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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사표 지면기사

    1천700여년 전 중국의 삼국시대. 촉(蜀)나라 재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위(魏)나라 토벌을 위해 출진하면서 촉제(蜀帝:촉나라 황제) 유선(劉禪)에게 상주문을 올렸다. 이것이 유명한 출사표(出師表)로서 “이 글을 읽고 울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란 말이 나올 만큼 천고(千古)의 명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신 제갈량 아룁니다. 선제(先帝)께서 창업의 뜻을 반도 이루시기 전에 붕어하시고…”로 시작되는 이글은 나라의 장래 및 국가 대업을 위한 사람 쓰는 일 등으로부터 선제 유비(劉備)의 은덕, 출진해야만 하는 이유, 황제에 대한 충심 등을 두루 쓰고 나서 이렇게 끝맺고 있다. “신이 이제 먼 길을 떠나려 합니다. 이 표를 올려 선제와 폐하의 은혜를 기리고자 하였으나, 자꾸 눈물이 솟아 더 이상 무슨 말을 아뢰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구구절절 선주(先主)에 대한 추모의 정과 후주(後主)에 대한 충성이 배어 있다고 평가되는 이 글은, 일찍이 소동파(蘇東坡)가 서경(書經)의 이훈(伊訓), 열명(說命)의 두 편과 견주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최근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10여년 전 걸프전에 돌입하기 직전 당시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로부터 받은 편지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그때(1990년 12월31일) 아버지 부시가 자신을 포함한 다섯 자녀에게 편지를 보내 ‘병력을 전쟁터에 보내야 하는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편지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심경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비유하면서 “지도자란 비판가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점점 많아지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소신을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가르쳤다고도 했다. 자못 그 옛날 제갈공명의 비장감을 연상케 해준다. 이런 것도 혹 일종의 출사표가 아닐는지.만약 지금의 부시 대통령과 또 그와 맞서려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출사표를 쓴다면 어떤 것이 될까. 혹 이런 말들이 들어가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평화의 전주곡은 폭력이다.” “모르는 말씀, 그건 배짱이다.” /朴健榮(논설위원)

  • 두 나라 국적 지면기사

    두 나라 국적을 가졌던 역사 인물만 해도 셀 수 없이 많다. 유태(유대)인 출신인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와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워, 독일의 시인 하이네, 역시 독일의 정치학자 경제학자 철학자이자 공산주의 시조 마르크스부터가 그렇다. 독일의 작곡가 멘델스존과 소련 혁명영화의 거장 세르게이 에이젠시테인, 영국의 명 재상 디즈레일리와 영국의 신문 재벌 로버트 맥스웰도 유태인 출신의 두 나라 국적 소유자였다.2중 국적을 거친 유명 현대인 또한 많다. 미국의 기업 영웅 아이아코카는 이탈리아계 이민 출신이고 AI(국제사면위원회) 창설자인 에이레의 맥브라이드는 프랑스, 미국의 명 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은 스코틀랜드 출신인가 하면 이스라엘 총리 샤미르는 폴란드, 퐁피두의 브레인이었던 발라뒤르 프랑스 총리는 터키, 88년 미국 대통령 후보 듀카키스는 그리스, 페루 대통령 후지모리(藤森)는 일본 출신이다. 미국의 천재 외교가 키신저는 어떤가. 유태인의 아들로 남부 독일에서 출생했으니까 혈통주의 원칙에다 생지주의(生地主義)가 더해진 국적법에 의하면 이스라엘→독일→미국의 3중 국적을 거친 셈이다. 미국의 천재 영화감독 스필버그도 유태인이다.2중 국적 시비가 없는 나라는 없을지 모른다. 재미교포의 미국 시민권자 90% 이상이 고국의 재산권 행사 등을 우려해 한국 국적을 그대로 갖고 있듯이 다른 나라도 거의 그렇기 때문이다. 문제는 터키와 미국 국적을 2중으로 가진 채 93년 6월 취임했던 실레르 터키 총리와 같은 예라든지 병역 등을 기피하기 위한 고의적인 2중 국적 취득이다. 꽉 막힌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 시각이 아니더라도 두 개의 조국과 두 개의 모국은 아무래도 혈통상 좀 어지럽고 충신은 두 임금을, 충민(忠民)은 두 나라를 섬기고 받들지 않는다는 국민 정서에도 뒤틀린다.그러나 지금은 국경 없는 풀 인재 시대다. 합리적 기준을 마련, 이번 정보통신부장관 아들의 경우처럼 더 이상 2중 국적 시비가 불거지지 않게 해야 하고 뛰어난 인재의 진로도 틔워야 할 것이다. 그보다는 왜 시빗거리의 사전 정비를 못하는지 답답한 일이다

  • 세살버릇 지면기사

    1972년 6월 어느날 새벽, 미국의 수도 워싱턴시 워터게이트 건물내에 있는 미 민주당 사무실에 괴한 5명이 침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경비원 신고로 즉각 출동한 경찰 조사결과 그들이 도청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들어갔음이 드러났다. 아울러 그중 한 명의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 옆에 'W.H'와 'W.House'가 표시되어 있는 것도 발견됐다. 다른 곳도 아닌 야당(민주당)사무실 침입사건이라 미국사회가 온통 들썩거렸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백악관은 단지 ‘3급 강도침입 사건’일 뿐이라고 논평했다.그러나 이것이 되레 더 큰 의혹을 불러,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벌스타인의 끈질긴 추적끝에 엄청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R·M 닉슨 대통령 정권의 민주당 선거방해 공작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일로 닉슨은 1974년 8월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고 만다.당초 닉슨은 도청사건과 백악관의 관계를 철저히 부인했었다. 그러나 차츰 진상이 규명됨에 따라 대통령보좌관 등이 관여했고, 대통령 자신도 사건의 무마공작에 나섰던 사실이 폭로됐다. 당연히 국민 사이에 불신 여론이 높아져 갔고, 마침내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 탄핵 결의가 가결돼 닉슨이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임기도중 대통령이 사임한 것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으며, 미국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그런 미국이 이번에 또 도청 파문에 휩싸였다. “미 정보당국이 유엔본부에 파견된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대표들의 전화와 이메일을 도청하고 있다”고 영국의 한 일간지(가디언 주말판 옵서버)가 보도한 것이다. 이라크 공격을 위한 2차 안보리 결의안 표결에서 찬성표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신문은 그동안 유엔 대표부 외교관들에게 암암리에 알려져 있던 미국의 도청 의혹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도 전했다.‘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그 옛날 그토록 망신을 당했건만 한번 들인 버릇이라 영 고쳐지질 않는 모양이다. 그나 저나 30여년 전 대내적 도청 때는 대통령 사임까지 몰아가는 대 폭풍이 일었었는데…. /박건영(논설위원)

  • 평양의 생맥주 지면기사

    음주강국 대한민국의 지난해 주류시장 규모는 총 7조2천300억원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가장 많이 팔린 주종은 역시 맥주로 전체시장의 46.8%인 3조3천800여억원을 기록했는데, 500㎖짜리 40억8천만병에 달한다. 15세 이상 모든 남성이 1년에 120병을, 국민 1인당 각각 80병을 마셔야 달성할 수 있는 수치다. 소주는 27억9천만병을, 위스키는 636만명을 마셨다니 통계로만 보면 한국사람은 1년내내 제정신일 때가 별로 없는 셈이다. 그야말로 비주류(非酒類)가 발붙이기 힘든 나라인 셈이다.그러나 술이 사회적 긴장도를 완화시켜주는 명약인 것만은 틀림없다. 특히 서민들의 퇴근길 동반자로 자리잡은 생맥주 한 잔의 청량감은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불화를 해소시켜 주고 의사를 소통시켜 주는 사회적 윤활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위스키나 소주와 만나 폭탄주로 이어지기 십상인 병맥주의 야만성과 달리 생맥주는 웬만해선 자체의 본성을 잃지 않는 순수함이 있어 좋다. 사실 생맥주는 기원전 4천년경 바빌로니아에서 이어져 내려온 맥주의 원형을 가장 순수하게 지켜내고 있는 술이다. 술보다는 대화를 중시하는 본래의 음주문화를 선호하는 젊은이와 도시형 샐러리맨들에게 생맥주가 인기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참여정부 초대 국무총리인 고건 총리는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는 직원과 함께 생맥주집에서 격의없는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생맥주와 대화'가 그의 화려한 공직생활의 버팀목이 됐음직하다.최근 노동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평양 시내에 생맥주집이 성업중이라고 한다. 평양시인민봉사총국이 운영하는 체인점 '대동강 맥주집'이 중구역 평천구역 보통강구역 모란봉구역 등 평양시내에 150개나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 생맥주집의 경우 하루 500㎖ 컵 2천개의 판매량을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끈다니, 생맥주가 북한의 폐쇄적 체제의 동맥경화를 해소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3·1절 민족대회에 참석한 북한 종교인들이 남한의 성당과 교회 그리고 사찰에서 입을 맞춘 듯 일제히 대미 통일전선 형성을 외치는 모습과, 생맥주로 상징되는 '평양의

  • 대학 기부금 지면기사

    미국의 반도체 회사 인텔의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가 2001년 10월 26일 '깜짝 발표'를 했다. 모교 캘리포니아 공대에 미국 대학 기부금 사상 최다 액수인 무려 6억달러(약 7천200억원)를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내 이름이 붙은 건물을 지어 주기보다는 신기술 개발을 위해 써 달라”는 기부의 뜻도 순수했다. 작년 5월 UCLA(LA캘리포니아대) 의대에 2억달러(약 2천4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드림웍스 SKG 공동 설립자 데이비드 게펜의 사유도 순수하고 흥미로웠다. 20세에 첫 직장을 잡을 때 명문 UCLA를 졸업했다고 속였던 게 괴로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양심 고백료(料)'였던 셈이다.명문 하버드대 기부금은 에콰도르의 GDP(국내총생산)보다도 많을 정도다. 작년까지의 기부금이 무려 190억달러(약 22조8천억원)라는 것이다. 2001년 6월 24일자 뉴욕타임스의 '하버드대 축재(蓄財)'라는 특집 기사가 아니더라도 '대학 기부금 축재'라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 한데 게펜의 '양심 고백료' 못지 않게 흥미로운 건 일단 낸 기부금을 도로 뺏는 기부금 회수다. 영화배우 제인 폰다가 하버드대 기부금 1천250만달러(약 150억원)를 되돌려 받기로 한 이유는 여성 관련 연구를 위한 센터를 세워 달라고 했는데 이행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지난 2월 1일 AP의 보도였다.우리 나라 대학 기부금도 급증하는 추세다. 2001년에만도 한 대기업이 낸 120억원 등 408억원이라는 기록적인 기부금을 받았다는 게 연세대였다. 그래선가 어느 신문은 '기부금 대박'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사람 농사가 가장 값진 농사”라며 작년 8월 아주대에 200억원을 기부한 사람은 수원교차로 창업자 황필상씨였고 재일 교포 양천식씨도 작년 1월 서울대에 65억원을 기증했다. 그런데 '기부금 입학제'까지 추진하고 있는 어느 명문대가 이번엔 금년의 'O₃오존 학번' 신입생들 집으로 여러 차례씩 전화를 걸어 기부금을 강요해 말썽이 되고 있다. 튼튼한 재단에 기부금도 많은 대학이 가난한 신입생들 가슴에 그토록 모멸성

  • '빈대 추방운동' 지면기사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합스부르크가의 왕궁 쇤브룬 궁전에는 옛날 시장의 모습을 담은 커다란 벽화가 있다. 장날에 약장사가 데리고 온 원숭이가 사람들 머리를 헤집으며 빈대를 잡아먹는 장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목욕은커녕 세수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 대신 하얀 분을 발랐다. 그래서 그녀가 죽었을 때 그녀의 얼굴 위에 쌓인 하얀 분의 두께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냄새는 향수로 커버했다. 그러나 몸에 생기는 빈대 벼룩 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원숭이로 하여금 벼룩을 잡아먹도록 한 것이다. 사람들은 장날만 기다린다. 장날 몇 푼 주고 몸을 원숭이에게 맡긴다. 원숭이는 열심히 사람들의 머리, 겨드랑이 등을 헤치며 좋아하는 벼룩을 잡아먹는다. 원숭이만 빈대를 잡아먹은 것이 아니다. 얼마 전 그린란드 얼음 속에서 600여년 전 모녀의 시체가 그대로 발견됐는데 어머니의 위장에서 빈대와 벼룩을 발견하였다. 그 당시 사람들의 식량사정이 얼마나 절실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빈대도 낯짝이 있다, 빈대 붙는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도 있듯이 우리에겐 친근하기도, 혐오스럽기도 하다. 이같은 빈대를 추방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기업이 있어 화제다. 종합무선통신업체로 코스닥 등록기업인 액티패스(대표·박헌중)가 품질혁신 차원에서 '빈대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동통신기지국 부품이나 휴대폰배터리 안테나 등 정밀부품을 생산하는데 있어 빈대를 잡듯 샅샅이 살펴 불량률 제로에 도전한다는 의미다. 회사창립 10주년 기념일인 지난해 광복절부터 시작해 불과 6개월 만에 불량률이 1천명당 1개에서 제로수준까지 감소했다. 기업으로서는 다소 이색적인 캠페인이지만 의미가 있는 운동이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물론 가스폭발 항공기사고 등 우리 주변에는 안전불감증으로부터 일어나는 대형사고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유비무환하지 않는 행정이나 생각들이 항상 여론의 질타를 받는다. 액티패스의 '빈대추방운동'을 우리 사회에 도입하면 어

  • 말 싸움 지면기사

    ‘프랑스의 엉덩이를 걷어차버리고 싶다〈뉴욕 포스트〉. 프랑스가 배운 기술이라고는 후퇴와 도망밖에 없다〈워싱턴 포스트〉. 프랑스는 사담 후세인(이라크 대통령)의 뚜쟁이가 되려고 울부짖는 쥐〈월 스트리트 저널〉. 겁쟁이들 만세(Vive les Wimps)〈뉴욕 포스트-프랑스인들의 구호 프랑스 만세(Vive la France) 패러디〉. 미국은 동맹국들의 팔을 비틀어 펜타곤(미 국방부)이 미리 입안한 전쟁 계획에 줄을 세우려는 눈꼴 사나운 짓을 하고 있다〈르 피가로〉. 전쟁 반대 공동성명을 한 프랑스 독일 러시아는 전쟁 반대 축(Axis against War)〈리베라시옹-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 패러디〉’. 이라크 사태 해법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미국과 프랑스를 대신해 양국 언론들이 쏟아부은 ‘말(言) 전쟁’ 문구들이다. 전쟁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의 기발한 말 솜씨들이 우선 감탄스럽다. 또 어떤 기막힌 표현들이 쏟아질지 사뭇 기다려지기도 한다. 여기에 영국 언론들도 가세했다. 그들의 말 솜씨 또한 수준급(?)이라 몇마디 옮겨본다.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는 지렁이.” “치사한 프랑스 벌레가 독재자의 피묻은 손과 악수했다.” 영국 최대 대중지 ‘선(Sun)’을 비롯한 대다수 영국 언론들이 시라크와 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이 악수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퍼부운 비난이다. 그런가 하면 BBC 방송은 시라크를 ‘바람둥이’ ‘3분짜리 남자’ 등으로 묘사했다. BBC는 시라크의 운전기사였다가 해고된 장 클로드 르몽이 쓴 책을 인용, “여당의 여직원들은 성관계를 신속히 해치우는 시라크를 그렇게 부른다”고 밝혔다. 이제 자국(自國)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원색적 인식공격 등도 마다않는 게 언론의 사명으로 된 모양이다.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그들의 주저없는 애국심(?)에 그저 놀랍기만 하다. 만에 하나 북한 핵(核)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의 이견 차가 아주 커진다면, 그때는 어떨까. 한국과 미국의 언론들도 이처럼 재미있는(?) 말 싸움을 벌일까. /박 건 영(논설위

  • 대통령 취임사 지면기사

    대통령 취임사의 한 마디, 한 구절이 그대로 금언(proverb)이 되고 격언(maxim)이 되고 경구(epigram)로 굳어지는 수가 많다. “국가는 국민의 것이다. 국민이 정부에 염증을 느끼면 언제든 혁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링컨의 취임사였다. 마치 쿠데타라도 부추기는 듯한 이 말은 국가의 소유권자가 대통령도 정부도 아닌 국민임을 역사 등기소에 보전등기(保全登記)케 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의 케네디 취임사도 유명하다. 요즘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랬다가는 오만방자로 오해받기 십상인 이 말 또한 그대로 격언이 돼버렸다.미국 대통령 취임사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시대 매듭짓기'다. 북한의 존재는 깜빡했는지 “전체주의 시대는 소멸돼 그 낡은 사상은 고대의 생명 없는 나뭇잎처럼 날아가 버렸다”고 한 것은 부시(89년)였다. “예속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 것은 존슨이었고 “대결의 시대는 마감되었다”고 한 것은 닉슨이었다. 세 번째 특징은 세계 경찰국가다운 지구적 레토릭(修辭)이다. 아이젠하워는 “신은 미국에 자유세계의 지도자 책임을 부과했다”고 했다. 이 말 중 '자유세계'를 '전세계'로 바꿀 사람이 바로 지금의 부시인지도 모른다. 카터 역시 “어느 나라의 평화와 자유에도 무관심할 수 없다”고 외쳤다. '평화'와 '전쟁'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된 것도 특징 중 하나다.우리의 대통령 취임사는 어땠는가. 박정희 대통령의 1인칭 대명사 '나는, 나는…'이 전두환 대통령의 '본인은, 본인은…'과 노태우 대통령의 '저는, 저는…'을 거쳐 김영삼 대통령의 '우리는, 우리는…'으로 바뀌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신기했다고나 할까. 같은 16대 대통령으로 고난의 길을 걸은 것까지 링컨과 닮았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취임사엔 '국민'이 19번, '동북아'가 15번, '평화'가 14번, '한반도'가 9번이나 나온다.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뿐 아니라 동북아까지도 책임지고 대표하는 '스타 대통령'이 되겠다는 웅지(雄志)가 아닐까. 마치

  • 물과 같은 지도자 지면기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대개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보석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보다 더 아름답고 강한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물이다.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쓰임새가 많고 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없으며 그 가치 또한 아름다움을 훨씬 능가하고도 남는다. 새삼스레 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새정부 노무현 대통령이 진정 '물과 같은 지도자'가 되길 소망하는 바람에서다. 6공화국 시절 노태우 대통령에 대해 '물태우'라는 표현이 널리 회자된 적이 있었다. 우유부단함과 뜨뜻미지근한 그의 국정운영스타일을 빗댄 조롱의 표현이었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한 음료 회사 CF는 '날 물로 보지마'라는 경구를 통해 광고카피의 흥행성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들 표현은 다분히 물을 경시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물의 이면, 즉 물을 조금이라도 분석적으로 고찰한다면 물의 위대함과 소중함은 결코 경시하거나 폄하의 대상이 아니다. 그 어떤 무엇보다도 중시되어야 마땅하다. 바로 노자가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가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물과 같은 지도자'를 거론할 때 노자의 물에 대한 철학은 고금의 진리로 영원하다. 노자는 '상선약수'를 통해 물처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가르치며 오늘날 이는 지도자의 통치이념을 이루는 근간으로 권고되고 있다. 물은 한없이 약하고 부드럽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기는데 물보다 나은 것 또한 없다고 했다. 물은 먼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함을 갖고 있으며 장애가 있더라도 거스르지 않고 비켜가며 둑을 만나면 고여 넘칠 때까지 기다리며 그 안에 큰 힘을 축적한다. 또한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글게 되는 법이다. 만물에 혜택을 주면서도 상대를 내치지 않는 게 물이다. 다시 말해 물은 힘은 있으되 몸을 낮추어 겸허하며 포용력과 양보의 미덕을 함께 구비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물의 힘으로, 물의 철학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길 노무현 대통령에게 희망한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 등

  • 理想鄕 지면기사

    일반적으로 중국의 역사는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삼황은 천황(天皇)·지황(地皇)·인황(人皇)을 일컫지만, 문헌에 따라서는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를 꼽기도 한다. 그러나 유명한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한나라 무제 때 인물)은 삼황의 전설을 믿을 수 없었는지 이를 제쳐놓은 채 오제본기(五帝本紀)서부터 사기를 기술했다. 사마천은 오제로 황제(黃帝)·전욱·제곡·요(堯)·순(舜)의 다섯 임금을 들고, 이들이 문명의 기반을 닦았으며 나라의 기틀을 잡아나갔다고 썼다. 그런데 그 오제 가운데 마지막 두 임금인 요와 순은 적어도 동양사회에선 퍽이나 유명세를 치러온 인물들이다. 두 임금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을 뿐 아니라, 백성들도 아무런 근심 걱정 부족함 없이 역사상 가장 복되고 편안한 삶을 누렸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孔子)가 ‘요·순시대’라는 말을 만들어 쓴 이래 요·순시대라면 으레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른바 정치의 이상향(理想鄕)이라면 당연히 요·순시대를 일컫게 된 것이다. “단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굶주리거나 죄를 범한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요와 순 두 임금은 이같은 마음가짐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백성들은 다음과 같은 격양가(擊壤歌)를 널리 부르며 태평성대를 구가했다고 한다. ‘해 뜨면 나가서 일하고/해 지면 들어와 쉬네/우물 파서 물 마시고/농사지어 먹고 사는데/제왕의 권력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얼핏 보기에 특이할 것 아무 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간편한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그런 세상을 만들기가 생각만큼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마음에 그리며 추구해온 정치의 이상향이 되어온 것을 생각하면. 때마침 새 정부가 출범했기에 사람들 마음 속에 수천년 동안 이상향으로 자리잡아온 요·순시대를 더듬어 보았다. 물론 21세기에서 요구되는 태평성대는 조금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박 건 영〈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