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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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윤여정의 '미나리' 지면기사
배우 윤여정이 별의 순간을 잡았다.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영화예술아카데미는 15일 미나리를 작품·감독·남우주연·여우조연·각본·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로 발표했다. 지난해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 아카데미 작품·감독·각본·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의 '기생충'은 한국 영화였다.반면 미나리는 미국 영화다. 한국계 미국 배우와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로 이민 국가 미국의 정체성을 그려냈다. 할리우드의 아메리카 퍼스트 문화를 두 해 연속 강타한 '한국의 기적'에 미국이 감탄한다. 그 중심에 윤여정이 있다. 70대 윤여정은 아카데미 수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됐다.윤여정은 TV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중에게 친숙하게 소비됐던 대중연예인이다. 본인 스스로 생계형 연예인을 자처할 만큼 작품과 배역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이, 마치 목욕탕에서 가끔 만난 동네 아재가 노벨 문학상 후보가 된 듯 낯설고 놀랍다.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남긴 어록이 각별하다. "한국에서는 선생님 좋을 대로 연기하라고 해. 이런 환경에 있으면 난 괴물이 될 수도 있어요. 그게 매너리즘이지. 미국 가서 거기 애들한테 'what?'이라는 소리를 듣고, 여기서는 진짜 내가 'nobody'구나 생각하고, 연기를 잘해서 얘네들한테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고 결심하는 거. 그게 도전이죠." 영화 데뷔 50년 만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윤여정이야말로 '미나리'의 생명력을 닮았다.영화 미나리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작품에 익숙한 한국 관객에겐 너무 담백하다. 1980년대 병아리 감별사로 미국에 이민 간 한 가족의 삶에서 딱 한순간을 떼어내 보여준다. 부부가 골라낸 수평아리는 소각돼 검은 재로 흩어진다. 농장을 지켜내지 못하면 그들도 미국 사회에서 수평아리 신세가 될 수 있는, 이민 가정의 불안과 희망은 날 것 그대로다.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이 공감한 대목이다.영화에서 미나리는 미국 이민자들의 '불굴의 의지'를 은유한다. 하지만 엔딩 자막이 뜰 때쯤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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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마블러스 마빈 헤글러' 지면기사
세계 프로복싱의 황금기는 1970~1980년대이다. 체급별 슈퍼스타가 즐비했고, 번개 머리 돈 킹 프로모터는 유명 선수를 능가하는 인지도와 유명세를 떨쳤다. 그가 성사시킨 무하마드 알리(1942~2016)와 조지 포먼(71) 타이틀매치는 복싱사를 바꾼 '세기의 대결'로 꼽힌다. 스타 선수는 천문학적 대전료를 받았고, 프로모터들은 돈방석에 앉았다.1970년대는 헤비급의 시대였다. 알리와 포먼, 조 프레이저(1944~2011), 켄 노턴(1943~2013)의 먹이 사슬에 팬들이 열광했다. 노턴은 알리의 턱을 부쉈고, 프레이저는 알리를 굴복시켰다. 리턴매치에서 TKO 패한 프레이저는 왼쪽 눈을 실명했다. 포먼은 노턴과 프레이저를 아이 다루듯 일방적으로 두들겼다. 알리는 지능적인 경기 운영으로 포먼의 무쇠주먹을 무력화하며 8라운드 KO승을 거뒀다. 링 위에 누워버린 포먼과 이를 지켜보는 알리의 표정 컷은 복싱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었다.1980년대는 중량급 전성기였다. 마빈 헤글러(66)와 슈거 레이 레너드(55), 토마스 헌즈(53), 로베르트 두란(60) 등 4대 천왕이 링을 지배했다. 헌즈는 레너드에게 패했고, 두란은 헤글러에게 무릎을 꿇었다. 레너드는 헤글러에 판정승을 거뒀으나 전문가들과 언론은 판정이 잘못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헤글러는 리턴매치를 원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전설로 불리는 '민머리' 헤글러가 지난 14일 사망했다. 부인 케이 G 헤글러는 '뉴햄프셔의 집에서 예기치 못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고인은 '길거리에서 싸우지 말라'는 어머니 가르침에 따라 복싱을 배웠다. 1983년 세계복싱평의회(WBC), 세계복싱협회(WBA), 국제복싱연맹(IBF) 미들급 3대 기구 통합챔피언에 올랐다. 왼손 돌주먹을 앞세운 파괴력으로 '링 위의 도살자'로 군림했다. 팬들은 경이롭다며 '마블러스(Marvelous) 마빈'으로 불렀고, 그는 '마블러스 마빈 헤글러'로 개명했다.복싱 팬들조차 현 WBA, WBC 헤비급 챔피언을 알지 못한다. UFC 격투기에 밀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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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증발된 아이 지면기사
독재 정권과 마약 카르텔이 지배하는 남미 국가들에서 '인간 증발'은 심각하다. 2014년 멕시코에서는 임용 차별 철폐 시위를 벌였던 교육대학생들 43명이 체포된 뒤 한꺼번에 실종됐다. 멕시코 검찰은 마약조직이 이들을 살해한 뒤 소각했다지만 증거는 없었다. 1980년부터 2006년까지 100여개국에서 5만건이 넘는 강제 실종 사건이 UN에 보고됐다고 한다. UN이 2006년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강제실종보호협약)'을 채택한 이유다.우리도 힘들었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공권력에 의해 사회로부터 강제 증발됐다. 미국으로 망명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증발됐다. 1991년 법원 선고로 사망이 확정됐지만, 그의 증발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1975년부터 부랑자 수용을 빌미로 운영된 부산 형제복지원은 12년 동안 많은 사람을 증발시켰다. 멀쩡한 사람을 부랑자로 낙인 찍어 강제수용했고, 513명이 복지원 울타리 안에서 사망했다.최근 대법원은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장의 특수감금 무죄판결을 파기해달라는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를 기각해 피해자들이 피눈물을 쏟았다. 부산형제복지원 사건을 계기로 우리도 강제실종보호협약에 가입한다지만, 이제 우리 사회에서 강제실종을 실행할 권력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하지만 범죄에 의한 인간 증발 사례는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증발'은 2000년 발생한 최준원(당시 4세)양 실종 사건을 다뤘다. 딸의 생존을 굳게 믿는 아버지는 딸 찾기를 멈출 수 없다. 1991년 증발한 대구 개구리 소년 5명은 11년 뒤에야 참혹한 유골로 돌아왔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풀리지 않은 의문에 가족들이 악몽에 갇혔을 것이다.구미 학대 사망 아동의 친모가 외할머니라는 충격적인 유전자 조사 결과로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문제는 사망 아동의 엄마가 아니라 언니로 밝혀진 여성이 출산한 딸이 감쪽같이 사라진 점이다. 현행 의료 및 행정체계에서 신생아들이 뒤바뀌고 증발하는 일이 가능하다니 가슴이 서늘하다. 세간의 관심은 엄마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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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송도갯벌 저어새 지면기사
갯벌을 메꿔 일군 인천 송도신도시는 토목공학의 걸작이다. 서쪽과 남쪽에 일부 뻘밭이 남았는데, 람사르 습지로 보호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은 많지 않다.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와 검은머리갈매기 등이 서식하는 생태학적 중요 지역으로 꼽힌다. 인공도시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지는 송도는 공존과 공생의 체험 학습장이다.최근 송도 갯벌을 두고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국제 환경단체인 홍콩야생조류협회(Hong Kong Birdwatching Society)가 정세균 총리와 박남춘 인천시장에게 갯벌 훼손을 우려하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낸 것이다. 갯벌을 훼손하는 도로 건설 계획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협회는 서한에서 "송도갯벌을 관통하는 도로계획은 생물다양성 협약과 람사르협약에 따른 국제적 약속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갯벌이 훼손될 거란 우려는 수도권 제2 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19.4㎞) 구간과 배곧대교 건설이 추진되면서다. 인천지역 환경단체들은 송도습지보호지역·람사르습지보전대책위를 구성해 도로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교통 여건이 개선되고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기대와 습지 생태를 파괴한다는 비판이 맞선다.철새인 저어새는 여름철 송도에 머물다 겨울이면 홍콩 마이포 습지로 날아가 월동한다. 송도 갯벌이 훼손되면 저어새 개체 수가 줄어들고, 마이포 습지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홍콩 환경단체가 우리 정부와 인천시에 서한을 보낸 배경이다. 인천시는 2019년 홍콩특별행정구와 '송도 갯벌과 홍콩 마이포 습지 간 자매 서식지'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인천시는 2009년 송도 6·8공구와 11공구 일대 갯벌 6.11㎢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2014년엔 람사르 협회로부터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정부가 람사르 협회에 등록을 신청해 지정받은 뒤 수년 만에 도로 건설을 추진하면서 스스로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게 된 셈이다. 환경단체가 '국제적 망신이 되고 있다'고 비난하는 이유다.교통난 해소를 위해 도로와 교량은 확충돼야 한다. 교통 편의와 함께 경제 효과도 상당하다. 하지만 건강한 생태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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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토지공개념'의 이단자들 지면기사
"토지를 공공의 재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책 '진보와 빈곤'에서 나오는 얘기다. 조지는 토지 소유자들의 지대(地代) 수익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며 단일 토지세를 주장했다. 토지공개념의 교사이자 교과서다. 지난 연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재단 유튜브 방송에서 헨리 조지를 소개하면서 "더는 땅을 사고팔면서 부자가 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새해 소망을 밝혔다.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유 이사장의 소망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LH는 토지공개념을 실현할 공공기관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택지를 개발하고 주택을 지어 지대 수익을 국민에게 분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LH 직원들이 신도시 예정지에 떼로 몰려가 투기판을 벌였다. 은행 돈을 빌려 맹지를 사고 땅을 쪼개고 왕버들을 심었다. 이들의 투기 이익의 원천은 원주민과 입주민의 피눈물이다. 벼농사를 한다고 사기도 쳤다. 경자유전을 명시한 헌법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이래 놓고 초호화 사옥에 앉아 국민을 조롱하는 문자를 날린다.토지공개념은 진보 정권의 경제적 신앙이다. 소수 유산계층의 토지, 주택 독점을 증오한다. 집권할 때마다 강남을 요절낸 이유다. 세금을 왕창 때려 살 집 말고는 토해내라고 윽박질렀다. 그런데 정작 정권의 토지공개념을 뒷받침해야 할 공공 조직이 썩은 줄은 몰랐다. LH 직원뿐 아니다. 전국에서 비슷한 공직자 투기 의혹이 빗발친다. 정부가 강남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공공부문 정보 독점자들은 '부동산'을 '맛동산'으로 즐기고 있었다. 토지공개념의 이단자들이다.대통령과 여당은 국민 분노를 뒤쫓아 가느라 숨찬 기색이 역력하다. 투기 조사 범위는 확대되고, 조사는 수사로 바뀌고, 검찰에 경찰을 도우라고 난리다. 토지공개념이 신앙인 정권이라면 나라 전체가 뒤집어지는 걸 각오하고서라도 전모를 밝혀야 한다. 국민은 LH 직원의 일탈을 빙산의 일각으로 의심한다.신도시 개발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청와대, 정부, 여야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 전원이 자발적으로 토지와 금융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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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영국 왕실의 추문 지면기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즉위해 69년째 재위를 이어가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통치한 고조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63년 재위(1837~1901) 기록을 경신했지만 여전히 정정하다. 이런 엘리자베스 여왕도 한 미국 여인이 영국 왕실에 일으킨 초대형 스캔들이 아니면 왕좌에 오르지 못했다.영국 국왕 조지 5세가 1936년 서거하자 장남인 에드워드 8세가 즉위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새 국왕은 즉위 직전 미국인 기혼녀 월리스 심슨과 깊은 관계였다. 영국 왕실은 심슨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에드워드 8세는 심슨과의 결혼을 밀어붙였지만 영국은 물론 호주 등 영연방 국가 전체가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새 국왕은 즉위 1년도 안 돼 왕관 대신 사랑을 택했다. 왕위는 동생이 물려받으니, 그가 바로 영화 '킹스 스피치'의 말더듬이 국왕 조지 6세고, 조지 6세의 장녀가 엘리자베스 여왕이다.큰 아버지 에드워드 8세와 미국 여인 심슨의 스캔들로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이 최근 미국인 손자 며느리 때문에 체면을 구겼다. 둘째 손자 해리 왕자와 메컨 마클 부부가 최근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왕실의 인종차별을 폭로했다. 해리 왕자가 "아들이 태어났을 때 피부색이 얼마나 어두울지에 대해 (왕실 내부에서) 우려와 대화들이 오갔다"고 밝힌 것이다.이들의 결혼은 마클의 이혼 경력과 흑백 혼혈 때문에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왕실은 마클을 가족으로 인정했지만 실제로는 차갑게 대한 모양이다. 부부는 왕족의 명예와 권리를 포기하고 영국을 떠났다. 우리에겐 화제성 스캔들이지만 미국 언론과 영국 언론은 해리-마클 부부와 영국왕실 편으로 나뉘어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입헌군주제 국가는 왕실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태국에선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의 문란한 사생활로 군주제 폐지를 요구하는 민심이 커지고 있다. 생불로 추앙받던 푸미폰 국왕 시절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이어 그의 둘째 아들 해리 부부를 통해 드러난 영국 왕실의 폐쇄성과 순혈주의는 신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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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광명 밭 왕버들 지면기사
왕버들 나무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20m까지 자라고 둘레가 3~5m를 넘기도 한다. 한국·중국·일본 등에 분포하며 버드나무 중에 가장 크고 웅장하다. 다른 나무들과 함부로 섞여 살지 않으며, 개울가, 호숫가 등 물이 많은 습지를 좋아한다. 버들의 왕 다운 품격과 위엄을 갖췄다.어린 가지는 황록색이나, 나이가 들면 회갈색으로 깊게 갈라진다. 가지가 굵고 넓게 벌어지며, 비스듬히 누워 조경수로 쓰인다. 마을 숲과 궁궐, 경주 계림 같은 명소에 군락지가 있다. 수백 년을 사는 장수 수종으로, 특히 물속에서도 거뜬하게 살 수 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 빼어난 자태를 뽐낸 청송 주산지 물속 나무가 바로 왕버들이다. 수백 년 풍상을 이겨낸 질긴 생명력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목이 많다.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토지 보상업무를 하는 직원이 광명·시흥지구 밭을 사들여 갈아엎었다. 그 자리에 희귀수종으로 꼽히는 왕버들을 심었다. ㎡당 25주의 나무가 180∼190㎝ 간격으로 촘촘하게 심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이 나무는 3.3㎡(구 1평)당 1주가 적정 수준이라고 한다. 사정에 밝은 직원이 보상을 더 받으려 했다는 추측이다.뒤엎어진 땅은 번지수도 달라졌다. 광명·시흥에 땅을 산 LH 직원들은 토지를 1천㎡ 크기로 나눴다. 대토보상권을 노린 이른바 '쪼개기 수법'이다. 공공사업지구에서 1천㎡ 이상의 토지를 사업시행자에게 양도하면 통상 주거전용 단독주택용지를 일반 수요자에 앞서 우선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준다.보상전문가들은 희귀목 식재와 지분 분할을 두고 '나무 보상과 알박기 신공'이라 감탄한다. 왕버들은 성장 속도가 빠른 장점이 있다. 나무줄기가 굵을수록 보상비는 오르고, 이식비용도 늘어나게 된다. 토지 분할로 대토보상까지 챙긴다. 고수의 냄새가 나는 '타짜의 솜씨'라는 평이다.대통령이 나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엄벌은 물론 부당이익을 모조리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정부의 주택정책 기조를 송두리째 흔들 대형 사고다. 서울·부산 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은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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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별의 순간' 지면기사
30여년 전 정치부 기자로 국회 출입을 했을 때 선배들에게 전수받은 정치인 판별법은 두고두고 취재의 방향타가 됐다. '항성론'이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과 같은 정치가를 주목하고 발굴하라는 지침이었다.이 기준으로 보면 1988년 당시 야당엔 두 개의 항성이 각축을 벌였다.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대중(DJ) 평화민주당 총재였다. 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정권 탄생에 일조했지만,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감은 여전했다. YS의 상도동과 DJ의 동교동 자택은 장·노년층 민주화 동지들과 청년층 정치지망생들과 그 숫자만큼의 기자들로 붐볐다. 이 많은 식객들이 아침을 함께 하며 정국의 풍향을 가늠하느라 소란스러웠던 상도동, 동교동의 조찬 풍경은 장관이었다.YS와 DJ가 차례로 집권하자, 그들의 주변을 공전하던 정치인들의 명암도 갈렸다. 두 항성의 후광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누구는 행성이 되고 누구는 위성이 됐으며, 또 누군가는 암흑 속에 사라지기도 했다. 발광체와의 거리가 반사체의 운명을 결정한다.YS와 DJ처럼 스스로 항성을 자처한 정치인들이 많았다. 이회창의 빛을 가렸던 이인제는 마지막 고비에서 신성 노무현의 발광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항성이 쇠락하면 반사체인 행성과 위성도 사멸한다. 노무현이란 큰 별이 지자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작은 별이 반짝 빛나다 갔다. 대선 때마다 잠깐 반짝이다 유성처럼 사라진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두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언급한 '별의 순간'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정권과 대립하던 그의 차기 대권후보 지지율이 30% 넘게 치솟자 김 위원장은 "별의 순간이 보일 것"이라며 '별이 될지 말지는 본인에게 달렸다'고 충고했다.내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로 새로운 별(항성)이 뜬다. 별이 빛을 내는 건 핵융합 반응으로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국민의 별이 되려면 민심을 융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대표에게는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융합로가 장점이자 한계다. 윤석열에게는 당이라는 융합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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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교복 은행 지면기사
1970년대, 시골 중학교 새내기들의 교복은 몸집보다 훨씬 컸다. 바지는 헐렁했고, 품이 큰 웃옷은 꺼벙했다.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자녀들 교복은 큰 부담이었다.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기, 딱 맞는 옷은 가성비가 떨어지기 마련. 무조건 한두 치수 큰 교복을 사 자녀에게 입혔다. 외모와 복장에 민감할 나이지만 비슷한 처지였기에 창피한 줄 몰랐다.고등학교 시절, 여름 하복은 청색 계열이었다. 다른 학교에 비해 촌스럽지는 않았으나 모자가 맘에 들지 않았다. 검은색 빵떡 모자였는데, 다른 동급생들도 교문을 나서면 가방 속에 처박았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쓰고 다니라 해도 따르는 학생은 드물었다. 등교할 때 잠깐 쓰는 애물이었으나 그렇다고 집에 두고 오면 혼쭐이 나기에 꼭 챙겨야 했다.1886년 이화학당 재학생들이 다홍색 무명천으로 된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녔다. 우리나라 교복의 시작이라고 한다. 10여 년 뒤 배재학당에서 남학생들이 처음 교복을 입게 됐다. 서양식 교복의 첫 수혜자는 1907년 숙명여학교 학생들이었다. 자주색 원피스와 분홍색 교모가 특징으로, 유럽풍 양장 형태다. 하지만 지나친 파격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3년 뒤 다시 자주색 치마저고리로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신학기를 맞아 중고 교복을 싼 가격에 판매하는 교복 은행이 인기몰이 중이다. 졸업생들의 교복을 기증받아 신입생이나 재학생들에게 저렴하게 파는 교복 물려주기 사업이다. 재킷은 5천원 안팎, 셔츠와 넥타이 등은 3천원 선에 살 수 있어 수요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경기도 내에만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교복 은행이 18곳에 달한다.형제자매가 많은 50·60대는 형님과 언니 교복을 물려받아 입는 게 자연스러웠다. 새 학기에 교복 사달라고 조르면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생떼를 썼다. 변변한 교복 한 벌 사주지 못하는 엄마의 속은 어떠했을까. 자식을 키우고서야 가슴 한구석 찌릿해진다.교복 은행의 성장엔 코로나19가 한 몫 단단히 했다고 한다. 몇 번 입지 않아 새것 같은 교복이 수두룩하다. 후배들에게 물려주자는 선배의 사랑이 애틋하다. 학부모와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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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윤석열 시즌2' 지면기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한 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검찰 인사로 모욕을 주고, 측근들을 좌천하고, 결국 징계위원회를 열어 2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윤 총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반격했고, 법원은 징계 효력을 정지시켜 윤 총장의 직을 유지시켰다. 이로써 '윤석열 시즌1'은 윤 총장의 완승으로 끝났고, 이 과정에서 차기 대선주자 1위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윤석열 시즌2'가 시작됐다. 이번엔 여당 내 검찰폐지론자들이 윤석열을 소환했다. 이들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법안 발의를 밀어붙이고 있다.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엔 부패, 선거, 경제 등 6대 범죄수사권만 남았다. 이마저 박탈하겠다는 얘기다. 소위 '검수완박'이고, 사실상 검찰청 폐지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전언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도 '속도 조절'을 요구했는데 아랑곳하지 않아 레임덕 논란이 일었다.윤 총장의 반격은 신속하고 전면적이다. 자신에 대한 징계는 법원의 판단에 맡겼는데, 검수완박 정국에 여론전을 불사하고 나섰다.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걸겠다"며 검수완박을 정면으로 반대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고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어제 대구고검 앞에선 '검수완박'을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규정했다. "권력층의 반칙에 대응하지 못하면 공정과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며 국민에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시라"고 부탁했다.'윤석열 시즌1'이 막을 내린 신년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은 30.4%까지 치솟았다(리얼미터). 하지만 드라마 종영으로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시청자들의 관심도 멀어졌다. 그 자리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독차지했다. 학습효과일까, 여권 인사들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일부 강경파 인사들은 독설을 날리지만, 때리면 때릴수록 커졌던 '시즌1'의 악몽이 재현될까 조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