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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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재벌 총수 지면기사
2003년 11월 미국 '뉴스위크'지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표지에 싣고 'The Hermit King(은둔의 제왕)'이라고 했지만 미국 재벌의 대명사는 모건(Morgan)이다. 일본의 미쓰비시(三菱)와 미쓰이(三井), 중국의 저장그룹(浙江集團), 인도의 타타(Tata)그룹도 꼽힌다. 재벌하면 둥근 콘크리트 덩어리부터 연상된다. 영어 conglomerate(재벌기업)가 광물학에서는 자갈 따위로 둥글게 뭉쳐진 덩어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재벌'보다 '대기업'으로 부르지만 '총수' 호칭만은 그대로다. '총수(總帥)'란 군대의 총사령관이나 원수(元帥)를 뜻한다. 帥가 '장수 수'자다. 미국의 매카서(맥아더)와 아이젠하워, 영국의 몽고메리,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쉬샹치엔(徐向前)과 펑더화이(彭德懷) 등이 모두 별 5개짜리 원수였고 총수였다. 굳이 민간인을 '총수'로 부른다면 늘 군복차림이었던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쿠바의 카스트로 정도다.중국에선 총수도 아닌 '통수(統帥)'다. 3군사령관도 '三軍統帥'다. 일본에서도 총수는 '총대장'이란 뜻으로 쓰인다. '지체가 높다'고 할 때의 '지체 벌(閥)'자 '재벌'보다는 '대기업'이 낫고 '총수'보다는 '회장'이 무난한 호칭이다. 오늘 최순실사태 국정조사를 위한 국회 청문회에 9명의 대기업 총수들이 증인으로 출석한다며 '총수'라는 말이 또다시 빗발쳤다. 그런데 그들은 얼마나 긴장하고 불쾌하랴. 청문회 '청문'은 '들을 청(聽), 들을 문(聞)'자다. 듣는 게 청문회다. 그러나 정반대다. 장황한 질문 끝에 '예, 아니오'로만 답하라며 핀잔과 호통부터 치는 변태가 연출된다. 정권마다 떼돈은 뜯길 대로 뜯기고 정경유착 비난에다 세무조사 공포까지…. 경제발전 기여, 복지 장학사업, 의연금, 불우이웃돕기 등 할만큼 하건만 어제 전경련 앞에선 '해체하라! 총수들 구속하라!' 등 시위까지 벌어졌다.오늘 청문회의 대기업 회장들은 측근 참모들과 가족의 신신당부깨나 받았을 게다. 모욕감이 굴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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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탄핵 감 지면기사
우리 한자 사전엔 '탄핵(彈劾)'이 '탄알 탄, 캐물을 핵'자지만 중국의 '彈劾(탄허)' 뜻은 더 강하다. 彈은 '탄알 탄'자이면서 '쏠 탄'자고 劾은 캐묻는 정도가 아니라 깨무는 거다. 총을 쏘고 깨물어 뜯는 게 '탄핵'이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도 탄핵 감으로 예측한 사람이 있다. 1984년 이래 미국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아메리칸 대 정치사학자 앨런 리트먼(Lichtman)이다. 그는 이번 미국 대선이 끝난 후인 지난달 15일 CNN에 출연, '트럼프는 법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멋대로 재단하는, 한 마디로 위험인물'이라고 했다. 그런 트럼프를 몹시 싫어해 탄핵을 맞든 말든 미국을 떠나겠다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아프리카(나이지리아) 작가로는 최초로 1986년 노벨문학상을 탄 월레 소잉카(Soyinka)가 미국 뉴스 채널 eNCA에 출연,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모국으로 가겠다'고 선언한 건 지난 1일이었다. 1990년대부터 미국 명문대 교수이기도 했던 그가 미국 영주권 포기를 선언한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부친이 아프리카 케냐 출신인 오바마 대통령과는 너무도 달리 트럼프는 한 마디로 역겨운 인간이라는 거다. 그래서 리트먼의 예측처럼 트럼프가 탄핵을 맞기 전 미국을 뜨겠다는 거다. 82세 노구를 이끌고…. 탄핵 감 선진국 대통령은 또 있다. 프랑스의 올랑드도 지난달 초 의회에 탄핵안이 발의됐다. 지난 10월 출간한 대담집 '대통령이 이걸 말하면 안 되는데…'에서 국가 기밀을 누설하고 안보를 위태롭게 했다는 이유다. 그래서 지지율은 4%로 추락했고 임기 6개월을 남기고 다음 대선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고 싶다며 초청, 2015년 4월 정상회담을 했던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지난 8월 탄핵, 퇴진했고 후임인 76세 테메르(Temer) 대통령도 취임 3개월 만에 탄핵 위기에 몰렸다. 반부패 법 완화 기도가 이유다. 이웃 베네수엘라도 마두로 대통령 탄핵 시위가 요란해 지난 10월 26일엔 120만이 참여했다는 거다. 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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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멋진 退場 지면기사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 드골과 미테랑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이상'과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 했다는 점이다. 상대방을 현혹하는 커브나 너클볼 등 변화구를 던지지 않고 가장 정통적인 투구법인 직구로만 승부했다. 드골이 '프랑스의 영광'이라는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위대한 프랑스가 아니면 진짜 프랑스가 아니다'라는 직구를 던졌다면, 미테랑은 '프랑스 사회를 좀 더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자'는 스트라이크 존에 '보다 높은 삶의 질'이라는 직구를 던졌다. 특히 드골은 나토(NATO)를 탈퇴하고 마오쩌둥의 중국 승인에 언론이 비판하자, 이를 피하지 않고 "프랑스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나는 어느 편이 아니라 바로 프랑스다"고 당당하게 말했다.둘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번도 개인적인 축재나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 미테랑은 늘 '적재적소에 배치할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내 업무의 절반'이라며 인재 등용에 힘썼다. 그렇다고 이들의 정치적인 삶이 늘 장밋빛이었던 것은 아니다. 드골은 국민투표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하기도 했고, 미테랑은 혼외자녀 스캔들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 누구도 이들을 부도덕했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았고 오히려 깊은 애정을 보냈다.셋째는 죽음을 맞으면서 보여줬던 놀라운 '절제력'이다. 드골은 고향 '코롱베'의 숲 속에 누워있는 딸의 무덤 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묘비명도 미리 만들어 두었다. '드골(1890~1970) 여기 잠들다'. 미테랑도 국민장이나 사회장 등 거창한 장례를 거부하고 가족장으로 치렀다. 이들은 국민과 국가에 봉사하고 '빈손'의 시민으로 생을 마감하는 '임기 후 대통령의 삶'을 실천하고 싶어 했다.7년 임기를 두 번이나 채운 최장수 대통령 미테랑이 엘리제 궁을 떠날 때 소속당인 사회당이 나들이할 때 쓰라고 소형 르노자동차를 선물로 주었다. 그는 이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몇 차례 신호에 걸렸지만, 불평 한 마디 없었다. 너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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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꼼수 대통령' 지면기사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에서 자신의 퇴진을 국회 합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하자 야당에선 '탄핵 회피 꼼수'라고 했고 '교란 작전'이라고 했다. '꼼수'란 주로 바둑 용어로 '쩨쩨한 수단이나 방법'이고 '교란(攪亂)'은 '뒤흔들어 어지럽게 함'이다. 攪가 '어지러울 교'자다. '교란'보다 더 센 말도 우리말엔 없지만 중국어엔 있다. '교혹(攪惑:쟈오후어)'과 '교해(攪害:쟈오하이)'다. 냅다 헝클어 놓아 갈피를 못 잡게 하고 훼방을 놓는 게 '교혹'이고 어지럽혀 해친다는 뜻이 '교해'다. 야당이 예거(例擧)하고 싶은 말은 '교란'보다 이런 말들이 아닐까. 그런데 박대통령은 왜 '꼼수'니 '교란 작전' 따위 말을 들어야 하고 그게 본심이 아니라면 왜 그런 오해를 사야 하는가. '여야 국회 합의는 쉽지 않을 게다. 그래, 탄핵으로 갈 테면 가 보라'는 시간 벌기가 본심일까. 그렇다면 꼼수는 꼼수다. 촛불 민심도 납득을 못해 6차, 7차 가잔다. 왜 4월이고 언제고 퇴진 시기를 확 긋지 못하는가.외신들은 박대통령 3차 담화를 그대로 옮겼다. 뉴욕타임스는 '그녀는 사직하겠단다(She's willing to resign)'고 했고 중국 인민일보도 '대통령 임기단축을 포함해 국회결정에 맡긴다(包括短縮總統任期 交由國會決定)고 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도 '박대통령 사실상 퇴진 표명'이라고 했지만 토를 달았다. 국민의 '분노를 거두지 못한다(이카리오사마라즈)'는 거다. 대통령은 왜 국민 분노를 헤아리지 못하는가. 국회가 아니라 '국해(國害)'라고 하지만 '국해'답게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도 국회다. 대통령이 '모든 걸 내려놨다. 국회 결정대로 따르겠다'고 했으면 여야 합의 일정을 서둘러 '대통령은 당장 또는 언제까지 그만두시오' 하면 될 거 아닌가. 탄핵이란 그 과정도 지루하고 결코 헌재 최종 판결까지 낙관할 수만도 없지 않은가.박근혜는 '전혀 사심은 없었다. 모든 걸 내려놓았다'고 하면서 아직도 더 내려놓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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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통령 사퇴 표명 지면기사
만시지탄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사퇴 의사를 밝혔다. ①국민을 위한 옳은 길을 수없이 고민해왔다. ②국회의 결정과 일정을 따르겠다. ③불찰로 심려 끼쳐 죄송하다. ④한 순간도 사심으로 사익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⑤주변 정리를 못해 죄송하다는 게 사퇴 담화 요지였다. 박대통령의 자의 중퇴는 우리 헌정사상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4·19로 인한 하야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런데 '한 순간도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도대체 정경유착이 뭔지, 어느 선을 넘는 게 직권남용이고 아닌지를 분간하지 못했다는 거 아닌가. 그 동안 국민은 몹시 답답했고 화가 치밀었다. 모르쇠 최순실과 막무가내 박근혜가 누가 더 고집이 센지 겨루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의 격은 땅바닥도 아닌 하수도 수준으로 떨어졌고 반대로 대한민국 국민의 격(格)은 하늘처럼 높아졌다. 그걸 전 세계 언론이 판정했다. 다섯 차례 대규모 촛불집회에 이어 국가 원로들도 내년 4월까지 자진사퇴하라고 권유했다. 그래도 반응이 없나 싶었다. 원로가 누구인가. 고대 로마의 입법자문기관인 원로원 종신(終身) 원로의 권위와 위세는 대단했다. 프랑스 총재정부(總裁政府), 이른바 테르미도르(Thermidor) 반동(反動) 이후 나폴레옹 쿠데타까지 존재(1795~99)한 프랑스 정부 상원의원과 나폴레옹 시대 원로 상원의원 권위도 드높았다. 특히 로마 원로원 중에서도 첫 번째 발언권의 '프린켑스(Princeps)' 권한과 위세는 하늘을 찔렀고 '아레오파고스(Areopagos)'라고 해서 고대 아테네에도 그런 원로원은 존재했다. 동양에서도 천자의 옹립권한을 갖는 국가 원로가 존재했고 그들을 '정책국로(定策國老)'라 불렀다. 그들의 권위 또한 대단했던 건 '정조시(停朝市)'라는 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원로대신이 죽으면 모든 아문(衙門)이 업무를 멈췄고 저자(시장)도 문을 닫았다.박근혜의 반응이 없길래 원로들을 쭈그렁밤송이 노추(老醜)로만 여기나 싶었다. 친박 중진들도 명예로운 하야를 주청(奏請)했고 드디어 사퇴 의사를 밝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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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NYT와 트럼프 지면기사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유세 중 언론과 앙숙이었다. 언론을 늑대와 뱀에 비유했고 유독 뉴욕타임스와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1972년 워터게이트로 쫓겨난 닉슨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를 미워했던 것보다도 더했다. 그는 트위터 글에서 '내가 당선되면 NYT는 몇 천부 떨어질 것'이라고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선거 종료 1주일 만에 4만1천부나 증가했다'는 게 17일 NYT CEO 마크 톰프슨의 발표였다. 그런데 그 트럼프 마음이 하해처럼 넓어진 건가. NYT 간부와 취재단을 그의 트럼프타워 궁전으로 부르지 않고 22일 스스로 NYT 본사를 방문한 거다. 그리고는 'NYT는 미국의 보배, 세계의 보배다. 대단히 존경한다'고 극찬했다. 늑대와 뱀 같은 존재가 세계적인 보물로 둔갑한 거다.제대로 된 나라의 정치권력은 언론과 늘 껄끄러운 관계다. 4선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언론을 눈의 티끌로 여겼다. 그러나 남몰래 눈물을 닦아냈지 티끌을 나무라진 않았다. 토머스 제퍼슨도 언론을 '무책임한 포화(砲火)'라고 했고 트루먼도 저명한 칼럼니스트 드류 피어슨(Pearson)을 '×새끼'라고 했다. 그러자 백악관 기자들은 그 SOB(×새끼)를 'son of the basement'라고 했다. '백악관 지하층 프레스센터 사나이'라는 거다. 하지만 정작 화를 내야 할 쪽은 여기자들이었다. bitch는 암캐 아닌가. 영국의 '선'지도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는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지렁이'라고 했고 BBC는 그의 바람기를 일러 '3분짜리 사내'라고 했어도 들은 체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카소네(中曾根) 일본 총리가 증세(增稅)에 관해 두 말을 한다며 그의 혀를 가위로 잘라내는 희화(戱畵)를 실어도 그만이었다. 1986년 6월이었다.문재인이 25일 '제왕적 대통령을 만든 건 주류언론이 감싸고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뒤늦게나마 열어젖힌 건 언론이었다. 사회병리학자들이 일컫는 '반륜(半輪)사회'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굴러가야 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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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피델 카스트로 지면기사
김일성 동생이 숨졌다. 친동생 김영주가 아니고 의형제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 90세로 별세했다. 그는 1986년 김일성 초청으로 방북, 친선협력조약을 맺었고 1990년대 초까지도 매년 김일성을 비롯해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과 당 총서기 장쩌민(江澤民), 러시아의 옐친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도 연하장을 보냈다. 사회주의 혁명가의 우의를 과시한 거다. 그런 카스트로 별세를 러시아 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야와 중국 인민일보는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늘 군복과 군모 차림의 털보였던 그가 스페인의 식민지 쿠바를 독립시켜준 미국을 배반, 체 게바라(Guevara)와 함께 사회주의혁명을 일으킨 건 1959년이었다. 그로부터 소련과 제휴, 미사일 기지를 구축하는 등 미국과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수십만의 쿠바인이 플로리다 해협을 건너 미국으로 탈출했다. 그런 적대국 쿠바와 미국이 국교를 재개,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건 작년 4월이었다.그를 저승에서 가장 반길 사람은 혁명동지 체 게바라보다는 연인이자 혁명동지로 작년 2월 먼저 간 나탈리아 레부엘타(Revuelta)일 게다. 카스트로 별세가 가장 슬플 사람은 또 누구일까. 국가원수 권좌를 물려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 말고 또 있다. 쿠바 스파이로 30년간 미국무성 비밀정보를 카스트로에게 보고하며 충성, 훈장까지 받았던 전 국무성 직원 월터 마이어스(79)일 게다. 그가 2009년 미 FBI에 체포, 워싱턴 연방법원에서 종신형을 받은 건 그 이듬해 7월이었다. 그런데 그가 바로 전화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의 증손이라는 거 아닌가. 마지막 사회주의 혁명가인 피델 카스트로의 전기는 11개국에서 출판됐고 '時代遊擊隊員(시대유격대원)'이라는 제목으로 중국 인민일보 출판사에서 출판된 건 작년 11월이었다. 카스트로 죽음에 북한은 꽤나 요란했을 게다. '력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이신 김일성의 의형제인데다가 김정은의 작은할아버지 격인 사회주의 영웅이 서거하셨으니…. 조기까지 내걸었을지도 모른다. 남쪽은 어떨까. 남몰래 카스트로를 숭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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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록키 40년 지면기사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가 있다. 특히 요즘같이 사회분위기가 한없이 절망적일 때, 보면 볼수록 늘 새롭고 힘까지 나게 하는 영화, '록키'가 그런 영화다. "만약 내가 끝까지 가서…종이 울릴 때까지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난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또 다른 쓰레기 같은 이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 세계 타이틀전을 앞두고 여자친구에게 두려움을 털어놓는 록키의 말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필라델피아 시청에서 북서쪽으로 뚫린 벤저민 프랭크린 파크웨이 끝에는, 파르테논 신전같은 거대한 건축물 하나가 그림처럼 붙어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이다. 미국 3대 미술관에 들어갈 정도로 풍부한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다. 영화에서 록키가 새벽의 옅은 안개를 뚫고 로드워크를 하던, 시장과 항구를 가로질러 72개 계단을 뛰어 올라 동트는 필라델피아 시내를 쳐다보며 두팔을 올리던 그 장면을 찍은 곳이 바로 미술관 앞이다.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새벽에 찍은 것은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촬영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명감독에 무명배우가 출연하는 저예산 영화에 미술관측은 선뜻 허가를 내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사람이 없는 새벽에 가서 몰래 도둑촬영을 했다. 그게 역사가 됐다.고작 100만달러를 투자한 저예산 영화가 작품상·감독상·편집상 등 3개의 오스카를 수상하고, 2억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등 크게 흥행한 후, 실베스터 스탤론은 록키의 동상을 만들어 필라델피아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러나 박물관측은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동상 증정식을 미술관 뒤편에서 치렀다. 하지만 이제 미술관이 자랑하는 폴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보다 록키 동상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러자 미술관 측은 계단을 '록키계단'으로 명명했다.지난 11월 22일은 록키가 개봉한지 꼭 40년이 된 날이다. 당연히 미국내에선 '록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한 편의 영화가 70년대 좌절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쏘았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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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첫눈 한파 지면기사
어제 첫눈 한파주의보가 내려졌지만 백두산엔 지난달 4일 첫눈이 내렸다. 2004년에도 10월 1일에 내렸지만 늦은 셈이다. 백두산 첫눈은 보통 9월 하순이다. 그 백두산(2천744m)보다도 1천32m나 더 높은 일본 후지(富士)산 첫눈은 8월 하순이면 내리고 그 후지산 첫눈을 '하쓰칸세쓰(初冠雪)'라고 부른다. '하얀 모자를 쓴 듯한 눈'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눈의 나라다. 노벨문학상 작가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도 그래서 설국이고 '홋카이도(北海道)의 지붕'이라 불리는 다이세쓰(大雪)산에 이름 그대로 큰 눈이 덮이면 일본은 설국다운 면모를 갖춘다. 8월의 첫눈이 이듬해 5월까지 내리니까 6~7월 두 달 빼고 눈 없는 달이 없다. 1996년 5월엔 홋카이도에, 2005년 5월엔 아사히카와(旭川)시에 내렸다. 하지만 일본도 일본 땅 나름이다. 지난 1월 남쪽 카고시마(鹿兒島)현 아마미(奄美)엔 무려 115년 만에 눈이 내렸다. 중국에선 또 산꼭대기에 덮인 첫눈을 '두장설(頭場雪:터우창쉬에)'이라고 하지만 중국의 첫눈도 한반도 남녘보다는 이르다. 2012년 9월엔 북서쪽 신장(新疆)성에, 2004년엔 국경절인 10월 1일 베이징에 내려 기쁨이 더했다. 하지만 중국 역시 중국 나름이다. 지난 1월 남쪽 광저우(廣州)의 눈은 49년 만이었다. 그런데 에베레스트 고봉, 알프스, 적도 밑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최고봉 키보(Kibo) 등의 만년설이야 늘 거기 있으려니 싶어 별로 신비롭지도 새롭지도 않다. 그러나 우리 땅의 첫눈은 세세연년 새롭고 반갑다. 청천(聽川) 김진섭(金晋燮)은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것 같다'고 했다. 설악산 대청봉의 새빨간 단풍 위로 앉을 듯 말 듯 날리는 눈발은 또 어떤가. 그게 바로 눈꽃(雪花)이며 '하늘 꽃(天花)'이고 미인의 새하얀 피부도 설부(雪膚), 설기(雪肌)다.22일 설악산에 내린 2㎝ 눈을 난생 처음 본 싱가포르 관광객 어린이는 '이게 뭐냐'며 신기하게 여겼다고 했다. 굴욕을 씻는 것도 눈(雪辱)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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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트럼프, 그 후 지면기사
지난 8월 22일자 '타임'지 표지 제목 'Meltdown(溶解)'이 쇼킹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이 윤곽만 희미한 채 머리끝부터 철철 녹아내리는 그림이었다. 대선 유세 막바지인 10월 24일자 타임지 표지 제목도 'Total Meltdown(완전용해)'이었고 그의 얼굴이 무참히 녹아내려 형체를 잃은 채 바닥에 흥건한 모습이었다. 그걸 일본 언론은 '니가오에(似顔繪)'라고 했다. 배우나 미인의 얼굴을 개성적으로 표출한 풍속화다. 그런데 그 이틀 후인 10월 26일 LA 관광명소 워크 오브 페임(Walk of Fame)에서도 사건은 벌어졌다. 할리우드 배우 등 유명인 이름이 새겨진 그곳 길바닥엔 트럼프 이름도 별 모양의 주황 금속판(plate)에 새겨져 있었지만 누군가 곡괭이로 형편없이 파괴해 버린 거다.1990년대 트럼프가 뉴욕 허드슨 강변에 세운 고급 아파트가 Trump Place였다. 그런데 지난 대선 중 주민서명운동이 벌어져 아파트 이름이 '리버사이드 길 140 160 180'으로 각각 변경됐다. 당선 후는 어땠는가.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고 '트럼프가 온다!'고 한 학생이 비명을 지르면 학생들이 일제히 달아나는 게임이 전 미주 학교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트럼프를 호되게 비난했던 뉴욕타임스는 보복이 아닌 은전(恩典)을 입었다. '숱한 독자가 탈락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트위터에 올린 예상과는 달리 '선거 종료 1주일 만에 4만1천부나 늘었다'는 게 지난 17일 발표였다. 아메리칸 대 정치사학자 앨런 리트먼(Lichtman)은 또 트럼프의 탄핵 가능성까지 예측했고 당선 후에도 공화당 주류파와 트럼프 측근(비 주류파) 간의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다.하지만 트럼프는 퍼뜩 균형감각을 회복, 눈에 띄게 변했다. 당선 후 첫 정상회담(17일)을 한 아베 일본 총리는 '선거 기간 중의 트럼프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고 판결했다. 사법장관 제프 세숀스(Sessions),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Flynn), CIA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