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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뱃돈 지면기사
설날 어른들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리면 덕담과 함께 내어주는 것이 세뱃돈이다. 이 세뱃돈은 어린이에게 연중 가장 큰 가외수입원이어서 어린이들은 은근히 이를 바라며 동네어른이나 친척집 순례를 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게끔 됐다. 원래 세뱃돈의 관행은 중국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설이 되면 결혼하지 않은 자식들에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행운의 색깔로 여기는 붉은색 봉투에 약간의 돈을 넣어 주었다. 이러한 풍습은 후에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로 전해져 각 나라에 맞는 관습으로 이어졌다.한국에서는 체면을 중시해 세배하러 온 어린이들에게 약간의 돈과 함께 과일등 음식을 줬으나 지금은 현금의 비중이 더 커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세뱃돈의 목적은 대체로 어린이의 저축정신 함양에 있었다고 한다. 세뱃돈으로 연초에 달걀을 사서 닭으로 키운 다음 이 닭들을 팔아 송아지로 늘리고 이를 다시 소로 키워 먼 훗날 논 밭을 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해석도 있다. 지금도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세뱃돈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 중 저축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것은 이러한 전통때문이 아닌가 싶다.지난해 한 기업체에서 40~50대의 사내 직원 5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77%가 세뱃돈에 대해 부담을 느끼면서도 96%가 세뱃돈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나름대로 전래의 미풍양속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한 사람에게 주는 세뱃돈의 액수는 1만원이 60%로 가장 많고 5천원이 38%, 1천원이 2%였다.그런데 최근 신임 중앙선관위원으로 임명된 김헌무 변호사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행한 세뱃돈 답변이 물의를 빚고 있다. 본인의 등록재산 127억원(현금 57억원 포함) 이외에 장남(34)이 4억원, 차남(30)이 3억5천만원의 현금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의원들이 의문을 제기하자 세뱃돈을 모은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의원들이 이를 믿으려 하지 않자 세뱃돈은 1억5천만원이고 2억5천만원은 결혼 축의금이라고 정정했다고 한다. 어찌됐든 서민들의 눈에는 다른 나라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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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상대 지면기사
지난 해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때 일이다.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이 김대통령을 가리켜 ‘디스 맨(this man)’이라 호칭, 결례가 아니냐는 논란이 인 적이 있다. 양국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였다. ‘디스 맨’을 직역하면 ‘이 사람’ 또는 ‘이 양반’정도의 뜻으로, 우리의 경우 흔히 상대방이 아랫사람이든가 허물없는 사이에서나 쓰여지는 말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조금은 경시하는 상대에게나 곧잘 써왔던 것이다. 양국의 문화가 달라서인지는 몰라도 당시 우리로선 결코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크게 분개했고, 심지어 어느 국회의원은 백악관에 항의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국측 관계자들은 단지 ‘친근감의 표현’이라며 사뭇 대수롭잖게 해명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얼마 전엔 부시 대통령이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에게도 똑 같이 ‘디스 맨’이란 표현을 썼다 하여 화제가 됐었다. 지난 달 18일 일본을 방문했을 때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정책을 한껏 치켜세우면서 “나는 디스 맨의 지도력을 신뢰한다. 그의 전략을 신뢰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일본측 반응은 뜻밖에도 너무나 태연해 보였다. 어느 누구도 부시의 말을 걸고 넘어지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맥상 칭찬하고 친근감을 표시한 것 아니냐”면서 “미국식 표현으로 볼 때 당연한 것이고…, 여하튼 우리는 그런 표현이 문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이고 나섰다. 얼핏 대단히 너그럽고 아량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글쎄…. 아무렇지 않다면서도 굳이 장황한 설명을 늘어 놓는 모양이 왠지 좀 석연찮다. 애써 태연을 가장하는 것 같아 차라리 안쓰러워 보였다면 터무니없는 억측일까.그런데 참 궁금한 게 있다. 보아하니 부시 대통령은 툭하면 ‘디스 맨’이란 표현을 즐겨 쓰는 모양인데, 어찌된 셈인지 중국에 갔을 땐 그런 표현을 사용했다는 소식이 아직 없다. 중국에선 김대통령이나 고이즈미 총리 만큼 친근한 상대를 찾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거기 가서야 비로소 문화 차이를 알아차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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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업 지면기사
‘경인(京仁) 경수(京水) 철도이용자 연맹’ ‘전국 철도이용자 조합’이라도 결성해 공기업의 ‘公’과 노사(勞使)를 걸어 손해배상 제소라도 하는 게 어떨까. 하지만 법관마저 파업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90년 프랑스 법관들이 파업을 했고 작년엔 그곳 경찰과 헌병까지 파업을 했다. 88년 인도 경찰 파업은 군대가 진압했지만 98년 세계 최초로 탄생한 러시아 군인 노조가 파업을 하면 누가 진압할 것이며 96년 조직된 우루과이 창녀 노조가 파업을 벌인다면 그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제 남아공 교도관 파업에 이어 죄수 노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 ‘민주주의=파업 천국’인가. 그런데 다수의 제삼자에게 피해와 고통을 주는 민주주의란 ‘民主’가 아닌 ‘民誅’의 ‘시민 죽이기’다. 도대체 제삼자 시민이 당하는 고통과 손해의 총합이 얼마란 말인가.에밀 졸라의 소설 ‘Germinal’이 원작인 ‘제르미날’이 1860년대 프랑스 북부 릴시(市)의 광부들 파업을 다룬 영화였듯이 이른바 ‘영국병’의 씨앗(제르미날) 역시 1928년의 탄광노조 파업이었다. 그후 “과연 고질적인 영국병은 고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아놀드 토인비였다. 한데 그 악질(惡疾)을 고친 여의사가 바로 ‘철 나비’ ‘철의 여인’ 대처였다. 79년 총리가 되자 그녀는 “영국인의 사고방식을 확 뜯어고쳐 영국의 운명을 바꿔 놓겠다”고 외쳤고 영국병의 근원이 바로 악성노조라고 인식, 광산노조부터 다스렸다. 그리고는 고용법을 대수술, 불법파업을 원천봉쇄했다. ‘정치 지배 경제’도 ‘경제의 정치화’도 거부, ‘대처(對處)’에 능한 대처가 됐던 것이다.81년 미국 항공망을 마비시킨 항공관제사 파업은 어땠는가. 레이건이 일갈했다. “대통령으로서 명령한다. 파업 노동자는 내일 정오까지 근무처에 복귀하라. 아니면 전원 파면이다.” 그러나 그 추상같은 최후 통첩을 모두들 믿지 않았다. ‘나약한 배우 출신이 뭘’ 했던 것이다. 한데 다음날 결근한 7천500명이 전원 파면됐고 그후 단 한 명도 복직되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 대통령이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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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 답답하면 지면기사
“법에 의하지 않은 불투명한 정치자금은 제공하지 않겠다.” 지극히 당연한데도 정작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를 결의하자 항간에선 의견들이 분분했다. 우선 정치자금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 결의까지 했을까 하는 동정론이 제기됐다. 그런가 하면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정치권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괜한 헛공론에 그칠 게 아닌가 하는 회의론도 나왔다. 한편에선 기업 스스로의 반성과 자정(自淨)을 촉구하기도 했다. 불법 정치자금은 상당 부분 정치권의 요구와 기업들의 필요가 어울린 결과이므로 기업들도 자성해야 한다는 논리다.그런 가운데 이번엔 정부 일각에서 자못 획기적인 제안을 하고 나섰다. 법인세의 1%를 정치자금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정치권이 기업들로부터 일절 정치헌금을 받지 않고 선거공영제로 갈 것에 합의해줘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혼탁한 작금의 정치현실을 감안해 볼 때 얼핏 괜찮은 방법 같기도 하다. 지난 해 기준으로 법인세의 1%라면 1천700억원 정도인데, 그만한 자금으로 정치판이 깨끗해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싶은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과연 1천700억원 정도로 정치인들의 성이 찰까 하는데 있다. 흔히 선거 때만 되면 ‘조(兆)’단위 이상이 운위되는 게 우리네 정치 현실이다. 지난 97년 대선 때 선관위가 정한 후보 1인당 자금사용 상한액만 해도 300억원이 넘었었다. 게다가 올해는 연말 대선에다 여름 지방선거까지 겹쳐 있다. 어림잡아도 1천700억원 정도론 택도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법인세 보조는 보조대로 받고도 음성적 거래는 여전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이 주머니 따로, 저 주머니 따로 차지 말란 법도 없다. 특히 가뜩이나 정치권을 불신하는 국민들이 세금 활용에 선뜻 찬성할까도 의문이다.그나 저나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안까지 나왔을까. 기업들이 더 이상 불법자금을 뜯기지 않겠다고 결의한 것이나 세금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나, 우리 말고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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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없는 학교 지면기사
졸업 입학의 시즌이다. 각급 학교의 길목이 꽃장수들로 붐빈다. 졸업식의 풍경은 과거와 달리 교사와 재학생, 졸업생이 함께 어우러지는 노래와 댄스파티 그리고 연극이 등장, 훨씬 건전해진 모습들이라고 한다. 학창시절은 이제 졸업과 함께 영원한 추억으로 남는다.지난해 9월 15일부터 10월14일까지 경기도내 일산 호수공원 국제 꽃전시장에서는 '추억의 교실, 학교문화 50년'전이 열려 성황을 이룬 적이 있다. 또 퇴직한 초등학교 부부교사가 강화도 입구 김포시 대곶면 덕포진에 설립한 교육박물관은 지금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곳에는 검정 고무신에 때묻은 책보를 메고 등교하던 모습이 있는가 하면 가운데 금이 그어진 2인용 낡은 나무책상, 딱딱한 나무의자, 검은 칠판, 낡은 손풍금, 땡땡치는 학교종, 조개탄 난로에 양은 도시락을 데워 먹던 50~60년대 광경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검은색 남녀학생 교복에 딱지치기와 찹쌀떡 엿장수의 모습도 옛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비록 가난했지만 그곳에는 개구쟁이들의 우정과 사랑이 있고 부푼 꿈과 희망이 살아 움직이는 곳이었다. 또 이탈리아의 작가 데 아미치스가 그의 소설 '사랑의 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이탈리아를 사랑하라”며 애국심을 고취시켰듯이 나라사랑의 마음을 가르친 우리 선생님들의 우국의 목소리도 묻어 있다. 그런가 하면 작가 조흔파의 명랑 학생소설 '얄개전'의 주인공 얄개의 재치와 유머가 남아 있기도 하다. 학교와 교실은 그래서 모든 이에게 정신적 고향이다.그런데 새학기를 맞아 3월에 개교 예정인 도내 각급학교 가운데 공사지연 등의 이유로 교실없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들 학교에 입학예정인 학생들은 남의 학교에서 더부살이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천 덕산고교가 그렇고 남양주 도농 초등교, 인근의 금교 초등교, 파주의 와동 초등교, 용인의 이현중, 영문중 등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교실은 교육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따라서 교실이 없다는 것은 정신적 고향인 교육현장이 없다는 얘기다. 학교 교육은 형식적이기 때문에 교육은 사설학원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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移葬 지면기사
죽은 자도 이장(移葬)에 따라 이사를 한다. 그런 이장을 면례(緬禮) 또는 면봉(緬奉)이라 높여 부른다. 한데 가장 영예스런 이장은 역시 프랑스의 위인 묘지 팡테옹(Pantheon)사원일 것이다. 루소, 볼테르,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등이 묻혀 있는 그곳이 바로 3색기(국기), 라 마르세예즈(국가)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3가지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 팡테옹 신전에 프랑스 '인권의 아버지' 르네 카생이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로부터 11년만에 이장된 것은 87년이었다. 두 차례나 노벨상을 받은 퀴리 부인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장장 61년만에 그곳에 이장된 것은 95년이었고 앙드레 말로가 20년만에 그곳에 이장, 명부(冥府) 주민등록을 옮긴 것은 96년이었다. 팡테옹에서 쫓겨나는 고인도 있다. 추한 야누스의 뒤쪽 얼굴이 뒤늦게 드러나는 경우다. 미라보 백작이나 혁명가 장 폴 마라 등이다. 팡테옹뿐이 아니다. 뉴욕 공동묘지로부터 43년만에 조국의 품에 이장된 주인공은 헝가리의 음악 영웅 바르토크였고 51년만에 조국의 흙으로 돌아간 고인은 '20세기의 쇼팽'으로 불리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이자 초대 총리인 파데레프스키였다. 또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도 공동묘지로부터 28년만에 황릉에 이장됐고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유해가 다 빈치, 미켈란젤로, 단테 등이 묻혀 있는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 묘지로 이장된 것도 오랜 세월 뒤였다. 퇴출당한 혼백도 있다. 91년 '유고의 국부' 티토 대통령의 유해가 그의 기념관으로부터 일반 묘지로 이장당한 경우 등이다. 박은식(朴殷植) 신규식(申圭植) 등 독립운동가 유해도 광복 48년만에 고국의 품에 안장됐고 다산 정약용의 부모 등 초창기 천주교 수난자들도 200년만에 천진암에 이장됐다. 그런데 후손의 발복(發福)을 위한 이장은 어떤가. 이번 대선 후보를 위해 작년에 이장했다는 모 정당 총재 부모 묘소나 최근 남몰래 이장을 마쳤다는 대선 경선 후보 아무개의 부모 무덤 말이다. '용이 꼬리를 서린 형체'의 명당으로 이사갔다는 혼백은 당연히 기뻐했을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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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액션 지면기사
한 축구선수가 상대편 골문을 향해 공을 몰고 가다 골 에리어(GA)에서 상대수비선수와 부딪치는 순간 배를 움켜쥐며 나뒹군다. 관중들은 틀림없는 페널티 킥(PK)이라고 생각하며 함성을 지른다. 그러나 주심은 이 공격선수에게 옐로카드를 꺼내들고 수비팀에게 공격권을 넘겨준다. 관중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한다. 그러나 옐로카드의 이유는 공격선수의 할리우드 액션때문이었다. 할리우드 액션이란 상대의 반칙을 이끌어내기 위해 심판의 눈을 속이려는 과장된 거짓 몸짓이나 동작을 말한다.2001년 컨페더레이션스 컵 최우수 선수인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로베르 피레스 선수는 같은해 12월 31일 벌어진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미들스브로전에서 이러한 할리우드 액션으로 주심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그는 다음날 “심판을 속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시 일어나 경기를 하려했다”며 자신이 야비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극구 해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은 국내경기에서도 이따금 볼수 있다. 지난해 6월 20일 성남과 부산 경기가 열린 성남 축구구장. 부산의 마니치 선수는 전반 26분 성남진영의 GA오른쪽을 돌파하다 수비선수의 마크를 받다가 넘어졌다. 그러나 주심은 마니치 선수에게 PK대신 옐로카드를 내밀었다.축구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가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사랑을 받는 이유는 똑 같은 룰이 양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가운데 실력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신사적 정신 때문이다. 복싱경기에서 한쪽선수의 한 팔을 묶어놓고 다른 선수에게는 두팔을 사용토록 한다면 이 경기의 결과는 보나마나다. 관중들의 흥미도 끌지 못한다. 심판은 이러한 룰의 공정한 적용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그저께 솔트레이크 시티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 남자 1천500m 결승에서 한국의 김동성선수가 1천m 준결승에 이어 두 번째로 경쟁선수의 할리우드 액션과 심판의 편파판정으로 금메달을 강탈 당했다. 앞주자의 뒷선수 진로 방해행위(크로스트레킹)와 뒷선수의 앞선수 신체접촉행위(임피딩)조차 구별 못하는 심판들의 무능력인지, 아니면 미국선수에게 금메달을 주기 위한 타락한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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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점짜리 지면기사
재작년 9월 초쯤으로 기억된다. 중앙아시아 북부의 키르기스스탄 공화국에서 사뭇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곧 새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 이 나라에서 출마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모국어 즉 키르기스어 읽기 쓰기 말하기 시험을 치른 것이다. 그리고 자그마치 5명이나 이 시험에 불합격하여 입후보 자격을 상실하기도 했다.소위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인물들이 모국어 시험을 치러야 할 형편이었으니 나머지 일반 국민들 수준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런 마당에 자기네 언어 시험에 간신히 합격하고도 으스대는 모습이나, 또 떨어졌다고 불평하는 모습들이나 마치 한편의 코미디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거기엔 무작정 비웃을 수만도 없는 그들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수십년간 구(舊)소련 체제하에서 신음하며 모국어 대신 러시아어를 사용해야 했던 슬픈 과거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소련의 해체 덕에 간신히 독립한 게 그때 겨우 10년 안팎이었다.우리도 일제(日帝)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하마터면 우리 말과 글을 영원히 잃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안가 일제가 패망했고, 우리도 금세 잃었던 말과 글을 되찾았다. 그리고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누구도 다시는 감히 우리의 언어를 빼앗으려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우리의 삶과 언어 속에 드문 드문 박혀있던 일본어의 잔재도 거의 다 뽑혀져 나갔음은 물론이다.그렇다면 우리 국민의 국어실력도 이제는 결코 모자람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한 모양이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어느 대학교수에게 의뢰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국어실력은 100점 만점에 30점에 불과하며, 최고 명문대라 할 서울대 인문대 학생마저 34.24점에 그쳤다고 한다. 그것도 확률적으로 50점을 얻을 수 있는 양자택일 문제에서 나온 점수가 그 타령이라는 것이다. 이쯤되고 보면 키르기스스탄의 처지를 비웃거나 동정한다는 것부터가 차라리 민망스럽다. 그렇다고 마냥 한탄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더 비참해지기 전에 무언가 대책이 나오긴 나와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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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 역 지면기사
우리 역사의 낙랑(樂浪)공주는 둘이다. 고구려 호동왕자에게 반해 자명고(自鳴鼓)를 찢어발김으로써 나라를 망치게 했다는 그 낙랑 태수(崔理)의 딸 낙랑공주와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다. 왕건은 신라 경순(敬順)왕이 항복해오자 맏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맞게 하고 정승에 봉하는가 하면 비운의 그를 달래기 위해 암자를 지어 머물도록 한다. 그러나 그는 아침저녁 산마루에 올라 신라쪽으로 돌아앉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을 흘린다. 그 눈물 어린 산이 바로 도라(都羅)산이다. 경순왕이 신라쪽으로 '돌아앉았다' 해서 붙여진 '도라'라니까 한자 '都羅'는 뜻과는 상관없는 '돌아'의 취음(取音)인 듯싶다. 아무튼 경순왕 그가 고려 경종 3년 눈을 감은 곳도 '영원히 지키겠다'는 뜻의 암자(永守菴) 그곳이었고 아내 낙랑공주가 새로 절(昌化寺)을 지어 그의 영정을 모신 곳도 도라산이었다. 마의태자가 구슬픈 가슴으로 휘돌아 금강산으로 발길을 돌린 곳 또한 그곳이었다.조선 태조 이성계가 돌아본 천도 후보지 중의 한 곳 역시 장단(長湍) 도라산이었다. '태조실록'의 기록처럼 그는 개성(松京)으로부터 천도할 곳으로 무악·안산(연희·신촌동)을 위시해 한양(南京), 계룡산, 파주 적성 광실원(廣實院), 임진현(臨津縣) 신경(新京), 그리고 도라산을 꼽았다. 그만큼 그곳은 명당이다. 조선조 이후 그 도라산 마루엔 봉화 신호를 위한 봉수대가 축조됐고 1986년엔 파주시 군내면 도라산 그곳에 최북단 전망대가 설치돼 개성 송악산과 김일성 동상, 금암골 협동농장, 장단역 기차 화통, 위장 선전 마을인 기정동 등이 고스란히 망원 렌즈에 잡힌다.그런 도라산 역에서 한·미 정상이 연설을 하고 역사(驛舍) 침목에 'Bush(부시)'라는 서명까지 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데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과연 도라산 너머 따뜻한 '남쪽나라'와 자유세계의 간절한 깃발을 향해 철철 녹아내리는 마음으로 '돌아앉느냐', 아니면 보내주는 햇볕만 쬐고 억하심정 엉뚱한 궤도만을 타려 하느냐 그게 관건이고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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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모르는 일류병 지면기사
우리 국민의 자식 교육열은 참 대단하다. 자신은 못입고 못먹어도 자식만은 기여코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게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네 국민정서로 자리잡아 왔다. 심지어 논 팔고 소 팔아서라도 학비는 낸다 하여 대학이 ‘상아탑(象牙塔)’ 아닌 ‘우골탑(牛骨塔)’이란 별칭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식 교육열이 다소 넘친다 하여 그걸 탓할 수는 없다. 어느 부모치고 자신보다 나은 자식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있겠나 싶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그같은 교육열이 엉뚱한 방향으로 질정없이 흐르는데 있다 하겠다.언제부터인가 우리 국민의 유별난 교육열은 차츰 일류병으로 변질돼가기 시작했다. “내 자식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류학교에 보내야 한다. 일류학교야말로 유일한 성공변수다.” 남다른 교육열로 평판(?)이 자자한 우리네 학부모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이같은 일류병은 급기야 일류학군으로의 위장전입이란 새 풍속도를 낳았고, 그것도 부족해 학교 밖에서의 비정규교육, 다시말해 과외열풍까지 몰고 왔다. 그러나 그 정도로 만족할 우리네 학부모들이 아니었다.그토록 일류학교에 집착하던 학부모들이 몇년 전부터는 해외유학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웬만큼 성장한 자녀들을 하나 둘 미국 유럽 등으로 유학보내는가 싶더니, 이젠 아예 우리 글도 채 깨우치기 전부터 서둘러 어린 자녀들을 외국으로 내몰고 있다. 자녀가 유치원생이든 초등학생이든 전혀 가림이 없다. 진작에 온가족이 자식교육을 빌미로 해외이민을 선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하지만 이같은 일류병은 해외유학만 보낸다고 그치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최근 미국내 한국인들이 자녀를 위장전입시켰다가 낭패를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뉴욕이든 로스앤젤레스든 명문학교가 많은 학군들에선 한국학생들의 위장전입이 들통나 다른 학교로 강제 전출되는 경우를 다반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에서 새는 쪽박은 밖에서도 샌다”고 했던가. 어떻게 해서든 자식을 일류로 키우려는 심정이야 어쩌면 한없이 가상하다고도 하겠는데, 국제 망신을 감수하면서까지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