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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사재기 지면기사
금(金)은 구리 다음으로 인간이 가장 먼저 사용한 금속이라 한다. 이미 기원전 3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선 금으로 투구를 만들어 썼다고 하며, 고대 이집트 왕릉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게 호화로운 금제품들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인은 금을 화폐로 사용했고, 이 제도를 로마인도 이어받았다고 한다. 비단 그리스 로마 뿐 아니라 예부터 많은 국가와 민족이 금을 화폐의 기준으로 사용해왔다. 그만큼 금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왔고, 또 그런만큼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해오기도 했다. 예부터 금이 대표적인 치부수단 또는 부(富)의 저장수단으로 활용돼온 것도 다 그런 덕분이라 하겠다.그같은 금이 5년 전 외환위기 땐 우리 나라 경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때 우리 국민은 그야말로 구한말(舊韓末)의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정신으로 ‘금모으기’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었다. 장롱 속에 퇴장(退藏)돼 있는 금을 모아 수출, 외화를 벌어들인다면 외환 고갈에 다소나마 기여하게 되리란 기대에서였다. 너도 나도 한마음으로 갖가지 금제품들을 들고 나왔으며 심지어 아기 돌반지까지도 아까운 줄 모르고 내놓았다. 덕분에 무려 3억~4억달러의 금 수출 성과를 거두었고, 나라를 구하려는 국민의 단결된 의지와 역량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최근 일부 부유층 사이에 ‘금사재기’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 위기로 국제 금값이 올라 투자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 정권교체기 동안 주식과 부동산 투자시장에 대한 불안감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당연한 결과로 금괴 수입이 크게 늘어나고 덩달아 금괴 밀수입도 급증, 지난 해 밀수입 규모가 자그마치 1천561억원으로 전년도보다 40배나 넘게 늘었다고 한다.바닥난 외화를 보충하자며 ‘금모으기’운동을 벌이던 때가 언제인데, 이젠 또 외화를 써버리지 못해 ‘금사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긴 한창 ‘금모으기’를 할 때도 단기차익을 노려 ‘금사재기’에 나섰던 일부 부유층이 있었다고도 하니까, 새삼 한탄할 일도 못되는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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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반지 지면기사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결혼식의 가장 귀중한 예물은 반지이다. 결혼반지는 혼인서약의 상징이자 평생반려인 남편과 아내의 영혼을 하나로 묶어주는 소중한 징표다. 문헌상 반지가 결혼의 상징으로 사용된 기록은 로마시대부터다. 약혼서약의 증표로 금반지나 철반지를 주었다는데 신분에 따른 구별이지 싶다. 결혼서약으로 반지가 사용된데 대해서는 이설(異說)이 분분하다. 태양신을 숭배한 이집트 문명의 영향설도 있고 유대인의 관습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지만, 동그라미(圓)에 대한 인류의 보편적인 신념이 반지로 승화됐다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즉 영원불멸과 부활의 믿음을 시작도 끝도 없는 동그라미에서 추구했고 그 것이 반지로 구현됐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반지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을 상징하는 정표였다. 반지(斑指)는 한짝뿐으로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여자들의 장신구였던 반면, 지환(指環)이라 불리는 가락지는 반지 두 개가 한쌍으로 결혼한 여인이 끼는 것이라 한다.결혼반지의 의미가 이렇게 크니 이를 둘러싼 에피소드도 엄청나다. 지난해 2월 한·미정상회담차 방한한 부시 미대통령을 수행한 카렌 휴즈 백악관 특별보좌관이 청와대 리셉션에서 결혼반지에 박힌 대형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리는 낭패를 당했다. 청와대는 난데없는 다이아몬드 수색작전을 펼쳐 이를 되찾아 주었고 카렌은 감격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양국 정상의 노선 차이로 어색했던 양국관계를 다소나마 진정시켜준 여담 아닌가.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 부부는 유명한 보석 디자이너 다미아니에게 5천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자신들만을 위해 디자인된 결혼반지를 복제해 시중에 유통시켰다는 이유에서다.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최근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빚졌던 결혼반지를 돌려주었다고 해서 화제다. 30년 전 고시생이었던 남편을 위해 결혼 금반지를 팔아 녹음기를 사주었단다. 이제 부부가 백금 커플링을 사이좋게 나누어 끼고 청와대에 들어가게 됐으니 그 감개가 새삼스러울 것이다. 노 당선자가 하나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난 대선에서 결혼반지까지 벗어 후원해준 국민의 성원이다. 노 당선자는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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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호 지면기사
특급열차 하면 1883년 유럽에 처음 등장한 오리엔트 특급부터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런던~파리~베니스를 1박2일 왕복하는 '베니스 심플론 오리엔트 익스프레스'가 대표격이다. 승객의 이름까지 불러주는 정중한 안내, 우아하고 세련된 실내음악, 보드라운 바닥 벨벳과 고풍스러우면서도 품위 있는 장식 가구, 최고급 요리의 만찬 향기, 검은 넥타이와 이브닝드레스의 승무원 등 격조 높은 분위기에 걸맞게 요금도 비싸 2002년 12월 현재 런던~베니스가 1천910달러, 파리~로마가 2천195달러다. 다만 이름만은 '오리엔트(동방) 특급'도 '캐빈(오두막집)호'도 어울리지 않는다.이름도 제격인 오리엔트 특급은 싱가포르~방콕 등 아시아에도 있고 모스크바~투르주바(중국국경) 왕복 16일간의 오리엔트 특급은 장장 1만㎞나 된다. 이런 오리엔트 특급이 고전풍이라면 프랑스의 TGV를 비롯해 북서유럽을 달리는 탈리스(Thalys)와 런던~파리의 유로스타, 독일의 ICE, 스페인의 AVE, 스웨덴의 X2000, 유럽 도시간의 야간열차인 EN(Euro Night), 일본의 신칸센(新幹線) 등은 현대적인 특급 고속 열차다.하지만 특급열차가 모두 고속은 아니다. 스위스 산악지대를 달리는 시스알파이노, 체르마트~모리츠의 빙하특급, 해발 2천253m까지 올라가는 베르니나 특급, 13세기 스위스의 전설적 영웅 이름을 딴 윌리엄 텔 특급 등은 느림보로 유명하다. '화륜거(火輪車) 구르는 소리 천지가 진동하고/ 수레 속에 앉아 영창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내딛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1899년 9월8일 경인선 개통을 알리는 독립신문 기사처럼 '놀라운 괴물'로 등장한 우리의 열차는 어떤가. 일제 때의 융회호, 히카리(光), 아카스키(曉)와 광복 후의 해방자, 재건, 증산, 신라, 풍년호를 거쳐 지금의 열차 이름이 됐지만 특급 하면 아직까지는 새마을호 뿐이다.그런 새마을호가 금년 말 역사의 거품으로 꺼지고 '태극호'로 바뀐다니 아쉽다. 유구한 '기아(飢餓)선상' 퇴치 운동의 상징이자 세계가 놀란 경제 부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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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혼학칙 폐지 지면기사
이화학당은 한국 근대 여성교육의 뿌리이다. 개화기 척박했던 여성교육에 미국 감리교 선교사 스크랜턴이 뿌린 작은 씨앗이었지만 117년의 역사를 거치는동안 남녀평등과 여권신장을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하는 등 거목으로 성장했다. 당시는 10대에 결혼하는 조혼(早婚)의 풍습이 있던 사회여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집에 다니러 갈라치면 부모에게 잡혀 학업을 그만 두는 사례가 많았던 모양이다.그러니 자연스레 이화학당은 관행적으로 결혼금지가 이뤄졌고 1945년 교칙에 명문화됐다고 한다. '결혼한 여성은 입학이나 편입을 할 수 없으며, 재학중 결혼하면 제적당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장상 전 총장 이후 기혼의 총장이 금혼을 강요하는 것을 문제삼기도 했다. 조직의 특성상 사관학교에서나 가능한 규정이지, 일반대학에서 학칙으로 결혼을 왜 금지시키는 것이냐는 논리다.금혼조항은 갖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결혼을 하고도 '쉬쉬' 한다거나, 혼인신고를 미루는 고육책으로 제재를 피해가기도 한다. 어떤 이는 사정상 4학년때 결혼을 하고도 혹시 학교에 알려질까봐 졸업때까지 마음을 졸인 경우도 있어 전통을 중시하다가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규정이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켜질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대측은 3년전 자체 여론조사에서 60~70%가 학칙존속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고 신중히 학칙개정 문제에 접근하겠다고 말했었다.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대의 금혼학칙이 인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대가 결국 엊그제 금혼학칙을 전격 폐지키로 했다. 총학생회와 여성단체연합회 모두 일단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개화기 신교육과 여권신장에 기여한 이대로서는 당연한 조치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금혼학칙으로 제적된 학생들에 대해서도 소급해 구제해주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57년을 고수한 금혼학칙이 이제 허물어졌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중·고교의 남녀공학 추세에 맞춰 세종대 상명대 한성대 등이 남학생을 받아들였듯이 남녀공학 얘기가 안 나올는지 자못 궁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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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세금 지면기사
몇달 전 일이다. 중국의 내로라하는 몇몇 부호들이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에 강력히 항의했다. “왜 자신들을 100대 갑부로 선정했느냐”는 거였다. 어떤 부호들은 “아주 기분 나쁘다. 배후가 의심스럽다”고 했고, 또 어느 부호는 “자산 액수가 최소한 8배나 부풀려졌다”고 격노하기도 했다. 돈 좀 지녔다 하면 부풀려 과시하기 바쁜 이들만 보아와서일까, 참 겸손한 부자들도 다 있다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속내를 알게 됐을 땐 절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돈 많은 게 세상에 알려지면 세금 추적을 받기 때문’이었다나. 하기야 부자든 누구든 세금 좋아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긴 하다.그런데 요즘 미국서 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법 이름깨나 알려진 갑부들이 앞장서서 ‘상속세 폐지’반대 청원운동을 맹렬히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엔 록펠러 가(家) 및 루즈벨트 가 사람들, 영화배우 폴 뉴먼, 언론재벌 테드 터너, 국제투자가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윌리엄 H 게이츠 2세(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부친) 등 소위 유명 갑부들은 거의 다 포함돼 있다.그들의 기본 인식은 상속세가 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하고 부(富)를 상속받은 사람들의 ‘귀족 계급화’를 막는 수단으로 보는 데 있다고 한다. 그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세상에 살고 있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에 유익하다고 볼 수 없다. 상속세 폐지는 이런 경향을 더욱 부채질 할 것이다.” 또 이런 말도 덧붙인다. “세금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유쾌하지 못한 현실이지만 세금이나 죽음을 폐지할 수는 없다.”중국 부호들이나 탈세에 여념이 없는 세상의 많은 갑부들,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자못 궁금하다. 부자들이 다 그들만 같다면 세상 참 살맛 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에겐 정말 다른 속셈이 전혀 없는 것일까. 차라리 중국 부호들이 솔직한 건 아니었을까. 하긴 이런 의심부터가 어쩔 수 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인 탓인지도 모르지만. 그나 저나 요즘 우리 나라도 상속세 문제로 꽤 말이 많은가 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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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사이트 지면기사
동물들도 자살한다. 1988년 4월30일 뉴델리 동남쪽 칸푸르(Kanpur)시의 한 원숭이가 고압선에 걸려 죽자 아내 원숭이가 10일 동안 울부짖다 같은 고압선에 뛰어올라 자살했고 94년 7월 중국 무단장(牧丹江)시에서는 처마 밑에 애써 지은 '주택'을 5번이나 철거당한 제비 부부가 그만 대문간에 머리를 박아 자살했다. 95년 8월 내몽골에서도 수백마리의 양과 염소떼가 호수에 뛰어들어 원인 모를 집단자살을 감행했고 레밍(나그네쥐)떼의 절벽 자살과 고래 떼의 해안 자살도 흔한 일이다.하물며 인간이랴. 구약성서만 봐도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Saul)과 다윗의 참모 아이도벨(Ahithophel), 시므리(Zimri)왕이 자살했고 신약에선 예수를 배반한 가롯 유다가 자살했다. 멀리는 클레오파트라, 세네카, 네로, 항우, 굴원으로부터 가까이는 히틀러와 롬멜장군에 이르기까지 자살한 영웅, 위인과 천재만도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으랴.요즘의 자살도 너무 흔하다. 장기 불황으로 하루 평균 100명의 일본인이 자살하고 있고 중국 젊은이의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다. 실연이나 왕따, 성적불량 정도라면 그래도 인정할 수 있는 10대들의 자살 이유인지 모른다. 여드름 남드름(?)이 심해도 자살하고 살이 쪄도, 햇빛이 너무 쨍쨍해도 자살한다. 찬란한 햇살을 즐기며 모두들 행복해 보일 때 오히려 우울증 환자의 우울 도수는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 몹쓸 '자살방법론'이나 '자살안내서'까지 10대들의 자살을 부추긴다. 91년 5월 미국 뉴욕서 발간된 불치병 환자 자살 안내서 '마지막 출구(Final Exit)'가 출간 7개월만에 52만권이나 팔려 베스트셀러 1위가 됐고 93년 일본서 나온 '완전자살 매뉴얼'도 넉달만에 17만부나 불티가 나버렸다. 80년대초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자살 그 실행방법'도 마찬가지다. 돈만 벌면 어떤 책을 써도 좋다는 '배짱'들도 불살라버리고 싶지만 그런 책을 읽어주는 베스트셀러 심리들도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경찰청이 한 달 동안 인터넷 자살 사이트 집중 단속에 나섰다지만 얼마나 실효를 거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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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기본법 지면기사
프랑스는 유난히도 자기네 언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그 나라는 이미 지난 1994년 TV와 라디오는 물론 학교와 직장, 심지어 광고에까지도 모국어를 사용케 하는 ‘프랑스어 사용에 관한 법’을 만들어 시행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법엔 ‘제품, 용역의 표시, 사용법, 규격 설명, 청구서와 영수증 등에 프랑스어 사용은 의무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고도 한다.반면 일본은 소위 세계화시대라며 외국어 사용에 자못 관대했었다. 심지어 지난 2000년 1월엔 ‘21세기 일본의 구상’이란 국가전략기획서를 통해 ‘영어의 제2공용어화’를 내세우기도 했었다. 인터넷 등을 통한 국제화 정보화로 영어가 이제 국제통용어로 된 이상 이를 국민의 실용어로 삼아야만 정보문화시대에 적응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였다. 그후 영어교육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여 제법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그러던 일본도 지금은 흔들리는 자국어에 사뭇 위기를 느끼게 된 모양이다. 그사이 부쩍 늘어난 외국어 범람에 모국어인 일본어가 무척 혼란스러워졌다고 온통 법석이다. 그래서 지난 해엔 문부성에 서둘러 외국어 남용에 제동을 걸 위원회를 설치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외국어 및 외래어를 일본어로 갈아치운 사례집을 작성, 배포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서점가엔 ‘소리내어 읽어보는 아름다운 일본어’ 등 전통적인 일본어 감각을 되살리는 갖가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국어를 지키기 위해 꽤나 분주한 모습들이다.외국어 범람이라면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심각하게 겪어오는 현상이다. 오죽하면 지난 2000년 8·15 이산가족 상봉 때 허웅 한글학회 회장이 북한의 한글학 권위자 류열씨를 만나기 직전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 “남한에선 웬 외국말을 그렇게 많이 쓰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올바른 국어생활 등을 위해 한글의 기본원칙과 어문규범 준수 규정 등을 담은 ‘국어기본법’ 제정을 검토키로 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무척 반갑고 또 기대가 크다. 뒤늦게나마 그렇게라도 해야하는 현실이 다소 안타깝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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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부 정치 지면기사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홈페이지에 오른 '민주당 살생부'가 끊임없이 화제다. 급기야 민주당은 20일 문제의 '인터넷 살생부'를 사직당국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살생부(殺生簿), 살리고 죽일 사람의 명단을 적어놓은 명부(名簿)라니 듣기에도 끔찍하다. 이와 비슷한 어감으로 쓰이는 영어단어는 블랙리스트이다. 사전적 의미가 '요주의 인물 일람표'다. 이는 살생부보다는 차원이 낮다. 주의하고 관리해야 할 명단이니, 죽이고 살리기 이전의 단계다. 살생부를 굳이 영어로 표현하자면 핏빛이 도는 '레드리스트'가 어울릴 것이다. 수양대군의 심복 한명회가 살생부를 들고 정적들을 불러들일 때 임금의 명패를 이용했는데, 임금이 3품 이상의 벼슬아치를 불러들일 때 그 증거로 삼은 명패는 붉은 칠을 한 나무패였다.우리처럼 살생부가 흔한 나라도 없지 싶다. 전제군주 시절에는 왕조가 바뀔 때나, 왕을 갈아치울 때마다 등장한 살생부가 지금은 각 분야에서 난무한다. 정치권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나 정당의 리더가 교체될 때마다 살생부가 어김없이 등장해 실제로 집행된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서는 구조조정을 앞둔 기업에서도 비서실이나 기획조정실에서 작성하는 살생부 명단에 샐러리맨들의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또 지방선거가 끝나면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공무원의 살생부가 난무하고 있으니 세태의 살벌함이 너무 가혹하다.그런데 생각해보면 살생부는 전제적인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면 동서고금 어디서나 횡행했던 정치도구였다. 국가권력이 1인 혹은 1당에 집중되면, 네편 내편이 선명해지고 내편이 아닌 쪽은 살부(殺簿)에 오를 수밖에 없다. 피의 숙청(肅淸)을 통한 통치인 셈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선혈이 흐르는 숙청 속에서 피어난 정치이념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그랬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 전제·독재 시절의 정치도구인 살생부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니, 그것도 권력평준화의 신도구인 인터넷에까지 올랐다니 통탄할 일이다. 살생부를 작성하는 어두운 그림자는 발본색원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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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정치 지면기사
아키히토(明仁) 왕이 직접 시상하는 세계적인 권위인 '일본 국제상'의 2002년 시상식이 4월 25일 도쿄 치요다(千代田)구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수상자는 인터넷 WWW(World wide wave)를 개발한 영국의 디모시 버너즐리 박사와 마우스의 초기배(胚) 배양 기술을 개발한 영국의 앤 매클레인, 폴란드의 안제이 타르코프스키 박사였다. 놀라운 과학 기술에 대한 일본 왕의 그 날 수상자 격려사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열어 젖힌 인터넷 세계야말로 과시(果是) '두 번째 천지개벽'에 의한 '제 2의 세상'이 아닐 수 없다.'앤제이 야뷔에니'라는 필명의 시인, 작가이기도 한 84세의 가톨릭 황제 요한 바오로 2세부터가 '제 2의 정체(ID)'로 '제 2의 세상' 네티즌(인터넷 시민)이 된 것부터가 '두 번째 천지개벽' 그 것이다. 그는 성탄절과 부활절마다 전세계 주교들에게 e메일 메시지를 띄운다고 하지 않던가. '악마'니 '악의 축'이니 악명 높은 후세인도 대미(對美) 인터넷 폭언을 서슴지 않는 네티즌이라고 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자주 들르는 홈페이지가 청와대를 비롯,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이고 특히 통일부 홈페이지의 '통일 갤러리'를 자주 방문, 북한 소개 코너를 살핀다는 것이 아닌가.우리 나라 가입자만도 작년 10월 10일 현재 1천만명을 돌파했다. 차세대 인터넷 언어인 XML(확장성 표기 언어) 시대가 열려 사전까지 나올 판이고 전화번호부에도 인터넷 주소를 함께 수록한다는 게 작년 4월 23일 정통부 발표였다. 더구나 'no'도 'noh'도 아닌 'Roh 당선자'는 인터넷으로 장관 후보 추천까지 받는 등 이른바 '인터넷 정치' 시대를 열었다. 이제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기치와 함께 '1천만 대통령(네티즌)'의 동시 취임식이 열릴 판이다. 그 날 귀빈석엔 기네스북 관계자부터 앉혀야 할지 모른다.문제는 '네티즌 인민 재판'식의 살생부 따위 인터넷 폐해다. '문명의 이기(利器)'라고 할 때의 그 '利'자가 잘못하면 찔리는 '날카로울 이'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대통령부터 알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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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이야기 지면기사
우리 민족은 본래부터 '4'라는 숫자를 싫어한다. 죽을 '사(死)'자에서 오는 발음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웬만한 빌딩 엘리베이터에는 4층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나 서양에서는 '13'이라는 숫자를 아주 싫어한다. 최후의 만찬에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포함해 열세명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금요일이 겹치면 '13일의 금요일'이라 해서 최악으로 생각한다.좋아하는 숫자도 물론 있다. 서양 사람들은 '7'이라는 숫자를 행운의 '럭키 세븐'으로 여긴다. 우리 민족은 어떨까. 당연히 '3'이라는 숫자를 대부분 꼽는다. 다른 민족도 '3'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3'을 좋아했음을 보여주는 근거들이 너무도 많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 환웅 단군에서부터 환웅은 풍백 우사 운사의 부하 '셋'과 무리 '3'천명을 데리고 신시(神市)를 열었다.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라든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三政丞), 삼칠일(21일), 삼신(三神)할머니에 고조선의 건국도 공교롭게 기원전 2333년이다. 이것 말고도 기미년 3월에 33인의 이름으로 발표한 독립선언서에도 공약 3장이 붙어 있다. 지명이나 회사 이름 앞에도 '삼(三)'이라는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지 많다.최근 한 신문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3'이라는 숫자를 유난히 좋아한다고 보도해 흥미를 끌었다. 실제로 정책이나 방향을 제시할 때 그는 '세 가지 원칙' '3단계' '3대 과제' 등 3이라는 숫자를 즐겨 사용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3'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역시 우리 민족의 좋아하는 숫자에 대한 정서와 크게 다를리 없다는 생각이다.여하튼 '3'은 앞에서 보듯이 우리 민족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숫자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안정감 때문일까, 효용성 때문일까, 아니면 '3'이 가진 이상 때문일까…. 다사다난했던 2002년을 뒤로 하고 2003년 새해의 1월도 절반이 지나갔다. 끝이 '3'자로 끝나는 올해에는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숫자 만큼이나 마냥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란다면 너무 지나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