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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 운전 지면기사

    수백명을 태운 비행기를 음주 조종한다면 어떻게 될까.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있었던 일이다. 94년 4월26일 일본에 추락한 대만 중화항공 소속 여객기의 사고 원인을 규명한 일본 아이치(愛知)현 경찰 특수부가 사고기의 기장 왕레기(王樂琦)와 부기장 좡멩롱(莊孟容)의 시신 혈액에서 알코올 농도를 검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난 7월1일 아메리카 웨스트 항공 조종사 클로이드와 부조종사 휴즈가 만취한 채 커피를 들고 마이애미 공항 탑승구를 통과하려다 적발, 체포된 것은 천만다행이었고 지난 달 4일 호치민→나리타의 일본 젠닛큐(全日空) 항공사 조종사가 승무 12시간 전의 금주 규칙을 어기고 6시간 전에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치명적(?)인 조종사 자격을 박탈당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24시간 바퀴벌레 경주장을 방불케 하는 자동차는 어떤가. 지엄한 음주운전 벌칙은 이상할 게 못된다. 중미 엘살바도르는 가차없는 사형이고 불가리아는 2차 적발 때 무조건 교수형이다. 프랑스도 고속도로 음주운전자에겐 경찰의 발포권을 허용한다. 캐나다는 부상자만 내도 최고 10년 징역이고 네덜란드는 음주운전 행위 자체를 정신질환으로 간주, 정신병원에 보낸다. 일본 역시 사망사고엔 최고 15년 징역의 새 교통법이 작년 11월9일 중의원을 통과, 지난 6월 시행된 후 음주운전 사고가 급격히 줄었다.엄벌주의와 함께 예방도 중요하다. 그래선가 자동차에 빨간 리본 달아주기 캠페인을 펼치는 한편 술기운이 감지되면 시동이 안걸리는 ‘인터록 시스템’ 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회단체가 미국의 MADD, 즉 ‘음주운전에 반대하는 어머니회’다. 일본도 ‘MADD 저팬’ 설립대회를 지난 9월20일 치바(千葉)시에서 가졌다. 한데 일본 어머니들의 슬로건이 음주운전 ‘퇴치’도 아닌 ‘박멸’이다. ‘박멸(撲滅)’이라면 쥐를 잡듯 때려잡는 게 아닌가.요즘 “날씨도 추운데 한 잔…” 해가며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경찰의 기습단속에 걸려드는 사례가 늘어간다고 한다. 우리도 보다 힘이 실리는 예방책과 엄중한 처벌을 겸하는 음주운전 대책

  • 정치인과 부패 지면기사

    “국회의원을 한강에 빠뜨리면 붓글씨를 쓸 수 있을 만큼 강물이 시커멓게 오염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강물을 식수원으로 사용할 수 없으니 한강에 빠뜨려서는 안된다.” 수년전 시중에 이처럼 정치인을 비아냥 하는 말들이 나돌았고 신문의 시사풍자 만화로 등장하기도 했다.18~19세기 정치부패가 극에 달했던 영국에서도 이러한 정치인 경멸 풍조가 있었다. 영국의 정치부패사중에 나오는 일화 하나. 의사 4명이 죽은 정치인을 해부했다. 의사A:“뇌가 썩어 있더라.” 의사B:“골막까지 썩어 있더군.” 의사C:“가슴에서는 나라멸망이란 글이 나왔고 장에서는 뇌물이라는 글자가 나왔네.” 의사D:“뇌물이 세끼의 식사인 모양이야. 뇌물이란 균이 세포에까지 번져 있어.” 정치인의 부패에 대해서는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멸과 멸시, 그리고 불신감을 드러낸다. 정치인의 부패는 돈에의한 부패선거가 원인임은 물론이다.이러한 가운데서도 영국이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을 기할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멸시를 따갑게 받아들이고 정치부패의 고리를 끊겠다는 굳은 의지와 양심을 가진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1880년 선거에서 새 수상이 된 자유당의 글래드스턴은 돈을 마음대로 못쓰게 하고 관련 선거사범자에 대해서는 1심제도와 당선무효를 원칙으로 하는 강력한 부패위법 행위 방지법을 제정했다. 많은 의원들이 너무 심하다고 반발, 당선 무효화조항을 삭제한 수정안을 내놓았으나 표결 끝에 원안을 통과시켰다. 선거 때마다 엄청나게 늘어나는 선거자금에 여야당이 함께 위기감을 느낀 것이 그 배경이었다.최근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대선을 앞두고 말로는 돈선거를 퇴출시키자고 하면서도 관련 정치 자금법이나 선거법 등 처리를 무산시킨 것은 아직도 돈선거에 대해 위기감을 못느낄뿐만 아니라 종전과 같이 돈에 의한 부패선거를 치르겠다는 뜻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정치개혁을 대통령 공약으로 내놓고서도 당내 정치개혁 특위에서 이를 묵살시켜 더욱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글래드스턴과 같은 위대한 정치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

  • 선무당 지면기사

    760여년 전 몽고군의 침공으로 부랴부랴 강화도로 피난갔던 고려 조정과 왕실은 부처의 힘으로 몽고군을 물리치겠다는 소망하에 대장경(大藏經: 經·律·論 등 三藏의 불교경전) 조판에 착수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8만여장의 목판, 즉 팔만대장경판이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3년인 1236년부터 38년인 1251년까지 장장 16년 간에 걸쳐 제작됐다.당시 대장경의 조판을 알리는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을 보면 ‘몽고의 잔인과 암매(暗昧)를 불천(佛天)에 호소하면서 그로 인해 분멸(焚滅)된 대구의 부인사 대장경에 가름하여 다시 각성(刻成)할 터이니, 신통력을 발휘하여 몽고병의 침입을 물리치고, 국가가 평안하게 해줄 것’을 간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통력은 발휘되지 못했고 그후 100여년 간 고려는 몽고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이처럼 비록 신통력은 발휘되지 못했지만, 팔만대장경에는 당시 고려 불교계의 경전에 대한 높은 이해가 응축돼 있을 뿐 아니라, 수록된 경전이 풍부하고 글자체도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다. 국보 32호인 이 대장경은 1995년 12월8일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록되기도 했다.그같은 대장경판이 최근 옻칠이 탈색되고 백화현상이 나타나는 데다 뒤틀림과 벌어짐 등으로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한다. 처음 강화도성 서문밖의 대장경판당에서부터 선원사를 거쳐 합천 해인사 등 몇차례 자리를 옮기면서도 700년 넘게 잘 보존돼왔건만. 한데 더 더욱 안타깝고 어이없는 것은 섣부르게 첨단을 자랑하던 현대의 어줍잖은 보존기술이 되레 훼손요인으로 지적받은 사실이다. 30년 전 최고 전문가들이 머리를 짜내 새로 판가(板架) 28동을 세워 분산 보관토록 한 일이 오히려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새 판가를 설치하면서 자연채광 및 통풍공간을 없애버린 탓이라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잘 모르면 차라리 그냥 놔두기나 할 것을…. 그나 저나 그런 식으로 망가진 또 다른 문화재는 없는지 모르겠다.

  • 언론자유 후진국 지면기사

    ‘적(賊)’은 절도, 강도 등의 ‘도적 적’자다. 그런데 ‘세계 언론자유의 날’ 하루 전인 2000년 5월2일 세계 ‘언론인 보호 위원회’가 선정, 발표한 ‘언론자유 10적(賊)’은 ‘언론 절도’를 말함인가 ‘언론 강도’를 일컫는가. 언론을 훔치는 게 아니라 강제성을 띠는 것이니까 후자를 뜻하는 것인가. 아무튼 그 ‘10적’ 중엔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 주석,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하메네이 이란 최고 종교 지도자,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 등이 끼어 있지만 카스트로가 6연패, 장 주석이 4년 연속이니까 ‘언론자유 10적’의 두목과 부두목은 가려진 셈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도 작년 같은 날 30명의 ‘언론자유 공적(公敵)’을 발표했다. 거기엔 쿠바의 카스트로를 비롯해 이라크의 후세인과 러, 중, 북한 최고 지도자가 포함됐다.한데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 알리 튀니지 대통령 등을 밀어내고 당장 ‘언론자유 10적’에 들어야 할 사람은 지난 3월 대통령 당선 이틀만에 ‘언론 통제법’에 서명한 짐바브웨의 무가베 그 사람일 것이다. 그 ‘언론 통제법’이라는 게 ‘국내 기자는 기자 면허를 받아야 하고 외국 기자는 짐바브웨에서 공식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기상천외, 어불성설의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그런 패악(悖惡)적 언론 탄압 사례는 도처에 흔하다. ‘10적’ 국가답게 이란은 2000년 3월 16종의 신문 잡지를 폐간 조치했고 중국은 작년 6월 민영 3개 신문을 폐쇄 또는 발행 정지시켰다.하기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언론자유 수준도 중남미의 코스타리카나 아프리카의 베냉보다도 떨어지는 139개국 중 17위와 28위라는 게 지난 달 ‘국경 없는 기자회’의 발표였다. 그런데 안타깝고 구슬프게도 한국의 언론자유가 80개국 중 53위,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평가가 12일 제네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나왔다. 그러다가 ‘10적’이니 ‘몇 적(賊)’에 낄까 두렵다. 물론 일부 무책임하고 분별없는 언론 폐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OECD 꼴찌에다 ‘몇 적’ 후보국은

  • 화폐개혁 지면기사

    화폐가치가 급락할 경우 많은 나라들은 화폐개혁을 단행한다. 아마도 그 방법이 가장 효과 빠르고 또 손쉽다고 여겨서인 것 같다. 우리도 정부수립 이후 두 차례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과보다는 극심한 혼란과 충격만 안겼었다는 씁쓸한 기억을 갖고 있다.첫번째 화폐개혁은 6·25 전쟁 중인 1953년 2월15일 0시를 기해 선포됐다. 이틀 뒤부터 ‘원’표시 통화를 금지시키고 ‘환’표시 통화를 유통시키되, 그 교환비율은 100대 1, 즉 100원에 대하여 1환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또 그날부터 국민이 소지한 모든 통화는 금융기관에 예치토록 했다. 당시 화폐개혁은 악화일로를 걷던 전쟁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원조를 할 수 있다는 미국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오히려 물가를 폭등시키는 등 실패한 개혁으로 비판받았다.두번째는 5·16군사정권이 1962년 6월10일 0시를 기해 단행했다. 현행 ‘환’표시를 ‘원’표시로 바꾸고, 단위를 10대 1로 인하했다. 또한 1인당 500원 한도 내에서 신권과 교환해주고 나머지 돈은 일단 은행에 예치토록 했다. 이같은 조치는 5·16 이후 무려 2배로 늘어난 통화를 거둬들이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필요한 국내자본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역시 경기는 더욱 위축되고 유통은 마비상태에 빠졌으며 생산은 줄어드는 등 폐해가 컸다는 평가를 받았다.화폐단위를 낮추는 화폐개혁이 내년부터 본격 추진돼 빠르면 2005년부터 새 화폐가 통용될지 모른다고 한다. 한국은행이 올해 안에 시안을 마련, 내년에 공청회와 정부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내놓기로 했다는 것이다. 국내화폐 단위가 달러 등 국제통용화폐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높아져 사회적 심리적 비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예전처럼 불시 조치도 아닌데 왠지 두려움이 앞선다. 1·2차 때의 혼란과 충격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아서인가 보다. 그때를 생각해서라도 보다 충분한 준비와 신중한 접근을 당부하고 싶다. 어찌됐든 두번의 경험이 나름대로 교훈은 남겼을테니까.

  • 11세 소년의 자살 지면기사

    '죽고 싶을 때가 많다. 아빠는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모르겠다. …숙제가 태산같다. 성적이 안올라 고민스럽다….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 충남 천안시의 한 초등학교 5년생인 11세 소년은 이같은 일기를 남겼다. 그리고 아파트 베란다 가스배관에 끈으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이 소년은 방과후 여러 학원을 다니느라 밤늦게 귀가했고 친구들에게도 과외와 숙제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순진하고 생기 넘쳐야 할 나이의 어린 이 소년은 자신에게 옥죄어 오는 과외의 중압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 어린이의 눈에는 어른들의 주 5일제 근무제도를 둘러싼 실랑이들이 한낱 사치스런 논쟁으로 비쳐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주5일제 근무제실시의 대가로 어린이날을 토요일로 변경하는 문제도 어린이날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착각, 어른들을 증오했는지도 모른다. 누가 이 어린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답답한 일이다.그러나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그래서 가도(家道)는 바르게 된다'는 중국 역경(易經)의 가르침이 생각나서다. 숨진 소년은 몸만 가족의 일원으로 있었지 마음은 이미 가족을 떠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철야근무를 하고 귀가한 후에야 아들의 죽음을 맞이한 맞벌이 부모의 마음은 이래서 더욱 억장이 무너졌으리라. 2년 전인가. 한 조사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공부좀해라” “옛날에 엄마 아빠가 어렸을 적에는…” 등의 말이었다고 한다. 부모로부터 채찍을 맞으며 달리는 경주마 신세가 되기 싫다는 뜻일 게다.자기 자식이 뒤쳐지는 것을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쉴러가 '군도(群盜)'에서 말한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을 부자지간으로 맺어주는 것은 혈육이 아니라 애정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교육도

  • 인권 유린극 지면기사

    한·일 양국이 사법부의 인권 유린극(劇)으로 시끄럽다. 서울지검 홍경령(37)검사가 현직 검사로는 처음으로 지난 6일 구속됐는가 하면 일본에선 나고야(名古屋)교도소 교도관 5명이 8일 체포됐다. 홍 검사가 고문 치사죄인데 반해 나고야 교도소 간수장 와타나베(渡邊貴志·34), 부간수장 마에다(前田明彦·40) 등 5명은 지난 9월 한 수감자(30)를 집단 구타, 복부 내출혈을 일으키게 한 폭행죄다.파장은 그들 5명 체포로 그치지 않았다. 또 다른 수감자(49)가 지난 5월말 그 교도소에서 급사한 사건도 그들 짓이 아닌가 의심한 검찰은 엄밀한 수색에 들어갔고 변협(辯協)은 지난 4년간 전국 교도소에서 일어난 5건의 수감자 사망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히 인권 침해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모리야마(森山) 법무장관도 ‘통한의 극치’라고 표명, 재발 방지를 지시했다고 말했고 NPO(비영리조직)의 ‘감옥인권센터’도 가죽수갑 폐지 제청과 함께 감방 감독 등을 엄중히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폭행치사도 아닌 구타사건만으로도 그토록 떠들썩한 것이다.93년 11월29일 시즈오카(靜岡)지검 가네자와(金澤仁) 검사가 체포돼 94년 6월1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죄목도 단순 폭행죄였다. 한데 그의 죄명이 흥미롭게도 ‘폭행능학치상죄(暴行陵虐致傷罪)’라고 했다. ‘능학’이란 ‘수치심을 주고 학대함’이니까 적확(的確)한 죄명이 아닐 수 없다. 94년 그해 3월 이탈리아에서도 검사, 판사, 변호사 등 18명이 ‘악(惡)의 제국’이라는 범죄 조직과 관련돼 체포됐다. 그런데 만약에 일본 가네자와 검사 사건과 이번 나고야 교도소 사건이 모두 ‘폭행치사’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내각 총 사퇴를 부르고도 남았을 것이다.현직 검사까지 구속시킨 우리 검찰이 물 고문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파를 더하고 있다. 물론 ‘1도(逃) 2부(否) 3백 4구(拘)’니 뭐니 해서 ‘도망가고, 잡아떼고, 백 동원…’ 등 수사에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파렴치범, 악질범도 인권은 인권이 아닌가. 우리 검찰의 인권 유린극에 다시는 ‘커튼 콜

  • 선수의 '눈빛' 지면기사

    골프를 배울 때 코치로부터 처음 듣는 가르침 제1조는 어깨와 손에서 힘을 빼라는 것이다. 몸이 부드러워야 공을 제대로 맞출 수 있고 거리가 나기 때문이다. 검도선수는 눈빛이 부드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수련중인 검도선수는 눈빛이 날카로우나 명인의 경지에 들어서면 상대를 보는 눈빛이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그래야만 상대가 방심하고 이틈을 노려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논리다.일본의 프로야구 홈런왕 왕정치 선수의 현역시절 그의 외발타법의 스승은 아라카와(荒川博)씨였다. 아라카와씨가 어느날 야쿠르트팀의 투수를 만났을 때다. 이 투수는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타석에 들어선 왕선수의 눈매를 보면 무서워요.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말입니다. 이런 눈매의 타자를 보면 투수는 몸이 움츠러 들고 맙니다.” 그러다 보니 투수는 팔 근육이 긴장되고 타자가 치기 좋아하는 공을 던지지 않는다. 어쩌다 실투할 때만 안타를 허용할 뿐이다.이 말을 들은 아라카와씨는 곧바로 왕선수를 만났다. “왕정치, 너는 선수로서 아직 멀었다. 눈빛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정도라면 진짜 선수가 못돼. 진짜 승부사라면 눈매가 부드러워야 해.” 타자가 부드럽고 다정한 눈빛으로 투수를 대하면 투수는 심리적으로 안심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안심을 시킨 후 타자는 자신만의 무기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 아라카와씨의 훈계였다. 왕선수는 그후 표정을 바꿔 일본의 홈런신기록을 세우고 세계기록도 작성했다고 한다.삼성과 엘지간의 2002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막바지에 이른 7일 유승안씨가 한화 이글스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에서 2년간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한 기자가 유 감독에게 물었다. “한 미 일의 프로야구 차이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것은 선수들의 눈에 있다.” 그러면서 그는 “사슴처럼 맑은 눈을 가진 선수는 필요없다”고 말했다. 유 감독의 강한 눈빛론과 아라카와씨의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눈빛론이 혹시 한일프로야구의 차이가 아닐는지. 프로야구가 출범한지 20년, 2002 한국시리즈를 끝내면서 한번

  • 과거지사 지면기사

    미국의 지미 카터 정부(1977~1981년)에서 부통령을 지냈던 월터 먼데일. “나는 대통령의 신임과 그의 귀를 갖고 있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그는 카터 정부에서 비교적 영향력이 있었던 부통령이었다고 한다. 민주당내에서도 리버벌파(派)에 속했던 그는 내정면에선 소비자운동 공민권운동 등으로 활약했고, 외교면에선 자유무역의 추진을 내세웠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1993년 일본 주재 대사를 지낸데다 1981년과 1992년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했을 만큼 우리에게도 제법 낯이 설지않은 정치가이다.그런 먼데일이 1984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돼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와 접전을 벌였을 때 일이다. 어느 날 TV토론에 나온 그는 엉뚱하게도 당시 73세였던 레이건의 나이를 트집잡았다. 상대적으로 자신의 젊음(당시 56세)을 한껏 과시하자는 의도에서였으리라. 어쩌면 자신은 생전 늙지않고 항상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반대파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샀다. 그리고 꼭 그일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여하튼 그는 그해 선거에서 레이건에게 완패했다.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때의 작은 실수로 최근 그는 뒤늦게 또 다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엊그제 끝난 중간선거에 출마(미네소타주 상원의원)하면서다. 그는 가는 곳마다 “그때(1984년)의 레이건보다 지금 당신의 나이가 한살 더 많지 않느냐”는 짓궂은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참으로 끈질긴 업보라 하겠다.이제 선거는 끝났지만 당선여부야 어찌 됐든 ‘과거를 묻지 마세요’란 말이 요즘의 그만큼 절실히 와닿는 사람도 꽤 드물 것 같다. 한편으로는 동양사회의 오래된 경구 ‘역지사지(易地思之:상대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다)’가 왜 필요했는지도 뼈저리게 깨달았을 듯싶고. 그런 차원에서도 먼데일의 일은 많은 이들에게 나름대로 교훈을 남겨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과거지사는 모두 불문에 부칠테니 제발 내편만 되어다오”라고 외쳐대는 요즘의 한국 정치풍토에선 별 의미도 없겠지만.

  • 立冬 지면기사

    ‘서리 이슬 이미 내리고/ 나뭇잎도 다 떨어졌도다/ 밤 나그네 그림자 땅에 어리고/ 쳐다보느니 밝은 달만이…(霜露旣降 木葉盡脫 人影在地 仰見明月)’. 소동파(蘇東坡)는 ‘후적벽부(後赤壁賦)’에서 조락(凋落)으로 흩날리는 낙엽의 만추(晩秋)를 이렇게 읊었다. 그런데 어느새 겨울인 ‘입동’이 소동파의 만추에 오버랩된다. 마치 가을과 겨울의 릴레이 선수가 한참을 앞뒤로 함께 달리면서 바통을 넘겨주듯이….만추에 포개진 겨울, 셸리가 읊은 겨울은 소동파의 그런 ‘만추’ 센티멘털리즘(感傷主義)과 멜랑콜리아(우울증)를 넘어 절망 근처다. ‘깊은 숲 속 새들은 죽어버리고/ 반투명 얼음장 속에 고기들은 뻣뻣하게 누워 있네/ 겨울은 호수 밑 진흙마저 금이 간 딱딱한 흙덩이로 만들어…’. 그러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나 그리그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겨울의 비가(悲歌)라면 소동파의 만추나 셸리의 그 한겨울보다는 이즈음 입동 철이 더 어울린다. 찬이슬 가득 인 국화와 찬비에 스산한 낙엽엔 음울한 모티브가 결집된 거무칙칙한 추상화 하늘이 제격이고 암울한 침잠(沈潛)의 아다지오와 라르고 그 캄캄한 레퀴엠(장송곡)이 십상이다.가을이야 입추(立秋)로 잠시 ‘섰다’가 이내 만추로 사라지지만 ‘일어선 겨울’ 입동(立冬)은 꾸물꾸물 자리잡고 ‘좌동(坐冬)’에 들었다가 기나긴 ‘와동(臥冬)’으로 눌어붙지 않는가. 춘하추동의 겨울은 3개월이 공평한 몫이련만 입동인 11월 상순부터 꽃샘추위의 4월까지 장장 6개월이나 무자비하다. ‘윈터데이(0도 이하의 날)’도 두 달을 넘는다. 등 춥고 가슴 퀭한 서민, 가파른 생계에 매달린 시린 손들에겐 더욱 길고 긴 겨울이다. 얼어붙은 모양의 상형(象形)인 겨울 ‘冬’자만 떠올려도 소름이 돋칠지 모른다그러나 우리 땅의 12월 일조시간은 파리의 1.5, 런던의 1.2시간에 비해 평균 6시간이 넘는다. 그야말로 겨울 햇볕 부자 나라다. 게다가 추수동장(秋收冬藏)에다 김장까지 한 겨울은 꽤나 느긋하지 않은가. 적당히 춥고 눈까지 알맞게 내려 준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