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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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한반도 신 합종연횡 지면기사
진시황이 중국 최초의 황제국을 세우기 전까지 대륙은 전국시대의 혼란을 겪었다. 진(秦)을 비롯한 연(燕), 조(趙), 한(韓), 위(魏), 제(齊), 초(楚) 등 전국 칠웅은 끊임없이 전쟁과 협상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진이 약진하며 세력 균형이 깨지자 대륙의 혼란과 긴장이 극심해졌고, 이 틈새에서 오직 혀(舌)만 가진 가난뱅이 두 친구 소진과 장의가 기회를 얻었다.소진은 약세에 몰린 6국을 돌며 힘을 합해 진에 맞서자는 합종(合縱)책을 유세했다. 반면 장의는 6국동맹을 각개격파하는 연횡(連橫)책을 진 왕에게 건의했다. 이후 6국동맹과 진나라는 합종과 연횡에 근거한 외교·군사 대결을 전개한 끝에 진의 천하통일로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다고 장의의 연횡이 소진의 합종을 누른 것으로 판단하면 안된다. 세력의 형세나 동맹의 신뢰나 변화하는 국가이익에 따라 합종과 연횡은 얽히고 설키게 마련이다.최근 한반도에서 전통적인 합종연횡이 균열 조짐을 보이는 대신 신 합종연횡의 기미가 뚜렷하다. 냉전시대의 한반도는 미국이 중심인 한·미·일 동맹과 구소련이 중심인 북·중·소 동맹, 두 합종 세력의 대립이 팽팽했다. 미·소 양극이 세력 균형을 위해 구축한 동맹은 굳건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와 사회주의 국가의 연쇄적인 몰락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넘실댄 것도 잠시,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무장 이후 사정은 전혀 달라졌다.전통적인 합종연횡 구도라면 미국과 한국은 한·미·일 동맹의 합종으로 중국과 북한을 견제해야 맞다. 그런데 한·미·일 동맹의 합종연대에 이상기류가 발생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로 미국이 동맹들에 성가신 요구가 많아졌다. 트럼프의 고양이 아베는 한국을 대놓고 무시한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과의 평화협상에 외교를 집중하면서 미, 일 대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 한·미·일 합종의 대상인 중국과 북한이 이 틈을 타고 자유민주동맹에서 한국을 분리시키기 위해 연횡의 전략을 펼치는 중이다. 시진핑은 경제로,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전통적인 합종은 흔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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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R의 공포 지면기사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10시 미국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 채권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전 세계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에 떨었다. 역사적으로 미 국채 3년물과 10년물의 수익률이 역전되면 평균 22개월 이내에 본격적인 경기침체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 날의 공포는 더 컸다. 우리 역시 국고채 장단기 금리 격차가 11년 만에 가장 줄어들었다. 'R의 공포'가 오면 다음 단계는 'D(deflation)의 공포'다. 디플레이션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폭락하거나 통화량 축소로 인해 물가가 떨어지며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예외없이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내려가고 생산과 소비가 위축되어 경기 침체는 장기화한다.우리 역시 물가 상승률이 7개월째 0%대에 그치면서 물가 하락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디플레이션의 우려가 커졌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꽤 많다.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되면 경제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든다. 물가가 떨어지면 기업의 매출이 줄고 생산과 성장률, 고용 등이 덩달아 감소한다. 여기에 소비자가 지갑을 굳게 닫으면서 경제는 불황의 늪으로 들어간다. 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D의 공포'를 겪고 나면 그다음에는 'L(lay off·해고)의 공포'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장기화와 이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로 이미 애플, 테슬라를 비롯한 첨단 기업부터 포드, GM 등 자동차 업체,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위탁 제조사인 대만 폭스콘까지 감원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무인 자동화 추세가 일자리 감소를 더욱 가속화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중 무역전쟁에 일본의 경제 보복까지 겹쳤다. 수출 침체 장기화가 본격화할 것이란 우울한 진단이 나오며 'L자형'의 장기 침체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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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수원시 승격 70주년 지면기사
'이 강산에 정기가 한곳에 모여/그림같이 아름다운 정든 내 고향/이끼 푸른 옛 성에 역사도 깊어 /어딜 가나 그윽한 고적의 향기'.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 배운 게 '수원의 노래'였다. 의무 사항이 아닌데도 담임 이기준 선생님은 "수원에 살면 '수원의 노래' 정도는 외워 부를 줄 알아야 한다"며 직접 풍금을 치며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끼 푸른 옛 성'이란 가사에서 풍기는 쓸쓸한 느낌이 왠지 좋았다. 성을 오를 때마다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자 옆 친구가 또 그 친구의 친구가 같이 따라 불렀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나만 이 노래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50년 전 일이다.달랑 문만 남은 북문, 늘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동문, 온전한 성이라고 하기엔 볼품없이 무너진 성곽 도시에 불과했던 수원이 변하기 시작한 건 수원성이 복원되면서부터다. 처음 공사가 진행될 때 만해도 "어휴! 도대체 언제 복원이 끝나?"하고 한숨을 쉬었지만, 아홉 개였던가, 주춧돌만 덩그러니 서 있던 팔달산 정상 서장대와 장안문에 지붕이 얹혀지고 성곽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면서 "수원이 뭔가 변하는구나"라며 비로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수원성 복원정화사업은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진행됐다. 이랬던 수원이 시로 승격한 지 어제로 70주년이 됐다. 1949년 8월 15일 수원 읍에서 시로 승격된 수원시는 5만명의 소도시에서 지금은 125만명으로 늘었고 명실상부한 경기도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IT로 세계를 호령하는 삼성전자 본사가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수원은 전통의 수원화성과 세계 초일류 첨단 기업인 삼성이 공존하는 보기 드문 도시로의 모습을 갖췄다. 18세기 말 개혁의 군주 정조대왕이 수원 천도까지 생각하며 꾸었던 거대한 수원의 꿈은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늘 손에 쥐고 있으면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겐 성의 존재가 그랬다. 수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살던 고향에 대해 그런 추억쯤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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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반전의 태극기 지면기사
우정사업본부가 제74주년 8·15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역사 속의 태극기' 기념우표 112만 장을 발행했다. 이번 기념우표에 등장하는 태극기는 구한말 고종이 미국인 외교 고문 '데니'에게 하사했다고 알려진 '데니 태극기'를 비롯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진관사 소장 태극기' 등 16종이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 태극기에 공통으로 깃들어 있는 민족사적 가치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각 태극기가 제작된 시기와 배경을 돌이켜 볼 때 한 점 한 점마다 민족정기가 서려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 개인적으로는 발견된 지 올해로 10년이 된 '진관사 태극기'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이 태극기에 숨어있는 '반전' 때문이다.2009년 서울 북한산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작업 인부들이 낡은 보자기 하나를 찾아냈다. 보자기 안에서는 '독립신문', '신대한',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등 독립운동계 신문과 문건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신문과 문건에는 3·1운동 이후의 상황을 알리는 기사와 함께 태극기 관련 기사 및 자료들이 실려 있었다.신문도 신문이지만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보자기의 정체였다. 그 낡은 보자기는 태극기였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태극기가 일장기 위에 덧칠해 그린 태극기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일장기에 덧칠한 태극기라니…. 태극기를 그릴 제지가 없어서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리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것보다는 '일본을 누르고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라는 게 학자들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일제에 대한 분노와 독립의지를 담아 '기획 제작된' 태극기였던 셈이다.이 태극기는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 당시, 진관사에 머물던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숨겨 둔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계 독립운동을 이끈 백초월 스님은 광복을 1년 앞두고 청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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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미북봉남(美北封南) 지면기사
2017년 방송사가 주최하는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유승민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코리아 패싱이라고 아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문 후보는 "모른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말의 뜻보다 문법에 맞지 않는 콩글리시라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하지만 이 말은 원래 1998년 아시아를 찾은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일본은 들르지 않자 일본언론이 '재팬 패싱'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 일본 언론이 만든 영어 조어에서 차용한 것이다.'코리아 패싱'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후 미국과 직접 협상을 벌여 중유와 경수로를 받기로 한 1994년 '제네바 합의'가 그것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이 협상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이때부터 미국과 직접 협상에 재미를 붙인 북한은 핵 협상에 있어 '한국의 참여를 봉쇄하고 미국과의 협상'을 외교 전략으로 고수해 왔다.2012년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계획으로 장거리 미사일 문제가 불거지자 이에 놀란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규모 식량 지원을 토대로 북한과 직접 협상을 벌여 '2·29 합의'를 이끌어냈다. 한국은 빠진 채 세 차례 고위급 회담을 했다. 그리고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활동 중지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에 따른 24만t의 식량 지원을 합의했다. 하지만 유엔안보리가 1874호 대북제재 결의안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장 성명을 발표하자 북한은 즉각 2·29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북한의 진정성에 실망한 미국은 '남한을 통하지 않고는 북한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통남봉북(通南封北)'을 선언했다. 남한 없이 북한과 대화를 하다 보니 북핵은 물론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이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하지만 트럼프가 미 대통령이 된 후 상황은 바뀌었다. 소원한 한·미관계를 틈타 북한이 잇단 미사일 발사 등 대남공세를 강화하면서 뒤로는 미국에 친서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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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비육우의 동물복지 지면기사
전주시는 지난 7월 1일 전국 최초로 동물복지 전담부서인 '동물복지과'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반려동물의 수가 증가하면서 동물 유기와 학대도 증가하는 현실에서 전주시민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임무를 전담하는 부서라 한다. 반려동물, 유기동물, 길고양이, 전시동물, 시민참여 등 5개 분야별로 동물복지 종합계획을 추진한다는 야심찬 조직개편에 전국의 동물 애호가들이 환호했다.반려동물 유기와 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면수심을 비난하는 사회적 저항이 커지면서 급기야 동물복지를 전담할 행정조직까지 등장했으니, 전주시를 따라 할 지방자치단체들이 줄을 이을지 주목된다. 선출직에겐 반려동물 천만 시대에 반려동물 주인들의 환심을 사는 일이 매력적일 수 있어서다. 부모 자식 보다 반려견과 반려묘와의 정서적 유대가 각별해진 문화적 추세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반려동물을 향한 동물권이 확대되고 동물복지가 구체화 되는 추세와 달리 식용동물에 대한 동물복지는 더디기 짝이 없다. 동물보호단체의 개 식용 금지 캠페인이 드세지만 전통적인 식용 가축들의 열악한 사육환경은 동물복지와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에선 소가 특히 그렇다. 원인은 마블링을 기준으로 고기 등급을 결정하는 소고기 등급제다. 대리석 무늬와 같은 마블이 그물처럼 촘촘히 박힐수록 최상품 소고기 대접을 받는다.등급별로 고기 값 차이가 크니 축산농가에선 제한된 시간 안에 소의 지방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좁은 우리에 가두고 사료를 먹이고, 출하 전엔 옥수수 사료만 먹인다. 섬유질이 없는 옥수수 사료를 먹은 소는 되새김질을 할 필요가 없다. 대신 포화지방은 차곡차곡 쌓인다. 지방세포 증식에 방해가 되는 비타민A 공급을 중단해 장님이 되는 소도 많다고 한다.하지만 환상적인 마블링을 얻기 위한 비인도적인 소사육 환경도 개선될 모양이다. 우선 마블링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지방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환상적인 마블링이 심장·혈관질환의 원흉이라는 정체를 드러내면서, '투뿔(1++)'을 향한 소비 열망이 급속히 식고 있다. 마블링이 소고기 등급 기준이 된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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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애국가 지면기사
애국가는 1931년 안익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 동포들이 애국가를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맞춰 부르는 것을 보고 작곡했다. 영감은 교회 국기 게양대에 나부끼는 태극기에서 얻었다. 곡은 1936년 베를린에서 완성돼 당시 올림픽 개막식에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한 한국인 선수들과 함께 '응원가' 삼아 불렀다고 전해진다. 애국가는 우리 민족의 발자취와 수난의 역사를 그린 대서사시인 '코리아 판타지'의 후반부에도 삽입돼 1938년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됐다. 그 후 정부 수립과 동시에 국가로 정식 명명되었다.애국가는 4·19혁명 직후 혁명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혁명국회의 산적한 현안에 밀려 흐지부지됐다. 그때는 곡보다는 '보우하사' '공활한데' '보전하세' 같은 어려운 가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애국가 작사가는 윤치호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분명치 않다. 이 때문에 임시정부 시절에도 윤치호의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김구 선생이 나서 "3·1 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싸웠는데 누가 지었는지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라며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래서 지금도 애국가 작사자는 공식적으로는 '미상'이다.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수면 아래 있다가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애국가 논쟁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애국가 논란이 재점화됐다. 반일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국회에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공청회를 하면서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안익태의 친일 논란에 더해 표절 논란까지 제기하며 애국가를 더는 부르지 말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발도 크다.애국가는 법적으로 '국가'로 명시돼 있지 않다. 공식행사에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노래로 불리며 사실상 국가의 지위를 지금까지 유지해 왔다. 이를 근거로 몇몇 정당이 공식행사에서 애국가를 부정한 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논란은 늘 결론을 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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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아! 남양주 종합촬영소 지면기사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 장면. 판문각을 찍으려는 사진기자를 손으로 막는 남측 군인 이병헌과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북측 사병 송강호의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스틸 컷. 이 명 장면은 실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아니라 남양주 종합촬영소의 8천여 평에 9억원을 들여 완성한 오픈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영화가 공개된 후 남양주 종합촬영소는 이 멋진 영화의 촬영 현장을 보기 위해 연간 40만명이 찾는 유명 관광명소가 됐다. 1998년 남양주 조안면 삼봉리 132만3천113㎡ 부지에 들어선 촬영소는 영화촬영용 야외 세트와 6개 실내 촬영스튜디오, 녹음실, 각종 제작장비 등을 갖추고 국내 영화 제작의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서편제',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취화선', '미인도' 등 한국 영화의 대표작들이 남양주촬영소의 장비와 기술로 탄생했다. 한국영화의 위상은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촬영소가 문을 닫는다. "그래? 몰랐는데"하며 놀랄 것도 없다. 2004년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으로 부산 이전이 결정됐고, 이제 8월 말이면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남양주 촬영소 시대는 막을 내린다. 문제는 이전 예정지 부산 종합촬영소의 건립이 지지부진하다는 것.더 답답한 건 '서울영화장식센터' 등 의상과 소품을 담당하는 기업 2곳이 마땅히 옮길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훼손되기 쉬운 영화 소품의 특성상 당장 이전도 어렵다. 이들 의상과 소품만 무려 40여 만점. '왕의 남자'의 연산군이 앉았던 용상, '여고괴담'의 책걸상들, '살인의 추억'에 등장한 형사들의 철 책상과 캐비닛 같은 소품들 대부분도 포함된다.'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남양주 종합촬영소가 꼭 그런 케이스다. 당시 표를 의식한 정치적 결정으로, 사용료가 저렴하고 접근성 등이 뛰어나며 여러 편의 작품을 동시에 제작할 수 있는 대형 스튜디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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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언론관 지면기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최고 권력자도 참새는 어쩌지 못했나 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따금 언론을 참새에 비유했다고 한다. "(언론이) 하는 짓이 꼭 참새 같아서 사방 천지 돌아다니며 짹짹거리는데, 손에 잡아 쥐면 조금만 힘을 줘도 죽을 것 같고, 그렇다고 풀어주면 또 짹짹거리는 통에 다루기가 어렵다"고 고뇌(?)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기자 초년병 시절 아버지뻘 되는 선배 기자에게 들었던 얘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참새의 생리에서 언론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는지 채찍과 당근으로 언론의 비판적 저항성을 통제하려 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이달부터 모든 종이신문의 구독을 전면 중단했다. 온라인 뉴스가 보편화한 만큼 신문을 끊어 비용과 행정력 등을 절감하겠다는 게 이유다. 공사 측은 또 '신문 절독은 실무부서의 판단이지 서주원 사장이 지시한 일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우유 끊는 것도 아니고, 최고 30년 가까이 구독한 신문 (특히 지역 여론의 소통창구인 지역 신문)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 최고 책임자의 의지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매립지 직원들도 다 알 것이다. 이 때문에 매립지 사용기간 연장 반대 여론 형성의 주역인 지역신문에 대한 최고 책임자 차원의 보복조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1990년대 중반, 매립지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로서 단언컨대, 당시 지역 신문의 비판과 조언이 없었다면 수도권매립지가 선진환경시설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중앙언론에서 외면한 매립지를 지역 기자들은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악취와 침출수 문제,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했다. 오죽하면 당시 매립지 최고 책임자가 국정 감사차 방문한 국회의원들에게 "의원님들!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기사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입니다."라고 소개했을까.그래도 그 시절의 수도권매립지는 비판보도로 곤혹스럽기야 했겠지만, 언론의 문제 제기를 수용, 개선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수도권매립지는 어떤가.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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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포터·봉고 지수 지면기사
불황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징후가 있다. 가령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은 것이 일반적인데 2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0년 만기 금리 아래로 떨어지면 이는 불황의 신호다. 출산율이 감소하고 립스틱의 판매량이 급증하며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경기의 국면 및 전환점을 판단할 때 유용하지만 매월 약 2천200가구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조사 시간이 길고, 소비자 주관적 판단에 의존해 정확도가 떨어지는 게 큰 단점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2017년 카드사와 공동으로 구축한 '신용카드 빅데이터 기반 경기동향 예측 시스템'이다.이 시스템은 일반인의 소비 패턴을 카드 사용으로 분석해 불황과 호황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월 2억 건의 신용카드 결제 빅데이터에 따르면 20대의 서적, 편의점, 제과점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경기 불황의 사전징후로 분석됐다. 또 30대의 대중교통 이용이 늘어나거나, 40대의 약국, 건강제품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는 것도 경기 불황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포터·봉고지수'도 불황의 징후를 파악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1t 트럭의 대명사인 이들 차량이 많이 팔리면 불황이라는 논리다. 1997년 IMF 직격탄을 맞고 200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포터와 봉고에는 '불황의 차'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경기 악화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실직자가 늘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도 늘고 이들에게 활용도가 높은 1t 트럭의 수요도 함께 늘어나서다. 떡볶이·순대·튀김·호떡을 파는 이동사업자에게 기동력이나 가격 면에서 1t 트럭만큼 유용한 게 없다. 그래서 1t 트럭은 서민 경제를 대변하는 생계형 차종의 부동의 대표주자로 '경기 민감 차'로도 불린다.올 7월까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1t 트럭 포터가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 증가한 6만3천451대가 팔렸다. 봉고의 판매량도 3만7천39대로 기아차 국내 판매 2위를 차지했다. 영락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