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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패 선거구 지면기사

    18세기 중반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는 '부패 선거구'라 불리는 선거구가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지역의 인구분포가 변했는데도 선출되는 의원수는 옛날 그대로 둔 곳들이었다. 예컨대 신흥 공업도시로 성장한 맨체스터는 15만명 이상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데도 옛날 규정에 얽매여 단 한명의 대표자가 없었다. 이에 비해 유권자수가 7명밖에 안되거나 지반침하로 도시가 바다로 가라앉아 사람이 없는 선거구에는 각각 두명씩의 의원이 선출되는 기이한 현상이 있었다.이러한 불합리한 부패 선거구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힘 있는 사람들의 기득권 때문이었다. 지역구를 위해 의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의원을 위해 지역구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기득권은 이처럼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거부하는 속성이 있다. 이러한 웃지 못할 현상이 개선된 것은 거의 80년 후인 1832년이었다.그런데 최근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추태가 빚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지자체는 기초의회의 선거구 인구를 부풀리기 위해 행정구역을 억지로 조정하는가 하면 주민의 위장전입등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국회가 최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을 개정해 기초의원 1명을 뽑을 수 있는 선거구의 최소인구 기준을 동(洞)은 5천명에서 6천명으로, 섬지방이외의 면(面)은 의원1명에서 인구 1천명이상인 경우로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는 인천 광주 울산 충북 경남 강원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여론 조사결과 지방 자치발전을 위해 가장 절실한 문제가 주민참여(35.8%)와 의회의원들의 비리근절(29.4%)이라 지적한 마당에 이를 외면하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이쯤 되면 지역 주민과 선거구가 의원님들을 위해 존재했던 18세기 영국의 부패 선거구와 다름없다. 하기야 여야를 막론하고 일부 정치 지도자들과 국회의원들 조차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와 국민들을 들러리 세우려 하고 있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정치 현상이고 보면 기초의회 의원이라고 해서 뭐가 크게 다르겠는가.

  • 송도 신도시 지면기사

     소나무 섬 '송도(松島)'처럼 친근감 넘치는 섬 이름도 드물다. 그래선가 '송도'는 부산을 비롯해 충남 보령, 경남 의창, 전남 여천에도 있고 경남 통영과 전남 신안에는 각각 두 군데나 있다. 아예 '소나무 도시(松都)'도 있었다. 그러나 인천 송도처럼 격랑 드센 우리 근세사의 표면과 측면을 주시해온 섬도 다시 없을 것이다. 일찍이 백제 시조 온조(溫祚)의 형인 비류(沸流)가 인천에 정착, 최초의 지명을 '미추홀(彌鄒忽)'이라 한 뒤 백성들로부터의 구심력이 떨어지자 자살하는 모습부터 '송도'는 지켜봤고 고구려 영토 '매소홀현(買召忽縣)'이 됐을 때도 송도는 거기 있었다. 그 뒤에도 통일신라 때 소성(邵城)→고려 때 수주(樹州)→경원군(慶源郡)→인주(仁州)→경원부(慶源府)→조선 때 인주(仁州)로 환원됐다가 태종 때(1413년)에야 드디어 '인천군'이 된 명칭 변천사와 송도는 함께 했다. 파도 가파른 근세사의 송도는 어땠는가. 1882년 조미(朝·美)수호조약 체결, 독일인 묄렌도르프 등 양코배기들의 공식입국과 함께 1883년 1월1일 인천항 개항으로 뿌려진 이 땅의 개화문명 씨앗을 송도는 목격했고 그 개화의 관문으로 드나들던 유길준(兪吉濬) 김옥균(金玉均) 등 선각자들에게 송도의 소나무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아펜젤러, 알렌 등 개화사 주연급이 들어올 때도 어서 오라 했고 1884년 갑신정변에 실패, 망명길에 오르는 김옥균, 박영효(朴泳孝) 등의 쓸쓸한 그림자에도 송도의 소나무는 하염없는 눈물을 뿌렸다. 그뿐인가. 1900년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준공 때 한껏 들떴던 송도의 소나무는 1903년 첫 하와이 이민 출항 뱃고동에 마냥 울었다. 일제 때 월미도가 국방 요새가 되면서 유원지로 개발된 뒤에도 1950년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 때나 92년 영종도 국제공항 착공 때도 크게 박수를 보낸 송도의 소나무였다. 그런 인천 송도가 해상신도시로 착공(94년)돼 미디어밸리 조성 지역으로 선정됐고 엊그제 16조원의 외자(미 G&W社) 유치까지 성공, 피치를 올리게 됐다는 건 얼마나 고무적인 일인가.

  • 황사 공습 지면기사

     전국이 사상 최악의 황사(黃沙)공습으로 비상이다. 일부지역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임시 휴교령이 내려졌고 항공노선도 한때 결항사태를 빚었다. 그뿐 아니다. 축산농민들은 재작년에 호되게 겪었던 구제역 공포로 차단막 설치와 소독으로 밤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어제 그제 서울 경기지역의 도심지에서는 시민들이 호흡곤란을 겪는 일도 있었다. 공기중 미세 먼지가 평소의 30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시상태나 다름없다. 이러한 황사의 발원지는 말할것도 없이 중국과 몽고에 걸쳐 있는 고비사막과 그 남서쪽의 타클라마칸 사막 그리고 황하 중상류지역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안개같은 뿌연 황사가 아니라 아예 무시무시한 모래폭풍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를 흑(黑)폭풍이라 부른다. 겨울철 내내 얼어 있던 메마른 땅이 봄과 함께 날씨가 풀리면서 잘게 부서져 모래먼지가 된다. 이 황토먼지가 강한 햇빛을 받아 더운 공기를 타고 상공에 올라가 지상 5.5㎞상공에서 부는 강한 편서풍에 실려 한반도와 일본 멀리는 하와이 및 미 알래스카지역까지 날아간다는 것이다. 황사현상은 최근세기에 생긴 일은 아니다. 중국의 경우 서기 300년 이후부터 관측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왕조 실록에도 태종11년에 14일동안, 성종9년 4월과 숙종때 4월에도 흙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예년의 경우 국내의 황사발생 일수가 과거 30년동안 연평균 2.6일에 불과했던 것이 90년대에는 8.8일, 2000년에는 10일, 지난해에는 27일 등으로 급증했고 올해도 때 이르게 1월부터 발생하는 등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영향은 중국이 90년 이후 경제개발에 따라 과다한 개간 등으로 80만㏊의 초원과 숲이 파괴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미세 먼지에는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이 엄청나게 들어있다. 그래서 공기 1㎥당 미세 먼지 10마이크로 그램이 증가할 때마다 1일 사망률이 1%씩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제 황사대책은 관련국들이 실속없는 협의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해

  • 아이러니 지면기사

    기껏 잘해보자고 한 게 되레 일을 크게 그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흔히 ‘혹 떼려다 혹 붙인다’는 게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강원도 영월 정선 평창을 끼고 흐르며 ‘마지막 천혜의 비경’ ‘생태계의 보고’라 불리던 동강의 요즘 형편을 보면 그 말이 더욱 실감난다. 그토록 강을 살리자며 댐 건설 계획까지 백지화 시켰건만, 그 이후 동강은 허연 거품이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강이 돼버린 것이다.수달 쉬리 어름치 등 천연기념물 13종과 멸종위기 23종 등 모두 1천838종의 동물과 흰꽃절굿대 백부자 등 희귀종을 포함한 952종의 식물이 서식하는 동강은 국내 최대의 ‘생태계 보고’로 평가받아 왔다. 여기에 석회암동굴 77개와 모래톱 50여개, 뱀 모양의 사행하천 등 천혜의 비경이 어우러져 있기도 하다. 그래서 지역주민을 비롯, 시민단체 등이 그토록 댐 건설을 극력 저지했고 ‘동강 살리기’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던 것이다.하지만 지금 동강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댐 건설 논란이 일면서 특유의 비경들이 널리 알려져 탐방객 관광객들이 급증, 급속한 생태계 파괴를 불러오고 만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산비탈을 깎아내면서 길을 닦고 다리를 놓았으며, 일부 래프팅(급류타기)업체들의 몰지각한 상술과 무분별한 야영객 낚시꾼 등의 발길로 동강은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고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쓰레기와 오물로 강물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 지난 해 여름엔 물고기들이 떼죽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한때 손꼽히는 1급수 청정하천을 자랑하던 동강이 어느새 탁한 2급수로 전락해버렸다. 어쩌면 ‘동강 살리기’운동이 차라리 동강을 죽이는 계기가 돼버렸다는 느낌마저 준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마침내 환경부와 강원도가 ‘동강 되살리기’에 나섰다. 6월부터 동강 일대를 단계별로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키로 했다. ‘천혜 비경’ 파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동강이 되살아날 수만 있다면 무얼 더 바라랴. 우선은 기대를 걸어볼밖에….

  • 중국산 복어 지면기사

    고급 차는 독일, 가전제품은 일본, 향수는 프랑스, 양복은 영국, 가구는 이탈리아, 청바지와 영화는 미국 등 아직도 외국제를 선호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농·축·해산물만은 예외다. '신토불이(身土不二)' 노래 덕분인지 또는 그런 믿음과 철학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대다수 한국인은 고기, 생선 등 한국산을 선호하고 값도 중국산에 비해 몇 배는 비싸다. 그만큼 맛도 좋고 믿을 수 있다. 그런데 중국 일본 등 외국인의 한국산 인식도 그럴까. 천만의 말씀이다. 일본 햄과 소시지 시장의 80%를 점유하던 최대 식품회사 유키지루시(雪印)가 지난 2월 느닷없이 망해버린 이유는 그 회사 이름이 나약해 보여서가 아니라 수입 쇠고기를 일본산으로 속여 팔다가 들통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리 최고로 알고 있는 우리 한우 고기도 일본 등 해외로만 건너가면 “최고라니요?”가 된다는 것이다.쇠고기뿐이 아니다. 지난 2월16일 구마모토켄(熊本縣) 야쓰시로시(八代市) 청과물 업자가 일본농림규격(JAS)을 위반해 걸려든 이유는 ㎏당 300∼400엔인 한국산 미니토마토(방울토마토) 3t을 ㎏당 500엔인 구마모토산으로 속여 팔다가 탄로가 났기 때문이었다. 작년 12월엔 또 한국산 굴이 이질 균에 오염됐다고 해서 입하를 금지당하기도 했다. 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노릇인가. 또 중국인의 한국산 식품 평가는 어떨까. 고기, 생선 등 몇 배나 비싼 값에 걸맞게 모든 한국 식품의 질이 우수하다고 믿는 것인가. 재작년 11월 베이징(北京), 시안(西安) 등에서 먹어본 과일 맛은 일품이었고 값도 한국산의 몇분의 1에 불과했다. 현지에서 구입하는 참깨나 일부 한약재 등도 품질이 좋다고 들었다.납과 볼트가 들어간 중국산 참조기에 이어 이번엔 물 먹인 중국산 복어가 들어와 말썽이 되고 있다. 복어의 생식기 쪽으로 주입한 물이 냉동이 되는 바람에 무게에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인가. 한국인 마약사범이 중국에서 사형을 당하듯이 신성한 식품에다 못된 장난질을 치는 중국인 또한 우리 쪽에서 잡아다가 엄벌에 처했으면

  • 들쥐론 지면기사

    쥐는 대개 그 사는 곳에 따라 두가지로 구분된다. 곰쥐 생쥐 등 주로 인가에 사는 쥐를 집쥐라 한다면, 논밭 같은 경작지나 초원에 서식하는 쥐는 흔히 들쥐라 부른다. 그런데 이 들쥐에도 많은 종류가 있어 크기 형태 생태 등에 따라 갖가지 이름들을 갖고 있다. 갈밭쥐 쇠갈밭쥐 대륙밭쥐 비단털쥐 등줄쥐 메밭쥐 등이 주로 한국 땅에 서식하는 들쥐 이름들이다.집쥐도 그렇지만 들쥐 역시 사람들에게 굄을 받지 못하는 짐승 중 하나다. 우선 들쥐들은 떼지어 다니면서 농작물이나 삼림의 묘목 등에 큰 피해를 끼친다. 게다가 치사율 높은 무서운 전염병인 유행성출혈열을 비롯, 갖가지 병균을 옮겨 더 더욱 미움을 산다. 이 들쥐들에겐 무슨 까닭인지 우르르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이 떼거리 습성이 가끔은 사람에게 비유되어 경멸적 험담이 되기도 한다.“한국인들은 들쥐와 같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 지난 1980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대장이 우리 국민을 가리켜 들쥐와 같다고 했다가 여론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아마도 ‘12·12사태’ 이후 권력실세로 급부상한 신군부에 많은 이들이 다투어 줄서기 하던 꼴불견을 비아냥댄 표현이었겠지만, 우리 국민성을 싸잡아 ‘들쥐떼’에 비유한 것은 여간 큰 모욕이 아니었다. 의식있는 이들이 크게 분노했고 하마터면 심각한 반미감정으로까지 번질 뻔 했던 기억이 새롭다.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예의 ‘들쥐론’이 또 거론되어 화제다. 얼마 전 대한상의 회장이 “우리 기업들은 좋다고 하면 충분한 검토도 없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시장을 어지럽힌다”면서 이른바 ‘들쥐떼 근성’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엔 누구 하나 감히 반박을 못하는 것 같다. 하기야 그 옛날 가발산업을 비롯, 중화학투자붐 반도체붐 그리고 최근의 벤처붐 등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하나 된다 싶으면 너도 나도 몰려들었다가 다 같이 망했던 기업들이 어디 하나 둘이던가. 반박은 커녕 수치심이라도 느낀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조금쯤 반성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

  • 봄, 그리고 花信 지면기사

    화신(花信)이 북상중이다. 개나리 벚꽃이 이미 제주도에서 활짝 개화, 남해안 뭍에 올라와 서둘러 북상중이라는 소식이다. 꽃중에서 봄의 전령사는 역시 개나리이다. 기상청은 지난 2월의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섭씨 1.7도, 3월 들어서도 1.4도나 높아 개화의 시기도 평년보다 8일, 작년보다 4일이나 빨라 이른 봄철을 예고하고 있다.봄기운을 가장 먼저 띠우고 있어서 일까. 개나리에 얽힌 전설은 꽤나 많기도 하다. 우선 중국인들이 전하는 전설중 하나. 천국에서 쫓겨난 선녀는 1만번의 기도를 올려야 다시 승천할 수 있었다. 선녀는 한참동안 기도를 하고 이제는 됐겠지 하며 승천하려 했다. 그러나 한길도 날지 못하고 곧장 떨어졌다. 기도가 모자랐던 탓이다. 그래서 핀 꽃이 개나리이고 무리지어 핀 꽃은 기도의 횟수였다고 전해진다. 애틋한 이야기이다.우리 나라에는 흥부전과 비슷한 내용의 전설이 있다. 승려 한명이 한 부잣집에 시주를 하러갔다. 부잣집 주인은 견분(犬糞)도 없다며 승려를 쫓아냈다. 그러나 이웃에 사는 가난한 사람은 이 승려에게 정성껏 시주를 했다. 승려는 짚으로 만든 바구니 하나를 감사의 표시로 주고 사라졌다. 이 바구니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원할 때마다 계속 쌀이 쏟아져 나왔고 그는 곧 부자가 됐다. 소문을 들은 부잣집 주인은 이듬해에 시주를 많이 하고 바구니 하나를 받았다. 그러나 열어보니 견분만 계속 쏟아졌다. 그 부자는 즉시 이를 울타리 밑에 묻어버렸다. 이곳서 자란 꽃이 개나리라고 전해진다. 중국의 전설이 신비스러움이 있다면 한국의 그것은 권선징악적 요소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인지 개나리의 꽃말이 희망과 애정이다.그러나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개화한다해서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봄은 역시 메마른 공기와 대지를 촉촉히 적셔주는 보슬비와 함께 해야 한다. 이른 새벽 동네 뒷산에 오르면 밤새 내린 봄비로 물기를 머금은 야생화, 그리고 함초롬히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연초록의 풀잎을 볼 수 있고 그곳에서 새 생명의 약동과 희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에게 계절적 정신적 봄 가뭄을

  • 국회 지하철노선 지면기사

    63빌딩에서 내려다본 국회의사당부터가 안좋다. 딴은 거대한 도리스식 열주(列柱)에다 바로크식 꼭지 없는 돔 처리가 장중미를 뽐내는 듯도 싶지만 꼭 떠다 놓은 상여 모습 그대로다. 꽃 엮음과 포장만을 떼어낸 상여 모양 그대로라는 것이다. 청태종이 쓰던 모자 아니면 조선시대 포도대장이 쓰던 전립(氈笠) 같은 돔 처리도 한 층 더 얹었어야 했다. 신들과의 라포(交感)에 여념이 없을 미 국회의사당 꼭대기 자유의 여신상과는 대비가 되지 않는가. 다음은 '여의도(汝矣島)'다. '汝'는 '너'라는 비칭으로 '여배(汝輩)' 하면 '네놈들'이라는 뜻이고 '矣'는 뜻이 없는 조사다. 따라서 '여의도'는 '네 섬' '당신네 섬'이란 뜻이다. 차라리 '나 여(余)'자의 '余矣島'로 지명부터 바꾸는 게 어떨까. 더구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두나(Duna)강에도 섬(마가렛)은 있지만 국회의사당은 그 옆에 있지 섬 안에 있지는 않다.국회 심벌 마크와 금배지도 글렀다. 그것은 '國'자가 아니라 '或(혹)'자다. 누가 ○ 모양 테두리를 □으로 봐 줄 수 있는가. 마땅히 □을 둘러야 한다. 대회의실 천장의 거대한 샹들리에 역시 첫째 옛 소련연방공화국 국화인 해바라기를 닮아 안됐고 둘째 해바라기형 철새 국회의원을 상징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 의장님의 머리 위로 3분의 1쯤이나 남아돌아 치솟은 의자 또한 되게 크다. '국회'라는 발음도 전에는 엉뚱같이 들려 좋지 않았다. 하기야 '혹회(或會)'만 열었다 하면 싸움판만 벌이는 등 직무유기를 일삼는다 싶은 국회의원의 책무에 비하면 이런 건 사소한 문제일지 모른다.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의사당과 의원회관 사이로 지나게 돼 있던 지하철 노선을 의사당의 안전과 지하 공간 활용 문제로 멀리 우회하도록 한다니! 더 드는 공사비도 문제지만 국회의 권위가 다수 시민의 편의를 묵살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600년 전통의 스위스 야외 의회(란츠게마인데)도 들어보지 못했는가. 의회야 아무 데서나 열면 그만이다. 하긴 고가도로를 내기 위해 독립문도 옮겨버리는 나라가 아닌가.

  • 탈북주민의 운명 지면기사

    지난해 11월 중순 어느날, 중국 연길시 시외버스터미널에 남루한 차림의 성인 3명과 어린이 5명 등 8명의 탈북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영하10도의 강추위와 초조함에 떨면서 연방 주위를 살폈다. 일행의 리더격인 40대 여성은 북한의 명문대인 김형식 사범대를 졸업하고 한때 작가생활을 하기도 했다. 남편이 탈북하자 뒤이어 아들 및 다른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한 뒤 거의 1년째 이러한 비참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연길에 온지 두달만에 자신도 모르게 중국남성에게 6천500위앤(80만원)에 팔렸고 석달만에 기적적으로 탈출했으나 이번엔 조선족 사기꾼에게 걸려 다시 인신매매를 당했다. 다시 2개월만에 빠져나와 다행히 한국의 한 종교단체에 의해 구출됐고 지금은 한국에 가기위해 1차목적지인 내몽골에 가기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연길에서 내몽골까지는 부산에서 신의주까지보다 더 먼길. 이러한 내용은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된 한 탈북가족의 북한탈출 기록이다. 2년전부터 중국공안당국의 탈북자 단속 및 강제송환이 급증하자 이처럼 탈북 및 한국행 루트가 제3국으로 2차탈출을 해야 하는등 더욱 험난해졌다고 한다.기록에 의하면 중국이 탈북자를 단속, 강제송환한 북한주민의 수는 지난 99년말 현재 5천여명에 이르고 지금은 이보다 두배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북한을 탈출, 베이징의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해 한국망명을 요청한 25명의 북한주민도 외국 민간단체들의 도움이 없었던들 지금쯤 연길에서 배회중인 40대 여성의 가족처럼 머나먼 제3국루트를 찾느라 목숨을 걸었으리라.'우리는 작년에 자유와 식량을 얻기 위해 탈북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송환됐고 혹독한 고문과 억류생활에 시달리다 재탈북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외국인의 도움으로 여기에 모였습니다.…다시 북한에 송환되면 우리는 자살할 준비도 돼 있습니다'. 북한주민의 삶에 대한 처절한 절규앞에서 정부는 비록 늦기는 했지만 중국에서 떠돌이 생활하는 탈북 주민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 대학생들의 빚 지면기사

    ‘빚'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이다. 베니스의 젊은 상인 안토니오가 친구를 위해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렸다가 제때 갚지 못해 곤욕을 치른 이야기다. 하마터면 꼼짝없이 살 한 파운드를 잘라내 목숨을 잃을 뻔 했다는 이 이야기는 당시(16~17세기) 영국사회의 고리대금업과 유태인에 대한 증오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 이후 흔히 ‘샤일록’이라는 이름은 악의 상징으로, 또 고리대금업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으로 인식돼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주는 교훈으로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빚을 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여겨진다.‘미국 대학생 3명 중 2명은 대학을 다니려면 빚을 내야하고, 10명 중 4명은 졸업하고 취업해서도 감당하기 힘든 빚더미에 앉게 된다’고 최근 한 외신(外信)이 전했다. 지난 1992년부터 2000년 사이 미국에선 대학생들의 부채가 두배로 늘어나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교육을 위해 지는 빚이 평균 1만7천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중 3분의 1은 부채액이 2만달러를 넘어섰다고도 한다.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3천만원에 가까운 거액이다. 아무리 세계 제1의 부자 나라라지만, 학생 신분으로 이 정도 빚이라면 헤어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듯 싶다.우리 나라의 대학생들 역시 학자금 대출 등의 폭이 꽤 넓은 편이라 부채액수가 결코 만만찮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학생들 부채가 학자금 대출 뿐이라면 얼마나 다행일까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상당수의 청소년 대학생들이 몇개 씩의 신용카드를 활용하면서 적지않은 카드빚에 시달린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것도 학자금 보다는 유흥자금 등에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어느 TV프로그램에선 청소년 및 대학생들의 카드빚 사례를 수집하고 있기도 하다.이쯤되면 빚더미에 올랐다는 미국 대학생들은 차라리 행복한 경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샤일록 공포’가 그들이라고 쉽게 비껴갈 리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