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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배짱 지면기사

    1945년 8월 6일 사상 최초로 원자폭탄 세례를 받은 일본의 히로시마는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돼버렸다. 도시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고, 폭탄이 터진 곳에서 500m 이내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히로시마 인구 34만명 중 7만8천명이 사망했고, 부상자와 행방불명자도 5만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후 5년 동안 무려 24만명이 방사능 후유증으로 앓다가 죽었다. 사흘 뒤인 8월 9일엔 또 한발의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여기서는 인구 27만명 가운데 2만4천명이 사망했고, 부상 4만여명, 행방불명 2천여명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혼비백산한 군국주의 일본은 마침내 8월 15일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고, 이로써 그 지긋지긋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게 된다.패전 후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을 만들어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사용’을 영구히 포기한다고 다짐했다. 또한 ‘핵무기를 만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소위 ‘비핵 3원칙’을 국시로 표방하고 나서기도 했다. 원자폭탄의 충격에 진저리를 쳤을 뿐 아니라 패전국으로서 세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겨진다.하지만 지금 일본은 세계 3~4위를 다투는 군사대국이 돼 있다. 국방예산은 6조엔이 넘어 세계 2위 규모이다. 방위산업기술 수준 역시 미국에 비해 손색이 없고, 일부 최첨단 방위산업 품목은 오히려 미국을 앞서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노골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속내까지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이 지난달 31일 “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세계가 월드컵 축제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는 틈을 타서 마치 뒤통수라도 치듯이 핵무기 보유를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도 세계 양대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 핵탄두 감축에 합의, 핵 비확산 노력이 새로운 탄력을 얻고 있는 시점에서다. 그 엉뚱함이 놀라우면서도 되살아나는 군국주의 망령에 몸서리가 처진다. 이제 힘을 키웠으니 더 이상 눈치를 볼 것도 없다는 배짱 같은데, 글쎄….

  • 축구와 주술 지면기사

    2002 한일월드컵 개막전에서 FIFA랭킹 1위 프랑스를 잠재운 세네갈의 기적이 '주술(呪術)의 힘'일 수도 있다는 'LA타임즈'의 보도가 화제다. '주주맨'으로 불리는 아프리카 주술사들이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아프리카 4개국 대표팀의 고문자격으로 동행했을 것이라는 추측보도다. 아프리카 축구경기에서는 주주맨들의 활약이 대단하단다. 상대선수에게 주술을 걸어 잘 뛰지 못하게 하는 건 물론 골포스트에 '마술약'을 발라 상대의 슈팅을 막는다고 하니 대단한 신통력이다. 그래서일까. 개막전에서 프랑스 선수들의 발은 거의 땅에 붙어있다시피 했고, 결정적인 슈팅 2방은 세네갈 골대를 맞추는 비극이 이어졌다. 2일 예선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파라과이와 행운의 2-2 무승부를 기록했고 나이지리아는 아르헨티나에 0-1로 패했으니 '주주맨'의 신통력에도 위 아래가 있지 싶다.주술이란 인간의 문제를 초자연적인 특수한 능력에 호소해 해결하려는 비법(秘法)인데 모방주술과 감염주술로 나눌 수 있다. 모방주술은 어떤 동작을 흉내내면 상응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비를 내리는 의식을 행하면 비가 내린다는 식이다. 감염주술은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 신체의 일부나 옷가지를 비롯해 사람과 접촉한 물건을 통해 상대방에게 특별한 작용을 가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또 개인과 사회에 선용되는 백주술(白呪術)과 반사회적으로 악용되는 흑주술(黑呪術)로 분류하기도 한다.인기리에 방영중인 TV사극 '여인천하'에 소개된 '작서(灼鼠)의 변(變)'은 모방주술이자 흑주술인 셈이고, 아들을 낳기 위해 아들낳은 여자의 속고쟁이를 입거나, 시험에 붙기 위해 선배 합격자의 방석을 깔고 앉는 등의 행위는 감염주술의 영역이다. 또 영국작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장 덤블도어 교수와 '그 사람' 볼트모트는 각각 백계와 흑계를 대표하는 주술사라 하겠다.주술로써 원하는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그렇더라도 선악(善惡)의 저울대를 오락가락 하는 인간들의 다툼은 영원할거란 생각이다. 그런데도 한국팀이 16강에만

  • 비방 유세전 지면기사

    작년 12월 17일 도쿄지방법원 우메즈(梅津和宏)판사가 ‘욕설 위자료’ 판결을 내려 화제가 됐었다. 병원을 경영하는 한 재단법원 이사가 다른 이사에 대해 100분 동안 74회의 욕설을 한 죄값으로 200만엔을 물어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욕설이란 단지 ‘천치(아호)’ ‘바보(바카)’가 전부였다. 그러니 “일본 정부는 후지모리 도적 떼와 공범”이라고 한 작년 7월 페루 정치인의 욕설에 대해서도 위자료 소송을 건다면 얼마쯤 받아낼 것인가.91년 걸프전 때 미국에 대한 이라크의 욕설이야말로 지독했다. 부시 전 대통령을 ‘역겨운 범인’ ‘흉악한 도살자’ ‘아메리카의 대 사탄’이라고 했고 파드 사우디 국왕을 ‘두 개의 성전(聖典)을 팔아먹은 신의 적’이라고 매도했다. 이스라엘을 ‘범죄적 시오니스트의 거미’로, 다국적군을 ‘무신적(無神的)인 썩은 모반의 군대, 야만적 갈까마귀 떼’라고 욕을 해댄 것도 이라크였다. 그 무렵 욕설의 피크는 대통령 재선에 실패한 부시를 가리켜 ‘천벌을 받아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는 것이었다. 뒤질세라 후세인에 대한 미국의 독설도 지독했다. ‘90년대의 히틀러’ ‘바그다드의 도살자’ ‘미치광이’ ‘정신이상자’ ‘긴 발톱을 가진 도둑고양이’ 등.점잖은 폼의 고르바초프까지도 95년 11월 일본서 출판된 회고록에서 옐친을 “가위로 가슴을 찔러 자살을 기도한 성격 파탄자”라고 비난했고 무게있는 신화사(新華社)통신 또한 G7 회담에 G8의 덤으로 참가, 얼씬거리는 옐친을 ‘작은 당근 하나를 얻은 거지’라고 비방했다.‘바담 풍(風)’에 대한 ‘바담 풍’식 비방과 욕설쯤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가릴 것 없는 사석이냐, 가릴 건 가리고 참아야 할 공석이냐가 문제다. 가뜩이나 월드컵 바람에 밀려 외면당하는 지방선거 유세전에서 막말과 비방전이 쏟아져 빈축을 사고 있다. “손주 제삿밥 받아먹을 때까지 살아라, 이 썩을 놈아”는 96년 10월12일 광주 금호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욕쟁이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욕설이었다. 그런 대회라도 참가해 겨뤄보고 싶은 것인가.

  • 월드컵 코리아 지면기사

    지구별의 함성에 외계인이 놀랄 것이다. 드디어 60억 지구촌의 축제인 월드컵의 막이 올랐다. 세계무역센터빌딩이 무너지는 순간 마치 자신의 축구팀이 승리한 것 같았다는 축구광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물론 저승쪽의 축구광 히틀러와 무솔리니까지도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러댈지도 모른다.한데 '세계의 잔'…'World Cup' 타이틀은 다른 스포츠 종목도 가질 수 있는데도 유독 축구만이 독차지한 까닭은 무엇일까. 축구가 새파란 잔디 위에 새하얀 공을 '팔들은 참견 마' 오직 발 재간만으로 탄주(彈奏)하는 무한 변주(變奏)의 현란한 예술이기 때문인가, 다른 종목은 감히 흉내도 못낼 가장 역동적이고도 화끈한 변화무쌍의 스포츠 예술이기 때문인가. 더구나 이번 공인구(公認球) '피버노바'의 Fever는 열광, Nova는 신성(新星)이란 뜻이니까 이번 월드컵 공은 더욱 뜨거운 별처럼 번쩍거릴 것이 아닌가.'월드컵 코리아'야말로 6년 동안 별러온 '대한민국' '코리아' 외침의 유감없는 결정판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국명의 뜻만을 봐서는 터키가 우승하지 않을까 싶다. 터키의 Turk가 '힘센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키큰 사람'이라는 뜻의 Belgae에서 온 '벨기에'는 키만 커 가지고는 안될 것이고 italos(황소)와 -ia(나라)의 합성어인 '이탈리아(Italia)'도 힘만 가지고는 안될 것이다. '계곡 사람들'인 덴마크와 '평야 사람'인 폴란드도 그렇다. 스페인의 Spania(라틴어)는 개를 뜻하고 파라과이는 '파라과이 강'에서, 나이지리아는 '니제르(Niger)강'에서 유래했다. 우루과이는 '새가 오는 물'이고 브라질은 '브라질 나무의 나라'를 뜻한다.마르코폴로가 유럽에 처음 소개한 중국음 'Jihpun'의 전화(轉化)가 저팬(Japan)인 것과는 반대로 일본이 중국을 '지나(支那)'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차이나(China)도 흥미롭다. 아메리카는 탐험가 '아메리고(Amerigo)'에서, 코리아는 '고려'에서 왔다. 어쨌거나 코리아의 위용이 한껏 드날리길 빈다.

  • 있을때 잘해야 지면기사

    1960~1970년대 한참 배고프던 시절, 우리의 많은 선남선녀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났다. 그중 한 예가 독일로 떠난 광부와 간호사들이다. 1963년부터 독일로 건너간 광부가 근 8천명, 간호사는 1만여명이 된다.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대거 미국으로 떠나간 것도 그 시기이다. 1965년에 개정된 미국의 ‘이민과 귀화에 관한 법령’ 덕에 취업이민 등이 쉬워지자 현재 100만명이 넘는 재미한인의 90% 이상이 그 시절에 건너갔다. 그들 대부분이 낯선 타국땅에서 찾는 일거리는 지금 우리가 흔히 ‘위험하고(Dangerous) 지저분하고(Dirty) 힘들다(Difficult)’며 기피하는 이른바 3D업종이었다. 국내에선 3D나마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그러던 우리도 산업화 도시화 덕에 좀 살만하게 되자 양상이 크게 바뀐다. 아무리 열악해도 일자리만 있으면 된다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언제 그랬냐’싶게 3D라면 고개부터 내젓는다. 이런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게 바로 코리안 드림을 좇아 대거 몰려든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외국인들에게 ‘꿈의 나라’로 비칠만큼 된 것이다.하지만 세상인심이란 참 묘한 것인듯, 그 옛날 우리가 타국에서 받던 서러움을 고스란히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돌려주기로 작정이라도 한 모양이다. 그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라는 약점을 이용, 형편없는 저임에 임금체불마저 다반사로 일어난다. 상습구타 성폭행 등도 일상의 일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이 강요된다. 오죽 견디기 어려웠으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집단 파업을 벌이기까지 했었다.하도 짐승처럼 당해만 와서일까, 이제는 그들도 3D는 꺼린다는 소식이다. 많은 이들이 금속·환경업체와 같은 3D기업에서 서비스분야 등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불법체류자 26만여명중 소위 굴뚝산업이라는 제조업 종사자는 기껏해야 9만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조금 살만해졌다고 3D는 아예 외국인 몫으로 치부해오던 우리 국민들 애 좀 태우게 생겼다. 유행가 가사처럼이나 있을 때 잘해줬어야 했는데.

  • D―1 지면기사

    요즘 TV 화면과 신문지상에 매일같이 떠오른 'D 마이너스 며칠'이라는 숫자가 드디어 'D-1'이 돼버렸다. 내일이 바로 카운트다운 'D―0'으로 대망의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는 'D데이'다. D가 'D day'다. 한데 'D데이'란 원래 군대 용어로 '공격 개시일'을 가리킨다. 따라서 31일 '0시 땡'에 공격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면 공격 예정 시간(zero hour), 즉 개막 시간은 따로 있게 마련이다. 그 시간을 군대에선 'H 아워'라 한다. 또 'D 마이너스'뿐 아니라 'D 플러스'도 있다. 공격 개시 2시간 후면 H+2, 3일 후면 D+3이다.'D데이'란 미국 영화 '지상최대의 작전(原題 The Longest Day)' 그대로 2차대전 최대 격전지였던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비롯된 말이다. 아이젠하워 장군 휘하의 연합군이 프랑스 북서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44년 6월 6일이 최초 'D데이'였고 그 노르망디 해안을 'D데이 해안'이라 부른다. 존 웨인, 헨리 폰다 등이 주연한 그 영화(62년)에 300만명의 연합군과 1만여대의 전투기가 동원됐듯이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엔 연합군 20만명과 함선 5000척이 참전해 8천975명이 전사했고 5만1700여명이 부상했다. 그 때 359명이 죽은 캐나다는 그 노르망디 전쟁을 '20세기 캐나다의 최대 뉴스'로 꼽고 있다.영화 '셰르부르의 우산'의 그 셰르부르 항구도 그곳에 있고 모네(Monet)가 명화를 그리던 지베르니도 프랑스 옛 주명(州名)인 그 노르망디 해안에 있다. 또 중세 고딕 성당과 박물관으로 유명한 노르망디 주도(主都) 루앙과 매혹적인 항구로 유명한 옹플뢰르 등도 그 때의 폭격으로 폐허가 됐었다.아무튼 'D데이'가 '공격 개시일'이라면 글자 그대로 용감무쌍한 우리 대한민국 '전사(戰士)'들의 월드컵 'D데이'는 개막식날인 내일이 아니라 실제로 폴란드를 대적(對敵), 공격하는 6월4일인 셈이고 또한 오늘이 'D―1'이 아니라 'D―5'로 봐야 할 것이다. 신성한 개막식 때부터 “싸우자”는 “파이팅”을 외쳐서야 점잖은 체면이 서겠는가.

  • “벼가 뭐지” 지면기사

    ‘들판에서 바람에 출렁이는 누런 벼의 물결을 가리키며 열두어살짜리 도시 소년이 물었다. “저게 뭐지.” 옆에 서 있던 같은 또래의 시골 소년은 다소 의아스러웠지만, 내색은 않은 채 “응, 벼야”라고 대답했다. 도시 소년이 또 물었다. “벼가 뭔데.” 시골 소년은 어이가 없었다. 밥도 안 먹고 사나. 학교에서도 배우는 건데.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니면 도시에 산다는 걸 뻐기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괜히 부아가 치밀어 “너 쌀밥 먹고 살지. 저게 바로 쌀나무야”하고 퉁명스레 말했다. 그러자 도시 소년은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알게됐다는듯 “아, 저게 쌀나무구나” 했다’.우리가 아직은 산업화 도시화를 이루지 못했던 30~40년 전 우스개삼아 유행되던 이야기다. 그때만 해도 몇 안되는 도시에, 그나마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사방에 널려 있는 게 논과 밭이었다. 적어도 국민의 60~70%가 농민이던 시절에 벼를 처음 보았다는 것부터가 차라리 우습고, 벼가 뭔지를 몰랐다는 건 더더구나 상상이 안되는 일이었다. 시골 소년이 어이없다 못해 부아가 치민 것도 그 때문이리라.언제부터인가 도시지역에 옥탑방이란 게 생겨나 가난한 서민들 거처로 한몫을 하고 있다. 옥탑방은 주택이나 빌딩의 옥상에 지어진 방으로 일종의 무허가 건물이다. 햇볕을 직접 받아 여름엔 무척 덥고, 높은 곳에 얼렁 설렁 엮은 방이라 겨울엔 추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세가 싸기 때문에 영세민들에겐 제법 인기가 있다. 서울에만 해도 무려 2만5천여가구나 옥탑방에 살고 있다고 한다.두 분의 대통령 후보가 잇달아 ‘옥탑방을 모른다’고 했다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한 후보는 아예 “잘 모른다”고 했고 또 한 후보는 “그런 생활형태에 대해선 얘기를 들어 봤지만, 사실 그 용어 자체는 몰랐다”고 했다 한다. 두 후보 말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명색이 서민을 위한다는 분들의 이야기라 어안이 벙벙해진다. “벼가 뭔데”하고 묻던 도시 소년을 대하는 시골 소년의 심정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 남자 무용수 지면기사

    무용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다. 귀신과 마귀를 쫓기 위한 행위라든지, 신에게 제사하는 제천의식(祭天儀式) 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 중에서도 발레는 1489년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의 궁정 연회에서 탄생해 이탈리아의 토르토나에서 당시의 무언극과 가면극의 춤을 구성한 '당스 피귀레'라고 하는 기하학적인 형태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발레의 발전에는 루이 14세의 역할이 컸다. 그는 평생 동안 발레를 이해해준 후원자로서 무용가의 양성기관으로 1661년 왕립무용학교를 설립해 이것이 현재의 국립음악무용 아카데미, 즉 파리 오페라극장의 전신이 되기도 했다.우리나라에는 1920년대 남성무용가 한동인이 서울발레단을 창설, 이 땅에 발레를 처음 소개했다. 그러나 발레의 선두주자 한동인은 광복 직후 월북,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실질적인 한국 최초의 발레리노로 임성남씨를 꼽는다. 50년 6월24일 서울에서 '인어공주'에 출연한 후 6·25를 맞은 임씨는 도쿄로 유학가 '청년발레단'을 창단했다. 이후 56년 임성남발레단, 59년 한국발레단을 각각 창단했고 국내 관객에게 공연사상 처음으로 '백조의 호수'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무대에서 앞부분이 튀어나온 '서포터'를 찬 타이즈를 입고 서있는데 객석에서 킬킬대던 여성관객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고 그는 회고하기도 했다.국립발레단 초대 단장(1974∼1992)이자 한국무용계의 산증인이었던 그가 지난 25일 7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30년간 국립극장을 지켰고 500여편의 발레에 출연했으며 91년 '카르멘'을 일본에서 공연, 한국무용의 국제화를 꾀했던 개척자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경기도립무용단에도 이천출신의 조흥동(61)단장과 수원출신의 차효영(45) 훈련장 등 남성무용가들이 여럿 활약하고 있다.남성무용의 80여년 긴 역사에 비해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 전분야에서 전국을 통틀어 남자무용수는 불과 100명도 채 안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예술사의 한 분야를 외롭고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남성무용가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아쉬워진다.

  • 카드빚 살인 지면기사

    영어 '블랙'이 끼는 말은 나쁜 뜻이 많다. 블랙 리스트(黑表·주의 인물 명부), 블랙 마켓(암시장), 블랙 독(black dog→우울증), 블랙 아이(얻어맞아 생긴 눈 언저리의 시커먼 멍), 블랙 메일(black mail→약탈), 블랙 홀(black hole→군대교도소·영창), 블랙 맨(악마), 블랙 플랙(검은 바탕에 허연 해골이 그려진 소름끼치는 해적 깃발) 등. 반대로 좋은 뜻도 있다. '블랙 카드' 하면 검은 산타클로스나 검은 천사 등이 그려진 70년대 초 유행한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한데 애인이 보낸 그런 '블랙 카드'보다도 수천 수만 배나 받아 갖기를 원하는 신종 '블랙 카드'가 있다.골드 카드→플래티넘(白金) 카드→'블랙 카드'다. 최고의 부(富)를 과시하는 이런 카드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모집 중이기 때문이다. 대상은 연간 카드 사용액 2억원이 넘는 극소수 부자들이고 카드 이름도 옛 로마군의 100명 정예 단위 조직 대장인 백부장(百夫長)을 뜻하는 '센추리온(centurion)'이다. 이 센추리온 블랙 카드 소지자는 항공기의 1등석, 매진된 스포츠나 공연 티켓 구입 등 별난 서비스를 다 받는다는 것이다.문제는 블랙 카드든 화이트 카드든 사회에 미치고 사회를 비추는 조도(照度)와 명도(明度)다. 신용 카드가 오히려 숱한 신용 불량자와 빚쟁이를 양산하고 툭하면 살인까지 부르는 등 우리 사회 무대를 암전(暗轉·블랙아웃)케 해서는 곤란한 정도가 아니라 절대로 안된다. 30대 가장이 아내와 딸을 목 조르는가 하면 20대 고교 동창생들이 단지 돈이 많아 보인다는 이유로 안과원장을 찌르는 카드 빚 살인사건이 또 터졌다.온갖 카드 빚 사고에 이어 카드 빚쟁이를 책임지고 안전하게 야반도주시켜주고 돈을 받는 이른바 '요니게야(夜逃げ屋)' 업종이 카드 선진국 일본에 번창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였다. 끊이지 않는 카드 빚 '살인 연속극'에 이어 이 땅에도 그런 악덕 상술의 10년 후배들이 꿈틀거릴 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 한심한 건 팔짱끼고 뒷짐지고 방관만 하는 관리 책임 당국자들의 무책임이지만….

  • 화장실 개방운동 지면기사

    별난 일도 다 있다. 일본 남성의 15%가 앉아서 소변을 본다는 것이다. 지난 달 일본 변기 제조 업체 토토가 대도시 주부 98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이유야 간단하다. 선 채로 오줌을 갈길 경우 변기 언저리가 더러워진다는 주부들의 잔소리 때문이다.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한국 발(發) 뉴스다. 국립환경연구원이 조사한 남자들의 화장실 이용 시간은 평균 1분25초인데 반해 여자들은 그 2배가 넘는 3분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도권 지하철 화장실 250여 곳의 남녀용 변기 수는 반대로 7대3으로 남성용이 많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남녀용 변기 수를 1대2로 해 주든지 최소한 1대1로 설치해 달라는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의 탄원서와 함께 ‘공중화장실법안'까지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당연하다못해 ‘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한데 ‘화장실(化粧室)'의 ‘化'는 될 화, ‘粧'은 ‘단장할 장'자다. 따라서 '化粧'이란 분과 연지 등으로 얼굴을 곱게 꾸민다는 뜻이고 ‘화장실'은 그렇게 하는 방이다. 극장, 방송국 등에서 배우들이 분장하는 방이 ‘화장실'이다. 그렇다면 공중화장실에서도 입술지팡이(립스틱)를 꺼내 휘두르는 등 간단한 화장을 하는 여성들과는 달리 아무런 화장도 하지 않고 나오는 남성들이야말로 ‘화장실' 모독이 아닐까. 이 참에 남성용만은 ‘변소'나 '뒷간' 또는 ‘측간·칙간(厠間)'으로 명칭을 되돌리는 게 어떨까. 하긴 ‘뒷간'은 뒤(대변)를 보는 곳이니까 소변을 보는 곳은 ‘앞간'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세계무역기구(WTO) 말고 또 하나의 WTO가 있다. 다름 아닌 세계화장실기구(World Toilet Organization)다. 화장실 후진국인 중국이 거기 가입해 요즘 대대적인 ‘화장실 바꿔 바꿔'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반해 화장실 선진국인 우리 대한민국은 월드컵을 앞두고 화장실 개방 운동을 벌이고 있어 다행이다. 외국인이든 누구든 자고 먹고 화장실부터 갔다 와야 볼도 차고 구경도 할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