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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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풍수(風水)와 경기 분도(分道) 지면기사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이다. 풍수에 대한 인식은 비과학적 지상술(地相術)로 또는 전통적인 자연철학으로 엇갈린 채 논란을 거듭하며 우리 생활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과거시험을 통해 풍수사 곧 지관(地官)을 선발했다. 풍수에서는 산과 물과 방향이 핵심이며 이를 기준으로 해서 간룡법·장풍법·득수법·정혈법 등으로 세분된다. 여기에 묘터를 잡는 음택풍수, 집터를 따져보는 양택풍수, 그리고 마을과 도시의 입지를 살피는 양기풍수 등으로 나뉜다.서울은 음양오행론에 기초한 풍수설과 '주례'의 '고공기' 등을 근거로 북악산을 주산으로 낙산을 좌청룡, 인왕산을 백호, 남산을 주작 곧 안산으로 삼았다. 현재 서울은 태조 3년인 1394년 개경에서 옮겨와 지금까지 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의 수도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우리 역사에서 경기(京畿)란 말은 1018년 고려 현종 8년부터 등장하여 왕성 곧 수도의 주변 지역을 가리키는 지역 곧 수도권을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참고로 경기란 말은 중국에서 수도인 도성을 '경'이라 하고, 그를 둘러싼 외곽지역을 '기'라 한 데서 유래했다. 이처럼 서울과 경기는 각각 600년과 1천년이 넘는 긴 역사를 이어온 우리의 문화다.그런데 일각에서는 수도권 집중과 과밀화 해소 그리고 지방균형발전론을 내세워 경기를 남북도로 나누자는 분도론(分道論)과 함께 세종시로 아예 행정수도를 옮기자는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분도와 천도는 국운은 물론 전통문화와 일상생활을 좌우하는 큰 사건으로 표를 의식한 정치 논리나 대선 주자들의 정책 차원을 넘어서는 큰 사안이다. 당연히 이는 도민과 국민의 의사를 묻는 투표 같은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의제다.익명을 요구한 어느 풍수전문가는 안타깝게도 세종시는 양기풍수상 수도로서의 국세를 갖추지 못한 곳이며, 경기 분도는 공연히 선거구나 늘리는 일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분도와 행정수도 이전은 지방 균형 발전과 효율성 때문이다. 검증이 쉽지 않은 풍수설을 따라서라기보다 한·중·일 어디에서도 역사상 경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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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무의도 유감 지면기사
무의도는 인천시 중구 무의동에 딸린 섬이다. 면적 9.432㎢, 해안선 길이 31.6㎞ 크기로, 600여 명 주민이 거주한다. 북쪽에 당산(124m), 중앙에 국사봉(236m), 남쪽에 호룡곡산(246m)이 있다. 인천 남서쪽 18㎞, 용유도 남쪽 1.5㎞ 해상에 있다. 섬에 가려면 잠진도 선착장에서 페리호를 타야 했으나, 2019년 무의대교가 개통돼 차량으로 오간다.(네이버 백과사전).연륙교 개통 이후 무의도가 수도권 인기 관광지로 뜨겁다. 섬 형태가 장군복을 입고 춤을 추는(舞衣) 것 같다고 한다. 영화에 소개돼 잘 알려진 실미도와 소무의도, 해리도, 상엽도 등 부속도서를 거느려 '큰 무리섬'으로도 불린다. 여름엔 '하나개'와 '큰무리' 해수욕장을, 봄·가을엔 국사봉과 호룡곡산을 찾는 시민이 많다. 실미도 유원지는 중장년층,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 세트장은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다. 서쪽 해변 해식애(海蝕崖)는 풍광이 빼어나다.개천절 휴일 아침, 채비를 차리고 무의도행 길을 나섰다. 이 섬의 장점은 접근성이다. 인천에서 불과 20~30분, 수원에서도 주행거리 75㎞, 1시간 10분 남짓 소요된다. 인천대교를 지나 영종도 해안도로까지, 여정은 순조롭다. 하지만 섬 입구 사거리 지점부터 상황은 급변한다. 좌회전 800m 전부터 정체가 시작되는데, 10여 분은 허비해야 신호를 받는다.앞차 꼬리를 물고 연륙교를 지나 섬에 진입하면 더 난감해진다. 선착장 주변부터 불법 주·정차된 차량 때문에 교차 통행이 불가능할 지경이다. 마을을 지나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차선도 없는 일방 통행로에, 이미 만차가 돼 버린 비포장 공영주차장을 돌아 나와야 했다.소무의도 앞 선착장은 차량 주차가 불가능하고, 교차운행이 안 돼 상·하행 극심한 정체가 반복된다. 숙박업소 주인과 불법 주차 운전자 사이에 고성이 오간다. 마을버스는 경적을 울리며 승용차의 양보를 재촉하나 짜증만 더할 뿐이다.다리가 놓여 방문객은 급증했으나 도로·주차장 등 기반시설은 예전 그대로다. 얄팍한 상술은 당국의 눈을 피해 불법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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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비룡심수형' 대장지구 지면기사
판교 대장지구 행정 명칭은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이다. 1914년 조선행정구역변경 때 태릉, 장토리, 무두안이(뫼두루안)를 병합해 광주군 낙생면 대장리가 됐다. 1971년 성남출장소에 편입됐다가 1973년 7월 성남시 승격과 함께 대장동으로 승격됐다.풍수지리로 본 대장지구는 '비룡심수형(飛龍尋水形)'에 가깝다. '날아가는 용이 물을 찾았다'는 뜻으로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거나 '물길이 재물의 유출을 막는 모양새' 등 주거지로 적합한 지역이라 한다. 주산(主山)인 태봉산(317m)과 응달산(322m) 자락에 안겨 푸근함과 안정감을 준다. 예로부터 명당자리로 소문이 자자했고, 위쪽에는 집단 묘지가 조성돼 있다.사방이 녹지로 둘러싸인 데다 높지 않은 산이 일대를 에워싸, 풍수학자들은 산이 주인을 안전하게 호위하는 모양새라고 본다. 산의 생김새가 모나지 않아 주민들이 자연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거주지로서 좋은 환경을 갖췄다는 거다. 안동 하회마을에 비유할 정도로 후하게 보는 풍수가도 있다. 용인서울고속도로 고기IC와 접했고, 서판교에 미금·동천역과 가까워 교통 환경이 뛰어나다.대장지구는 재물이 모이는 길지(吉地)라는 견해도 있다. 상류 지역 물이 낙생저수지에 모이고, 저수지에 도달하기까지 대장동 주위의 작은 하천들은 숱한 산세를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수구 근처에 형성된 나성(羅星) 덕에 유속이 느려져 부(富)가 빠져나가는 걸 막아준다고 한다.대장지구 개발사업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전직 고위 법원·검찰 인사들의 연루설이 끊이지 않고, 50억원 퇴직금을 받은 아들을 둔 국회의원은 탈당했다. 검·경은 사업 지주사인 화천대유(火天大有)와 천화동인(天火同人) 관계자를 소환 조사하고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 수색했다. 내부자의 녹취록과 증거물을 검찰이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한다. 여의도 주변엔 여·야 정치인들의 금품 수수 명단이 파다하게 떠돈다.대장동 원주민들은 개발에 밀려 조상이 피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공영개발이라고 해 집·전답을 헐값에 넘겼더니 업자들만 천문학적 수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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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주인 찾은 김치냉장고 현금 지면기사
벼룩(flea)이 들끓는 고물을 거래한다 해서 벼룩시장(flea market)이라지만, 벼룩시장에서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주인이 헐값에 내놓은 명품이 안목 좋은 임자나, 순전히 운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인데, 예술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은 벼룩시장 단골 횡재수다. 한 미술 애호가는 프랑스 아를르시 벼룩시장에서 400프랑을 주고 구입한 풍경화 6점이 고흐의 작품으로 판명돼 대박을 쳤다. 한 프랑스인은 1991년 파리 근교 벼룩시장에서 1천500유로에 구입한 유화 한 점이 고흐 작품으로 인정받자, 경매를 통해 300만 유로에 팔아 돈벼락을 맞았다. 가난했던 거장의 작품들이 벼룩시장에 등장한 건 우연이 아닐테니, 작품도 작가의 기구한 운명을 꼭 닮았다.하지만 벼룩시장에서 얻은 행운도 평등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여성은 벼룩시장에서 박스에 담긴 인형이 탐나 7달러를 지불했다. 놀랍게도 그 박스에서 르누아르의 작품이 발견됐다. 최소 감정가가 7만5천 달러.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작품은 도난당한 장물로 밝혀졌고, 판사는 원소유자인 볼티모어 미술관에 반환하도록 판결했다.동네 공터에 펼쳐지던 벼룩시장도 이젠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주 거래 품목이 생활용품이라 돈벼락 횡재가 쉽지 않다. 그런데 지난달 6일 한 제주도민이 온라인 중고시장에서 구입한 중고 김치냉장고 바닥에 5만원권 2천200장, 1억1천만원의 현금이 매달려왔다. 깜짝 놀란 구매자는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결국 경찰이 어제 이미 사망한 60대 돈 주인을 찾았다고 밝혔다. 유족들이 돈의 존재를 모른 채 폐기물업체에 김치냉장고를 처분했던 모양이다.김치냉장고 구매자의 결단이 놀랍다. 견물생심이고, 더군다나 표나지 않는 현금이었다. 눈 딱 감고 횡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현금이 가져올 불안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버지니아 여성의 행운은 백일몽으로 끝났다. 행운이 불행이 된 로또 1등 당첨자들이 적지 않다. 엄청난 행운의 결과가 행·불행으로 엇갈리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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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위기의 한국경제 지면기사
"문제는 경제다, 멍청아." 이 말은 1992년 미 대통령 선거 당시 빌 클린턴 진영의 선거구호였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는 생존의 문제이며, 국가와 사회를 좌우하는 핵심 사안이다. 그런데 영어 이코노믹스(economics)를 경제(經濟)·경제학(經濟學)으로 번역하는 것은 정확한 것일까?동아시아 한자문명권에서 경제는 '시경', '대아편'에 등장하는 "재어 보고 맞춰보고"라는 '경지영지(經之營之)'에서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있으며, 춘추시대 노나라 역사서인 '좌전'에도 '경국제세(經國濟世) 즉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경세제민(經世濟民)'과 같은 말이다.이헌창 고려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코노믹스는 그리스어 가정(家庭)을 뜻하는 'oikos'와 관리 또는 법을 의미하는 'nomos'의 합성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가정관리란 뜻을 지닌 'oeconomica'란 말이 오늘날 경제학의 유래가 되는 셈이다.우리나라에서도 경제는 주로 '경세제민'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는바, '경국대전'이라든지 홍만선의 '산림경제'(1715), 서유구의 '임원경제지'(1830) 등에서 경제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 저서들은 가정생활·가정경제·농업관리 등의 관점에서 집필된 것인데, 심지어 약과를 만드는 조리법도 기술돼 있다. 이코노믹스가 오늘날처럼 '경제' 또는 '경제학'의 의미로 자리 잡은 것은 1862년 일본 막부(幕府) 시대 난학자인 니시 아마네(西周) 등이 이를 '경제', '검약' 등으로 번역하면서부터다.최근 중국의 부동산개발업체 헝다(Evergrande)가 350조원에 달하는 빚더미에 올라 사실상 파산 상태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경제적 파장에 국내외 안팎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줄도산과 자영업자 종사자들의 잇따른 폐업에 천문학적으로 늘어가는 국가부채도 걱정이다. 뿐인가.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그리고 20·30대의 대출 이른바 '영끌과 빚투'도 문제다. 오른 것보다 오를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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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일본 마코 공주의 사랑 지면기사
1953년 개봉된 미국 영화 '로마의 휴일'은 왕실 공주와 신문기자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다. 틀에 박힌 왕궁 생활에 염증이 난 공주가 무작정 길을 나섰다가 멋진 남자와 연인이 되는 과정을 낭만과 위트로 묘사했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공주(오드리 헵번 분)와 신문기자(그레고리 팩 분)의 사랑은 축복받지 못했을 것이다.영국 왕 에드워드 8세(1894~1972)는 재혼 이혼녀 월리스 심슨(1896~1986)과 결혼한 대가로 1936년 왕위에서 물러났다. 왕세자 시절, 에드워드는 런던 파티장에서 심슨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두 번 이혼한 여자와 결혼 경험이 없는 왕세자의 금지된 사랑에 영국 왕실은 분노했다. 심슨이 왕비 칭호를 받지 않고, 아이들이 왕위를 물려받지 않겠다고 제안했으나 거부됐다.영국 출입이 금지된 부부는 프랑스로 이주했다. 국왕 신분이 아니기에 자유롭고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죽어서야 조국 땅 왕실묘지에 묻힌 에드워드는 "무거운 책임을 지는 일도, 왕으로서 원하는 바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일도,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회고했다. 14년 뒤 심슨도 에드워드 곁에 영면했다.일본의 마코(眞子·29) 공주가 10월 중 남자 친구 고무로 게이(小室圭)와의 결혼을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수년간 이어진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결혼을 강행한다는 거다. 마코는 왕세제로 왕위 승계 순위 1위인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후미히토(文仁)의 장녀이자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조카다.두 사람의 교제는 2017년 공식 확인됐다.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언론은 고무로의 경제 능력을 문제 삼았다.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가 애인으로부터 400만 엔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는 시시콜콜한 폭로가 나왔다. 마코는 최대 1억5천만 엔인 결혼 지원금을 받지 않거나 기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무로가 지원금을 같이 받는데 대한 반감을 의식한 것 아니냐고 한다. 둘은 미국 뉴욕에 신혼살림을 차릴 것으로 전해졌다.가정사를 빌미로 결혼에 반대하는 일본 내 여론은 지나쳐 보인다. '사생활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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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오징어게임'과 대장동 일확천금 지면기사
지난 주말 넷플릭스 화제작 '오징어게임'을 정주행했다.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최초의 한국 드라마라는 명성에 걸맞게 끊어갈 수 없는 몰입감이 압권이었다. 오징어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 456명이 데스 매치를 벌여 최후의 승자가 456억원의 상금을 독식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다.게임을 주최한 미지의 권력은 참가자들에게 '공정한 게임'을 약속한다. 참가자들은 게임 직전까지 게임 주제를 모르고, 게임 수행의 조건을 스스로 선택한다. 하지만 456억원을 향한 참가자들의 희망은 첫 번째 게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 무참하게 깨져버린다. 탈락의 벌칙은 목숨이었고, 절반 이상이 첫 게임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오징어게임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해석되는 대목이다.권력이 설계하는 공정의 룰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이다. 현실이라면 이 게임은 당연히 불가능할테다. 456억원을 차지할 한 사람을 위해 455명이 죽어야 하는 게임의 법칙이 공정한가? 1인당 1억원이라는 목숨의 가치는 누가 결정하는가? 또한 그가 누구이든 그에게 결정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탈락의 대가가 목숨이라는 사실을 첫 게임 이후 공개한 것은 공정한가? 게임의 설계가 불공정하니 게임 자체의 공정은 무의미해진다.드라마는 현금 456억원이 담긴 슈퍼볼에 눈이 멀어버린 참가자들이 미친 듯이 서로 속이고 죽이는 아수라에 갇힌다. 결국 인성(人性)을 지킨 주인공이 인성을 잃은 경쟁자들을 물리치는데, 진부한 휴머니즘으로 풍자의 신랄함이 깨져버렸다.대선정국을 강타한 대장동 개발의혹 사건은 오징어게임 못지 않은 스토리로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3억5천만원으로 4천40억원을 챙겼다. 앞으로 거둘 수익도 수천억원대라 한다. 오징어게임은 없는 사람들의 아귀다툼을 관람하려 456억원을 지불한 가면 쓴 설계자들의 유희였다. 그러나 대장동 의혹은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7호라는 가면을 쓴 7명이 천문학적인 잭팟을 터트렸다. 4천40억원엔 개발사업에 땅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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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가면 쓴 당구선수 '해커' 지면기사
세계 당구 3쿠션은 '4대 천왕'이 지배한다. 토비욘 브롬달(59·스웨덴), 프레드릭 쿠드롱(52·벨기에), 딕 야스퍼스(56·네덜란드), 다니엘 산체스(47·스페인) 등이다. 지난 20여 년, 세계선수권과 월드컵 등 메이저 이벤트를 번갈아 우승하며 당구계를 평정한 최강 고수들이다.특히 쿠드롱은 공격적이고 화려한 샷으로 국내에도 팬이 많다. 공이 멈추기도 전에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샷을 하는 시원함에, 몰아치기에 능하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란 명성에 걸맞게 세계선수권 2차례, 월드컵 17차례 우승했다.가면을 쓰고 경기를 하는 아마추어 선수 '해커'가 쿠드롱을 세트스코어 3-0으로 물리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지난 19일 고양시에서 열린 '2021 PBA 챔피언십' 32강전에서다. 경기 내용도 1세트 15-9, 2세트 15-11, 3세트 15-6으로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해커를 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던 쿠드롱은 충격적인 패배가 믿기지 않는 듯 허공을 응시했다.해커는 16강에선 베테랑 김종원을 세트스코어 3-1로 이기고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8강전도 상대 김남수를 3-0으로 가볍게 누르고 4강에 진출했으나 이 대회 우승자인 다비드 마르티네스에 0-4로 아쉽게 패해 질주를 멈췄다. 하지만 아마추어 신분에 초청 선수로 출전해 세계 최강을 꺾은데 이어 4강에 올라 팬심을 흔들었다.해커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고수로, 구독자 7만명이 넘는 인기 유튜버이다. 유튜브 '당구 해커'에서 레슨과 이벤트 경기를 한다. '당구 하는 법을 해킹한다'는 의미로 작명했다. 가면은 3년 전 방송을 시작하며 우연히 썼다고 한다.그의 흰색 가면엔 미묘한 미소와 붉은 볼, 양 끝이 올라간 수염이 그려져 있다. 저항의 상징으로 통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으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한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해커 그룹 '어나니머스'가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해커는 "가면은 당구를 알리는 나만의 방식"이라고 했다. 그의 본명은 안광준(38)으로, 당구장을 운영하는데 지인들은 호기심 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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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추석 민심과 불편한 사실들 지면기사
추석 연휴에도 대선 시계는 격렬하게 돌았다. 연휴 전에 터진 여야 당내경선 유력후보들이 연루된 불편한 사실들이 밥상머리 화제로 올랐던 탓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찰 고발사주 의혹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에 휘말렸다. 의혹은 일부 사실과 그럴듯한 추정으로 정치적 실체, 즉 선거 프레임으로 강화되는 중이다.검찰 고발사주 의혹은 윤 전 총장이 현직이던 시절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2020 총선을 앞두고 김웅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에게 범여권 주요인물들에 대한 형사고발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를 젊은 정치 낭인 조성은씨가 폭로하자 여권은 곧바로 윤석열의 고발사주 의혹으로 단정했다. 윤 전 총장은 정권에 핍박받아 수족이 다 잘린 상황에서 고발사주가 웬말이냐는 반론을 내세워 여권의 윤석열 죽이기 정치공작 의혹으로 맞받아치면서 배후로 현직 국정원장을 겨냥하고 있다. 공수처, 검찰, 경찰이 모두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대장동 의혹은 이 지사가 성남시장 시절의 치적으로 내세웠던 대장동도시개발사업에서 7명의 민간 투자자가 4천여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사업이익을 독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동산에 민감한 여론이 화들짝 놀랐다. 이 지사는 '대장동에서 한 푼이라도 이익을 취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다'며 공직과 후보직 사퇴를 걸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의혹 역시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드러난 사실이 그럴듯하면 숨겨진 진실은 힘을 잃는다. 검찰 고발사주 의혹은 제보로 공개된 '고발장'이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사실로 회자되면서 '윤석열 사주 여부'의 진실을 덮는다.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은 사실로 드러난 '비상식적인 민간인의 개발이익'이 '이재명 연루 여부'의 진실을 압도한다. 진실 앞에서 사실로 포장된 거짓과 소문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다만 진실은 너무 늦게 온다.검찰 고발사주 의혹과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의 진실이 대선 전에 밝혀질지 의문이다.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던 불편한 사실들이 선거 후 드러난 진실 앞에 거짓이 된 사례들이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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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춘란배 우승한 신진서 지면기사
2015~2017년 중국 천재기사 커제(24) 9단은 난공불락이었다. 백번(白番)에 특히 강해 승률이 9할을 넘었다. 그가 백돌을 잡으면 이미 승부가 났다고 했을 정도다. 세계대회에 출전한 한국기사들도 번번이 그의 벽에 막혔다. 이세돌(38) 9단은 전성기가 지났고, 박정환(28) 9단도 힘을 쓰지 못했다. 이 시기, 단체전인 농심배 세계대회마저 중국이 우위에 섰다.2018년부터 판도가 바뀌었다. 커제가 잇따라 패하면서 총기가 전 같지 않다는 말이 돌았다. 다음 해 세계랭킹 1위를 내줬고, 현재는 3위에 그치는 등 하향 곡선이 완연하다. 지난 2월 LG배 세계대회 결승에선 신민준(22) 9단에 충격적으로 패해 중국 팬들이 경악했다. 세계 바둑 판도는 다시 한국 우위라는데 이견이 없다.세계바둑계에 신진서 시대가 열렸다. 신진서(21) 9단은 지난 15일 제13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 3번기 2국에서 중국 탕웨이싱(28) 9단에게 흑으로 173수 만에 불계승, 2대0으로 우승했다. 대국은 서울과 베이징을 잇는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됐다.방송 해설자는 이날 "탕웨이싱은 중국 랭킹 25위지만 세계대회에선 2.5위"라고 소개했다. 3차례 세계를 정복하는 등 국제대회에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신 9단도 1·2국 모두 중반까지 고전했으나 상대 실착을 틈타 역전에 성공했다. 21개월 연속 한국 톱랭커로 군림해온 신 9단은 6관왕에 오르며 바둑 팬들에 짜릿한 명절 선물을 안겼다.세계바둑 패권은 일→한→중→한 순으로 순환하고 있다. 세계 랭킹 1위(신진서), 2위(박정환) 모두 한국 선수들이다. 순위는 낮으나 신민준의 상승세도 무섭다. 장기 침체인 일본은 자국 최강자 이야마 유타 9단이 20위권 밖이다. 저변이 넓은 중국은 언제든 다시 굴기(굴起)할 저력이 있다.커제는 국내 바둑팬들에 미움을 샀다. 승기를 잡으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았다 풀었다 하기를 반복한다. 해설자들은 그의 손이 머리로 향하면 승리를 선언한 것으로 본다. 상대 신경을 자극하는 고도의 전략이란 시각도 있다. 춘란배 결승을 지켜보다 유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