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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강도 지면기사

    실제 상황 같은 은행 강도 영화도 많고 영화 같은 은행 갱 사건도 하도 많아 도무지 장자가 나비가 됐는지 나비가 장자가 됐는지를 분간하기 어렵다는 '장주지몽(莊周之夢)'처럼 헷갈리기 일쑤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미국 영화부터가 그렇다. 이른바 '대공황(大恐慌) 연대'인 1930년대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악명 높은 은행 강도가 보니(Bonnie)와 클라이드(Clyde)였고 그들을 모델로 한 영화가 67년 아서 펜이 감독한 그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미국 영화 100주년인 98년 AFI(미국영화연구소)가 선정한 베스트 100 영화 중 27위를 차지할 정도로 문제작이었다. 한 지역의 네 군데 은행이 이틀 간격으로 털려버린 86년 매사추세츠주 연속 은행 갱 사건 역시 영화 같기만 하다. 기묘하게도 지도상에 6각형을 그리며 범행을 거듭했다고 해서 FBI는 그들 2인조 기관단총 강도를 '6각형 은행 강도'라고 불렀지만 다섯 번째 범행에서 그만 잠복해 있던 수사대와 격렬한 총격전 끝에 'The End'를 고하고야 말았다.반대로 실제 상황 같은 2인조 은행 갱 영화로는 사이먼 윈서 감독의 94년 작 '라이트닝 잭' 등이 꼽힌다. 작년 5월 개봉된 '웨어 더 머니 이즈(돈은 어디에 있는가)'는 어떤가. 뇌졸중에 걸린 시늉을 해 감옥을 빠져나온 '늙은 구렁이' 헨리(폴 뉴먼)에게 “한 탕 하자”고 꼬시는 양로원 간호사의 동화 같은 영화다. '모든 범죄 뒤에 여자가 있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남자 둘과 짠 혼성 트리오 은행 갱 영화도 있다. 이제 곧 개봉될 배리 레빈슨 감독의 '밴디츠(Bandits)'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영화 촬영을 위장해 은행에 침입, 거액을 강탈한 영화 같은 사건이 93년 8월 필리핀 루손 섬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다.20∼30년대 미국 은행 수십 곳을 턴 딜린저나 보니와 클라이드를 사범으로 모시고 싶을 은행 강도가 요즘 사흘이 멀다 하고 출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치안 부재 여부도 시험할 겸 그들 '전설적인 영웅 갱'들처럼, 영화 속의 폴 뉴먼처럼 되고 싶기 때문일까 무엇일까?

  • 독불장군 지면기사

    미국은 유난히도 자유무역을 강조해온 나라다. 지난 날들이야 어떻든 적어도 최근 몇년 간은 그랬다. 어쩌다 다른 나라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조금이라도 시장개방을 주저할라 치면 가혹하리 만큼 가차없는 공격을 퍼붓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우리 나라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갖가지 분야에 걸쳐 줄기차게 수입개방 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농축산물시장을 비롯, 자동차시장 금융시장 보험시장 하다못해 담배시장 등 어느 한 분야라도 비껴가는 곳이 없다.심지어 7~8년 전쯤엔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우리 정부에 “자동차시장 개방 속도가 너무 느리다”면서 “관용차로 미국산 승용차를 구입하라”고 어거지를 쓴 적도 있다. 그때 미키캔터 USTR 대표는 관용차 구입과 함께 한국 정부가 국내 언론에 주기적으로 외제차 인식 제고를 위한 발표를 할 것과 상공자원부내에 자동차에 관한 ‘민관특위’를 설치하라고까지 요구했었다. 자기네 주(州)정부에조차 하기 어려운 주문이었다. 그 뿐이 아니다. 지난 해 여름엔 우리 정부가 수입담배에 40%의 관세를 부과하려 하자 압력을 가해 10%로 대폭 낮추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쯤되면 좋든 나쁘든 자유무역이 그들의 변할 수 없는 신조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듯 싶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주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이유로 긴급수입제한조치(safe guard)를 발동, 향후 3년 동안 수입 철강제품에 최고 30%의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토록 자유무역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세계경제를 주물러온 그들이었건만, 역시 눈앞 이익을 위해선 신조도 무엇도 없는 모양이다. 이런 걸 두고 독불장군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필요에 따라 수시로 옷을 갈아입는 카멜레온이라 해야 할는지.그나 저나 대미(對美) 철강수출국 중 다섯번째 수출대국이라는 우리 나라의 피해가 여간 심각하지 않을 것 같아 큰 걱정이다. 물론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모양이지만, WTO인들 뾰족한 수가 있을까. 미국이 어떤 나라인데.

  • 미국 시민권 지면기사

    로마 시민권이란 말은 특권계층을 일컫는 또 다른 호칭이다. 로마제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융성기를 맞이했을 때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로마에서 태어난 토박이로 전 인구의 25%였다. 50%는 노예였고 나머지 25%는 자유인이었다. 이들 로마시민권자에게는 풍족한 생활의 보장, 노예의 소유와 매매 및 선거권이 허용됐다. 뿐만 아니라 결혼도 그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졌고 군사력은 이러한 특혜를 보장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병역의무와 납세를 이행하는 것도 이들만의 특권중 하나였다. 기원전 493년 로마가 점령한 일부 지역민에게 라틴시민권을 발행해서 로마시민과 똑같은 특혜를 누리게 하다가 서기 212년 황제 카라칼라가 제국내의 모든 자유인에게 로마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특혜가 유명무실해질 때까지 존속됐다.당시 로마시민권의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는 성서에도 잘 나와 있다. 바울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날 때부터 로마시민권을 소지했다. 바울이 억지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들어가 전도활동을 할수 있었던 것이나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죽음을 면한 것도 이 시민권 덕분이었다. 그가 어떻게 해서 로마시민권을 갖게 되었는지 성서에도 명확히 나와 있지 않으나 기독교에서는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가르치고 있다.최근 우리사회에 미국시민권을 마치 이러한 로마시민권과 같이 여기는 풍조가 일고 있다고 한다. 미국시민권을 가지면 무상 또는 값싼 비용으로 높은 품질의 미국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과 한국보다 유리한 의료보험 혜택, 남자의 경우 군면제 특혜 등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1~2년전부터 미국 원정출산 붐이 일고 있고 현지의 산후조리원이 성업인가 하면 여행사에서도 이를 위한 여행상품까지 개발해서 판매하고 있다.이러한 가운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아들부부가 지난 1월 미국 하와이에서 원정출산을 했다고 해서 세간의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제발 이들의 원정출산이 미국시민권 획득목적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들이 대통령 당선을 노리는 정치 지도자의 가족이어서 그런 마음은 더욱 간절하다.

  • 산소학번 지면기사

    '산소' 하면 산소 마스크, 산소 땜(용접), 산소 봄베(압축 산소)부터 연상할지 모르지만 산소는 곧 공기(기체 산소)와 물(溶存 산소)이라고 할 만큼 대기의 5분의 1, 물 무게의 9분의 8을 차지한다. 그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味)의 산소를 단 5분만 마시지 못해도 뇌 세포는 까맣게 죽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냥 좋기만 한 산소는 아니다. 숨쉬는 대기의 5분의 1(나머지는 질소)인 산소만을 100% 쥐에게 공급하면 이틀만에 폐 부종으로 죽고 조산아 인큐베이터에 넣으면 시력을 잃고 만다.금년 대학 신입생을 '산소 학번'이라고 부르는 것은 02년의 0을 알파벳 'O'의 산소 원소 기호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O'의 읽는 방법은 오, 영(零), 공(空), 원(圓), 제로, 빵, 동그라미 등 여러 가지다. 'O2' 또한 오투·오이·오둘, 영투·영이·영둘, 공투·공이·공둘, 원투·원이·원둘, 제로투·제로이·제로둘, 빵투·빵이·빵둘, 동그라미투·동그라미이·동그라미둘 등으로 읽는다. 영어 알파벳 제15자인 'O'는 'oh'(감탄사) 'ohm'(전기저항 단위) 'observer'(감시자) 'round'(둥근) 'Ocean'(大洋) 'October'(10월) 'Ontario'(캐나다 州) 'old'(늙은) 'order'(주문) 등의 약자 또는 상징이고 'zero'와 'naught'(無)를 뜻한다. 불어의 'ouest'(서쪽) 'officie'(公式의) 'officier'(관리) 'omission'(누락)의 'O'도 마찬가지고 독일어의 섬(insel)을 상징하기도 하다. 또 'amoeba'(아메바)와 'phoenix'(불사조)에 들어있는 'o'와 'e'는 붙은 글자로 미국에서는 'o'를 빼고 'e'만을 쓰기도 하니까 'O2'에서 산소가 떨어져나간 격이다.작년의 '기름(oil) 학번'이 아닌 '산소 학번' 'O1'을 시작으로 'O2 O3 O4…' 등 캠퍼스의 신선하고 청량한 산소는 해마다 늘어갈 것이다. 그러나 캠퍼스 공기의 5분의 4를 차지하는 질소, 즉 유해 산소가 문제다. 금년 산소 학번들에게 술부터

  • 선거 자금 지면기사

     오늘날 의회민주주의와 공명선거의 모델이라는 영국도 19세기 후반 금권 정치와 선거자금, 부패선거에 의한 정치 사회적 혼탁상으로 얼룩진 과거를 갖고 있다. 일부 특권계급이 사유화해 놓은 의석 지명권의 매매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됐고 유권자에 대한 향응, '달 세계 사람'(Man in the moon)이라고 부르는 얼굴없는 표 매집 운동원이 등장 할만큼 타락한 유권자 매수행위가 성행했다. 1880년 선거에서 수상이 된 자유당의 글래드 스턴은 이러한 돈선거와 정치부패를 근절키 위해 부패 위법행위 방지법안 제정을 추진했다. 선거비용의 제한과 명세서 공개, 매수 향응제공자 처벌, 당선무효등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이러한 조치들을 이미 120여년 전에 실시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약효가 없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여야 의원들이 법안을 엉성하게 만들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거나 법이 제구실을 못하게 무력화 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대전을 겪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막대한 선거자금의 증대로 인해 여야 모두가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법원도 이에 동조, 법운용에 있어서 부정선거의심만 있으면 당선을 무효화하는등 가혹하리만치 법적용을 엄격히 했고 선거사범은 1심제를 채택, 상고를 불허함으로써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뿐만 아니라 부정선거당사자에게 장기간 선거권과 피선거권 제한등 조치도 이뤄졌다. 1949년 제정돼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국민대표법 덕분이다. 정치정화가 실현된 지금 영국의 선거재판소는 선거후에도 파리를 날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민주당 김근태고문이 공개한 부총재 경선시 사용한 선거자금과 이회창 한나라당총재의 총재경선당시의 선거자금 투명성을 두고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그러면서도 선거자금이나 정치자금에 관한 말만 나오면 여야 할 것 없이 '나는 옳고 너만 틀렸다'며 책임을 미루다 슬그머니 피하려는 눈치가 역력하다. 모든 정치인들이 선거자금에 관한한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우리 나라 정치는 아직도 19세기 후반 기득권유지에 급급했던 영국 의원들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 답답할 따름 지면기사

    담배를 ‘홍인종의 복수’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침략한데 대한 보복으로 아메리카 인디언이 건강을 해치는 담배를 그들에게 전해주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현대 문명세계에서 담배를 유익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극히 드물 것 같다. 흡연이 폐암 폐기종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 등 무서운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쯤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 등 서구지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흡연피해를 배상하라는 배상청구 소송이 심심찮게 제기되기도 한다.지금 세계 각국은 다투어 담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공공장소 등에서의 금연은 기본이고, 흡연 억제를 위해 담배소비세를 대폭 올리는 국가들도 적지 않다. 미국같은 나라는 담배를 아예 마약수준의 건강 유해물로 규정, 흡연을 가혹하리만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일부 선진국을 제외하곤 좀처럼 흡연인구가 줄지를 않는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선 청소년 및 여성들의 ‘흡연 전염병’이 급속히 번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세계 2위의 담배회사 회장까지 마침내는 담배의 유해성을 솔직히 시인했다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BAT)’의 마틴 브로턴 회장이 최근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저녁식사 후 가끔 시가를 피우는 것 외엔 건강을 생각해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다”면서 “담배와 관련된 질병에 걸릴까봐 이런 결심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자식들이 어렸을 때 몰래 담배를 피우려 하는 것을 목격했다면 몸에 좋지 않으므로 피우지 않는 게 좋다고 권고했을 것”이란 말도 했다 한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여태껏 그 많은 담배를 제조해 팔아오고 있는지 참 모를 일이다.하기야 자기네 국민에겐 마약과 같다고 엄격히 규제하면서도 다른 나라 국민들에겐 자기네 담배를 더 많이 피우라고 갖가지 압력을 가하는 나라도 있는데, 일개 담배회사 회장의 몰염치쯤이야 탓해 뭣하랴. 해로운 걸 번연히 알면서도 피우는 게 답답할 따름이다.

  • 환경테러 지면기사

    92년 8월16일자 ‘뉴욕 타임즈’ 사설 제목이 ‘침묵의 여름(silent summer)’이었다. 여름만 되면 ‘케이티 딧 케이티 디든(katy did, katy didn't)'하고 우는 귀뚜라미를 비롯해 마치 ‘버그스(bugs) 심포니’를 연상할 만큼 뉴욕 교외 숲 속 가득 찼던 온갖 벌레들의 노랫소리가 뚝 그치듯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원인이야 물론 환경 오염과 이상저온이다. 한데 그런 죽음의 ‘숲 속 침묵’을 매섭게 경고하고 나선 사람이 이미 그 30년 전에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란 책을 쓴 미국의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 여사였다. 지독한 살충제와 농약 등이 숲 속 벌레들의 목소리를 폐쇄하고 새들의 성대를 뭉개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베트남 전쟁이 온갖 새들의 지저귐을 쓸어가버린 ‘침묵의 봄’과 그 여름이다. 환경 오염, 즉 인간의 환경 테러, 생화학 테러에 의한 소름끼치는 생태계 비극이 아닐 수 없다.그런데 우리의 논배미와 웅덩이마저 ‘침묵의 봄’과 여름이 휩쓴다면 어찌 할 것인가. 경칩이 지나도 기어 나오는 개구리가 드문 까닭은 수면 10㎝ 안팎에 알을 낳는 개구리들이 오존층 파괴로 증가된 자외선 때문에 부화를 못해 새카맣게 죽기 때문이고 그밖에 수질 오염과 습지 폐쇄, 남획 탓이라는 것이다. 그럼 그 짙푸르게 꿈틀거리는 보리 이랑 너머 논배미마다 웅덩이마다 온통 떠나갈 듯 합창 경연을 해대는 청아한 개구리 성악(聲樂)마저 들을 수가 없어져간다는 것인가. 신장 20㎝가 넘는 미제 황소개구리 피파(pipa)의 그 징그러운 소리만은 빼도 좋지만….또 하나 비극은 개구리를 비롯한 파충류―양서류의 늘어가는 자웅동체(雌雄同體), 즉 암수 한 몸 현상이다. 지렁이나 달팽이, 기생충처럼 암수 생식 기능을 한 몸에 갖추고 있는 이른바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os)개구리가 늘어간다는 것이다. 개구리 몸에서 환경 호르몬이 검출됐다니까 역시 환경 오염 탓이다. 핵전쟁, 지구 충돌, 자원 고갈 등과 함께 환경 오염을 지구 종말 원인의 하나로 보는 것은 결코 무

  • FX 잡음 지면기사

    “무기체계의 호환성을 의미하는 한·미연합전력의 상호 운용성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해 11월 미국의 국방장관을 비롯한 몇몇 고위인사들이 느닷없이 강조했던 말이다. 다른 때 같으면 그간의 한·미 특수관계로 보아 지극히 당연한 말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FX)사업을 둘러싸고 국내외적으로 초미의 관심이 쏠려 있던 때인지라 결코 심상하게 들리질 않았었다.2008년까지 40대의 최신예기를 도입하려는 FX사업은 미래전의 핵심전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차대한 국책사업이다. 또한 미국과 프랑스, 유럽 4개국 컨소시엄 및 러시아의 4개 업체가 수주전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 사업은 무려 4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기도 하다. 당연히 국제적으로 내로라 하는 무기 수출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고, 그래서 로비도 치열해지고 상대방을 흠집내기 위한 온갖 루머도 속출하게 마련이다. 우리 정부의 기종 선정작업도 그만큼 어려움이 따르고 자칫하면 엉뚱한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FX사업이 결국은 잡음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것도 내달 중순 께면 기종 최종선정이 발표된다고 하는 막바지 시점에서 문제가 터졌다. 국방부의 급작스런 지시 때문이다. 국방부가 지난달 15일 기종별 평가작업을 벌이고 있는 공군과 국방연구원, 국방과학 연구소 등에 돌연 평가기준의 변경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국방부의 진의가 어디 있든간에 우선은 외압설 특혜설 등 갖가지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기종선정 작업이 막바지에 달한 시점에서 굳이 평가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부터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하필이면 국방부의 지시 시점이 지난 달 한미정상회담 직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물론 국방부로선 ‘까마귀 날자 배(梨) 떨어진 격’이라며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정녕 그렇다면 참 딱하게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더 더욱 명쾌한 해명 및 규명이 있어야겠다. 국방부가 진정 억울한 것인지는 좀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 EU 제헌회의 지면기사

    필라델피아 로이어(Philadelphia Lawyer)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는 탁월한 논리와 명석한 분석력을 갖춘 법률가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반면 인간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도 함께 갖고 있다. 이 단어가 이런 의미로 사용된 배경에는 1776년 제퍼슨이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이후 1787년에는 미국 12개주 대표 55명이 이곳에 모여 연방헌법을 제정, 미 합중국 탄생의 역할을 함으로써 미헌법의 메카가 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후 이곳에서는 수많은 유능한 법률가가 배출됐다. 이 때문에 필라델피아는 미국이 유럽의 구질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미국인들의 정신적 뿌리이자 미국 민주주의의 성지이기도 하다.지금 유럽에서는 21세기 들어 이와 아주 흡사한 의미있는 한 회의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진행중이다. 지난달 말부터 약 1년6개월동안 예정으로 EU(유럽연합) 15개 회원국과 13개 가입 후보국등 28개국 대표 105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리고 있는 EU미래회의가 그것이다. 브뤼셀은 지난 1958년 원자력을 주제로 한 전후 최초의 국제박람회가 열린 상업 도시로 현재 EU 및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본부가 있는 유럽의 수도구실을 하고 있는 곳이다. 이 회의에서는 지난해 유로화(貨)로 화폐통합을 이룬 EU가 21세기에는 하나의 유럽이란 정치 통합을 이루기 위해 유럽헌법을 기초하고 정치 경제 사회 안보등 50여개 항목의 의제를 논의한다. 미 연방 헌법을 제정한 필라델피아회의가 철저한 미공개 비밀회의였던데 비해 EU미래회의는 TV 인터넷을 통해 모두 공개되는게 다른 점이다.EU는 이와 함께 3월 들어 프랑스의 프랑, 독일의 마르크, 네덜란드의 길더등 기존 통화사용을 전면금지, 유로화만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써 경제 통합에 한발짝 더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EU개혁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등 강대국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일부 국가의 불만도 있긴 하지만 21세기 EU정치 통합은 이제 가속이 붙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 회의결과 유럽헌법 기초안이 나온다면 브뤼셀은 유럽의 필라델피아로 거듭나게 되는

  • 친일파 지면기사

     친일(親日) 문학이 낯뜨겁다. ‘반도 삼천리도 기쁨의 일장기(日章旗) 바다/ 무한한 영광과 희망의 위대한 새해여’… 성씨와 이름까지 ‘창씨개명’한 춘원 이광수(香山光郞)는 매일신보 44년 신년호 축시에 이렇게 썼다. '오오 폐하의 股肱(고굉)이여/ 천명을 받들고 어서 나서라’며 이 땅의 청년들을 일본 왕의 팔다리(고굉)라고 한 것은 파인 김동환(白山靑樹)의 태평양전쟁 지원병 격려 시(매일신보 43년 11월6일자)였고 노천명도 같은 신문 42년 2월19일자에 ‘일장기가 나부끼고 있는 한/ 너희는 평화스러우리’라고 읊었다.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 산천이여’(徐廷柱)도 있고 ‘반도의 아우야 아들아 나오라/ 님께서 부르신다/ 용감한 전위의 부대로 너를 부르신다’(金八峰)도 있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 모임’에서 엊그제 추가한 16명의 ‘친일파’ 작품 역시 그렇다. 모윤숙은 42년 2월21일자 매일신보에 ‘大亞細亞의 巨火/ 大和魂(대화혼)의 칼이 번뜩이자/ 사슬은 끊기고’라고 썼고 김활란은 ‘신시대’ 42년 12월호에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바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나라의 것을 나라가 쓰는 것이지 내가 바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잠깐 맡았던 내 아들이 훌륭히 자라서 나라가 다시 찾아가는 것’이라며 ‘나라의 아들론’을 펼쳤다. 현제명(玄濟明) 역시 ‘찬란한 일장기는 赤道의 일광에 빛나며/…’(동양지광 42년 3월호)라 썼다. 법학자 이항녕(李恒寧)씨는 91년 “하동군수로 있던 일제 때 친일 행적을 사죄한다”고 말했고 미당(未堂)선생 또한 친일문학을 자인(92년)했다. 이제 ‘친일 진상규명 특별법’까지 만든다니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이다. 그런데 자의와 타의, 자의 반 타의 반, 협박 공갈 등 친일 동기와 행적을 가리기란 쉽지 않다. 극단적인 말로 당시 창씨개명한 사람과 충정공 민영환(閔泳煥), 매천 황현(黃玹) 등처럼 자살을 했거나 면암 최익현(崔益鉉)처럼 굶어죽지 못한 모든 사람이 친일파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