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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북·중회담 지면기사

    “우리는 미 제국주의자의 침략 전쟁으로 주권 국가의 생존권 및 자주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사태를 목격하면서 군사 우선의 기치와 함께 국방력을 강화해온 것이 확실히 옳았다는 걸 통감하고 있다. 군사 우선을 강화하면 승리하고 방기(放棄)하면 죽는다.” 지난 15일 김일성 탄생 91주년을 기리는 노동신문 사설의 한 대목이다.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도 사설을 썼다. “이라크가 인민의 힘을 믿고 죽을 각오로 미국에 맞섰다면 오늘 같은 사태는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반도 문제를 이라크 식으로 해결하려는 건 오산이다. 우리를 이라크처럼 깔보는 자에게는 조선인의 기개를 보여줄 것이다.”'조선을 깔봤다가는 양코배기 큰 코 다친다'는 것이고 '제발 한 번 붙자'는 것이다. 이라크 개전 8일 후인 3월28일자 노동신문 사설 역시 “미제가 이라크를 강점한다면 범 잡은 포수모양 기고만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2의 아프간이나 이라크가 아니다. 우리에겐 선군 정치, 일심단결, 자위적 국방력 등 필승불패의 강위력한 무기가 있다”고 썼다. 북한의 군사노선과 한반도 적화 야욕엔 '한 치(약 3㎝)'가 아니라 1㎜도 변함이 없다는 속내다.미국 쪽도 노동신문 표현대로 '범 잡은 포수'모양 기세가 등등하다. 단 20일만에 바그다드를 함락시킨 뒤의 매파 목청은 더욱 드세져 “심각한 사태 초래”와 “절대 불(不) 관용(no tolerance)”을 강조한다. 미국이 변한 것을 한국은 너무 모른다는 것이고 한반도 비상시 미군이 자동 개입키로 돼 있는 이른바 '인계철선(trip wire)'은 '파산한 개념'이라는 것이다.단절됐던 미·북 대화가 3자회담으로 열리지만 마치 권투 선수 셋이 링 위에 올라간 격이고 실제는 미·북 싸움이다. 한데 무서운 건 미국쯤 돼야 '맞장' 상대가 되고 한국이야 링사이드에 앉아 양손으로 턱을 괸 채 구경만 하고 있는 어린애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미·북 대화의 진전보다도 중요한 건 남한도 링사이드의 어린애가 아니라 미국 대신 싸워도 결코 KO패하지 않을 힘을 확충하는 것이다. 그래야 '평화적 해결'의 말발도

  • 전쟁과 어린이 지면기사

    폭격은 끝이 났다. 사담 후세인이 목표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도 아는 이가 없다. 양측의 전력상 어른과 초등학생(?)의 싸움이었지만 그래도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미 승전을 선언했고 속전속결로 당초 예상보다 전쟁비용이 감소했다고 했다. 이번 전쟁에 쏟은 비용은 750억달러로 91년 걸프전 때의 760억달러에 버금간다. 베트남전과 한국전의 4천940억달러와 3천30억달러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물론 전쟁기간이 극히 짧았지만.이번 전쟁기간중 미·영 연합군은 3만번 이상 비행기 출격을 했고 2만발 이상의 미사일을 이라크에 쏟아부었다. 걸프전때는 20만발을 쏘았지만 이라크에 투하된 폭탄 가운데 90%가 정밀유도폭탄이어서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연합군은 150명 정도가 사망했고 이라크군은 2천320명이나 죽었다. 이라크 민간인 1천254명도 이번 전쟁에서 희생됐다. 바그다드를 비롯한 이라크 전역을 휩쓴 '충격과 공포'라는 이름의 작전결과였다.무고한 어린이들의 희생은 또 어떤가. 왜 죽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숨져간 어린 아이들도 희생자 가운데 부지기수다. 폭격으로 두 팔이 잘려나가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의사가 꿈이라는 12살짜리 이라크 소년 알리. 부모형제 등 가족 16명이나 잃었다. TV를 통해 눈물을 글썽거리는 이 소년의 모습을 접한 세계 모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라크는 걸프전 이후 경제제재조치로 5살 이하 52만명의 어린이가 죽었고 30%의 어린이가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신생아의 25%가 저체중아로 태어나고 25%의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지옥(?)이다.다른 세계의 어린이들은 이 전쟁을 보면서 컴퓨터 게임쯤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그 속에는 이라크 어린이들처럼 어떠한 배고픔도, 아픔도, 슬픔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제는 전쟁을 주도한 미국과 영국이 이 전쟁소년 알리를 돕자고 나섰다. 언론도 알리가 겪은 고통의 원인은 뒤로 한 채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다시는 '전쟁 고통'의 상징인 알리 같은 소년이 탄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

  • 대통령의 편지 지면기사

    청마(靑馬) 유치환과 정운(丁芸) 이영도의 '플라토닉 러브'는 한국문단을 한결 풍성하게 한 유명한 사건이다. 통영여중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피끓는 유부남 청마와 꽃같은 청상(靑孀) 정운. 둘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청마는 정운의 마음을 얻기 위해 5천여통의 연서(戀書)를 통영우체국에서 부쳤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청마의 시 '행복'은 지금 통영우체국 앞 시비로 남아 불멸의 사랑, 천년지애(天年之愛)를 노래하고 있다.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세대는 '편지'라는 단어 자체를 고리타분하게 여기겠지만, 그것이 인정을 소통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었다. 군에 간 아들이 보낸 첫 병영편지는 이땅의 모든 어머니에게 여전히 최루탄보다 강력한 최루지(催淚紙)이다. 그러나 요즘 우편함은 사람들을 소통시키는 편지보다는 답장이 필요없는 고지서와 광고물로 채워지고 있다.정보통신부 통계에 따르면 99년 38억2천만통이었던 우편물량이 2002년에는 55억3천만통으로 늘어났는데, 광고우편의 급증때문에 빚어진 가파른 상승세라고 한다.정운은 답장을 하고 싶어도 못했건만 현대인들은 답장할 데 없는 우편물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으니 비극이다.노무현 대통령의 '국민 전 상서'는 그래서 신선하다.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겠다는 개혁 출사표도 그럴듯하고 국가와 국민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대통령 노무현'의 인간적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대통령 전용 별장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기로 한 그날 어둑새벽에 '개인 노무현'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대통령의길'을 걷겠다는 약속을 적어내려가는 엄숙한 장면을 상상해 보면 자못 감동적이다. 이에 영감을 받았던 것일까.'영원한 농구황제'마이클 조던이 20일 미국 주요일간지 광고란에 자신의 인새이었던 '농구 경기에게' 작별이자 새로운 시작을 고하는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양(洋)의 동서를 초월해 편

  • 성인병과 소아병 지면기사

    여자의 병인 유방암에 남자가 걸렸다고 해서 남자를 여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성인병에 걸린 어린이는 좀 알쏭달쏭해진다. 성인병을 앓으니 마땅히 성인으로 예우해 깍듯이 존댓말을 써야 할지, 아니면 어디까지나 어린이로 취급해 “얘” “쟤” 해야 할지…. 반대로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린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아로 봐줘야 할 것인가, '소아마비'가 아닌 '대아마비(大兒痲痺)'에 걸린 어른으로 모셔야 할 것인가. '대아마비'뿐 아니라 '대아 백일해'도 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2주 이상 콜록거리는 어른 기침 환자의 20% 정도가 어린이나 걸리는 백일해라는 것이다. 그래선지 우리 보건 당국이 '어른 백일해' 주의보를 내렸던 게 바로 작년 8월이었다.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 등 '어른의 병'이 성인병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병이 부쩍 늘고 있어 그야말로 사회적인 '병폐'가 되고 있다. '3년 전에 비해 청소년 당뇨병이 3배, 암이 9배, 고혈압은 무려 68배로 증가했다'는 것이 이미 94년 5월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 내용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훨씬 더 증가했을 것이다. 일본에서도 소아 성인병이 문제가 된 것은 80년대부터였다. 16세 이하 10만명당 1천300명꼴이라는 게 85년 그곳 보건복지부(厚生省) 통계였고 청량음료를 많이 마셔 걸리는 당뇨병이라고 해서 '페트 보틀(pet bottle)증후군'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던 것도 그들이었다. 소아뿐 아니라 91년 7월8일자 마이니치(每日)신문은 도쿄의 아기염소까지 당뇨병에 걸려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成人病(세이진뵤)'이라는 명칭 또한 조어(造語)천국인 일본이 정했다. 그래서 서양인은 'adult diseases'(성인병)가 뭔지 모른다고 한다. 세 살 버릇이 무섭다는 경각심을 높이려고 96년 9월 '성인병'을 '생활습관병'으로 개명한 것도 일본인들이었다. 엊그제 대한내과학회가 성인병을 '생활습관병'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뒤늦게 일본을 따라가는 격이다. 그런데 어린이의 성인병도 문제지만 더욱 무서운 건 주제도 분수도 곱셈도 모

  • 부활절과 계란 지면기사

    20일은 부활절이다. 교회력(敎會曆)에서 가장 오래된 축일(祝日)로서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인들에게는 가장 기쁜 날이다. 오늘날 지키고 있는 부활절은 춘분(3월21일께) 후 최초의 만월(滿月) 다음에 오는 첫째 일요일로 따라서 올해는 20일인 것이다. 이는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분열된 교회를 통일시키고 로마제국의 안정을 이루기 위해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이다. 그래서 전 세계 10억이 넘는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은 뒤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3일 만에 부활한 사실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예배를 드린다.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스승을 잃은 슬픔에 잠겨있던 제자들에게는 예수가 부활한 것이 너무 기뻐서 믿지 못할 정도였으나 무덤을 지키던 병사와 제사장, 장로, 총독은 부활이 두려워 거짓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부활은 신약성경에 104회나 등장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교회에서는 이 날 알록달록하게 색칠한 예쁜 계란을 주고받으며 부활의 기쁨을 나눈다. 설도 분분한데다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교회에서는 계란이 생명의 끊임없는 연속이라는 의미를 나타내준다는 데서 이러한 풍습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계란이 병아리로 바뀌고 성장해 닭이 되고 다시 계란을 낳는 일련의 생명과정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양계업자들은 부활절을 대목이라고 부른다. 1천300만명에 이르는 한국 교회 성도들의 절반이 부활절 달걀을 한 개씩만 받는다 해도 650만개는 소비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계란값도 이때쯤이면 오른다. 시대에 맞춰 부활절 계란의 모양도 눈에 띄는 것이 많아졌음은 물론이다.부활절을 맞아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이라크와 북쪽 에덴동산에도 부활의 생명이 넘쳐나 상흔이 치유되기를 기원해본다. 또 이로 인해 분단의 고통도 해소되고, 사막화 되어 가는 사람들의 심성도 변화되며, 황폐해진 윤리도 다시 굳게 자리잡아 가기를 모든 사람들이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닌

  • 북한의 인권 지면기사

    미국 헤리티지 재단 주최로 92년 5월20일 워싱턴서 열린 세미나 '오웰의 악몽:북한의 인권' 주요 발언은 이러했다. △80년, 91년 북한을 방문했던 스티븐 솔라즈 미 하원 외무위 아·태 소위원장→“북한엔 인권이 없다. 북한에서의 인권 운운은 하나의 가공(架空)이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홍수가 났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북한의 인권' 저자인 리처드 케건 미 햄라인대 교수→“북한에는 사형을 규정한 47개 형법 조항이 있다. 국가 재산 손실, 6시간 이상 무단 이탈한 군인, 교통법규 위반까지도 사형이다. 60년대 이후 약 9천명이 처형됐다.”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미 AEI 객원 연구원→“북한의 감옥에는 약 15만명의 정치범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래선가 미 민간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93년 1월15일 북한을 '자유롭지 못한 최하위 국가 군(群)'에 넣었고 94년 2월1일 미 국무부가 발표한 '94년도 세계인권보고서'는 북한을 '최악의 인권 탄압국'으로 지목했다. 최근의 보고서는 어떤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2001년 6월27일 보도한 '탈북자 증언록'은 '설마' 하고 믿지 않으려는 '푸른 눈'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줄잡아 1천명의 처형을 목격했습니다. 그중 15차례는 교수형이었고 두 차례는 화형(火刑)이었습니다. 처형장에서 개들이 인육(人肉)을 먹고 해골을 굴리는 것을 봤습니다.”어제의 언론 보도를 봐도 여전히 캄캄하다. 유엔이 '북한의 인권 규탄안'을 채택했다는 뉴스를 비롯해 오는 6월이면 북한 어린이 7만명이 아사(餓死)할 것이라는 유엔아동기금 북한 사무소 대표의 증언과 중국이 최근 수년간 10만∼30만 탈북 난민을 강제 송환했다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 보도 등이다. 굶어 죽는 사람에게 '인권' 운운은 사치일지 모른다. 그들에겐 '자유'니 '인권' 등 귀 간지러울 음향보다는 하루 세 끼의 '목구멍 권리'가 10배 100배 화급(火急)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북한'하면 굶주림, 아사, 고문, 강제수용소, 공개처형, 탈북자 등부터 떠오르는 세계인의 연상은 어

  • 시인 천상병 지면기사

    '천상시인' 천상병의 생전 꿈은 내 집 하나를 갖는 소박한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걸레스님' 중광이 찾아와 20만원이라는 평생 처음 만져보는 거금을 주고 간다.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라도 생긴 것처럼 좋아하다가 아내가 담배를 못 피우게 하자 거금(?) 20만원으로 호텔 하나를 사서 나가겠다고 터무니없는 떼를 쓴다. 그래서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더니 대통령에게 당연히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이혼장 밑에 '대통령 귀하'라고 쓴 천상병이다.가난 무직 방랑 주벽(酒癖) 기행(奇行)의 대명사였던 천상병(千祥炳·1930~93)은 하루 담배 한 갑과 버스비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인이었다. 폭음과 줄담배와 끝없는 방랑, 남들이 다 입는 양복 대신 언제 세탁했는지도 모를 구질구질한 군복과 일그러진 얼굴, 비뚤어진 걸음걸이, 남의 이목을 가리지 않는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박장대소(拍掌大笑) 등 소박하다 못해 기인(奇人)의 행동을 보였다. 그가 죽고 나서도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의정부 자택에서 장례를 치른 유족들은 각계에서 보내온 조의금 850만원을 협소한 집안에 둘 데가 없어 고민하다가 천씨의 장모가 서류봉투에 넣어 빈 아궁이 속에 감춰놓았다. 이 사실을 모른 미망인 목순옥씨가 아궁이에 연탄불을 피워 그만 다 태워버렸다. 다행스럽게 한국은행은 형체가 분명한 450만원을 새 돈으로 바꿔주었다. 저승길에서나마 400만원의 노잣돈을 가져간 그였다.천상병의 미발표작 '달빛'이 최근 발굴됐다는 소식이다. “밤은 깊어만 가고달빛은 더욱 교교하다일생동안 시만 쓰다가언제까지 갈 건가/나는 도저히 모르겠다”고 적었다. 부인 목순옥(65)씨가 집안살림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이 시는 1987년 작품으로 이승의 삶을 돌아보며 저승을 넘본다는 점에서 '귀천(歸天)'과 더불어 쌍(雙)을 이루는 절명시(絶命詩)로 평가된다. 오는 28일 10주기를 맞아 21일부터 5월31일까지 의정부 예술의 전당 등지에서 추모전이 마련된다. 평화주의자이자 낙천주의자로 불리는 천상병이 갑자기 그리워지는 것은 각박해지는 우리 사회에서 잃어버린 고향처럼 느껴

  • 전쟁과 문화참사 지면기사

    프랑스 한림원(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이자 저명한 작가인 장 도르메송, 신 철학의 거두 베르나르 앙리 레비, 소설가 프랑수아 쉬로, 원로 한림원 회원 장 프랑수아 드니오 등은 프랑스의 앙가지망(engagement), 즉 행동하는 '참여 지식인'으로 꼽힌다. 그들이 유고 내전의 현장인 고도(古都) 두브로브니크에 새처럼 내려앉기 위해 '노인 공수부대'를 결성한 것은 91년 10월이었다. 하얀 스카프를 늘어뜨리고 검은 고양이를 어깨에 얹은 조종사의 모습으로 일찍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앙드레 말로의 후예로 유럽 중세문화의 보고(寶庫)인 그 도시를 전화(戰火)로부터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들 14명의 '하늘 길'은 당국의 만류로 무참히 꺾였고 한 척의 범선으로 '바다(아드리아海) 길'을 택해 현지에 접근했지만 그 또한 유고연방 해군에 쫓겨나고 말았다.그들 지성인의 염려대로 그 도시의 1천500여 유적은 물론 회교 문화 유적의 보고인 보스니아의 중세풍 도시 사라예보와 모스타르(Mostar)도 처참히 파괴됐다. 동방정교도의 세르비아와 가톨릭 교도의 크로아티아가 회교도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공격하면서 내건 구호가 '인종 청소'와 '이교도문화 청소'였던 탓이다. 인종 청소→'이교도 청소'도 모자라 '문화 청소'라니! 인종(종교) 갈등의 폐해가 그보다 더 클 수가 없다. 92년 9월 초 영국의 '더 타임스'가 고발한 유고 내전의 문화 유적 파괴→'문화 학살'이야말로 얼마나 비참했던가.이번 이라크 전쟁의 문화유적 폐해는 더욱 심각하다. 5천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귀중한 사료이자 인류 문명의 보고인 이라크박물관이 몽땅 털려 무려 17만점의 유물을 약탈당했다는 것은 '참담한 비극' 정도로는 표현 수사가 부족하고 미진하다. 대영박물관에 뺏긴 '함무라비법전'에 노한 함무라비 왕이 그 법전을 새긴 석비(石碑)마저 이번에 도난 당해 더욱 노발대발할 일이고 두상(頭像)을 잃은 아카디아 왕 역시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 앉을 일이다. 2차대전의 나치 폭격기들도 파리의 유적을 피했다고 했건만 미국은 이번에 어처구니없는 방관과 실

  • '스페이드 A' 후세인 지면기사

    이제는 세계인의 오락(?) 도구가 된 '카드'는 원래 동양에서 발생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정확한 기원은 고증된 바 없다. 유럽에 전해진 시기도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로 추정될 뿐이다. 카드는 4가지 문양으로 구분되는데 스페이드, 하트, 다이아몬드와 흔히 클로버라고 부르는 클럽이 그것으로 카드 용어로는 수츠(suits)라고 한다.카드의 원형인 타록은 대(大)타록 22장과 소(小)타록 56장 등 78장이 한 벌인데 소타록의 수츠는 검(劍)·곤봉·성배(聖杯)·화폐로 각각 왕후와 귀족, 농부, 사제, 상인을 뜻했다. 또 대타록에는 마술사·여자교황·교황·여황제·황제·전차·재판의 여신·운명의 수레바퀴·사자(死者)·악마·달·태양·심판·태양 등 당시의 사회상과 인생역정을 은유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서 숫자와 신분이 암시된 소타록과 조합하면 무궁무진한 점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전래 초기에 카드는 도박보다는 점(占)을 치는데 많이 이용됐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이중 소타록이 변형돼 52장 1벌에 조커가 1~2장 딸려있는 현재의 카드가 됐다. 스페이드는 검, 하트는 성배, 다이아몬드는 화폐, 클럽은 곤봉이 변화한 것이다.최근 미국 국방정보국이 이라크를 장악한 미·영 연합군 병사들에게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3부자를 비롯해 이라크 정권 지도자 52명의 얼굴사진과 직책을 담은 카드를 지급했다고 해서 화제다. 카드에 오른 얼굴들은 모두 추적, 체포, 살해 대상자들로 미국은 현상금까지 걸고 정보를 수집중이다. 후세인 대통령은 스페이드 에이스, 두 아들 쿠사이와 우다이는 각각 클럽 에이스와 하트 에이스 카드이고, 타레크 아지즈 부통령은 스페이드 8이라고 한다.불과 한달 전만 해도 반미 성전의 중심에 서서 중동의 맹주를 꿈꾸던 후세인의 몰락이 카드 점괘에 나와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30만명에 달하는 추적자들이 카드를 즐기면서 도망자 52명의 얼굴을 숙지할 수 있게 됐으니 '악당 필사(必死)'의 '서부의 전설'이 중동에서 재현되고 있는 셈인가. 그렇더라도 후세인과 그 측근들을 카드에 새겨 병

  • 마스크와 방독면 지면기사

    병균, 먼지 등을 막기 위해 코와 입을 가리는 게 마스크다. 그러나 영어 'mask'는 가면, 복면, 탈을 뜻한다. 불어의 'masques'와 독일어의 'Maske'도 같다. 16세기 궁정 오페라를 비롯한 서양의 가면무도회(mask ball), 가장(假裝)무도회, 가면극, 즉 독일어로 마스케라데(Maskerade)라 일컫는 모든 가면극의 가면을 마스크라 하고 '황금박쥐' '마스크맨' 등 만화의 가면이나 10월31일 '할로윈(Halloween)데이'에 쓰는 가면도 마스크다. 독가스를 막는 방독면(防毒面) 역시 '가스 마스크'라 부르고 용접공의 가면도 마스크는 마스크다. '데드 마스크' 즉 사면(死面)도 있다. 사망 직후의 얼굴에서 본을 떠 만든 그 으스스한 가면 말이다. 입과 코만 가리는 건 '마스크'라기보다는 '입 마개'가 적절한 명칭이고 좀 점잖게 부르자면 '구강 보호구'쯤 될 것이다.마스크와는 상관없는 마스크도 있다. 영화에서 '마스크 웍(mask work)'이라고 하면 배우가 1인2역으로 한 화면에 나올 때 그 화면의 일부를 잘라 촬영한 뒤 합치는 작업이고 음악에서 '마스크 효과'라고 하면 어떤 음을 들을 때 다른 음이 보다 크게 오버랩되어 들리면 그 원음의 감도가 떨어지거나 아예 들리지 않는 경우다.요즘 전쟁과 괴질(SARS)에다 황사까지 겹쳐 방독면과 마스크가 온통 지구를 뒤덮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입 마개 마스크가 날개가 돋치다못해 품절되는가 하면 산업용 등 특수 기능성 마스크가 없어서 못팔 정도다. 일본의 하쿠주지(白十字)나 고와(興和)헬스케어 등의 500엔 짜리 고기능 마스크가 그렇고 '메이드 인 코리아'도 마찬가지다. 11일 홍콩 노스포인트(北角)에서 열린 배우 장궈룽(張國榮) 영결식의 1천여 조문객도 거의 마스크 차림이었고 10일 대만공항에 입국한 한 홍콩 관광객의 '저는 안전해요. 키스해 줘요'라고 쓰인 그 마스크도 한국 제품일 것이다. 하지만 치과의사, 수술의사, 방역요원, 농약 치는 농부, 김치공장 아줌마, 수의 입히는 염습사 등 특정 구역 특정인 외에 아무나 야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