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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봄꽃 이야기 지면기사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옛 선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였다. 사대부들 가운데서도 화훼나 원예에 대해 조예가 깊은 이들이 많았다. 세종조의 문신 강희안(1418~1465)의 '양화소록'은 꽃과 분재에 관한 최고의 고전으로 꼽힌다. 강희안에 못지않은 마니아로는 영·정조 시대의 인물 유박(1730~1787)이 있는데, 그는 과거시험을 보거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평생 꽃 가꾸고 글 쓰며 살았다. 그의 '화암수록'에 실린 시들을 보면 그의 꽃 사랑은 애호의 수준을 넘어 역대급 화훼 전문가였음을 알 수 있다.화성시 송산면 지화리 출신의 문인 이옥(1760~1815) 또한 꽃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인물로 그의 글 '꽃 이야기(花說)'가 눈길을 끈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 보이고, 저녁 꽃은 화창해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안개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중략) 달빛 받은 꽃은 요염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보듯 꽃에 관한 그의 글은 역대급 화론(花論)이다. 그는 정조시대의 문인으로 발군의 실력과 문장력을 지녔으나 문체가 '패관소설체'로 지목되어 유배를 가기도 하고 별시에서 장원을 했으나 꼴등(傍末) 처분을 받는 등 문체반정으로 인한 고초를 겪었다. 이옥의 '꽃 이야기'의 압권은 꽃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반드시 꽃과 거리를 둔 수풀 아래 집을 짓고 살"('완역 이옥전집 1권', 426쪽)겠다는 반전 있는 마지막 문장이다.꽃은 계절별로 달라 그 아름다움이나 매력이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봄에 피는 꽃들에 미치지 못한다. 봄꽃의 명소로 강화 고려산 진달래, 이천 백사면과 양평 개군면 산수유, 광양 매화, 진해 벚꽃, 여수 영취산 진달래, 하동 쌍계사 벚꽃, 지리산 산동 산수유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모진 겨울을 지나 산천을 곱게 물들이는 봄꽃들의 향연은 언제나 아름답고 생각만으로도 흐뭇하기만 한데, 총선을 앞두고 오가는 이재명 대표, 한동훈 비대위원장, 김동연 지사 간의 설전과 신경전은 국민들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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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홍콩발 ELS 사태 지면기사
"광기의 가장 큰 징후는 금융상품이 복잡해지고 사기가 증가한다는 것이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에 나오는 대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은행들이 남아도는 유동자금을 부동산 담보대출에 쏟아부으면서 시작됐다. 치솟는 부동산가격에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은행 돈으로 집을 샀다. 은행들은 채권으로 파생상품을 팔아 자금을 모아 다시 대출했다.이때 부동산 시장 몰락을 예상하고, 부동산 채권 폭락 때 돈을 버는 공매도(Short)상품을 개발한 사람들이 '대박 공매도', 즉 '빅쇼트'의 주인공들이다. 영화의 대사 중엔 금융 파생상품에 대한 경고성 금언들이 즐비하다. "아무도 관심 없어요. 은행들은 판매수수료를 거하게 챙기고 있는데, 채권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홍콩H지수에 기초한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생돈을 날렸거나 날릴 위기에 처했다. H지수는 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 대표기업 50개 종목의 주가지수다. 투자 시점의 홍콩H지수가 만기시 30% 가량 떨어져도 원금이 보장되는 ELS 상품을 증권사가 운용하고 은행이 판매했다. 그런데 지수는 절반 이하로 폭락하고, 만기가 도래했다. 올해 상반기 만기도래 금액 10조2천억원이 반토막이 날 상황이란다.은행에서 ELS를 산 고령 개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은행을 자산 보전과 증식의 반려 기관으로 철석 같이 믿었던 세대들이다. 2일까지 금융감독원에 3천건에 달하는 민원이 쏟아졌다. 안전한 고수익 투자라는 은행의 설명을 믿었다는 피해자들의 호소는 절규에 가깝다.파생상품은 예적금과는 다른 전문가들의 고위험 투자 대상이다. 콜옵션, 풋옵션 등 상품의 손익을 설명하는 용어들은 외계어나 다름없다. 일반 투자자들은 은행에서 파는 상품이니 최소한의 원금보장을 확신했을 테다. 은행은 '오래된 고객'의 신뢰를 ELS 판매 수수료와 바꿔 먹었다.고객들이 독박을 써도, 은행엔 수수료가 남고, 방지 대책을 세운 증권사의 손실은 미미하단다. 예대마진으로 수십조 영업이익을 올리는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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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나혜석 논란 지면기사
나혜석은 정조대왕과 함께 수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정조는 화성 건축으로 수원의 역사적 정체성을 재창조했다. 나혜석은 파격적인 행보로 남존여비 시대에 저항했다. 정조가 왕조시대 수원의 역사적 시원이라면, 나혜석은 근대 수원의 표상으로 시 문화행정의 집중 지원 대상이었다.나혜석이 문제가 됐다. 수원시청이 최근 나혜석의 '독립운동가' 기록을 삭제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인계동에 '나혜석거리'가 있다. 수원시가 2000년 그녀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문화예술구역의 명칭이다. 거리엔 두개의 나혜석 동상이 있다. 한복 입은 동쪽의 나혜석이 서쪽의 양장 차림 나혜석을 마주한다. 동쪽 동상 조형물엔 나혜석을 '최초의 서양화가', '최초의 여성소설가', '최초의 전시회 개최', '독립운동가', '여성운동가'로 새겨 놓았다.나혜석의 독립운동 이력에 대한 시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1운동으로 5개월 투옥됐다는 사실이 유일한 독립운동 근거인데, 당시 일제의 신문조서 기록에 따르면 항일운동 가담을 부인하고 무죄 방면됐다는 주장과 충돌한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 나혜석'을 부정하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고, 이번에도 한 시민의 반복적인 민원에 시청이 조형물 문구 삭제 계획을 밝힌 것이다.나혜석의 삶은 지금 봐도 개인이 감당하기엔 벅찰정도로 반시대적이었다. 그녀의 생애는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여권 부재의 시대를 관통했다. 두 번의 결혼, 자유연애, 이혼으로 남성의 세계를 직격한 여류화가의 비극적인 서사는 후대의 관심을 받기에 족하다. 관심의 호오에 따라 나혜석의 평가가 엇갈린다. 시대에 저항한 선각자로 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기행을 일삼은 자유연애자로 폄하하는 시선도 있다.관점에 따라 엇갈리는 나혜석 평전을 역사로 규정하려니 문제가 발생한다. 남성 사회를 향한 도발적 행적은 여권운동의 빈약한 기원을 메울 만큼 신화적이다. 반면 친일을 생래적으로 거부하는 사회에서 독립운동은 명백하게 기록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신화만으로도 충분했을 나혜석에게 기록으로 확정해야 할 독립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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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인공지능 컴퓨터' 지면기사
제임스 와트가 1765년 증기기관을 발명하자, 니콜라 퀴뇨가 1769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증기자동차를 시장에 풀었고, 조지 스티븐슨은 1830년 상용 증기기관차를 레일 위에 올렸다. 1860년 발명된 휘발유 내연기관으로, 미국의 헨리 포드는 1908년 T 모델을 대량생산해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산업혁명은 수십세기 지루했던 인류 문명을 2세기 만에 뒤엎었다. 몇 세대에 걸친 혁명의 시간은 인류가 적응하기에 충분했다.컴퓨터 기술이 선도하는 작금의 기술혁명은 산업혁명과 달리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2007년 애플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인류는 만능 컴퓨터를 손아귀에 쥐었다. 인류 전체가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정보통신 디바이스에 열중했다. 덕분에 컴퓨터는 인간과 문명을 학습해 전지전능한 인공지능(AI)으로 진화했다. 최근 개최된 2024 라스베이거스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는 AI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불과 17년 만의 일이다.최근 종영한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딥페이크 기술로 고인인 송해가 1994년 제주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장면을 탄생시켰다. 조만간 AI가 대본을 쓰고 딥페이크 연기자와 배경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날이 머지 않았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 딥페이크는 재앙이다. 누구나 AI를 활용해 2분 만에 딥페이크로 사람을 내키는 대로 복제할 수 있다. 수많은 가짜들이 진짜들의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급기야 일론 머스크는 아예 칩으로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동시키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실험을 시작했다. 뇌가 컴퓨터를 지배할지, 컴퓨터가 뇌를 통제할지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발을 디딘 느낌은 서늘하다.산업혁명에 비해 수십 배 빠른 컴퓨터의 진화 속도로 인한 문화지체 현상이 심각하다. 인간의 제도·문화·의식과 AI컴퓨터가 세계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AI가 도구를 넘어 사람을 대체하고 지배할 것이라는 공포가 현실이 되고 있다. 권력은 오만했다. 통제를 자신하며 컴퓨터의 진화를 찬양하고, 보통 사람들의 딥페이크 피해를 방치했다.경선 불참을 촉구하는 조 바이든 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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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동네서점과 도서정가제 지면기사
초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 틈새에서 동네서점은 전멸 위기다. 반경 1~2㎞ 안에 동네서점이 있다면 행운일 정도다. 마실 가듯 들르는 서점이 아니라 마음먹어야 방문하는 서점이 됐다. 서점에서 책의 표지와 목차, 내용을 훑어보고 온라인 주문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쇼룸처럼 이용하는 소비자, 서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야속하지만 어쩌겠나.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가 최근 민생토론회에서 '도서정가제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또다시 논란이다. 도서정가제는 서점 간 과도한 할인 경쟁을 방지하고 출판물의 최소 제작비용을 보전해 창작자와 출판사를 보호해 출판 생태계를 안정화한다는 취지다. 영어권을 제외한 독일·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 등 대부분의 출판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도서정가제를 도입해 2014년부터 3년마다 제도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출판사는 책을 발간할 때 정가를 표시해야 하고, 서점은 정가의 10%와 각종 마일리지를 포함해 최대 15%까지만 할인할 수 있다.정부가 지역 영세서점에 한해 할인 한도를 풀어주고, 웹툰과 웹소설 등 전자출판물은 도서정가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다. 출판계는 "동네서점은 대형서점보다 매입원가 자체가 높은데 어떻게 더 할인하란 말이냐", "헌법재판소가 전자책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를 기각했는데 정부는 6개월 만에 뒤집나"라고 깊은 한숨이다. 웹툰·웹소설계에서는 "획일적인 규제가 풀려 다행"이라며 일단 반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작자 권리가 약해지지 않을까", "출판물 부가세 면세 혜택도 사라지나" 하는 염려도 크다.동네서점 주인장들은 하루하루 분투기를 쓰고 있다. 동네서점은 꽃집과 카페, 문구·소품점 등과 숍인숍으로 변신하면서 생존 중이다. 예약제 공유서점 간판을 달고 독서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약사가 주인인 서점부터 독립영화관 서점, 게스트하우스 서점, 한옥 서점까지 '뜻밖의 컬래버'가 그래도 다행이고 반갑다. 대형서점에 장르·순위별로 진열된 베스트셀러가 아닌 예쁜 인생책 한 권 발견하는 기쁨, 동네서점에서 누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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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쇼펜하우어와 한국정치 지면기사
한국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거치게 되면 보통 16년 동안 교육을 받는다. 개인 사정에 따라 교육 기간이 짧을 수도, 더 길어질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시험에 나오는 것만 배우거나 해당 분야에서 요구되는 교육만 받았을 뿐 정작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삶의 지혜라든지 인생을 풍요롭게 할 근원적인 물음들과는 무관한 과정들만을 이수하게 된다. 사람들이 종교 서적을 탐독하고 철학서를 뒤적이는 것은 학교 교육을 통해서 채워지지 않은 근원적인 의문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이가 쇼펜하우어나 톨스토이 '인생론' 같은 책들이다.쇼펜하우어는 학문이나 이론으로서의 철학보다는 철학으로서의 철학을 한 진짜 철학자다. 칸트 철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주저를 남겼으나 철학분야에서보다는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서재에 쇼펜하우어의 초상화만 걸어둘 정도였고, 바그너·토마스 하디·프루스트·말러·사무엘 베케트·보르헤스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쇼펜하우어에 영향을 받았다. 프로이트도 자신은 쇼펜하우어를 심리학으로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말했을 정도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이른바 한국의 동경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데칸쇼'라고 하여 칸트, 데카르트, 쇼펜하우어가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쇼펜하우어는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를 통해서 힌두교와 불교 등 인도 철학에 깊은 이해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는 심금을 울리는 잠언들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쇼펜하우어 정도는 읽어야 한다.요즘 한국 정치의 쟁점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과 묻지마식 정치 테러 그리고 신당 소식일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정치사상 처음으로 쇼펜하우어가 언급됐다는 사실이다. 발언의 당사자는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으로 "제가 쇼펜하우어를 말하면 내일쯤 또 '쇼펜하우어는 누구에 비유한 거냐' 이렇게 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며 쇼펜하우어를 거론했다. 한국정치인들의 인문 교양과 상식에 실망이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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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노인과 소년'의 정치테러 지면기사
이념적 지향을 초월해 조국 광복을 위해 연대했던 독립운동가들은 해방정국의 혼란기에 이념과 정당으로 갈라졌다. 민주와 공산진영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됐고, 같은 진영내에선 주도권 잡기에 목숨을 걸었다. 테러와 암살의 시대가 활짝 열렸고, 역사의 진행이 휘청거렸다.우익 지도자 송진우는 신탁통치 찬성파로 지목돼 암살됐다. 반탁인사인 그는 제한적 신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찬반의 세상에서 중도의 공간은 없었다. 좌익 거물 여운형은 1947년 극우파에 의해 암살됐다. 1949년 민족주의자 김구가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암살되면서 테러 정치는 정점을 찍는다.암살의 배후는 지금껏 모호하다. 범인들이 입을 닫고 허술한 공권력은 작동하지 않았다. 암살의 결과로 정적은 물론 같은 진영에서도 이득을 본 세력이 있기에 추측이 난무하며 미궁에 갇혔다. 김구 암살의 배후로 지금껏 이승만, 좌익, 미군이 거론된다. 해방정국은 만인 대 만인의 이념 투쟁의 장이었다. 70~80년 전 과거의 아픈 역사이다.67세 노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칼로 공격했다. 15세 중학생은 돌멩이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가격했다. 노인은 변명문을 남겼다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소년은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는데 정신병력을 주장한다. 노인과 소년의 정치테러는 '계획'과 '우발' 사이에서 모호하지만 범죄의 동기는 분명하다. 정치다. 칼과 돌멩이를 들도록 부추긴 극단적 진영 정치다.다시 해방정국이 거론된다. 기원이 불투명한 정치적 만인 투쟁의 시대에 노인과 소년이 테러범으로 등장했다. 박근혜 탄핵과 조국사태로 광장에서 맞붙었던 진영의 전위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정치 일진으로 암약하며 정적을 향해 좌표를 찍고 적대를 선동한다. 진영에 따라 밥상이 나뉘고, 교단이 갈리고, 세대가 충돌한다. 혀에 칼날을 세운 어른 때문에 급기야 아이까지 돌멩이를 들었다.해방정국의 정치투쟁은 독립 조국의 정체성을 다툰 과정이었다. 이상향의 충돌이었던 셈이다. 지금의 정치 대립은 순수한 권력 투쟁이다. 격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다. 극소수의 집요한 권력욕이 민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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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사할린 동포 귀국 사업 지면기사
일제 강점기 역사의 가장 큰 후유증이라면 단연코 민족 이산이다. 나라 잃은 한민족 상당수가 모국을 떠나 타국에 정착했다. 식민지 유민들은 낯선 땅에 한인 사회를 건설하고 조국 해방의 병참을 자임했다. 구소련의 50만 고려인, 중국의 170만 조선족들은 그들의 후예다. 살기 위해 일본에 둥지를 튼 재일동포 2·3세도 70만~80만명에 이른다.나라가 온전했다면 타국살이를 감당할 이유가 없었던 동포들이다. 이들이 당한 차별과 멸시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고려인 잔혹사는 인간이 감당할 수준을 넘었다. 소련은 연해주 고려인들의 세력이 커지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몇 대에 걸쳐 일군 삶의 터전을 압수당하고 중앙아시아 벌판에 버려진 것이다. 소련 해체 이후 연방들이 독립하자 고려인 상당수는 무국적자로 전락했다.구 소련 거주 한인의 잔인한 시련사에 사할린 동포가 있다. 하지만 대륙의 고려인들과 섬에 고립된 사할린 동포들은 시련의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 대륙의 고려인들은 제정러시아-소련연방-소련 해체로 이어진 역사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이주 자체는 자발적이었다. 반면 사할린 동포들은 일제가 소련에게 빼앗은 사할린섬에 강제징용한 식민폭력의 피해자들이다.러일 전쟁으로 사할린을 점령한 일본은 탄광 인부로 식민지 국민을 강제징용했다. 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소련이 사할린을 수복하자, 사할린 동포들은 대책 없이 섬에 고립됐다. 일제에 끌려와 소련에 갇힌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독립한 모국 대한민국도 방치했다. 일본의 국가폭력을 고발하고 소련에 사할린 동포의 귀국을 요구했어야 옳았다.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와 국교를 맺으면서 사할린 동포의 귀국 길이 열렸고, 뒤늦게 지난 2020년 특별법 제정으로 사할린 동포 귀국은 국가사업이 됐다. 그런데 법이 맹랑했다. 동포 1세와 자녀 1명만 귀국을 허용했다. 여생을 고국에서 살라면서 자녀들과 이산을 강제한 것이다. 그래서 지난 16일 법을 개정해 귀국 대상을 동포1세와 자녀로 확대했다.그런데 귀국 동포에게 지원할 공공임대주택이 없어 수백명 수준의 동포 귀국사업이 지지부진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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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여의도 사투리'와 '5천만의 언어' 지면기사
말로 역사를 바꾼 사례가 허다하다. 우리 역사엔 서희의 세치 혀가 대표적이다. 거란의 1차 침공을 외교 담판으로 물리치고 영토를 압록강까지 확장했다. 거란엔 조공 외교를 약속해 회군의 명분을 줬다. 대신 조공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여진 토벌을 양해 받아 강동 6주를 설치하는 실리를 챙겼다.도시국가들 사이의 이합집산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 수사학이 고도로 발달했다. 칼 대신 말로 싸워 이기는 실리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유명한 에피소드, '멜로스의 대화'는 수사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아테네 사절은 항복하라 협박하고, 멜로스 대표는 평화를 구걸한다. 설득하는 논리의 충돌은 불꽃을 튀기는데, 협박은 우아하고 구걸은 품위를 유지한다.하지만 논리적인 수사 보다 저잣거리의 막말이 설득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세계정복에 나선 칭기즈칸은 적들을 원색적인 초원의 언어로 협박했다. '저항하면 죽고 항복하면 산다'. 실제로 그랬다. 논리도 수사도 없지만, 언행일치로 칭기즈칸의 원칙이 됐다. 만일 아테네가 칭기즈칸처럼 협박했다면, 멜로스 사람들은 항복했을지 모른다. 멜로스인들은 설전에선 비겼지만 전쟁에 져 아테네의 노예로 전락했다.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11월 "5천만이 쓰는 언어를 쓰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300명만이 쓰는 여의도 문법은 여의도 사투리라 했다. 현재의 정치를 여의도 사투리로, 자신의 정치를 5천만의 언어로 상징화한 근사한 수사가 대중의 귀에 쏙 박혔다.한 위원장이 곤경에 처했다. 김건희 명품백 대응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진노를 샀다. 둘 사이 틈이 벌어졌다 싶자 즉각 여의도 사투리가 쏟아졌다. 야당은 '약속 대련'이라 하고, 여당의 한 친윤 의원은 한 위원장 퇴진에 앞장섰다가 뻘쭘해졌다. 서천 화재현장 회동으로 한·윤 갈등설이 봉합되자 급기야 이재명 민주당 대표까지 등장해 "절규하는 피해 국민 앞에서 정치쇼를 했다"며 정쟁의 수준을 끌어올렸다.이 대표는 '진짠 줄 알더라'는 여의도 문법의 대가다. 평생 법의 언어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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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대사극장 지면기사
흔히 인생을 한 편의 영화에 비유한다. 개인마다 서사를 들여다보면 파란만장에 새옹지마니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할 수 있겠다. 한국영화박물관의 기획 전시 '대사극장(DIALOGUE CINEMA)'은 한국 영화 100편의 대사를 한 편의 비디오 에세이로 묶어 또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반가운 발상과 실험이다."니가 너를 구해야지. 인생이 니 생각보다 훨씬 길어.(내가 죽던 날)",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찬실이는 복도 많지)" 용기를 불어넣는 말에는 힘이 있다.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진심은 전달되는 법. 하지만 인생이 어디 뜻대로 되는가. 상처받고 상처준다. '부당거래'에서 주양(류승범 분)은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며 권력의 위선을 고백한다.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분)이 읊조린다.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계획조차 사치인 빈곤의 자화상으로 이만한 대사가 없다.녹록지 않은 세상, 각성제 같은 대사도 있다. "살아보니께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 두 친구의 우정과 배신, 성공과 실패를 그린 '짝패'에서 필호(이범수 분)가 태수(정두홍 분)에게 던지는 돌직구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메기'에서 경진(문소리 분)은 의심이 난무하는 삶에 대항할 지침을 준다.우리 사회의 갈등은 괴물로 진화했다. 배경에 권력 게임이 된 정치가 있고, 자본으로 사람 사이의 격차를 벌리는 경제가 있다. 전세 사기, 묻지마 살인…. 억울한 사람이 많아지고, 상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내부자들' 이강희(백윤식 분)의 대사는 현실로 페이드인 할 때 훨씬 생생하다.지혜가 담긴 대사는 자상한 인생 멘토다. 갓생(god+生: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을 강요당하는 사회지만, 가끔은 걍생(그냥 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