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위조지폐 지면기사
위조화폐는 화폐경제의 시작과 동시에 등장했을 테다. 위폐로 진폐의 가치를 훔치면 막대한 불로소득이 가능하니, 악당들에겐 화수분이다. 구리를 도금한 고대 그리스의 위조 금화가 지금도 남아있을 정도니 당대엔 오죽했을까 싶다. 금화, 은화의 진위를 식별할 시금석은 상인들의 필수품이었을 게다.금속화폐를 대체한 지폐가 나오면서 위폐의 폐해와 규모는 더욱 심각해졌다. 미국은 남북전쟁 때 남부에서 발행한 위조지폐가 통화량의 30%를 넘길 정도에 이르자, 링컨 대통령의 지시로 연방정부에 위폐전담 수사기구(Secret Service)를 신설했다. 이후 대통령 경호임무까지 맡으면서 현재의 '비밀경호국'에 이르렀다.진짜 같은 위조지폐는 잡범들에겐 꿈의 경지다. 국가가 나서면 가능하다. 나치 독일은 2차세계대전 말기에 영국 경제를 파탄시키려 위조지폐(파운드화)를 찍었다. 영국은 종전 후에도 10년 이상을 위조지폐와 전쟁을 치러야했다. 1990년대에 등장해 2000년대를 풍미한 '슈퍼노트'도 궁극의 위조지폐다. 100달러 지폐를 위조한 슈퍼노트는 위폐감별기를 통과할 정도로 정교했다. 미국은 달러 빈곤국 북한의 범죄라 단정했지만, 북한은 부인했다. 결국 미국은 2010년 100달러 신권을 발행해야 했다.세계의 현실에 비하면 우리의 위폐범죄 수준은 애교에 가깝다. 슈퍼노트가 들어 온 적은 있지만, 자생적인 위폐범죄는 영화촬영·공연용 모조지폐나 복사기로 프린트한 조악한 수준의 위조지폐로 구멍가게 주인을 속여먹는 수준이었다. 최근 경인일보가 단독보도한 가상화폐 사기 사건에 등장한 2억여원 상당의 5만원권 위조지폐도 일련번호가 똑같아 현장에서 덜미를 잡혔다.하지만 온라인에서 위조지폐 거래가 성행한다는 후속보도는 애교 수준을 한참 넘었다. 기자가 텔레그램의 위폐제작 업체에 문의하자 1천만원 상당의 5만원권 위조지폐를 진폐 80만원에 판매한다는 답변이 왔단다. "다른 업체 보다 퀄리티가 좋다"는 위폐 구매자의 사용 후기엔 등골이 서늘하다. 위폐 제작이 힘든 환경 때문에, 위조지폐 국제 유통망이 국내에 상륙했다는 증거다.위조지폐
-
[참성단] 장기 실종 지면기사
1981년 8월 2일 고석봉군, 1997년 4월 20일 김하늘군, 1999년 2월 13일 송혜희양, 2005년 12월 27일 정창근씨…. 하루아침에 가족이 증발한 듯 사라진 그날 그 시간에 삶이 박제된 사람들이 있다. 가족의 사망을 마주했을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래도 시간이 한참 지나면 받아들이는 수용단계가 온다. 반면 실종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의 크기는 점점 커진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장기 실종자 가족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의정부2동 서초등학교 앞에서 놀던 4살 하늘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부모는 생업을 포기하고 전단지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수소문했지만 허사였다. 초등학교 입학통지서와 징병검사 통지서가 날아왔을 때, 해마다 명절과 생일이 돌아오면 억장이 무너졌다. 가정은 파탄 났고 몸과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갔다. 막차를 타고 귀가했다던 여고생 혜희 양은 평택 도일동 하리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것을 끝으로 행방이 묘연하다. 아버지 송길용씨는 1t 트럭에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과 사진을 붙이고 25년간 전국 곳곳 무인도까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결국 딸을 만나지 못한 채 지난달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6월 말 현재 18세 이상 성인 미해결 장기 실종자는 6천809명. 실종 신고된 지 10년 넘은 장기 실종자가 3천628명, 53%나 된다. 치매환자 실종 신고 건수는 최근 3년간 연평균 1만4천여건에 달한다. 아동 실종 접수 건수는 2년 연속 2만5천건, 1년 넘은 장기 실종아동은 1천336명이다. 이중 1천44명은 20년 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가족의 가슴에 한으로 응어리져 있다.아동이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35초, 실종 아동을 발견해야 하는 골든타임은 3시간이다. 1만㎡ 이상 다중이용시설에서 실종 아동이 발생하면 10분간 출입구를 봉쇄하고 아동을 찾는 '코드아담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치매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GPS 배회감지기도 있지만 보급률은 고작 3%대다. 전국 실종수사팀 경찰도 780명 수준이다. 사
-
[참성단] 트럼프의 연쇄 암살 위기 지면기사
카이사르는 기원전 49년 루비콘강을 건너 종신 독재관에 오르며 로마 권력을 장악했지만 5년 만에 암살로 종지부를 찍었다. 카이사르의 영구집권, 즉 제정을 우려한 원로원 공화정파들의 칼날 아래 피를 뿌리며 숨졌다.세계사엔 권력을 얻거나 제거하기 위한 역사적 암살사건들이 즐비하다. 가장 손쉽고 확실한 수단이라서다. 의거와 협행으로 추앙받는 암살도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영웅이다. 사마천은 시황제 영정의 암살에 실패한 연나라 자객 형가의 의기(義氣)를 '사기'에서 높이 기렸다.그래도 암살만으로 역사의 전개를 바꾸기엔 역부족이다. 카이사르 사후 그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제정을 열었다. 형가가 암살에 성공했어도 진(秦)나라의 천하통일 주도권은 변함없을 대세였다. 열렬한 남부주의자들의 잔당들이 링컨을 암살했지만 남부 독립 실패로 시작된 미합중국 부흥의 역사는 변하지 않았다.암살은 지금도 최고 권력자에겐 최악의 현실적 위협이다. 모든 나라가 최고 권력을 비롯한 요인 경호에 최정예 인력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이스라엘처럼 군사작전용 암살을 벌이는 사례를 제외하면 요인 암살이 극히 어려운 이유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암살'은 명분 없는 반국가, 반국민적 범죄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추석 연휴 중인 15일(현지시간) 두 번째 암살 위기를 모면했다. 트럼프는 지난 7월 13일 첫 번째 암살 위기 때 총상을 입었지만, 이번엔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골프장에 잠복 중인 암살범을 총격으로 저지해 화를 면했다. 1차 암살미수범은 사회에 적개심을 가진 은둔형 외톨이라지만 현장에서 사살돼 범행동기는 미궁에 빠졌다. 이번 암살미수범은 한때 트럼프 지지자였지만 지난해 트럼프 암살을 주장한 책까지 출간했다니 심리 상태가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최고의 경호시스템도 예측 불가능한 이상동기테러엔 구멍이 뚫린다. 아베신조 전 일본총리는 피해망상을 앓는 청년의 사제 산탄총에 암살당했다. 우리도 지난 총선에서 야당 대표와 여당 의원이 노인과 청소년에게 테러를 당했
-
[참성단] 추석, 위기의 응급실 지면기사
추석 무렵 연례 이슈였던 차례상 물가를 제치고 올해 추석 민심의 최대 관심사는 '응급실 뺑뺑이' 의료대란이다. 조기 출산 위험이 있는 고위험 쌍둥이 임신부가 제주에서 충남을 거쳐 400㎞나 떨어진 인천 대학병원에 가까스로 이송되고, 열경련으로 위급한 28개월 아기는 11개 병원에서 거절당한 끝에 의식불명에 빠졌다. 공사장에서 추락한 70대와 온열질환 증상으로 쓰러진 40대는 골든타임을 놓쳐 숨지기도 했다.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현장의 의사들은 번아웃을 호소한지 오래이고, 병원들은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거나 셧다운 시키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는 올 들어 8월 중순까지 3천597건으로 벌써 지난해의 85%를 넘어섰다."아프지 말고 다치지 마세요"가 추석 덕담이 됐다. "목에 가시가 박힐 수 있으니 생선전은 먹지 마라", "벌에 쏘여도 병원 가기 힘드니 성묘는 삼가라", "고향길 장거리 운전 교통사고 나면 끝장이다." 풍자가 아니라 현실적 공포다. 최근 5년간 통계를 보면 추석 연휴 시작 전날 교통사고는 797건으로 평소(연간 일평균 568건)보다 40%나 많이 발생한다.윤석열 정부는 '의대 정원 2천명 증원'에만 집착, 거칠고 무능한 실행 과정으로 의료개혁 명분마저 잃을 처지에 몰렸다. 윤 대통령은 응급실 위기를 경고하는 기자의 질문에 "현장 좀 가보라"고 받아쳐 빈축을 샀다. 응급실에 군의관과 공보의들을 파견했지만 현장에선 무의미했다.의료계도 대책 없는 '증원 백지화'에 갇혀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급기야 응급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을 조롱하고 낙인찍는 블랙리스트까지 등장했다. 의사·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응급실 부역' 의사들의 이름과 함께 의사면허·휴대전화 번호·SNS 아이디부터 사생활 정보가 공개됐다. 또 국민을 '견민'·'개돼지'·'조센징'이라고 칭하고, "매일 1천명씩 죽어 나갔으면 좋겠다"등의 반사회적 인격장애 게시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의료현장에서 쫓아내야 할 패륜범들이다. 정부는 응급의료 대응 주간을 지정해 추석
-
[참성단] 스파이 천국의 간첩법 지면기사
고려말 문신 문익점 덕분에 신생 조선의 백성은 방한(防寒)혁명을 누렸다. 문익점의 목화재배법과 물레제작 기술 덕분에 겨울에 따뜻한 옷을 입게 된 것이다. 조선왕조는 망국의 신하에게 시호를 내렸고, 현대의 후손들은 '붓두껍 목화씨' 전설에 착안해 '역사적 산업스파이'로 추앙한다. 산업혁명의 발명품 수력방적기는 영국의 해외유출금지 품목이었다. 영국인 새무얼 슬레이터가 방적기 제조기술을 암기해 미국에 건너가 방적 공장을 지었다. 영국은 반역자라며 이를 갈았지만 미국은 미국 산업혁명의 아버지라 칭송했다.최무선의 화약과 화포는 문익점의 목화와 물레에 필적하는 발명품이다. 화약은 원나라의 금수(禁輸) 품목이었다. 최무선은 원나라의 문헌과 기술자에게 얻은 정보로 화약을 제조하고 화포를 제작해 왜구를 소탕했다. 원나라 군사 정보를 수집한 결과이니 문익점 버금가는 '역사적 스파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조선은 화포의 나라가 됐다.조선이 일본의 조총 제작 기술을 가져왔다면 임진왜란은 부산포에서 끝났을지 모른다. 소련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심어 둔 스파이 클라우스 푹스가 빼내 준 핵개발 기술로 1949년에 두번 째 핵무장국이 됐다. 소련의 핵무장이 지체됐다면 유일한 핵무장국 미국을 의식한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했을까 의문이다. 1950년 6월 25일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스파이의 실존적 의미는 상대적이다. 적에겐 간첩이지만 우리편이면 영웅이다. 적의 스파이는 발본색원하고 우리 정보망은 사수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거꾸로다. 방산기업의 잠수함 설계도면이 대만에 통째로 넘어가고, 정보사령부 요원은 동료인 '블랙요원' 명단을 중국에 팔아먹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을 훔쳐 중국 지방정부와 반도체 기업을 세운 삼성전자 전직 임원이 검찰에 송치됐다. 삼성전자가 4조원을 투입해 개발한 공정이다. 올 한해 발생한 일이다. 외국인 스파이 보다 검은머리 외국 스파이가 더 치명적이다.물러터진 '간첩법(형법 98조)'이 도마에 올랐다. 국정원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간첩의 정의와 행위를 확대한 법 개정
-
[참성단] 경기도 장애인 오케스트라 지면기사
2011년 10월 27일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하트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공연 도중 갑자기 조명이 꺼졌다. 잠시 후 어둠을 뚫고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곡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의 선율이 흘렀다. 19명의 시각장애 연주자는 서로의 호흡과 악기소리에 집중했고, 청중도 눈을 감고 음악과 온전히 일체됐다. 암전(暗轉)공연, 어쩌면 악보도 없고 지휘자도 없는 시각장애 오케스트라이기에 가능했던 실험이었는지 모른다. "브라비(Bravi)!" 객석은 환호와 네 번의 기립박수로 경의를 표했고, 하트체임버는 3곡의 앙코르 연주로 화답했다.기적의 하모니는 2024 파리패럴림픽 '문화 올림피아드' 행사에서도 이어졌다. 이번엔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파리 샹젤리제 부근 살가보 극장 무대에 올랐다. 자폐·지적장애 등 발달장애 연주자 36명은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 서곡'·카미유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등을 연주했다. 앙코르곡 프랑스 대표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과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는 청중들의 심장을 두드렸다. 2006년 창단한 하트하트는 한국뿐 아니라 워싱턴DC의 케네디센터 등 해외 무대까지 장벽이 없다.경기도가 장애인 오케스트라 '꿈의 심포니아'를 창단한다는 뉴스가 반갑다. 전국 최초 '인재 양성형' 시스템으로 연습 수당은 물론 전문 연주자의 1대 1 집중 교육도 이뤄진다. 10월 10일까지 단원을 모집하고 오디션을 통해 11월 중 선발할 계획이다. 9일 창단 발표식에서 "장애인들에게 기회의 통로를 만들어 꿈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김동연 지사의 진정성에 기대를 건다.하트체임버의 한 단원은 "악기를 구입하기 위해 안마사 일을 했다"고 고백한다. 장애인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와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지 가늠조차 안 된다. 몇 주에 걸쳐 악보를 완벽하게 외우고, 한음 한음 맞춰가며 연습을 반복하는 '정공법'으로 연주를 완성한다. 조금 오래 걸리면 어떤가. 알레그로(A
-
[참성단] 소설의 계절 가을 지면기사
이례적인 긴 폭염으로 한여름 같은 가을이 왔다. 그래도 가을은 가장 독서 친화적인 계절이다. 가을에 읽어야 할 소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가들이 첫손에 꼽는 소설들이 있다.'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체코의 작가 보후밀 흐라발(1914~1997)의 소설이다. 모순형용(oxymoron)에 가깝지만 작품 내용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소설은 폐지 압축공인 주인공 한탸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130쪽 분량의 짧은 작품이다. 한탸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전쟁과 폭력으로 가득한 비정상적 세계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그는 프로이센 왕실 도서관의 책을 파쇄했고, 전쟁 후에는 나치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에 반하는 금서들을 파쇄했다. 그는 책들을 파쇄하면서 엄청난 독서로 큰 교양을 쌓는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현대화한 작업 방식으로 인해 직장에서 밀려나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책을 파쇄하는 시끄러운 일을 하면서도 세상과 거리를 두는 고독을 즐기던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세계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책들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압축기 속으로 밀어 넣는다.W.G. 제발트(1944∼2001)는 독일 출신 영국 작가다. '토성의 고리'는 다크투어리즘 형식의 작품으로 자연사적(自然死的) 글쓰기가 돋보인다. 토성의 위성들은 기조력으로 모두 파괴되고 남은 파편들이다. 토성의 고리는 얼음 결정체와 각종 입자들로 이뤄져 있는데,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다 없어진다는 무상의 철학을 보여준다. 한때 번성했던 대도시 로우스토프트는 대공황 이후 쇠퇴한 도시가 됐다. 그런가 하면 도서관에서 발견한 화보집에서 썩어가는 시신들과 침몰하는 전함 등 1차 세계대전의 상흔들을 목격한다. 역사적 현장인 워털루에서 역사의 어두운 이면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그 외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독자를 즐거운 혼란에 빠뜨리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든지 실제의 일상어로만 작품을 썼던 단편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등은 소설가들에게는 소설교과서 같은 작품들이다. 모처럼 찾
-
[참성단] 벌초(伐草) 단상 지면기사
추석을 앞둔 몇 주말은 전국 도로가 추석 연휴 못지 않은 교통정체로 몸살을 앓는다. 언론은 벌초(伐草) 행렬 때문이라고 보도한다. 실제로 이맘때면 전국 곳곳에서 예초기 굉음이 요란하다. 추석을 알리는 전령사다. 그런데 도로를 꽉 메운 차량행렬이 벌초 행렬인지, 행락 행렬인지는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 추정 보도에 가깝다.벌초는 조상 묘와 묘역의 잡초를 말끔하게 정리하는 일이다. 유교에서 조상과 후손은 상호 존재 이유다. 조상이 있기에 후손이 존재하고, 후손으로 인해 조상은 잊히지 않고 영생한다. 이를 확인하는 유교적 영생 의식이 제사이고, 벌초는 제사 전에 성역을 정화하는 통과의례다. 잡풀이 무성한 산소는 불효나 멸문의 증거로 여겨지기 십상이다.시대와 세태의 변화를 따라 벌초 문화도 급변했다. 지금도 후손들이 모여 문중의 묘역을 벌초하는 일이 흔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닐 테다. 화장률이 90%를 넘는 장례문화로 벌초가 생략되는 추세다. 화장 후 공·사립 납골당과 묘원에 유골을 안장하니 벌초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제주도만의 추석 문화였던 벌초방학도 2010년을 전후로 흐지부지 사라졌다.가족납골묘로 산소를 대신하는 문중도 늘었다. 고향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의 자태는 여전해도, 선산을 지켜온 문중의 어른들은 타계했거나 벌초할 기력이 없다. 그래도 전국의 산야 양지 바른 땅을 차지한 산소가 부지기수다. 객지의 후손들은 조상 묘 관리에 애를 먹는다. 덕분에 벌초 대행업체들이 특수를 누린다. 지역농협, 산림조합, 민간업체에 벌초 대행을 의뢰하는 건수가 해마다 폭증한단다. 귀성열차 예매 대란 대신 벌초 대행 대란이 추석 신풍속이 될 날도 머지않다.문화는 당대의 사유의 총합이니 시대를 따라 변한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에선 흔했던 화장 문화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선 매장 문화로 바뀐 뒤 지금 다시 화장문화가 대세가 됐다. 제례 문화도 이와 같을 테니, MZ가 주류인 시대에는 벌초는 사라지고, 제사도 지방(紙榜)과 향 대신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선친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변할지 모른다.의식(儀式)이 변한다고 의식(意
-
[참성단] 안전부스를 아시나요 지면기사
수원의 대표 상권인 일명 '인계박스' 골목에 연두색 안전(안심)부스가 서있다. 9월 4일 저녁, 문 열린 부스로 들어가 닫힘 버튼을 누르니 수원시 도시안전통합센터에서 즉각 반응한다. "관제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관제요원의 음성이 들린다. CCTV로 부스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는 관제요원의 안내를 받아 경찰이나 119구급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1월 새벽 2시께 만남을 강요하는 남성에게 위협받던 여성이 무사히 구조되기도 했다. 부스 안에는 자동심장충격기(AED)와 소화기 두 대도 비치되어 있다. 수원시는 인계동을 포함해 곡반정동·지동·세류3동·매산동·매탄3동 각 1개, 영통3동 2개 등 총 8개의 안전부스를 운영 중이다.다른 지역의 안전부스는 어떨까. 성남 판교의 한 백화점 앞 보도에 설치된 안전부스는 한눈에 봐도 낡았다. 먼지가 수북하고 담배꽁초들이 널브러진 흡연박스 신세가 됐다. 녹슨 CCTV와 불 꺼진 비상벨은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다. 2017년 한 민간업체가 도로점용허가를 받아 설치했다는데 분당구청은 관리권한도 없단다.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카페거리의 안전부스 역시 이름값을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비상전화기는 먹통이고 내부는 담배냄새에 찌들어있다.스토킹 범죄와 묻지마 사건이 횡행한다. 2012년 여의도 흉기 난동,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2023년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은 사회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올 들어 7월 서울 은평구 아파트 단지에서 30대 남성이 일본도로 이웃 주민을 살해하고, 8월에는 안산에서 10대가 같은 학원을 다니는 또래 여학생을 흉기로 찌르고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갈수록 흉악해지는 범죄에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당연하다.안전부스는 2015년 경기도 광주 경화여고 인근에 국내 최초로 설치돼 서울·부산·제주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쓸모가 약해진 공중전화 부스 활용과 강력범죄 예방이라는 '착한 컬래버'는 공감을 끌어냈다. 하지만 시행 9년 만에 대다수 안전부스는 홍보 부족과 관리 부실로 외면받는 모양새다. 부스
-
[참성단] '철밥통' 걷어차는 MZ 공직자 지면기사
공직을 '철밥통'이라 부른지 꽤 오래됐다. 중국 국영기업체 직원을 일컫는 '톄판완(鐵飯碗·철밥그릇)'에서 유래했다는데, 우리 공직에도 찰떡 같은 은어다. 공직자는 본인의 독직, 비리 아니면 해고될 염려가 없다. 국가가 망할리도, 세금이 마를리도 없어서다. 1997년 IMF 위기 때 민간의 밥그릇이 죄다 요절나도 철밥통은 끄떡 없었다. 대신 무자격 철밥통에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다. '철밥통'은 선망과 경멸 사이에 걸쳐있다.저연차 MZ 공직자들이 철밥통을 걷어차고 있단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사표를 던진 10년 차 이하 경찰관이 2022년 155명에서 지난해 301명으로 배로 늘었다. 10년 차 이하 의원면직 소방관도 2022년 98명에서 지난해 125명으로 증가했다. 교총도 3일 지난해 10년 차 미만 교사 퇴직자가 576명으로 5년 내 최고치라고 발표했다. 한결 같이 격무에 낮은 처우를 원인으로 꼽았다.전국공무원노조 산하 2030청년위원회, 즉 MZ노조원들이 지난 6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철밥통 부수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재직 5년 미만 청년 공무원 퇴직자가 지난해 1만3천500명을 넘었다"며 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감당하는 업무에 비해 월급은 너무 초라하다"며 "철밥통에 밥이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시선에 따라 논란이 분분할 테다. 병장 월급이 200만원을 돌파한 마당에 저연차 공직자들의 저임금 구조는 시대착오일 수 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려 목숨을 거는 소방관, 경찰관, 군인들의 박봉에 국민의 양심은 늘 민망했다. 반면에 전세대 백수시대에 철밥통을 걷어차는 MZ들에게 혀를 차는 여론도 있을 테다. 공권력이 권위를 잃으면서 공직이 조롱과 모욕의 배설구로 전락한 세태가 원인일 수도 있고, 공직을 그저 직업의 하나로 여기는 MZ의 사고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MZ 공직자들의 퇴직 러시는 구체제와 신세대간의 사회·경제·문화적 태도와 철학이 충돌한 결과로 보인다.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구체제에 '조용한 퇴직'으로 맞서는 신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