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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대폰 유언 지면기사

    2001년 9월11일 새벽 자동응답기에서 들리는 아내 멜리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션, 나예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한 것 같아요. 사방이 온통 연기예요. 사랑해요.” 미국을 강타한 9·11테러. 세계무역센터에 갇힌 희생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집어들었고, 지상의 친지들과 눈물의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한 중국계 미국인이 친구에게 남긴 유언은 너무 자연스러워 비장하기까지 하다. “비행기가 충돌했다. 지금 일생의 마지막 아침을 먹고 있다. 행복하게 살아라.” CNN의 논평가로 활동했던 바버라 올슨은 남편인 미 법무차관 테드 올슨에게 납치된 비행기 안에서 2통의 전화를 남겼다. 남편 테드는 피랍상황을 설명했던 첫번째 통화내용을 공개했지만, 두번째 통화는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마도 영원한 이별을 앞둔 절절한 사랑의 밀어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당시 희생자들은 휴대폰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 즉 유언을 전달한 매개체였다.지난 18일 대구에서 발생한 지하철화재 참사에서도 휴대폰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지하의 희생자들과 지상의 가족들을 이어준 최후의 끈이었다. 신혼의 주부는 새신랑에게 “사랑해”라고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맞벌이에 나선 한 젊은 아내는 “문이 안열려요. 살려줘요”라고 호소하더니 잠시의 침묵뒤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유언을 남겼다. “사랑해요. 애들 보고싶어….” 그러나 대구의 희생자들은 세계무역센터의 희생자들에 비해 생을 정리할 마지막 순간이 너무도 짧았다는 점에서 불운했다. 상당수의 희생자들이 급작스러운 사신(死神)의 방문에 놀라 “살려달라”는 피맺힌 절규를 남긴 채 쓰러져야 했다.희생자와 실종자의 휴대폰 유언이 우리에게 남긴 큰 교훈이 있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착하다는 것이다. 영문 모를 죽음 앞에서도 '사랑의 메시지'를 남겼을 뿐, 누구 하나 저주의 말을 남긴 사람들이 없다. 그들이 남겨놓은 '사랑'의 의미를 소중히 보듬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 책임을 다하려

  • 안전불감증 지면기사

    '안전사고'가 아니라 '사고'다. 세상 천지, 하늘 아래 땅 위에 바다 위에 '사고'면 사고지 '안전한 사고'가 어디 있는가. '안전불감증'도 잘못된 말이다. “괜찮아 괜찮아” “안심해” “걱정 붙들어매” “신경 팍 꺼” 어쩌고 해가며 '안전'을 지나치게 느끼고 너무나 믿는 '안전과신증'이고 '안전과민증'이지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는 '안전불감증'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고질과 고황은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불안전, 위험, 위태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불안전불감증'인 것이다. 둘러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 아니냐 할지 모르지만 아니다.또 하나의 악질(惡疾)은 '책임불감증'이다. IMF 태풍을 불러 숱한 기업과 가정을 풍비박산, 거리로 내몰고 자살로 몰고 노숙자를 만들어도 누구 하나 된통 책임지는 사람 없고 치가 떨리는 지하철 화재로 수많은 선민(善民)을 원귀(寃鬼)로 만들고도 “내가 죽일 ×이오”하고 나서는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다. 98년 태국 환란(換亂) 때 암누아이 전 재무장관과 링차이 전 태국은행 총재가 서로 “내 탓”이라고 나서자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가로막은 사람은 차왈릿 총리였고 더욱 놀라운 것은 책임 없는 후임 태국은행 총재까지 사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후앙다이조우(黃大洲) 타이베이(臺北) 시장이 처벌을 자청, 94년 10월 27일 낸 사표 이유는 달랐다. 가라오케 화재로 13명을 타 죽게 한 책임 때문이었다.'책임=자살'은 일본의 전통이다. “책임을 묻노라.” 한 마디에 배를 가르는 이른바 '셋푸쿠(切腹)'가 아니더라도 책임 통감으로 자살하는 예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99년 5월 장기신용은행 경영 파탄 책임으로 자살한 우에하라(上原) 전 부총재를 비롯해 기업 부도와 대형 사고 때마다 그랬다. 미국의 전 엔론 부회장 백스터가 작년 1월 자살한 이유도 망친 경영 책임 때문이었다. 자살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엄중한 처벌을 자청하는 책임자쯤은 우리 사회에도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안전불감증, 아니 지독한 '불안전불감증'과 '책임불감증'을 확 뜯어고칠 묘약이 아쉽다.

  • 호주제(戶主制) 지면기사

    중국 서남부 윈난성의 루그 호수변에 살고 있는 모소족은 남성의 억압이 없는 모계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다. 모소족에게는 '아버지, 남편, 아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성인례를 하기 전까지 모소족의 어린이는 남녀 구별 없이 성장하나 13세에 이르면 서로를 이성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19세가 되면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은밀히 선택, 남자가 여자의 집을 찾아가 합방한다. 합방을 했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관계가 청산되나 마음에 들면 주혼(走婚)의 관계를 맺는다. 혼전 합방이 오랜 관습으로 내려오긴 하지만 남녀 간의 성이 문란하거나 난혼(亂婚)이 없다. 아이에 대한 교육과 부양까지 어머니 쪽에서 모두 맡는다. 모소의 딸들은 어머니를 두고 섭섭해서 집을 떠나갈 수 없다. 자식도 어머니의 연인 '아하’를 만나면 우리말의 아저씨에 해당하는 ‘아찌’라고 호칭할 뿐이며 남자는 우리와 같은 가부장적 부성에 의한 생계의 의무에서도 자유롭다. 여자는 남자를 연인이자 손님으로 융숭히 대하니 모소족 부부는 늘 첫날밤 같은 부부가 된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분가하지 않고 다만 어머니와 같이 살아간다. 농경사회 이전에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농경사회 이후에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등 철저한 부계중심의 사회로 이동한다. 때문에 한국여자들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천형’을 치러왔다. 최근 부계혈통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호주제에 대한 위헌심판이 제청됐다. 아이가 태어나면 왜 아버지의 성만을 따르냐는 것이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동성동본인 것을 문제삼지 않는 이유 등으로 동성동본 혼인금지에 관한 민법도 폐지됐다. 모계혈통의 자녀도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난 97년 법이 개정됐다. 3월이면 신문마다 되풀이되는 단골기사인 초등학교의 남자초과(男超)도 부계 성씨를 물려주기 위해 아들만 낳으려는 데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편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가장을 중심으로 온 가족이 단합하고 가족간 갈등을 조정하는 호주제야말로 21세기형 가족제도의 모델이라는 게 유림의 주장이다.

  • 전쟁과 正義 지면기사

    세계는 한창 뜨거운 열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적자생존에 기반한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이 민족간에도 적용된다는 이른바 사회적 다윈주의가 번지면서 인종차별 민족주의 군국주의 열기를 광적으로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민족을 경쟁자 또는 적으로 보게 되면서 민족간 전쟁을 촉구하게 됐고, 당연히 그것이 당시로선 움직일 수 없는 정의(正義)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생동하는 젊음이 최상의 아름다움으로 평가되면서, 영광을 위하여 영웅적 행동을 상찬하는 풍조는 전쟁을 멋있고 바람직한 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어느 독일장군은 이런 말까지 했다. “설령 우리가 패배한다 하여도 전쟁은 아름답다.”결국 전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정의구현 수단으로 간주됐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몇몇 국가들의 패거리 싸움, 곧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다. 그러나 전쟁은 결코 아름답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전후방도 없이 벌어진 치열한 전면전의 결과 1천만이 넘는 사망자와 그 두배가 넘는 부상자가 나왔고, 숱한 국가의 재정파탄 및 영토 황폐화를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 엄청난 참화가 인류를 각성시키지는 못했다. 참화가 가져온 낙담과 좌절은 되레 민족간의 증오심을 더욱 강력하게 키웠고, 폭력에 대한 신앙심만 한층 부추겼던 것이다. 마침내 또 한번의 패거리 싸움(1939~1945년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무려 5천만명이 넘는 인명손실 등 사상 최대의 전쟁폐해를 남기고야 말았다.하지만 이 역시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했다. 그 후로도 지구상 곳곳에선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지구촌 한편에 짙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정의를 내걸고…. 아마도 정의는 전쟁을 통해서만 구현된다고 여겨지는 모양이다.지난 주말 세계 곳곳에서 1천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 사상최대 반전시위를 벌였다지만, 글쎄 그것이 과연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지. “전쟁을 증오한다”고 외친 아이젠하워 장군도 자신이 참전했던 전쟁을 마친 다음에야 비로소 그렇게 말했다니까. /朴健榮(논설위원)

  • 지하철 참사 지면기사

    문명의 이기(利器)의 '利'자는 '이로울 이'자이면서 '날카로울 이'자다. 이롭고 편리한 만큼 찔리고 다치기 쉽다는 뜻이다. 영국의 찰스 피어슨이 두더지 구멍을 보고 착상했다는 지하철만 해도 그렇다. 1843년 피어슨이 런던시 의회에 지하철 건설을 제의했을 때 그는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다. 죽으면 땅 속으로 갈 것을 살아서 앞당겨 가고 싶으냐는 반대로 10년이나 미뤄졌고 드디어 세계 최초 런던 지하철이 개통된 것은 20년 뒤인 1863년이었다. 그것도 처음엔 시커먼 연기와 함께 증기기관으로 달리다가 1890년에야 전기로 운행, 오늘의 런던 교통 분담률 72%를 자랑한다.지하철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인 까닭은 두더지 굴속 같은 구조상 문제점 때문이다. 1987년 런던 지하철 킹스크로스역 화재 때는 30명이 숨졌고 95년 옛 소련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Baku) 지하철 화재 때는 무려 340여명이나 소사(燒死)했다. 지하철 폭탄 사고도 빈발한다. 같은 95년 파리 중심가 생미셸역에서는 과격 회교분자가 설치한 폭탄이 터져 7명이 죽고 80여명이 다쳤고 다음 해 모스크바에서도 테러범이 터널에 설치한 폭탄으로 지하철 승객 4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했다.지하철 가스 테러도 무섭다. 영국의 추리 소설가 고든 토머스의 '살인 향수(Deadly Perfume)'를 모방했다는 일본 옴진리교의 마(魔)의 95년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로 12명이 사망, 무려 5천500여명이 상해를 입었고 그 해 요코하마(橫濱)역 가스 살포로 500여명이 부상했다. 런던과 도쿄처럼 노후 지하철의 탈선이나 붕괴도 경계할 일이다. 지난 1월 25일만 해도 런던 지하철 센트럴역에선 4개 차량이 탈선, 30명이 병원에 실려갔다.이번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야말로 너무나 참혹하고 끔찍하다. 치가 떨리도록 분하고 안타까운 것은 흉기를 든 20대 흉악범도 아닌 50대 장애자의 섣부른 짓을 어떻게 그렇게 막지를 못했느냐는 것이고 화재가 난 뒤에도 어떻게 또 그렇게 철두철미 속수무책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철저한 예방책과 사후 처리 대책이 있

  • 은닉재산 추적 지면기사

    빌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시절 빚이 무려 1천100만달러나 됐었다. 몇가지 소송비용 때문이라고 했다. 그중 700만달러는 간신히 갚았지만, 2년 전 그가 백악관을 떠날 때까지도 여전히 400만달러의 빚이 남아 있었다. 빚더미에 오른 대통령, 우리네 상식으로는 사뭇 낯설기만 했다. 빚은커녕 수천억원씩 비자금을 챙기는 전직 대통령을 두 사람이나 보아온 탓이리라.하긴 7년여 전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긴가민가 했었다. 하지만 검찰수사 결과 그것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자 분노에 앞서 차라리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그때 전두환 전대통령은 자그마치 9천500억원의 비자금을 통치자금 명목으로 조성했고, 노태우 전대통령은 5천억원 정도를 챙긴 것으로 추정됐다. 그래서 재판부는 전씨와 노씨에게 각각 2천205억원과 2천628억원의 추징금 납부 판결(1997년 4월17일 대법원 확정)을 내렸다. 당초 검찰이 뇌물로 규정, 기소한 액수는 전씨가 2천259억5천만원, 노씨가 2천838억9천600만원이었으나 재판 과정에서 조금씩 줄어들었던 것이다.그때 두 사람에겐 성공한 쿠데타(?) 죄까지 적용돼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징역도 함께 선고받았지만, 그해 12월 본형 특별사면을 받고 풀려났다. 아마도 그게 그들의 배짱을 키워준 모양이다. 재판부 확정 판결이 나온지 이미 6년 가까이 지났건만, 아직도 추징금 미납액이 합계 2천445억원이나 된다. 마치 ‘추징할테면 하라’는 식으로 일부러 버텨온 느낌마저 준다. 오죽하면 당국이 추징금을 받아낼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그런데 며칠 전 서울지검이 ‘전씨 미납분’ 1천890억원 환수를 위해 법원에 재산명시를 신청했다고 한다. 역시 잊지는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름대로 그들의 은닉재산을 추적하려는 집념이 자못 돋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애초 특별사면 때 최소한 ‘추징금 완납’ 조건이라도 내세웠다면 하는 아쉬움이 전혀 없지도 않다. 법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인지도 모르지만. 그나 저나 끝까지 추적이 잘돼야 할텐데….朴健榮

  • 돌리'의 교훈 지면기사

    복제양(羊) 돌리가 지난 14일 생을 마감했다. 1996년 7월5일 세계 최초의 체세포 복제 포유동물로 탄생한 돌리는 평균 수명의 절반이 안되는 만 6년7개월을 살다가 안락사 당했다. 신(神)의 섭리 대신 인간의 조작으로 태어난 돌리는 죽음마저도 인간의 간섭에 의해 결정된 셈이다. 97년 2월 영국 로슬린연구소가 암양의 젖샘세포를 복제해 얻은 돌리를 세상에 선보이자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체세포 복제의 성공은 인간을 신의 영역으로 인도하는 생명창조의 열쇠로 여겨졌다. 무한한 자기복제를 통해 영생불사에 대한 희망은 생명창조의 주관자인 신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의미하는 천지 창조 이래 가장 위대한 기적으로 보였던 것이다.그러나 위대한 기적이 인류 최악의 오만으로 드러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인간은 생명창조에 대한 무모한 도전의 결과에 절망하고 있다. 돌리는 4마리의 새끼까지 낳았지만 조로의 기미를 보여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돌리 탄생 이후 경쟁적으로 벌어진 체세포 복제 결과 소, 염소, 쥐, 고양이 등 수많은 복제동물이 탄생했다. 한국에서도 99년 복제소 영롱이가 태어나 복제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바 있다. 그러나 이들 복제동물 대다수는 사산하거나 심각한 기형을 안고 태어났다. 지난해 2월 태어난 복제고양이 ‘Cc’의 경우 188차례의 복제시도 끝에 82개의 배아를 얻어 그중 빛을 본 유일한 생명체였다.복제동물의 사산, 기형, 급사, 조로 현상은 면봉으로 자신의 체세포를 긁어내 복제공장에 맡기는 것만으로 종을 보전하고 영생을 도모할 수 있는, 그런 미래를 꿈꾸는 인간에 대한 신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유엔이 '인간복제금지 국제협약' 제정을 서두르고는 있으나 이를 무시하는 집단에 의한 '인간 아닌 인간'의 출현 가능성은 여전한 실정이다. 인간복제의 완성을 선언한 '라엘리언 무브먼트'와 같이 복제를 통한 인간영생을 믿는 광신적 집단들이 음습한 공간에서 계속 신의 영역에 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검을 마친 돌리는 에든버러 박물관에 전시된다고 한다. 진열장 언저리에 '인류 최악

  • 반전데모 지면기사

    동물들도 민주주의를 아는지 데모에 나선다. 꼬마 코끼리가 열차에 받혀 죽자 코끼리 떼가 몰려가 철길을 가로막고 울부짖는 바람에 장장 12시간이나 불통된 소동은 90년 9월24일 인도 타밀나두주 우타카문드 휴양지 부근에서 일어났고 원숭이 50여 마리가 경찰서를 포위한 채 항의하는 데모는 95년 12월14일 인도 벵골주 콜카타(캘커타)시에서 벌어졌다. 이유는 어느 교사의 집 정원에 뛰어들었다가 총에 맞아 죽은 원숭이 시신이 경찰서에 안치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지 마이크스의 소설 '소들의 데모'를 들지 않더라도 사람의 사주에 의한 '우공(牛公)의 시위'도 걸핏하면 벌어진다.하물며 오욕칠정(五慾七情)에 민감한 사람들이랴. 그게 민주주의의 프로필(옆얼굴)인지 뒤통수 그림인지는 몰라도 도무지 데모 없이 지새는 날이 없고 데모 안하는 집단이 어디 있을까 싶다. 데모대의 맨 뒤, 가장 먼 곳에 앉아 있든 서 있든 해야 할 대통령과 총리까지도 '질세라'다. 90년 5월14일의 파리 인종차별 시위대엔 미테랑 대통령도 끼여들어 하늘에다 주먹질을 해댔고 91년 10월17일엔 아메드 고잘리 알제리 총리가 투표권을 부르짖는 여성들의 연좌데모에 연좌했다. 종교인도 예외는 아니다. 95년 6월16일 서울에선 스님과 수녀들이 조계사 공권력 투입에 항의, 시위를 벌였고 작년 7월18일엔 북한산 관통로에 반대하는 스님들이 '3보 1배'라는 이색 데모를 했다. 심지어는 데모를 막아야 할 경찰까지도 97년 1월23일엔 뉴욕에서, 바로 지난 11일엔 베네수엘라에서 밀린 임금을 달라며 시위를 해댔다.이색(異色) 데모도 가지가지다. 스페인풍 엉덩이 시위를 비롯해 호주식 나체 시위, 홍콩식 가면 시위는 보통이고 보통도 아닌 별의별 시위도 다 있다. 그런데 가장 적은 '1인 시위'에 반해 어제오늘 전세계적으로 일제히 벌어졌고 벌어지는 반전(反戰) 시위는 '최다 시위대'의 기록을 연일 경신할 추세다. 마치 외계를 향한 지구별 인구의 합동 시위 같지 않은가. 'No War(전쟁은 안돼)' 'No Bush(안돼 부시)' 구호야 외계인이 읽든 말든, 듣

  • 커닝 지면기사

    고려와 조선조 궁중에서 쓸 기름·꿀·후추 따위의 당시로선 귀한 물품을 보관하던 창고를 의영고(義盈庫)라 불렀다. 진상(進上)에 관련된 기관으로 내섬시 내자시 사도시 사재감 사포서 등과 더불어 공상육사(供上六司)에 포함됐으며 후추는 왜상(倭商)을 통해 수입하기도 했다.그러나 백성들 사이에선 콧구멍을 의영고라 불렀다고 한다. 과거(科擧)보러 가는 수험생들이 콧구멍에 각종 비밀(커닝 페이퍼)을 숨겨갔기에 비아냥으로 나온 말이다. 당시 수험생과 관리들이 부정한 수법으로 시험을 치르고, 당락을 결정하니 과거제 자체가 흔들리고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다고 한다. 이를 보면 커닝의 역사는 기록상 600년 이상으로 꽤나 오래돼 예나 지금이나 골칫거리이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우리 사회에서도 커닝이 만연하리 만큼 중대한 문제로까지 등장했다. 10명중 2명꼴로 커닝경험이 있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이고, 휴대폰이나 문자메시지 등 첨단의 방법이 동원되는 등 다양한 수법이 등장하고 있다. 대입수능시험장에서의 협박 커닝, 고교에서의 내신성적 올려주기를 위한 교사들의 커닝 묵인, 경찰승진시험·의사자격시험에서의 커닝 등에서부터 약 10여년 전에는 대구의 모 대학 수석합격자가 커닝을 했다는 충격적인 보도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대학생들 스스로 '커닝으로 얻은 학점, 커닝으로 버린 양심'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커닝 안하기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아주대는 제자들의 양심을 믿는다는 전제 아래 대학에서는 보기 드믈게 감독 없는 시험을 치르기로 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최근 실시된 예비변호사들의 윤리시험에서 50여명이 커닝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보도로 법조계의 '도덕 불감증'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예비변호사들이 윤리시험을 치르면서 비윤리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책을 펴놓고 보는 '오픈 북' 방식으로 치러진 시험인데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답안이 속출했다면 틀림 없는 커닝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여하튼 시험이라는 것은 학생신분이건,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이건 간에 관계 없이 수험생의 입장에서 보면 커닝이 뒤따르는 골치아픈

  • 야구방망이 남편 지면기사

    일어의 '고론(口論)'은 글자 모양만 봐서는 점잖은 토론이나 논의를 뜻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영어의 아규먼트(argument)나 디스퓨트(dispute)에 해당하는 '언쟁' '말다툼'이다. 그런데 그런 말싸움, 말시비는 흔히 몸싸움과 주먹다짐으로 발전하기 일쑤다. 그래서 그들의 '口論'은 폭력을 상징하는 말이 돼버렸다.중국어의 말다툼은 '차오'다. 입 구(口)변에 적을 소(少)자가 붙은 글자가 '차오'다. 아마도 '말다툼을 적게 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마치 입 '口'변에 많을 '多'자라도 붙은 것처럼 말다툼은 잦다. 중국인은 또 사람을 때리는 것을 '다렌(打人)'이라고 한다. '때릴 타(打)'자는 손을 뜻하는 '●'와 상놈을 의미하는 '丁'자가 합쳐진 글자다. 그러므로 상놈이 손으로 때리는 게 구타다. 한데 '打'자 말고도 '●'에 '女'가 붙은 글자도 있어야 할 듯싶다. 매맞는 아내뿐 아니라 매맞는 남편도 늘어가기 때문이다.2001년 7월 9일자 뉴욕포스트는 미국 가정 폭력 피해자의 3분의 1 이상이 남성이라고 했다. 그리 된 이유가 흥미롭다. 남성들은 폭력을 휘두르면 아내가 다치고 경찰을 부를 것이 뻔한 반면 아내들은 폭력을 행사해도 그럴 염려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선가 퍼스트레이디의 주먹에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든 눈으로 98년 8월 '위클리 월드 뉴스'지 표지 모델이 된 클린턴부터가 매맞는 남편의 대표처럼 돼버렸고 그런 남편의 가출이 늘면서 'Families need Fathers(가정은 아빠를 필요로 한다)'는 명칭의 '피학대남성보호소'가 영국에 문을 연 것도 이미 93년 1월이었다.그러나 아직은 매맞는 아내가 많다. 영국의 BBC는 작년 3월 19일 스페시오자 카지브웨 우간다 여성 부통령이 남편의 폭력을 고백, '여권(女拳)'이 아닌 여권(女權) 논쟁에 불을 붙였다고 보도했다. 무엄하게도 부통령 아내 구타에 '상놈의 손(打)'을 마구 휘둘렀던 모양이다. 그런데 맨손도 아닌 야구방망이로 돈 잘 버는 아내를 구타, 중상을 입히는 남편은 뭐라고 해야 하는가. 야차(夜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