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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대화 지면기사
미국의 몰락 예언은 이미 1차대전 직후에 나왔다. 독일의 역사학자 슈펭글러가 그의 저서 ‘서양의 몰락'에서 “문명 또한 생물적 유기체처럼 성장→쇠퇴→멸망을 거친다. 서양의 그리스도 문명 역시 그렇다”며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몰락을 예언했던 것이다. 그가 오늘까지 살았다면 어땠을까. 2차대전 직후엔 ‘유예―서양의 몰락'을, 21세기인 최근엔 ‘착각―미국의 멸망'을 저술했을지도 모른다. 그 ‘서양의 몰락' 아류 저서로는 80년대 초 전세계의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미 예일대 교수 폴 케네디의 ‘대국의 흥망'이 꼽힌다. 그 ‘대국(Great Powers)'이란 물론 미국을 가리킨다. ‘2050년엔 미국이 3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미국의 정치가 패트릭 뷰캐넌의 ‘서구의 죽음' 또한 금년 벽두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출생률 저하와 노령인구 증가, 이민 폭증, 기독교와 유대교의 쇠퇴 등으로 미국은 망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Hobsbawm) 역시 “미국은 결코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결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학자가 압도적이다. 20세기에 이어 21세기도 미국의 힘이 지배하는 ‘팍스 아메리카나'는 지속될 것이고 미국 영화 ‘인디펜던트 데이'처럼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지구쪽 연합군 사령탑은 미국이 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전세계 재화의 30%, 전세계 군비의 36%나 차지하는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지도력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싫든 좋든 그런 미국과 ‘파토스(감정)의 상충'이 아닌 ‘로고스(理性)의 교환' 즉 ‘점잖은 대화'를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칭하자 “미국이야말로 악의 축이며 미국이야말로 테러의 원흉이다” “그래! 한 판 붙어 보자”며 큰소리를 친 북한이라고 해서 지구라는 행성의 예외일 수는 없다. 이번 임동원특사의 방북을 명분과 계기로 북한이 그만 허장성세(虛張聲勢)를 접고 미국과의 대화에 나가리라는 것은 반가운 전망이 아닐 수 없다. 대화→타협→화해→전쟁방지→체제 유지의 기대를 모를 리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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競選의 계절 지면기사
스포츠만큼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을성 싶다. 이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승부를 겨루는 당사자들에게 공정한 룰이 적용되고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공정한 룰과 기회균등은 민주주의의 기초질서다.18세기초 경마와 함께 영국에서 처음으로 스포츠로서 조직화된 복싱의 예를 보자. 먼저 체급을 구분해서 체중에 따른 불공정성을 없앴다. 뿐만 아니라 경기 하루전 양선수의 체중을 계측해서 체중을 위반한 선수에게는 2시간의 여유를 준다. 그래도 체중 조절이 안되면 위반선수는 실격처리되고 경기일정을 새로 잡는다. 실격이라 해서 기록상 패전으로는 올리지 않는다. 다만 규정위반에 따른 벌칙만 부과할 따름이다.연초에 국내에서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채택된 바둑도 그렇다. 같은 프로기사들이 바둑을 둘때는 집흑자가 유리하다 해서 반드시 덤이라는 제도를 두었다. 게임이 끝난후 일정한 집수를 흑에게서 공제하는 것이다. 1939년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주최 본인방(本因坊)대회에서 처음 이제도가 도입됐을 때는 흑 4집 공제였던 것이 무승부 게임이 많아지자 4집반으로, 그후엔 5집 반으로 늘더니 지금은 국내 기전에서도 6집 반으로 공제호수를 늘렸다. 집흑자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들끼리도 실력차가 심하면 접바둑을 둔다. 이처럼 스포츠는 공정경쟁과 기회균등이란 민주성 때문에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이러한 민주성이 배제된다면 관객을 끌수가 없다. 오히려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분노와 야유를 받는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경기가 있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여당처럼 대선후보 경선제도를 채택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선 후보등록을 하기도 전인 지난 3월말까지 인천(3월22일)을 필두로 울산 제주 강원 대구 경북 등 지역에서 서둘러 선거인단 공모를 마감한 것이다. 이미 출마의사를 표시한 특정인 이외의 다른 후보자를 지지하는 일반국민의 선거인단 참여의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는 의심을 받을만하다. 이렇게 되면 야당의 경선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어 이제 반환점을 돌고 있는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비해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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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장례식 지면기사
글자만 봐도 개는 모든 짐승의 대표다. '짐승 수(獸)'자부터가 '개 견(犬)'자가 대표로 붙어 있고 '입을 벌려 짖고 있는 개떼'의 상형(象形)이다. 또한 사자 사(獅), 원숭이 원(猿), 돼지 저(猪), 노루 장(獐), 여우 호(狐), 고양이 묘(猫), 고슴도치 위, 수달 편(편) 등 대부분의 짐승이 '개 견(犬)' 변의 글자다. 그런데 어느 한학자가 개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렇다. 미칠 광(狂), 미칠 창(猖), 미칠 길(길)자를 비롯해 거의 모든 나쁜 뜻의 글자가 개 견 변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홀로 독(獨), 의심할 시(猜), 간교할 회(獪), 오랑캐 적(狄) 등이 그렇고 범인(犯人)의 '犯'자 역시 그런데다가 지옥이라는 '옥(獄)'자, 감옥의 '獄'자 또한 그 들어가는 문 양쪽에서 짖어대며 지키고 있는 개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쪽쪽 입을 맞추고 이불 속에 끼고 자는 견공애호가는 지구상에 많고도 많다. 지난 1월2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개가 차에 치여 죽자 “충실한 반려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름부터 사람과 '일신동체'라는 '바디(body)'였다니 그 아픔이야 오죽했으랴. 미 '필라델피아 데일리 뉴스'지는 또 '사망'한 애견의 조사(弔辭)를 싣도록 3월부터 광고 지면을 할애한다고 했고 프랑스의 스트라세라는 변호사는 지난 주 프랑스 북서부 사르부르를 떠돌다 붙잡혀 도살 행정명령을 받은 '카야'라는 견공을 살리기 위해 무료 변론에 나섰고 시라크 대통령에게 '정치적 망명'까지 허용토록 호소했다. 한국인의 애견 열은 더 뜨겁다. 서울 강남에서는 '별세'한 개에게 삼베 수의를 입혀 오동나무 관에 넣고 개 전용 화장터에서 화장을 한 뒤 납골당에 '모시는' 애완견 장의업이 성황이라고 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오동나무 관만 해도 35만원인 장례비에 구애받지 않는 애견가들이 한 장의사에 월 평균 100명을 넘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북한의 굶어 죽는 아이들이 안다면 얼마나 참담할 것인가. 하긴 배알(창자)이 뒤틀리는 울화를 목구멍까지 끌어올릴 힘조차 없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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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쌀 지면기사
“분식이 건강에 좋다”는 구호 아래 국수 빵 등 밀가루 음식 먹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던 시절이 있었다. 또한 보리 콩 등이 섞인 잡곡밥도 적극 권장, 심지어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 흰 쌀밥을 싸오는 아이들을 혼내주던 때도 있었다. 모두가 주식인 쌀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숱한 세월 전통처럼 이어져온 이른바 ‘보릿고개’ 고통은 좀처럼 사라질 줄을 몰랐다.근근한 살림에 겨울과 봄을 나는 사이 식량은 거의 바닥나고, 오직 보리 여물기만 기다리며 주린 배를 달래야 했던 시절. 이 보릿고개의 고통이 사라진 것은 불과 30년 전인 70년대 초부터 ‘통일벼’ 대량재배로 쌀 수확량이 크게 늘어나면서였다. 통일벼는 대단한 다수확 품종의 벼로 당시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발한 벼였다. 훅 불면 밥알이 날아갈 정도로 풀기가 없고 맛이 떨어졌지만, 이 통일벼 덕에 비로소 우리 국민은 기아에서 해방되었다고 할 수 있다.그후 국민들이 어느 정도 허기를 면하게 되자 그때부턴 “통일벼는 맛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게끔 되었고, 결국 기아해방에 공이 컸던 통일벼는 지난 84년 이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음식문화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 햄버거 피자 등 소위 패스트푸드가 어느틈에 청소년들 사이에선 거의 주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당연히 쌀 소비량이 크게 줄었고 연속 풍년까지 겹치면서 급기야는 남아도는 쌀이 오히려 골칫거리인 세상이 되었다.현재 국내 쌀 재고량은 자그마치 989만석이나 된다. 이는 세계식량기구(FAO)가 권장하는 적정량인 560만~600만석의 1.5배가 넘는 물량이다. 그래서 큰 걱정이라고 한다. 넘치는 쌀을 그냥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쌓아만 놓고 썩혀서도 안되고. 생각다 못해 정부에선 재고 쌀 일부를 가축 사료용으로 활용할 모양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일테지만, 왠지 썩 개운치를 못하다. 보릿고개의 고통이 바로 엊그제만 같아서일까, 아니면 ‘쌀 한톨이 농민의 피 한방울’이라던 옛 어른들 말씀이 좀체 잊혀지지 않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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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 지면기사
영리한 토끼는 3개의 굴을 파놓는다는 말이 있다. 맹수에 쫓길 것에 대비해서 미리 안전지대를 충분히 마련해 놓는다는 말이다. 이말은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재상 맹상군(孟嘗君)의 충복인 풍훤(馮芋)이라는 자가 그의 주군을 위해 한 말이다. 풍훤은 평소 맹상군이 영지인 설(薛)의 백성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도록 각종 혜택을 줘 그의 주군이 자리에서 물러날 것에 대비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나라 임금과 적국인 위나라에도 맹상군이 명재상임을 소문내는 등 만일에 대비한 3곳의 안전판을 마련해 맹상군이 노후를 편히 지내는데 공을 세웠다.최근 인천 공항공사에 무더기 낙하산 인사가 이루어져 노조측의 반발이 일고 있다. 상임이사 6명중 4명이 정부 관료출신이고 특히 사장과 부사장 등 3명은 항공업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비전문가로 이러한 낙하산 인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게 노조측의 주장인 것 같다.IMF(국제 통화기금) 환란 사태이후 공무원, 기업, 금융계에 대한 대대적 구조조정작업이 이루어졌지만 그때마다 말썽이 된 것이 낙하산 인사다. 공직에서 물러난 공무원들이 대거 공기업의 빈자리를 차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4~5월 새로 선임된 15명의 공기업 사장 및 공단 이사장의 경우 3분의 2가 전문성과 관계없는 정계, 관료, 군, 경찰 등의 출신인사들이었다. 올들어 지난 2월의 한 조사에서도 20개 주요공기업 사장과 감사 40명중 90% 36명이 여권정치인과 관료출신이었고 금융권에도 재경부 관료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러한 실정이고 보니 구조조정으로 자리에서 밀려난 공기업 근로자들의 공무원들에 대한 분노감은 최악에 이른 느낌이다. 이렇게 해서 자리를 차지한 공기업 임원들이 자리를 마련해준 상급기관의 눈치를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러고서도 공기업의 경영개혁이 가능한 일인지, 또 이것이 사회갈등과 국민들의 정부 불신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당국자들은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은 퇴직에 대비, 제나라의 풍훤이 말한 토끼굴을 파는데 여념이 없는 것은 아닌지, 정말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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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지면기사
'절뚝거리는 겨울의 걸음걸이를 따라/성장(盛裝)한 4월은 온다'…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반겨 맞은 4월의 '성장'이란 어떤 성장일까. 그야 새파란 새 풀 옷에 온갖 4월의 꽃 너울을 쓴 채 향긋하게 성장(盛粧)하고 '제 오신 봄처녀'의 성장이 아닐까. 이번의 '봄처녀'는 빨리도 '제 오셨고' 온몸에 장식한 4월 봄꽃도 다투듯 3월부터 만발했다. 12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1월의 세계 평균기온, 2월초 기온이 6·7도였던 모스크바, 앵두꽃이 기상관측사상 가장 이른 3월21일 춘분에 핀 도쿄, 그리고 제주의 벚꽃이 열흘이나 앞당겨 핀 까닭은 이상난동(異常暖冬)으로 실성한 동장군이 '봄처녀'를 마구 떼밀며 '어서 가라'고 재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백화(百花)가 만발하는 달'이라는 뜻의 라틴어 아페리레(Aperire)에서 왔다는 'April(4월)'도 오기 전에 멀리멀리 떠난 자의 넋인 양 개나리와 진달래를 비롯해 벚꽃, 목련 등 4월의 꽃들은 다투어 피었을 게다. 그러나 정작 '4월의 꽃말'은 1일이 아몬드, 2일이 아네모네, 3일이 수선화, 식목일인 5일은 무화과, 4·19는 참제비고깔이고 30일은 금사슬나무다. 그런데 '봄처녀'의 성장을 찬탄한 셰익스피어가 후딱 맘이 변해 '템페스트'에서는 4월을 '해면(海綿)과 같다'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해면처럼 몸이 나른해지고 신체 어딘가 숭숭 뚫린 구멍으로 마냥 기력이 새나가는 듯 피로감에 휘감겨 병든 수탉 암탉처럼 마구 졸리는 이른바 '춘곤증' 때문이 아닐까. 4월 첫날부터 '모두가 어리석은 날(All Fools'Day)'이라는 만우절인 것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요인일 것이다. 만우절에 속은 '4월의 바보'를 프랑스에서는 '4월의 고등어'라고도 한다. 고등어가 4월 바다낚시에서 잘 물리기 때문이다. T S 엘리엇의 말이 아니더라도 4월은 또 잔인한 달이다. 붉은 머리띠의 시위대와 총파업 기세는 등등하고 그래서 막힌 길로 지독한 황사는 뒤덮이고, 선거 바람에 깊어가는 감정의 골 하며…. 금년엔 또 엘니뇨의 영향까지 받는다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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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필마 지면기사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는 17세기초 스페인 귀족들의 부패 방탕한 생활을 고발하고 이들로부터 억압을 당하는 서민들의 고통 울분을 달래주며 사회정의를 실현시켜주는 정의의 기사로서 등장했다. 유럽에서 이런 류의 소설은 아주 많다. 그런데도 동키호테가 성서 다음으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에게는 정의감을 심어주면서도 재미와 웃음을, 젊은이에게는 후련함을, 나이든 이에게는 경각심과 반성의 기회를 주는등 세대를 초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녹슨 칼과 창, 낡아빠진 갑옷의 초라한 행색의 동키호테가 불쌍하리만큼 삐쩍 마른 그의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단기필마(單騎匹馬)로 돌진케 하는 기상천외의 엉뚱한 발상으로 동키호테에 대한 동점심과 흥미를 끌게 한 것도 중요한 이유중 하나다. 단기필마에는 모험과 용기가 뒤따른다. 서기 200년경 중국에서 유비 관우와 의형제를 맺은 장비가 장관교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물리친 것이나 신라의 장군 김유신이 서기 629년(진평왕51년) 34세의 나이에 고구려와의 낭비성 전투에서 적장의 목을 베어와 삼국통일의 전기를 마련한 것도 모두 단기필마의 용맹성 덕분이었다. 그러나 단기필마의 공격이 항상 승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후한말기 무릉군 태수 금선은 모든 군대가 유비군의 선봉장 장비에 질려 도망가자 단기필마로 대적하다 전사했다. 후삼국 통일을 놓고 자웅을 겨루던 고려의 왕건이 후백제로부터 신라를 구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대구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하고 단기필마에 의지해서 겨우 목숨을 건진 드라마속의 모습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단기필마의 출사표는 세 불리함을 인정하고 모험을 거는 결연한 의지와 용맹성, 그리고 외로움이 함께 한다. 최근 이인제 민주당 고문이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서 단기필마의 정신으로 경선을 계속하겠다고 발표하고 경선 대책본부마져 해체했다고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국내정치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국민참여 경선제가 끝까지 성공적으로 치뤄져 민주정치의 한 틀이 정착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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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빚 지면기사
“크리토,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는데 자네가 대신 갚아주게.”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독배를 마시고나서 했다는 이 말은 ‘빚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갚아야 한다’는 교과서적 교훈을 담고 있다. 또한 ‘빚을 제때 갚지 못해 하마터면 살 한 파운드를 떼어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는 빚을 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나타내주기도 한다.최근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신용평가기관인 모건 스탠리사가 의미심장한 경고를 했다. “한국의 가계빚에 신용 버블(거품)이 있으며, 이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조만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계대출 비중이 최고 수준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이런 경고가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의 가계빚은 분명 위험수위에 달해 있다. 얼마 전 발표된 한국은행 통계가 이를 반증한다. 한은통계에 따르면 지난 해 우리나라 전체의 가계부채는 전년보다 무려 28%나 늘어난 341조7천억원으로 가구당 평균 2천330만원의 빚을 진 셈이라 한다. 우선은 부채의 규모도 문제지만, 그 증가속도가 보통 심각하지 않다. 지난 1998년 말 약 183조원이던 가계빚이 불과 3년만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이처럼 가계빚이 급증하는 건 금융기관의 경쟁적인 가계대출과 신용카드사의 무분별한 카드발급 등이 주요인이라고들 한다. 그나마 지금까진 저금리 상황이라 그럭 저럭 견디어온 모양이지만, 언제까지 저금리만 믿을 수도 없다. 그렇잖아도 지금 경기가 저점을 지나 상승국면으로 진입, 금리상승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리가 1%만 올라도 가계 전체의 이자부담은 연간 3조4천억원이 더 는다. 이렇게 고금리 부담이 현실화되면 결국 개인파산 및 신용불량자 대폭 양산은 물론 금융기관 부실도 불을 보듯 뻔하다.‘빚이라면 소도 잡아 먹는다’더니 흥청 망청 몇년에 자칫 제2의 IMF한파를 또 몰아오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두렵기만 하다. 그때가면 옛날같은 ‘금 모으기’도 더는 효력이 없을 듯싶은데, 무슨 다른 묘책이라도 준비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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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우상 지면기사
'이브는 흑인이었다'는 책이 90년대초 파리에서 나왔지만, DNA 분석 결과 그게 '사실일 것'이라는 학자들도 있다. 94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5개 대륙인 148명을 뽑아 인종간의 마이크로 세털라이트 변이를 조사한 결과 인류의 조상으로부터 최초로 분화해 나온 인종은 바로 아프리카인이었다”는 주장을 편 사람은 미국 텍사스대 의학센터 보쿠크박사와 뉴욕주립대 다이앤 웨더박사였다. 예수도 금발 고수머리에 파란 눈의 백인이 아닌 초콜릿색 흑인이었다는 주장이 이미 100여년 전 헨리 터니 주교를 비롯해 줄을 잇고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전통 의상의 흑인 예수 초상화를 걸어놓고 오르간 대신 드럼과 기타에 맞춰 찬송가를 부르는 교회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비느하스(Phinehas)'가 '흑인'이라는 뜻이니까 예수를 그의 후손으로 믿을지도 모른다.악성(樂聖) 베토벤 또한 흑인이었다는 주장이 91년 런던에서 창간된 흑인 잡지 '프라이드'에 나왔다. 그런 위인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전세계 흑인의 우상은 적지 않다. 미국의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 팝송의 제왕 마이클 잭슨, 흑인 영가(靈歌)의 마리안 앤더슨,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 남아공의 태양 만델라 등. 한데 그들의 뒤에 줄을 설 남녀 배우가 등장해 온통 화제다. 엊그제 아카데미상 사상(74회) 최초로 남녀 주연상을 받은 할 베리와 덴절 워싱턴이다. 모친이 백인인 베리는 50% 흑인이지만 흑인은 흑인이다. 그래서 영광의 눈물도 흑인 몫으로 흘렸다.미국 영화의 흑인이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뚱보 유모 아니면 가정부나 범죄자로 나오는 게 고작인 니그로, 니거(Nigger)의 천박한 이미지에 불과했다. 그런 흑인 배우의 위상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으로 한껏 끌어올린 배우가 '흑과 백' '밤의 열기 속으로' '들에 핀 백합' 등의 시드니 포이티어였다. 이름도 거창한 이번 수상자 '워싱턴'은 포이티어 이미지 계승자이기도 하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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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해진 일 지면기사
서구사회에선 어땠는지 모르나, 적어도 우리사회에선 예부터 혼인상태를 파기하는 이혼은 최대한 억제돼 왔었다. 특히 유교이념에 흠뻑 젖어있던 조선시대엔 이혼이란 말부터가 생뚱스러울 만큼 웬만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로 여겨졌었다 한다.그러나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의 지배를 받던 때인지라 남자에 한해서만은 사뭇 많은 재량이 허용됐던 것 같기도 하다.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 하여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시부모를 잘 모시지 못할 때, 그리고 투기하거나 말을 많이 하는 등 일곱가지 잘못을 저지르면 내쫓을 수 있다는 자못 희안한 논리가 통용되었던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남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처(妻)를 내칠 수 있었을성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칠거지악도 여자를 옥죄기 위한 하나의 엄포성(?) 논리에 불과했을 뿐, 갖가지 제약이 많아 제대로 시행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한다.즉 삼불거(三不去)라 하여 아내가 쫓겨나면 돌아갈 곳이 없다거나, 부모의 3년상을 같이 치렀다거나, 가난할 때 시집와서 뒤에 부유하게 됐다거나 할 때는 비록 칠거지악을 범했어도 내칠 수 없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만 있으면 무조건 이혼할 수 없게 하여 사불거(四不去)가 됐다고도 한다. 이래 저래 이혼이란 언감생심이었을 듯싶다.지금은 세상도 참 많이 변했다. 칠거지악은 물론이고 삼불거든 사불거든 이미 사회에서 빛을 잃은지 오래다. 그토록 억제되던 이혼이었지만, 누군가 주변에서 세번 네번 결혼하고 이혼했다 해도 그저 그렇거니 하고 지나칠 정도로 이혼은 흔한 일이 돼버렸다. 자연히 이혼율도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해 우리 나라에선 모두 13만5천쌍, 하루 평균 370쌍이 헤어졌다고 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중 당당 3위의 높은 수준이다.하도 최고만 좋아하다 보니 마침내 이혼 기록마저 최고를 향해 달리는 모양이다. 그것도 과연 자랑스러운 기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 저마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결손가정들이 자꾸만 마음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