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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질 종말론 지면기사

    지금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 일대에선 수막염(髓膜炎)이 맹위를 떨친다. 지난 2일 세계보건기구에 보고된 환자 수는 7천146명, 사망자 1천58명으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망자 600여명보다 훨씬 많다. 또 지난 2월부터 중앙아프리카 콩고에서 번진 에볼라출혈열(出血熱) 사망자도 지난 2일 현재 123명이나 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의학바이러스연구소(IMV)의 볼프강 프라이저 박사는 드디어 '괴질 종말론'을 거론했다. 물론 사스 퇴치 실패의 경우를 든 것이지만 이쯤 되면 그의 종말론이 괜한 소리 같지는 않다. 아시아의 괴질과 아프리카의 괴질, 그리고 서구에선 웨스트나일열(熱) 따위 괴질까지 지구인을 협공한다면 요즘 말로 정말 장난이 아니다.'중국의 사스가 대폭 줄었다(北京薩斯病大幅下跌)'는 중국 신문 보도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농촌 등 전국으로 번지고 있고 홍콩과 대만도 확산일로다. 지난 9일 중국 정부엔 WHO 전문가 사무실까지 개설됐지만 '누가(who)' 와도 별 수 없는 듯싶다. 화상(畵像) 전화와 재택 근무가 늘어가고 버스, 택시 기사가 마스크를 안쓰면 영업 정지다. 마스크가 모자라 브래지어를 잘라 만들고 결혼식도, 신혼부부 키스도 마스크를 쓰고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장관(衛生部長)과 베이징 시장 등 120여명의 공직자가 SARS 직무태만으로 목이 날아가고 대만에선 '위생부장'이 아닌 '위생서장'이 삭탈관직을 당했다. 중국 농촌에선 유언비어까지 나돈다. “갓 태어난 아이가 '녹두 수프를 마시면 역병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 따위다.그런 난리를 가리켜 '초연 없는 인민전쟁'이라 칭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요즘 '죽을 맛'이다. 잠수함 사고, 황하가 바닥난 지독한 가뭄에다 9·11 테러의 5배 충격이라는 사스의 경제적 타격 탓이다. 그런 와중에도 홍콩에선 하얀 마스크에 흡혈귀 이빨이나 애완 동물을 그려 넣는 기발한 '마스크 패션'이 유행이다. 아무리 괴질 충격파, 공포파가 심해도 좀 웃어가며 삶의 여유를 찾자는 뜻이다. 아무튼 우리 나라에

  • 사오정과 오륙도 지면기사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변화하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웬만한 정보통신기기는 1년 안에 고물이 되는 세상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십수년 전만 해도 40~50대의 나이면 사회의 중견으로서 한창 일할 때였다. 그러나 요즘 정보통신기기 만큼이나 폐기(?) 속도가 여간 빨라진 것이 아니다. 직장마다 정년이 줄고 나이라도 한 살 더 먹는 것이 두려운 가장(家長)들이다.'사오정' 시리즈가 한창 유행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마흔 다섯이면 정년퇴직'이라는 중년 세대의 현실을 자조적으로 담은 속어로 통한다. 그 뿐인가. '오륙도'는 심지어 '쉰여섯 살은 월급 도둑'이라 표현한다. 40대 이후 이른바 '5060 세대'가 삶의 허망함을 느껴야 하는 때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조국 근대화와 수출역군이라는 기치 아래 젊은 시절을 보냈건만 지금은 가정과 직장에서 떠밀려나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사는 불쌍해진 세대들이다.춘추시대때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군사를 일으켜 정벌에 나섰다가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 군사들이 진퇴양난에 빠졌을때 부하 관중(管仲)이 말했다. '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가 필요하다'며 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끌어다 고삐를 풀고 앞장세웠다. 말이 가는 대로 따라가니 무사히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 말은 노인들이나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갖춘 지혜를 얘기할 때 곧잘 인용된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 늙은 말의 지혜보다는 젊음의 힘이 넘치는 준마(駿馬)의 지식이 대접받는 세상이다. 중·장년이나 노인들은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고 싶어도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어디 그 뿐인가. 생산성 위주로 사회와 기업의 구조가 재편되면서 한창 일할 나이의 장년층까지도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고 있다. '50대 폐기' 현상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돼 가면서 50대들이 버려지는 세태다. 이같은 현상은 갈수록 심화돼 50대의 절반 정도가 실업이나 준실업 상태라 한다. 가정의 달을 맞아 '사오정'과 '오륙도'들을 회생

  • 한·미 정상회담 지면기사

    1968년 “청와대를 까부수러 왔다”는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金新朝) 일당의 '1·21 사태'가 터지고 그 이틀 뒤엔 미 정보 수집함(艦)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나포되자 2월5일 박정희 대통령이 린든 존슨 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행위는 반드시 응징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꿔 말해 단호한 군사적 응징 요구가 편지의 골자였다. 그러나 존슨은 고려할 점이 많다며 신중한 태도였다. 한데 이번 노무현 대통령은 그 때와는 반대로 “제발 군사적 응징만은 말아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하러 갔으니 이 또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할 것인가.역대 한·미 정상회담의 성격은 한국측의 일방적인 청탁 또는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6 직후인 61년 10월의 박정희·케네디 회담을 가리켜 외국 언론들은 “식민지 총독에 대한 종주국 황제의 면접시험”이라고 폄훼했다. 그 때는 미국이 베트남전을 완전히 떠맡기 전이었다. 그런데도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전의 한국군 파병을 앞질러 제의, 미국의 환심을 샀다. 그런데 69년 8월의 박정희·닉슨 회담만은 굳이 '사지 않은' 환심을 주고받은 자리였다. 한국전과 베트남전의 우의, 굳건한 방위조약, 아폴로 11호에 대한 찬탄, 박정희의 영도 찬양 등.하지만 93년 11월의 김영삼·클린턴 회담과 2001년 3월의 김대중·부시 회담이 실패한 까닭은 무엇인가. 신중하고도 간절한 부탁과 상의보다는 '정치 9단'의 노련함이 아이를 다루는 듯한, 한 마디로 대미(對美) 설득 쪽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의 외신 평은 냉혹했다. “한·미간 심각한 불화의 위험성을 느낀다”는 게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였고 “조지 부시가 김대중의 뺨을 때린 격”이라는 게 셀리그 해리슨 미국 우드로 윌슨 선임 연구원의 모욕적인 평가였다. 이번 노 대통령의 '포괄적 상호 발전' 주의는 2년 전 김대중이 부시에게 이미 제의했던 바였지만 '포괄'이 문제가 아니다. 북핵 문제만이라도 노 대통령의 제의와 합의대로 평화적으로 해결되느냐가 중요하다. 귀

  • 최초의 신도시 수원 지면기사

    수원하면 떠오르는 게 화성(華城)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성을 쌓으면서 새로운 도시로 건설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신도시였던 셈이다. 수원성은 1794년부터 2년 반 걸려 미국이 독립한 해인 1796년 완성되었다. 정조 때였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품고 아버지 묘를 명당의 자리로 모시고자 후보지로 수원 고을 뒷산(지금의 화성시 태안읍 화산리)이 물색됐고, 기존의 수원은 현재의 위치인 팔달산 아래로 옮긴다는 계획을 세웠다.왕의 효성심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지만, 부왕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고 신도시를 건설하려는 데는 숨은 뜻이 있었다. 왕권 확립을 위해서는 기득권 세력을 누르고 신진 세력을 기용하여 신하의 세력이 한쪽으로 불거지지 않도록 해야 했고, 재정적 뒷받침과 군사력도 필요했다. 그러나 기존의 한양에서 이 모두를 새로이 얻기는 어려웠다. 시대를 앞서간 신도시 건설의 발상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왕의 의지 아래 탄생됐다. 사도세자 묘 이전에 따라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게 된 수원은 과거의 수원읍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큰 규모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한양 다음의 대도시 서열에 올라 광주부에 버금가는 도시가 되었다. 행궁을 중심으로 성을 쌓고 종로를 만들어 민가와 상가를 재배치한 도시로 조성했다.31세의 젊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우리의 성과 중국 그리고 유럽 성의 장·단점들을 고려하여 성의 둘레와 높이 등 성벽의 규모와 성벽을 쌓을 재료를 정하고, 축성 과정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개념을 시도하였다. 작업과정에서 현장감독에서 인부들에 이르기까지의 사람 이름과 작업일지 등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공사실명제가 이미 이뤄졌던 것이다. 처음으로 '공공근로'를 도입, 고용창출의 효과도 보았고 일정한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성과급제도 실시했다. 화성과 수원신도시 건설의 일지인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당시로서는 모든 것이 꽤 앞서간 계획들이었다. 최근 파주와 김포 신도시 건설계획을 보면서 200여년 전의 계획도시처럼 꼼꼼하고도

  • 화물연대 파업 지면기사

    작년 화재 철인 11월13일 5만명의 영국 소방관이 파업했다. 임금 40% 인상 요구에 '2년간 11%' 반응이 성에 차지 않자 48시간 파업 예정을 변경, 12월까지 8일씩 3회에 걸친 파업을 결의했고 1차 파업 8일이 끝나도 '2년간 16%'에 머물자 2차 파업에 돌입했다. 그런데 2차 파업 첫날인 11월22일 중부 웨스트브롬위치의 폐(廢) 플라스틱 공장에서 불이 났는데도 소방관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할 수 없이 '녹색의 여신'이라 불리는 군대 소방차가 출동했다. 그 화재 나흘 뒤인 26일엔 또 한 번 어이없게도 2천여개 초등학교 교사들이 파업을 했다. 런던 초등학교 교사 4만명은 작년 3월14일에도 파업, 1천여개교가 휴교 또는 단축수업을 했다. 영국엔 교사노조(NUT)도 있고 교장노조(NAHT)도 있다.영국의 교사 파업날인 작년 11월26일 프랑스에서는 항공 관제사, 지하철, 우체국, 전화국 등 공공 노조원 6만명이 파업을 벌였다. 그 통에 애꿎은 시민들의 발은 꽁꽁 묶여버리고 전화 걸 손가락까지 까딱할 수 없었다. 불법 파업을 막는 '수'는 공권력밖에 없다. 한데 경찰까지 파업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프랑스 경찰은 2001년 11월 한 달간 파업을 단행했다. 인도 경찰도 88년 7월29일 버스에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한 파업을 벌였다. 그 경찰 파업을 막는 '최최후' 보루는 군대뿐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2001년 12월4일부터 나흘간 사상 최초로 군인 파업을 벌인 건 프랑스 헌병이었다.그쯤 되면 단순한 '영국 병' '프랑스 병'이 아니다. 국민 잡고 나라 잡는 허울좋은 민주 선진국의 '암적(癌的)' 증상이 아닐 수 없다. 95년 3월 해외 공연 규제에 반발한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파업, 2001년 노동절인 5월1일 가사 노동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빨랫감을 매단 빗자루 두 개씩을 흔들며 이색 시가행진을 한 프랑스 주부 파업 정도는 애교에 가깝다. 그러나 국토의 물류(物流)는 인체의 혈류에 비유된다. 막히면 마비될 수밖에 없다. 국민을 공황(恐惶)에 떨게 하고 나라 경제를 공황(恐慌)에 빠뜨리는

  • 이영미술관 지면기사

    속도가 지배하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대기만성'은 체감불능의 금언이다. 대기(大器)의 싹이 보여도 조성(早成)을 시켜야 할 판에, 소기(小器)의 자질로 만성(晩成)의 가능성을 꿈꾸기란 아예 불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는 탓이다. 세태와 제도 탓에 무수한 대기(大器)들을 생매장 중인 우리는 '대기 불임(不姙)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화단을 기름지게 한 두 대가, 내고(乃古) 박생광(朴生光)과 통영 사람 전혁림(全爀林)은 대기만성의 빛나는 사례다.1904년 태어난 내고는 지난 84년 팔순 기념 개인전 한번으로 한국 화단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장본인. 불교, 무속, 역사 등 가장 한국적인 주제들을 강렬한 색채로 형상화해 낸 그의 작품은 귀기(鬼氣)가 느껴질 정도다. 한국의 기성화단은 그의 채색에 질려 일본풍이라며 폄훼했지만, 프랑스 미술가협회장인 아르노 도트리브는 첫눈에 그의 작품의 진가를 인정하고 85년 파리 전시를 직접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고는 파리 전시회 직전 사망했으니 애석할 뿐이다. 반면 1916년생인 전 화백은 지금도 짱짱하게 화업에 몰두 중인 현역이다. 통영 앞바다의 물빛을 상징하는 코발트 블루를 즐겨 사용하는 그도 지금이야 한국 색채추상의 대가로 존경받고 있지만 그의 생애 대부분은 지방화단의 무명화가였다. 지난 11일에는 통영에 자신의 미술관을 개관하는 경사가 있었다.그런데 두 대가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용인시 영덕리에 있는 '이영미술관'이다. '명성황후'를 비롯 소꿉친구였던 청담대종사와 각별한 사이였던 큰무당 김금화를 소재로 한 내고의 대작들이 시선을 압도하는 곳이다. 전 화백은 아예 이곳에서 머물며 작업을 했을 정도였는데 수많은 대작과 남다른 애정을 남겨놓았다. 모두 김이환 관장이 두 대가와 맺은 인연과 그들에게 쏟은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 즉 사섭행(四攝行)이 빚어낸 결과이다. 묘한 것은 이영미술관 또한 김 관장이 평생 품어온 염원을 예순이 훨씬 넘어 실현시킨 만성형 대기(大器)이자 보고(寶

  • 미혼모 지면기사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顔徵在)는 66세의 남편 숙양흘(叔梁紇)과 결혼식도 안올리고 동거해 공자를 낳은 16세 미혼모(未婚母)였다. 예수를 낳은 마리아도 그 '동정녀(童貞女)'라는 말 자체가 '생리적인 미혼모'를 뜻한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은 하늘에서 떨어진 금란(金卵)에서 출생했으니 그 번쩍이는 알이 미혼모인 셈이고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朱蒙)의 어머니인 버들 꽃, 유화(柳花)부인도 남편이야 동부여왕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찬란한 햇빛을 받고 임신, 알을 낳아 주몽을 출생케 했으니 햇빛을 '미혼부(未婚夫)'로 둔 미혼모였다.임금의 아들을 낳아 후궁이 된 그 흔한 조선시대 무수리, 나인이 아니더라도 미혼모야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있게 마련이고 천재, 위인을 낳은 미혼모도 헤아리기 어렵다. 신라의 천재 설총을 낳은 요석공주도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게 도끼를 달라”고 외쳤던 원효대사를 미혼부로 모신 미혼모였고 천재 중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어머니도 공증인 피에르를 미혼부로 둔 미혼모였다. 서구 근대소설의 비조(鼻祖)인 '데카메론'의 작가 보카치오, '춘희'의 알렉산드르 뒤마,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알렉산드르 뒤마 페르도 미혼모에서 태어났다. 드뷔시, 히틀러, 브란트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연전에 아쿠타카와(芥川)상을 탄 재일 동포 작가 유미리(柳美里)와 이번 이라크 전쟁 포로였던 미 흑인 여군 쇼샤나도 미혼모다.96년 봄 시라크 대통령의 딸 클로드 양을 위시한 프랑스의 미혼모율은 2002년 3월 현재 41%, 영국이 38%다. 99년 아이슬란드는 10명 중 6명, 노르웨이는 절반 정도였다. 2002년 2월 미 질병대책센터(CDC)가 밝힌 '2000년 미국 출생 통계'에 의한 미국의 미혼모도 33.2%였다. 이처럼 미혼모율은 구미 선진국일수록 높다. 물론 결혼도 임신도 '선택 과목'이라는 고무 풍선 같은 인식 때문이고 자유분방한 성 개방 풍조 탓이다. 그런데 드디어 우리 나라도 해마다 6천700여명의 10대 미혼모가 쏟아지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선진국 '풍(風

  • 담장 허물기 지면기사

    무언가 담장을 싫어하는 녀석이 있어/담장 아래 얼어붙은 땅을 부풀게 하고/담장 위에 놓인 돌들을 햇빛 속으로 떨어뜨립니다/그리고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수 있는 틈을 만듭니다/…/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이 틈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무도 모르게/봄철 담장을 손질할 때면 나타납니다/그러면 나는 언덕 너머에 사는 이웃에게 알려/어느날 함께 만나 경계선을 걸으며/우리 사이에 다시 담을 쌓아올립니다/…. 1914년에 발표된 로버트 프로스트의 '담장 수리'라는 시다. 전체 45행으로 이루어진 이 장문의 시는 사회공동체 의식을 주제로 삼고 있다. 퓰리처상을 4회나 수상한 프로스트는 박애주의자 또는 개방주의자다운 담없는 세계를 꿈꾸고 있다. 담은 단절할 것을 요구하면서 내쪽의 모습을 공개하기를 거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내것과 네것에 대한 구별을 뚜렷이 하려는 소유권의 표시다. 사람이나 동물의 침입을 방지하고 외부의 시선차단을 목적으로 도시의 담장들이 거대해지고 있다.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옆집과는 단절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철제로 높이 쳐진 담장마저도 안심이 되지 않아 담장 위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한다. 옛날 싸리나무 울타리나 토담, 돌담 등은 그 용어마저 정겨운 데다 야트막해서 동네사람들은 마을을 오고가다 옆집 마당에서 인기척이 나면 고개들어 서로 눈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며 정을 나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출 것이 없어 서로 눈을 피하고 모른 척할 이유가 없었던 때다. 얼마 전부터인가 삭막한 도시의 담장에 예쁜 그림을 그려 도시미관이 바뀌어지고 있다. 미술학도들과 화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콘크리트 벽이 주는 차가운 이미지를 벽화로 바꿔보자는 캠페인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최근엔 아예 담장을 없애 이웃과 허물없이 지내려는 '담장 허물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96년 경북대와 대구서구청이 처음으로 담장을 허물고 가로공원을 조성한 이후 관공서마다 이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엊그제 인천에서도 '담장없애기' 범시민운동 토론회가 열렸다. 내친 김에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

  • 아파트 투기 지면기사

    '아파트먼트' '아파트먼트 하우스'를 '아파트'라고 부르는 건 '텔레비전'을 '테레비'로, '에어컨디셔너'를 '에어컨'으로, '불고기 백반'을 '불백'으로 무 토막처럼 잘라 말하는 격이다. 영어 apart는 '따로따로 떨어지다' '분해하다'는 뜻으로 falling apart는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다' I am falling apart는 '내 몰골이 형편없다', My car is falling apart는 '내 차는 못쓰게 됐다'가 된다. 영국에서는 아파트를 flat이라 부른다. 납작하게 엎드린 모습이 flat이고 punk가 아닌 flat tire의 그 flat이다. 초창기 아파트 건축 양식이 납작하게 엎드린 모양이라 깔보는 시각으로 붙여진 이름이다.미국에서도 apart는 '온수가 안나오는 싸구려 주택'이다. 아파트가 원래 18∼19세기에 걸친 서구의 산업혁명 후 집단 노동자를 위해 대량으로 지어진 싸구려 주거 수단으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즘의 아파트처럼 시설이 좋을 리 없다. 동양쪽 아파트의 선구(先驅)는 일본이 아닌 중국이다. 푸첸(福建)성엔 이미 명나라 때 지어진 방 300여개의 고층 집단주택인 환형토루(環形土樓)와 방형토루(方形土樓)라는 게 존재했다. 명나라가 1644년에 망했으니까 400년이 가깝다. 일본은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 후 모은 의연금을 기금으로 이듬해 도쿄, 가나카와(神奈川) 등 16개소에 지은 '진재(震災)부흥 집단주택'이 최초였다.우리 나라는 일제 때 서울 서대문에 풍전아파트, 적선동에 내자아파트, 통의동과 삼청동에 공무원아파트가 세워졌지만 독자적인 아파트 단지는 1962년 마포아파트가 최초였다. 그런데 장장 40여년 동안 아파트가 돈벌이 투기 수단이 되고 호의(好衣) 호식(好食)과 '호주(好住)'의 상징으로 열기가 식을 줄 모르다니 대단한 일이다. 엊그제는 핵전쟁이 터져도 끄떡없는 방공호까지 갖췄다는 32억4천만원짜리 180평형이 집 없는 빈민의 부아를 지르기에 족하다 싶더니 이번엔 어느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무려 4천795대 1로 사상 최고라고 해서 화제가

  • 어버이 날 지면기사

    910년경 미국 필라델피아주의 웨스터에서 아이들을 극진히 사랑했던 주일학교 교사 자비스 부인이 세상을 뜨자 많은 이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특히 딸 안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몹시 슬퍼하며 묘소 주위에 평소 어머니가 좋아했던 카네이션을 심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안나의 이야기가 퍼져 1914년 미국의회는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정한 것이 유래로 전해온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6년에 5월8일을 어머니 날로 기념해오다 1974년부터 어버이 날로 지켜지고 있다. 어버이 날은 효(孝)와 뗄 수 없는 날이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意之國)이 아니더라도 부모에 대한 보은(報恩)은 동물에게서조차 나타난다. 까마귀는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어 은혜를 갚는다 해서 반포조(反哺鳥) 또는 효조(孝鳥)라 부른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란 다하여라/돌아가신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 초등학생조차 읊조리는 시조이지만 요즘 들어 더 애달픈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어버이들은 정말 남다르게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사오정' 시리즈는 '사십오세가 정년'이란다. 81년 쉰여섯에 백악관을 떠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도대체 남은 25년 동안 무엇을 어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인생이란 점점 확대되는 것이지 결코 축소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멋진 말을 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카터 정도니까 통하는 말이지 56세라면 우리 사회에서는 정년을 했거나 '위 아래' 눈치보기에 급급해 하면서 서글퍼하는 어버이들이 많다. 지난해 이맘 때는 가족들을 외국에 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은 40대 '기러기 아빠' 2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가 충격을 주었다. 육군중령과 대학교수였던 두 사람 모두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케이스였다. 어버이날이라는 연례적인 술렁거림의 뒤편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위축되어 있는 아버지들이다.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방황하고 소리없이 울고 있는 사회다. 이 땅의 아들 딸들은 이 모습이 바로 나와 너의 미래의 자화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어버이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