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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큰 봉(?) 지면기사
‘사람 사는 곳에는 언제 어디서나 술이 있었다’ 할 만큼 인간은 예부터 술을 마셔왔다. 하지만 술의 기원에 대해선 이렇다 할 정설이 없는 것 같다. 다만 각 민족의 전설을 통해서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전해질 뿐이다. 이집트에선 천지의 신 이시스의 남편인 오시리스가 곡물신에게 맥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하고, 그리스신화에선 디오니소스, 로마신화에선 바커스를 술의 시조라 말하고 있다. 또 중국에선 황제(黃帝:중국민족 최초의 조상이라고 전해지는 전설적 인물)의 딸 의적이 처음 술을 빚었다고 전해진다. 우리 민족에겐 술의 시조에 대한 전설이 따로 없다. 그러나 ‘하백의 딸 유화가 술에 만취해서 해모수의 아이(주몽:고구려의 시조)를 잉태했다’는 전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술의 역사도 사뭇 오래인 것만은 틀림없다.비록 술의 시조에 관한 전설은 없지만, 우리 민족은 예부터 술을 꽤나 즐겼던 모양이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을 보면 ‘부여, 진한, 마한, 고구려의 무천, 영고, 동맹 등 제천행사가 주야음주가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또 15세기 조선의 농서 ‘금양잡록(衿陽雜錄)’에도 “호미질 나갈 때에 술단지를 잊지 말라”는 대목이 있을만큼 술을 좋아했던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지금도 우리 국민은 술을 꽤나 즐기는 편이다. 인구수에 비해 술 소비량이 세계에서 첫째 둘째를 다툰다고 한다. 그나마 우리 손으로 빚는 술만으론 성에 차지 않아서인지, 외국 술 수입량도 갈수록 엄청나게 늘어만 간다. 지난 해 수입한 위스키만 해도 자그마치 2억6천만달러어치나 된다. 1년 전보다 무려 20% 이상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당연히 위스키업계의 주목받는 고객이 될 만하다 하겠다.그래서일까, 얼마 전 한 외신이 이렇게 전했다. “한국이 세계 위스키 업계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또 세계 위스키협회장은 이런 말도 했다. “한국인은 최고의 스카치에 최고의 가격을 지불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놓치기 아까운 고객이란 뜻인지, 통큰 ‘봉’이란 뜻인지는 몰라도 이래 저래 얼굴 뜨거워지기는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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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臣不事十君? 지면기사
‘의적(義賊)’이니 ‘협도(俠盜)’라는 말이 있듯이 도둑에게서도 배울 점은 있다. 중국 태산 기슭에 9천명의 졸개를 거느렸다는 사상 최대의 도둑 도척(盜甁)이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느냐”는 졸개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했다. “도둑의 사회라고 어찌 도가 없겠느냐. 남의 집 재물을 (용케도) 알아내는 것이 성(聖), 그 위험한 곳에 남 먼저 뛰어드는 것이 용(勇), 추격을 받으면서도 마지막 나오는 것이 의(義), 실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지(智), 훔친 재물을 공평히 나누는 것이 인(仁)이니라” ‘장자(莊子)’에 나오는 그 유명한 도척의 도를 ‘간에 붙고 쓸개에 붙는’ 오늘의 우리 철새 정치인 집단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위험한 곳엔 우물쭈물 가장 나중 뛰어들고 위태하다 싶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가장 먼저 뛰쳐나오다가 넘어질지도 모른다. 도무지 용(勇)과 의(義)는 눈을 씻고 확대경을 든 채 찾아보려 해도 어렵다.조직폭력 집단 그들에게서도 본받을 점은 있다. 그들 역시 위험한 곳엔 먼저 뛰어드는 용기를, 쫓길 땐 가장 뒤에 붙는 의리를 생명처럼 지키자고 외쳐댄다. 약속을 지키고 의리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행동강령에 철저한 것이다. 그들은 조직을 배반, 이탈할 경우 손가락을 잘리는 등 무서운 보복이 따른다. 그런 조폭 강령을 배신을 뭐 먹듯 하는 오늘의 우리 정치인들에게 적용한다면 또 어떤 꼴이 될 것인가. 손가락이 여섯인 ‘육손이’가 아니라 넷뿐인 ‘사손이’ 투성이 정치판이 되고 말 것이다.‘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으로 죽어간 숱한 역사 인물의 혼령을 들깨워 그 ‘불사이군’이라는 말 좀 오늘의 현실에 맞게 ‘불사십군(不事十君)’쯤으로 고치자고 할 정치인이 이 땅에 너무나 흔하다. DJ 정권을 창출, 장관을 지내는 등 전리품(戰利品) 혜택을 흠뻑 누려온 어느 중진 인사까지도 하루아침에 당적을 이탈해 적진에 합류하다니! 그런 사람이나 그를 받아들이는 쪽이나 현기증 나는 이퀄(=)이 아닐 수 없다. 의리의 의(義)자, 지조의 지(志)자도 모르는 그런 저런 정치인을 깡그리 인솔해 도척의 ‘의리’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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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흡연 지면기사
담배가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직후라 할 수 있는 1608년쯤이라 전해진다. 당시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전했고, 그것이 광해군 시절에 조선으로 전래됐다는 것이다. 처음 전래됐을 때만 해도 담배는 의학적 효능이 사뭇 뛰어난 풀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조선의 석학 이수광이 1614년에 썼다는 ‘지봉유설(芝峰類說)’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담배는 가장 능히 담(痰)과 하습(下濕)을 제거하며 또한 능히 술을 깨게 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심어 그 방법을 씀으로써 매우 효과가 있다.”하지만 현명한 우리 선조들은 오래잖아 심각한 담배의 해독(害毒)을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1638년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있다고 한다. “…오래 피우면 간의 기운을 손상시켜 눈을 어둡게 한다. 오래 피운 자가 유해무익한 것을 알고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니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 일컬었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 와서야 흡연이 간암 폐암 폐기종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 등 갖가지 무서운 질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걸 보면, 당시 우리네 선조들의 남다른 지혜로움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그같은 선조들의 후예라서일까, 금연을 유도하는 데도 역시 앞서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국회의원들이 ‘길거리 흡연’까지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다. 이미 관공서와 의료기관, 학교건물 등을 금연구역으로 지정, 실내흡연을 금지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다.애연가들 참 딱하게 생겼다. 실내외 어디서든 흡연장소 찾기가 지극히 어려워질테니. 차라리 ‘담배를 생산도 수입도 하지 말라’는 식의 체념성 반발이라도 나옴직하다. 하지만 딱하기로는 지방자치단체들도 못지않을 것 같다. 그동안 세수증대를 명분으로 ‘내고장 담배사기’운동까지 벌이며 담배소비를 권장(?)해 왔는데…. 게다가 담배사업은 국가 최대 수익사업중 하나라는 말도 있고 보면, 이곳 저곳서 딱하고 아쉬울 게 한 둘이 아닐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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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江南) 커플' 지면기사
얼마 전 한 결혼정보회사가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미혼남녀 204명에게 배우자로 강남인과 강북인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고 물어본 모양이다. 업체의 조사 목적이야 고객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 수익을 확대하겠다는 이유일 것이고, 주목할 만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조사결과다. 여성의 70%와 남성의 66%, 전체적으로는 67.6%가 '배우자는 강남에 살아야 한다'고 답변한 것이다.'결혼은 비슷비슷한 집안간에 해야 좋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일반적인 결혼관이다. 신분을 뛰어넘는 연애나 결혼은 언제든지 비극으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저 유명한 '12가지 노역'에 시달린 것도 따지고 보면 신(神)들의 제왕인 제우스와 인간이었던 알크메네의 하룻밤 춘정(春情)이 빚어낸 비극이다.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로 인해 질투의 화신이 된 여신 '헤라'는 인간 '시앗'의 자식을 저주했다. 그래도 아비라고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불사(不死)의 정기를 넣어주기 위해 헤라가 잠든 사이 몰래 그녀의 젖을 물렸는데, 이 '슈퍼 베이비'가 엄청난 힘으로 젖을 빠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깬 헤라가 바로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그때 분출된 헤라의 젖이 창공에 뿌려져 '은하수(Milky Way)'로 남았다고 하니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레미제라블'의 불행한 여직공 '팡틴느'의 비극도 파리의 대학생 톨로미에스를 연모해 순결을 바친데서 비롯된다. '코제트'를 잉태하고 있었던 그녀를, 요즘으로 치면 강남 사람쯤 되는 '파리지앵' 톨로미에스는 자신의 신분을 찾아 떠난다는 편지 한통으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상류층과 하류층 커플의 상열지사는 으레 하류층의 비련(悲戀)으로 끝나게 마련이었다.'강남 커플'을 고집하는 강남의 청춘남녀들은 아예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지 않겠다는 합리적인 결혼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까마득히 높은 집값과, 8학군으로 성(城)을 쌓은 강남인들이 이제는 결혼마저 역내(域內)로 제한하려 한다니 조금 심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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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주의보 지면기사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66)가 감기 때문에 지난 5월13일 은퇴를 시사했다. 며칠 전인 5월8일에도 감기로 공연을 취소해 “뚱보(fat man)는 이제 끝났다”(뉴욕포스트)는 거센 비난을 산 데다가 5월12일에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공연 시작을 불과 50분 앞두고 “감기 때문에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며 펑크를 냈기 때문이다. 은퇴 시사는 “최고 1천875달러(약 230만원)까지 낸 입장객 4천여명에게 직접 나와 사과하라”는 극장측 요청 뒤에 나왔다.감기는 세계 최고의 목청만을 뭉개버리지 않는다. 지난 세기만 해도 1918년 발생한 최악의 독감으로 10억명이 감염, 1차 세계대전 희생자의 2배에 달하는 2천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1957년, 68년에도 수십만명이 죽어갔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의 몰락 원인이 악성 독감이었다고 하듯이 적어도 한해 수억명이 시달리고 일생 동안 평균 300번은 걸린다는 유사이래 인류를 가장 많이 괴롭혀 온 질병 중 하나가 감기다. 사람뿐이 아니다. 79년엔 북아메리카 바다표범 수백마리가, 89년에 중국 동북부의 말 8천여마리가 독감으로 죽었고 작년엔 중국 푸첸(福建)성의 닭과 오리 1만마리가 폐사했다.병명만 봐서는 별 게 아닌데도 그렇다. 감기란 '느끼는 기운(感氣)'일 뿐이고 독감도 '독한 느낌(毒感)'일 뿐이다. 영어의 '감기'도 그냥 '추운(cold)' 정도이고 일본인들에게도 '나쁜 바람(風邪)'에 불과하다. 다만 중국 한의학에서 일컫는 '상한(傷寒)'만은 '몸을 상하게 하는 한기'라는 뜻이다. 아무튼 1918년의 그 지독한 '스페인 독감'을 비롯해 93년의 홍콩A형, 95년의 중국A형, 대만A형, 파나마B형, 재작년의 시드니 올림픽 독감과 러시아 독감, 금년 유럽의 '킬러 슈퍼 독감'과 우리나라에 온 파나마A형 등 독감 이름에 '코리아'가 붙지 않은 것만도 '대~한민국' 만세를 불러야 할지 모른다.국립보건원이 독감 주의보를 발령했다. 감기 환자가 없다는 남극으로 모두가 남부여대(男負女戴), 이민을 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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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 유감 지면기사
김장철이다. 국어사전에는 김장을 침장(沈藏), 또는 진장(陳藏)이라고 했는데, 배추나 무를 소금물에 가라앉히거나 묵혀서 보관하는 방법을 뜻한다. 대체로 입동(立冬)을 전후해 3~4개월 먹을 김치를 한꺼번에 담그는 것이 김장이다. 김장김치는 '겨울철 반양식'이라 일컬었으니, 그 비중 때문에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것이 입동 무렵의 김장하기이다. 예전에 김장을 하려면 최소한 1박2일은 잡아야 했다. 100포기 이상 되는 배추를 소금물에 절였다가 다음날 소를 만들어 버무려 넣은 다음, 집안의 장정이 앞마당에 파묻어 놓은 김칫독에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그 위를 짚방석으로 잘 여미어 놓기까지 보통 정성으로는 어림없는 일대 행사였다. 그래서 동네 아낙들간의 품앗이는 기본이었다.김치광에 묻힌 '독'의 개수만으로도 가세(家勢)를 짐작할 수 있었으니, 없는 사람들에 대한 김장 보시(布施)는 예전이나 요즘이나 우리의 미덕이다. 십수년을 독거노인이나 불우이웃들을 위해 김장을 해주는 부녀회의 미담이 올해도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홍길동'으로 불리는 한 독지가가 3년째 안산의 사할린동포촌인 고향마을에 억대의 김장거리와 양념값을 희사해오고 있다는 기사가 화제다. 김장이란 이렇듯 나만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긴 겨울을 나기 위한 '겨울철 반양식의 동장(冬藏)'일 때 그 의미가 더욱 깊다.그런데 얼마 전 한 인터넷 여성사이트의 설문조사에 응한 여성 네티즌 5명중 1명(22%)이 김장을 하는 대신 김치를 사먹겠다고 응답했단다. 한 백화점이 대전시 주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는 이보다 심해 50%가 김장을 거부(?)했다고 했다. 연령별로 보니 40대 이상 주부는 81%가 담그겠다고 한 반면 20~30대는 79.1%가 담그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젊은 여성들 대부분이 “김장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외치며 김장하는 집으로 시집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하니, 이제 며느리 보려면 김장도 포기해야 할 세상이 됐는가 싶어 씁쓸하다. 영하 0.5℃의 마술을 부리는 김치냉장고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김치공장이 성업중인 세상이니 김장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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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걱정 지면기사
흔히들 ‘미국의 부호’라면 으레 자선사업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하긴 그 옛날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등을 보면 충분히 그럴만도 하다. 록펠러는 말년에 재산 대부분을 시카고대학 록펠러연구소, 일반교육이사회 등에 내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카네기 역시 수많은 재산을 기증, 무료도서관 병원 교회 등을 짓게했고 그밖에 숱한 사회복지시설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근년에도 못지않은 인물들이 꽤 나왔다. 80년대 말 부다페스트에 유럽중앙대학을 세운데 이어 1994~2000년 사이 ‘열린 프로젝트’에 무려 240억달러나 쏟아부은 퀀텀펀드 회장 조지 소로스, 1999년 사상 최대의 자선재단을 만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 등등…. 그중 빌 게이츠는 얼마 전 무려 528억달러로 추산되는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혀 또 한번 큰 감동을 주었다.물론 우리 나라 부호들도 갖가지 자선사업에 선뜻 거금을 희사한 이들이 더러 있기는 하다. 그런데도 왠지 우리 사회에선 부자들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는 않은 편이다. 아마도 대부분 부(富)의 축적과정이 불투명한 데다 사용과정도 그다지 정당성을 얻지 못하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과거 수십년 고질화되다시피한 일부 재벌들의 정치권과의 검은 거래, 다시 말해 정경유착에 대한 혐오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하지만 뒤늦게나마 그같은 일들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일까. 몇달 전엔 소위 재벌경제인들의 모임이라는 전경련이 사뭇 기막힌 결의를 했었다. “정치권의 정당하지 못한 정치자금 요구에는 결코 응하지 않겠다. 법에 의하지 않은 불투명한 정치자금은 제공하지 않겠다”고.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선언까지 했다는데 우선 놀랐고, 한편으론 오죽 정치자금에 시달렸으면 그랬을까 싶어 무척 딱하기도 했었다.그래서 지금 은근히 걱정도 된다. 곧 대선이 다가오는데 그들이 과연 그때의 결의를 고민없이 잘 지켜나가고 있을까 하고. 소문엔 서둘러 해외출장을 떠났거나 떠나려는 재벌 총수들도 몇 있다던데. 물론 사업 때문이라지만 워낙 시기가 시기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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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파산 지면기사
“빚은 주지도 말고 지지도 말라. 빚을 주면 돈과 사람을 둘 다 잃고 빚을 지면 절약하는 마음이 무너진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1막3장에 나오는 이런 말쯤은 점잖은 톤이다. 구약성서 ‘잠언’의 경고는 몇 옥타브 드세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債主)의 종이 되느니라.” ‘빚진 종’이라면 ‘빚준 상전’이다. ‘빚진 죄인’이라는 말도 있고 ‘빚 보인(保人)하는 사람은 낳지도 말라’고 했다. 빚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일깨우는 경종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빚으로 계집 뺏기’만 해도 무서웠다. 아내나 딸을 걸고 빚을 얻었다가 채무 날짜를 어겼을 경우 채주의 첩실 등으로 뺏겨버리는 사례였다. 인신만 뺏기는 게 아니었다. 효녀 심청은 공양미 300석 빚더미에 목숨까지 헌납했다. 오죽하면 빚 귀신, ‘채귀(債鬼)’라는 말까지 국어사전에 올랐을까.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채귀에 쫓겨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서둘러 탈고했고 슈베르트는 그의 옥보(玉譜)를 떨이판매하기 일쑤였다. 그는 모차르트가 채귀에게 쫓겨 철야로 악보를 그리다가 35세에 요절했듯이 31세로 그를 뒤따르고 말았다.콩팥을 비롯해 장기(臟器)라도 떼어내 빚을 갚으라는 빚쟁이나 100만원 빚에 1억2천만원이나 갈취하는 등 요즘의 ‘빚 귀신’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빚주고 뺨맞는다’는 속담처럼 갚을 수 있는데도 갚지 않는 뻔뻔스런 사람도 적지 않다. 올해 790여건으로 급격히 늘었다는 개인파산 신청자 중에는 그런 배포 두둑한 사람도 끼여 있을지 모른다. 빚 ‘채(債)’자는 ‘사람(人)의 책임(責)’을 뜻한다. 제 때에 꼭 갚아야 하는 게 빚이다.무엇보다도 오욕(五慾)의 첫 번째인 물욕(物慾)과 우선 갖고 보자, 쓰고 보자는 식의 소비 심리가 문제다. 그러나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닌 빚 권하는 사회, 외상이라면 소도 잡는다는 ‘외상 권하는 사회’의 책임 또한 크다. 아니, 파산이면 파산이었지 ‘구제’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파산과(破産課)’라는 희한한 과가 법원에 다 있다는 자체도 괴이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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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지면기사
알렉스 헤일리의 가족소설 ‘뿌리(원제:Roots)’는 미국사회에 아주 재미있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다인종(多人種)사회로서 그때까지만 해도 조상이나 가계(家系)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그들에게 뒤늦게 조상찾기 운동을 벌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작품의 처음 주인공이었던 흑인노예 ‘쿤타킨테’와 그 후손들의 고달픈 인생 이야기에서 나름대로 어떤 자극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 작품이 TV미니시리즈로 방영되면서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폭발적 인기를 몰아왔던 20여년 전부터의 일이다. 아직도 그같은 열기는 가시지 않아 인터넷을 이용해 가계를 조사하고, 심지어 우리 한국인들처럼 족보(族譜)를 만드는 일까지 대유행이라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이미 수백년 전부터 족보를 지녀온 한국인들은 분명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흔히들 문헌적으로 믿을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로 600여년 전인 1476년(조선조 성종7년) 간행된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족보 성화보(成化譜)를 들고 있다. 하지만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고려 때에도 이미 씨족계보(氏族系譜) 가첩(家牒) 족도(族圖) 등 고문서 형태의 족보 비슷한 것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역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민족답다 하겠다.미국에 족보바람을 불러온 ‘뿌리’는 ‘쿤타킨테’에 이어 그의 딸과 그 후손들의 가족사로 엮어진다. 그래서일까, 미국사회에 유행하는 족보에는 부계(父系)와 모계(母系)가 다 수록된다고 한다. 그러나 몇백년 이어온 우리네 족보엔 여자들 이름이 수록되지 않는다. 철저히 남자 위주의 기록일 뿐이다. 가부장(家父長) 중심의 유교사회 전통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하지만 전통이라는 것도 시대가 바뀌면 변할 수도 있는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여자들도 족보에 올리는 추세가 이는 것 같더니, 급기야 최근엔 전통적 문중으로 알려진 전주이씨(全州李氏) 최대계파라는 효령대군파에서도 여자 후손들을 족보에 등재키로 했다 하여 화제다. 분명 놀랍기는 한데, 그 정도로 놀랄 수 있다는 게 또 놀랍다. ‘아들 딸 구별말자’고 외쳐온 게 언제부터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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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지면기사
미국처럼 여론조사 활동이 활발한 나라는 없을 성싶다. 이미 1824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전 모의투표를 실시, 그 결과를 예상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00년대 들어서는 각 언론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평 있었던 것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의 조사결과였다. 다이제스트지는 전화 자동차등록명부에 기재된 유권자들에게 모의투표 용지를 보내 작성토록 하고 이를 회수하는 방식을 사용, 1916년부터 20년동안 명성을 쌓아왔다.그러던 다이제스트지의 명성은 1936년 대통령 선거에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신흥 갤럽, 로퍼, 크로슬리 같은 조사기관들이 비례할당법에 의한 과학적 소수 표본조사를 실시한 반면 다이제스트지는 유권자 1천만명에 모의투표 용지를 우송하고 이중 250여만장을 회수했으나 정반대의 부정확한 결과를 내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그러나 여론 조사기법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그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의문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론 조사결과가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진정한 여론을 포착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이와 관련, 한국 갤럽이 지난 97년 '여론 조사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조사결과가 과연 유용한 것인지에 대한 반응은 유용하다는 긍정적 인식(25%)보다 유용하지 않다(53.1%)는 부정적 인식이 훨씬 많았다. 선거에 관한 여론 조사결과에 관해 유권자들은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응답자들이 '솔직하게 응답하지 않기 때문'(66.2%)이라고 한다. 사실 이 결과에 대해서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최근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방법으로 여론조사 방법을 동원키로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갤럽의 '여론 조사에 관한 여론 조사결과'에서 볼 수 있듯 단일화 후보결정에 진정한 여론이 얼마나 잘 반영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월터 리프만은 비조직적, 비이성적이기 쉬운 여론에 관한 무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