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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 싸움 지면기사
독수리의 첫 새끼가 둘째 새끼를 물어 죽이는 증후를 '카인 증후군'이라 한다. 카인(Cain·가인)이라면 아담의 맏아들로 둘째 아들인 동생 아벨을 죽였다는 그 카인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은 형이 아우를 죽인 것이다. 일본의 제50대 간무(桓武)천황도 동생 하라야(早良)를 죽였다. 그런데 훗날 본인이 죽을 땐 아우의 원령(怨靈)에 몹시 시달렸다고 한다. 조선 태종 이방원(李芳遠)도 그가 죽인 이복동생들의 원혼에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를 비롯한 동양의 모든 왕조와 메로빙, 카롤링 왕조를 비롯한 모든 서양 왕조의 뼈(骨)와 살(肉)끼리의 싸움(相殘), 형제간 살인의 예를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으랴.연개소문의 이복 형제들 싸움으로 고구려가 망했듯이 골육상잔으로 나라도 망한다. '인류사(史)=카인 증후군'의 역사다. 하기야 인류가 아담의 후손이라면 카인도 그랬듯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일란성 쌍둥이끼리도 죽인다. 한 여자를 싸고 쌍둥이끼리 벌이는 1990년대 초 뉴질랜드의 공포영화 '저주의 섬'만 해도 그렇다. 그렇다면 페르난도 콜로르 브라질대통령이 청탁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동생 페드로 콜로르가 형의 '부정축재와 마약 복용'을 폭로하자 형도 질세라 '동생은 정신병자'라고 일축한 것쯤은 약과다. 그 동생은 형이 퇴임한 93년 형의 스캔들을 모아 책까지 냈다.굶거나 말거나 나 몰라라 하는 형제는 또 얼마나 많은가. 가난한 베토벤이 떳떳치 못한 방법으로 부와 명성을 얻은 형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가난한 음악가를 비웃 듯 '크리스토프 반 베토벤, 지주(地主)'라고 사인한 거절 편지만을 보냈다. 그러자 베토벤은 '루드비히 반 베토벤, 뇌주(腦主)'라고 사인한 답장을 썼다. 형의 자랑인 '지주'의 대칭어로 '뇌주'를 택했던 것이다. 상속재산을 둘러싼 법정 싸움의 재벌 형제들도 보기 딱하고 흉하다. 현대의 정몽헌 회장이 주도하던 대북 사업에 현대차도 중공업도 외면, '마이 웨이'만을 가겠다는 설에 화제가 분분하다. 예나 이제나 '카인 증후군'은 어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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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오페라 지면기사
오페라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자며 소프라노다. 또 그를 '첫번째여자(primary women)'라는 뜻의 프리마돈나라고 부르는데 오페라는 이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자의 이야기다.작품들의 제목도 여주인공을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아이다' '토스카' '마농레스코' '투란도트' '수녀 안젤리카' '노르마'등은 여성 이름이 그대로 제목이 되어버린 경우다. '라트라비아타' '나비부인' '라 파모리타'등도 여자주인공을 뜻한다. 또 오페라의 여자주인공은 대부분 죽는다. 대단원의 막도 프리마돈나의 죽음으로 장식되며 죽음에 이르는 경위는 다양하지만 대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오페라의 어원은 라틴어 opus에서 유래됐고 opera(dramma)in(per)musica의 준말이다. 최초의 오페라공연은 1597년 르네상스말 이탈리아 피렌체의 베르디백작 궁정에 모인 귀족들이 고대그리스극을 상연(上演)하자는 논의 끝에 탄생시킨 그리스신화를 소재로한 다프네라는 음악극이다. 이탈리아의 소도시 베로나는 야외 오페라로 유명한 세계적 관광명소다. 여름 3개월간 이도시 중심부의 원형경기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를 보려고 전세계에서 매년 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린다. 기원후 30년에 세워진 로마시대 유적에서 한여름밤의 낭만을 즐기려는 관광객들 덕분에 인구 20만명의 소도시 베로나는 이탈리아에서 몇번째 안가는 잘사는 도시로 꼽히고 있다.베로나 벤치마킹덕분인지 우리나라도 야외오페라가 낯설지 않다. 지난 5월 상암경기장에서 '투란도트'가 공연되더니 오는 9월에는 잠실경기장에서 '아이다'가 선보인다고 하니 말이다. 60억~70억원의 제작비를 들이는 이런 오페라와 비교되지 않지만 지난 1일부터 강원도 평창 한적한 시골 '메밀꽃필무렵 오페라학교'에서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다. 저변확대를 소홀히 한채 상업적인 수익에 치우치는 공연문화가 만연하는 현실에서 신선함이 아닐수 없다. 폐교된 초등학교분교를 활용한 이 공연장에는 오페라의 매력을 느끼려는 관람객들로 연일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우리문화의 폭을 넓히는 측면에서 연례적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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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지면기사
'지구는 질식하고 있다. 내가 들어갈 길을 트려고 땀을 흘리고 있다. 나는 산 채로 묻힐 염려가 없다'. 어느 시인의 유서(遺書) 같지만 시인은 시인이로되 피아노의 시인인 쇼팽의 유서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건 버나드 쇼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써 달라는 유서다. 전자가 시적(詩的)인 로망을 띠고 있다면 후자는 묘지까지 끌고 갈 익살이다. 그러나 유서는 엄숙하고도 지엄하다. 유산 분배 유서가 아니더라도 칸트의 말처럼 '가장 불행한 생애의 기록이자 가장 효력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고 이승과 저승을 잇는 절박한 결어(結語)이기 때문이다.한데 요즘 말로 좀 '썰렁'한 유서도 있다. '①개혁·개방노선은 바뀌어서는 안된다 ②군(軍)에 대한 당의 지도를 견지하라' 등 중국 공산당 정치국에 전달한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이른바 '정치 유서 12조(條)'가 그것이고 '덩(鄧)은 허풍선이 왕초다. 마오(毛澤東)를 배반하다니! 곱게 죽지 못할 것'이라고 한 장칭(江靑)의 유서다. '아내에게 좋은 침대를 물려준다'는 셰익스피어의 유서 역시 좀 그렇다. '살아 있는 유서(living will)'라는 것도 있다.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재클린 케네디가 죽기 몇 달 전인 1994년 2월 '모든 투약을 끊고 집으로 돌아가 임종을 맞겠다'며 병원 문서에 서명했던 것처럼 의사에게 미리 요청해 두는 '각서 유서'가 즉 '살아 있는 유서'다.88년 4월 빌딩에서 투신한 범양상선 박모 회장의 '인간이 되시오'처럼 유행어가 돼버린 유서도 있고 '모든 판검사를 죽이고 싶다'는 어느 탈주범의 유서(그 해 10월)도 있었다. 가장 멋있는 유서의 주인공이라면 “나 오늘 갈란다. 무(無)라 무라…”라고 한 세칭 판사승(判事僧) 효봉(曉峰)스님일지 모른다. 김윤규 사장에게 '당신 너무 자주 하는 윙크 버릇을 고치십시오'라고 쓴 이번 정몽헌 회장의 농담 같은 유서도 여유가 넘친다. 그런데 저승길이 뭐 그리도 급해 그런 난필로 쫓기듯 휘갈겼던가. 그리고 '유분(뼛가루?)을 금강산에 뿌려 달라'고 했는데 선산에 매장한다는 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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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下野) 지면기사
국어사전에는 '하야(下野)'를 '(시골로 내려간다는 뜻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야인이 됨'이라는 뜻으로 새겨놓았다. 평생 관료로서 명예롭게 봉사하다가 말년에 낙향해 남은 생을 표표히 즐기는 삶을 일컫는 듯 하다. 상상해 보라. 목민(牧民)의 사명을 다하고 부모가 낳아준 곳으로 돌아가 순전히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만끽하며 목가적인 삶을 즐기는 관리의 모습을. 하야는 이렇듯 태평의 시대에 어울리는 은퇴한 관리의 삶이다.그러나 하야에 정치가 개입되면 삶의 궤적이 매우 복잡해진다. 야은(冶隱) 길재(吉再)는 조선 태종 이방원의 절친한 벗이었다. 그러다 방원의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자 벼슬을 던지고 하야했다. 방원은 길재에게 출사를 간청했지만 길재는 자신이 '망국(고려)의 포로'라며 극구 사양하고 독야청청했으니 정변의 시절에는 하야 마저 용기가 필요했다. 하야 인사의 대표격인 중국의 백이숙제를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 성삼문은 '새 왕조의 땅에서 돋아난 나물을 뜯어먹었다'하여 책망했을 정도다.한국의 현대 정치사도 하야의 오욕으로 얼룩진 세월이다. 국민을 조금만 두려워할 줄 알았더라면 '국부'로 추앙받았을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에 격분해 들고 일어난 4·19혁명으로 하야해야 했고, 윤보선과 최규하는 군부 쿠데타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 하야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이들 처럼 하야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과 자식의 원죄로 하야 못지 않은 침묵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이렇듯 한국 정치에서 '하야'는 강제에 의한 헌정중단이나 권력 유고 상태를 의미한다.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장·차관과 청와대 참모진이 참석한 국정토론회에서 '대통령 하야하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고 한다. '부당하게 짓밟고, 항의한다고 더 밟고, 맛볼래 하며 가족을 뒷조사하고, 집중적으로 조지는' 언론을 성토하던 끝에 나온 말이다. 글쎄, 언론이 언제 노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야'라는 단어의 정치적 극단성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이 쉽게 내뱉을 말이 아니었지 싶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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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카메라 지면기사
1999년 3월 18일 러시아 국영 RTR TV 방송 시청자들은 '전혀 뜻밖' 정도가 아니라 상상도 할 수 없는 화면에 깜짝 놀랐다. 몰래카메라에 찍힌 검찰총장 유리 스쿠라토프의 외도 장면이 화면 가득히 방영됐기 때문이다. 순간 그의 명예는 이름(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났고 검찰 측은 “즉각 사생활 침해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러시아 정계는 그를 정치 소용돌이의 핵으로 껴안은 채 크게 몸살을 앓았다.몰래카메라 작품(?) 감상이야 흥미롭다. 그러나 찍힌 본인에겐 황당함을 넘어 치명적이기 쉽다. 89년 12월 27일 일본 오사카 지방법원(地裁)이 사진주간지 '포커스'와 '푸랏슈(플래시)'에 각각 220만엔과 100만엔의 배상판결을 내린 것도 그런 까닭이다. 에이즈로 죽은 29세 여성의 부모가 몰래 촬영한 딸의 유영(遺影)과 경력 등을 게재한 두 잡지를 걸어 딸의 초상권과 부모의 명예를 침해했다고 고발한 것이다. 그 때 다바타(田畑豊) 재판장의 판결문이 인상적이었다. “사자의 인격권(人格權)까지는 몰라도 여성의 명예와 프라이버시를 침해했고 고인에 대한 양친의 추모의 염(念)을 현저히 침해했다.”그런가 하면 97년 1월 22일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보로 연방법원은 푸드라이언이라는 슈퍼체인 식품회사에 위장취업,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썩은 고기와 유효기간 초과 등 폭로기사물을 만들어 방송한 리처드 캐플런 등 TV 프로듀서 2명에게 4만5천달러를, 방송한 ABC엔 550만달러(약 66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예전엔 몰래카메라, '몰카'라고 하면 스파이 영화 속 장면이나 불륜 장면을 잡는 흥신소 직원 등 사설 탐정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흔하고 초상권 침해 등 시비 또한 잦다. 그래선가 모자이크 얼굴을 비롯해 조명을 역광 처리한 실루엣형, 큰 화분 뒤에 앉히는 베트콩식, 화면을 뿌옇게 처리한 초점 아웃 등 초상권 보호기법도 여러 가지다.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담긴 몰래카메라 사건의 귀추가 주목된다. 과연 '누가, 왜' 의문점과 그 파장 사이클이 어느 크기만큼에서 멈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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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탕 지면기사
초복 중복을 지나고 말복을 남기고 있다. 三伏(삼복)더위중에는 개고기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개고기는 먹지 않지만 서양에서도 더운 날을 '도그 데이(Dog days)'라 부른다. '개별(天狼星)'이 뜨는 시기라는 것이다. 더위가 가장 극성을 부리는 여름이면 우리 조상들은 보신용으로 개를 삶아 먹는 풍습이 있었고 요즘도 그러하다. 허약체질을 보충하고 잔병을 물리친다는 속설이 있고 실제로 효과를 본 사람도 많을 만큼 대중적인 보양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북한에서도 '단고기'라 하여 인기를 끌고 있기는 마찬가지다.개들에게는 수난의 계절이다. 시골에서는 이 때쯤 잡아 먹을 요량으로 강아지를 데려다가 열심히 기르기 시작하기도 한다. 그래서 伏(복)자는 사람이 개를 잡아 먹는 날이라 하여 '사람 인(人) 변에 개 견(犬)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그럴 듯한 해석도 있다. 구탕(狗湯), 구장(狗醬), 개장국, 지양탕(地羊湯), 보신탕 등으로 불리다가 요즘에는 영양탕(營養湯), 또 사시사철 즐긴다고 해서 사철탕으로 젊잖게(?) 불리고 있다.이같은 개고기의 식용에 대한 논쟁은 국제행사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88 서울올림픽 때도 그랬고 지난 한·일 월드컵대회에 앞서서도 국제축구연맹(FIFA)이 월드컵 기간동안 개고기 요리를 금지토록 요구해 식문화에 대한 간섭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동물학대에 반대하는 프랑스의 전직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도 한국의 개고기 소비가 야만스런 행동이라고 거들었다가 한국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최근에는 충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안용근교수가 개고기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관련자료를 담은 만화집을 발간키로 했다. 전통음식인 보신탕에 대한 비판은 비논리적이라는 것이다. 서구의 애견문화에 대해서도 가족제도 붕괴에 따른 부수적인 현상이라 주장하고 자신들이 개를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개를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대학교수까지 개고기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개고기 예찬에 나서는 것을 보면 몸에 좋은 음식임에는 틀림없어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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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사 지면기사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13년간에 걸친 역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집필 과로로 돌연사(突然死), '잃어버린 시간'을 못 찾고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영영 사라져간 것은 51세 때인 1922년이었다. 일본 최고의 교양잡지 '분게이●주(文藝春秋)'를 창간한 작가 기쿠치(菊池寬)의 1948년 60세 돌연사도 과로가 원인이었다. 훗날 아들이 발견한 그의 절필(絶筆) 원고(400자 5장)를 릴레이 집필한 작가 이노우에(井上)는 “고스트 라이터(유령 필자)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93년 8월 보두앵 벨기에 국왕(62)과 99년 3월 알 할리파 바레인 국왕(65)도 심장마비로 돌연사했고 이탈리아의 지휘자 시노폴리는 재작년 4월 베를린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지휘하다 쓰러져 55세로 숨졌다. 모두가 중년 나이, 한창 일할 나이였다.독일의 작곡가 멘델스존은 중년도 아니었다. 38세 청년 때(1847년) 뇌일혈로 급사(急死)했다. 아까운 나이의 이른바 '돌연사증후군(突然死症候群)'은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심하다. 작년 11월23일 일본서 열린 후쿠치야마(福知山)마라톤과 나고야(名古屋)마라톤에서는 58세 2명, 59세 1명 등 하루 3명의 돌연사 기록을 세웠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펄펄 뛰는 나이, 생때같은 젊음의 돌연사다. 지난 6월27일 프랑스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 컵 축구대회에서 경기 중 쓰러져 죽은 카메룬 선수 비비앵푀만 해도 그렇고 지난 6월16일 쓰러진 14세의 일본 스모(씨름) 선수 카미야(神谷信行)와 7월22일 숨진 15세의 유도 선수 도자와(戶澤凉)만 해도 기가 막힐 일이다. 엎어 재우는 젖먹이의 돌연사도 흔하고 발설하기도 민망한 복상사(腹上死)도 있다. 지난 90년대 초 태국에선 잠을 자다 죽는 '야면돌발사증후군'으로 수천명이나 희생되기도 했다.엊그제 57세의 개인택시 운전기사가 운전 중 돌연사했다는 사건 역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단 한 사람의 손님을 태운 택시도 그렇거늘 만약에 출퇴근 만원버스나 지하철 운전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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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지면기사
황금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집착은 인류역사만큼이나 길다. 그리고 인간욕망의 상징으로서 허영의 도구로 화폐의 기준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셰익스피어는 아테네의 타이먼(Timon of Athens)에서 “오 황금 아름답고 귀한 번쩍이는 금. 저주로운 티끌이여, 보편적인 창부여, 분쟁의 단서여”라고 비판했다. 그리스의 서정시인 핀타로스도 “금은 제우스신의 아들이다. 나방도 그것을 집어삼키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 최고의 소유물에 먹혀버린다”고 기원전 5세기에 말한 바 있다.이처럼 증오하면서도 멀리할 수 없는 황금의 위력속에 인간은 언제나 소유의 욕망을 불태우고 있다. 과거나 현재 모두 마찬가지다. 또 불안과 공포의 시대가 닥칠때마다 어김없이 금을 모으는 행위에 집착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이런 습성은 큰 차이가 없다.현대에 와서는 주요 금 생산국인 미국 호주 캐나다는 물론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등 소규모 금맥 보유국까지 나서고 있다. 금 확보가 이처럼 어렵다보니 사막지대인 미국 네바다 주에서는 먼지크기의 금을 얻기위해 바위에 박테리아를 배양시켜 다른 광물로부터 금을 추출하기도 한다. 1t의 바위에서 1g의 금을 모은다고 하니 어려움이 짐작간다.미 광업국의 추산에 따르면 인류가 생산한 금의 총량중 85%인 9만5천t 가량이 경제현장에 있으며 이중 3만6천t이 각국 정부소유고 나머지 5만9천t이 기업 또는 개인소유다. 금은 85%가 장신구에 사용되며 15%가 산업용으로 쓰인다. 최근 장신구 사용이 늘면서 금의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금생산량이 42% 증가한 반면 금세공품의 소비는 68% 증가했다. 세계 각국의 골드러시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금맥을 찾아 현대 LG등 종합상사들도 해외로 나서고 있다는 보도다. 단순한 수출입 업무대행에서 탈피, 새 수익원을 찾는다고 하나 자연을 파괴한다는 지탄을 받을까 염려된다. 환경론자들이 골드러시를 “건강의 원천인 산을 귀고리와 목걸이와 바꾸고 있는것”이라고 질타해서라기 보다 광산개발은 자연파괴를 필연적으로 불러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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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브 호프 지면기사
찰리 채플린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entertainer), 연예인으로 꼽히는 보브 호프(Bob Hope)가 100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연예인'이라면 글자 그대로 '재주, 예술(藝)을 펼치는(演) 사람'이다. 그런데 장장 100년을 누리면서(享年) 예술을 펼쳤는데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할 것인가. 어쨌거나 코미디언, 배우, 가수, 쇼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그가 펼친 연예, 예술 인생의 여운은 영원할 것이다. 작년 5월29일 99세 생일엔 미국 정부가 LA 국립묘지에 그의 이름을 딴 교회를 헌정했고 100세 생일인 지난 5월29일엔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미국의 30개 주가 '보브 호프의 날'로 정한데다가 LA의 할리우드가(街)와 바인로(路)가 교차하는 네 거리 광장을 '보브 호프 스퀘어'로 개칭했기 때문이다.'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人死留名)'는 이름도 이름 나름이다. 그의 이름은 진하고도 질기게 남을 것이다. 지난 5월 할리우드에서 열린 100세 탄생일 축하 행사 땐 해병대 악단이 그의 데뷔작 '100달러 대방송'의 주제가 'Thanks for the Memory'를 연주했고 하늘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항공기 4대가 기념 비행을 펼쳤다. 그날 가장 열렬한 박수를 보낸 쪽은 그의 아들과 손자들, 그리고 절친한 친구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아들 마이클 레이건이었다. 그러나 주인공 보브 호프와 부인 돌로레스(94)는 보이지 않았다. 2000년이래 거동이 불편한 탓이었다.그가 1987년 5월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프 공군기지에서 열린 84회생일 특별 공연 때 나란히 선 친구 레이건보다도 돋보이고 더 많은 박수를 받은 까닭은 무엇인가. 레이건처럼 배우에서 정치가로 표변치 않은 채 연예의 길만을 고수한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공주와 해적' '겁쟁이 쌍권총' 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첫 영화 '1938년의 대방송'에서 셜리 로스와 함께 부른 노래는 오스카상을 타기도 했다. 웃기고 노래 불러 세상을 즐겁게 한 그는 이름 그대로 20세기 인간 정서의 '희망(Hope)'이었다.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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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신성인 지면기사
자신을 죽여 인(仁)을 이루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은 인간이 발현할 수 있는 이타심의 최고 경지다. 이때 살신 보시(布施)의 대상은 국가와 민족, 이웃 등 이해관계를 초월한 순수한 집단이나 개인이어야 한다. 대가나 이해가 얽혀서야 '살신'의 빛이 바래고 '성인'도 어렵기 때문이다. 살신성인을 성취한 의인들이 각박한 인간세상을 밝혀주는 등불로 영원히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2년전 동경 신오쿠보(新大久保) 전철역에서 선로에 추락한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의 살신성인은 국가간의 반목까지도 녹여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당시는 일본 지도층의 잇단 군국주의적 망언으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유학생 이씨의 이타적 살신은 현해탄 양쪽의 국민을 인간애로 소통시키는 장중한 휴먼드라마를 연출했고, 양국민 모두 서로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권력과 재력의 주구(走狗)로 살신한 경우 한낱 개죽음으로 폄훼되지만 개의 죽음에도 구분이 있다. 온몸에 강물을 적셔 술취한 주인을 불길에서 구하고 의구총(義狗塚)을 남긴 조선 인조 시절 선산의 한 견공(犬公)이나, 고려 고종때 간행된 보한집(補閑集)에 같은 내용으로 등장하는 오수(獒樹)의 의견(義犬)은 살신으로 '사람이 되는(成人)' 경지에 오른 동물들이다. 이렇듯 사람 아닌 짐승들도 대의를 행하면 인간세상에 감동과 교화의 빛을 비추건만, 우리 주변은 지금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 우글대는 것 아닌가.그런데 요 며칠 우리 사회에 사람 살 맛 나는 훈기가 감돌고 있다. 지난 25일 달려오는 새마을호 열차에 뛰어들어 어린 아이를 구하고 중상을 입은 역무원 김행균씨의 의행이 빚어낸 감동 때문이다. 잘려나간 자신의 발목 보다는 밀쳐낸 아이의 안부를 먼저 챙겼다는 김씨를 생각하면 아무나 살신성인의 반열에 오르는게 아니지 싶어 부끄러움이 앞선다. 천만다행 김씨가 살신을 모면했고 두 다리도 잘 치료가 됐다니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었을 뿐이다. 살신성인의 살아있는 귀감으로 오래도록 우리 사회의 빛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나저나 민망한 사정은 이해하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