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중요한 내용을 되짚는데, 이날의 기록은 유쾌했던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당장 보호시설을 떠나야 한다면 그 다음 곳은 어떻게 찾을지", "결국 내 손을 떠날 때면 남은 애는 어떻게 지낼지 막막할 뿐"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들만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나 많이 웃고 떠드는 사람들도 혼자 있으면 그렇게 걱정도 많아지고 우울해 한다"는 말의 본뜻을 그제야 체감했다.혼자 남겨진 발달장애인 가정이 겪을 우울감은 안타깝게도 비극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발달장애 자녀를 둔 보호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경기도 내에서만 5건이었다. 안산에서 홀로 발달장애 20대 형제를 키우다 숨진 60대 남성은 주변에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생활고에 시달렸었고, 수원시와 시흥시의 부모들은 처지를 비관해 제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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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저출산 대책? 있는 아이라도 잘 키우는 환경을 지면기사
최근 100일 난 아기를 안고 외출을 할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아기 너무 오랜만에 본다. 요즘 아기 보기가 어려워요." 몇 년 새 출산율은 급감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의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8명을 기록했다. 인구 규모 유지를 위해서는 최소 합계출산율은 2.1명을 넘어야 하는데 이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아이 구경하기 어려운 시대인데 수원 망포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많아서 고민이다. 아파트 인근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학군도 우수해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이 키우기 좋은 곳으로 소문나 인기가 높아서다.아이들이 몰리니 문제는 어린이집을 보낼 때부터 시작된다.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놔도 순번이 100번대에 달한다. 2세 반 총원이 12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1년도 넘게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이곳은 출산율 감소를 걱정하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외딴 섬 같다. 어린이집을 보내려면 대기 전쟁을 거쳐야 한다. 아이들은 많은데 보육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여기를 떠나는 학부모들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맡기고 싶어도 맡길 수가 없는 것이다.실제로 수원 망포동은 2천~3천세대당 어린이집 수가 불과 1곳뿐이다. 아이들은 많은데 보육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니 집 앞에 위치한 어린이집을 놔두고 20분 거리의 어린이집을 보내야만 하는 실정이다.문제는 어린이집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수원시가 올해 수원 망포동 일대에 4곳의 어린이집 운영 모집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는 2명뿐이었다. 인건비, 물가상승 등의 이유로 운영이 녹록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정부와 지자체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있는 아이들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할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승택 경제부 기자 taxi226@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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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축의금의 기준 지면기사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청첩장을 받는 일이 늘었다. 코로나19로 미뤘던 결혼을 진행하는 이들이 많아져서다. 본격 웨딩 시즌이 도래한 요즘엔 종이 청첩장은 물론 모바일 청첩장을 심심치 않게 받고 있다. 청첩장을 받고 난 이후엔 가끔 고민에 빠진다. '축의를 얼마나 해야 할까…'. 사실 축의금은 오랜 고민거리 중 하나다. 관련된 일화도 있다. 사회초년생과 다를 바 없던 2017년 일이다. 입사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던 때인데 소속부서 선배가 옆자리에서 넌지시 청첩장을 건넸다. 얼떨떨하게 청첩장을 받은 뒤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친구가 말했다. "계속 볼 선배니까 5만원이면 되지 않을까."이후 김불꽃 작가의 책 '예의 없는 새끼들 때문에 열 받아서 쓴 생활예절'을 읽게 됐다. 2018년에 출간된 책으로 작가는 축의금 기준을 이같이 정리했다. 기본 5만원, 친하면 5만원 이상, 진짜 친하면 10만원 이상. 기본 식대가 4만원인 만큼 기쁜 마음으로 내자는 취지다.그러나 책이 출판된 지 5년여가 지난 지금, 과거의 기준을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결혼식 식대가 크게 올라서다. 성남의 한 결혼식장은 올해 초 정식 식대 가격을 기존 5만5천원에서 5만9천400원으로 5천원 가까이 올렸다. 수원의 한 결혼식장 식대도 최근 6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물가에 예식장 식대도 줄줄이 인상된 것이다.최근 결혼 소식을 전한 지인도 이 문제로 시름이 깊었다. 5월 예식을 앞둔 A(32)씨는 "상담 다녀본 곳 중에 식대 7만5천원 이하는 없었다. 나이트 웨딩을 택해서 6만원 후반으로 저렴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식에 와서 5만원을 내고 밥 먹으면 솔직히 서운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치솟는 물가에 결혼식 비용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신랑·신부는 물론 하객들의 부담도 늘었다. 돈의 가치도 하락해 결혼식에 참석할 거라면 축의 10만원이 기본이 됐다. 축하를 담아야 할 축의금 봉투에 가끔 한숨이 담긴다. 고물가가 낳은 씁쓸한 단면이다. /윤혜경 경제부 기자 hyegyung@kyeongin.com윤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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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세계선수권 개최가 여자아이스하키 발전 계기돼야 지면기사
국내 유일의 여자 아이스하키 실업팀을 보유한 수원에서 세계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가 열린다.오는 17일부터 광교복합체육센터 아이스링크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의 세계 여자 아이스하키 대회 중 3부 리그(디비전1 그룹 B)에 해당하는 대회로 대한민국을 포함해 이탈리아, 폴란드, 슬로베니아, 영국, 카자흐스탄 등 총 6개국이 출전한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하면 사상 처음으로 2부 리그인 디비전1 그룹 A로 승격하는 역사를 쓰게 된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우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아직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의 현실은 열악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단일팀이 출전해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낸 데 이어 2018년 12월20일에는 수원시청 대강당에서 수원시청 여자 아이스하키팀 창단식까지 열리는 등 희망이 부풀어 올랐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는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아직도 여자 아이스하키 실업팀은 수원시청뿐이라 대회를 치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이번 세계 선수권대회 개최는 이처럼 침체한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환경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세계 선수권을 계기로 광교복합체육센터 아이스링크라는 좋은 시설을 보유한 수원시와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수원시청팀의 발전을 포함해 여자 아이스하키의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여자 아이스하키 클럽팀이나 학교 운동부를 만드는 방안 등 다각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오늘도 묵묵히 아이스링크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세계 선수권 우승을 기원한다. /김형욱 문화체육부 기자 uk@kyeongin.com김형욱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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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설레는 봄의 캠퍼스 지면기사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가 삐뚤빼뚤 글씨가 적힌 종이를 들고 대학 광장에 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새내기를 이상하게 보기도 하고, 시원한 음료수를 한잔 가져다주며 응원해주기도 했다.그해 가을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나섰다. 정치적인 판단, 교육의 흐름, 여론 등 종합적인 이유로 추진된 정책이었다. 그만큼 사학과에 갓 입학한 학생이 모든 걸 이해하기엔 복잡한 사안이기도 했다.그래도 주관은 있었다. 적어도 '역사'만큼은 여러 시각에서 보고, 많은 입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했다. 그런데 본인 학과의 한국사 교수가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한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내가 1인 시위를 하게 된 계기였다.국정화 정책은 학과생 모두의 관심거리였다. 수업에서든 사석에서든 여러 의견이 오갔다. 학생회는 '사학도로서 어떤 입장을 내야 할 것인가'를 화두로 학생총회까지 열었다.건강한 논의였다. 이런 학생들의 목소리는 전국 캠퍼스에서 울려 퍼졌다. 지역, 학과, 정치적 신념을 초월한 토론이었다.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정부에겐 무시할 수 없는 큰 여론이었을 것이다.정부가 이번엔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국외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방안을 일본 측이 참여하지 않는 '제3자 변제' 방식으로 결정했다.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 정치적 판단, 경제 활성화, 여론 등 종합적인 이유로 정책이 추진됐다. 이번엔 대학에서 어떤 목소리가 나올까.봄의 캠퍼스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특히 올해는 그 설렘이 곱절은 될 것이다. 떨어지는 벚꽃 잎 아래서 사진을 찍고, 술을 왕창 사 들고 엠티를 떠나고, 학과의 명예를 위해 체육대회에 참여하고, 다가오는 중간고사를 위해 밤새워 공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다만 봄의 캠퍼스에 설렘만 가득하고, 건강한 논의가 없어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