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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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실시간 검색어 지면기사
1927년 8월 1일 중국 장시성 난창(南昌)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폭동을 일으키자 장제스의 국민당이 진압에 나섰다. 이 전쟁은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첫 전투로 기록된다. 전력의 열세로 패한 마오쩌둥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 그러면서 "적을 무찌르려면 여론을 한데 모아야 하며 이를 위해 언론이 당의 나팔수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어록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 되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다시 태어나 지금의 인터넷 세상을 보았다면 당시 했던 말을 이렇게 수정할지도 모른다. "모든 권력은 '인터넷 검색창'에서 나온다.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라."요즘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두고 벌이는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를 보면 총만 안 들었지 사실상 전쟁에 가깝다. 그래서 모든 언론마다 이를 두고 '실검 전쟁'이라 부르고 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조국 힘내세요' '조국 사퇴하세요'가 포털 실검 상위 순위에 오르더니 이제는 '가짜뉴스 아웃' '한국언론 사망' '보고싶다 청문회' '법대로 조국 임명' 등의 사실상 정치적 '구호'가 실검 순위를 온통 도배질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됐는지 한숨이 나온다.국내 양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카카오의 하루 국내 이용자는 3천만명, 뉴스 소비는 2억건이 넘는다. 돈벌이가 되는데 그냥 둘 포털 회사가 아니다. 접속하면 뉴스부터 뜨게 만들고,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른 뉴스를 찾아보는 이용자의 심리를 이용해 눈에 잘 띄는 곳에 실검 순위를 배치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상술이다. 그러다 보니 이용자들은 검색순위 조작의 유혹을 받는다. 실제 일부 기업들은 실검 순위를 버젓이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곤 한다. 포털은 알고도 이를 묵인한다.공룡 포털이 여론을 좌지우지해 그 폐해가 도를 한참 넘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국 논란은 특정 세력이 순식간에 인터넷 여론을 왜곡·조작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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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통령의 화법 지면기사
불편한 몸에도 미국 초유의 4연속 대통령으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스벨트가 좌절과 실의에 빠진 국민을 달래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난국을 이겨낸 데는 그의 뛰어난 화술 덕이 컸다. 그래서 주일마다 라디오 전파를 타고 미 전역으로 퍼져나갔던 그의 노변정담(爐邊情談)을 국정을 이끌어 간 원동력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친구끼리 또는 가족끼리 때로는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모아놓고 옛날 이야기를 하듯 솔직하고도 다정하게 던진 한마디는 국민들의 피부에 닿아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노변정담을 청취한 미국 국민들은 자신들은 혼자가 아니며, 이런 대통령이라면 함께 어떤 위기가 닥쳐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루스벨트와는 정 반대의 방법으로 국가를 경영하고 국민을 이끌어 나간 대통령도 있다. 프랑스의 상징 드골 대통령. 그는 화법을 떠나 기자회견 자체를 싫어했다. 1961년 프랑스를 방문했던 미국의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에게 '기자회견 무용론'을 설파했을 정도다. "기자회견을 하지 마세요. 신비로움과 위신이 사라지게 됩니다." 드골은 이 말을 자신의 회고록에도 적었는데 기자회견을 너무 자주 하면 가려져야 할 부분까지 노출되어 지도력에 흠이 간다는 것이다.43세의 젊은 나이에 적절한 어휘를 골라, 가장 감동적인 메시지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전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했던 케네디가 드골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에 돌아간 케네디는 여전히 대국민 메시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즐겼다. 반대로 "권위는 위신 없이 성립될 수 없고, 위신은 세속과의 격리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고 단언했던 드골은 1969년 국민투표에서 패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와중에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어제 동남아 3개국 순방길에 오르면서다. 문 대통령은 공항에서 측근들에게 "조 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데 대입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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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8년 만의 현대차 무파업 지면기사
정부가 공식적인 경기지표를 들이대며 아무리 불황이 아니라고 강조해도, 대중들은 집단적인 체감 지수를 통해 불황을 실감한다. 여성들이 감각적으로 반응하고 공감하는 패션분야는 비공식 불황지수의 보고다. 화장품 브랜드인 에스티 로더가 발표한 '립스틱 지수'와, 경쟁사인 로레알이 밀고 있는 '파운데이션 지수'가 대표적이다. 불황일 때는 저렴하고 화장효과가 즉각적인 기초화장품이 잘 팔린다는 것이다. 불황 때 여성들의 치마길이가 짧아진다는 '스커트 지수'는 실제 호황 때 치마길이가 짧아진다는 연구결과로 신뢰도가 확 떨어졌다. 이를 '헴라인(치맛단) 지수'가 대체했다. 비싼 실크 스타킹을 드러낼 만큼 치마길이가 짧아지면 호황이고, 스타킹 살 돈이 없어 치마가 길어지면 불황이라는 것이다.2008년 금융위기 시절 미국에서는 비공식 경기지표가 다수 등장했다. '불법 입국자 국경 체포지수'는 미국 국경을 넘다가 체포된 멕시코 불법 입국자의 증감을 미국 경기의 선행지표로 봤다. 체포 인원이 감소하면 경기가 안좋은 징조라는 것이다. 미국 체류 히스패닉의 본국 송금액이 줄어들면 불황이라는 '이민자 본국 송금지수'나, 불황 때는 라떼 판매가 줄고 레귤러 커피 판매가 늘어난다는 '스타벅스 라떼 지수'도 있다.한국의 대표적인 비공식 불황지수는 익히 알려진대로 '포터 지수'다. 1톤 트럭 포터의 판매량이 경기향방과 자영업자 추이를 보여주는 실물 지표로 활용된지 오래다. 판매량 증가는 불황의 증거다. 포터가 올해 현대자동차의 베스트셀러라니 걱정이다.그 포터를 만드는 현대자동차 노사가 엊그제 분규 없이 임금단체협상에 합의했다. 대표적인 강성노조인 현대차 노조가 8년만에 파업을 안한다는 소식을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울산시와 시의회는 "감사하고 환영한다"고 환호했다.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현대차 노조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조는 무파업 결단 이유에 대해 "한반도 정세와 경제 상황, 자동차산업 전반을 심사숙고했다"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와 화이트 리스트 배제 등도 잠정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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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저어새의 하소연 지면기사
'카타울라쿠스 무티쿠스'라는 종의 개미가 물난리에 대처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이들은 속이 빈 대나무 줄기 안에서 사는데, 비가 많이 와 물이 차면 물을 잔뜩 마신 뒤 집에서 몇㎝ 떨어진 곳에 오줌을 싸는 식으로 물을 퍼 나른다. 차라리 도망을 가는 게 나을 듯한데, 폭음과 배설로 몸을 혹사하다 죽는 일이 다반사다. '꼬리치레'라는 새는 근처에 뱀이 나타나면 날개춤을 추며 뱀 주변을 맴도는 무모한 행동을 한다. 다윈의 적자생존의 법칙에 반하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풀어놓은 '다윈, 당신 실수한 거야'란 책에는 이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동물들이 등장한다.이 책에 실릴 정도는 아니지만 인천에서도 10여 년 전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새가 등장한 적이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205-1호이자 멸종위기 1급 보호조류인 저어새다. 저어새가 주목받은 이유는 새의 입장에서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 같은 장소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도시, 그것도 공단 내 유수지의 인공섬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인근에 먹이가 풍부한 갯벌이 있고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점 등 저어새에게 매력적인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장지대를 거친 빗물이 유입돼 수질이 나쁠 뿐 아니라, 바닥은 조금만 파도 악취가 날 정도이며 인근 도로의 소음과 먼지 또한 상당한 곳을 보금자리로 삼은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아해 했다.어쨌든 '저어새네트워크'를 비롯한 인천시민들은 "오죽했으면 이 더러운 곳에 들어와 살까"하고 안쓰러워 하며 이들을 보살폈고 이에 힘입어 저어새는 지금까지 인공섬을 번식지로 삼고 있다. 이처럼 인천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저어새가 얼마 전 경인일보를 통해 하소연을 털어놓았다. 저어새 1인칭 시점으로 구성한 기획기사였다.듣고 보니 저어새의 불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재작년만 하더라도 인공섬에서 새끼 233마리가 살아남았는데 작년에는 46마리, 올해에는 15마리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한 동물이 헤엄을 치고 건너와 알을 깨 먹기 때문이라는데, 저어새는 유력한 용의자로 너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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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조국(曺國) 수호에 나선 문학인들 지면기사
장 폴 사르트르는 저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작가의 기능은 아무도 이 세계를 모를 수 없게 만들고, 아무도 이 세계에 대해서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도록 만드는데 있다(문학이란 무엇인가)"고 밝혔다. 소설을 쓰든 시를 짓든 문학인들은 동시대를 서사하고 동시대의 대중들을 시대의 주역으로 각성시킬 의무가 있다는 주장 정도로 해석해 본다.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주인공의 개과천선 스토리만 쏙 빼내 문고판 정도로 정리하면 한국판 '장발장'이 된다. 완역본이 나오기 전 한국 청소년들은 '레미제라블'을 '장발장'으로 읽었다. 하지만 책 두께로 인해 '벽돌'로 불리는 원본 '레미제라블'은 장발장이 머물렀던 프랑스 당대에 대한 서사가 핵심이다.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쳤던 성당 내부의 묘사가 장황하고, 팡틴느를 불행에 빠트린 프랑스 중산층의 연애풍속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장발장과 자베르의 운명이 결정된 프랑스의 1832년 6월 봉기에 대한 서사는 난해하다. 완독 자체가 고역이다. 하지만 당대의 사람과 제도, 건축, 풍속, 정치, 역사에 대한 서술로 주인공들은 무한한 생명력을 발휘한다.동시대의 기록자 역할을 감당할 때 작가의 가장 큰 고통은 시대 전체에 대한 관찰과 통찰의 고단함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고민과 고통이 클 것으로 짐작한다. 보수의 타락과 진보의 위선으로 삶의 정신적 기반은 모호해지고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는 짙어지고 있다. 촛불이 새로운 길을 열었던 것인지, 열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 시대와 대중은 공화파와 왕정파가 격돌한 1832년 6월 봉기만큼이나 역동적이고, 그 현장 한 가운데 섰던 장발장과 같다.소설가 이외수는 "(이명박, 박근혜 시절) 당시에 비하면 조족지혈도 못 되는 사건에 송곳니를 드러내는 모습들"이라고 했다. 공지영은 "문프(문재인 대통령)가 조국이 적임자라고 하니 그를 지지한다"고도 했다. 시인 안도현은 "물어뜯기는 조국 보다 물어뜯으려고 덤비는 승냥이들이 더 안쓰럽다"고 한다. 이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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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코리아 디스카운트' 지면기사
한국 기업의 가치가 외국기업의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고 한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증시가 종합주가지수 500~1천의 박스권에 갇힌 채 요지부동이었다. 한국 기업들의 가치가 홍콩·싱가포르 기업들의 절반이 안되고, 심지어 대만·태국·말레이시아 기업에 비해서도 30% 이상 낮게 평가받는 이상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국제금융시장에서 통용됐다.그 무렵 전문가 그룹이 꼽았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은 북핵문제 등 지정학적 불안요인,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회계,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이다. 북한은 걸핏하면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고, IMF 사태에서 보듯이 재벌 총수들은 무책임 경영과 회계부정으로 기업을 장악하고, 소수 정예 노동단체의 경영개입이 일상화 됐으니 한국기업을 제값 쳐주기 힘들다는 분석이었다.그 때로부터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주가지수는 2천대 전후로 치솟고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해소됐는지는 의문이다. 핵무장을 완료한 북한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막말로 호령하며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있다. 회계부정과 편법 상속으로 검찰에 불려다니는 재벌 총수들의 오너 리스크는 여전하며, 만능 노조로 인한 노조 리스크는 고질이 됐다. 결정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악화시키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했으니, 바로 정치 리스크다.보수와 진보가 교대로 집권하면서 복지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나라 곳간이 비어간다. 집요한 집권의지로 서로를 말살하는 정치적 학살을 감행한다. 산업화 세력인 보수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디스카운트 됐다. 이제는 조국 사태로 386 민주화 세력인 진보의 디스카운트가 진행 중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연구 논문은 국제학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 아무튼 땡처리 수준으로 디스카운트된 보수와 진보가 막장 정치를 펼치니 국격이 흔들린다. 국격이 흔들리니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이 대놓고 대한민국을 무시하고, 러시아 군용기가 영공을 침범한다. 미국과 일본은 대한민국을 성가신 존재로 취급한다.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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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도척과 어부의 교훈 지면기사
장자는 유가(儒家)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만물은 본성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의 도와 덕으로 공존할 수 있는 걸, 번거롭게 인의예악으로 질서를 세워 왜 쓸데없이 분란을 만드느냐는 비판이다. 장자 잡편에서 공자가 큰 도둑 도척과 무명의 어부에게 망신당하는 장면은 유가 비판의 결정판이다.공자가 잔인무도한 도척을 교화하겠다고 큰 소리쳤다. 공자는 도척에게 성인의 풍모를 가지고 도둑이라 불리니 애석하다며, 그가 마음만 고쳐 먹으면 존경받는 제후가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도척의 답변 요지가 이랬다. "너야말로 거짓말과 위선으로 세상의 군주들을 홀리며 부귀를 구하니 너 보다 큰 도둑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너를 도둑이라 부르지 않고 나를 도둑이라 부르니 이해할 수 없다." 공자는 사색이 된 채 허둥지둥 물러났다.공자는 길에서 만난 어부가 현자임을 대번에 알아 본 뒤 "천하의 안정을 위해 각국을 돌면서 유세했지만 여기저기서 박대 받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이유를 묻는다. 어부는 공자를 그림자를 떨쳐 버리려 죽을 때 까지 전력질주한 사람에 비유했다. "그늘에서 쉬면 될 걸 어지러운 발자국만 남겼다"고 애석해 하며, 명성과 업적은 다른 사람에게 주고 제 한 몸 돌보는 것이 좋을 거라 충고한다.유가의 비조인 공자가 큰 도둑과 평범한 어부에게 망신당하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라 지어낸 허구다. 또한 춘추 시대의 공자를 전국 시대의 장자가 도둑과 어부를 앞세워 비판했으니, 공자 자신이 반박할 수 없었던 점도 아쉽다. 다만 천하경영에 나선 치자(治者)의 처세를 경계하는 우화로는 효용이 높다.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어제 "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다"고 딸의 논문 제1저자 등재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짊어진 짐을 내려놓을 수 없다"며 장관 후보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조 후보가 세상을 전력질주 하면서 남긴 발자국이 너무 많다. 대중이 알던 조국과, 그의 그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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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꿈의 구장'과 야구박물관 지면기사
1989년 개봉한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은 옥수수밭에 야구장을 지으면서 펼쳐지는 판타지를 다룬 영화다. 영화의 모티브는 미 프로야구의 흑역사 '블랙삭스 스캔들'에서 따왔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신시내티 레즈가 맞붙은 1919년 미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승부는 막강한 전력의 삭스가 싱겁게 끝낼 것으로 모두 예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다음 해 가서야 삭스 선수들이 고의적으로 패배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팬들은 경악했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8명의 선수는 영구제명됐다.영화는 평범한 옥수수 농장주 레이 킨셀라 (케빈 코스트너)에게 매일 밤 들리는 환청으로 시작한다. '그것을 만들면 그들이 올 것이다'. 킨셀라는 옥수수밭을 갈아엎고 조명까지 갖춘 멋진 야구장을 만든다. 이웃의 반응은 조롱과 냉담. 그러던 어느 날, 옥수수밭 사이로 한명의 선수가 수줍게 걸어 나온다. 타이 캅과 늘 타격왕을 겨루던 '맨발의 조' 조 잭슨이다. 그렇게 한 명 또 한 명, 삭스에서 제명된 선수 8명이 옥수수 야구장을 찾아온다는 줄거리다. 마치 꿈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다. 한국에서 이 영화의 흥행은 저조했다.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미국에서는 달랐다. 흥행은 말할 것도 없고, 이 판타지 영화가 준 울림은 상상 이상이었다. 영화에서 옥수수 구장을 찾은 '맨발의 조'가 킨셀라에게 "여기가 천국인가요?"라고 묻는 대사가 나오자 극장마다 관객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많았다. '꿈의 구장'은 미국인의 로망이 됐다.영화 '꿈의 구장'이 현실이 된다. 내년 8월 1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경기가 실제로 미국 아이오와주의 다이어스 빌 농장에 조성되는 특별야구장에서 치러지기 때문이다. 이 농장은 실제 '꿈의 구장'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1910년부터 1990년까지 화이트삭스가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코미스키파크를 재현한 8천석 규모의 야구장 공사가 지난 14일 착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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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마초 코미디 지면기사
'누구든 중독된 자 있거든 내게 돌을 던져라'. 십수 년 전 발간된 '대마초는 죄가 없다'라는 책의 표지에 실린 문구다. 대마초의 합법화,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이 책은 발간 당시만 하더라도 제목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지금은 어떨까?같은 마약류로 분류되지만 필로폰, 코카인 등에 비해 대마초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 특히 젊은 층의 인식은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 같다. 아마도 다른 마약류와 달리 중독현상과 금단현상이 없고, 미국 일부 주와 캐나다 등 여러 국가가 대마초를 합법화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대마초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대마초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댓글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다섯 차례 구속된 전력이 있는 한 여배우는 방송에 나와 "대마초가 마약이라는 근거를 달라"고 정부에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다.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서인지 최근 미국에 사는 한국인 유튜버가 대마초를 피우는 모습을 여과 없이 방송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는 이 영상이 단순히 '과시용'이거나 네티즌들의 관심을 유도해 조회수를 늘리고,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영상이라는 점이다. 대마초에 대한 고찰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미국에서는) 고등학생도 대마초 사서 필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무리 대마초가 중독성이 없고, 합법화 논리에 설득력이 있다 해도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대마초를 피워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더 큰 문제는 이 유튜버가 한국사람이기는 하지만,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벌을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사실 이 유튜버 사례는 약과다. 대마초를 둘러싸고 벌어진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미 1970년대에 있었다. 1975년, 신중현 등 당시 가요계를 주름잡던 뮤지션들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무더기로 구속됐다. 이른바 '대마초 파동'이다. 그런데 이때는 대마초가 불법이라는 법률 규정이 없었다. '대마관리법'이 실행에 들어간 게 1977년 1월부터이니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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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호르무즈 지면기사
페르시아만 입구에는 호르무즈(Hormuz)라는 섬이 있다. 면적은 42㎢, 인구 3천여 명. 이란 땅이다. 구글 지도로 보면 황량한 모래섬이지만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데 위치해 해상 교역의 요충지로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10세기 호르무즈 왕국은 이 섬을 근거지 삼아 페르시아만 무역을 통제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1433년 해상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중동 서남아 동아프리카를 거쳐 이곳에 들른 명나라 항해 왕 정화(鄭和)는 호르무즈 왕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병사했다.열강들이 호르무즈 섬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인도와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호르무즈는 페르시아 해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으로 폭이 54㎞에 불과한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주요 산유국의 원유 수출 통로이기도 하다. 매일 약 2천250만 배럴의 석유가 이곳을 통과한다. 이는 세계 일일 석유 생산량의 24%에 해당한다. 세계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일시적으로 유조선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막히면서 유가가 폭등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호르무즈가 최근 다시 뜨거워졌다. 지난해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치적이던 이란 핵 합의를 전격적으로 파기하고 대 이란 제재를 시행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호르무즈 인근 해역에서 유조선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는가 하면 최근엔 미국과 이란이 서로 상대편의 무인기를 격추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 정보기관 공작설 등을 주장하면서 페르시아 만은 순식간에 일촉즉발 긴장 상태에 빠졌다.이런 상황에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 구성을 위해 우방국들에 파병 요청을 하자 우리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우리와 일본을 꼭 짚어 참여를 요청해 걱정이 더 크다. 현재 참가를 결정한 나라는 영국과 이스라엘. 이미 독일은 불참을 선언했다. 한미동맹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서울 강남에 '테헤란로'가 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어온 이란을 생각하면 쉽게 답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