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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돌봄의 무게 지면기사
국가도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가족돌봄청년을 찾고자 그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 별안간 취재에 응해달라는 불청객에게 한 청년이 덤덤한 말투로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했다. 갑자기 중증 지체장애를 갖게 된 어머니를 24시간 돌보기 위해 그는 일을 관뒀다. 그는 언제 이 돌봄이 끝날지 모른다고 했다. 아이는 자랄수록 양육자의 품에서 벗어나지만 부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다.다른 청년은 아버지를 잃고 오랫동안 방황했다고 한다. 병환이 깊어져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줄어들수록 늘어나는 병원비를 벌기 위해 그는 더 많이 일했다. 돌봄의 무게가 사라진 자리엔 가족을 잃은 슬픔의 무게가 얹어졌다.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일상돌봄서비스는 사회복지사가 가사노동, 돌봄 등을 도와 청년들에게 쉴 틈을 주는 사업이다. 인천에선 연수구, 부평구가 시범 운영했지만 혜택을 본 청년은 단 한 명도 없었다.평생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아본 적 없는 가족돌봄청년은 그들을 부르는 명칭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지원사업을 찾아볼 시간도 없다. 안내문자를 보냈으면 좋았겠지만 지자체는 누구에게 안내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현황 파악이 되어 있지 않아서다. 그 와중에 인천시는 실태조사 없이 우선 사업을 9개 군·구로 확대하겠다고 한다.도움책을 마련했으니 알아서 찾아오라는 말은 무책임하다. 인천시는 관련 조례 통과가 늦어 예산을 편성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미 지난해 시범사업의 신청자가 없는 걸 알았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오픈채팅방엔 끼니때마다 '바빠도 우리 밥은 챙겨먹자'는 메시지가 날아온다. 어느 늦은 새벽에는 오랫동안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갈수록 멀어지는 꿈에 대한 아쉬움, 사실 너무 지쳐 다 관두고 싶다는 고백, 그래도 힘을 내보자는 서로를 향한 응원. 지금도 청년들은 돌봄과 간병으로 자신의 일상을 포기하고 있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이들의 짐을 하루빨리 덜어줘야 한다. /정선아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sun@kyeongin.com정선아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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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제2의 미래재단 막으려면 지면기사
2년여 전 '미래재단'이란 이름의 아동복지를 목적으로 한 사회복지법인이 경기도 한 시군 지자체와 맺는 연간 수의계약 총액이 40억원이나 돼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제보를 받았다. 관련 법상 사회복지법인은 '사회복지'를 목적으로 한다는 명분 덕분에 금액과 무관한 수의계약을 얼마든지 맺을 수 있어 그것만으로 문제가 될 소지는 적었다.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시 들여다본 재단 사업계획서와 재무제표에서 수상한 냄새가 났다. 매년 여러 지자체에서 얻는 수의계약을 통한 수익사업 매출은 연간 150억원이나 되는데 목적사업 금액은 1억원도 채 안 됐던 것이다.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수의계약을 가능케 해주는 법적 요건인 '직접 용역수행'도 갖추지 않았던 건 물론 과거 경기도의 정기 종합점검에선 법인 설립 목적과 무관한 골프대회를 수익금으로 개최한 전례도 나왔다.이를 계기로 진행된 지난해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 수사에서는 그간 미래재단 대신 실질적으로 여러 용역을 수행한 업체가 재단에 리베이트를 챙겨주는가 하면, 수억원의 수익금이 재단 친인척에게 불법 대여되거나 공무원 골프 접대에 쓰인 정황까지 드러났다. 천문학적 규모의 수의계약으로 수익사업을 이어 온 한 사회복지법인이 매년 수억원의 수익금을 멋대로 횡령하고 있었지만 그 어떤 관할 지자체도 관심 갖지 않거나 안일하게 관리했던 것이다.형사적으로는 검찰이 현재 이 사건 기소를 앞둔 보완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관리 사각지대에 숨어 국민 세금을 멋대로 빼돌리는 일부 사회복지법인의 행태를 막으려면 관할 지자체들이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사실 미래재단 문제도 5년 전 경기도의 점검에서 일부 드러났으나 미흡한 조치에 그쳐 현재 상황까지 이른 측면이 있다. 경기도뿐 아니라 미래재단과 수의계약을 맺어 온 지자체들이 지금이라도 자체 감사에 나서 전반적 문제를 점검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준석 사회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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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34.9%의 변수 지면기사
"단 1%라도 어긋나면 움직일 수 없어요." 교통약자 이동권 취재를 위해 만났던 휠체어를 타는 한 지체장애인의 말이다. 얼핏 과장된 말처럼 들렸지만 교통약자인 그에게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나온 호소였다. 그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생각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가는 길부터 승하차까지 넘어야 할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그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섰을 때, 눈앞에 먼저 보이는 건 열악한 보도환경이었다. 비장애인은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보도의 턱 높이와 넓이지만 교통약자에겐 '태산' 같았다. 간신히 정류장에 도착해도 좁은 대기공간은 그를 정류장 밖으로 내몰았고, 높은 연석은 저상버스 경사판 설치조차 어렵게 했다.경기도 이동편의시설 기술지원센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교통약자 이동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내 노선버스정류장 중 일부인 7천7개소의 이동편의시설 종합적합도는 65.1%를 기록했다. 교통약자의 편리한 버스정류장 이용을 위한 정류장 및 접근 보도의 이용편의시설(정류장 회전 반경·턱 높이·점자블록 등) 중 34.9%는 부적합했다.1%의 변수에도 외출을 주저하는 교통약자들에게 34.9%의 변수는 대중교통을 통한 이동을 배제시키기에 충분했다. 미흡한 이동편의시설이 교통약자도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교통약자법은 교통약자 또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명시한다.교통약자의 이동편의시설 종합적합도가 100%를 달성하는 건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34.9%의 변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건 누군가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 우리가 모두 나서야 할 때다. /한규준 사회부 기자 kkyu@kyeongin.com한규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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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총선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지면기사
2022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와 최근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그 후보는 누가 봐도 경쟁력이 약했는데 예비후보 명찰을 단 채 밤낮 안 가리고 지역구 곳곳을 돌아다녔다. 결국 경선 과정에서 컷오프됐다. 그는 본인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했다. 결과에 낙심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애초 어려운 싸움이었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공직자 사퇴 기한(총선 90일 전)인 지난 11일부로 총선 예비후보자의 윤곽도 어느 정도 드러났다. 현재까지 인천에서 등록을 마친 예비후보자는 58명이다.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33명, 더불어민주당 19명, 진보당과 무소속 각 3명이다.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은 남동구을과 서구을 선거구다. 남동구을은 '돈봉투 의혹'으로 구속기소된 무소속 윤관석 의원의 출마가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면서 8명의 도전자가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서구을도 앞으로 늘어날 서구병 선거구 출마자까지 더해 8명이 등록했다. 아직 등록을 하지 않은 현역의원과 최근 당내 검증을 거친 이들까지 합치면 후보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은 앞으로 인천에서 14곳(서구병 포함) 의석을 두고 경쟁을 벌이게 된다.총선에 나서는 이들은 출신도, 성향도,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유일한 공통점은 '내가 당선된다'는 믿음 하나. 밖에서 보기엔 경쟁력이 부족한 후보도 경선만 공정하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바로 이 마음이 선거의 원동력이다. 모든 후보가 내가 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다. 실망과 불신은 떨어진 후 얘기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지지자를 생각하면 후보자 본인은 객관적인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이번 4·10 총선에 도전하는 후보 모두 '내가 된다'는 믿음 아래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고배를 마시면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을 기약하고, 당선되면 그 마음 그대로 모든 유권자에게 희망을 찾아주길 바란다. /조경욱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imjay@kyeongin.com조경욱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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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진부한 단어 '인원충원' 지면기사
햄버거 프랜차이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 '정말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을 때 퇴근 시간이 찾아오곤 했다. 주문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종일 기름에다 감자를 튀긴 탓에 이미 몸은 땀으로 흠뻑 젖은 뒤였다. 주문이 쉴 새 없이 들어오는 프랜차이즈의 특성 때문에, 당시 손이 더딘 사람이 옆에 있으면 쉽게 화가 나곤 했다. 물론 반대로 내가 실수를 하면 미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급식실 조리실무사들의 노동환경을 취재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최소한의 정원을 두고 최대한으로 일을 시키는 건 "힘들면 다른 곳에서 일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일하는 일반적인 일터의 모습이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 '상시모집'이 관행이 된 곳, 사람이 수시로 바뀌는 곳, 숙련자는 별로 없고 새로 들어온 사람만 많은 곳,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해 다치기 쉽고 미미한 직급차이 사이로 갈등이 싹트기 쉬운 곳.경기도교육청은 급식실 노동자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올해 360명을 증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만명이 넘는 전체 정원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치다. 인천시교육청은 올해 정원을 350명 늘렸다. 지난 행정사무감사에서 한 경기도의원은 경기도와 인천의 지역 규모의 차이를 언급하며 경기도교육청의 개선 의지를 되묻기도 했다.노동조합을 통해서 급식실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정원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등 배치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뻔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노동문제의 대안이 '인원 충원'으로 귀결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러나 휴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체자를 알음알음 구해야 한다는 한 조리실무사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픈데도 대체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출근했다가 오후가 돼서야 병원에 갔던 건 나에게도 남아있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적정한 휴가사용과 적절한 노동강도를 위해 정원을 늘리는 것. 진부한 해답이다. /목은수 사회부 기자 wood@kyeongin.com목은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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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확증편향 지면기사
한국 사회의 혐오가 짙어지고 있다. 지역과 진영, 세대와 성별 양극단의 갈등을 완충할 공간 부재로 혐오주의를 부추기면서다. 새해 시작의 들뜸이 식기도 전, 제1야당 대표의 피습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해진 지독한 혐오가 폭력으로 재생산된 증거이기도 하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송된 서울대병원 앞은 현실을 명징하게 보여줬다. 좌파 성향 유튜버들은 '(습격의) 정치적 배후를 밝혀야 한다'는 배후설을, 같은 시각 우파 성향 유튜버들은 '(흉기가) 칼이 아닌 나무젓가락'이라며 조작설을 제기했다.아흔 아홉가지 거짓과 한 가지 진실이 적절히 배합된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면 진실로 믿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입맛에 맞는 정보를 선택해 과장하고 편견이 담긴 사진을 내보내거나 특정 주제를 반복해 대중을 그릇된 길로 이끈 히틀러 신화의 선동가 괴벨스 역시 그랬다. '이송논쟁'과 '열상논쟁'으로 불붙은 피습 사건은 '어떤 진실을 대중이 더 믿게 할 것인가'하는 양 진영의 '확증편향'으로 옮겨간 셈이다.양 진영의 주장은 다르지만 결은 같다. 믿고 싶은 정보는 적극적으로 찾지만, 반대의 증거는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암울한 현실이다. 올해 한국사회가 가장 주목해야 할 사회 심리 현상으로 꼽히기도 했다.확증편향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이초 중진 의원 배후설, 이태원 참사 토끼 머리띠 배후설, 2020년 정부의 코로나19 확진자 조작설 등 음모론은 한국 사회에서 되풀이되는 확증편향의 증거들이다.정치권에서도 자성론은 일지만 변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중이 믿는 정의는 사법·정치권력 그리고 언론이라는 여러 '배후'들로부터 완성된다.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얻기 위해 대중들이 '지름길'을 찾는 과정에서 확증편향도 시작된다. 그 때문에 대중을 움켜쥐려는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진실된 정의를 찾으려는 '조직된 노력'이 필요하다. 망설이지 말고 모두의 자성이 필요할 때다. /오수진 정치2부(서울) 기자 nuri@kyeongin.com오수진 정치2부(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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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새해에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길 지면기사
추운 겨울엔 훈훈한 소식으로 우리 마음이 따뜻해진다. 기업에서 통 크게 고액을 기부했다든가,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물품과 음식을 건넸다는 어느 개인들 이야기다.최근엔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예년보다 기부행렬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매년 연말연시에 진행하는 모금활동인 '사랑의 온도탑'도 인천지역에선 예년보단 그 온도가 더디게 오르고 있다. 모금활동은 1월 말까지 이어지지만 걱정이 많다. 대부분 모금활동은 연말에 몰리는 경우가 많은데 재작년과 비교하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지난해 말까지 기획기사 '전세사기 피해자를 돕는 사람들' 10명을 찾아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천 미추홀구 등지에서 전세사기를 당하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군분투하고 있는 피해자를 돕는 사람을 주목했다. 연말연시 지역사회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이끌고자 하는 의도였다.예상은 했지만 섭외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그동안 취재로 연이 닿았던 피해자들에게 연락했지만 그나마 피해자들끼리 서로를 돕고 있다는 답변이 주를 이루었다.그럼에도 10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이어오면서 피해자들만 알고 있던 소소한 미담을 전해 듣고는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저 먼 타지역에 사는 누군가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가 담긴 편지와 물건을 보냈다. 또 누군가는 자신도 전세사기 피해를 입어 힘든 상황에서도 일을 끝마치고 돌아와 밤새 이웃을 위해 현수막을 제작했다.이 사연이 지역사회 곳곳에 닿았을지는 모르겠다. 처음 인터뷰 시리즈를 기획하며 기대했던, 도움의 손길이 줄을 잇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엔 그들을 돕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논의도 여야 합의를 하지 못해 돌아오는 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아직 추운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새해에는 이웃의 마음을 녹이는 도움의 손길이 곳곳에서 이어지길 바라본다. /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100@kyeongin.com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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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김하종의 앞치마와 '지금-여기'에서의 길 지면기사
명확하지 않은 발음에 목소리도 작았지만 메시지는 명징했다. 눈빛과 몸짓, 표정은 선명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해 30여 년 동안 매일 앞치마를 두른 채 500인 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성남 안나의집 대표 김하종 신부 얘기다.최근 인문공동체 책고집 5주년 행사에서 김 신부의 강연을 들었다. 깊고 통찰력 있는 지식을 전하거나 매력적인 화법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강연은 아니었다. 단지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담담히 말했다. '30여 년 봉사활동'이란 말의 무게는 깊고 넓었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시작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1시간 있으면 1시간 봉사하면 되고 1천원 있으면 1천원 기부하면 됩니다."새해를 맞아 모두 길을 찾고 논한다. 새해 첫날 서점에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 부동산 투자 및 재테크 서적, 자격증 시험 관련 교재와 학술서 등을 집는다. 이들 책엔 각자의 길이 고스란히 투영되는데 책 종류만큼이나 길도 다양하다.총선이 있는 해인 만큼 정치권에서도 연일 새로운 길이 쏟아진다. 최근 취임한 여당의 비대위원장은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되는 것"이라며 새 출발을 알렸다. 제1야당에선 유력 정치인이 탈당을 시사하며 "국민께 새로운 선택지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그 길을 갈 것"이라고 판을 흔들었고, 당 대표가 "당을 나가는 것만이 그 길은 아니다"라고 맞섰다.'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와 달리 우리 사회엔 수많은 길들이 놓여 있고, 전해진다. 이들 길 가운데 우리는 매번 한없이 헤매고 부유할 뿐이다. 김 신부처럼 머나먼 목적지가 아닌 '지금-여기'에 발 딛으면서 길을 모색한다면 우리의 새해 소망도, 한국 정치도, 언론도 현실에 밀접히 천착해 구체화되지 않을까. /김동한 경제부 기자 dong@kyeongin.com김동한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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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고도를 기다리며 지면기사
세상에는 신문을 거꾸로 보는 사람도 있다. 순수한 독자였을 땐 신문을 맨 뒤에서부터 읽었다. 1면부터 펼치는 건 비효율적인 데다 읽는 재미가 없었다. 새로운 사실은 이미 온라인에 가득했다.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뒷면의 대미는 문화면, 그중에서도 금요일마다 찾아오는 책 코너였다.'나도 이 작가 좋아하는데…'. 문장 하나하나 읽으며 신나게 메모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바이라인에 적힌 사람과 친해진 기분도 들었다. 무엇보다 기자의 개성이 가장 강하게 묻어나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지금도 '기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문화면에서 보던 이름들이다.거꾸로 신문 읽는 독자들이 금요일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날이 있다. 1월2일, 신춘문예 당선작이 실린 신년 특집호가 배달되는 날이다. 응모자만큼 문화면 애독자들도 새해 첫 신문을 매년 손꼽아 기다린다. 금요일자 문화면을 책임지던 기자와 당선자가 펼치는 인터뷰 기사는 또 다른 묘미였다.새해 첫날 당선자들이 전하는 말은 회색 신문지 안에서 분명 생동감을 보여줬다. 거창하지 않은 점이 오히려 마음을 붙들었다. 기약 없는 일에 애써왔던 당선 소감을 읽다 보면 친구도, 가족도 아니면서 괜히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축하드립니다." 2024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일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다. 신춘문예에 대한 환상이 심했던 탓일까. 낭만은 없고 취재가 아닌 옛 직장에서 하던 행정업무에 가까웠다.일이 얼추 마무리되자 그제야 서류 더미 속에서 미처 눈길 주지 못했던 당선자들의 시와 소설이 시야에 들어왔다. 퇴근 시간 사무실에 남아 한 글자 한 글자 정독했다. 얼마 뒤 메일로 받은 소감문까지 읽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래. 신춘문예였지'.이제 취재의 시간만 남았다. 내년 첫 인터뷰이가 될 당선자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2024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인터뷰를 기다릴 독자에게는 어떤 읽는 묘미를 줄 수 있을까. 설레면서도 괴로운 고민이 또 찾아왔다. /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pi@kyeongin.com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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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동상이몽 지면기사
근 한 달여 동안 엑셀 데이터와 씨름하며 지냈다. 학부생 시절도 이 정도 분석 과제는 없었다. 원자료 14만건에서 4만5천건, 1만6천건, 3천900건, 713건…. 새로운 기준이 떠오를 때마다 이리저리 적용하며 다시 좁혀 갔고, 관련 폴더엔 이름 다른 엑셀 파일이 46개가 쌓였다.'전세사기 위험' 판정을 내리려면 그 정도 엄밀함은 당연히 따라야 했다. 공개되지 않은 빅데이터인 만큼 마음은 더 무거웠다. 위험 시그널은 방대했으나, 자칫 엄한 주택에 낙인을 찍고 불안감을 조장할 수 있었다. 보도 내내 '전세사기' 용어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취재팀은 밤낮으로 토론하며 적정 기준을 좁혔고 결국 공개된 파일은 46개 중 6~7개에 불과했다.특히 고민됐던 지점은 사기 의도성을 가려내는 것이었다. 전세금 미반환 피해가 우려되는 상태라는 점은 데이터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지만, 임대인의 심증까지 추정해서 판단할 수는 없었다.아마 경기도도 같은 고민이 들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도는 취재팀이 의뢰한 빅데이터 기관과 동일한 곳에서 이미 더 방대한 실거래 빅데이터를 받아 두었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5월 전세피해 고위험 주택 분석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그러나 도와 취재팀의 판단은 엇갈렸다. 도 관계자는 '갚을 의지가 있는 선한 임대인들마저 압박감을 느끼면 피해 확대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자료 공개 이상의 후속 조치에는 선을 그었다. 취재팀은 신중하더라도 최소한의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데이터엔 지금껏 드러난 피해보다 더 큰 규모의 위험성이 예측됐다. 피해 공론화 이전엔 범죄 취급도 못 받았던 사태이기도 하다.같은 사회적 재난을 두고 지자체와 언론이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정답은 없고 양쪽 모두 필요한 관점일 것이다. 취재팀은 현재 경기지역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손잡고 운영중인 깡통전세 진단센터를 비롯, 남은 40여개 엑셀 파일들을 두고 씨름을 계속 이어가보고자 한다. /김산 사회부 기자 mountain@kyeongin.com김산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