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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 많은 평준화 지면기사

    30여년 전인 1968년 정부는 중학교 입학 무시험제도를 도입했다. 입시 과열경쟁을 해소하고 교육의 평준화를 이루자는 목적에서였다. 처음 얼마간은 제법 성과를 거두는 듯 싶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중학교 입시과열 대신, 고등학교 입시 준비교육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어 중학교 교육을 비정상화시키고 있음이 드러났다. 보다 못한 정부는 또 한차례의 교육개혁 조치로 고등학교 평준화제도를 도입했다. 즉 1973년 2월28일 인문계 고교 입시를 학군별로 나누어 연합고사에 의한 추첨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고교 평준화 역시 중학교 무시험제처럼 과열 입시경쟁과 비정상적인 과외교육 열기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음은 물론이다.그러나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입시과열이나 과외열기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신 대학에 목을 매는 입시경쟁이 한층 치열해졌고, 그에따라 사교육비 부담만 더욱 더 무거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오죽하면 유명 사설학원이 얼마나 몰려있는가에 따라 그 지역 집값이 좌우되는 기현상이 일고, 공교육을 믿지못한 교육이민마저 극성을 부린다. 자연히 고교 평준화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심지어 폐지론까지 심심찮게 제기된다. 몇달 전 어느 부총리가 “우리 교육의 문제는 지역·학교별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평준화 일변도로 끌어온데 있다”고 혹평한 것도 다 그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그런데 이번엔 고교 평준화가 인권문제까지 몰고왔다. ‘시험을 보지않고 거주지별로 추첨, 일괄 배정하는 고교 평준화는 국제인권규약 중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조항, 부모의 자녀 사립학교 선택의 자유조항, 부모의 자녀 종교교육 선택의 자유조항, 학생의 종교의 자유조항 등에 위배된다.’ 최근 발간된 서울대 법대의 연구서에 실린 내용이라고 한다.다소 놀랍지만, 그동안 우리가 너무 무심히 지나친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전혀 없지않다. 이참에라도 하나 하나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다 보면 탈 많은 고교 평준화의 개선점도 어쩌면 찾아질 수 있을지 모르고.

  • 북한 군대 지면기사

    옛 소련엔 두 가지 성(聖)스런 존재가 있었다. 하나는 볼셰비키혁명 지도자 레닌, 다른 하나는 붉은 군대(Red Army)였다. 그 당시엔 아무도 레닌의 위대함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할 수 없었고 그의 어록은 '이즈베스티야'와 '프라우다'지에 매일같이 게재됐다. 그들 적군(赤軍)의 위상은 소련 헌법에 이렇게 명시됐다. “군은 조국을 방위하며 사회주의 이념을 사수한다. 군은 공산당의 방패다.” 마르크스도 '제1의 애국자'인 군대를 가리켜 “혁명의 객관적 제1 요소”라고 치켜세웠다. 56년 헝가리 침공, 68년 체코 침략으로 위세를 드높였던 그 붉은 군대는 그러나 70년대 브레즈네프 시대를 정점(頂點)으로 고르바초프에 의해 끌어내려졌고 더욱 절실한 금석지감(今昔之感)은 러시아가 지난 3월 모병제, 즉 지원제를 택했다는 사실이다.한데 북한의 군대는 아직도 소련 브레즈네프 시대 그대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년부터 '120만을 70만으로 감축하고 11년(여자 7년)의 복무 기간을 5년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아무리 전 인민개병(人民皆兵)을 외쳐왔다고는 하지만 인구 2천만에 120만의 군대라니! 복무기간도 '강산이 변한다'는 장장 11년이라니! 그나마 5년으로 줄이는 대신 징집 대상을 35세까지 연장한단다. 요즘 '양심 입대 거부'니 '지원제'를 주창하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느낌은 과연 어떨까.프랑스는 92년부터 복무기간 12개월을 10개월로 줄였고 독일과 이탈리아도 10개월이다. 하늘 아래 '군사 천국'은 스위스다. 단기간의 군사교육만 받은 뒤 생업에 종사하다가 유사시 예비군으로 동원되는 '민병제'이기 때문이다. 중국도 2년이고 대만도 22개월이다. 북한 말고 복무 기간이 가장 긴 나라는 미국의 3년(육군·해병대)∼4년(해군·공군)이 아닌가 싶지만 징병제가 아닌 지원제다. 가장 가혹한 징병국이라면 세계 유일의 남녀 징병제도에다가 복무 기간이 남자 3년, 여자 20개월인 이스라엘일 것이다. 제대 후에도 54세까지 연간 30∼45일간 동원훈련을 받아야 한다. 11살의 최연소 소년 징집 국가인 미얀마도 별

  • 알쏭달쏭 지면기사

    영국의 뛰어난 정치가이자 웅변가로서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 승리로 이끄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윈스턴 처칠(1874~1965). 정치가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1953)한 경력도 특이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를 무엇보다도 소신과 신념의 정치인으로 기억한다. 1930년대 나치 독일에 대한 유화론이 주를 이룰 때 홀로 강경론을 고수했을 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소련의 동맹을 제창한 것도 바로 그였기 때문이리라.종전 후 어느 날 그가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했을 때 일이다. 수많은 청중의 열광적 환영을 받으며 연단에 오른 그는 느닷없이 “포기하지 말라”고 힘있는 목소리로 첫마디를 뗐다. 의아해진 청중이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처칠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천히 연단을 걸어내려 갔다. 비록 단 두마디로 축사를 끝냈지만, 그가 얼마나 소신을 중히 여기는지를 재삼 일깨워준 일화라 하겠다.그런 처칠도 정치인 지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1900년 처음 보수당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나 4년 뒤 당적을 자유당으로 옮겼고, 1921년엔 다시 보수당에 복귀했다. 시쳇말로 철새 정치인, 박쥐 정치인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이를 비난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굽히지 않는 소신과 그가 남긴 큰 족적이 이를 상쇄시키고도 남았음이리라. 하긴 그가 두번씩이나 당적을 옮긴 것도 보수당의 보호관세정책에 반대해서라든가, 자유당의 노동정책에 대한 위구심에서 비롯되었음을 감안한다면 반드시 비난받을 일만은 아닐듯도 싶다.언제나 그래왔듯이 대선의 계절이 다가오자 정치권이 또 다시 들썩거린다. 비록 일부지만 나름대로 소신(?)들을 펼칠 새 둥지 찾기에 여념들이 없다. 이미 몇몇은 자못 비장한(?) 각오를 내세우며 당적을 옮겼고, 또 몇 무리는 이쪽 저쪽 저울질이 한창이다. 그리고 보니 우리 나라에 처칠 숭배자가 꽤 많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의 굽힐 수 없는 소신이 딱히 무엇인지는 퍽이나 알쏭달쏭하지만.

  • 反후세인 세력 지면기사

    미국이 다음달부터 이라크 반체제 세력 5천여명에 대한 군사훈련을 시작할 것이라고 21일 외신들이 전했다. 지난 17일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의 7년 연임에 유권자 1천144만5천638명 전원이 100%지지로 찬성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라서 관심을 끈다. '후세인의 지지율 100%'와 '반후세인 세력의 군사훈련'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국민들로부터 100% 지지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반후세인 세력이 존재할까. 그러나 그 대답은 간단하다. 반대파를 제외하고 지지자만으로 투표를 하면 100%지지를 얻는다. 국내에서도 과거 군사정권 시절 소위 '체육관 선거'를 통해 만장일치로 대통령을 뽑은 적이 있다.“후세인은 히틀러적 체질을 갖고 있다. 이라크 어디에서나 비밀경찰의 눈이 번뜩이고 있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반대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 리 없다. 그래서 후세인의 공고성은 내부의 취약성을 가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지난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후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의 코피에츠 연구원은 이처럼 말한 적이 있다.(90년 9월4일 일본 에코노미스트지)또 쿠웨이트 침공 당시 세계 각국 주재 이라크 대사부인들은 쿠웨이트 대사 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TV에 나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정당성을 말했지만 제발 용서해주세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는 좌천으로 끝났지만 지금은 소환돼 처형을 당한답니다.”(90년 10월호 일본 文藝春秋) 이러한 이야기들은 물론 반 후세인 진영 인사들의 말이기는 하지만 후세인이 반대자들을 제거해가며 독재체제를 강화해온 사실은 확실하다.후세인은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국민과 대통령간 충성의 악속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만반의 항전 준비가 돼 있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해외망명단체인 이라크 국민회의(INC)의 추천을 받은 반 후세인 세력 1천500명을 우선 선발, 군사훈련을 시켜 대 이라크 공격시 비밀 임무를 맡길 구체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미국이 후세인 지지율 100%의 허상을 얼마나 벗겨낼 수

  • 핵 위협 지면기사

    '나무 목(木)+돼지 해(亥)'의 '핵(核)'이라는 글자만은 목가(牧歌)라도 울려나올 만큼 평화롭다. 이런 느낌의 이유는 또 있다. '核'이 '풀뿌리 해'자의 생략 글자이기 때문이고 '核'의 본뜻이 과일의 씨를 가리키는 까닭이다. 따라서 '핵과(核果)'라고 하면 복숭아나 살구처럼 씨가 단단한 핵으로 싸여 있는 열매를 가리킨다. '핵심적인 인물'이란 바로 핵과의 씨 같은 인물일 것이다. 한데 '핵가족(nuclear family)'만은 '최소단위 가족'으로 호칭을 바꿔야 할 것 같다. '핵'을 뜻하는 영어의 뉴클리어(nuclear)가 '세포'나 '씨'보다는 '핵무기' '핵전쟁'이라고 할 때의 그 미세한 알맹이인 원자 '핵'부터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후 미국엔 별난 반핵 포스터가 등장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 리 대신 레이건 할아버지가 영국의 대처 할머니를 번쩍 들어 안고 있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 코믹한 포스터를 보는 웃음기는 배경의 검은 핵폭발 버섯구름으로 인해 사정없이 가셔버렸다. 체르노빌 사고의 그해 10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그 유명한 '핵겨울' 주제 세미나에서 체르노빌 희생자들의 치료를 맡았던 레오니드 일린 박사가 경고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적어도 20억 지구인이 몰사할 것이다.” 아니, 54년 미국의 태평양 비키니 환초의 핵실험만으로도 1만5천명이 죽었다는 게 지난 2월28일자 '유에스투데이'지의 보도였다.미국 '원자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인간적 고뇌를 그린 '멸망의 창조'나 56년 네바다주 핵실험을 소재로 한 '제로지대' 등 영화 제목이 아니더라도 핵전쟁이란 곧 '최후의 심판의 날(doomsday)'을 맞는 파멸 행위다. 핵확산금지조약이 68년 조인, 70년 발효된 것도 그 때문이고 북한의 핵 포기와 사찰을 못박은 94년 제네바협정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북한이 그런 중대한 국제 협약을 어겼다는 것은 상식 이하와 양식 이전이다. '핵 포기 전에는 협상 없다'는 미국 측이 혹여 북한을 이라크 차원으로

  • 젊은 노인들 지면기사

    사람의 나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해 가는 역 연령(曆 年齡)외에도 정신적 육체적 건강도를 따져 측정하는 생리적 연령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생리적 연령이라 함은 머리는 백발노인이라 해도 사고력이 진취적인지 또는 건강상태가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따지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의학 의술의 발달로 나이가 들었다 해서 정신적 육체적 조직의 기능이 함께 노화하는 것이 아님은 이미 입증된 바다. 그래서 요즘은 60 청춘이라는 우스개 말도 있다. 젊음과 원숙미의 결합이나고나 할까.1990년 연간 매출액 45억엔, 직원수 35명의 일본 중소업체인 나카가와 건설(中川建設)은 1991년 3월23일자 닛케이 신문과 요미우리 신문에 '75세 정년제 실시’라는 내용의 구인광고를 낸적이 있다. 대상은 대기업 근무 유경험자에 진취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구인광고 컨셉은 '75세 정년제 실시. 청운의 뜻, 아직도 드높다’였다. 회사측은 95명의 지원자중 40대 후반 2명, 50대 후반 2명, 63세 1명 등 모두 5명을 채용했다. 60대 1명은 정년으로, 나머지 4명은 조기 퇴직자였다. “이들은 모두 일의 의욕과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것이 공통점입니다. 또 대기업에서 충분히 단련돼 있어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합니다.” 당시 이들을 채용한 나카무라(中村) 상무의 말이었다.IMF환란 이후 50대 젊은 노인들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또다시 구조조정에 착수, 인원감축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의 경제가 불안정한 데다 내년 경기전망 마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17일 국무회의를 열고 서민층 생활보호 5대 시책을 추진키로 하고 기업들이 정년퇴직자를 재고용할 경우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키로 했다고 한다. 또 고령자를 많이 채용하면 장려금을 더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령자의 열정과 원숙미를 개인과 기업 그리고 사회발전의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취업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한국의 나카가와 건설'이 많이

  • 버거운 칭찬 지면기사

    다른 사람들의 귀감(龜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유쾌하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일도 꽤 드물성 싶다. 특히 스스로는 별로 대수롭잖게 여겼음에도 남들이 되레 대단하게 보아주고 또 본받으려 한다면, 한편으론 다소 쑥스럽기도 하겠지만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고 마음이 들떠지는 게 우리네 장삼이사(張三李四:보통사람)들이다.20~30년 전 많은 후진국들이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부러워하고, 또 이를 배우겠다며 시찰단까지 보내왔을 때 우리 국민 마음이 꼭 그랬다. 90년대 초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이 지난 날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에 대해 자문을 구했을 때도 그랬고, 2년 전 싱가포르가 한국의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운동을 배워가겠다고 발벗고 나섰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가 세계 여러나라들에 모범을 보인 것들이 제법 적지않은 것 같다.불과 며칠 전에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 한국을 배우자’고 역설했다. 그는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지난 20여년 간 일본을 귀감으로 삼아왔지만, 이제는 일본의 실패(경제침체)를 거울로 삼아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본은 문화를 전반적으로 바꾸고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열성을 보이다 경제침체를 가져왔다. 일본 젊은이들은 서구에 완전히 빠져있다. 그들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귀고리를 하거나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등 서양인처럼 보이려 하면서 자국문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반면 ‘강한 애국심과 훌륭한 근로 윤리를 갖고 자국의 전통을 추구하고 있는 한국은 경제위기에서 너끈히 벗어났다’고 극구 찬양하면서 ‘말레이시아는 이같은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권고했다.칭찬들어 나쁠 건 없을텐데, 공연히 거북스럽고 버겁게만 들리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모하마드 총리가 한국과 일본을 너무 단순한 논리로 비교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노랑머리 찢어진 청바지가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만은 않아서일까. 어찌됐든 칭찬받은 값을 치르자니 전에 없이 괜히 조심스러워진다.

  • 다나카 고이치 지면기사

    작은 거인, 늙은 소년(OB), 바보 천재, 미니슈퍼 등 반어(反語)와 형용모순처럼 평범 속의 비범, 범상 속의 비상함이야말로 놀랍고도 반짝거리는 흥미가 아닐 수 없다. 금년도 노벨 화학상에 빛나는 일본인 다나카고이치(田中耕一)의 부인 유코(裕子)씨는 말한다. “지극히 보통의 여성이 지극히 보통의 회사원과 지극히 보통의 결혼을 했다. 다만 한 가지 틀린 것은… 노벨상 수상자 부부가 됐다는 것이다.”7년 전 중매 결혼한 그는 아내가 사다 준 면바지와 셔츠로 출근한다. 양복은 하·동복 각각 두세 벌로 1년에 몇 번 입지 않는다. 부부 외출 때도 모임에도 양복을 입지 않아 그녀는 불만이다. 수상 소감 회견 때도 푸른 작업복을 입었고 수염과 두발이 영 귀찮은 사람이다. 까까머리로 출근한 사연을 묻자 “머리 감기가 귀찮아서”라는 대답이었고 수염을 기른 까닭 또한 “깎기가 귀찮아서”였다. 어린 시절 꿈은 전차 운전사였다. 보통 대학(東北)의 화학과도 아닌 전기공학과를 낙제를 거쳐 나왔고 박사도 아닌 학사에다 외국 유학도 하지 않았다. 영어에도 가는귀가 먹어 수상 통고를 접하고도 '노벨 어쩌고, 축하 저쩌고'만을 들을 정도였다. 그래서 “동명이인이 아니냐”고 물었다.직함은 시마즈(島津)제작소 '라이프 사이언스 비즈니스 유니트' 주임이다. 사원→부주임→주임→과장→부장→이사대우→사닥다리의 밑에서 세 번째다. 그런 그의 평범과 범상 어디에 비범과 비상함이 숨어 있었다는 것인가. 그는 28세 때 이미 수상후보에 올랐고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수상자가 됐다. 작년 화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윌리엄 노일즈는 84세였다. 주가가 다락같이 오른 회사가 포상금 1천만엔을 주고 수상식 때 입을 옷 등을 준비하는 게 당연한 평범함이라면 파격적인 이사대우 승진 사양 또한 평범 속의 비범이다. 모교의 명예박사 학위도 거절해야 어울린다.요는 평범 속의 비범, 범상 뒤의 비상함을 누가 발견해 길러주고 부화(孵化)토록 해 주느냐의 인재 보건 환경이야말로 중요하다. 남의 나라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을 부러워만 할 게 아니다.

  • 해괴한 일들 지면기사

    ‘신문은 집단적 선전자 선동자일 뿐 아니라 집단적 조직자이다’. 러시아 공산혁명(1917년 10월)의 주역 레닌이 1917년에 쓴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란 논문에 제시된 유명한 명제다. 레닌의 이같은 언론관은 그의 계승자 스탈린에 이르러 단순한 혁명수단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강력한 통치수단으로 변모 활용된다. 그리고 모든 공산정권에서 매스미디어 전반에 적용되는 전체주의적 언론통제의 패러다임이 된다. 다시 말해 공산정권에서의 언론은 오직 공산당과 그 정권만을 위한 선전수단이요, 도구가 된 것이다. 마땅히 언론은 당에 예속되어 당의 결정사항을 정당화하고 선전하며 인민을 동원해야만 했다. 언론의 생명이라 할 비판이 비집고 들 틈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이런 일은 비단 공산주의 정권 아래서만 가능했던 건 아니다. 후진국 권위주의 독재정권이라면 굳이 공산정권이고 무엇이고 따질 것도 없이 대부분 거기서 거기였다. 언론은 으레 정권의 시녀이기를 강요당했고 이를 거부하면 가혹한 탄압이 다반사로 가해졌다. 일제(日帝)와 자유당 정권, 군사정권 등을 거쳐온 지난날의 우리 언론도 그랬다. 걸핏하면 필화사건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고 언론인 강제해직, 언론사 강제통폐합 등 강력한 통제의 수치를 겪어야 했다.이제는 서슬퍼렇던 군사정권 등 독재정치가 막을 내린지도 꽤 오래됐다. 자연스레 자유언론이 서서히 뿌리를 내릴 만큼도 돼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을 못내 그리워하는 이들이 얼마쯤 남아있는 것일까. 툭하면 언론을 둘러싸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해괴한 일들이 벌어져 국민을 의아스럽게 한다. 언젠가 정치권에서 언론을 놓고 ‘빅3 어쩌구…’하면서 소동이 이는가 싶더니, 곧이어 ‘적대적 집필진, 우호적 언론인 다루기’란 문건 소동까지 벌어지면서 법석을 떨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요즘 또 ‘모 언론사 성향 및 정당차원 접근방안’이란 괴문건이 나왔다며 야단들이다.정말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민주화가 되고 보니 언론이 갈수록 두려워져서일까, 아니면 반대로 너무 만만해서일까.

  • 매장 문화재 유감 지면기사

    미라를 만드는 풍습은 고대 이집트와 잉카제국에서 성행했다. 대체로 기원전 2천600여년 전부터 시작돼 그리스도교 시대에까지 계속된 것으로 알려진다. 미라는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기 때문에 사후에도 영혼이 돌아와 깃들어 있을 육체가 보존돼야 한다는 토속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미라가 주로 이집트나 잉카제국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은 건조한 기후가 보존에 적합하기도 했고 당시 이들 국가들의 방부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으로 생각된다.이런 미라는 처음에는 파라오(이집트 왕)의 특권이었지만 나중에는 일반인들에게도 허용됐다. 미라를 만드는 방법도 업자에게 지불하는 돈에 따라 달랐다고 한다. 돈을 많이 줄수록 훌륭한 미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에서도 초기에는 천연 미라가 많았으나 수당 시대에 들어와 과학적 기술을 동원한 인공미라가 만들어졌고 일본에도 전해졌다.어쨌든 항상 근거없는 소문으로 밝혀지는 미라를 둘러싼 각종 앙화도 영혼과 육신의 불멸을 기원하는 인간의 끝없는 소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22년 영국의 고고학자 카터가 고대 이집트 왕이었던 투탕카멘의 미라를 발굴했다가 화를 당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그는 80이 넘도록 장수함으로써 이러한 앙화설을 말끔히 해소한 적도 있다.조선 중기 삼도 통제사를 지낸 남오성 장군의 시신이 최근 충남 태안군의 의령 남씨 선산에서 원형에 가까운 미라로 발견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발굴 7시간만에 전격 화장된 사실이 알려져 또 한번 화제가 되고 있다. 이유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발굴 현장에 참석한 공무원이나 관계자 가운데 문화재 담당자는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선산 인근에 들어서는 환경사업소 진입로 문제로 환경 공무원이 나와 이를 지켜 봤다고 보도되고 있다. 약 5천년 전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산 야생고양이가 고대 이집트인에 의해 길들여져 점차 세계 각지에 전해졌다는 학설도 고양이의 미라를 연구한 결과 나왔다고 한다. 매장문화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