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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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젊은 '배다리' 지면기사
구한말 개항 도시 인천은 근현대 문화유산의 보고다. 조선이 쇄국을 포기하고 인천항을 열강에 개방하자 근대 문물이 쏟아져 들어온 덕분에 대한민국 최초 유산이 즐비하다. 대불호텔, 애관극장, 팔미도 등대는 제 분야에서 대한민국 1호 건축물이다. 최초의 야구경기가 열린 구도(球都)이자 대한민국 첫 철도노선(경인선)의 한 축이었다. 부두 노동자로 유입된 중국인들은 짜장면의 역사를 열었고, 선교사들이 지은 '내리교회'는 한국의 어머니교회로 불린다. 건축, 스포츠, 음식, 종교를 망라한 근대 문화의 성지가 바로 인천이다.하지만 제물포를 중심으로 번성한 개항 문화의 피해자들도 있었다. 일본과 청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은 개항장 일대에 조계를 설정해 그들만의 성역을 만들고, 조선인들을 쫓아냈다. 외국인들이 조계지의 제물포구락부에서 희희낙락할 때, 쫓겨난 조선인들은 후미진 곳에서 다시 마을을 만들어야 했다. '배다리'도 그 중 하나이다. 밀물 때 수로를 통해 작은 배들이 드나든데서 유래한 명칭이라는데, 현재 인천 동구 금창동과 송현동 일대가 그곳이다.개항 역사 한켠에서 시작된 배다리 마을은 인천 원도심의 역사를 관통해왔다. 일제시대에는 국내 최초의 성냥공장 조선인촌주식회사에서 식민지 소녀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한국전쟁 때는 월남한 실향민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산업화 시대에 유입된 노동자들로 만원이 됐다. 야트막한 수도국산에 거대한 달동네가 들어섰다. 실향민과 노동자들은 자녀 교육에 악착같았고, 가난한 아이들은 헌책방에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구했다. 배다리에 헌책방 골목이 번성한 까닭이다. 궁핍했지만 희망의 서정과 서사가 있던 '배다리'였다.시간이 흘러 나라 전체에 궁기(窮氣)가 걷히면서 배다리의 서정과 서사도 희미해졌다.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과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옛 기억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다섯개 헌책방이 겨우 명맥을 잇고 있으니 헌책방골목의 추억도 듬성듬성하다.인천시 동구청이 배다리를 살리기 위해 금창동 일대를 배다리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하고, 2020년부터 올 3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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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경찰대 폐지 논란 지면기사
경찰대는 1981년 개교한 4년제 특수대학이다. 군에 육군사관학교가 있다면 경찰엔 경찰대가 있다. 학부생들은 졸업 후 전원 경위로 임용된다. 동네 파출소장에 해당하는 초급간부 직급이다. 개교 30년이 넘으면서 총경 이상 고위직을 과점하는 성골(聖骨)이 됐다.현 경찰청장 후보자와 전임자도 경찰대 출신이다. 총경 이상 계급 754명 가운데 469명으로 62.2%에 달한다. 순경 출신은 88명으로 11.7%에 불과하다. 경찰대 출신은 전체 경찰의 2.5%에 그친다. 정·관계, 법조계에도 선배들이 많다. 현역 국회의원이 4명이고, 재선한 지방자치단체장도 있다.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도 두각을 나타내는데, 숫자는 적으나 합격률은 높다고 한다. 국내 메이저 로펌 소속 변호사들 출신 대학 순위도 상위권(6위)이다.경찰대 폐지 논쟁은 해묵은 과제다. 1990년대 총경 인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다. 간부후보생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자 동문 간 갈등으로 번졌다. 두 집단에 열세인 순경 출신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한다. 조직 내에 파벌을 형성하고 선민의식과 배타적 태도로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그치지 않는다. 외부에선 졸업만 하면 초급 간부로 임용되는 게 공정하냐는 의문을 제기한다.행안부 경찰국 신설 논란이 경찰대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경찰의 조직적인 저항이 경찰대 출신 간부들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특히 지난주 열린 총경 회의 참석자 상당수가 경찰대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두고 쿠데타가 연상된다고 한 행안부 장관은 '경찰대를 졸업하신 분은 경위부터 출발한다'며 불공정을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경찰대 기득권을 깨는 개혁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경찰대 개혁 논의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활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경찰대 학부 폐지 법안을 발의했고, 경찰대 출신 표창원 의원은 졸업생 순경 임용 법안을 발의했다. 이미 정원은 120명에서 50명으로 줄었다.경찰대는 3천명 넘는 경찰 인력을 배출했다. 수준과 자질을 높여 경찰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검경수사권 분리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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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윤이나 파문 지면기사
대중화됐다지만 골프는 여전히 서민과는 거리가 먼 스포츠다. 장비와 골프장 이용료도 비싸거니와 입문 단계는 물론 실력을 유지하려면 만만치 않은 비용을 꾸준히 치러야 한다. 그래도 골프 인구는 지난해 기준 564만 명으로 급증했단다. 스크린 골프장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골프장들도 평일에도 부킹 전쟁을 벌일 정도로 호황을 누린다.대중화의 후유증인가. 아마추어들의 골프 현장은 요절복통이다. 1번 홀 타수를 모두 파로 기록하는 일파만파는 캐디 룰로 정착된지 오래다. 벌타 없이 멀리건이 남발되고, 경기 지연의 원흉(?)인 초보 골퍼들은 러프나 벙커에 빠진 공을 페어웨이로 옮겨 치는 특권(?)을 누린다. 친목과 스트레스 해소가 목적인 아마추어 골프 문화인 셈이다. 진지하게 룰을 따지며 공을 치는 팀이라면 내기 골프가 틀림 없다.프로 골프에선 어림 없는 일이다. 신사의 스포츠라는 자긍심도 있지만 한타 한타가 돈이니 룰을 철저하게 따지고 지킨다. 2017년 미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 대회는 최악의 벌타 사건을 기록했다. 미국의 렉시 톰슨은 3라운드 17번 홀에서 볼 마커 보다 몇 ㎝ 떨어진 곳에 공을 놓았다. 모두가 모르고 지나간 일을 시청자가 제보했다. 경기위원회는 다음날 4라운드 경기 중인 톰슨에게 오소 플레이와 스코어카드 오기로 4벌타를 부과했다. 톰슨은 단독 1위에서 5위로 떨어졌고, 결국 연장전에서 유소연에게 우승을 헌납했다.최근 한국여자프로골프의 신성으로 등장한 윤이나가 지난 6월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 1라운드 15번홀 러프에서 남의 공을 친 사실을 뒤늦게 자진 신고했다. 당시 경기위원에게 이실직고했으면 2벌타를 받아야했지만, 알고도 모른 체 경기를 진행했다는 것이다.미담이 될 뻔한 자진 신고가 추문으로 번지고 있다. 코치와 부모가 당시 오구 플레이 은폐에 동조했고, 캐디의 경고를 무시한 사실 등이 공공연하게 퍼지자 자진 신고로 무마하려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윤이나는 오구 플레이를 숨긴 채 투어를 계속했고 지난 17일 '에버콜라겐 퀸즈 크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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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전달수 대표 구하기' 지면기사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FC 별명은 '생존왕'이다. 고액 연봉자가 적고, 선수층이 얇아 중·하위권을 맴도나 2003년 창단 이후 한 번도 2부리그로 강등된 적이 없다. 전반기엔 바닥권에 머물다 8월께부터 힘을 낸다. 팬들이 올핸 틀렸다고 체념할 즈음 차곡차곡 승점을 쌓은 뒤 마지막 경기에서 리그 잔류를 결정짓는 극장드라마를 연출한다. 2019년 10위로, 2020년 11위로, 지난해 8위로 턱걸이했다. 시·도가 운영하는 구단 중 유일하게 2부리그 경험이 없다.'파랑검정'은 인천 유나이티드 FC를 응원하는 서포터스 그룹이다. 구단 유니폼 배색인 푸른색과 검은색에서 유래했다. 인천 팬들 성향이 꽤 흥미롭다. 리그 초반엔 홈경기장이 썰렁하기까지 하다. 성적이 좋아도 관중이 늘지 않는다. 선수들도 야속하다 푸념할 정도다. 그런데 순위가 밀려 강등권이 되면 더 많은 팬이 구장을 찾는다. 원정 경기에도 몰려가 상대 팀 팬들을 기죽게 한다. 가을이 되면 좀비처럼 살아나는 유나이티드의 무서운 뒷심엔 열정으로 무장한 찐팬들이 있는 것이다.팬들이 인천 유나이티드 전달수 대표 구하기에 나섰다. 지난주 인천시청 앞에서 전 대표의 유임을 촉구했다. 트럭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에선 유임을 청하는 팬들의 애원에 전 대표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재생됐다. 전 대표는 2020년 여름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하려다 선수단과 팬들 만류로 뜻을 접었다. 이달 중순 새 구단주인 유정복 시장에게 사의를 전했다고 한다.전 대표는 2018년 박남춘 전 시장 권유로 구단과 인연을 맺었다. 개인 사업자로, 축구단 운영 경험은 없으나 특유의 친화력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조직으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다. 성적보다는 팬들과의 유대가 먼저이다 보니 일체감이 각별하다고 한다. 고(故) 유상철 전 감독이 지병으로 사망하자 팬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보태기도 했다.전 대표 사의엔 구단주 교체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나 본인은 부인한다. 외부 압력은 없었고, 구단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결정했다는 거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상위권(5위)에 올라 미끄러질 걱정은 안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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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앙관천문부찰지리도' 지면기사
우주는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宇)는 공간을, 주(宙)는 시간을 뜻한다. 즉 무한한 시간과 공간이 바로 우주다. 우주망원경 제임스 웹으로 인해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전세계 천문학자들의 국제천문연맹(IAU) 총회가 내달 2일부터 열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미항공우주국(NASA) 과학자 클라우스 폰토피단(Klaus Pontoppidan)이 제임스 웹과 우주생성에 관해 강의한다.제임스 웹은 허블 망원경보다 관측성능이 100배 이상 높으며, 적외선 영역까지 관측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지구에서 7천600만 광년 떨어진 용골 성운 사진을 보내왔다. 용골 성운은 크기만 해도 300만 광년이라 하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참고로 빛이 일 년 동안 가는 거리인 1광년은 약 9조4천600억㎞이다. 인류의 눈이란 별칭을 가진 제임스 웹은 앞으로 외계행성과 외계생명체 및 우주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해 줄 것이다.제임스 웹은 나사(NASA)·유럽우주기구(ESA)·캐나다우주국이 공동 개발한 것으로 반사경만 6.5m로 2.4m의 허블 망원경을 압도한다. 지구와 태양의 인력이 균형을 이루는 지구 밖 150만㎞의 라그랑주점에서 지구와 비슷한 속도로 공전하면서 다양한 실험과 관측 임무를 수행한다.그런데 천문학은 고대 동아시아에도 있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대표적이다. 또 하도(河圖)·낙서(洛書)에 28수의 별자리와 황도 12궁이 그러하고, 이는 '주역'의 기초가 된다. 하도와 낙서는 별자리·시간·계절·방위·우주성상(星象) 등 동아시아인들의 우주관과 사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고천문도로 '앙관천문부찰지리도(仰觀天文俯察地理圖)'가 있는데, '앙관천문도'는 지구의 관점에서 우주의 별자리를 바라본 것이고, '부찰지리도'는 우주에서 지상을 내려다본 천문도다.예전에는 북두칠성과 28개의 별 즉 28수(宿)가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고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우주를 신령스런 공간으로 보던 과거의 시대와 우주를 물리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보는 지금 현재 중 어느 시대가 더 행복했을까. 시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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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영희, 우영우, 이승민 지면기사
종종 허구가 현실을 지배한다. 2016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인 문재인은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를 관람했다. 제작진과 무대에 오른 그는 "판도라 상자(원전)를 치워야 한다"며 원전 추가 건설 금지를 통한 탈핵, 탈원전 국가를 주장했다. 다음해 박근혜가 탄핵돼 물러난 대통령 자리에 오른 그는 무대 인사를 대국민 정책 선언으로 발표했다.최근 종방된 tvN의 '우리들의 블루스'와 방송 중인 ENA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발달장애가 뜨거운 의제로 떠올랐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영희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발달장애인이자 천부적인 화가이다. 영옥은 죄책감과 현실에서 고통받는 보호자다. 언니 영희를 감당할 수 없어 지하철에 버리기도 하고, 시설에 맡긴 채 외면한다. 영옥은 언니의 그림을 보고 무너지고, 드라마는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로 끝난다. 영희의 실제 캐릭터인 정은혜 작가가 열연해 화제가 됐다.영희가 화가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피보호자 캐릭터라면, 자폐 변호사 우영우는 범접 불가능한 천재성으로 법정을 지배한다. 우영우를 연기한 박은빈의 사실적 열연이 자폐인을 향한 세상의 편견을 해소했다는 호평이 자자하다. 광범위한 자폐 증상을 특정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뜻에서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점도 특별하다.드라마 히로인 영희와 우영우에 이어 최근엔 실제 발달장애인 히어로가 깜짝 등장했다. 국내 최초 발달장애인 프로골퍼 이승민이 제1회 장애인 US오픈에서 우승한 것이다. 허구와 현실에서 동시에 등장한 자폐 천재들의 인간 승리 스토리로 '발달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강렬하다.하지만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아주 특별한 우영우'를 지켜보기 힘들다고 한다. 우영우 보다는 형 살해범으로 몰릴 뻔한 '정훈'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재능으로 전업작가로 성공한 정은혜와 프로골퍼 이승민은 발달장애 가족에겐 너무 특별해 허구에 가까워, 희망인 동시에 고통이다.문재인은 수백만분의 1 밖에 안되는 원전사고를 상상한 영화적 허구를 탈원전 정책이란 현실로 만들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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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5분, 554만원' 지면기사
스웨덴 국민들은 별나다. 교직원이나 언론인보다 국회의원을 더 신뢰한다고 한다. 상당수 의원은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도보로 의회를 오가고 만원짜리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보좌관도 없이 법안을 만드느라 휴일은 물론 평일 야근을 밥 먹듯 한다. 물론 특근수당은 한 푼도 없다. 의원직이 3D 업종으로 인식되면서 선호도가 바닥권이다.회기는 연중 계속되고 의원들은 매일 출근한다. 건강악화 등 개인 사정으로 휴직하면 급여도 중지된다. 열차는 일등석을 탈 수 있으나 비행기는 이코노미석만 경비가 지원된다. 비즈니스석은 합당한 이유가 소명되지 않으면 차액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매년 발표되는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스웨덴은 늘 최상위권이다. 그런데도 국민소득 6만달러 나라의 시민단체는 연봉 1억원이 많다며 특권을 덜어내라고 한다.휴업 중인 국회가 지난 20일 잠시 문을 열었다. 제1야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듣기 위해서다. 이날은 마침 의원들 월급날이다. 의원들 통장에 1천285만원(세전)이 꽂혔다. 하루 일하고 세비는 꼬박 챙긴 것이다. 의원들은 차량 주유비와 유지비 등으로 월 150만원 가량 추가지원을 받는다. 이것도 모자라 보좌진 인건비도 가로챈 의원이 있다.이달 초 임기를 시작한 11대 경기도의회 의원 156명도 첫 월급을 받았다. 1인당 554만원 꼴로 지급총액은 8억6천만원을 넘는다. 경기도의회는 전국 17개 광역의회 의원 중 의정비가 가장 많다. 세비 외에도 56만5천원씩 하반기 복지 포인트를 챙겼다.도의회는 여지껏 의장단 선출에 실패한 전국 유일의 광역의회다. 지난 12일 1차 본회의를 열었으나 5분 만에 산회했다. 의장 감투를 둘러싼 민주당과 국민의힘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2차 본회의 일정도 잡지 못했다. 5분 일하고 554만원을 받았으니 분당 110만원 꼴이다. 노동계와 사용자 측은 얼마 전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을 두고 밤새 싸웠다.국회가 공전하는데 의원들은 나라 밖 행차다. 미국 출장에 비행기 값만 천만원이 넘는다. 이렇게 몰염치할 수 없다. 국회가 이 모양이니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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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지면기사
"비행기를 이용하야 인심을 격발케 하고 장래 국내의 대폭발을 촉기(促起)하려 함이라." 도산 안창호가 1920년 2월 17일 일기에 남긴 글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1운동에 버금가는 거족적 항일 투쟁을 이어가려 했다. 도산은 비행기를 선전·연락·침투와 같은 대일 비정규전의 요긴한 수단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비행기 구매는 결국 실패했다.대한민국 공군은 1949년 창설됐다. 육군본부 항공국에서 공군본부로 독립했지만 보유 전력은 비무장 L형 연습기 20대가 고작이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조종사 한 명은 조종간을 잡고 한 명은 폭탄을 손에 들고 북한군 탱크를 겨냥해 팔매질했다. 소련이 제공한 북한 야크 전투기를 만나면 꼼짝 없이 격추될 운명이었다.그나마 미국이 공여한 프로펠러 전투기 P-51 머스탱으로 공군 꼴을 갖췄고, 전후엔 '쌕쌕이'라 불린 제트 전투기 F-86 세이버로 전술 공군으로 변신했다. 1969년엔 월남전 참전 대가로 최신예 초음속 전투기인 F-4 팬텀의 네번째 보유국이 되면서 북한 공군 전력을 앞서기 시작했다. 당시 팬텀에 대한 국민 신뢰는 대단해 추가 구매를 위한 방위성금 모금에 나설 정도였다.미국에 전적으로 의지하던 대한민국 공군이 전투기 독립시대를 열었다. 19일 4.5세대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시제기가 시험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국산 최신예 전투기 개발을 선언한 지 21년 만이다. 스텔스 기능을 갖춘 KF-21은 현존하는 최고 전투기 F-22 랩터에 비유해 '베이비 랩터'라는 별명이 붙었다.공군은 2032년까지 120대를 실전에 배치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수입기 F-35와 함께 공군 주력기종 전체가 스텔스 기능을 보유한 막강한 전력이 된다. 국산 전투기 생산으로 우리 지형과 전략에 맞는 전술 미사일을 마음대로 탑재할 수 있어 국방력 전체가 업그레이드되는 효과가 있다니 든든하다.KF-21 개발 21년 동안 진보와 보수 진영 대통령이 6명이었다. 사업 타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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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아서 번즈와 폴 볼커 지면기사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안타까워하면서, 한참을 서서/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멀리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한 대목이다. 그의 시처럼 우리는 늘 무엇인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때때로 선택하지 못했던 혹은 않았던 것에 대해 후회도 하고 미련을 갖기도 한다. 그래도 늘 선택과 결단을 할 수밖에 없다.환율·물가·외환보유고·무역수지 등 곳곳에서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는 지금 우리 한국경제도 무엇인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모종의 선택과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여기, 아서 번즈(Arthur Burns)의 길과 폴 볼커(Paul Volcker)의 길이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었던 아서 번즈(1970~1978년 재임)는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돕기 위해 금리 인상을 회피하고 양적 완화 같은 통화정책을 선택했다. 때맞춰 금 태환 정지 조치를 취한 닉슨의 노선과 겹치면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돈을 푸는 것은 대중들의 환영을 받는 달콤한 정책이나 후유증이 크다.미국에 닥쳐온 인플레이션을 잡은 이는 후임자인 폴 볼커(1979~1987년 재임)다. 그는 재임 중 무려 최대 20%를 상회하는 초고금리 정책을 썼다. 도처에서 난리가 나고 협박도 받았다. 강력한 정책이 남긴 후유증은 컸으나 그 후 미국은 40년간 인플레이션의 공포에서 벗어나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아 훌륭하고 좋은 정책은 선인이 아니라 비정상적이고 못 돼먹은 악인들에 의해 달성되는 경우가 많다.경제통계를 보니 연소득 70%를 빚을 갚는데 쓰는 사람이 140만명이라고 한다. 대출금리를 7%대로 올리면 190만명이 최저생계비만 쓰며 생활해도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이냐, 금융위기냐. 이제 우리에게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선은 무엇인가. 경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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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무인점포의 수난 지면기사
아마존 고(Amazon Go)는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2018년 시애틀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무인 슈퍼마켓이다. 주로 식료품을 판매하는데, 계산대와 계산원이 없다. 소비자는 원하는 물건을 들고 매장을 나오면 된다.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 매장이라 이름한 이유다.아마존 회원은 누구나 스마트폰에 앱을 저장하고 QR코드를 열어 매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구매상품을 들면 천장에 달린 카메라와 블랙박스 센서들이 자동 감지하고 앱에 연결된 신용카드로 비용을 청구한다. 물건을 다시 진열대에 놓으면 계산 목록에서 제외되고 반품이나 환불도 가능하다. 이 매장엔 인공지능(AI), 머신러닝, 컴퓨터 비전(이미지를 인식하는 기술) 등 첨단기술이 활용됐다. 현대 문명의 총합체인 셈이다.최저임금 인상과 구인난, 코로나 19 여파로 언택트 문화가 확산하면서 국내에도 무인판매시스템이 급증하고 있다. 키오스크와 포스단말기 셀프 결제를 이용한 무인점포, 샵인샵(Shop in Shop) 개념의 무인판매기가 대표적이다. 눈에 띄는 게 무인 편의점이고 아이스크림, 과자류, 육류, 밀키트 등 무인점포 품목도 확장하고 있다. 정부는 '스마트 슈퍼 육성사업'을 통해 소상공인들에 무인 판매시스템 도입을 권한다.지난달 초 김포의 인형 뽑기방에서 엽기적 사건이 발생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매장으로 들어와 대변을 보고 사라진 것이다. 이 여성이 볼일을 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동영상에 담겼다. 50만원을 들여 청소했다는 업주는 한동안 영업하지 못했다며 해당 여성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무인점포 절도범죄가 기승이다. 계산하지 않거나 수량을 속이는 게 대부분이다. 무단 점유한 노숙자들은 자리를 펴고 누워 손님들 발길을 돌리게 한다. 10대 학생들이 무인점포에 몰려와 자기 집처럼 뒹굴면서 과자를 먹는 영상이 공개됐다.첨단기술을 장착한 무인점포 곳곳이 수난이다. 경찰도 혀를 차는 뻔뻔함에 속수무책이다. 철면피 범죄와 막무가내식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