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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신세 면하려나 지면기사

    15세기 조선의 농서(農書) ‘금양잡록(衿陽雜錄)’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한다. “호미질 나갈 때에 술단지를 잊지말라.” 예부터 우리 민족이 유난히 ‘술을 즐겼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인용되곤 하는 글이다. 하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부여, 진한, 마한, 고구려의 무천, 영고, 동맹 등 제천행사가 주야음주가무(晝夜飮酒歌舞)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이 분명 술을 좋아하기는 했던 모양이다.딱히 그런 전통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우리 국민은 퍽이나 술을 즐기는 편이긴 하다. 인구수에 비해 술 소비량이 세계에서 첫째 둘째를 다툰다는 말을 자주 듣는 걸로 봐서도 그렇다. 당연히 외국술 수입량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01년엔 위스키만 해도 자그마치 2억6천만달러어치를 기록했다. 국내 위스키 판매량을 보면, 지난 98년 150만상자(500㎖ 18병 기준), 이듬해인 99년 192만상자, 2000년 268만상자, 2001년 319만상자, 지난해 357만상자까지 불과 4년새 138%나 늘어나는 초고속 성장세를 보였다.이쯤 되면 위스키업계의 주목받는 고객이 될 만하다 하겠다. 오죽하면 몇 달 전 한 외신은 이런 보도까지 했다. “한국이 세계 위스키업계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심지어 세계 위스키협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한국인은 최고의 스카치에 최고의 가격을 지불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놓치기 아까운 고객에다 통큰 ‘봉’이란 비아냥도 배어 있는 듯 싶어 이래 저래 얼굴이 뜨거워졌었다.하지만 이제 우리 국민들도 더 이상 위스키업계 ‘봉’노릇은 사양키로 한 모양이다. 지난 달 위스키 판매량이 총 25만868상자로 작년 동기 25만7천551상자보다 3% 줄었고, 지난 1월 37만8천767상자보다는 34%나 감소했다는 소식이다. 비로소 낯 뜨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인지, 아니면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 모르나 우선은 반갑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봉’신세 면할 날도 실제로 오게될지 모르니까./박건영(논설위원)

  • '代筆 전성시대' 지면기사

    이이화의 한국사이야기에 보면 조선시대 벼슬아치 선발시험인 과거(科擧)의 부정행위 수법을 세 가지로 열거했는데 그중 하나가 대필(代筆)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과거를 보면서 부정행위자가 미리 내통한 자의 글을 베끼고 그 내통한 자는 시험지를 내지 않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같은 부정행위가 발각돼도 처벌이란 것이 합격취소나 다음 응시자격 제한 정도로 너무도 가벼웠다는 점이다. 조선왕조가 관료사회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정체(政體)의 근간을 허무는 행위인 만큼 주리를 틀고 치도곤(治盜棍)을 안겨도 모자랄 법한데 요즘으로 치면 '훈방' 정도로 처리한 셈이다.남의 지식과 학문을 돈으로 사는 행위에 이렇듯 관대했던 것도 이어가야 할 정신문화유산인지, 현대의 후손들은 선악을 따지는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대필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박사학위 500만원, 석사학위 300만원을 받고 인터넷에서 학위논문 대필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적발됐다고 한다. 대필 가격을 놓고 '깎자, 안된다' 흥정을 했다는 후안무치도 그렇고, 학사가 써준 석사학위 논문을 버젓이 통과시킨 '대학원'은 또 뭐하는 곳인지 알 길이 없다. 석·박사 논문뿐인가. 선거철이 되면 연설문 작성을 발주하는 정치인, 대입시험과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구매하는 젊은이들로 '대필 사업'은 산업화 된지 오래다. 그 결과일 게다. 초등학생들도 회장·반장 선거에 쓸 연설문을 대필업자에 맡기고 있다니 말이다. 이러다가 우리 사회가 온통 대필사업자들의 교언영색으로 포장되지 않을까 걱정이다.자신의 생각과 학문, 사상을 스스로 글과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이 바로 문맹(文盲) 아닌가. 개인의 창의성과 집단의 다양성이 만개한 21세기에, 한국땅에서는 거대한 문맹시장이 형성되고 있으니 문명의 반동(反動)이자 퇴행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양식과 도덕성만으로 신(新) 문맹을 퇴치할 수 없다면 타율로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대필산업을 척결하지 않고서는 문화와 문명을 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옛날 문자를 몰랐던 촌로들도 대필자에게 글만 빌렸지 생각까지 빌리지는 않

  • 후진타오 지면기사

    지난 8일자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베이징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新聞週刊' 3월3일자가 당국의 압력으로 가판대와 서점으로부터 모조리 수거됐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서웠다. 이 달로 물러나는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5년간 공적을 다룬 특집에서 '세계 최고 총리의 한 사람, 노벨경제학상에 값한다, 중국의 견고(堅苦)한 정치 풍토에 춘풍을 불어넣다' 등 최고의 찬사가 장쩌민(江澤民) 주석보다도 돋보이는 건 좋지 않다는 게 전부였다. 그런 권력 투쟁 정글인데도 작년 11월 총서기 선출 때 예약한 그대로 국가 주석이라는 옥좌를 단 몇 달간의 컨펌(확인) 절차를 거쳐 차지한 후진타오(胡錦濤)는 과연 누구인가.'황제 모시기는 호랑이 모시기와 같다(伴君如伴虎)'는 말이 있다. 2인자가 1인자로 올라서기는 호랑이 곁에서 살아남기보다 어렵다는 소리다. 소련 혁명군사회의 의장을 지낸 정치혁명가 트로츠키만 해도 어떤가. 그는 일찍이 레닌의 후계자였지만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오스트리아→미국→터키→프랑스→노르웨이로 망명, 전전하다가 결국 스탈린이 보낸 자객의 도끼에 찍혀 죽었다. 히틀러의 브레인으로 나치의 광기(狂氣)를 극대화한 괴벨스도 베를린 함락 직전 총통 관저 지하 벙커에서 아내와 여섯 자녀를 사살한 뒤 자살했다. 이기붕도 비슷하게 죽었고 박헌영은 처형됐다.중국의 2인자들은 어땠는가. 27년간 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周恩來)를 비롯한 린뱌오(林彪), 류사오치(劉少奇), 펑더화이(彭德懷) 등은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죽음의 길로 내몰렸고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 등은 덩샤오핑(鄧小平)에 밀려 화병으로 죽거나 빈털터리가 됐다. 그런데도 덩샤오핑→장쩌민처럼 후진타오 또한 장쩌민으로부터 주석 바통을 정글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이어받은 비결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공적을 늘 장쩌민 등 당 지도자들에게 돌리는 등 겸손하다. 그러면서도 무서운 추진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오랑캐 호(胡)'자 성씨에다 '전진타오'도 아닌 '후진타오'지만 인상 역시 썩 좋다. 그런 저런

  • 정조(正祖)와 孝 지면기사

    조선조 22대 임금 정조대왕(1752~1800)은 효(孝)와 문화(文化)의 군주로 통한다. 그 만큼 이것에 얽힌 일화도 수없이 많다. 7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장헌세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당쟁의 제물이 되어 뒤주 속에 갇혀 죽는 장면을 목도했다. 24세인 1776년에 즉위한 이후 문민화 정책을 펼치고 당쟁을 없애려는 탕평책을 쓴다. 오로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정조는 1789년 원소(園所)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으로 옮긴다. 그 뿐 아니다. 실학자 정약용으로 하여금 화성을 축성케 한다. 수원 천도까지 결심할 정도로 수원에 대한 사랑은 극진했던 것이다. 유네스코의 380번째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은 한국 성곽의 백미로 통한다. 화성 건축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공사에 참여한 인부들의 이름과 노임까지 기록됐을 정도로 정조의 애민사상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물가로는 모두 87만냥이고 현재 화폐로 400억원이다. 화성건축을 통해 이 많은 돈을 백성들의 손에 쥐어주어 사실상 최초로 공공근로를 했던 셈이다. 그만큼 백성을 사랑했고 문화유산에 애착을 가진 임금이었다. 정조의 화산릉 참배 때 머물 화성행궁도 팔달산 동록(東麓)에 지었다. 능행차를 하면서 백성들로부터 상언(上言)을 들어 5천건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한양을 오가는 길 이목리에 이르면 노송지대의 송충이까지 입으로 죽였다. 아버지 산소 가는 길의 해충을 없애기 위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지지대(遲遲臺)에 이르러서는 장헌세자의 묘소를 놓고 가기가 싫어 걸음을 지연시켰다 해서 지지대로 이름붙여졌다. 수원을 효원(孝園)의 도시로 부르는 이유다. 화성에 이어 화성행궁이 최근 복원공사를 끝냈다.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도 열었던 곳이다. 조선 8도의 7만5천여명 노인들에게도 같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을 만큼 정조는 효심이 지극했다. 요금을 내지 않는 노인들이 전철과 버스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요즘이다. 사람은 나이 들면 누구나 노인이 된다. 화성행궁 복원을 계기로 수원 전체가 효(孝)의 산 교육장이 됐으면 하는 바

  • 원로들의 갈등 지면기사

    전두환 전대통령과 노태우 전대통령. 그들은 고향이 같은데다 같은 육사 11기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생도시절부터 5성회다 7성회다 하면서 우정을 쌓았고, 군대생활도 ‘하나회’를 같이 꾸리며 우정을 돈독히 했다. 1979년 12·12쿠데타도 함께 일으켰고, 이른바 신군부의 제5공화국도 힘을 합쳐 세웠다. 심지어 대통령직까지 5공화국 전두환 대통령,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 식으로 서로 넘겨주고 받을 정도였다.하지만 두 사람의 30년 넘는 우정은 노 전대통령이 전 전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으면서 하루 아침에 금이갔다. 들리는 말로는 퇴임 후에도 상왕(上王)으로 남으려는 전씨를 노씨가 결코 용납할 수 없었고, 끝내는 전씨 내외가 백담사로 갈 수밖에 없게된데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깊은 속내야 당사자들이나 알 일이다. 그야 어찌됐든 두 사람은 그 후 감옥까지 나란히 다녀왔지만, 그래도 그들 갈등의 골은 여전히 메우지 못했다고 전해진다.그런데 전직 대통령들 간의 갈등은 그들 두 사람에게만 한정된 건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김영삼 전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밖에서 만났을 때 DJ(김대중 전대통령)가 ‘이것 저것 잘못했다. 화해하자’고 했다. 그래서 당시에 ‘국민 앞에서 얘기하면 화해하겠다’고 했으나 국민 앞에서 안하더라.” 두 사람 역시 차례로 대통령(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을 거쳤지만, 껄끄러운 사이인 게 분명한듯 싶다. 하기야 국민들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그러고 보니 생존 5명의 전직 대통령들 중 오로지 한사람(최규하 전대통령)만 빼고는 모두 척을 지고 있는 셈이 됐다. 그것도 둘씩 둘씩 짝을 지어서. 차례로 대통령직을 거치면 서로 반목해야 되는 무슨 징크스라도 있는 모양이다. 그나 저나 과거지사야 어떻든 그래도 원로 중 원로라 해야할 이들의 갈등 반목이 왠지 민망하다. 그들도 현직에 있을 때는 누구보다 화합을 강조(?)했던 걸로 기억되는데. 하기야 바로 이런 것들이 곡절 많은 우리네 정치사의 한 단면이라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긴 하지만./박건영(논설위원)

  • 개혁이라는 것 지면기사

    '개혁(改革)' '혁신(革新)' '혁개(革改)' '혁명(革命)'의 '혁(革)'이 '가죽 혁'자인 까닭은 무엇일까. 기독교 성경을 보면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이 입힌 옷이 가죽옷이었다. 바로 그들의 하체를 가렸던 나뭇잎이 가죽옷으로 바뀐 것을 인류 최초의 개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튼 '개혁'이란 가죽을 바꾸는 것이다. 가죽을 바꾼다는 것은 곧 혁명(革命), 목숨을 바꾸는 것, 다시 태어남이다. 리폼(reform), 즉 폼 바꾸기, 다시 만들기, 거듭나기다. 개혁이 어려운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절묘한 것은 또 가죽을 바꾸되 좋게 바꾸고(改良·改好) 낫게 바꾼다(改善)는 뜻은 '개혁'에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만큼 개악(改惡)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최초의 시민사회 개혁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를 고도의 민주적 도시국가로 만든 시인 정치가 솔론(Solon)의 개혁이 이상적인 원형으로 꼽힌다. 그는 몸을 담보로 돈을 꾸어주는 것을 금하고 일체의 부채를 무효로 돌림과 함께 참정권 차별을 없애는 등 파천황(破天荒)의 개혁을 단행한다. 그러나 귀족은 물론 평민까지도 만족하지 못한다. 모두를 흡족케 하는 개혁은 없고 만족의 끝도 없기 때문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이나 독일 근대화에 이바지한 칼 슈타인(Stein)의 프로이센 개혁, 청나라 말 젱구완잉(鄭觀應)의 저서 '성세위언(盛世危言)'이 증명하는 개혁, 18세기 일본의 요잔(上杉鷹山) 개혁과 19세기 메이지(明治)유신 개혁, 20세기 초 미국의 루스벨트 개혁 등 성공적인 개혁도 마찬가지다.그러니 독일의 급진적 개혁운동가 뮌처의 개혁이나 청나라의 이른바 '백일개혁' 조광조(趙光祖)의 개혁이나 갑오개혁 등 숱한 개혁의 실패랴. 가죽을 무두질해 아담과 이브의 옷으로 바꾸는 것, 썩은 것을 싱싱한 것으로 바꾸는 환부작신(換腐作新)의 개혁이란 그만큼 어렵다. 혁명정권이든 아니든 동서고금 어느 군주나 지도자도 개혁을 논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다. 새 정권 출범과 함께 또다시 빗발치는 게 개혁, 개혁이다. 그러나 엄청난 뜻의 '개혁'

  • 脫亞入歐 지면기사

    일본 최고의 고액권인 1만엔짜리 지폐에 얼굴이 실려 있다는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의 명문 게이오(慶應)대학 창설자요, 일본 근대의 최고 계몽사상가로 알려진 그는 우리 나라 근대사에도 깊은 연관을 가진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 발간(1883년)을 주선했고, 갑신정변(甲申政變·1884년)의 막후 연출자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그를 더욱 잊지 못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그의 유명한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이다. 그는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끝나자 100일 만에 이 이론을 자신의 신문인 ‘지지신보(時事新報)’에 발표했다.탈아입구란 한마디로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을 배우자’란 뜻이지만, 그 기저에는 당시의 조선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멸시가 깔려 있었다. 다시 말해 ‘일본은 서양의 선진국을 따라 자본주의를 배워 힘을 기르되, 조선이나 중국은 반쯤 야만인 반개국(半開國)이므로 서양 여러 나라 대신 일본이 지배해야 한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배어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사상은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征韓論)으로 발전했고, 마침내는 조선 식민지배의 밑거름이 된다.얼마 전 일본 문부과학성이 ‘일본 내 외국인 고등학교 중 아시아계 고교 졸업생들에겐 대학입학 자격을 주지 않기로 한 방침’을 확정했다. 즉 영어를 사용하는 구미(歐美)계 외국인 고교 출신자는 별도의 대입검정시험을 거치지 않고 도쿄대 등 국립대에 응시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인학교 조총련계 조선인학교 중국인학교 등은 대입검정시험을 치러야 하는 차별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아마도 100여년 전 후쿠자와로부터 비롯된 고질병 ‘탈아입구증=아시아 멸시증’이 다시 도진 모양이다.하기야 툭하면 갖은 망언을 일삼고 심지어 교과서 왜곡까지 떡먹듯이 해온 그들 일본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만, 정작 우리 한국은 어떤 식의 대응을 하고 있는지 사뭇 궁금하다. 들리는 말에 조총련 측은 문부성 항의방문, 기자회견, 공개수업 등을 통해 줄곧 문제삼아오고 있다고 하던데…./박건영(논설위원)

  • 미국의 첨단무기 지면기사

    세계사를 살펴보면 첨단 신(新)무기가 한 민족의 운명과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은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조선과 일본간의 7년 전쟁에서 일본이 조총(鳥銃)으로 초반 전세를 장악했으나, 조선은 명장 이순신이 발명한 첨단 철갑전투함 거북선으로 전세를 반전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첨단의 해상무기와 육상무기가 격돌한 점 만으로도 세계 전사(戰史)에서 비중있게 다뤄질만 하다.미국이 오늘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도 첨단무기의 발달사와 무관하지 않다. 서부개척 시절 미국의 선조들이 원래의 땅주인이던 인디언들을 청소하는데는 연발 라이플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백인 이주민들은 라이플의 화력과 감언이설로 코만치·아라파호·샤이엔 등 위대한 인디언 부족들을 들소가 뛰노는 그들의 대지로 부터 격리시켰다. 2차세계대전의 피날레인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이끌어낸 것도 미국이 개발한 20세기 첨단무기인 원자폭탄이었다. 인류최초의 원자폭탄 '리틀보이(Little Boy)'는 히로시마 35만 인구중 14만명을 저승으로 보냈다. 일본이 가공할 살상력을 보인 '꼬마'의 정체가 원자폭탄임을 알게된 것은 그로 부터 한참 뒤의 일이다.초(秒)재기에 들어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현실화되면 이라크 전역은 미국 첨단무기의 향연장이 될 것이라고 한다. 'E-폭탄'(전자폭탄)이 대표적이다. 정식명칭이 'HPM탄'인 전자폭탄은 폭발하면서 후버댐이 하룻동안 생산하는 20억와트의 전력을 내뿜어 이라크군의 전자신경망을 무력화시킬수 있다. 창졸지간에 이라크군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는 셈이다. 위성유도를 받는 토마호크와 열감지기로 적탱크를 타격하는 'BAT탄'이 이라크군을 영문 모를 죽음에 몰아넣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첨단 방송장비를 갖춘 EC-130 '코만도솔로'가 상공을 누비며 가짜 후세인의 목소리로 항복을 종용한다는 것이다.문제는 우리가 이라크를 '강건너 불'로 여길 입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핵무기 보유설이 기정사실로 여겨지는 북한과 세계 최강의 첨단무기 보유국인 미국이 으르렁거리는 마당에, 우리 입장도 매우 절박하기는 마찬가지 아

  • 검사와 대통령 지면기사

    '검사(檢事)'의 '檢'자는 교정할 검, 단속할 검, 바로잡을 검이고 '검사'란 '검사(檢査)하는 일'이니까 '事'자를 '士'자로 바꿔야 '검사하는 검사(사람)'가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글자 뜻이야 별 거 아니고 별로 '무서운 사람' 같지도 않다. 어쨌거나 '검사' 하면 소설 등 작품 속의 두 타이프가 얼핏 떠오른다. 러시아 작가 고골리의 대표 희곡 '검찰관(Revizor)'의 그 검사와 김춘광(金春光) 원작 소설의 영화 '검사와 여선생'의 그 주인공 검사다.1836년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서 초연된 '검찰관'은 도박에 여비를 몽땅 날린 건달 청년이 중앙에서 암행 나온 검사로 우연히 오인 받자 내친 김에 지방 탐관오리를 실컷 골려주고 자취를 감춘다는 줄거리다. 한데 그 검사 희화화(戱畵化)가 문제가 돼 결국 고골리는 해외로 도피하고 말았지만 그런 우스개 검사상(像)과는 딴판인 서릿발 같은 논고의 위엄 있는 검사상이 '검사와 여선생'형 검사였다. 한 탈옥수를 숨겨준 일로 남편의 오해를 사 칼부림까지 당했지만 오히려 남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선 아내를 옛 초등학교 시절 극진히 돌봐준 가난한 제자의 도움으로 무죄가 된다는 내용이다.변호사도 아닌 검사가 어떻게 피고를 그렇게 도울 수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검사다운 검사상은 대쪽과 서릿발이다. 한 쪽 시선은 늘 최고 권부에 가 있고 그쪽의 한 마디, 반 마디에 물먹은 미역처럼 후줄근해진대서야 '검사와 여선생'형 검사는 영 불가망(不可望)이다. 모든 검사가 미국 O J 심슨 사건의 여검사 마샤 클락 같다면야 워터게이트 사건의 콕스와 자워스키, 이탈리아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주역 피에트르, 일본 록히드 사건의 요시나가(吉永祐介) 같은 특별검사가 왜 필요한가.검사가 검사답기 위해선 이른바 '권력의 시녀(侍女)'용 앞치마부터 벗고 독립해야 하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것'으로 분명하고도 확실한 선을 둘러 그어야 할 것이다. '검사와 여선생'도 아닌 사상 초유의 '검사와 대통령' 토론회가 더 이상 신문 잡지의 희화 거리가 되지 않기를

  • 장애 미개국(未開國) 지면기사

    지난해 이맘때 우리는 비극적인 뉴스를 접했다. 뇌성마비 1급 장애우(友)였던 노점상 최옥란씨가 턱없이 모자라는 정부의 생계급여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위헌소송까지 냈지만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이 비극적인 소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최씨의 죽음은 장애우들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었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장애를 딛고 일어선 경우도 적지 않다. 볼펜을 입에 물고 학문을 연구해 미 연방정부의 연구원이 된 김인호 박사, 휠체어에 삶을 의지한 '천재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12년간 미국을 통치한 소아마비 루스벨트 대통령, 맹농아(盲聾啞)인 삼중고(三重苦)의 성녀(聖女) 헬렌 켈러 여사, 오체불만족의 작가 오토다케, 어린 시절 배가 고파 고구마를 구워먹다가 불에 데어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망그러진 왼손타자 장훈 등 수없는 사람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우뚝 섰다. 모두가 고결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손짓으로밖에 의사를 전달 못하는 농아인들은 손이라도 갖고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은혜의 마음'을 갖는다고 한다. 손이 축복인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 역시 21세때인 케임브리지 대학원생 시절 루게릭 병이라는 불치병을 선고받았지만 옆 병상에 누워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한 소년의 고통을 보고 세상에는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연구했다고 한다. 하물며 정상인인 우리들은 어떤가. 경기도내 곳곳에서 특수학교를 설립하려 하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어느 곳은 10년 가까이 입씨름만 벌이고 있다. 장애우들과 같이 있기를 꺼리고, 그들이 오면 집값이 떨어지고 자녀교육에 지장을 준다고 난리가 아닌 모양이다. 교통사고 1위, 산업재해 1위의 나라에서 언제든지 우리도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국민소득 1만달러를 지향하며 선진국으로 간다는 소리가 부끄럽다. OECD국가는 무엇이며 21세기 선진복지사회는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