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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성단] 번역의 역사와 갤럭시 S24

    [참성단] 번역의 역사와 갤럭시 S24 지면기사

    번역은 문자를 바꾸고 어떤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번역은 정보교류의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세계와 만나고 또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창구와도 같다. 일본의 고등교육을 대표하는 도쿄대학도 원래는 서양의 앞선 문헌과 문물을 번역하고 소개하기 위해 설립한 번역 기관, 즉 양서조소(洋書調所)에서 시작됐다. 1985년 인문학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됐던 도올 김용옥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의 핵심적 주제도 바로 번역이었다. 번역을 빼놓고 한중일의 근대, 아니 그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일본 지성사를 대표하는 인물인 마루야마 마사오도 번역 없는 일본의 근대란 상상할 수 없으며, 근대는 번역된 것이라 단언한다. '번역과 중국의 근대'를 집필한 쩌우전환(鄒振環)도 중국 근대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으로 번역을 꼽으면서 가장 영향력이 큰 번역서 100권을 선정하고 번역사를 배제한 중국사는 있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쩌우전환에 따르면 중국의 번역사는 "민족번역(民族飜譯), 불전번역(佛典飜譯), 서학번역(西學飜譯)" 등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가운데서도 영향력과 규모의 측면에서 보면 서학번역이 앞선 두 단계를 압도한다고 말한다.번역이 정보 교류와 문명의 발전을 동반하는 일이라면 통역은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옮겨주는 소통의 행위다. 고려 시대에는 역관을 가리켜 혓바닥 사람 즉 설인(舌人)이라 무시했고, 조선 시대에도 국제적 감각을 지닌 지식인 집단이었던 역관이 중인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이들이 없었다면 국제 교류나 외교는 존재할 수 없었다.그런데 이제는 전문적인 외국어 능력을 갖추지 못해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통번역에 문제가 없는 시대가 됐다. 삼성전자가 17일 미국 새너제이에서 공개한 갤럭시 S24는 통역 설정 버튼 하나로 13개국 언어가 지원된다고 한다.통번역의 핵심은 소통인데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와 정치인의 말은 여전히 어렵고 모호하며 믿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정치인들의 거짓말도 잡아내고 그 의

  • [참성단] 죄와 벌과 피해자의 인권

    [참성단] 죄와 벌과 피해자의 인권 지면기사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정의의 실현을 빙자해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계획적으로 살해하고 우발적으로 노파의 여동생까지 살해한다. 자수한 뒤 진행된 재판에서 확정된 처벌은 시베리아 8년 유배형. 심신미약, 과거의 선행, 예심판사의 호의로 죄의 무게가 확 가벼워졌다. 지금의 현실이라면 두 생명을 지운 대가로는 터무니 없다는 여론이 들끓었을 테다."300명 이상을 직접 죽였고, 간접적으로 가담한 것까지 포함하면 3천명 가까이 죽였다"고 밝힌 유튜브 스타가 있었다. 존 자이로 벨라스케스,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시카리오(암살자)였다. 1989년 대선후보 살해혐의로 30년 형을 선고받고 2014년 가석방된 뒤 "잘못을 참회하겠다"며 유튜브에 '참회하는 뽀빠이'라는 채널을 개설했다.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라며 분노했다.생명이 있는 인간은 무궁무진한 기회를 갖는다. 빈민의 고혈을 빨던 고리대금업자가 개과천선한 스크루지가 될 수 있다. 벨라스케스가 살해한 수백, 수천명 중엔 콜롬비아의 역사를 바꿀 인물이 포함됐을 수도 있다. 살아있으면 가능했던 인간의 기회와 권리들을 죽음으로 소멸시킨 살인죄를 모든 문명이 엄단한 이유이다.지난 18일 인천지방법원은 한 스토킹 살인범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31세인 살인범은 지난해 자택에서 출근하던 옛 연인인 30대 여성을 살해했고, 이를 말리던 여성의 모친을 상해했다. 살인 현장엔 여성의 어린 딸(6세)도 있었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하거나 영구 격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인간의 생명을 끊는 살인은 불가역적인 인권유린 범죄이다. 살인범죄에서 피해자의 인권은 주체의 소멸로 모호해진다. 반면 가해자의 인권은 산 자의 것이라 실체적이다. 법원은 생명의 엄중한 의미에 짓눌려 살인범의 생명 박탈에 극도로 신중하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권이 역전되고, 피해자의 유족들은 정의에 못미치는 처벌에 반발한다.피해 여성이 자연 수명 동안 누렸을 인간적 권리는 가해자의

  • [참성단] 임계점 직전의 갈등사회

    [참성단] 임계점 직전의 갈등사회 지면기사

    사단법인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여론조사기업인 한국리서치가 18일 '2023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결과를 밝혔다.(2023.12.28~2024.1.3 전국 19세 이상 1천명 대상.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2013년부터 매년 발표되는 조사는 우리 사회 갈등의 현황 파악에 유용하다. 결과는 국민의 체감대로지만, 숫자로 확인하는 현실은 고통스럽다.조사결과에서 응답자의 89.8%가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봤다. 조사 첫해인 2013년 92.8% 보다는 낮지만 도긴개긴이다. 10명 중 9명이 11년 조사기간 내내 한국을 집단갈등 사회라 답했다. 가장 눈에 띄는 갈등 유형은 진보 대 보수의 이념갈등이다. 전통적인 1위였던 빈부갈등을 2019년에 제친 이후 이번에도 86.6%로 집단갈등의 대표 유형이 됐다. 시점이 공교롭다. 박근혜 탄핵사태로 심각해진 보수와 진보의 이념갈등이 조국사태로 광장에서 충돌한 때가 2019년이다.14개 유형 중 약진한 갈등도 있다. 2013년 14위(29.0%)였던 남녀갈등은 2021년 50%대에 진입해 이번엔 9위(53.1%)로 치솟았다. 청년과 노인간 세대갈등도 2013년 61.1%에서 11년만에 71.8%로 껑충 뛰었다. 영호남 갈등이 정권을 따라 들쑥날쑥하는 동안, 수도권 대 지방의 갈등이 2023년 65.3%로 2013년(50.2%) 보다 심화된 것도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모두 편가르는 정치의 이념갈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갈등들이다.이 조사의 11년 추세는 정치갈등이 노사갈등과 같은 전통적인 갈등 유형을 방치한 것도 모자라, 스스로 갈등의 왕좌에 올라 비주류 갈등들을 증폭해 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글로벌 여론조사 기업 입소스의 2021년 28개국 문화갈등 조사결과에서도 한국의 정당갈등은 91%로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해야 할 정치가 모든 갈등의 원천인 시대에 한국정치의 갈등 기량은 발군이다.이처럼 후진 정치와 갈등사회에서도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한국인은 기적의 민족이다. 갈등에 내성이 생긴 건가,

  • [참성단] 불안한 트럼프의 선전

    [참성단] 불안한 트럼프의 선전 지면기사

    우연인지 필연인지 단정할 순 없지만, 특별한 인물들이 동시대에 한꺼번에 출현해 역사를 전환시킨 사례가 적지 않다. 칼 야스퍼스는 기원전 900년부터 200년 사이를 '축의 시대(Axial-Age)'로 명명했다. 기원전 5·6세기에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가 동서양에 동시에 등장해 종교와 철학을 탄생시켰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기원인 팔레스타인 선지자들도 축의 시대의 주역이었다.르네상스 시대도 한꺼번에 등장한 동시대 천재들의 협업 결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가 동시에 자웅을 겨뤘고, 메디치 가문이 툭 튀어나와 자금을 댔고,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으로 인문의 자유를 뒷받침했다. 누구 하나만 빠져도 르네상스는 반쪽이 될 뻔했다. 2차세계대전은 동서양의 전체주의자들이 한 시대에 등장해 축의 동맹을 맺고 일으켰다. 히틀러의 나치즘, 무솔리니의 파시즘, 도조 히데키의 군국주의가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했다면 2차대전은 세계대전이 아니라 국지전으로 흩어져 기록됐을지 모른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후보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경쟁후보를 압도하고 과반득표로 승리했다. 트럼프가 이 기세로 공화당 후보로 11월 미 대선에서 승리할까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체주의 지도자들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냉전시대의 한 축을 이룬 상태다. 여기에 이상행동 지도자인 트럼프가 복귀해 민주진영 동맹 축을 흔들면 두 축의 균형이 위태로워진다.김정은이 최근 조평통 등 대남 대화채널을 폐지하고, 대한민국을 제1적대국으로 명기하는 헌법 개정을 지시했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과 같이, 대한민국을 향해 하나의 북조선을 선언한 것이다. 핵무장국의 무력 시위다. 김정은과 '사랑의 친서'를 주고받은 트럼프다. 집권해 한반도에서 발을 쏙 빼고 북한을 핵무장국으로 인정하면, 대한민국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불사하는 지도자들이 동시에 출현한 시대다. 정신 사나운 트럼프

  • [참성단] 선거와 여론조사

    [참성단] 선거와 여론조사 지면기사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들의 피로감이 상당하다. 여론조사는 표본의 대표성은 물론 조사 기간, 문항 설계, 질문 방식 등 다양한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인구 구성, 연령대 비율에 따라 ARS(전화자동응답조사시스템)와 CATI(전화면접조사) 결과는 천양지차다. 여론조사가 많은 한계점을 가진다는 방증이다. 오죽하면 같은 방식의 여론조사에서 조사 기관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하우스 이펙트(house effect)'라는 말이 있겠는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부실 여론조사기관 30곳의 등록을 취소했다. 전국 등록업체 88개 가운데 3곳 중 1곳이 문을 닫고, 53곳만 남게 됐다. 그래도 일본 20곳, 프랑스 13곳보다 많은 숫자다. 선거철에 등장했다 사라지는 '떴다방식 업체'가 정리되는 점은 바람직하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적발된 여론조사 불법 사례는 각양각색 교묘하다. 특정 후보 지지를 강조하거나, 정당 이름을 되물으며 유도하기도 한다. 또 결과의 왜곡과 조작은 물론 임의로 작성한 후보자 지지도를 선거 여론조사 결과로 오인하도록 둔갑시켜 SNS에 게시한 사례도 있다.선거 여론조사 역사를 보면, 치명적인 실수가 많았다. 1936년 미국 대선 때 대중잡지 리터러시 다이제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공화당 알프레드 랜던의 당선을 예측했으나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승리했고, 공신력이 바닥을 쳐 결국 2년 뒤 폐간됐다. 2016년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클린턴 힐러리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를 누르고 당선될 것이라는 결과가 다수였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대반전이었다. 두 사례 모두 조사대상 표본추출에 실패했다.유권자는 차선이냐 차악이냐를 선택해야 할 때 여론조사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여론조사는 전체 유권자가 아닌 소수 표본 대상이기 때문에 100% 완벽할 수가 없다. 여론조사를 신뢰하는 유권자를 생각하면 조사업체의 도덕성은 더욱 무거워야 한다. 선관위의 솎아내기에도 살아남은 업체들은 정파적 목적 혹은 후보자 요구에 기본 윤리를 팔아먹어

  • [참성단] 비트코인 ETF와 뉴턴

    [참성단] 비트코인 ETF와 뉴턴 지면기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지난 10일 대표적 가상자산인 비트코인 ETF를 승인하면서 비트코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TF 승인 소식에 기대감으로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다른 한편의 신중론이 제기되는 등 비트코인의 ETF 승인이 주말부터 미디어 이슈로 부상했다.우리에게 아직 생소하기만 한 ETF는 'Exchange Traded Fund'의 약어로 직역하면 '교환거래자금'이란 뜻이나 일반적으로는 '상장지수펀드'라 한다. 펀드도 주식처럼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도 자산운용사가 자사의 브랜드를 붙여 다양한 이름의 ETF를 발행하고 있다.비트코인은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필명을 쓰는 개발자가 만든 가상화폐다. 사토시는 '비트코인: 개인간 전자화폐 시스템'이란 논문을 발표하면서 비트코인을 '전자화폐'라고 설명했지만, 미디어에서는 가상화폐, 가상통화, 암호화폐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상화폐란 개발자가 관리하는 특정 커뮤니티에서만 통용되는 결제 수단을, 암호화폐는 이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분명한 주체가 없이 암호화한 기술을 바탕으로 거래되는 것을, 그리고 가상통화는 실제 통화로서의 특성을 강조하는 경우에 사용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통해서 비트코인 등을 가상자산으로 규정하고 있다.그런데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들은 아직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며 불법 거래 자금 운용 등에 악용되는 사례가 많고 변동 폭도 극심하여 안정적이지 못하다. 가령 비트코인은 2017년 1년 만에 1천844%나 급등했다 2018년 말 83%가량 급락했고, 2020년에 783%나 올랐다가 반년 만에 반토막이 난 적이 있다.ETF의 상장 여부와 상관없이 투기든 투자든 항시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세계적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뉴턴도 주식에 투자했다 많은 재산을 날리고 나서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

  • [참성단] 김선욱과 경기 필하모닉

    [참성단] 김선욱과 경기 필하모닉 지면기사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포디움의 새 주인 김선욱이 12일 경기아트센터 신년음악회에서 첫 지휘봉을 잡았다. 2006년 만 18세에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한 뒤 국내외에서 화려한 연주 경력을 쌓아 온 스타 피아니스트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했지만 지휘 경력은 소박하다. 2021년 1월 KBS 교향악단 지휘로 데뷔했다.김선욱은 8일 서울 한 호텔에서 가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시작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며 "계속 발전해 나가는 데 의미를 훨씬 많이 두기에 기대해주셔도 좋다"고 밝혔다. 지휘 역량에 대한 음악계의 우려를 의식한 소감이었다.경기필은 1997년 창단한 경기팝스오케스트라를 2003년 경기도립오케스트라로 승격(?)해 오늘에 이른다. 금난새, 구자범, 성시연, 마시모 자네티 등 역량있는 지휘자들이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2016년엔 마에스트로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해 화제가 됐다. 대개 4년인 임기 중 금난새는 단원들과 오디션 갈등을 벌였고, 구자범은 단원의 성희롱 무고에 2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는 마에스트로와의 오랜 호흡으로 독보적인 스타일과 선율을 이어간다. 카라얀은 베를린필을 30년 지배했고, 오자와 세이지는 29년을 보스턴심포니에서 보냈다. 주빈 메타는 LA필(16년)과 뉴욕필(13년)에서 장수했고, 끝이 안좋았지만 정명훈은 서울시향을 10년 지휘하며 오케스트라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경기필만의 선율을 만들기엔 지휘자 교체가 너무 잦았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는 절대적이다. 무티나 주커만이 몇 번 지휘한 것만으로도 경기필의 수준이 격상한 이유다. 영국 버밍엄시립오케스트라는 25살 사이먼 래틀이 18년을 지휘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래틀은 마에스트로 반열에 올랐다.잦은 지휘자 교체는 경기필이 아직 진정한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경기필이 아트센터에 클래식팬들을 부르는 독보적인 사운드를 보유했는지 의문이다. 지휘자마다 서울 평단과 관객 앞에서 인정받으려 애쓰는 수준으로 보인

  • [참성단] '인천 하나3차 아파트'

    [참성단] '인천 하나3차 아파트' 지면기사

    최근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한 아파트 입주민의 민원내용이 뉴스를 탔다. 입주민은 "무거운 짐이나 장바구니를 양손 무겁게 들고 있는 상태에서는 아파트 입구 번호를 누르는 게 너무 힘들다"며 "경비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알아서 입구 문을 열어주셨으면 한다"고 민원을 제기했고, 관리사무소는 "경비원 교육을 잘 시키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제목이 '요즘 아파트 경비원들이 욕을 먹는 이유'인데, 오히려 입주민에게 역풍이 불었다. 비판 댓글들이 잇달았다. "경비원이 머슴도 아니고 어지간히 하라." "경비원이 호텔리어냐." "호의로 해주면 그게 당연한 줄 안다." 입주민의 민원을 갑질로 본 것이다. 실제로 "전에 계셨던 경비 아저씨는 알아서 문도 열어주셨는데 이번 경비 아저씨들께서는 그런 센스가 없다"는 입주민의 불만엔 갑질의 향기가 물씬하다.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 갑질은 망조 든 사회의 대표적 병리현상이다. 용역업체 계약직이 대부분인 고령 노동자들에게 입주민 전체가 갑이다. 전국 가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한다. 천박한 인격의 갑질 가해자들이 속출하는 구조다. 2020년 서울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의 폭언·폭행 갑질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사회 문제가 됐지만, 이상행동 입주민들의 갑질 사건들은 끊이질 않는다.인천 서구 가정동 하나3차아파트 입주민들이 5명의 경비원을 위해 휴게실 3곳을 리모델링했다고 한다(1월 9일자 6면 보도). 예전 휴게실은 나무판자로 출입구를 가리고 장판도 없는 시멘트 바닥이었다. 공용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했다. 경비원들의 실상에 놀란 274가구 입주민들이 84%의 찬성 투표로 창고를 완벽한 휴게실로 바꾸어 주었다.따뜻하다. 갑질의 악행이 워낙 도드라져서 그렇지, 전국 아파트 입주민 대부분이 하나3차아파트 주민들과 다르지 않을 테다. 경비원들은 "입주민들의 마음에 보답해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단다. 을이 행복할 때 비로소 갑이 편안해지고 공화국은 안전해진다. 인천 하나3차아파트 시세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국에서 가장 살만한 가

  • [참성단] 개 식용 금지법

    [참성단] 개 식용 금지법 지면기사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했다. 무려 특별법이다. 모든 동물의 식용이 가능하다는 일반법이 생긴다 해도, 개만은 안된다고 특별법으로 대못을 박은 것이다. '개 식용 금지법'은, 조금 허풍을 보태자면 반만년 한민족 문화를 종식하는 역사적인 법안이다. 개 식용이 농경민족의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과장만은 아닐 테다.입법의 배경은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가는 권력의 본성이다. 반려견을 기르는 인구가 1천만명이다. "감히 개를 먹어?" 1천만 유권자가 표를 흔들며 정승처럼 눈을 부라리니, 정당들이 앞다투어 꼬리를 살살 쳤다. 2021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개 식용 금지를 신중히 검토할 때가 됐다"며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임기내 식용 금지"를 강조하자, 여야가 반려인 유권자 눈에 들려 경쟁적으로 개 식용금지 법안을 만들어 결국 합의 처리에 이른 것이다.유전자에 각인된 입맛을 법으로 금지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특별법이 육견 소비가 아닌 생산·유통의 원천봉쇄에 주력한 배경일 테다. 육견산업 종사자들에겐 청천벽력이다. 특별법이 통과되면 용산에 개 200만 마리를 풀겠다고 극렬하게 반발할 정도였다. 이들의 생계 보장이 특별법 안착의 관건이다. 전국 개농장의 육견 52만 마리의 처지도 다급해졌다. 법에 의해 도살의 위협에서 벗어난다 해도, 입양하고 관리할 새주인과 시설이 충분한지는 지켜볼 일이다. 법 시행 이후 성행할 밀도살은 끊임없는 기본권 논란을 야기할지 모른다. 특별법 시행 3년 유예 기간 동안 산더미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또 다른 논란과 혼란과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과정이 섬세해야겠다.개 식용 금지 논란 당시 본란(2021년 10월 7일자 보도)은 "개인의 기호와 취향인 음식문화를 법으로 간섭하는 일이 옳은지 의문"이라는 견해를 남겼다. 개 식용을 반대하고 혐오하는 사회문화적 추세로 자연스럽게 종식될 비주류 식문화에 굳이 법적 종식을 선언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

  • [참성단] 소울푸드, K라면

    [참성단] 소울푸드, K라면 지면기사

    '환갑'을 지난 소울푸드 K라면이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등장한다. 닭고기 육수로 만든 '삼양라면(100g)'은 10원에 출시됐다. 당시 짜장면 30원, 곰탕 50원에 비하면 매우 착한 가격이었다.K라면은 1970년대 소고기 라면 성장기를 거쳐 1980년대 빨간 국물 라면으로 황금기를 맞았다. 이때 라면계의 스테디셀러 너구리(1982), 안성탕면(1983), 비빔면, 짜파게티(1984), 신라면(1986), 진라면(1988)이 앞다퉈 등장한다. 이에 힘입어 1998년에는 국내 라면시장 규모가 1조원을 돌파하기에 이른다. 이후 2000년대 대형마트 PB라면이 출시됐고, 2010년대에는 하얀 국물 라면이 인기를 끌었다. 2020년대 프리미엄 제품으로 진화한 라면은 이제 대표적인 모디슈머(modisumer) 상품으로 소비자들의 요리 영감의 원천이 됐다.지난해 K라면 수출액은 1조2천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다. 전년보다 24% 더 팔렸다. 한·중·일 중 라면을 가장 늦게 만든 한국의 K라면 최대 수출국이 면의 나라 중국인 점이 흥미롭다. K라면의 세계시장(66조원 규모) 성공에는 현지화 전략이 한몫했다. 동남아시아나 중동 시장을 사로잡은 '할랄라면', 인도 '치킨라면', 뉴질랜드 '비건라면'으로 나라별 소비자 취향을 저격했다.K컬처도 K라면의 성장을 견인했다. 매운 라면의 신화 '불닭볶음면' 시리즈는 BTS 등 K팝 스타의 먹방 챌린지가 대유행하면서 수출로만 10년간 40억개를 팔아치웠다. 러시아에서는 전쟁 통에도 팔도 '도시락 면'이 컵라면 판매 1위이고, 스위스 융프라우 전망대를 가도 농심 '신라면 컵'을 맛볼 수 있다. "라면 끓일 물만 있으면 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감칠맛 나는 라면 예찬으로 K라면 세상을 인증했다.라면의 국내 판매량도 늘었다. 2022년 라면 소비량은 39억5천만개로 전년보다 4.2% 증가했다. 수출 증가와 달리 내수 증가엔 생각이 많아진다. 불황의 지표로 보여서다. 얇아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