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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죽음을 넘겨짚는 일 지면기사
7년 전 어느 여름날, 눈앞으로 폐종이 더미가 쏟아졌다. 피할 틈이 없었다. 기계로 압착된 종이더미가 무쇠처럼 그의 두 발목 위를 덮쳤다. 뼈가 17조각이 날 정도의 대형 사고였다. 응급 수술을 받고도 통증이 날로 심해졌다. 퇴원을 하고 통원치료기간에 의료진을 만나 그는 "아파서 잠도 잘 못 잔다"고 했다.재수술을 하기로 했다. 1차 수술하고 6개월 뒤였다. 그도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일터로 돌아갈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수술 경과가 나쁘지 않았을까. 재활 과정을 일부 건너뛰고 그는 다시 공장으로 향했다. 영구장해 판정을 받아 걸음이 온전치 않은 두 다리를 이끌고.그러다 지난해 4월 다른 사고가 그를 '덮쳤'다. 지게차에 실려있던 파지 원료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다. 7년 전 사고와 비교해 부상 정도는 경미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쪼그라든 그의 입지는 스스로를 불안에 옭아맸다.70의 나이를 앞둔 그에게 우선인 건 회사와의 계약 연장이었다. 1년마다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는 비정규직 처지를 앞세워 만신창이가 된 몸은 애써 감췄다. 그의 가족은 "회사 요구대로 산업재해가 아닌 공상으로 처리하고, 머리에 수술 실밥을 푼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출근길에 나섰다"고 했다. 여기까지가 지난해 12월 영풍제지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하청 노동자 이봉재(68)씨의 생전 의무기록과 유가족의 이야기를 종합한 것이다.죽음이 한 세계의 무너짐이라면, 설명 몇 가지로 타인의 죽음을 넘겨짚는 것만큼 우스운 건 없으리라. 그럼에도 어느 죽음은 설명을 보태야만 조금이나마 선명해지는 게 있다고, 감히 죽음을 기록하며 생각한다. 그는 두 다리가 바스라지고, 머리가 깨졌던 공장에서 다시 일하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조수현 사회부 기자 joeloach@kyeongin.com조수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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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사할린동포들의 소박하고도 절실한 요구 지면기사
지난달 정부는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그동안 사할린동포의 '배우자와 직계비속 1명 및 그 배우자'만 영주귀국 사업 참여가 가능했지만, '모든 자녀'로 지원대상을 확대했다.개정된 내용만 보고 사할린동포들의 '환호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젠 고국 땅에서 자녀와 함께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을 것이라고 섣불리 예단했다.언제나 그렇듯, 기자의 예상과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경기도내 거주 중인 사할린동포 1천561명 중 700여 명, 즉 가장 많은 사할린동포들이 모여 살고 있는 안산의 고향마을에서 만난 사할린동포들은 법 개정과 무관하게 자녀의 귀국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영주귀국 대상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이 마련되지 않아 귀국은 더뎌지고 있었고, 이미 귀국한 이들은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가족관계증명서 상 가족으로 인정되지 못한다. 부모가 사망한 경우 영주귀국 대상자로 선정되지도 못하는 이들은 아직도 사할린에서 고국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아픈 현실도 전해들었다.일제강점기 시절 사할린으로 건너가 겪게 된 수모들, 그곳에서의 차별받고 억압받던 기억들, 고국으로 오기까지 기다림의 여정들…. 부끄럽게도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서야 이들이 왜 그토록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기자에겐 너무 당연했던 '고국이 주는 안정감'이 그들에겐 절실했던 것이다."다들 그렇게 사는데…. 불편해도 그냥 사는거지 뭐"라는 이경분 할머니의 말은 취재 중 들었던 가장 안타까운 말이면서, 이들에 대한 '찾아가는' 지원의 필요성을 부각시켜주는 말이었다.광복 이전과 이후 태생으로 분류되는 사할린동포 1세대와 2세대의 고령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더 늦기 전에 사할린동포를 위해 지원을 발굴해야 하는 이유다. 안정감 하나를 바라보고 귀국한 이들의 소박한 요구를 이제는 국가가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이영지 정치부 기자 bbangzi@kyeongin.com이영지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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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옆 법정에 갔더라면 지면기사
사람을 죽인 두 사람에 대한 1심 선고가 한날 한시에 나왔다. 지난해 1월19일 법원을 출입한 지 20일도 안 됐을 때다. 당시에는 수많은 재판 중 어떤 재판을 우선순위에 두고 챙겨야 할지 판단조차 못했다.나는 취재진이 많은 쪽을 택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동급생을 성폭행하려다 창밖으로 떨어트려 숨지게 한 20대 남성에 대한 판결이었다. 사회적 공분을 산 사건이었다. 재판장은 선고 직전 '성폭행 사건'이라는 점을 취재진에게 강조했다.법원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이 끝나고 차근차근 곱씹으며 기사를 썼다. 재판장의 당부, 고인과 유족, 지인들이 느꼈을 고통과 충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럭저럭 마감을 할 때쯤 옆 법정 소식이 들려왔다. 뇌병변장애인 딸을 살해한 엄마에 대한 판결이었다. 딸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심했다. 말도 거동도 먹는 것도 홀로 하기 어려웠다. 엄마는 그런 딸을 38년간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그러다 비극이 찾아왔다. 딸이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엄마는 아픔에 시달리는 딸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 모녀는 '힘들다'라는 상투적인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엄마는 딸과 함께 세상을 등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38년 전 사랑으로 받은 딸을 직접 떠나보냈다. 딸의 뒤를 따르려던 엄마는 극적으로 구출돼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섰다. 법원은 엄마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선처했다.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검찰도 이례적으로 항소를 포기했다.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에게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을 분명히 알려준 판결이었다. 이 법정을 가지 못했던 터라 뒤늦게 법원에 판결문을 신청해 기사를 썼다.법원을 들락거리다 보니 이 두 사건이 이따금 떠오른다. 기자들에게 성폭행 사건임을 유의해달라던 재판장. 법정에서 딸에게 미안하다고 오열했던 엄마. 다양한 삶의 비극이 오가는 그날의 법원으로 돌아간다면 어느 법정에 갔어야 했을까.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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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쇼펜하우어 열풍의 이면 지면기사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4위),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6위).1800년대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내세운 철학 관련 책들이 2024년 대한민국 서점가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극도의 비관론자면서 당시 그의 인생관을 두고 '고통과 좌절밖에 안겨주지 않는다'며 조롱 섞인 비판까지 받았지만, 200년이 지난 현대에 지구 반대편인 한국에서 소환되는 상황이다."행복이란 단어를 제거하면 행복할 수 있다.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난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라. 건강해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병에 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라. 내가 청년에게 해줄 조언이다." 쇼펜하우어가 주장한 염세주의 철학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주류(主流)로 여기던 낙천주의, 행복 철학을 완전히 뒤엎는다. 그가 생각하는 인생은 죽음으로 향하는 계획이며 그 길에는 행복과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가득할 뿐이다.그의 인생관은 대한민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다. 입시와 취업, 승진 등 무한경쟁 굴레 속에 살아온 청년들은 행복보단 불안에 익숙한 세대가 돼버렸다. 자살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1위라는 오명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지난해 말 다시 반등할 것이란 합계출산율은 0.6명대까지 주저앉았다. 미국에서 유행한 '딩크족(맞벌이 무자녀 가정)'은 이제 한국에선 뉴노멀이 됐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가 경험한 불행과 부담감을 다음 세대에 전가하고 싶지 않아서"가 딩크족이 출산을 거부하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은 늘 고통에 직면한 청년들에게 일종의 바이블인 셈이다. 내가 느낀 인생의 고통이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느꼈을 때 그들은 안도했고,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또다시 선거의 계절이 오고 있다. 정치권은 또다시 혹할 희망찬 미래와 행복들을 열거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통부터 되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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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1억원으로 확인한 웃픈 현실 지면기사
선거를 앞둔 명절 밥상머리에는 으레 정치 이야기가 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설 연휴에 만난 가족이나 지인들 사이에서는 총선보다 '1억원'이 화제가 됐다. 한 기업에서 자녀를 출산한 직원에게 1억원을 준다는 내용이다.결혼을 앞두거나 이미 결혼한 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1억원이 현금으로 들어오면 아이를 바로 낳을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다들 월급쟁이인 처지에 1억원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니 긍정적인 반응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고민된다'는 반응은 그나마 긍정적인 축에 속했다. 1억원이 통장에 꽂혀도 아이를 어떻게 돌볼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는 게 다수였다. 부부 중 한쪽이라도 가까운 거리에 부모님이 사시면 부담을 덜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돌봄은 오롯이 예비 엄마 아빠의 몫으로 남는다.1억원 받고 아이를 가질 것이냐는 우문에 한 지인의 답변이 퍽 인상 깊게 와 닿았다. 단순하지만 명료했다. "굳이 돈을 줄 게 아니라 지금보다 먹고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해결되는 문제 아냐?"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년 넘게 쏟아 부은 예산으로 일자리를 더 만들거나 교육비 부담을 덜거나 여러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는 거다.저출생 해결에 세금을 투입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청년세대에게 돈을 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불만스럽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저출생이라는 문제는 수도권 집중화와 양극화, 경력단절 등 사회 구조가 영향을 미친 문제도 큰데, 근본을 건드리지 않고 출산만을 요구하니 반작용도 커진다.한편으로는 웃펐다. 사석에서 서로 선거 이야기 꺼내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이들끼리, 막상 정치가 풀어내야 할 숙제를 고민하는 풍경이 말이다. 애석하게도 선거 당사자들은 그 숙제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애써 외면하는 것만은 아니길 바란다. /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dal@kyeongin.com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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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경기도 의료를 살릴 수 있는 골든아워 지면기사
'골든아워'는 의학계에서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금쪽같이 귀중한 시간을 일컫는 용어다. 즉, 사고나 사건으로 심장마비, 대량출혈 등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신속한 치료를 행하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시간이다. 현재 경기도는 공공의료와 의료격차를 회복할 수 있는 귀중한 골든아워에 있다.2020년 코로나19 감염병이 유행하고 엔데믹이 선언될 때까지 경기도의료원은 2년6개월 가량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전염병을 최전선에서 방어했다. 그 결과는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의 3년간 의료손실 2천500억원이다. 도의료원이 코로나19 환자만을 치료할 동안 기존에 도의료원을 이용하던 환자들은 주변 병원으로 옮겨갔다.지난해 여름, 도의료원 포천병원과 의정부병원을 찾아갔을 때 일부 병동은 창고처럼 쓰이고 있었다. 도의료원은 외래·입원 손님이 줄어 불가피하게 병동 일부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폐쇄된 병동에는 방역용 가림막과 집기들이 놓여 있어 마치 코로나19가 유행했던 순간에 머무는 듯 썰렁했다. 의정부병원의 낮은 층고와 병원 시설은 노후한 인프라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또한 6개 산하 병원은 의료진 채용을 위해 수 차례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어 의료진 수급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지금은 진료를 서포트할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도록 지원이 필요한 순간이다.이런 상황에 경기 남부와 북부의 의료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엔 의료기관 4천235곳이 있지만 경기 남부지역엔 의료기관 1만2천870곳이 있어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중증질환에 대해 암·이식 수술 등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상급종합병원은 경기 남부지역에 5곳이 있지만 북부지역에는 전무하다. 의대도 없어 의사 비율은 인구 1천명당 1.6명 수준으로 전국 평균인 2.2명에도 못미친다. 지금은 남북부 의료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도 필요한 순간이다.경기도도 이에 공감해 지난 5일 동북부 공공의료원 설립계획을 내놓았다. 400개 병동 이상의 종합병원을 의정부, 동두천, 양주, 연천, 남양주, 구리, 양평, 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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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달콤한 오렌지'와 '신 레몬' 지면기사
최근 공연계에서 이슈가 된 이른바 '겹치기 출연'은 하루 이틀 새 불거진 일은 아니다. 한 배우가 일정기간 여러 공연을 겹쳐서 출연하고, 더블 캐스팅이 주를 이루던 공연들이 어느새 트리플(3명)이 되고 쿼드(4명)가 됐다. 하루는 이러한 상황을 보며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와 같은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다른 공연을 같이 해야 하는 배우들로 인해 캐스팅 수가 늘어난 건지, 아니면 제작사가 캐스팅 배우의 수를 늘리면서 다른 공연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건지 말이다.상황이 이렇게 되면 여러 가지 리스크가 생길 수밖에 없다. 2~3개의 공연을 동시에 소화하면서 차기작 연습까지 해야 하면 컨디션 관리가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자칫 건강상의 이유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면 대신해 줄 배우들을 찾아야 하는데, 다른 배우조차 스케줄 빼기가 쉽지 않으면 제 아무리 트리플, 쿼드 캐스팅이라도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소비자의 입장은 답답해진다. 공연 티켓 가격이 상당히 오른 상황에서 지불한 금액만큼의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 누구라도 불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도 모든 공연이 완벽했다면 이러한 논란은 불거지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공연계의 분위기가 이처럼 흘러가는데 있어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좋은 퀄리티의 무대를 담보받는다는 것은 전보다 어려운 일이 됐다.비단 무대를 이끄는 배우들의 겹치기만 문제는 아니다. 티켓 값의 상승에도 공연 제작을 둘러싼 환경들이 여전하다면 이 또한 좋은 공연을 만드는데 장벽이 될 것이다. 한 예로 여러 번 보러 갔던 한 공연은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음향 사고가 나곤 했다. '이 작품만 그랬을까?'라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대답하겠다.관객들이 시간과 돈과 체력을 쓰면서 공연장을 찾는 건 좋은 무대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와 그 무대를 봄으로써 얻고자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달콤한 오렌지'인줄 알고 산 '신 레몬'이 되지 않기 위해 공연계 또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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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2024년 난장이의 기록 지면기사
"이 책이 200쇄 이상 출판됐다는 건 부끄러운 기록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 저자 조세희는 2008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난쏘공'이 더는 독자들에게 공감되는 이야기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했다.그의 염원과는 달리 난쏘공은 2017년 한국문학 작품으로는 최초로 300쇄를 돌파했고 아직도 우리나라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손꼽힌다. 난쏘공의 시대배경은 1978년. 당시 힘없는 노동자들은 상습적인 임금체불을 당하거나 폭언과 성폭행 등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강산이 변해도 4번 이상 변한 2024년. 수많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순전히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로 최빈민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지만 찬란한 국가 발전 속 난장이들이 겪는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지난해 임금체불을 당한 노동자는 인천에서만 4천550여 명. 같은 시기 건설현장 등에서 사망한 중대재해만 34건이 발생했다. 최근 인천에선 한 사회복지사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사망하고 굴지의 대기업에서조차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렸다고 응답한 직원이 절반이 넘은 설문조사가 나왔다.1970년대 우리는 '잘 살아보세' 명분 앞에 노동자 개인의 희생에 눈감았다. 선진국인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 명분이 있기에 수많은 난장이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노동 집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보너스 인상 등 거창한 요구가 아닌 '노동자로서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 보장'이었다. 돌림노래로 반복되는 '노동자의 권리 보장' 외침이 지속되는 이상 난쏘공 인기는 50년이 흘러도 여전할 것임을 확신했다. "힘없는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취재 중 그들의 외침을 들은 게 전부였다. 엄혹한 노동현장의 문제를 해결해줄 힘도, 능력도 없었지만 노동자들은 경청해줘서 고맙단 진심 어린 마음을 매번 표현했다. 2024년 난장이들의 슬픈 기록은 지난해보단 짧기를 바란다. /이상우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eewoo@k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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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국민 안전을 '유예'한다니 지면기사
약 3년 전, 재해조사 의견서를 분석하고 산업재해 이후 남겨진 노동자의 삶 등을 선배들과 기획기사로 취재했다. 당시 인터뷰했던 노동자는 함께 일하던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뒤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일터에서의 죽음은 계속된다. 떨어져 죽고, 끼어서 죽고, 부딪혀 죽는다. 여전히 수백명이 출근했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다. 그 수 역시 OECD 최고 수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외면하고 싶겠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제정됐고 최근 적용 대상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됐다. 그러자 동네 빵집 사장님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법의 핵심은 뺀 '여론몰이'가 확산한다. 중대재해란 1명 이상 사망자가 나왔거나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했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나온 경우를 말한다. 특히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등을 마련했는지가 중요하다. 이게 동네 빵집 사장님 처벌을 겨냥한 법인가.최근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처법을 '유예'해야 한다며 동네 빵집 사장님을 그 이유로 붙인다. 경영계는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한다. 맞다. 중처법의 핵심도 노동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안전을 최우선에 두자는 것이다. 기획취재를 하며 만났던 이들도 "같은 사고가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이를 미루고 핵심은 뺀 여론몰이에 솔선수범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더욱이 중처법 대상 확대는 2년 전 예고됐다. 그럼에도 아무런 준비를 못했다고 호소한다. 정부와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상황을 회피하려 눈치를 본다. 동네 빵집 사장님만 국민인가.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노동자도 같은 국민이다. 경제발전이란 목표 아래 일하다 죽은 국민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겼던 과거를 또다시 답습하겠다면 정부와 정치권도 가해자, 공범이다. /신현정 정치부 기자 god@k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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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GTX 개통이 구도심에 미칠 영향 지면기사
정부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연장 계획과 신규 노선을 발표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서울 출퇴근 30분 시대' 기대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GTX 개통에 따른 수도권 광역 교통망 재편으로 주민 편익은 확대되지만, 지역에 장밋빛 전망만 안겨 주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국토교통부는 지난 25일 '교통 분야 3대 혁신 전략'을 발표하면서 인천 검단~계양, 인천공항~청라~가정을 지나 서울 강남을 잇는 GTX D(Y자형)노선과 인천공항~청라~대장~연신내~남양주를 지나는 GTX E노선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인천은 인천대입구~부평~서울역~마석~춘천을 잇는 GTX B노선과 함께 총 3개 노선이 지나면서 서울 접근성이 한층 더 향상된다.그러나 정부가 경제성 확보를 위해 인구가 집중된 신도시 중심으로 노선을 정하면서 지역 구도심 침체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인천은 중구 내륙, 동구 등 구도심과 송도·영종·청라국제도시, 검단신도시로 분류되는 신도시 간 인구 유입, 개발 속도 등 여러 측면에서 빠르게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인천시가 구도심 개발을 골자로 한 1호 역점 사업으로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내건 이유도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서다.인천시는 지역 활성화를 위해 구도심을 관통하는 트램, 3호선 순환선 등 여러 철도망 구축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경제성 부족 등을 이유로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착공하는 GTX B 노선에 연수구 구도심을 지나도록 '청학역' 신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 구도심이 지역 주요 교통망 연결 사업에서 빠지면서 신도시 과밀 현상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GTX 개통이 구도심 침체를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되지 않도록 정부는 물론, 지역사회 차원의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