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 천덕꾸러기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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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천덕꾸러기 '쌀' 지면기사

    1970년대까지 한국은 만성적인 쌀 부족 국가였다. 정부는 단위 면적당 소출량이 많은 품종을 대량보급하는 시책을 밀어붙였다. 농촌진흥청이 개량한 통일벼는 다수확 품종이나, 냉해에 약하고 맛도 떨어져 농가에서 파종을 꺼렸다. 정부는 농촌 면서기들을 악역으로 세웠다. 식감은 좋으나 소출이 적은 품종을 심은 논은 죄다 뭉개고 통일벼를 심도록 독려했다. 당시 시골 공무원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현장 출장을 다녔고, 휴일도 반납했다. 한여름엔 조석으로 담당 부락(部落)에 들러 퇴비 증산을 다그쳐야 했다.80년대 들어 상황이 확 달라졌다. 품종 개량과 농기계 보급으로 생산량은 늘어났으나 소비량이 줄면서 쌀이 남아돌게 된 것이다. 식생활 습관이 변화하면서 밥의 존재감이 옅어졌다. 주식이 밥인지, 빵인지 헷갈리게 됐다. 80년대 중반엔 쌀 생산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 제기됐다. 산아제한이 출산장려로 바뀐 것과 맞먹는 대사건이다. 88년부터 벼 재배 면적이 매년 감소했으나 잉여 쌀은 증가 추세다. 2020년엔 기상이변으로 유례없는 흉작이었으나 쌀은 여전히 처치 곤란한 난제로 남았다.정부·여당이 올해 역대 최대 물량인 총 45만t의 쌀을 수매하기로 했다. 당정은 또 지난해 생산된 쌀도 사주기로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남는 쌀 매입을 위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엔 '쌀 공급 과잉을 심화하는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다. 농심(農心)은 붙잡되 야당과의 기싸움에선 밀리지 않겠다는 정략에서다.유례없는 인플레 폭주에도 쌀값은 올 들어 25%나 급락해 4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올해 8천여억원을 들여 쌀 37만t을 추가 매입했으나 지난해부터 이어온 쌀값 하락을 막지 못했다. 2000년 93.6㎏에 달하던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해 56.9㎏으로 반토막이 났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시장에서 쌀을 격리하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비관론이 커지는 이유다.유발 하라리는 명저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의 진정한 승자는 인간이 아닌 작물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식량 확보를 위해 곡물의 씨앗을 뿌리고

  • [참성단] 정치적 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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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정치적 환청 지면기사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 때 전국 유세장을 돌며 "군부 독재를 '학실히' 종식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복모음 발음이 힘겨운 경상도 출신답게 YS는 '확실히'를 '학실히'로 발음했다. 아무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정치인의 확신이 '학실히'를 통해 확실하게 대중에게 전달됐다. 1992년 대선 유세 때는 실제로 '관광도시'를 '강간도시' 비슷하게 발음하는 현장을 수차례 목격했지만, 기자들은 반주용 에피소드로 여겼다.특정 발음을 본인이 착각해 들은 대로 인식하는 일이 왕왕 있다. 몬더그린(Mondegreen) 현상이라 한다. 개그맨 박성호의 몬더그린 개그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르다. 팝송의 영어가사를 우리말로 바꾸었는데, 얼마나 절묘했는지 웃음 폭탄이 터졌다. 에릭 카멘의 노래 'All by My Self'는 '오빠 만세'로 지금도 회자되는 몬더그린 개그의 백미이다.몬더그린 현상은 기본적으로 착각이다. 본래의 말이 분명하게 있으니 착각이 재미 있으면 웃고 말 일이고, 심각하면 원전을 찾아 착각을 해소하면 그만이다. 대부분 큰 문제 없이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마련이다.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중 사담에 나라가 엎어졌다. 윤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재정회의에서 한국이 1억달러를 부담키로 발표한 것과 관련해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해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는 발언이 국내 지상파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탓이다. 유튜브 자막엔 ○○○을 '바이든은'으로 표기했다. 야당은 동맹국인 미국의 의회와 대통령을 욕해 동맹을 위협하고 국격을 떨어뜨린 외교참사라 일제히 공격했다. 대통령실은 뒤늦게 국회는 한국 국회이며, ○○○은 '날리면'이라고 해명했다.민주당은 '바이든'으로 듣고,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날리면'으로 듣는다. 참석자들은 '○○이'로 들었다는데 최강욱 의원은 '짤짤이'라 했고, 많은 민주당 사람들이 최 의원의 주장을 두둔했었다. 대통령이 무심결에 한 실수로 덮어 줄 아량이 있었다면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죽고 사

  • [참성단] '퇴비장(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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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퇴비장(葬)' 지면기사

    장사(葬事)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한다. 사람과 유사한 종으로 분류되는 침팬지, 오랑우탄 등 유인원(類人猿)도 동료의 죽음과 관련한 특별한 의식이 관찰되지 않는다. 지능이 높다고 하는 코끼리는 새끼나 무리 내 구성원이 죽으면 냄새를 맡고 한동안 떠나지 않는 등 애도의 시간을 보낸다. 까마귀와 제비 등 일부 조류도 이와 비슷한 습성인 것으로 보고됐다. 하지만 사체를 땅에 묻거나 나뭇잎 등으로 가리지는 않는다.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사체는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자양분이 된다. 살과 뼈는 동물의 먹이가 되고, 미물의 번식을 돕는다. 조장(鳥葬)은 이 같은 자연계 순환고리에 가장 근접한 장사법(葬事法)으로 꼽힌다. 시체를 들에 내놔 독수리가 쪼아먹게 하는 원시적인 풍속이다. 예전 중국의 남쪽 지방에서 유래돼 현재는 티베트 일부 지역에 전해지나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시신을 거름용 흙으로 활용하는 '퇴비장'을 허용했다. 개빈 뉴섬 주지사가 '인간 퇴비화 매장'을 2027년부터 도입하는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시행을 위한 절차를 마무리했다. 친환경 장례를 선택할 권리를 고인과 유족에게 부여한다는 취지를 반영했다. 가톨릭계 단체는 수년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반대해 왔으나 법제화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퇴비장은 풀, 나무, 미생물을 활용해 시신을 30∼45일 동안 자연 분해한 뒤 퇴비용 흙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유족이 이를 공공 토지에 퇴비로 기부하거나 고인이 잠든 퇴비용 흙을 돌려받을 수 있다. 방부 처리를 위해 화학물질을 사용하거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과정이 없어 매장이나 화장보다 친환경적이란 평가다.퇴비장의 법제화는 처음이 아니다. 워싱턴주가 2019년 처음 도입한 이래 오리건, 콜로라도, 버몬트주가 뒤를 이었다. 비용은 7천 달러(약 970만원)로 화장보다는 조금 비싸고, 매장보다는 다소 저렴한 수준이다.장사법은 지역과 종교에 따라 각기 다르나 매장과 화장이 대세다. 생태계의 선순환을 돕는다는 선한 정신에도 불구, 조장이 사라지는 건 본능적인 거부감

  • [참성단] '조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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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조문 논란' 지면기사

    지난 1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세기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영국도 일상을 회복하고 이제 찰스 3세의 즉위식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에서만 여왕의 장례식이 끝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조문을 외교 참사라 정치 공세를 벌이고 있어서다.미국과 유럽에는 조문객들이 관에 안치된 망자의 마지막 모습을 직접 대면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뷰잉'(viewing)이라는 문화가 있다. 영화에서 자주 접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민주당 공세의 핵심은 웨스트민스터홀에 안치된 여왕의 관을 직접 알현(viewing)하지 않았으니 조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탁현민은 "육개장 먹고 발인만 보고 온 것"이라 했고, 김의겸 의원은 "조문을 안하고 육개장만 먹었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을 상갓집 육개장만 축낸 사람으로 만들었다. 청와대는 영국 왕실의 안내와 의전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해명했다.고인을 애도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 조문의 핵심이다. 윤 대통령이 참사 수준으로 영국의 조문 의례를 모욕했다면 영국 언론부터 난리가 났을 테다. 장례식장에 늦게 도착한 바이든 미 대통령을 줄 세운 나라가 영국이다.그런데 우리끼리 웨스트민스터홀 뷰잉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장례식 참석 중 무엇이 진짜 조문인지를 두고 정쟁을 벌인다. 문상객끼리 조문 예법을 놓고 멱살잡이를 벌이니 상주 입장은 황당할 테다. 답답했던지 SBS 시사프로그램이 20일 주한 영국 대사에게 무엇이 진짜인지 물어봤다. 콜린 크룩스 대사는 윤 대통령의 "영국 방문" 자체가 "조문"이라며 "장례식이 핵심 행사"라 했다. 하지만 야당의 공세는 멈추지 않는다. 영국 왕실에 유권 해석이라도 요청할 기세다.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영국 방문 중에 호텔 로비에서 조문단 일행과 팝송을 합창해 구설에 올랐다. 반소매 티셔츠 차림이었다. 소셜 미디어에서 비난과 옹호 여론이 들끓었다. 상갓집에서 고성방가? 육개장만 먹었다고 몰아대는 우리 야당에겐 단박에 대통령 탄핵거리였겠다.캐나다 야당 의원의 촌평이 인상적

  • [참성단] '황금 티켓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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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황금 티켓 신드롬' 지면기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19일 '한국 경제보고서 2022'를 발간했다. OECD가 38개 회원국가에 2년마다 정책보고서를 제공한다. 각국의 경제동향을 분석하고 정책방향을 점검한 결과이니 아픈 지적이 많다.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고령화를 꼽았다. 고령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국가 재정지출이 늘어나 현재 50%인 정부 부채비율이 2060년에 140%를 넘을 것이라 경고했다. 퇴직연령 연장, 연금개혁, 기초연금 재설계를 서두르라 촉구했다.가장 뼈저린 비판은 '황금 티켓 신드롬(golden ticket syndrome)'이다. 개인들이 명문대 진학, 대기업·정부 취업 등 낮은 확률의 황금 티켓을 잡으려 '올인'하는 사회적 현상이 한국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드롬이 교육과 직업훈련제도를 왜곡하고, 노동시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칸막이를 치는 바람에 청년 고용 하락과 결혼과 출산 감소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OECD가 지적한 대목은 우리가 경제 선진국에 진입한 이래 끊임없이 고민해 온 국가적 숙제이자 사회적 현안이다. 그런데도 아픈 이유는 국제사회가 한국적 병리현상을 국가위기와 경제실패 사례로 주목하고 이를 설명할 용어를 작명하기에 이르러서다. 숨겨 온 치부를 들킨 느낌이랄까.'황금티켓'인 대기업, 정부,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순간 사회적 신분은 안정되고 상승한다. 일단 티켓을 거머쥐면 노조와 제도가 일자리를 보장해준다. 문제는 티켓의 수가 제한적인데 있다. 티켓 획득에 실패한 다수는 비정규직, 중소기업, 자영업을 맴돌거나, 황금티켓 획득을 꿈꾸며 배달 플랫폼에 청춘을 갈아넣어야 한다. 결혼도 출산도 뒤로 미룬 채 말이다.OECD는 신드롬 치유 방안으로 정규직 보호 완화와 비정규직 사회보험 적용·중소기업 구조조정을 제시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복지 격차를 줄이라는 얘기다. 우리도 알고 수많은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현장에서 거부당하고 실패했다. 노조는 해고 없는 노동에 집착하고, 대기업은 노조와 규제를 피해 해외투자를 늘린다.'오징어 게임'이 괜히 한국

  • [참성단] 성남FC 매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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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성남FC 매각 논란 지면기사

    1990년대 한국프로축구(K리그)의 최강자는 성남FC의 전신 '성남 일화' 구단이었다. 1993~1995년까지 3연속 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다. 다혈질 박종환 감독과 적토마 고정운, 꾀돌이 신태용 선수가 대표 얼굴이었다. 한동안 뜸하더니 2001~2003시즌 3연패 신화를 다시 썼다. 2011시즌에도 정규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아시아챔피언스리그(AFC)도 2차례 석권했다. 3회 우승한 포항 스틸러스엔 못 미치나 4강 진출횟수(7차례)는 국내 팀 가운데 가장 많다. 1967년 시작된 AFC에서 2회 이상 우승한 국내 구단은 포항, 성남, 울산(현대), 수원(삼성)뿐이다. 2010년대 이후 전북 현대(리그 9회 우승) 시대가 열리기 전, 성남은 압도적 성적을 자랑하는 명문구단이었다.일화 전성기를 이끈 숨은 영웅이 있다. 구소련 연방 타지키스탄 출신인 '발레리 콘스탄티노비치 사리체프' 선수다. 1992~1998시즌 성남에서 골키퍼로 맹활약했다. 모스크바에서 뛰다 소련이 붕괴하자 한국에 왔다. 일화 시절 7시즌 157경기에 출장해 179실점을 기록했다. 2000~2004시즌 안양 LG에서 95경기에 출장, 99실점으로 막았다. 토종인 김병지 선수와 비견되는 짠물 기록이다. 한국에 귀화해 신의손(申宜孫)으로 개명하고 구리 신(申) 씨 시조가 됐다.명문 성남FC가 흔들리고 있다. 신상진 성남시장이 지난달 언론과 인터뷰에서 "(비리의 대명사가 된) 이런 구단의 구단주를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다. "개선 의지도 없고 꼴찌만 하고, 시민들의 혈세를 먹는 하마"라며 매각 의사를 밝혔다.충격에 빠진 팬들이 반발하고 있다. 어떤 권리로 시민구단을 몰래 팔 수 있느냐고 한다. 정치권이 스포츠에 개입해 운명을 가르는 구태의연한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시민 청원 게시판엔 매각에 반대한다는 글이 끊이지 않는다.지난 18일 홈경기에서 포항에 패해 리그 꼴찌에 머물렀다. 원정팀 포틸러스 응원석에 '구단은 정치인들 소유물이 아니다', '까치둥지는 이곳 성남뿐'이라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 축구팬이라

  • [참성단] 한 학기 한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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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한 학기 한권 읽기 지면기사

    교육부는 2015년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고, 핵심 교과과정으로 독서를 꼽았다.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도입한 배경이다. 독서를 통해 학생들의 인성, 상상력, 창의력, 소통 교육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학생들의 절대 독서량이 부족하다는 탄식이 높았던 터라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 현장에서도 환영받았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과정을 마치면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0년간 20권의 책을 읽게 된다. 서로 다른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나누고 토론하면 수백권의 독서로 확장될 수도 있다. 20권의 책 중 단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학생들도 적지 않았을 테다.'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문인과 저술가들이 '교육부TV(2017.12.18)'에 출연해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훈 작가는 "많은 혼란과 의문이 머리에 벌벌 끓게끔 만들어야만 세상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이 된다"며 "선생이 이끌고 가려고 하지 말고 시동을 잘 걸어주"는 독서 교육을 당부했다.그런데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서 '한 권 읽기'가 성취기준과 교수·학습 대상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당장 현장 국어 교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국어 수업을 통해 책 한 권을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학생들이 많다"는 어느 교사의 증언은 '한 권 읽기'의 교육적 효과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물론 현장에선 부작용도 있을 테다. 특히 교사단체 사이의 이념적 지향이 다른 상황에서 독서 교육의 편향이 두드러질 수도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상식과 문화의 힘으로 극복할 일이지 다짜고짜 생략할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須讀五車書)는 수준은 몰라도, 10년 동안 20권 정도의 책을 읽히겠다는 의지마저 10년을 못 채우고 포기하면 교육을 책임진 정부 부처라 자부하기 힘들다."여러분 각자가 항상 배낭에 책 한 권을 넣고 다닌

  • [참성단] 국제기능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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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국제기능올림픽 지면기사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1950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처음 열렸다. 청소년 근로자들의 직업기능을 겨루는 국제대회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한국은 1967년 16회 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5·16 쿠데타 주역이나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김종필이 주도했다. 1965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럽을 순방하다 기능올림픽을 보고 국제기능올림픽한국위원회를 창설해 초대 이사장에 올랐다. 이듬해 참관인을 보내고 선수를 선발하는 등 준비를 거쳐 대회에 나선 것이다.한국은 첫 출전부터 종합 4위에 오르며 범상치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이후 4강권을 유지하는 강국으로 자리하더니, 1977년 우승을 시작으로 9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첫 우승을 차지하고 귀국한 선수단에 정부는 범국민적 환영행사로 화답했다. 카퍼레이드에 대통령 앞 귀국신고, 국립묘지 참배, 지역별 행사 등 선수단이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신문은 1면 머리로 보도했고, 방송이 떠들썩한 현장을 전했다.박정희 정권은 기능올림픽을 산업화의 치적으로 활용했다. 전국 주요 도시에 공고를 집중적으로 설립해 매년 수천 명 기능인을 양성했다. 기능올림픽 국가대표가 되려면 가혹한 경쟁을 이겨내야 했다. 학교·기업별로 지방대회를 거쳐 전국대회 우승자를 선발했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낸 선수들은 대회 때마다 금메달을 휩쓸었다. 체제 선전을 노린 정부의 파격 지원에,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젊은 열정이 더해져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 것이다.'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대표선수단이 지난 14일 결단식을 했다. 코로나 창궐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되는데 11월 28일까지 15개국 26개 도시에서 공동 개최된다. 60개국 선수 1천15명이 참가하는데, 51명이 출전하는 대한민국은 2015년 브라질대회 이후 7년 만에 종합우승을 노린다.윤석열 대통령이 훈련장인 인천 부평구 기술진흥원을 찾아 선수단을 격려했다. 대회 전 대통령이 선수단을 격려한 건 33년 만이다. 마침 이날 고용노동부는 선수단에 대한 처우와 훈련 환경을 개선하

  • [참성단] 미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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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미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지면기사

    에미상 시상 대상은 미국내 방송 제작물이다. 미국 입장에선 국내 방송 잔치를 외국에 개방할 이유가 없고, 한국 드라마가 수상할 명분도 없다. 그런데 한국인이 한국어로 만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에미상 74년 역사에서 비영어권 드라마 수상은 최초의 사건이다.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 자격은 차고도 넘친다. 황동혁 감독은 10년 이상 구상해 온 드라마를 예술적,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정재, 오영수 등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국적과 언어가 다른 전세계 시청자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은유한 '오징어 게임'의 메시지에 직관적으로 공감했다.독보적인 걸작으로 손색 없는 '오징어 게임'이지만 작품만으로는 에미상 수상이 불가능했다. 국적(?)이 미국이었기에 가능했다. 오징어 게임의 IP(지적 재산권)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기업인 넷플릭스 소유다. 덕분에 돈방석에 앉았다. 1조원의 수익에 기업가치가 급등하고 유료가입자가 폭증하는 특수를 누렸다.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한 황 감독과 출연배우들은 하청 대금 250억원을 나누어 가졌을 뿐이다.오징어 게임의 수상을 '사건'으로 보도한 한·미 언론의 인식엔 커다란 격차가 있어 보인다. 미국 언론들은 이제 자막으로 시청하는 외국어 드라마도 미국 드라마로 인정해야 할 시대인 점에 주목한 듯싶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디즈니+', '애플TV+' 등 미국의 거대 OTT 기업들이 전 세계 제작자들에게 하청을 맡기고 있다. 미국 토종 콘텐츠만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은 미국 방송산업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선언에 가깝다. 한국 드라마, 한국 배우에 집중하는 우리 언론 보도와 결이 달라 보인다.OTT 기업의 강력한 창작 파트너인 K-드라마가 제값을 못 받고 있다. 방송 콘텐츠 외주제작사에 대한 발주사들의 갑질과 착취가 만연했던 탓이다. 황 감독은 10년 넘게 국내 투자자를 찾지 못해 넷플릭스 하청 제작자가 됐고, 그 탓에 오징어 게임은 '미드'가 됐다.

  • [참성단] 추석, 이후(以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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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 추석, 이후(以後) 지면기사

    빅토르 위고의 걸작 '레미제라블'은 인간이 겪는 어려움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자연과의 싸움, 인간들 간의 싸움,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이 그러하다. 이 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자이며 행복한 삶과 성공적인 인생으로 가는 비결이라 할 수 있다. 붓다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대자유인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심리적 유연성 즉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인생이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한다.연휴가 끝나자 일상이 시작됐고, 자신을 잘 추슬러 일상과 일터로 복귀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특히 팬데믹 이후 처음 맞이하는 모처럼의 진짜 연휴였기에 이번 주는 그 어느 때보다 적응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시기가 되겠다. 가족·친지와의 반가운 만남도 있었고, 차례와 성묘 등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회복한 것 같지만,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 풍경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코로나 대유행이 가져온 신풍속이다. 차례와 성묘가 끝나자마자 감염을 이유로 곧바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이었고, 아예 방문과 귀성이 없는 가정도 있었다. 대표적 명절 음식인 송편도 직접 해먹기보다는 사먹는 경우가 이제 대세가 됐다. 이러다 추석이 예전 같은 추석의 모습을 다 잃을까 걱정이다.그러나 이보다 더 걱정인 것은 연휴 이후에 올 사태다. 기상 이변과 전쟁 그리고 공급망 교란으로 생겨날지도 모를 곡물가격 폭등과 천연가스 대란 같은 문제들이 그것이다. 우리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것이 식량과 에너지 및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해 오는 처지인 데다 9월말까지 유예된 개인부채 상환 만료까지 돌아오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빅토르 위고가 꼽은 세 가지 어려움 외에 금융위기와 부채를 더 추가해야 할 판이다. 개인부채는 개인들의 파산이나 금융권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개인과 금융권 중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포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니 해결이 복잡하다.추석 전야를 위협했던 태풍 '힌남노'는 빠르게 지나간 덕분에 그나마 피해가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