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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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우리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 지면기사
천생 문과인 기자가 과학에 빠졌다. 그것도 이해조차 어려운 우주과학이다.틈만 나면 블랙홀의 원리와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 같은 과학용어들을 유튜브에 검색해 시청하고, 관련 기사를 검색한다. SNS 알고리즘은 온통 우주로 도배돼 퇴근하면 침대에 누워 우리은하부터 안드로메다은하까지 광활한 천체들을 탐험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과학에 빠지게 된 건 '언제나 완벽한 이론은 없다'는 과학의 속성 때문이다. 새로운 학설이 나오면 반증이 뒤따르고, 그 사이에 또 다른 주장과 반론이 반복되면서 과학은 발전한다.가령 현재는 비과학적인 주장임이 입증된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멈춰있고,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천체가 원을 그리며 회전한다'라는 천동설은 역설적이게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떠올리게 하는 지대한 역할을 했다.이처럼 과학자들은 '언제나 내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반증을 받아들이고, 학설의 폐기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정하며 과학혁명을 이끌고 있다.반면 과학과 함께 우리 삶의 큰 일부를 차지하는 정치는 어떨까. 내 말이 맞고 네 말은 틀리다. 정당 정파에 따라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혐오의 정치'는 정부와 국회가 민생 회복을 위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마비시키고 있다.혐오의 정치는 우리 사회에도 파고들고 있다. 국민들은 세대, 남녀, 지역 갈등 등 단순히 주장뿐 아니라 이제는 서로의 존재조차도 부정하는 극단의 사회로 흘러가고 있는 실정이다.'언제나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과학적 사고는 인류의 진보를 가져왔다. 우리가 과학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이자, 지금 가장 과학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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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바보야, 문제는 시간이 아니야 지면기사
"일이 없는 날이 없는데 휴가를 언제 써?"콘텐츠 제작업계에서 일하는 지인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 발표 기사를 보고 물었다. 그는 "프로젝트 하나 끝나면 숨돌릴 시간을 주겠다고 (회사에서) 말하지만, 일감은 매일 생긴다"며 "퇴근하고도 일해야 간신히 기한을 맞추는데, 장기휴가를 어떻게 쓰느냐"고 하소연했다.일이 몰릴 때 한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쉬게끔 하는 유연한 근무시간을 적용하는 게 애초에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이었다. 특히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해 추가 근무에 대한 보상을 휴가로 적립하는 방안도 제시했다.여론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감지한 대통령은 '주 60시간'을 거론했고, 주무부처 장관은 60이 맞는지 69가 맞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전국의 노동자들을 만나 진화에 나섰다. 지금도 업무시간은 충분히 긴데, 시간을 더 늘리는 대신 당근으로 주어지는 게 '그림의 떡' 같은 휴가라니 반발이 없는 게 이상하다.1인당 노동시간을 줄이되 사람이 필요하면 추가로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52시간제 취지다. 그러나 고용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고, 노동 여건도 크게 나아진 건 없다. 그렇다면 손을 대야 할 부분은 둘 중 하나다. 사람을 더 고용하게 하거나, 추가 고용이 안 되면 기존 노동자들에게 보상을 더 해주거나.시간을 늘리고 줄이는 문제를 논할 게 아니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확실하게 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먼저다. 결국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나 사용자는 경기 악화를 이유로 난색을 보인다. 그럼 사용자의 부담을 완화할 방안(법인세 인하 등)과 노동시간 문제를 함께 다룰 수도 있지 않은가. 여야와 노사 간 시각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을 두고 의견 수렴 없이 내놓으니 대립이라는 혹만 하나 더 붙었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타협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정치의 단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dal@kyeongin.com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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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수많은 창작물이 빛나기 위해 지면기사
"생각했던 것보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것 같았어요." 지난해 말 손원평 작가의 베스트셀러 '아몬드'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 저작권자와 협의 없이 제작된 사실이 알려지며 큰 이슈가 되자 한 공연계 관계자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저작권 중개를 담당했던 출판사가 연극의 제작 사실을 인지하고도 작가에게 뒤늦게 전달한게 문제였다. 손 작가는 출판사의 SNS를 통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저작권자의 동의는 가장 후순위로 미뤄졌다"며 "많은 사람이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떠밀리듯 상연에 동의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출판사와 극단 연출이 사과했지만, 저작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업계에서 오히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사태 이후 '아몬드'의 출간 계약이 종료되면서 절판·품절사태를 불러왔다. 비슷한 시기 즈음 대학로의 스테디셀러로 불리며 오랜 시간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컬 '빨래' 역시 라이선스 중단을 공지했다. 제작사 측은 안내문에서 "교육을 목적으로 공연 제작을 희망하는 단체에 한해 선한 목적으로 공연 라이선스를 무료로 제공했다"면서 "그러나 무단 저작물 수집·유포·거래, 불법 저작물을 활용한 공연 상연 등의 무수한 악용 사례로 라이선스 운영을 중단한다"고 알렸다. 저작권 문제에 대한 이슈가 한두 해 있었던 것이 아닌데, 여전히 그 인식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다시 자각하고 있을 때 만화 '검정고무신' 작가 이우영씨의 별세 소식이 들렸다. '작가에게 작품은 자식과도 같다'는 한 연극의 대사가 떠오르며, 저작권자가 저작물을 두고 이토록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몹시 안타까웠다.문화체육관광부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불공정한 계약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이 보호돼야 수많은 창작물이 빛날 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고질적인 문제지만, 지금껏 개선되지 못하고 있었던 어두운 이면을 이제는 정말 모두가 관심을 갖고 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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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수준과 품격 지면기사
수준과 품격은 어떤 대상의 발전 정도를 가늠할 때 줄곧 거론된다.사람의 경우 통상 수준이 높으면 품격도 높다고 말하는 등 두 개념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집단도 있는데 지방의원이 그러하다.지방의원의 수준이 많이 올랐다. 일단 전문직이 많이 늘었다. 국회의 산물이라고 여겨졌던 변호사·노무사 등 소위 '사(士)'자가 들어가는 전문직들도 지방의회로 속속 들어왔고 지방의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던 다선 의원 비중도 늘었다. 경기도민에게도 좋은 일이다. 수준 높은 이들이 의회에 들어와 지방자치법 강화를 외치니 우연의 일치일진 몰라도 차차 국회가 개정도 해줬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지방의회 역시 국회처럼 교섭단체가 법문화되는 제도가 마련됐다.그러나 품격도 올랐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경기도의회는 3월 임시회를 최근 개회해 23일까지 회기 중이다. 세 차례에 걸친 본회의를 진행했는데 의원들의 참석률이 가관이다. 전체 의원 156명 중 100명 언저리가 '재적'한 것으로 전광판에 표시됐는데, 실상은 전체의 3분의1도 안 됐다. 화장실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운 일부를 빼더라도 최소 50명 이상은 출석만 하고 튄 것이다.그렇다면 의정 성과는 어떠할까. 이마저도 아쉽다. 치열해야 할 도정질의는 그야말로 맹탕이었다. 집행부와 질문 공방을 하는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더 알아보겠다", "열심히 하겠다"며 즉답을 피하는 집행부를 질타하는 의원들은 볼 수 없었다. 정책 허점을 파헤쳐보려는 의지가 도의회에서 실종됐으며 일부 상임위는 의원정족수 미달로 파행을 겪기도 했다.지방의원의 원활한 의정활동을 위해 의정비(사실상 월급)를 더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국의 지방의회에서 울려 퍼진다. 나 역시 찬성한다. 많은 일을 하기에 지금 의정비가 적은 게 맞다. 그러나 할 일은 하면서 요구해야 타당치 않은가. 품격부터 올리고 볼 일이다.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명종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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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자연스러운 죽음 지면기사
지난 주말 김포시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다행히 큰불로 번지진 않았지만, 화재 당시 집에 있던 50대 남성이 화상 등 부상으로 숨졌다. 집 안에서는 숨진 남성의 어머니인 80대 여성의 시신도 발견됐는데, 그는 불이 나기 수일 전에 이미 숨진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사고 당일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이 있었다. 불이 난 여파로 검게 그을린 거실을 찍은 사진에는 다수의 쓰레기가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부패가 진행 중이던 여성의 시신, 숨진 어머니와 며칠을 함께 지낸 아들, 집에 방치된 쓰레기까지. 자연스럽지 못한 정황이 여기저기서 발견됐다.숨진 모자가 살던 아파트를 찾았다. 이들을 기억하고 있는 이웃 주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해당 가정은 참전용사로 보훈대상자였던 남편과 아들·딸 등 자녀가 연이어 숨지며 고립 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남은 가족 없이 둘이서만 생활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이웃들은 "사정이 어려워 보였다"고 증언했다. 한 주민은 관리사무소를 통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까지 알아봤다. 그러나 모자는 주위의 도움을 거부했다고 한다. 관할 행정복지센터에서 이 가정에 반찬 배달을 지원하려고 했으나, 이마저도 가정에 직접 방문하는 건 꺼렸다고 센터 관계자는 전했다.실화인지 방화인지, 아직 불이 난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여성은 어떤 이유로 숨졌는지, 모자가 쓰레기를 집 안에 방치한 이유는 무엇인지, 이들은 왜 주변의 도움을 거부했는지. 발화 원인은 검증을 통해 추후 밝혀지겠지만, 이들이 죽기 전 마주했던 삶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그 누구도 끝내 밝히지 못할 것이다.자연스럽지 못한 죽음을 바라보며 죽음에도 '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맞는 삶의 마지막 모습이 자연스러운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인데, 정말 그렇다. /배재흥 사회부 기자 jhb@kyeongin.com배재흥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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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무기명과 거수 투표 지면기사
"170표 이상 부결 나오지 않을까요.", "무기명 비밀투표잖아요, 변수가 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당내 분위기는 역시 부결입니까?", "네, 틀림없습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의 국회 표결이 있었던 지난달 27일 아침 곳곳의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들이 던진 질문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답변들이다. 경기도 내 한 공공기관 출입기자실에서도 170표까진 아니더라도 일단 부결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결과는 사실상 반대였다. 가결 조건인 과반수(149표) 찬성을 충족 못해 체포동의안은 부결됐으나 찬성(139표)이 반대(138표)보다 1표 더 나오면서 국민의힘은 "사실상 승리"를 외쳤다. 민주당에선 강성 지지자들이 즉시 이탈표 색출에 나서는 등 상반된 모습이 나왔다. 결국 무기명 비밀투표가 변수로 작용해 적지 않은 이탈표를 만든 것이다. 정당 내 다수 의견과 배치된 표를 던지더라도 '익명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다.다음날인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의원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수원시의회에서 여야가 갈등을 빚던 한 조례 안건을 두고 표결을 진행했는데, 여기선 익명성이 보장되지 못했다. "무기명으로 할 것을 민주적 절차에 따라 요청한다"는 한 민주당 의원의 제안이 있었으나 의장은 "의장 결정권이라 이해해주기 바란다"며 곧바로 거수 투표로 안건을 처리했다.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을 두고도 '당당한 정치인이라면 기명으로도 소신과 책임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국회가 인사 등에 대해 무기명으로 표결하도록 하듯이 지방의회도 중대사안과 관련해선 최대한 민주적 절차를 보장할 여지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정당 내 다수 의견에 반하는 표를 던지도록 숨겨주자는 게 아니라, 정당을 떠난 소신 투표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안건에 대해선 잠시 색깔을 걷어내고 객관적으로 고민할 기회를 줄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김준석 사회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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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폐교 위기를 벗어난 특별한 방법 지면기사
지난 2일 인천 강화도에 있는 특별한 학교인 명신초등학교를 찾았다. 인천 강화군 하점면의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시골 학교에 입학하는 7명의 신입생을 축하하는 자리를 보기 위해서다. 이날 김형순 교장은 강당에서 신입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고 모든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신입생들은 모두 강화도가 아닌 인천 서구 검단 일대에서 등교했다. 이들을 포함한 전교생 61명 중 절반 이상이 도심에서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로 왔다. 수도권의 학교도 폐교 위기를 피해가긴 어려운 상황에 명신초의 전교생 수는 지난해보다 2명 늘었다.도심에서 작은 시골 학교까지 아이들의 발길을 향하게 한 것은 도심의 학교와는 다른 명신초의 교육 때문이다. 이미 10여 년 전에 폐교 위기를 맞닥뜨린 학교는 생존 방식을 찾아 나섰다. 2010년에 명신초 선생님들이 편도 1시간 거리의 검단 일대에 사는 학생들을 직접 차로 태워오기 시작한 것이다. 시골학교 텃밭에서 작물을 길러 수확하는 체험을 희망하는 아이들이었다.1944년에 개교한 명신초는 교실 수가 부족해 돌봄 전용 교실과 방과 후 전용 교실은 따로 갖추지 못했다. 비록 최신식 건물은 아니라도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기대감은 높았다. 입학식에서 만난 학부모는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뛰노는 걸 좋아하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학부모는 자녀가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명신초가 폐교 위기를 벗어난 방법은 특별하지 않다. 학교와 부모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 학교는 자연 체험 활동을 희망하는 도심의 아이들을 거절하지 않았고, 부모들은 숲에서 흙을 만지고 놀고 싶다는 자녀의 생각을 존중했다. 명신초는 운동장에 걸어놓은 현수막 문구 하나도 학생들의 제안을 받아 결정해 왔다. 지난해엔 학교 마스코트인 '예똑이(예절이 바르고 똑똑한 아이)' 디자인을 투표를 통해 학생의 그림으로 선정했다. 학교 소멸 위기 앞에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교육방식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100@kyeong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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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행정 편의주의에 멍드는 공교육 지면기사
두 달여 동안 경기도교육청을 출입했다. 짧은 기간 나름 다양한 기사를 썼지만, 학령인구 감소 관련 사안을 취재할 때마다 번번이 머리를 싸맸다. 학령인구 감소는 교육계 공무원들의 무적 논리이기 때문이다.교육부와 도교육청 공무원들은 "심각한 저출생 현상으로 학령인구가 감소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는 답변으로 모든 질문을 방어한다. 늘어나는 학급 수만큼 초중고 교사 정원을 늘리지 않는 것, 올해 도내 91개 공립 병설 유치원을 휴원한 것 등 모든 게 '학령인구 감소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다.모든 선택엔 기회비용이 따르는 법,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에 공교육은 멍이 들고 있다. 이를테면 초중고 학교에선 부족한 교사 정원을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 메우고 그것도 모자라 정원외 기간제 교사로 땜질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도내 기간제 교사는 전체 교사의 18%, 정원외 기간제 교사는 전체 기간제 교사의 24%에 달한다. 이에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실제 학교에선 같은 교육 시스템을 일년도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간제 교사가 담임 또는 부장교사를 맡는 일이 허다하다. 매년 재계약하는 기간제 교사 특성상 인수인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기간제 교사 채용 및 관리는 정규 교사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 행정업무가 증가한다. 교사의 행정업무 증가는 자연스레 수업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결국 수업받는 학생에게 모든 비용이 전가되는 셈이다.이처럼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는 답변은 비겁하고 무책임한 변명에 가깝다. 결정이 불러올 파장을 다각도로 검토하지 않은 채 수치와 데이터로만 공교육의 가치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대 사안을 관행대로 결정하는 행정 편의주의의 소산인 셈이다. 2일 새 학기가 시작한다. 이번 학기부터 취임 2년 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와 임태희 도교육감의 핵심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는 만큼, 그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행정 편의주의를 탈피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동한 경제부 기자 dong@kyeongin.com김동한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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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아이를 기억하며 지면기사
지난 7일 인천 남동구의 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계모와 친부에게 학대를 당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의 이름과 아이가 다녔던 초등학교, 체구 등 정보만 가지고 온 동네를 다녔지만 헛수고였다. 흔히 아이들이 하교 후 들르는 떡볶이집, 편의점, 문방구에서도 전혀 아이를 알지 못했다.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들어간 한 가게 직원들에게 "혹시 이 아파트에 살았던, 마르고 아동학대 의심이 보였던 아이를 아시나요?"라고 물어보자 직원이 깜짝 놀라며 답했다. "바로 앞 동에 사는 아이 맞나요?"이 아이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직원들은 너무나도 말라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 시간 전에 반찬 가게를 찾았다고 한다. 아이의 휴대전화 통화 소리 너머로 들리는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직원들은 친모가 아님을 확신했다고 한다. 한 달 전 아이가 찾아왔을 때 다음엔 꼭 아동학대 신고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그날이 아이를 본 마지막 날이었다고 한다.지난해 6월 옆 동네로 이사 왔던 아이는 다니던 초등학교를 옮기지 않은 채 몇 달간 약 2㎞나 떨어진 이전 집 근처 학교에 계속 다녔다. 어른 걸음으로 30분이 걸릴 정도로 먼 거리였다. 아이가 다녔던 길을 직접 걸어보니 공사장을 지나야 하고, 크고 작은 도로 등을 여러 번 건너야 했다. 홀로 그 긴 거리를 걸으며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인천시교육청은 부랴부랴 미인정결석(장기결석) 학생관리 매뉴얼을 재검토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불과 2년 전인 2021년 3월에도 인천 중구 영종도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어린 나이에 보호자의 학대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기억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수진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wed@kyeongin.com이수진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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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어렵게 써야만 하는 글 지면기사
시위 현장으로 향하거나 취재원을 만나러 가는 길, 반론을 한가득 떠올리며 출발하곤 했다. "일각에서 그러던데요…." 도착해선 명함 하나를 내밀고 비겁한 질문을 조심스레 꺼냈다. '1+1=0이 될 수 없다. 왜냐면 뺄셈이 아니기 때문'처럼 명료한 반박을 듣고 그대로 전하며 편하게 기사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대개 즉답을 얻지 못했고 취재는 실패로 끝났다.쉽게 쓴 글은 미처 기사가 되지 못한 채 선배의 불호령만 불러냈다. 실패를 곰곰이 곱씹어봤다. 취재 현장은 촘촘한 논리 싸움이 벌어지는 토론장이 아니었다.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독자 이해를 돕는 논리를 세우는 일은 취재원이 아닌, 온전히 기자 몫이었다.기자가 만들어야 하는 논리는 두꺼운 책에서도, 저명한 학자가 쓴 논문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오직 현장에서 전하는 이야기, 그 속에 담긴 긴 맥락에서 끄집어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사실을 조합해 논리를 짜는 과정은 두통이 생길 만큼 고난의 연속이지만, 마지막 퍼즐을 맞춘 뒤 찾아오는 묘한 쾌감은 뇌를 상쾌하게 해주곤 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진부한 말로 직업적인 보람을 포장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어렵게 쓴 글이 기사로 전해질 때 각자도생 사회에 연대의 불씨를 조금씩 살려낼 거라 믿는다. 타인이 처한 상황에 쉽게 공감해주지 않는 현실에서 순순히 연대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혐오할 자유도 있다", "누가 대형마트에서 일하라고 협박이라도 했니?", "기업 없이는 노동자도 없다", "왜 돈을 쉽게 벌려고 해서 피해자가 됐니".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소를 무너뜨리는 건 결국 한 인간의 삶에 담긴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다.반론을 쏟아내는 대신 진짜 이유를 찾으려 현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뗀다. "당신은 왜 거리로 나섰나요?" 누군가가 말하는 냉소를 전하는 꼼수를 부리는 대신, 단도직입으로 질문하고 답변에 담긴 숨은 맥락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맬 오늘이 묘하게 기대된다. /유혜연 사회교육부 기자 pi@kyeongin.com유혜연 사회교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