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포스트휴머니즘과 기후변화
    참성단

    [참성단]포스트휴머니즘과 기후변화 지면기사

    계절의 여왕 5월의 첫 황금주말이 사라졌다. 지난 주말 내내 전국을 뒤덮은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세먼지와 황사는 환경오염이 부른 기후변화의 결과다. 이상 고온에 폭설, 유례없이 긴 장마, 그리고 코로나19까지 모두 문명이 만든 재앙이다. 희뿌연 잿빛 하늘 아래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을 보면서 문득 지구의 종말을 다룬 SF영화들이 떠오른다. 문명의 모델을 바꾸고 환경을 지켜야지 하는 것은 오직 관념과 구호일 뿐 우리는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되는 반환경적 삶과 생활 패턴을 바꾸지 못하고 산다.이럴 때 문득 생각 난 인문학 담론이 포스트휴머니즘이다. 이 포스트를 탈(脫)·후기(後期)·초월(超越) 중 무엇으로 번역해야 할지 모를 만큼 포스트휴머니즘은 아직 명쾌한 정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AI나 생명공학 같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영생을 꿈꾸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근대사회를 지배해온 휴머니즘론 같은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고, 나아가 인간중심적인 사고와 환상에서 벗어나자는 메시지만큼은 분명하다.지금 인류세(人類世)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환경파괴·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이상 기후에 팬데믹까지 인류 사회가 직면한 산적한 문제들을 포스트휴머니즘론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이 우심(尤甚)한 문제들을 외면한 채 질병·죽음 같은 생물학적 한계를 과학기술을 통해 극복하자는 트랜스휴머니즘 같은 인위적 진화론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누리고 있는 인권·평등·민주주의는 수많은 사상가들과 양심적 행동주의자들의 고귀한 희생과 땀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존엄한가. 존엄을 받을 가치 있게 살고 있는가. 혹시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와 이념으로 타인과 환경과 다른 생명체들에게 휘두르고 있는 폭력은 없는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소식과 대통령 4주년 연설 등의 뉴스가 들려오는 황망하고 바쁜 출근길 버스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에 잠겨봤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 [참성단]평택항 대학생 사망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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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평택항 대학생 사망사고 지면기사

    지난달 25일 새벽 반포한강공원에서 의대생 손정민(22)군이 실종됐다. 함께 술을 마신 친구는 손군이 한강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잠을 자다 사라졌다고 했다. 손군 아버지가 생사확인에 나섰고, 5일 만에 서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사고사와 타살 가능성 모두를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다.이 사고는 억측과 소문이 유난하다. 언론은 손군만 아니라 그를 불러낸 친구의 가족, 신상, 행동까지 집요하게 추적하며 의혹을 제기한다. 손군 시신을 옮기는 장면과 장례식이 중계방송하듯 보도됐다. 손군과 친구가 나눴다는 미확인 대화가 소셜네트워크에 올라와 특정 단어의 의미를 확인하려는 문의가 잇따랐다. 친구 아버지 신상은 탈탈 털렸고, 공중파 방송은 시사고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제보자를 찾고 있다.지난달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대학생 이선호(23)군이 작업 도중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손군이 실종되기 3일 전이다. 그는 용역회사 지시에 따라 적재물 정리작업을 하다 개방형 컨테이너에 몸이 깔려 숨졌다. 군 제대 뒤 용돈이라도 벌겠다며 막노동을 자처했다고 한다. 유족과 친구들은 날개만 300㎏인 컨테이너 작업을 하는데 안전장비는 물론 안전교육도 없었다고 주장한다.이 사고는 한동안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몇몇 일간지에 단신으로 보도됐을 뿐이다. 가족은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규명을 통해 억울함을 풀어달라 호소했다. 시민·사회단체가 나서면서 뒤늦게 후속 보도가 나왔다.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자 정치권이 가세하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빈소를 방문했다.비슷한 또래의 20대 청년이 잇따라 변을 당했다. 그런데 세상은 한강에만 주목할 뿐 평택은 관심 밖이다. 서울 소재 대학 엘리트 의대생에, 정확한 사고 경위가 오리무중인 미스터리가 이목을 끈 요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단 몇 푼이라도 벌겠다며 노동현장에 뛰어든 젊은이의 허망한 죽음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사고 뒤 이군 누나가 SNS에 가슴 먹먹한 사연을 올렸다. 부모에게 손 안 벌리겠다며 작업장에 가면서도 시험공부를 하겠다며 노트북을 챙겼다고. 투병하는 9살 차

  • [참성단]'이한동'과 '중부권 대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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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이한동'과 '중부권 대망론' 지면기사

    경기도의 정치 거목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11대부터 16대 국회까지 6선 국회의원에 신한국당 대표, 한나라당 대표, 자유민주연합 총재와 내무부 장관,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정계와 관계에서 일군 화려한 이력이 보여주듯이, 한 시대 경기도 정치를 대표했던 '인물'이었다.1988년 새내기 기자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출입하면서 처음 마주한 이한동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전형적 정치인이었다. 거구임에도 반듯한 체형은 균형이 잡혔고, 걸걸한 목소리는 조리있는 언변을 따스한 인정으로 감쌌다. 그는 설득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야당과 일이 꼬일 때마다 이한동이 원내협상을 진두지휘하는 원내총무에 발탁된 이유다.1989년 12월31일 전두환의 국회증언은 그의 정치인생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민정당 원내총무로서 백담사의 전두환을 설득해 국회 증언대에 세웠다. 통일민주당의 노무현은 명패를 던지고 평화민주당의 이철용은 "살인마 전두환"을 절규했다. 대의기관인 국회의 전두환 심판으로 한 해를 마치고 곧바로 이어진 3당 합당과 민자당의 출현으로 정치지형은 안정화된다.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의 집권여당에서 원내총무와 당 대표를 지낸 그는 극단적인 지역갈등 정치의 탈출구를 제3지역에서 찾았다. 수도권과 충청권의 합리적인 중도 민심을 정치의 주류로 만들어 통합의 정치 공간을 열고자 했다. 역동정치론, 국민통합론을 거쳐 완성된 '중부권 대망론'으로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다. 하지만 이인제에 뒤진 3위로 분루를 삼켰고, DJP연합정권의 국무총리로 정치인생의 정점을 찍은 뒤 2004년 정계를 은퇴했다.지금 정치는 이한동 시절의 정치와는 다르고도 같다. 여야가 낮엔 싸우느라 얼굴을 붉히고, 밤엔 문제를 풀기 위해 한 잔 술로 얼굴이 붉어졌던 낭만적 협치의 문화는 사라졌다. 반면에 도로 영남당, 다시 호남당이라는 지역 편파적인 정치구조는 여전하다. 합리적인 수도권 민심은 여전히 비주류로 머물고, 수도권 뜨내기 의원들이 균형발전론을 방관하는 동안 정부와 공공기관들

  • [참성단]무개념 주차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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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무개념 주차 횡포 지면기사

    수년 전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캠리 승용차로 막아선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진출입로가 막힌 입주민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50대 여성운전자는 자신의 차에 관리사무소가 불법주차 경고스티커를 붙인 것을 사과하지 않으면 차를 빼지 않겠다고 버텼다. 경찰은 승용차를 이동해달라는 민원에도 일반도로가 아닌 아파트 단지라며 견인하지 않았다.공분한 주민들은 차를 들어 올려 인도로 옮기고 차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차량 외부는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마세요' 등 주민들이 붙인 스티커로 도배됐다. 관리사무소는 정당한 조치였다며 운전자를 일반교통방해죄로 고발했다. 이 여성은 나흘 만에 사과했으나 법원은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최근 인천에서 '무개념 주차 횡포'가 잇따라 재림했다. 지난 4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송도의 한 아파텔 벤츠 차량의 주차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실렸다. 공동주택 주차 공간이 아닌 통행로를 가로막은 승용차에는 '주차위반 경고스티커를 붙이지 말라'는 내용의 협박성 메모까지 붙어 있었다. 고발자는 사진 4장과 함께 "욕과 함께 딱지 붙이지 말라고 써놨네요.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지난달 미추홀에서는 벤틀리 차량이 이중 주차를 해 다른 차량이 다닐 수 없게 하거나 경차 전용 공간 2개 면을 독차지해 빈축을 샀다. 운전자는 경고스티커를 붙인 것에 화를 내면서 경비원에게 반말과 욕설을 했다. 송도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세워진 아우디 승용차 운전자는 '토요일 스티커 붙이면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 붙이지 마라. 정말 화나니까'란 메모를 남겨 주민들이 어이없다고 혀를 찬다.황당 주차 사례를 보면 고가의 외제차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운전자의 행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적반하장(賊反荷杖)일 거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행태를 나무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폭언과 폭력, 협박을 일삼는다. 일그러진 플렉스(Flex) 문화의 폐해일 수 있다.지하주차장은 법상 도로가 아니기에 교통법의 사각지대다. 다중집합장소나 공동주택 주차장에서 다른 차

  • [참성단]대통령의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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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대통령의 명예 지면기사

    명예에 목숨 걸던 시대가 있었다. 푸시킨은 아내 곤차로바와 염문설이 돌던 프랑스 장교 당테스와 결투를 벌여 총상을 입고 이틀 만에 사망했다. 마크 트웨인은 언론인 시절 경쟁사 언론인과의 설전 끝에 결투를 신청받자 죽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사격 솜씨가 형편 없었던 것이다.모욕적인 상황에서 명예의 훼손을 인내하기란 쉽지 않다. 명예는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다. 명예를 훼손당하면 사회에서 자존감을 유지하기 힘들다. 하다못해 뒷골목 건달들도 양아치를 경멸하며 족보의 명예를 지킨다. 모욕을 당했다고 목숨을 걸고 결투를 벌였던 푸시킨의 시대는 끝난지 오래다. 모욕당한 명예를 회복하려면 법정 결투, 즉 법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 형법은 명예훼손, 사자의 명예훼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모욕을 모두 죄로 규정한다. 단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면 죄가 안 된다고 했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다. 또 반의사 불벌과 친고 원칙을 규정했다. 명예훼손과 모욕은 피해자가 참거나 무시하면 그만이라서다.문재인 대통령이 2년 전 자신을 "북조선의 개"라고 모욕했다며 30대 청년에게 제기했던 고소를 지난 3일 취소했다. 대통령이 국민을 고소한 유례 드문 일이 뒤늦게 알려지자 난리가 났다. '대통령 욕도 못할 세상이 됐느냐'는 놀라운 반응이 대세였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던 과거 발언의 진정성도 도마에 올랐다.문 대통령이 "모욕적인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국민) 지적"을 수용한 것은 늦었지만 천만다행이다. 대한민국 최고위직 공인인 대통령과 30대 청년의 법정 결투는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대통령 입장에선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닐테고, 진다면 국민 볼 면목을 잃었을테다. 명예를 회복하려다 명예를 잃을뻔 했다. 조만대장경 전과 후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회적 평판이 달라졌듯이, 공인들의 명예는 대부분 제 스스로 무너진다.지금도 궁금한 건 국민 고소가 대통령의 진의였는지다. 푸시킨과 마크 트웨인이 결투에 목숨을 걸었던 건 주변에서 부추긴 탓도 컸다. 마크 트웨인은 결투가 무산돼

  • [참성단]백신 주권(主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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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백신 주권(主權) 지면기사

    코로나19와 백신은 요즘 최고의 화두다. 백신 수급 불안이 불거지면서 방역 정책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백신은 1796년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의 우두법에서 비롯됐지만, 천연두를 막기 위한 의학적 노력은 15세기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두법(人痘法)이라고 해서 천연두 환자의 고름이나 딱지를 코로 흡입하는 중장묘법이나 천연두에 걸린 환자의 옷을 빌려 입는 의묘법 등이 중국에서 시행된 바 있다. 병원성이 낮은 병원체를 이용하여 면역력을 얻는 방법을 백신 접종이라 하는데 백신이라는 말은 암소를 가리키는 라틴어 백카(vacca)에서 유래했다. 이 우두법으로 에드워드 제너는 '백신의 아버지'로 통한다.백신이 보편화하기 이전 인도에서는 천연두를 일으키는 악마 즈바라수라(Jvarasuera)를 물리치기 위해 여신 시탈라(Shitala)를 숭배하기도 했고, 우리의 경우에는 천연두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마마를 주관하는 신령인 호구별상마마를 달래는 마마배송굿 또는 손님배송굿을 벌이기도 했다.우두법이 나오기 전까지 천연두의 위세는 엄청난 것이었다. 전 지구적으로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14~16세기 멕시코에서 번성했던 아스테카 문명은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군이 퍼뜨린 천연두로 인해 멸망하고 말았다.K-방역으로 성가를 올린 신속 진단키트·마스크쓰기·사회적 거리두기는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 집단면역을 확보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방법은 백신 접종과 치료제 개발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에 불거진 백신 부족으로 인한 접종 차질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 이유가 백신 자국우선주의의 탓도 있지만, 백신 수급과 관련한 당국의 대처방식과 방역행정이 못내 아쉽다.앞선 국가들을 따라잡는 추격형 성장이나 세컨드 웨이브 전략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백신 개발, 신약 개발 등 기초분야에 대한 보다 더 과감한 투자와 지원정책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팬데믹 시대는 정치적 주권 못지않게 백신 주권도 중요하다. 이번 사태가 백신 주권을 확보하고, 정책을 되짚어

  • [참성단]'이건희 컬렉션' 이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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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이건희 컬렉션' 이동작전 지면기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이것은 강도다: 세계 최대 미술품 도난 사건'은 미국 보스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도난 사건을 다룬다. 경찰관 복장을 한 2인조 남성 용의자가 경비원을 제압해 포박한 뒤 81분 동안 내부를 돌면서 13개 작품을 훔쳐 유유히 사라졌다. 사건은 '성 패트릭 날'인 1990년 3월18일 새벽에 발생했다.도난당한 명화는 렘브란트, 마네, 드가 등 전설적인 거장들의 작품이다. 가치를 환산하면 현재 감정가로 5억 달러(약 5천600억원) 수준이고, 당시로는 2억 달러로 평가된다. 박물관 측은 1천만 달러란 거금을 보상금으로 내걸었으나 30년이 지나도록 미제로 남아 있다.범인들은 고가의 미술품을 겨냥했으나 부주의하며 거칠게 다뤘고, 가치가 높지 않은 화병을 가져가기도 했다. 용의자 추정을 헷갈리게 하려는 의도된 행동으로 추정된다. 4부작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는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뒤 박물관의 허술한 관리 실태를 조명하고 누가 훔쳤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당국의 압박으로 입지가 좁아진 보스턴 지역 마피아 단체 소행으로 추정했으나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국립중앙박물관이 이건희 컬렉션 이동작전에 돌입했다고 한다. 물동량은 자그마치 고미술품 2만1천693점이나 된다. 호암미술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양쪽에 소장된 유물을 중앙박물관 수장고 내 별도 공간으로 '훼손 없이 안전하게' 옮기는 유물 대이동이다. 작전 수행에 도움을 주려 삼성 측은 무진동 차량 등 유물 전문 운송 차량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중앙박물관은 기증 유물 보관을 위해 1천㎡ 규모의 '이건희 수장고'를 마련했다고 한다. 온도는 물론 지진과 화재에도 피해가 없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워낙 방대한 수량에 작업 과정이 까다로워 이동을 마치더라도 등록까지는 2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중량이 큰 석조물들은 아직 목적지를 정하지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고가의 예술품은 장소를 옮길 때가 가장 위험하다. 신출귀몰한 절도수법은 영화와 소설의 단골 소재다. 가드너 박물관 사건은 보안장비가 허술하기 짝이 없

  • [참성단]노동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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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노동의 위기 지면기사

    지난 1일 노동절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노동단체들의 집회와 행진이 벌어졌다. 코로나 재난으로 인한 구조조정을 반대하고, 비대면 사회를 지탱하는 플랫폼 노동자와 서비스 노동자들의 권리향상 등 노동계의 요구가 빗발쳤다. 민주노총은 하반기 총파업도 예고했다.소년 노동자 출신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페이스북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지금 대한민국의 노동이 위기에 놓였다"며 "땀흘려 일한 근로소득으로는 급격히 벌어지는 자산격차를 따라갈 수 없어, 대한민국은 땀의 가치가 천대받는 사회로 전락해가고 있다"고 했다.이 지사가 우려한 대한민국 노동의 위기는 청년세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MZ세대는 노동의 가치에 절망한 상태다. 경실련 분석대로라면 임금 노동자가 서울 아파트를 사려면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36년을 모아야 한단다. 이 정부 들어 15년이 늘었단다. 임금의 30%를 저축해 아파트를 사려면 118년이 걸린다니 평생 노동해도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하고 죽는 셈이다.프랑스 격언에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노인은 추억에 산다'는 말이 있다. 노동의 가치에 절망하고 분노한 대한민국 청년들이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키운다. 곳곳에서 터지는 성공사례가 이들의 희망봉이다.떼돈을 번 일부 동학개미, 서학개미를 추종하는 개미군단들이 주식시장의 큰 손이 됐다. 밤새워 미국 주식을 거래하느라 직장에선 졸고 있는 청년 직원들이 주식시장이 탄광이라면 가상화폐 시장은 금광이다. 수개월, 수년 사이에 수십, 수백억원의 투자 차익을 챙겼다는 대박 사례가 속출한다. 400억원의 비트코인 수익을 내고 퇴직을 선언한 '삼성전자 형'의 뒤를 잇겠다는 수많은 청년들이 코인 광풍에 몸을 실었다.적금을 깨고 대출 받아 주식과 가상화폐에 영혼을 바친 청년들의 눈에 핏발이 서렸다. 투자환경에 영향을 미칠 정책에 불을 켜고 반대한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주식 공매도로 주식시장이 철렁 가라앉으면 난리가 날 것이다. 정부와 여야 정당은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가상화폐 규제를 머뭇댄다.부동산이 노동의 가치를 조롱하자 청년들

  • [참성단]자녀의 성(姓) 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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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자녀의 성(姓) 결정권 지면기사

    1980년대 소개팅이나 미팅 자리에서 청춘들은 호구조사가 먼저였다. 단일 본 성씨인 경우 같은 성을 가진 이성이 나오면 서둘러 자리를 떠야 했다. 오랜 세월 동성동본(同姓同本) 간 혼인은 관습상 금기시됐고, 법으로도 금했다. 동본이란 죄로 혼인신고를 못해 자녀에게도 피해가 대물림되는 등 폐해가 심각했다. 극단적인 선택도 많았다. 여성·시민단체가 나서고 각계의 진정이 잇따랐다. 2005년 법이 폐지되면서 8만여 쌍이 족쇄를 벗어났다고 한다.호주제(戶主制)는 승계 순위를 아들, 딸(미혼인 경우), 처, 어머니, 며느리 순으로 정해 남아 선호 풍조를 조장했다. 가족 구성원이 호주에게 종속돼 자율성과 존엄성을 부정하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해쳤다. 여성은 혼인 전엔 아버지 호적, 결혼 뒤 남편 호적, 남편 사망 뒤 아들 호적에 올랐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를 깨부수겠다며 한 이혼녀가 낸 위헌소송이 헌법불합치로 결정되면서 2000년대 후반 폐지됐다.자녀의 성(姓)을 정할 때 부모 협의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부성(父姓)이든 모성(母姓)이든 상관없이 자율 결정이 가능해지는 거다. 자녀의 성을 결정할 시점도 혼인신고가 아닌 출생신고 때로 바뀐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의 핵심 내용이다. 다양성과 보편성, 성 평등을 지향하면서 수혜자를 혼인·혈연관계 중심의 '정상가족'에서 벗어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부성 우선주의'를 벗어나자는 취지에서다.'혼인 중 출생자'와 '혼인 외 출생자' 구분도 폐기된다. 법률혼과 혈연가족 밖에 있는 비혼 동거 등 가족 형태도 법·제도 안으로 들어온다. 비혼 여성의 단독 출산을 위한 사회적 논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방송인 사유리로 인해 관심이 높아졌으나 여성 단독 출산을 위한 정자 기증은 불가능하다.성리학(性理學)을 추앙한 조선 시대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극성기였다.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내쫓을 수 있는 권리(칠거지악·七去之惡)를 줬다. 불과 100여 년 전이다. 서울·부산시장 보선 뒤 20대 페미니즘 논란이 뜨

  • [참성단]'이건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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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이건희 컬렉션' 지면기사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가족들이 28일 전무후무한 상속세 납부와 사회환원 계획을 공개했다. 우선 26조원이라는 이 회장의 유산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들이 납부할 상속세 12조원은 지난해 정부 상속세 세입의 3~4배란다. 서민들에겐 비현실적인 숫자다. 사회환원 계획도 역대급이다. 감염병 예방 인프라 건설과 소아암·희귀질환 어린이 환자를 위해 1조원을 기부한다.하지만 압도적인 현금의 향연도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 비하면 초라하다. 유족들은 이 회장이 수집한 1만1천여건, 2만3천여점의 미술품을 국·공·사립 박물관, 미술관에 기증한다. 작품 면면이 경이롭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1393호)'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장욱진은 물론 모네, 피카소, 르누아르 등 국내외 근·현대회화 거장들의 명작들이 즐비하다.호사가들은 3조원가량이라는 감정가를 놓고 입방아를 찧지만, 당대 최고라는 '이건희 컬렉션'은 실제 시장 가격에 호환불능의 무형의 가치를 더하면 금액으로 환산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미술계가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경악할만한 사건으로 평가하는 이유다.가장 큰 수혜자는 지정문화재 60건을 포함해 고미술품 2만1천600여점을 기증받는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조 단위의 작품과 유물들을 거저 받아 국립의 품격과 위상이 치솟았다. 올해 소장품 구입예산 40억원으로는 꿈도 꿀 수 없던 일이다. 국내외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 1천600여점을 기증받는 국립현대미술관은 비로소 근·현대 회화의 역사성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모네, 달리, 피카소, 샤갈, 르누아르, 고갱의 작품은 '덤'이라기엔 배보다 큰 배꼽일테다. 제주도의 이중섭미술관도 이번 기증으로 제대로 '이중섭미술관'이 될 모양이고 대구미술관·전남도립미술관·박수근미술관도 이름값이 가능해졌다.박물관, 미술관만 횡재한 것이 아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국민 모두가 수혜자다. 정부가 감사 성명을 발표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