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참성단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참성단] 서해 낙도의 슈바이처 지면기사
인천 앞바다의 섬 덕적도에 처음 발을 딛는 여행객은 '최분도'라는 이름부터 듣게 될지 모른다. 한 여행객은 섬이 예쁘다는 소릴 듣고 덕적도를 방문했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최분도 신부 얘기를 하는 바람에 문화해설사를 찾아 나선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1966년 4월의 어느날 벽안의 신부가 덕적도에 발을 디뎠다.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섬,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전등, 병원, 상수도, 가난…모두 급한 일입니다. 동족끼리 전쟁을 한 가난한 이들이 이곳 주민입니다. 마음이 아파요. 어렵고 헐벗고 사는 게…게다가 아픈 이들이 많아요." 최분도(Benedict Zweber·1932~2001) 신부의 섬 생활은 이처럼 간절한 기도로 시작됐다.그는 덕적교회에 부임하자마자 섬 개발에 나섰다. 먼저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병원부터 세웠다. 이어 미군 쾌속정을 병원선으로 개조, 낙도를 순회하며 숱한 생명을 구했다. 병원선의 이름은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는 호칭 가운데 하나인 '바다의 별'이었다. 덕적도에 처음 전기를 끌어온 이도 최분도 신부다. 부산에 있는 미군레이더 기지에서 발전기를 구입, 섬에 전기를 공급한 그는 당시 직접 전주를 메고 800m의 산을 넘기도 했다. 지금도 덕적도에는 그때 만들어진 사각 모양의 전신주가 몇 개 남아있다. 서포1리 해수욕장 하천복개공사 때는 돌을 깨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어민소득증대사업에도 손을 대, 주민들에게 김 양식기술을 보급했다. 김 양식을 배우던 주민들이 해변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간첩으로 오인 받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섬 구석구석에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지금도 덕적도에는 1976년 최분도 신부가 1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섬을 떠나던 날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나를 이 섬의 한 주민으로 기억하고 기도해 달라"는 그의 말에 섬은 울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그의 '한국 사랑'을 보여주듯 2001년 3월 미국 뉴욕 메리놀 신학대학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미사에서는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최분도 신부를
-
[참성단] '윤석열 커피'와 언론 지면기사
1989년 11월 9일 동독은 여행자유화 정책 기자회견을 갖는다. 예정된 발표 내용은 '10일부터 비자 발급 개시'였다. 국경개방 시점을 묻는 이탈리아 ANSA 통신 기자 리카르도 에르만의 질문에, 동독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는 "지체 없이, 즉시.(Sofort, unverzuglich.)"라 답한다. 에르만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타전했다. 오답(誤答)에 오보(誤報)였다. 오보에 운집한 동서독 시민들이 9일 밤 베를린 장벽을 허물었다. 오보가 독일 통일을 앞당기는 역사를 만들었다. 독일 정부는 2008년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에르만의 행운은 예외적 사례이다. 1986년 국내 한 신문은 '김일성 사망' 호외를 뿌렸다. 이틀 뒤 김일성이 평양비행장에 등장하면서 세계적 특종은 초대형 오보로 전락했다. 1946년 시카고 트리뷴은 토마스 듀이의 대선 승리를 보도했다. 예측 보도였다. 당선자는 해리 트루먼이었다. 트루먼은 오보가 실린 시카고 트리뷴을 들고 활짝 웃는 사진을 남겼다. 오보는 기자에게 치욕이고 언론사에겐 악몽이다.교육과 윤리로 전승된 기자들의 취재 관행의 목적은 오보 방지다. 오보는 사회와 개인에게 불가역적 피해를 발생시킨다. 지루한 팩트 체크 과정을 거쳐 주장을 사실로 객관화하고, 당사자의 반론까지 실어야 한 꼭지 기사가 지면과 방송에 나간다.최악은 기사 조작이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날조된 기사는 윤리 차원을 넘어 범죄이다. 날조의 목적에 따라 죄의 경중은 땅에서 하늘 사이일 테다.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조작 의혹이 정국을 강타 중이다. 의심받는 조작의 핵심 내용은 부산지검 검사 윤석열이 부산저축은행 피의자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주며 사건을 무마했다는 것이다. 김만배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에게 인터뷰 형식으로 전달했다. 2021년 9월 인터뷰가 '뉴스타파'에 전달돼 대선 3일 전 공개됐다. 윤석열이 대장동 몸통이라는 이재명의 주장을 증거하는 보도로 대선 막판을 달구었다. 정치적 공방은 생략하고 언론만 보자. 신학림도, 뉴스타파도,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 보도한 언론도 당사자
-
[참성단] 신종코로나 변이 '피롤라' 지면기사
전염병은 확장성을 가진 질병을 통칭하는 말이다. 전염병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면서 동시에 세상과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곤 했다. 인구 감소·전쟁의 승패·권력 교체·종교에 대한 의존 심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사회에 간여하고, 깊은 영향을 끼쳤다. 전염병이 퍼지는 이유는 전쟁·가뭄과 홍수·국제교류·동물로 인한 전파 등을 꼽을 수 있는 바, 전염병이 유행하면 국왕이나 통치자들은 천벌이라는 인식을 갖고 더욱 근신하면서 죄수들을 석방하는 등 선정을 베풀기 위해 노력했다.인류 역사상 최고의 전염병은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으로 1360~1375년 당시 영국에서만 해도 인구의 40%가 사망했을 정도다. 이 페스트로 인해 사람과 일손이 귀해지는 바람에 인권 신장이 촉진되고 중산층과 하층민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등 사회구조에 일대의 변화를 겪게 됐다. 페스트는 1331년 중국, 1346년 크림반도에 이르는 등 세계적인 영향을 끼쳤다.우리의 경우에 가장 흔한 전염병은 천연두·홍역·이질 등이었고, 조공·전쟁·무역 등 주로 교역 과정에서 많이 발생했다. 집에서 소를 키우는 것 역시 홍역과 천연두 대유행의 원인이었다. 당시에는 홍역은 창(瘡), 천연두는 천화(天花), 콜레라를 곽난(亂)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세종 29년(1447) 황해도에 번진 역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숙종 33년(1707) 평안도에서 1만명 이상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전염병은 많은 희생자와 함께 사회적 공포와 불안 등을 일으키며 인류의 역사와 사회에 커다란 재앙을 몰고 왔다.지난달 말 코로나19 새 변이 '피롤라(Pirola)'가 발생해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피롤라는 오미크론의 변이인 BA.2의 하위 변이라는데, 스파이크 단백질의 돌연변이 수가 BA.2보다 36개 이상이나 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보건당국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변이인 BA.2.86도 미국과 영국 등 6개국으로 늘었다고 한다.코로나19 감염병 법정 등급이 2급에서 4급으로 낮아졌고, 국민들의 면역력이나 의료역량이 높
-
[참성단] 조업한계선 지면기사
조업한계선 너머에서 고기를 잡았다는 이유로 어민들이 순시선에 잡혀가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던 시절이 있었다. 조업한계선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1960년대 말 얘기다. 우리 어선은 실수로, 또는 고기떼를 쫓다 조업한계선을 넘곤 했는데 순시선에 걸리면 이 같은 수모를 당해야 했다. '자국민 보호 차원'이라는 명분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현재의 인권의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던 당시 접경해역의 상황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실제로 조업한계선은 동·서해에서 북한이 우리나라 어선을 공격하고 납치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면서 생긴 법적 기준선이다. 조업한계선은 우리 어선의 피랍예방 및 안전조업을 위해 규정한 선박출입 통제선을 말한다.한국전쟁 후 접경해역에서는 1958년 4월 우리 어선 다복호가 북한의 경비정에 납치된 데 이어 1959년 7월에는 대창호 등 7척이 납치되는 등 북한에 의한 어선 피랍사건이 잇따랐다. 이에 북방한계선(NLL) 접근을 금지하는 방안이 필요하게 됐고 국방부의 요청에 따라 1964년 6월 농림부가 조업한계선을 설정했다. 그러나 피랍사건은 조업한계선이 그어진 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어선은 물론이고 1968년 1월에는 미 해군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의해 나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1967년과 1969년 두 차례에 걸쳐 조업한계선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조업한계선은 인천 앞바다 어민들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의 저자 김용구 박사는 '조기파시'로 유명했던 연평도에서 조기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로 '조업한계선'을 꼽기도 했다. 또 조업한계선이 남하하면서 많은 어민들이 백령도, 대청도 등 삶의 터전을 등져야 했다. 일부 어민들은 전남 흑산도로 이주해 홍어잡이로 생업을 이어나갔다. 당시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한 어민들에게 몽둥이로 엉덩이 맞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이처럼 어민들의 애환이 깃들어있는 조업한계선이 일부 상향 조정된다고 한다. '어선안전조업법 시행령 개정
-
[참성단] '공교육 멈춤의 날' 지면기사
대한민국은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다. 일제가 세계사에서 가장 악랄한 식민정책으로 조선을 유린했을 때도 독립투쟁의 바탕은 학교였다. 우당 이회영 6형제는 전 재산을 처분해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무장 독립운동가를 육성했다. 김약연은 이보다 앞서 북간도에 '명동서숙'을 세웠다. 식민 본토 곳곳에선 민족의 말과 역사를 가르치는 야학운동이 이어졌고, 식민지 학생들은 3·1 만세운동에 앞장섰다.6·25 전쟁 중에도 학교는 쉬지 않았다. 전시 수도인 부산에 모인 학교들은 피난학교와 천막교실을 세웠다. 산업화 기적도 교육이 뒤를 받쳐 가능했다. 식민과 전쟁을 겪은 부모들은 죽기 살기로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고, 가난한 나라에 인재가 쏟아졌다. 나라가 궁핍을 면하자 교육 받은 대중들은 민주주의 결핍을 참지 않고 민주화마저 성취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멈춘 적 없었고, 교사들은 교단을 지켰다. 교육이 근현대 세계사에 유례 없는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다.오늘은 전국 교사들이 '공교육 멈춤의 날'로 선언한 날이다. 진보적인 교원단체의 장외투쟁이 빈번했던 시절에도 대다수 교사들은 교단을 지켰다. 그 어떤 명분도 교육 중단을 거부하는 선생님들의 사명감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랬던 선생님들이 교권회복을 위해 공교육을 멈춰 세우겠다고 나섰다.서이초등학교 교사의 비극이 공교육의 제방에 구멍을 뚫었다. 무너진 교권을 인내했던 교사들의 절망이 한꺼번에 분출됐고, 학교·교사·학생·학부모 갈등으로 금이 간 공교육 제방이 붕괴됐다. 유명 웹툰 작가와 특수교사의 법정소송이 드러났고, 의정부 한 초등학교에서 두 교사가 차례로 사망한 사건은 2년 만에 억울한 사연이 밝혀졌다. 고양시와 군산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서이초등학교 교사 49재날이다. 교사들이 공교육 시계를 하루 멈춘다. 법으로 집회의 불법 여부를 다투는 정부의 태도는 협량하다. 교단을 박차고 나올 정도로 상처받은 교사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위로하는 것이 먼저다. 선생님들께도 당부한다. '공교육 멈춤의 날'에 정치 세력과 이념의 무리들이 올라타 교사들
-
[참성단] 간토대지진 100년, 일본의 침묵 지면기사
'집단 광기'로 인한 비극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중세 유럽에서 자행된 마녀사냥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의 만행 등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지금까지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숙제로 남겨두고 있다. 집단 광기로 인해 벌어진 비극 중 대표적인 사례가 '간토대지진 학살'이 아닐까 싶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방에서 일어난 규모 7.9의 대지진을 말한다. 이 지진으로 10만여명이 사망하고, 200만여명이 집을 잃었다. 특히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같은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약 6천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살해당했다. 간토대지진 발생 100주년을 맞는 1일 간토대지진 직후 벌어진 무차별한 학살을 소재로 삼은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이 일본에서 개봉한다고 한다. 1923년 9월 6일 일본 지바현 후쿠다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 영화의 줄기다. 간토대지진이 터지고 5일 뒤, 이 마을에 일본인 보따리상 15명이 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조선인이라고 착각하고는 유아와 임신부를 포함해 9명을 살해했다. 보따리상들은 자신들은 일본인이라며 기미가요까지 불렀는데 시코쿠 사투리를 듣고는 그들을 조선인으로 오인해 살해했다. 영화는 이처럼 간토대지진 당시의 집단 광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간토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이나 사과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일본인 감독이 간토대지진 학살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것에 대해서는 일단 박수를 보낸다. 감독은 "개인일 때는 선량한 일본인들이 집단으로서는 얼마나 잔혹했는지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분명 일본 관객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재일 터이다. 간토대지진 대학살의 최대 피해자인 조선인이 조연급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간토대지진을 통해 집단 광기의 실체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국내 개봉을 기다려 본다.집단 광기는 후쿠다 마을의 사례처럼 과거사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오히려 가짜뉴스를 비롯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
[참성단] '어우동' 대민지원 지면기사
군인의 본분은 국토방위다. 전·후방 구분 없이 전선을 이탈해선 안 되고 위수지역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 국가와 국민을 위협하는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에서 국민을 지원한다. 대민지원이다.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의 위기 대응 능력은 민간을 압도한다. 미국은 허리케인 수해가 심각하면 군을 동원한다. 9·11테러 때는 주 방위군에 비상을 걸었다. 중국은 1976년 탕산,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 군대가 민간인 구조의 선봉에 섰다. 쓰촨성 지진 때 군인에게 구조된 3세 아이는 지난 6월 중국 대입시험에서 전국 30등 안에 들어 화제가 됐다. 일본도 대형 지진, 태풍 재난이 발생하면 자위대를 동원한다.우리 군도 대민지원을 당연한 의무로 여겼다. 장병들이 대민지원을 학수고대했던 배고팠던 시절도 있었다. 모내기, 추수 대민지원에 동원되면 모처럼 '사제 밥'을 맛볼 수 있었고, 살벌한 영내를 벗어나는 해방감도 컸다. 그래도 대민지원의 단골 레퍼토리는 태풍, 대설 등 자연재해다. 가난한 나라에서 군은 재해를 가장 효과적이고 유능하게 수습할 조직이었고, 게다가 무상이었다.나라가 부유해지고 어려움 없이 성장한 신세대 장병들의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명분 없는 대민지원이 도마에 올랐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 현역병을 마스크 공장과 물류센터에 파견했다. 군은 대민지원이라 우겼지만, 사기업을 위한 강제노역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지난 7월 해병대 채수근 일병 사망 사건이 대민지원에 결정타를 날렸다. 폭우 피해 현장 하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원들은 구명조끼도 없이 전우의 손을 잡고 일렬로 급류에 투입됐다.강원도 인제군이 최근 지역행사인 '마의태자축제'를 앞세워 인근 부대에 대민지원을 요청했다. 분개한 부대 간부가 온라인에 제보한 대민지원 내용이 가관이다. 군 간부들에게 어우동, 내시, 왕 등으로 분장한 '움직이는 포토존'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해당 부대는 간부 50명 지원에 동의했단다. 제보 간부는 지자체가 알바생을 뽑아 맡길 일에 군 간부를 동원하는 현실에 절망한다.내년
-
[참성단] 선배시민 지면기사
인간의 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동의보감'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은 4만3천200여 일로 이를 환산하면 120세가 된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700세 동안 살았고, 100세가 넘은 나이에 아들 이삭을 낳았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민간에 전설처럼 떠도는 신화적 도인으로 개운조사 김대성 스님이 있는데, 무려 182세까지 장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이러한 이야기들은 검증이 어려운 것으로 개인의 믿음과 신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겠지만,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인간의 수명이 크게 는 것만은 사실이다. 다소 드물긴 해도 경로당이나 지역사회에서 백세 상수(上壽)를 넘긴 어르신들을 찾아볼 수 있다. 어느새 우리도 백세시대, 호모 헌드레드라는 말을 실감하는 장수사회,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나이가 들면 근육량도 줄어들고 신체의 모든 기능이 크게 저하되지만, 오히려 뇌 기능과 판단력 만큼은 60~70세에 절정에 이른다고 한다. 뇌세포, 이른바 뉴런들의 감소로 인해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도 오랜 인생의 경험이 뉴런들 사이의 연결망을 촘촘하게 만들어줘 판단력이 절정에 이른다고 한다. 과연 이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이 인류 사회의 리더들은 대개 60~70대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그런데 이제 노인이나 어르신이란 단어가 일상에서 퇴출되고 국어사전에나 나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숙 의원이 '경기도 선배시민 지원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노인을 복지나 보호 대상이 아니라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새로운 대안으로 보고 이 '선배시민'들이 사회적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제는 자연적 나이보다는 개인의 건강 상태와 능력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하고 그 경험을 펼 수 있도록 사회 제도와 인식을 바꿔 나가야 하는 시대가 왔다.그러고 보면 영조는 83세까지 국사를 관장했고, 조선 후기 여항시인 조수삼(1762~1849)은 83세 고령에 사마시, 즉 진사시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톨스토이는 1899년 79세가 되던 해 장편소설 '부활'을 펴냈고
-
[참성단] 트럼프 머그샷과 굿즈 정치학 지면기사
통상 특정 브랜드나 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기획 상품을 뜻하는 '굿즈'가 국내에서 큰 관심을 끈 사례로 '스타벅스 굿즈 대란'을 꼽을 수 있다.2020년 5월 스타벅스가 여름마다 진행하는 e-프리퀀시 이벤트 기간이었다. 음료 17잔을 구매하면 스타벅스 로고가 찍힌 굿즈를 사은품으로 주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때 서울 여의도의 스타벅스 매장에 한 고객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커피 300잔을 한꺼번에 주문하고는 굿즈(서머 레디백)만 챙기고 사라졌다. 커피 300잔은 하수구로 흘러들어갔다. 최소 120만원어치였다. 이후 '비정상적인 팬덤현상'이라는 진단에서부터 '고객의 충성도를 높인 성공적인 마케팅'이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의 사회·경제학적 분석이 쏟아졌다.굿즈에 특정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쿠바 혁명 지도자 '체 게바라'가 원조일 듯싶다. 의사, 쿠바 국립은행 총재, 혁명전사 등 이색 이력의 소유자인 그를 두고 철학자 사르트르는 '지성과 저항정신을 두루 갖춘 완전한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보다 더 강렬한 것은 사진 속 그의 이미지다. 검은 베레모에 긴 머리칼과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굳게 입술을 다문 그의 모습은 '혁명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이 남미 사내는 1990년대 말쯤부터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체 게바라 평전 읽기 열풍이 거세졌는데 대학가 술집 벽면에서도 베레모를 쓴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어 체 게바라의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 커피잔 등 굿즈가 쏟아져 나왔다. 지금도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그의 모습을 담은 티셔츠나 에코백을 구할 수 있다.또 하나의 굿즈가 지구촌 이슈로 떠올랐다. 이른바 '트럼프 굿즈'다. 전·현직 미국 대통령 최초로 머그샷(범죄인 식별 사진)을 찍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머그샷을 넣은 티셔츠와 모자, 머그잔 등을 굿즈로 내놓아 판매한 것이다. 그 결과, 이틀만에 710만달러(약 94억2천200만원) 어치가 팔렸는데 2024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 24시간 안에
-
[참성단] '탕후루' 쓰레기 지면기사
설탕은 소금 못지 않게 음식물 보관에 유용하다. 박테리아와 곰팡이 등 음식을 부패시키는 미생물은 고농도의 설탕 용액에서 번식하기 힘들다. 설탕물, 즉 시럽이 미생물 세포의 수분을 빼앗아 죽이기 때문이다.설탕의 이런 효능은 동서양에서 두루 활용됐다. 과일을 설탕에 재서 발효시킨 청(淸)은 우리의 전통 식재료로 지금은 매실, 유자뿐 아니라 오렌지, 레몬, 딸기 등 거의 모든 과일을 청으로 숙성시켜 각종 식음료 재료로 활용한다. 인삼 등 식물을 설탕에 졸여 만든 정과(正果)는 명절 선물용으로 인기다. 서양에서도 과일을 설탕에 졸여 잼으로 만들어 먹거나, 설탕시럽에 과일을 보관했다 요리에 활용하기도 한다.탕후루(糖葫蘆)는 달디 단 설탕과 새콤달콤한 과일을 가장 직관적으로 조합한 중국 전통 당과다. 원래는 시큼한 산사나무 열매를 꼬치에 일렬로 꽂은 후 설탕 시럽을 발라 굳혀 만들었다. 거란족의 간식이 중국 전역에 퍼졌다는데, 굳어 반짝반짝 빛나는 시럽이 생명이라 겨울 간식으로 자리잡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딸기, 체리, 포도 등 한 입거리 단 과일을 가리지 않고 재료로 활용한다. 시럽이 부서지는 식감과 극강의 단맛 덕분에 국내에서도 길거리 간식으로 대유행 중이다.최근 인파가 붐비는 거리들이 탕후루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먹다 버린 탕후루 쓰레기가 곳곳에서 사람들을 괴롭혀서다. 탕후루 꼬치가 미화원의 손을 찌르고, 먹다 남기거나 버린 탕후루의 끈적끈적한 시럽이 길거리와 다른 가게의 미관을 해치고 불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특히 청결한 이미지가 생명인 카페들은 탕후루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반입을 저지하고, 탕후루 점포 주인들은 공공의 적이 될까봐 전전긍긍이란다.음식은 문화다. 아무리 맛있어도 문화권에 따라 금기로 여기고 기피하는 음식이 있으니 이를 존중하는 건 국제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맛과 취향을 초월해 먹은 자리를 깨끗이 하는 일이야말로 만국 공통의 음식문화이다.'맛'과 '맛집'은 대중문화의 키워드다. 각종 영상매체가 쏟아내는 맛집을 찾아 국내는 물론 해외를 순례하는 세상에서 맛은 양극화의 상징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