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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오지심(羞惡之心) 지면기사

    이탈리아 피렌체의 블랑카치 성당에 걸린 아담과 이브의 초상화가 흥미롭다. 이브는 두 손으로 위아래 치부를 가리고 있는 데 반해 아담은 치부를 노출한 채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에라 차라리 눈을 가리자”는 아담의 수치심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흔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운운' 하지만 하늘보다는 오히려 땅을 굽어 부끄러워해야 할지 모른다. 수치심의 대상은 우주보다 땅위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긴 말이 '부앙무괴(俯仰無愧)'다. '땅을 굽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외모에 대한 수치심보다는 양심의 수치심이 크고도 진하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의로움의 실마리(羞惡之心 義之端也)'라는 '맹자'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수오지심, 즉 수치심을 모르는 사람에겐 의로움, 올바름이 없다는 것이다. 수오지심과 더불어 인(仁)에서 우러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예(禮)에서 우러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에서 비롯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네 가지 마음씨, '사단(四端)'이라 일컫는다. '사단' 중 하나가 모자라도 사람의 본성은 망가지고 수오지심이 빠져도 인격의 '격'은 결여된다. 나라를 유지함에 있어서도 네 가지 수칙이 긴요하다고 했다. '사유(四維)' 즉 '예(禮) 의(義) 염(廉) 치(恥)'다.나라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수칙 중 하나가 수치심이라니! 그것은 집안 망신에도 부끄러움을 못 이겨 '괴사(愧死)'를 택했고 나라가 망해도 수치심을 참지 못해 '참사(慙死)'를 서슴지 않은 그 많은 의사, 열사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줄줄이 검찰에 불려 가는 전직 핵심 고관들의 얼굴은 저럴 수가 없다. “보라. 나 여기 왔노라”는 듯이 하늘에도 땅에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당당한 얼굴에다 여유로운 웃음까지 머금는다. 그리고는 한결같이 “받은 적 없다” “사실무근이다. 모함이다”고 잡아뗀다. 영국의 속담에도 '수치심 없는 사람에게 양심은 없다'고 했거늘. 측근의 축재 의혹을 밝힌 노무현 대통령의 양심에 한 점 거리낌이 없기를 기

  • 담배와 금연 지면기사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때 인디언들은 이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때부터 문명인들에게 알려졌고 전 세계에 여러 경로를 통해 퍼져 나갔다. 우리 나라에는 조선시대인 1608년께부터 이렇다할 기호품이 없었던 탓에 상하계급을 막론하고 급속하게 번졌다. 심심할 때 피운다고 심심초, 많이 피우면 골초, 다 피운 것은 꽁초 등 담배와 관련된 이름도 많다. 소설가 오상순은 골초로 이름나 호가 아예 '공초'다. 끽연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도 있다. '담배 피우다가 끊은 ×에게는 돈도 꿔주지 말라'. 독종이라는 뜻이다.담배에는 40여가지의 발암물질과 4천여가지의 화학물질이 들어있어 평균수명을 15년이나 단축시킨다는 보고도 있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따르면 10초당 1명이 담배 때문에 죽고 있다고 한다. 이런데도 전 세계 흡연인구는 5명 중 1명 꼴인 11억여명에 이르며, 우리 나라의 15세 이상 남자의 흡연율은 중국·베트남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한다.이처럼 세계적 기호식품인 담배도 이제 세월과 더불어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혐연권이 논의되더니만 금연구역도 속속 늘고 있다. 공공건물은 물론 각급학교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고 이제는 담배 피우는 사람과 상종하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 애연가들은 또 흡연권을 보장해달라는 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최근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청소년 등의 흡연 확산을 막기 위해서 담뱃값을 3천원 정도로 크게 올리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가 경제부처 장관들의 반대가 일자 노 대통령이 부처간 긴밀한 협의를 거치라고 지시했다. 담뱃값을 올려 새로 흡연하는 사람들을 줄이고, 피우고 있는 사람들도 담배를 끊게 한다는 발상이 일단은 유보된 셈이다. 휘발유값을 올려도 자동차 운행이 줄어들지 않았듯이, 값을 올려 금연을 유도하는 방법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부정적인 시각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흡연자들도 담배의 해악을 모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정신건강과 육체건강 사이를 넘나드는 담배의 이해(利害)관계를 떠나 금연을 시

  • 교육인적자원부 지면기사

    '교육인적자원부'라는 명칭부터 이상하다. '인적(人的)'의 '的'은 명사 밑에 붙어서 '…인' '…임' '…와 같은' 또는 '그런 성질을 띤' '그런 상태를 이룬'의 뜻이라는 게 국어사전 풀이다. 따라서 '人的'이라면 '인간 같은' '인간과 비슷한' '인간의 성질을 띤' '인간을 닮은' 존재를 뜻하고 인간이라고 보기엔 어딘가 모자라는 '인간 동물' 같은 어감마저 풍긴다. 그보다는 '교육인간자원부'나 '교육인재부' '교육인재양성부' 또는 '교육사람부(!)'쯤이 어떨까.어쨌거나 요즘 교육인적자원부 소리만 들리면 교원노조와의 분규와 갈등부터 연상한다. 이제 작년 3월과 11월의 영국 교조처럼 파업까지 일삼고 96년 9월5일 스승의 날을 맞은 1천여 뉴델리 교사들처럼 체불 임금을 요구하며 나체 시위를 벌이는 해괴한 광경이 이 땅에서도 벌어질지 모른다. 학부모를 비롯한 일반 시민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 즉 '나이스(NEIS)'인지 '네이스'인지가 정확히 뭔지 모를 수 있고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모를 수 있다. 다만 '우선 노조, 차후 교육'으로 착각할 정도로 어떻게 저리도 노조의 기(氣)가 드셀 수 있으며 교육 최고 책임자 또한 흑기(黑旗)를 들었다 백기를 올렸다 해 가며 엄청난 재정 낭비는 염두에도 없는 듯 'NEIS에 문제→유보→보완→재검토' 등 갈팡질팡할 수 있다는 것인가.하긴 미국의 교육학자 에버렛 라이머(Reimer)의 저서 '학교는 죽었다'와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레와 이반 일리히의 공저 '탈(脫)학교교육론'이 주목을 끈 지는 오래다. 전자는 오늘날의 교육이 중세의 교회처럼 인간 교육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일종의 '학교 해체론(解體論)'이다.15세기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아그리콜라와 동양의 숱한 선현이 주창한 전인교육을 학교에서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모두 잊어버린 다음 머리에 남는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오늘의 학교 교육에 너무 기대를 갖거나 교육 환경을 답답해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오

  • '맞춤정당' 지면기사

    지난해 이맘때 중앙선관위가 역대정당등록현황이라는 자료를 내놓은 적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정당법이 제정된 1963년 이후 99년까지 81개의 정당이 창당됐고, 한 정당의 평균수명은 3년2개월에 불과하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노태우의 민주자유당, 김영삼의 신한국당을 비롯해 표에는 빠졌지만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까지 역대 대통령의 집권당 중 최장수 기록은 신민주공화당의 17년6개월이다.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는 정당 결사의 자유는 당연하다. 또 국민의 지지를 못받는 정당은 소멸하게 마련이니, 정당의 부침 자체는 체제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자연스럽지 못해 문제다. 대통령이나 소수 정치리더를 위한 '맞춤 정당'들의 명멸이 바로 우리의 정당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력유지, 대통령 후보들의 정권쟁취 용도에 맞게 태동했다가 용도 폐기됐으니, 정당이 대의민주주의 기능을 발휘할리 만무다.대의민주주의 요람국들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한국 정당사는 더욱 누추하다. 영국의 보수당은 170년, 노동당은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갖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 당나귀는 211년, 공화당 코끼리는 149년째 장수중이다. 독일의 사민당이 124년을 버티고 있고, 프랑스의 사회당이 97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일본 자민당의 48년 역사는 약관의 연륜에 불과할 정도다. 우리도 대의민주주의를 반석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앞으로 100여년은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니 답답한 노릇이다.잘못은 국민에게도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고 애들 과외비 줄 돈은 있어도, 정당에는 한푼의 당비도 아까워하니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애매해진 것이다. 그러니 짓든 부수든 남의 일일 수밖에. 몇 달째 민주당이 신당 창당을 놓고 시끄럽다. 신당을 창당하자는 사람들이나 지키자는 사람들이나 명분은 개혁과 국민통합인데, 돌아올 수 없는 다리의 양단에서 대치중이니 속셈이 달라서일 게다. 아무튼 신당이 창당되면 그 또한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맞춤 정당이 될테니 장수(長壽)를 장담하기는

  • 韓流 지면기사

    2001년 11월 4일자 중국 최고의 권위지 인민일보(人民日報)가 '한국 바람이 불고간 후(韓風刮過之后)'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최근 몇 년 한국 문화가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TV에서는 한국 드라마를 즐겨 방송하고 극장에서도 한국 영화전 행사를 가졌으며 공연장에서도 한국 연극, 음악, 무용을 공연하고 있고 체육관도…. 관계자들은 이를 한국 바람(韓風), 한국 물결(韓潮), 한류(韓流)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불고 흐르기 시작한 우리 대중문화 '한류(韓流)'에 대한 사설이었다. '韓流'라는 말은 작년 말부터 중국 '현대한어사전(現代漢語詞典)'과 '신화(新華) 신사어사전(新詞語詞典)'에 오른다는 게 2002년 12월24일자 홍콩경제일보 보도였다.2001년 8월19일자 대만의 유력지 중국시보(中國時報)도 “한국 여배우들의 얼굴을 본뜬 성형수술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며 이들 연예인은 대만 TV에서 방영중인 한국 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인기 드라마 '가을 동화'는 '남색생사연(藍色生死戀)'이란 제목으로 홍콩 TV에서도 방영됐다. '겨울연가'도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동계연가(冬季戀歌)' '윈터 소나타' 등 제목으로 방영돼 주연 배우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더욱 흐뭇한 건 일본의 한풍, 한류다. 작년 11월 NHK TV가 '겨울연가'를 방영키로 결정한 건 대단한 결정이었다. TV아사히도 작년 10월부터 '이브의 모든 것'을 방영했다. TV뿐 아니라 영화, 연극, 뮤지컬 등의 한류도 거세고 부엌 퍼포먼스인 '난타'까지 재작년부터 일본열도를 '난타'했다. 보아, 김연자(金蓮子) 등의 인기도 단연 톱이다. 음반 판매 1위는 물론 휴대폰 착신 멜로디 순위 1위도 보아의 노래 '샤인 위 아(Shine We Are)'가 차지했다. 그런데 이번엔 장동건과 원빈을 보겠다는 일본 관광객 수백 명이 우리 영화 촬영장을 찾아와 화제가 되고 있다. 내친 김에 우리의 '정치문화' 등 기타 분야의 한풍, 한조, 한류까지도 '동북아'를 넘어 전세계를 휩

  • 꽃게 지면기사

    게에 얽힌 속담이 많기도 하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다' '게거품 문다' '게장은 사돈하고는 못 먹는다' '게딱지 같은 집' '게걸음' 등등이 그것이다. 부정적인 뜻이 담겨있는 것과는 달리 게의 영양과 효능은 널리 알려져 있다. 콜레스테롤을 저하시켜주는 타우린이라는 성분이 풍부해 고혈압이나 간장병 환자에 특효다. 껍질은 칼슘이 풍부하고 게살에는 필수아미노산과 비타민, 키토산 성분도 있어 성장기의 어린이, 회복기의 환자, 허약체질의 노인에게 좋은 식품이다. 식료본초에는 내열(內熱)을 산해(散解)하고, 위의 기운을 조절하며, 경맥을 순조롭게 하는 동시에 음식을 소화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게를 한자로는 해(蟹)라고 한다. 풀어보면 '解+●'으로 돼있다. 초가을 매미처럼 껍질을 벗기에, 벗어나는 벌레라 해서 '蟹'라 하기도 하고, 또 게의 딱지나 발이 해체하기 쉽다 해서 '蟹'라고도 한다. 게에게 무장공자(無腸公子)니, 횡횡거사(橫橫居士)니 하는 미명과 존칭을 붙이는 이유는 게딱지는 단단하나 속은 무르다 하여 군자들이 이상으로 삼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또 맛의 감별사, 서호판관(西湖判官)이라는 애칭도 있다.게에게는 4가지의 선덕(善德)이 있다고 한다. 큰 물이 진다든지 가문다든지 하면 게는 미리 이동한다. 그래서 예언력이 그 첫째요, 벼 벨 무렵이면 이삭 두 개를 물어다 저희네 어른에게 바치니 충성이 그 둘째다. 어떤 짐승한테도 발집게를 쳐들고 대드니 그 용기가 셋째며, 넷째 선덕이 바로 맛이다. 공자는 게장을 담가 즐겨 먹었다고 한다. 진나라의 필탁(畢卓)이라는 시인은 '한 손에 게를 들고 한 손에 술잔을 드는 그 맛이야말로 인생의 낙'이라고 했고, 북한에서는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꽃게잡이가 '장군님에 대한 충성의 척도'라 하기도 한다.그 맛좋은 꽃게가 요즘 인천 앞바다에서 많이 잡혀 만선(滿船)으로 돌아오면서 어민들의 주름살이 펴졌다. 인천 송도의 꽃게거리는 물론 소래포구, 평택의 만호리 등에도 미식가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번 주말 게와 함께 밥 한 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 다모클레스의 검 지면기사

    고대 그리스 시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Siracusa)의 왕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세에게 다모클레스(Damocles)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눈만 뜨면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왕의 업적을 칭송하며 '용비어천가'를 읊어댔고 침을 삼켜가며 왕의 자리를 부러워했다. 그러는 그를 딱하게 여긴 왕이 어느 날 다모클레스에게 '1일 왕'을 제의했다. “그대가 하도 짐을 부러워하니 어디 하루만 왕이 돼 내 자리에 앉아 보게.” 그는 감읍(感泣)에 겨워 '1일 옥좌'에 올랐고 문무백관이 머리를 조아리는가 하면 산해진미가 코앞에 펼쳐졌다. 그런데 어럽쇼, 문득 천장을 쳐다보니 말총(말 털) 한 가닥에 묶인 시퍼런 대검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권력과 영예, 행복의 절정에도 늘 위험이 따른다는 교훈의 유명한 얘기다.'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도 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오직 내려올 길밖에 없음을 후회한다는 뜻이다. 첨단, 즉 뾰족한 끝까지 올라갔는데 더 이상 올라가 앉을 '최첨단'이라는 자리는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왕과 황제로,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로 등극한다는 '등극(登極)'이란 말도 하늘 끄트머리, 꼭대기에 오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아찔한 꼭대기 끄트머리로부터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용이다. 그렇다고 중간에 맘대로, 함부로 내려올 수도 없다. 현기증을 앓고 후회를 한들 소용이 없는 일이다.용의 한숨과 눈물, 용의 후회 정도로만 그친다면 그나마 또 다행이다. 클레오파트라나 네로와 항우, 히틀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Saul)만 해도 축재와 살인, 세 자녀의 죽음 등 세속인과 다름없는 고통과 번민 끝에 그만 자살하고 말지 않았던가. 말총 가닥이 끊겼던지 다모클레스의 칼이 정수리에 떨어졌던 것이다.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머리 위에 매달린 대검이야 있든 없든 '대∼한민국 호'의 함장이 그런 나약한 속내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성심(聖心)'을 굳건히

  • 졸음운전 지면기사

    방어, 다랑어, 고등어 등은 헤엄을 치면서도 깜빡깜빡 졸기 일쑤다. 밤낮없이 떼지어 쏘다니는 바람에 마음놓고 잠잘 시간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꺽다리 기린은 선 채로 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몇 분씩 잠이 들기도 한다.사람 역시 출퇴근 만원 버스에서도 선 채로 꾸벅거리는 직장인이 흔하고 지하철은 마치 뉴캐슬병에 걸린 수탉처럼 일제히 벌이는 '졸음 경연장' 같기만 하다. 앉은 채로, 선 채로 꾸벅꾸벅 조는 잠을 순수한 우리말로 '말뚝잠'이라 한다. 누가 갖다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지만 얼마나 정겨운 어감인가.그런데 꾸벅꾸벅 조는 말뚝잠이 화(禍)를 부르고 저승사자를 초빙하기도 하니 탈이고 비극이다. '아함경(阿含經)'이라는 불경에 나오는 얘기다. 부처님의 설법 때마다 꾸벅거리는 아니룻다(Aniruddha·阿那律)라는 제자가 어느 날 된통 꾸중을 듣자 다짐하고 맹세했다. “세존이시여, 오늘부터는 몸이 무너지고 녹아 없어지더라도 절대로 졸지 않겠나이다.” 그는 졸음과의 전쟁을 벌였고 새벽까지도 고통을 무릅썼다. 그러다가 그만 안근(眼根)을 잃어 눈이 멀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육안 대신 심안(心眼)을 얻어 훌륭한 제자가 됐다는 것이다.심안도 좋지만 목숨을 잃는 졸음운전은 음주운전보다도 무섭다. 지난 2월26일 일본 오카야마(岡山)역에 진입하려던 히로시마(廣島)발 도쿄행 신간센(新幹線) 고속열차 '히카리 126호'가 정해진 정차 위치보다 100여m 못 미쳐서 자동열차제어장치(ATC)에 의해 긴급히 멈춰섰다. 역무원이 뛰어올라가 보니 운전사는 신나게 졸고 있었다. 졸음 시간은 약 8분. 일본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만약 시속 270㎞ 고속 열차에 자동제어장치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문제의 말뚝잠 운전사는 정밀 검진 끝에 '중증수면시무호흡증후군(SAS)'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다름 아닌 '졸음병(嗜眠症)'이었다.서울 지하철공사가 승무원의 졸음 예방을 위해 엊그제 사들인 1년치 껌이 12만9천750통이나 된대서 화제가 되고 있다. 껌을 씹든 뭐를 씹든 졸음운전만은 안된다. 콩나물 시루 지하철의 졸음운전이란 상상만

  • 김치와 마늘 지면기사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우리나라 김치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그렇잖아도 김치는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으로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이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17일 홍콩 중심가에서 한인상공회 주최로 열린 ‘홍콩축복 대행진’ 행사장은 ‘김치 예찬장’이었다. 동젠화(董建華) 행정장관까지 나서 ‘김치 파이팅!’을 외친 건 매우 이례적이다. 그래서 연예인들에 이어 김치가 ‘제2의 韓流’를 주도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김치는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의 공급원이며 젖산균에 의해 정장작용(淨腸作用)을 하고 식욕을 증진시켜주기도 하는 우리의 주식이다. 상고시대(上古時代)때부터 이미 오이 가지 마늘 부추 죽순 무 박 등으로 김치를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김치라기보다는 장아찌류에 가까웠다고 한다. 18세기 중엽 증보산림경제라는 책자에도 여러가지 김치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그러던 김치는 2001년 7월 5일 식품분야의 국제표준인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일본의 '기무치'를 당당히 물리치고 국제식품규격으로 승인받기에 이르렀다.요즘 김치가 중화권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특히 김치속에 포함된 마늘성분이 ‘사스를 이겨낸 원천’이라는 말이 퍼지면서부터다. 이런 가운데 최근 농촌진흥청이 “사스 때문이 아니라도 마늘은 몸에 좋다”며 마늘의 효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나섰다. 마늘은 산(蒜)이라고도 하며 어원은 만끼르(manggir)라는 몽골어에서 'gg'가 탈락된 마닐(manir)→마→마늘의 과정을 겪었다.농진청이 발간한 농업생활정보지 ‘그린매거진’에 의하면 우선 마늘은 음식물 등을 섭취하면서 알게 모르게 쌓이는 체내 독성물질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는 것. 마늘은 또 혈관에 쌓이는 콜레스테롤을 청소하면서 뇌혈전이나 심근경색·뇌졸중 등 각종 성인병을 막아주며, 간기능 회복과 함께 위암·폐암·유방암 등의 암세포를 죽이는 효과도 있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서는 '구운 마늘'이 정력에 좋다고 하여 중장년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역시 김치와 마늘은 우리 식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가 없을 것 같다./이준구

  • '살인의 추억' 지면기사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에 인파가 몰리고 있다고 한다. 지난 주말까지 전국 300여만명이 관람했고 제작사측은 600만명 동원을 장담하고 있다. 화성 사건에 드리워진 암울한 시대의 그림자를 자연스럽게 화면에 담아낸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화제다.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허기에 주렸던 영화계에 모처럼 등장한 수작(秀作)이라는 평가가 지나치지 않다는 느낌이다.영화 '살인의 추억'은 분명 아픈 추억이다. 영화에서 마지막 피해 여학생이 등화관제의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범인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때 관객들은 국민의 등화(燈火)가 관제(管制)당했던 냉전시대의 부조리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국가 자위(自衛)를 위해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동안 한 생명은 죽음의 대롱속으로 빨려들어갔으니 전체주의의 비극인 셈이다. 국제행사와 민주화시위에 공권력이 소모되는 동안 영화속의 경찰들이 빚어내는 각종 촌극과 용의자들에 대한 폭력은 인권과 인격이 유린됐던 시대에 가능했던 우울한 에피소드이자 블랙유머이다.화성 사건이 미제로 남은 이유는 이처럼 범인이 암약할 수 있었던 당대(當代)의 사정(史情)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은 많았다. 영국의 '요크셔의 살인마' 피터 셔트클리프는 3년동안 13명의 여자를, 미국의 테드 번디는 16명의 여성을 욕보인 뒤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의 경찰은 이들을 검거했는데, 모두 불심검문의 개가였다. 공권력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면 반드시 범인을 전기의자에 앉힐 수 있다는 교훈인 셈이다.영화 '살인의 추억'에 화성시민이나 피해자 유족들은 진저리를 칠 것이다. 5년간 10건의 연쇄살인 수사에 연인원 18만명을 쏟아붓고도 범인 검거에 실패한 경찰도 즐거운 추억일리 없다. 그러나 살인을 추억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범인을 검거해야만 한다. 영화에서 처럼 사건을 어두운 터널속으로 전송(?)할 일이 아니다. 얼마 안남은 공소시효, 경찰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는 것은 유족은 물론 국민 모두가 궁금해 하는 범인의 얼굴이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