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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복을 빈다 지면기사

    1980년 주한 미군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대장은 유명한 ‘들쥐론’으로 한국민의 미움을 샀고, 그 때문에도 우리 기억에 오래 오래 남는 인물이다. 그때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 아마도 그로선 ‘12·12사태’ 이후 권력실세로 급부상한 신군부에 숱한 인물들이 다투어 줄서기 하던 꼴불견을 비아냥댄 것이겠지만, 우리 국민성을 싸잡아 들쥐 떼에 비유한 것은 여간 큰 모욕이 아니었다. 의식있는 이들이 크게 분노했고, 하마터면 심각한 반미감정으로까지 번질 뻔했던 기억이 새롭다.같은 시기 위컴 만큼이나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미국인이 또 한 사람 있다. 1978년 7월부터 1981년 6월까지 주한 미국대사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피살, 신군부 등장과 광주민주화운동 등 이른바 한국 현대사의 최대 격변기를 한국에서 보냈다. 덕분에 그는 위컴과 더불어 신군부 등장 등에 대한 미국의 처신에 관한 의문(묵인 또는 개입정도?)을 풀어줄 수 있는 인물로 주목 받아왔다. 어쩌면 그로선 무척 곤혹스런 입장이었는지도 모르겠다.그래서일까, 그는 2년 전 펴낸 회고록 ‘폭넓은 관여, 제한적인 영향력(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에서 이렇게 피력했다.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와 대북정책의 변경, 헌법체제 옹호 등의 카드를 써 신군부를 견제하려 했지만, 결국 안보상 우려로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또 다음과 같은 주장도 펴왔다. “신군부의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에 미국은 공모자이자 무력했다는 비난이 있으나, ‘공모’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무력했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맞다.”어느 만큼 진실이 담겼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물을 수도 없게 됐다. 며칠 전 급성백혈병으로 타계한 것이다. 원했든 원치않았든 우리 국민의 주목을 받아왔던 글라이스틴. 어쩌면 하고싶었던 말이 퍽이나 많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명복을 빈다.

  • 부시의 시대착오 지면기사

    시호(諡號)란 임금이 현신(賢臣)이나 유현(儒賢)들이 죽은 뒤에 생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내린 이름이다. 또 선왕(先王)의 공덕을 기리어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왜란(倭亂)극복의 명장 이순신의 시호는 충무(忠武)이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생전의 일생과 잘 어울린다. 임금에게 시호를 올릴 때는 증시(贈諡) 절차가 엄중했다. 조선왕조는 별도로 시호도감(諡號都監)을 설치할 정도였다. 조선시대 왕들의 시호는 조(祖)와 종(宗)으로 끝나는데 조는 사직을 열거나 보존한 임금에게, 종은 사직을 유지, 발전시킨 왕들에게 붙였다고 한다.그런데 한반도 왕조 역사중에 왕들의 시호가 충(忠)자 돌림으로 이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몽골이 세운 원(元)제국의 지배를 받던 13세기 고려의 국난시기다. 충렬왕(忠烈王) 충선왕(忠宣王) 충숙왕(忠肅王) 충혜왕(忠惠王) 충목왕(忠穆王) 충정왕(忠定王) 등 원나라는 고려왕들이 죽으면 몽골에 충성을 다했다는 뜻으로, 또 보위를 이은 신왕에게는 충성을 다하라는 의미로 왕이 신하에게나 내리는 '충'자 시호를 내린 것이다. 충자 돌림 고려왕들은 세자 시절 인질로서 원의 수도 연경에 머물러야 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원 황실의 공주들에게 장가를 들었다. '충'자 돌림 시호의 효시인 충렬왕의 경우 왕위를 잇고자 귀국할 때 변발에 몽골옷차림이어서 백성들을 놀라게 했을 정도다. 공민왕이 변발을 버릴 때까지 100년동안 고려는 사실상 국호만 있었던 셈이다.부시 미국대통령의 일방주의가 세계인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세계가 미국의 영도력을 요구하고 있다”며 개척시대 서부를 질주했던 카우보이 처럼, 지구촌 우방국들에게 동맹을 빙자한 '충'을 강요하고 있으니 그렇다. 그것도 자유, 정의, 평등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으니 국제사회에서 부시(Bush)대통령은 성가신 덤불(bush)같은 존재가 됐다. 미국에 대한 세계인의 비우호 여론도 '소음'으로 치부하는 부시 대통령에게 시호를 올린다면 '부시(不時)' 정도가 어떨까. 21세기에 동맹국의 '충'을 요구하는

  • 첫 대설 경보 지면기사

    눈에 대한 찬상(讚賞)은 시를 비롯한 문학 작품에 흔하다. 청천(聽川) 김진섭(金晉燮)은 '백설부(白雪賦)'에서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듯하고 눈 오는 날에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이는 통행인은 보지 못했다'고 썼고 방랑시인 김삿갓은 '펄펄 바람에 흩날리는 눈송이는 3월 나비와 같고 쌓인 눈 밟을 때 나는 소리는 6월 개구리 우는 소리 같다'고 읊었다. 광해군 때의 신동 박엽(朴燁)이 여덟 살 때 지었다는 시는 어떤가. 함박눈을 가리켜 '손바닥 같기도 하고 자리 같기도 하다(如手復如席)'고 했으니 기발하다 할까 천진난만한 과장법이라 할까.눈처럼 포근하고 고결한 것은 없으리라. 자고로 미인의 피부를 설부(雪膚)니 설기(雪肌)라고 했고 미인 중에서도 '극히 건강한 처녀의 피부와 같다'는게 노신(魯迅)의 관점이다. 심산 벽촌의 백설은 더욱 고결하다. 초가의 장독대며 사립문, 텃밭의 짚가리와 옥수수 타래, 동구 밖 숲 속 오솔길의 동화 속 같은 설경이라니! 그러나 도시의 검은 아스팔트길에 내리자마자 녹아버리는 눈은 무참하고도 잔혹하다. 더구나 그게 대기 오염에 의한 산성(酸性) 눈이라면 조사(弔辭)라도 한 자락 뿌려주고 싶다. 서양 사람들은 쉽게 녹는 눈을 죽음의 상징으로, 차디차다 해서 여성의 불감증으로, 일색이다 해서 맹목으로 여기지 않던가.폭설과 설화(雪禍)도 어렵고 괴롭다. '처음에는 은하수를 거꾸로 쏟는가 했더니/ 어느새 산봉우리가 눌리어 꺾일까 겁이 나네' 고려의 학자 이제현(李齊賢)이 읊었던 그런 폭설은 절대사절이다. 미국 버팔로에 5일 동안 185㎝나 내려 작년 12월28일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던 그런 폭설도 두렵지만 사람 잡는 설화는 더욱 무섭다. 지난 1월4일 일본 군마(群馬)현의 한 초등학생은 지붕에 쌓였다가 쏟아지는 눈에 깔려 숨졌고 3월10일 야마가타(山形)현의 한 회사원은 산사태에 묻혀버렸다.전국적인 강설에다 일부 산간지방엔 금년 첫 대설 경보까지 내려졌다. 대선 열기와 여중생 사망 시위의 분노를 다소라도 삭여줄 서설(瑞雪)은 좋다만 폭설만은 사양이다.

  • 펄벅 기념관 지면기사

    미국 작가 펄벅여사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노벨문학상의 3부작 장편소설 '대지'다. 그녀는 이 소설을 통해 1930년대 세계 열강들의 각축 속에 핍박받는 중국 농촌을 무대로 대지(大地)만을 꿋꿋이 믿고 사는 농민들의 모습과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운명을 묘사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또한 휴머니즘과 박애주의의 표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푸른 눈의 동양인'으로 불린 펄벅은 189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지 불과 석달만에 선교사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소녀시절까지 성장했다. 18세가 되던 해 미국에 돌아가 버지니아주의 랜돌프 메콘여자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이내 중국으로 다시 건너와 난징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고 또 오랜 기간 장로교 선교사로서도 활동했다. 때문에 그녀는 중국을 '제2의 조국'으로 생각했으며 평생동안 중국인들과의 간격을 메워보려 애를 썼다. 동서양문명의 갈등을 다룬 ‘동풍서풍’을 처녀작으로 출간한 이래 73년 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동서양을 배경으로 한 8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기근과 홍수에 시달리는 중국난민들을 위해 일했던 부모처럼 사람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자신이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졌던 펄벅은 지난 67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돈인 전 재산 700만달러를 펄벅재단 설립에 희사하고 부천군 소사읍 심곡리에 '소사희망원'을 열어 전쟁고아와 혼혈아들을 보살폈다. 또 혼혈아들을 입양시키는 일에 헌신했고 그녀 자신도 9명의 아이를 양자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가수 윤수일 인순이 박일준 등도 이 곳 출신이거나 펄벅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로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73년 펄벅이 세상을 떠나고 소사희망원이 해체된 이 곳에 펄벅여사의 기념관이 건립된다고 한다. 각박한 세태에 봉사와 희생정신이 강조되는 요즘 자칫 역사 속에 희미하게 사라질지도 모를 펄벅을 기리는 기념관이 청소년들과 사회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고도 없는 나라에 와서 2천여명의 고아 등 소외된 어린이들을 조건

  • 교민사회 열기 지면기사

    미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는 항상 세계인들의 주요 관심사가 돼왔다.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세계 각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국의 대내외 정책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사뭇 대단하다 하겠다. 이는 물론 미국이 세계의 초강국이며 가장 부자나라인 덕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제가끔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느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좀 과장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기도 한다. 하물며 미국과는 특수 동반자 관계에 있는 한국으로선 두말할 나위도 없다.이같은 미국에서 뜻밖에도 한국의 대선이 사뭇 관심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진양 들뜰 처지는 물론 아니다. 다만 한국 교민사회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지금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있는 워싱턴 LA 등지의 교민사회에선 한국의 대선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다고 한다.특히 이회창·노무현 후보 지지자들의 열기가 자못 대단한 모양이다. 각기 후원회를 구성, 자금과 조직력을 확보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역 한인신문에 지지광고를 내고 홍보 캠페인을 벌이는가 하면, 지지 서명운동을 벌이고 필승 결의대회도 갖는다고 한다. 공항에 나가 귀국하는 한국인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집중 홍보전을 벌이고, 국내 유권자들에게 지지후보 찍기 전화캠페인까지 전개한다고 한다. 해외에 나가 살면서까지 고국의 정치에 뜨거운 열의를 보여주는 마음 씀씀이가 일단은 고맙다 해야할 것 같다. 대견스럽다 할 수도 있고. 이 모두가 나라 사랑하는 깊은 마음이라 싶기에 그렇다.교민들의 열기가 달아오르다 보니 아마도 현지 미국인들에게도 조금씩 그 열기가 옮겨붙는 모양이다. “어느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보느냐”며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현지인들도 제법 많아졌다고 한다. 이쯤되니 어쩌면 한국도 다소나마 미국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 같아 뿌듯(?)해지기도 한다. 혹여 국내서 유행하는 흑색비방 인신공격 등까지 옮겨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은 되지만.

  • TV 토론 지면기사

    '바보 상자' 정도가 아니다. 89년 6월 뉴욕의 존 오코너 추기경은 성 패트릭 성당 연설에서 TV를 '전파 쓰레기의 사막'이라고 매도했다. 그런 TV가 '요술 상자' '지혜의 상자'라는 평을 넘어 대통령을 낳는 '모체(母體) 상자'로 위상이 승격한 지 오래다.스웨터 차림의 구수한 땅콩장수 카터가 76년 등장, 루스벨트의 노변정담(爐邊情談)을 연상케 하는 친근감으로 포드를 누르고 '대통령 테이프'를 끊는 카터(cutter)가 되게 한 건 TV 덕이었다. 허여멀건 허우대에 부드러운 언변을 연기로 포장한 배우 출신 레이건을 별 진통 없이 대통령으로 낳은 것도 TV였다. 한데 대통령 후보 TV 토론의 시작이자 압권은 역시 60년 9월의 케네디와 닉슨이었다. 웅변가 닉슨을 상대로 무모하게도 토론을 제의했지만 결국은 눌변의 진실 호소가 웅변을 누른 대표적인 경우가 돼버렸다.미국 대통령 후보의 TV 토론을 디베이트(debate)라고 한다. '디스커션'보다는 격식을 갖춘 점잖은 입씨름이다. 그러나 '토론(討論)'의 뜻은 다툼, 시비의 아규먼트(argument)에 가깝다. '토(討)'가 '토벌'이라고 할 때의 '칠 토' '공격할 토'자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잖은 입씨름이 아닌 격렬한 입 싸움이고 세 치(약 9㎝) 혀로 싸우는 '혀 전쟁'이 즉 토론이다. 그러므로 뛰어난 입담과 상대가 아무리 모욕적인 발언을 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배포를 겸비한 후보 쪽이 일단은 유리하다. 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 제한과 정해진 순서가 시청의 흥미를 반감해버린다. 흥미야 그런 제한이 덜한 일반 심야토론과 난상토론, 즉 격한 감정의 디스퓨트(dispute)급 토론이다. 한데 그런 토론은 흔히 너무 격렬하다 못해 인신공격→욕설→주먹다짐까지 벌이기 쉽다. 91년 7월16일 호주의 한 TV 생방송에서는 육박전까지 벌였고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리비에라는 출연자의 주먹에 코뼈가 부러졌다.92년 10월 부시, 클린턴, 페로의 삼파전을 연상케 하는 세 대통령 후보의 토론을 지켜본 시청자의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깝고 신

  • 民信之 지면기사

    A후보측:한국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많은 의혹으로 둘러싸인 인물이 B후보다. 늙고 낡은 후보 B씨. 고개숙인 남자 B씨. 밀실야합의 원조. 노사분규 한번 막아본 적 없고, 걸핏하면 북한과 싸워보자는 호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재벌개혁을 반대해 제2의 IMF를 가져올 수 있는 B후보야말로 진짜 불안한 사람이다.B후보측:A후보는 새로운 정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 모든 특혜를 누려온 사람이 양자, 아류 정권을 만들려하고 있다. A풍(風)은 공작된 바람이요, 도풍(盜風)이다. A후보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부패세력이 내세운 꼭두각시다. A후보가 당선되면 선무당에게 칼을 쥐어주는 꼴이 된다.대통령선거 유세전을 통해 소위 2강후보라 불리는 측들에서 서로 상대방 후보에 대해 쏟아낸 말들을 몇개씩 모아 보았다. 그들 말대로라면 두 후보 모두 뻔뻔스럽고 능력없는 못난이에다 심지어 위험스러운 인물이라는 주장이 된다. 어차피 2강후보라면 결국 그들 중 한사람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그들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나라의 장래가 정말 큰 걱정이다. 또 그들 중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 처지도 무척이나 딱해 보인다.‘정치의 근본은 세가지다. 그 첫째는 족식(足食), 즉 국민의 의식주를 흡족하게 해주는 일이고, 둘째는 족병(足兵), 즉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국방력을 튼튼히 하는 일이다. 그리고 셋째는 민신지(民信之), 즉 국민이 나라를 믿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나라의 도덕력과 공신력을 확립해 나가는 일이다’. 논어(論語)의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정치는 곧 경제력과 국방력, 그리고 도덕력 및 공신력의 기초위에 서야한다는 뜻이라 하겠다.두 후보측의 유세전을 보건대, 그들에게서 과연 이 세가지를 기대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들 말대로라면 모두가 뻔뻔이 못난이 위험인물 뿐이다. 족식 족병도 그렇지만 믿고 안심할 민신지는 특히 더 찾을 길이 없어보인다. 하기야 까마득한 옛글을 현대정치에 대입해보려는 생각부터가 고리타분한 사고(思考)라면 할 말이 없지만.

  • 판테온 지면기사

    학창시절 미술시간 데생 수업때면 선생님이 가슴에 안고 들어왔던 석고 흉상중 하나가 아그리파 상이다. 마르쿠스 아그리파는 로마 역사상 유례가 드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백인대장급 병사의 신분이었던 그는 카이사르에게 발탁되어 함께한 정복전쟁으로 로마제국을 열었고,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의 오른팔이 되어 로마제국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공으로 제국의 2인자로 추앙받았다. 다신교 사회였던 로마제국의 일원으로서 그가 모든 신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었던 건 당연했고, 그래서 건립한 건축물이 만신전(萬神殿), 바로 판테온(Pantheon)이다.그후 몇번의 화재로 잔해만 남은 것을, 로마제국의 기념비로 유명한 '방벽(Hadrian's Wall)'을 남긴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새로 짓다시피해서 남겨놓은 것이 현재의 '판테온'이다. 다신교의 상징물로서 콜로세움과 쌍벽을 이루며 서양건축사상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판테온은, 제국시절에는 로마시민들이 입맛에 따라 신들을 경배할 수 있는 '신들의 백화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크리스천으로 개종한 로마의 후손들은 다신교의 유물들을 철저히 파괴했지만, 판테온만은 그리스도교 사원으로 재활용했는데 지금은 근대 이탈리아 왕들이 매장된 '종묘(宗廟)'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오늘날 '판테온'은 '국가적 영예가 있는 자에게 바쳐진 건물'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는데, 센강의 오른편 콩코르드 광장쪽에 서있는 '생마들렌 성당'이 '파리 팡테옹'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바로 이곳에 지난달 30일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을 남긴 '알렉상드르 뒤마'가 문필가로서는 6번째로 안장됐다는 뉴스가 세계로 퍼졌다. 그런데 프랑스의 국립묘지쯤 되는 파리 팡테옹에 안장된 인물이 '퀴리부인'을 비롯해 레지스탕스 영웅인 '장 물랭', 대문호 '빅토르 위고' 등 60여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관심을 끈다. 이들은 '팡테옹'에서 '프랑스 정신의 수호신'으로 불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서울 판테온'을 세운다면 '대한민국 정신의 수호신'으로 추앙할 60여

  • 도청 지면기사

    '도청(盜聽)'이란 글자 그대로 '도둑질해 듣기' '훔쳐 듣기'다. 중국어의 '토인'도 '사람 인변에 兪'자와 '口변에 斤'자로 글자 모양은 다르지만 '훔칠 투'자에 '들을 은'자다. '도청'을 뜻하는 영어의 태핑(tapping)도 기분 나쁜 단어다. '도청'이라는 뜻 말고도 외과 의사가 말기 간경화나 간매독, 결핵성복막염 환자의 물동이처럼 팅팅하게 차 오른 복수에다 구멍을 뚫고 호스를 꽂아 복수를 빼내는 끔찍한 '복수천취(腹水穿取)'를 뜻하기 때문이다. 몰래 엿듣기의 이브스드로핑(eavesdropping) 역시 혐오스런 어휘다. '이브스'는 지붕 처마, '드로핑'은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으로 비온 뒤에 썩은 초가 지붕에서 이마에 떨어지는 싯누런 지지랑물을 떠올리기 때문이다.더욱 기분 구겨지는 것은 89년 9월24일 TV로 방영된 미국 영화 '600만불의 사나이'의 도청 장치 따위다. 수소 융합 연구 중 은퇴한 로시 박사가 연구를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은밀히 밝혀오자 스티브는 그를 모시러 간다. 그러나 스티브보다도 다른 사람이 먼저 와 박사를 데려가려 한다. 스티브는 간신히 박사를 구해내긴 하지만 어떻게 로시 박사의 연구 재개 의사가 누설됐는지에 의문을 품는다. 한데 그 해답은 기상천외하게도 로시 박사 비서 아가씨의 충치 먹은 어금니에 장치한 팥알만한 도청장치가 담고 있었다.영화가 아닌 실제의 도청 사례는 얼마나 흔한가. 닉슨 미국대통령의 목을 날린 워터게이트 사건 말고도 87년 봄 모스크바 미국 대사관의 8층 신축 건물이 숱한 도청장치 발각으로 몇 차례씩 중단된 사건, 프랑스 리베라시옹지가 93년 3월4일자에 폭로한 엘리제궁의 르몽드지 사건기자 집 전화 도청 사건 등. 최근에도 지난 1월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의 보잉767 전용기 도청장치 발각으로 얼마나 시끄러웠던가.우리 국정원이 국회의장을 비롯한 야당 정치인의 휴대폰 통화(불가능하다던)까지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온통 나라 안이 떠들썩하다. 인권 침해와 프라이버시 침탈도 문제지만 개인의 '비밀 말살'이야말로 소름끼칠 일이 아닐 수 없다.

  • 투표권의 가치 지면기사

    대선이 19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가속화하고 7명의 크고 작은 대통령 후보들이 진검승부를 펼치고 있다. 대선은 한국 정치의 압축판으로 건곤일척의 승부마다 시대의 흐름을 알게 한다. 그만큼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보다 국민들의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이번 16대 대선은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10번째 선거가 된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했고 8~10대의 박정희, 11대 최규하, 12대 전두환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의 '체육관 선거'로 치러졌다. 광복 이후 50여년이 흐르는 동안 15번의 대선을 치렀지만 유권자들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9번. 유신헌법이 제정되고 난 이후에만 5번이나 국민들의 직접 투표권이 박탈되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87년 직선제가 부활되면서 10여년만에 대통령을 직접 뽑게 된 유권자들은 89.2%나 투표에 참가했다. 이후 정치에 식상한 국민들의 투표 참여율은 낮아져 92년 81.9%, 97년 80.7%로 내리 하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그래서 다음달 19일 치러질 이번 대선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 기권 행위는 민주시민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은 유치원생도 알고 있다. 연령별 투표율에 따라 누구에게 유리하다거나, 누구에게는 불리하다거나 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각 후보의 이기적인 분석일 뿐 유권자들이 투표를 포기하고서는 국정을 평가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며칠 전 선거인명부에서 누락돼 2000년 총선에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한 김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서울지법은 김씨에게 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한 표의 가치를 값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50만원으로 매긴 것이다. 이번 대선의 선거인 수가 3천501만4천410명. 지난 97년 대선처럼 20%(700만2천882명)만 투표에 불참한다 해도 한 표에 50만원씩 3조5천억원이 사라진다는 재미있는 계산을 해본다. 각자가 이번 대선에 표를 던지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