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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신외교 지면기사

    바보, 천치, 등신, 숙맥, 맹추, 먹통, 제웅, 얼간이, 멍청이, 머저리, 맹꽁이, 칠뜨기, 득보기, 반편이, 바사기, 째마리, 멍텅구리, 어리보기, 인숭무레기…. 바보를 지칭하는 이 많은 우리말 중 한나라당 이상배의원은 '등신'을 골라잡아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등신 외교'라고 평가해 물의를 일으켰지만 일본 제1야당 대표 간 나오토(菅直人)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를 벌이던 중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의 대미 외교를 가리켜 '금붕어 똥 외교'라고 질타해 화제가 됐다. 미 텍사스주 크로포드 목장으로 초대된 고이즈미가 카우보이 차림의 부시를 졸졸 따라 다니는 모습을 비꼰 것이었다. '등신'과 '금붕어 똥'이라면 어느 쪽이 더 심한 표현일까.블레어 영국 총리는 '부시의 푸들(복슬강아지)'이 된 지 오래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계획이나 이라크 전쟁 등 국제 문제에 있어 무조건 부시를 추종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차우차우'를 비롯해 복슬개 종류인 '푸들'이라 하는가. 훤칠한 그의 키로 보아서는 '그레이하운드'나 '그레이트 데인'을 더 닮지 않았는가. 하긴 푸들이 더 애완용이긴 하지만.사대주의(事大主義) '굴욕 외교'라면 모든 외국 사신이 황제 앞에서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중국의 이른바 '삼궤구고(三詭九叩)'의 예(禮)부터 떠오른다. 청나라 사신 기록인 '연행록(燕行錄)'을 보면 조선 사신들은 '삼궤구고' 정도가 아니라 '삼십궤구십고'도 불가피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1792∼1794년 부임한 초대 영국 대사 매카트니(Macartney)는 신임장 증정 의례에서 그런 강요를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사대주의 굴욕 외교가 없을 수 없다. 97년 6월26일 오전 11시40분 예정의 클린턴과 YS 회담이 클린턴의 친척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오후 8시로 연기된 예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로 인해 멕시코 방문 일정이 밀린 것도 있을 수 없는 결례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굴욕 외교' 논란이 일지 않도록 대등해야 하고 당당해야

  • 상업적 '世代 作名' 지면기사

    최근 모 광고기획사가 마케팅 보고서를 통해 17~39세의 한국인을 P세대로 명명해 화제다. 열정(Passion)과 힘(Potential Power)을 바탕으로 사회 전반에 걸친 참여(Participation)를 통해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는 세대(Paradigm-shifter)로 4P를 한데 모아 P세대라는 것이다. 이 회사는 P세대를 386세대의 사회의식, X세대의 소비문화, N(네트워크)세대의 라이프스타일, W(월드컵)세대의 공동체 의식이 융합된 '종합판 세대'라고 분석했다.그러나 웬 호들갑인가 싶다. P세대 규정 조건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의 세대가 P세대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의문이 들어서다. 열정과 힘, 참여는 시대를 초월해 이 세대를 특정하는 가치이다. 4·19혁명과 6·10민주항쟁, 프랑스대혁명과 공산혁명에서 보듯 이들은 혁명의 세대이며 항거의 세대로서 역사의 진퇴와 시대의 명암을 갈랐던 모든 시대와 세기의 주역들이다. 이들 세대가 4P를 상실한다면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이자 죽음의 세기인 것이다.'P세대'라는 갑작스러운 작명에 상업적 의심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17~39세라면 구매의욕이 가장 왕성한 연령층이다. 그동안 10대와 20대에 기사작위 수여하듯 X, N, W세대라는 감각적인 명칭을 부여할 때 마다 관련 마케팅이 성행해왔다. N세대를 겨냥해 매월 14일을 괴상한 기념일로 정해 관련 상품 소비의 날로 지정한 데이마케팅이 대표적이다. P세대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갑을 여는데 인색하지 않은 세대를 정치적, 사회적으로 근사하게 포장한 셈인데, 앞으로 관련 마케팅이 봇물을 이룰 것이니 P세대가 불황탈출을 선도할지 지켜볼 대목이다.문제는 소위 P세대가 처한 현실이 고단한 점이다. 신용불량자 300만명의 절반이 20~30대이다. 카드빚으로 인생을 가압류 당하고 치솟는 집값·전셋값에 짓눌린 청춘들이 즐비한 세대를 향해 'P세대'라는 작명 자체가 성급하다는 생각이다. 괜히 P세대라고 우쭐대다가는 천대(?)받는 사오정, 오륙도 세대에 이르기도 전에 패가

  • 군국주의 일본 지면기사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적 인물이라면 전후(戰後) 천재적인 인기 작가 미시마유키오(三島由紀夫)부터 꼽힌다. 70년 11월 이른바 다테(楯·방패)회 회원 4명을 이끌고 육상자위대에 침입, 총감을 감금하고 막료 8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발코니에 나와 '자위대의 각성과 일본의 재무장'을 외치며 할복자살한 인물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 부활의 꿈은 6·25 발발 직후인 50년 7월 주일 연합군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요시다(吉田茂) 총리에게 보낸 '일본 경찰력 증강에 관한 서한'이 자위대 탄생의 계기가 되면서부터 꿈틀거렸고 그 경찰예비대가 보안대(52년)를 거쳐 54년 자위대로 발전하면서부터였다.일본은 80년대 들어 방위예산을 매년 5∼7% 늘렸고 88년 영국 국제전략연구소 연차보고서는 일본의 국방비를 미국, 소련에 이어 세계 3위라고 기록했다. 더구나 91년부터 5년간의 '신중기방위력정비계획'엔 무려 22조7천500억엔을 투입했다. 24만에 불과한 병력이지만 첨단 무기의 방위력은 단연 세계 2위로 부상한 것이다. 그런 일본을 92년 1월 중국의 권위 있는 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가 몹시 염려했다. “①주문(손오공의 목을 조르는 呪文) 풀린 손오공 ②1국(國) 평화주의와 1국 번영주의 포기 ③평화헌법 개정 가능성” 그 염려 그대로 불과 4개월여만인 6월15일 일본 의회는 PKO(국제평화유지활동) 법안을 통과, 파병의 길을 열었고 드디어 이번엔 북핵 위협을 빌미로 '유사(有事) 3법'까지 만든 것이다.'전쟁대비법'이라지만 그 것만은 아니다. 금년 국방비 1천853억위안(약 20조8천억원)에다 매년 10%씩 늘리는 중국이든 어디든 “나와라!”는 전쟁 폼이다. 65년 2월 오카다(岡田春夫) 의원이 폭로한 극비문서 '미쓰야(三矢) 연구'도 “북(소련)의 위협 못지 않게 서(한, 중)도 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번 '유사법' 통과에 있어 그 곳 야당과 일부 시민 단체의 반대와 주변국의 염려쯤은 전혀 고려치 않았다. 문제는 일본 구니다치(國立)시 우에하라(上原公子) 시장의 염려

  • 에어컨과 냉방병 지면기사

    에어컨을 가까이 해야 하는 계절이 벌써 돌아왔다. 요즘 한낮의 기온이 30도에 육박하자 길거리를 돌아다니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벌써부터 에어컨을 가동해 사무실마다 냉방병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는 보도다. 냉방된 실내와 실외의 온도차가 스트레스가 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두통 식욕부진 코막힘 현상이 나타나는 병이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이면에는 치러야할 대가도 있는 모양이다.타임지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세기 인간생활을 변화시킨 2가지 발명품은 에어컨과 냉장고라 한다. 냉장고는 인류의 식생활을, 그리고 에어컨은 생활환경을 변화시켰다. 에어컨은 우리 말로는 공기조화기라고 부른다. 에어컨을 발명한 사람은 미국인 캐리어다. 전 세계적으로 캐리어라는 명칭이 바로 에어컨으로 통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초창기의 에어컨은 가정과 사무실을 위한 냉방장치가 아니었다. 1902년에 캐리어에 의해 최초로 설치된 에어컨은 효과적인 생산을 위한 인쇄공장의 도구였던 것이다.당시 인쇄공장은 습도와 온도의 변화로 인해, 종이가 변질되고 색상이 바래졌기 때문에 인쇄업자에게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캐리어는 이 공기습도를 조절하기 위하여 공기를 냉각시켜 공기 중의 수증기를 응축, 습기를 제거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1921년에 이르러서 오늘날 프레온가스로 알려진 냉매를 채택하게 된다.이런 에어컨이 1930년대에 호텔과 대형극장에 설치되고, 또 1943년 GM이 자동차에 카에어컨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어컨에 쓰였던 프레온가스가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인정되어 지금은 새로운 물질인 '신냉매'로 바뀌어졌지만 아직도 에어컨은 에너지 낭비의 대표적인 표본이자, 환경론자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에어컨 가동으로 인해 발산되는 열 때문에 도시의 평균 온도가 2도 정도 더 올라가기도 하고 냉방병을 유발한다. 실내·외의 온도차가 5도를 넘으면 냉방병이 발병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무더울 것이라는 올 여름 기상전망이 나오고 경제사정도 여의치 않음을 볼 때 실내온도를 조금이라도 높여 에너지를 절약하고 냉

  • 현충일 지면기사

    '현충일(顯忠日)'이란 순국한 선열과 국군 장병의 '충혼(忠魂)이 나타나는(顯) 날(日)'이다. 이런 현충일을 미국이 '기억하는 날(Memorial Day)'이라고만 하는 건 경박하고도 무엄한 것 같다. 날짜도 왔다 갔다 5월 마지막 월요일이다. 영국도 1차 대전 휴전 기념일(Armistice Day)인 11월11일 직전 일요일로 역시 '기억하는 일요일(Remembrance Sunday)'이다. 우리의 현충일을 고정한 건 잘한 일이다. 다만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악(惡)의 상징인 666을 연상케 해 좀 그렇고 섹스와 마약을 부추기는 록 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음반 666이 떠올라 좀 안됐다.현충일만 오면 가슴과 뼛속까지 사무치는 노래와 시가 있다. 한명희(韓明熙) 작사 장일남(張一男) 작곡의 가곡 '비목(碑木)'과 모윤숙(毛允淑)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 이 얼마나 구슬픈 가락이며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도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죽어간 마지막 말을…' 이 얼마나 처절한 시란 말인가.오늘도 국립묘지의 하얀 비석들과 전사자 미망인들의 눈부신 소복 행렬부터 시야를 뒤덮고 그녀들의 하염없이 들먹거리는 어깨와 단장(斷腸)의 오열이 가슴을 파고든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의 16만2천여 영령 중 6·25 전사자가 80%를 넘는다. 스무남은 뜨거운 피로 죽어간 영령들과 청상과부들은 이제 모두 70을 넘긴 세월이 흘렀고 '나는 이를 악 물고 너를 보내리라/ 이루지 못한 청춘의 꿈 저 세상에서 이루려무나' 묘비를 부여안고 오열하던 부모들은 거의가 저승으로 떠나갔다.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스무남은 젊은 피로 죽어가며 이루지 못한 청춘의 꿈을 보상하고 스무남은 젊은 아내와 유복자의 그 길고도 긴 사무친 원통함을 해원(解寃)해 줄 수 있는가. 군신(軍神) 마르스(Mars)와 대지의 신 가이아(Gaia)가 끌려온 전범(

  • 오뉴월 개팔자 지면기사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애견인구는 500만명에 애완견은 200만마리 안팎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애견산업' 규모가 연간 1조원을 넘어 산술적으로 따진다면 개 한 마리당 연평균 50만원 이상을 소비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애완견의 수입도 크게 늘어 지난해에만 1만3천여마리가 수입돼 전년보다 13배나 늘었다고 한다. 기본적인 의식주(衣食住)가 해결되면 '애견(愛犬)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다고 애견 전문가들은 말한다. 애완견의 몸값은 모 재벌 회장이 기르는 독일산 셰퍼드처럼 2억~3억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개고기를 즐겨 먹는다고 세계 동물 애호가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우리지만 이쯤 되면 '개로 태어나 호의호식'을 누리는 세상이랄 만하다. 애견산업의 고급화 추세는 애완동물 장례(?) 전문업체까지 생겨나게 했고 애견전용카페에 정자은행도 생겨 성업중이란다. 남자 커트는 1만원 선이지만 애견은 체중에 따라 4만원까지 받고 있으며 그나마 예약해야 하고, 공과 뼈다귀 장난감 등이 마련된 놀이터까지 있을 정도다. 견공(犬公)들의 호사스러움이 극치를 이룬다. 20만~30만원을 호가하는 애견침대에서 잠을 자고 고급 사료를 먹으며 1년내 사망시 구입비 전액을 보상해주는 애견보험까지 등장했다. 애견문화를 나무랄 의도는 없지만 이같은 호화판 개들을 보노라면 아직도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노숙자들이나 빈민층이 떠오른다. 개들에게도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랄까.애견 식품업체 '네슬레 퓨리나 펫커어'의 아시아 대양주 아프리카 지역본부 어니스트 포프 사장은 “한국인들은 애견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한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염색한 개를 볼 때나 고액의 애견상품이 팔리는 것을 보면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반면 국내의 애견 전문가들은 우리 애견문화를 '독특하다'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개에게 수십만원짜리 옷을 입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개를 식용으로 여길 정도로 극단적이라는 것.어쨌든 애견문화는 아직 뚜렷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요즘의 애완견들을 보노라면 '오뉴월 개팔자'임에는

  • 대학 강사의 자살 지면기사

    '여보게 친구들, 나 먼저 가네. 남은 이 세상 마저 누려보시게'. 작년 8월20일 시인이자 극작가, 철학교수인 강월도씨는 이런 유서를 남기고 부산→제주 페리호 선상에서 검푸른 바다에 몸을 날렸다. 연극 '사(死)의 찬미'의 소프라노 윤심덕(尹心悳)과 극작가 김우진(金祐鎭)이 1926년 8월4일 시모노세키(下關)→부산의 관부(關釜)연락선에서 현해탄에 몸을 던져 정사했다면 그는 같은 8월 남해에 뛰어든 것이다. 이른바 KS 마크의 학벌에다 미 콜롬비아 대학 철학박사인 그의 자살 이유는 그의 시집 '마지막 유혹'에서도 '카프카의 벌레'를 떠올리며 괴로워했듯이 파킨슨병이라고 했다.지난 4월엔 수필가이자 H대 명예교수인 윤종혁(尹鐘爀)씨가 31층 옥상에서 투신했고 1월엔 장군의 자살만은 창군(創軍) 이래 없었다는 기록을 깨뜨리며 어느 육군 준장이 자살했다. 사회적인 지위나 영향력으로 미뤄 납득하기 어려운 자살의 예는 '자살대국' 일본의 경우 더욱 흔하다. 우리의 어느 교장이 지난 4월 노조와의 갈등으로 자살한데 반해 오노미치(尾道)시 다카스(高須)초등학교의 게이도쿠(慶德和宏) 교장은 국기 게양과 국가 제창을 하느냐 마느냐, 일본 왕의 연호(年號) 햇수를 서기 몇 년 앞에 쓰느냐 뒤에 쓰느냐 문제를 교사들과 다투던 끝에 작년 3월 자살했고 도쿠교(獨協)대 영어학 교수 카미오(神尾昭雄) 부부는 작년 2월 특급 열차에 손을 잡고 뛰어들었다.교수 임용에서 탈락한 어느 일류대 시간 강사의 자살이 너무나 안타깝고 애석하다. 월 100만원 벌이도 안되는 근무조건에다 법률상 '일용잡급직'으로 분류돼 있어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호법, 국민연금 등의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니 이런 우리 사회가 너무나 원망스럽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그의 '자살의 사회학'에서 '잘못된 제도 따위에 의한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주범인 사회를 체포, 구금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아무리 괴로워도 앞날을 기약, 좀 더 인내하고 극기(克己)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당사자만이 겪는 고통이야 아무도 섣불리 이해하려들 수 없는

  • 모세혈관 문화운동 지면기사

    최근 경기도문예회관이 '모세혈관 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 구석구석에 까지 문화의 향기가 실핏줄 처럼 퍼지게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하면 앉아서 없는 관객을 기다리느니, 관객이 있는 곳을 찾아가겠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 전통 공연문화의 바탕은 난장(亂場)이다. 장이 서는 곳이면 남사당패가 서민적 연극형식인 탈춤·꼭두각시놀음 등 각종 공연을 걸판지게 펼쳤다. 수많은 연희패들이 관객을 찾아 전국을 유랑한 것인데 사람이 모인 곳이 극장이었고 포장을 치면 그곳이 무대였으니, 누세(累世)에 걸쳐 우리 민족의 문화적 신명은 고정된 공간에 가두어둘 수 없는 성질로 다듬어져 온 것이다.이런 전통을 생각하면 도 문예회관의 모세혈관 문화운동은 아주 적절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하다. 인체의 혈행이 모세혈관만으로 가능하지 않듯, 문화의 전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우선 모세혈관 구석구석 피를 돌리기 위해서는 심장이 튼튼해야 한다. 즉 회관의 공연 인프라가 튼튼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시사철 문예 활동이 끊이지 않고, 예술단 마다 어느 무대에서도 자신있는 대표 레퍼토리를 가져야 한다. 대중 계몽적 수준의 공연은 애호가와 비애호가의 중립지대에서 고사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인체의 이상 혈행을 뇌가 감지하듯, 문화행정의 중추는 문화인이 담당해야 할 것이다. 지금 처럼 관치(官治)를 받는 인큐베이터 안에서는 문화 혈행에 이상이 생겨도 문화적으로 대응하기 힘들어서다.심장이 튼튼하고 뇌 신경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사실 모세혈관 까지 피를 돌리기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듯 한데…. 도립 예술단의 정기공연이 전국적인 문화이벤트로 명성이 자자해지고, 문화전문가에 의한 문화자치행정이 보장되도록 '문화 심장' 강화노력과 '문화 중추' 독립운동이 모세혈관 문화운동 보다 선행되거나 최소한 병행되어야 할 이유다. 그래야만 고장(孤掌)의 고독에 빠진 문예회관 문화에 신명이 흐르지 않겠는가. 경기도 문예회관이 모세혈관 문화운동을 벌인다기에 장단도 겸해서 덧붙여 본 추임새다. /윤인수(논설위원)

  • 열차사고 지면기사

    “나는 여행할 때 꼭 책과 일기책을 갖고 간다. 기차에서 읽을 감각적인 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진지함의 중요성'이라는 글에서 한 말이다. '신세계' 작곡가 드보르자크도 악상이 떠오르지 않을 땐 프라하 기차역으로 달려간다고 했다. 그는 프라하의 기차 시간을 모두 외어 '움직이는 기차 시간표'로 불릴 정도로 가차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이 좋아한 건 어디까지나 칙칙폭폭 연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차, 즉 '기차(汽車)'였다. '기차'의 '汽'는 '물 끓는 김 기'자다. 따라서 '기차'란 '물 끓는 김 차'란 뜻이다. 그 '기차' 이전의 명칭이 불 바퀴 차 '화륜거(火輪車)'였다.그런 멋있고도 로맨틱한 '화륜거'→'기차'가 사라지고 그냥 '줄줄이 차'라는 뜻의 '열차(列車)'가 연기도 없이, 기적(汽笛)도 없이 달리는 건 삭막하기 그지없다. 빠르기는 또 얼마나 빠른가. 요즘의 특급열차는 너무 빨라 창 밖은 마치 인간의 두 눈을 공격하기 위한 '미친 파노라마' 같다는 시인도 있다. 아무러하든 사고만 안나면 또 얼마나 다행이랴. 최근의 예만 하더라도 아프리카 동부 탄자니아는 작년 6월 24∼25일 이틀간을 '애도일'로 선포했다. 열차가 화물열차와 충돌, 200여명이나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 한 달 전엔 아프리카 남부 모잠비크에서도 열차가 화물열차와 충돌해 150명이 죽었고 작년 9월엔 인도에서도 열차가 탈선, 똑같은 150명이 숨졌다.열차 화재도 무섭다. 작년 2월 이집트의 카이로발 아스완행 완행열차에서는 식당차의 프로판가스가 폭발, 불이 나 373명이나 소사했고 지난달 15일 인도에서도 열차 화재로 39명이 화형을 당했다. 이런 끔찍한 열차 사고는 선·후진국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한데 육교가 무너져 달리는 열차를 덮치고 차량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등 우리 나라의 열차 사고도 올해 들어서만 170여건이나 발생했다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면 세계 최다 열차 사고 다발국이 아닐까. 더 이상 풀릴 데가 없도록 한껏 풀려버린 사회 기강 탓인가 아니면 다른 무슨 괴상한 이유라도

  • 신용카드 만능시대 지면기사

    세계 최초의 신용카드는 '다이너스클럽 카드'다. 미국인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가 1949년 뉴욕의 한 레스토랑엘 갔다가 지갑을 두고와 낭패를 겪은 뒤 친구와 함께 신용카드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용카드(credit card)'는 본래 1888년 미국의 공상과학소설가 벨라미의 '뒤돌아보면(Looking Backward)'에서 처음 쓰여졌다. 미래 사회에서는 화폐없이도 물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신용카드 사회가 도래한다고 예견한 것이다. '플라스틱의 혁명'으로 불리는 신용카드의 개념은 이렇게 출발했다.우리 나라에서는 1967년 신세계백화점이 계열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자사카드를 발급한 것이 최초로 알려져 있다. 1978년 외환은행이 비자 인터내셔널 정회원으로 가입해 국내 최초로 비자카드를 발급하면서부터 지금과 같은 범용카드가 선보인 이후 카드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전 국민의 생활필수품으로 대중화의 길목에 접어들었다. 1987년 신용카드업법까지 제정돼 숱한 카드사들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신용불량자 양산과 미성년자 카드 발급, 도난·분실에 따른 불법사용, 각종 범죄유혹 등 폐해가 확산되고 있고 무분별한 카드발급은 곧 카드사의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카드 빚 때문에 범죄를 일삼는가 하면 자살하는 사례도 속출하는 등 시민들의 정신적·물질적 피해가 늘어나고 금융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현금 없이도 물건을 살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맘대로 사먹는 '요술방망이'의 폐해가 이제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각종 신용카드는 70여종이며 누적 발행량은 1억245만장에 이른다. 물건 구매, 각종 요금 대납, 현금대출 서비스 등 기능도 날로 다양해져 올해 1/4분기의 신용카드 이용액만도 158조9천500억원에 달한다. 가히 신용카드 만능의 시대다. 편리한 '화폐 대용'이어야 할 신용카드가 '사람잡는 도구'가 되고만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카드사나 은행들도 이제 '은행은 비가 오지 않을때 우산을 빌려가라고 하다가 정작 비가 오면 우산을 돌려달라고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