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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길목 지면기사
오늘(19일)이 우수(雨水)다. 이제 절후는 봄의 길목에 들어섰다. 입춘이 보름전이었고 보름후엔 봄의 절기가 본격 시작되는 춘분이다. '가만히 귀대고 들어보면…얼음장 밑으로 봄이 와요 겨우내 잠자던 물레방아…물레방아 돌리며 봄이 와요'. 봄은 이처럼 윤석중이 동요 '봄이 와요'에서 노래했듯 얼음장 밑의 흐르는 물을 따라, 또는 물레방아를 돌리며 우리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기상청은 이번 겨울은 예년보다 유난히 따뜻한 날이 많았다고 밝히고 꽃소식도 예년보다 빠른 3월10일쯤이면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예보하고 있다.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비가 내리는 우수의 절기는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해서 새생명과 희망, 그리고 약동의 상징이다. 이 때문에 봄은 독재정권 시절에는 민주화의 또 다른 표현으로 곧잘 전용됐다. 영국의 시인 셸리가 처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의 노래'에서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고 말한 것이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나타내준다. 혁명과 반혁명, 제국주의와 독재, 자신의 권력과 기업이익만을 좇던 정상배들이 횡행하던 당시의 유럽 현실속에서 그는 이처럼 대중에게 밝은 희망을 노래했던 것이다.국내에서도 독재 권력이 극치에 달했던 70년대초 신동엽 시인은 '봄의 소식'이란 시를 발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마을 사람들은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냈다커니…그렇지만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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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지면기사
미국 배우 톰 크루즈가 미사일 이름 같다고 해서 놀림을 받는다지만 실제로 '크루즈(Cruise)'는 '선박 여행'이라는 뜻의 미제 미사일 이름이다. 그 밖에 미사일 이름도 흥미롭다. 중동전 때 이라크가 사용한 구 소련제 미사일 '스커드'는 '질주하다, 스쳐 지나가다'는 뜻이고 이스라엘이 응사한 미제 '패트리어트'는 애국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질주해오는' 미사일을 '애국자'가 막아낸 격이다. 미제 '폴라리스'는 북극성을 뜻하고 북한이 94년 5월 발사 실험한 '실크웜'은 누에라는 뜻이다. 미제 '사이드윈더'는 사막에 사는 뱀 이름이고 '스패로'는 참새, '매버릭'은 '낙인 찍히지 않은 송아지'다. 무섭고도 그럴 듯한 이름은 역시 '나이키'다. 그리스 신화 니케(Nike)는 승리의 여신이지만 '나이키 에이잭스'의 '에이잭스'는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군 용사 아작스(Ajax)를, '나이키 허큘리스'의 '허큘리스'는 그리스 신화 최대의 영웅 헤르쿨레스를 뜻하기 때문이다. 가장 거창한 이름은 '나이키 제우스'다. 미국이 신형 THAAD로 뉴멕시코 상공 80㎞에서 가상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실험에 성공한 것은 99년 8월이었고 러시아와 중국은 무시무시한 '전투기 싹쓸이'를 2005년까지 개발중이다. 일본의 '요격'이 아닌 '영격(迎擊) 미사일'도 무섭다. 한데 북한은 중국식 명칭으로 '지공도탄(地空導彈)부대'인 미사일부대를 86년에 창설, 91년엔 여단 규모로 늘렸고 이라크, 이란, 시리아에 스커드B와 C를 수출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93년 사정 1천㎞ 이상의 노동 1호 발사에 성공했고 미국 전역에 공격이 가능한 1만5천㎞의 대포동 3호를 개발중이라고 한다. '대포동'은 함북지방의 지명(大浦洞)이다. 내일 방한하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핵심 주제는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될 것이다. “태양은 메마른 대지를 일굴 수 없다”는 켈리 미 국무차관보의 코멘트가 아니더라도 북한은 이제 메마른 대지부터 돌봐 전 인민의 얼굴에 명도(明度) 높은 환희의 혈색부터 일궈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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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공주 지면기사
20세기 최고의 러브스토리는 역시 왕관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영국 왕 에드워드8세와 유부녀인 월리스 심프슨 부인의 이야기 아닌가 싶다. 에드워드8세는 41세의 노총각으로 1936년 1월 왕의 자리에 올라 당시 런던 사교계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던 30대 후반의 유부녀 심프슨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이들 두 사람이 결혼하려 하자 가족들은 물론 볼드윈 수상까지 나서 그녀가 미국인인 데다 행실이 좋지 않다하여 결혼을 포기토록 왕을 설득했다. 그러나 에드워드8세는 같은해 12월 전국라디오 방송을 통해 “나는 사랑하는 여성의 협력 없이는 왕으로서 의무를 다할 수 없다”고 선언, 퇴위를 하고 사랑을 선택한다. 왕위는 재위 11개월만에 동생인 조지6세가 양여받았다. 다음해 에드워드8세는 본남편과 이혼한 심프슨 부인과 결혼했다. 이 사건은 왕관을 건 사랑이라 하여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화젯거리였다. 왕위를 이어받은 조지6세의 딸이 지금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과 지난주 71세를 일기로 사망한 마거릿 공주 자매다. 에드워드8세는 이들 자매의 백부(伯父-큰 아버지)인 것이다. 이러한 마거릿 공주가 현지시간으로 15일 왕족으로서는 처음으로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된다. 마거릿 공주는 왕족으로서는 파격적인 진보적 행동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 50년대에 생각할 수 없는 왕가의 전통을 깨고 평민과의 결혼을 원한다고 공개한 것도 그렇고 이번에 자신의 시신을 화장으로 처리토록 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거릿 공주와 스노든경의 아들 데이비드 린리는 자신이 지난 85년 맞춤식 수제가구회사 린리사를 설립할 때 부모님이 투자하는등 성원해줬다면서 무엇인가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고 지난해 12월 뉴스위크지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그는 또 아버지가 타고난 발명가였기 때문에 자기뿐만 아니라 누이에게도 무엇인가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며 이러한 일들이 가구사업을 하게 된 동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에드워드8세에 이어 마거릿공주의 평범한 평민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국내에서 무슨 게이트나 로비사건때마다 등장하는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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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도 마주쳐야 지면기사
재계 7위 재벌을 자랑하던 국제그룹이 지난 85년 급작스레 공중분해되자 유난히 말들이 많았다. 단순한 시장논리에 따른 해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처음 신발공장으로 출발했던 국제그룹은 70년대 산업지원에 힘입어 종합상사로 탈바꿈하면서 급성장한 그룹이다. 하지만 방만한 경영과 사업확장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공식적인 발표였다. 그런데도 항간에선 경제 외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했다 해서 두고 두고 논란이 되었다. 즉 국제그룹이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실화 정도가 심하지 않았음에도 전격 해체된 것은 당시 전두환 정권에 밉보인 탓이라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바꾸어 말해 다른 재벌들과는 달리 정치자금을 제대로 바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진위야 어떻든 정치권과 재계의 관계를 이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낸 예도 꽤 드물성 싶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이 땅의 웬만한 정치인과 재벌치고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었다. 국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치자금을 매개로 한 정경유착의 썩은 냄새에 질식해오던 터였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수천억원씩의 비자금을 챙길 수 있었던 것도 다 그같은 풍토 덕이었음은 물론이다.수십년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당시 대통령은 “임기중에 절대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9년, 문민정부에 이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지도 5년 째가 되는 지금, 이번엔 경제인들이 공개선언을 하고 나섰다. “정당하지 못한 정치자금 요구에는 결코 응하지 않겠다. 법에 의한 정당한 정치자금만 내겠다”고. 지극히 당연한 말임에도 선언까지 할 정도였다면 아직껏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수가 횡행했다는 얘기로도 이어진다. 대통령 다짐이야 어찌됐든 안타깝게도 그런 게 현실이었던 모양이다.재계가 더 이상 정치권에 불법적인 돈을 뜯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여하튼 그 정도 상황이라면 그 결심이 얼마나 잘 지켜질 수 있을까도 심히 염려스럽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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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 데이 지면기사
“밸런타인 데이를 깔아뭉개 오징어를 만들어버린 설 연휴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설을 1월 또는 3월로 옮겨 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소원이라도 낼지 모르는 요즘 신세대들이다. '신인류(新人類)'라 불리는 그들에게 '밸런타인 데이'란 도대체 어떤 날인가. 재위 41∼54년(AD)의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Claudius)가 병사들의 아내 생각 등 사기(士氣)를 염려해 결혼금지령을 내린다. 그런데 후세의 사교(司敎) 발렌티누스가 금기를 어기고 병사들의 결혼식을 올려주다 체포돼 서기 270년 2월14일 처형된다. 그러니까 2월14일은 성 발렌티누스가 순교한 비극의 날로 그 영어 발음이 '밸런타인'이다. 그래서 마땅히 기일(忌日)로 치는 독일과는 달리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 애인 찾는 날, 사랑 고백하는 날이 된 것은 난센스다. 더구나 그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멕시코 원산의 초콜릿을 사랑의 묘약쯤으로 알고 주고받는 것은 난센스의 제곱이다.'밸런타인 데이'의 원래 모습은 초콜릿이 아닌 카드 주고받기였다. 현존의 최고(最古) 밸런타인 카드는 1415년 런던탑(감옥)에 갇힌 프랑스 시인 샤를 도를레앙이 아내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1843년 처음 나온 크리스마스 카드보다 몇 백년 전이다.18세기엔 '젊은이를 위한 밸런타인 카드 쓰는 법'이라는 책까지 영국서 나왔다. 매년 이날이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에 숱한 편지가 쇄도하는 것도 카드 주고받기 전통 때문이다. 그런 '카드 데이'를 '초콜릿 데이'로 둔갑시킨 것은 일본인들의 약삭빠른 장삿속이었다. 한데 일본 신세대들은 이날은 'VD 데이'라고도 한다. 비니어니얼 디시즈, 즉 성병의 날이다. 콘돔이 이날 그들의 최다 선물이 되는 것도 그런 연유다.우리 YMCA가 89년 밸런타인 데이를 '우정의 날'로 바꿔 정한 것이나 98년 대학생 대중문화감시단이 '캔들 데이' 즉 촛불의 날로 삼자고 한 것은 다 그럴만한 결정이고 제안이었다. 명칭도 내용도 보다 멋지고 건전하게 바꾸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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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지면기사
'설'의 어원은 여러가지다. 먼저 '동국여지승람'에 표기된 '달도일'이다. '달'은 슬프고 애달프다, '도'는 마음을 칼에 찔린 듯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처럼 설은 곧 '서럽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육당(六堂) 최남선이 풀이한 기원설로 각종 세시기(歲時記)가 설을 '신일(愼日)'로 적고 있듯이 사리다, 삼가다(愼)의 '살'에서 왔다는 것이다. 셋째는 나이 '몇 살'의 그 연세(年歲)다. 산스크리트는 연세를 '살'이라 하고 퉁구스어는 '잘'인가 하면 중국 어원사전인 청문엽서(淸文葉書)도 '살'을 세(世) 대(代) 세(歲) 수(壽) 또는 대나무의 마디인 절(節)이라 풀이한다. 넷째는 설다, 낯설다의 그 '설'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즉 새해 첫날은 문화적 정신적인 시간의 충격이 강해 낯선 첫날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아무튼 설은 원정(元正), 상원(上元), 한식, 상사(上巳), 단오, 중구(重九), 동지, 팔관(八關), 추석 등 고려의 10대 명절 중 으뜸이었고 정조(正朝), 한식, 단오, 추석 등 조선시대 4대 명절 중 첫 번째였다. 원정과 정조가 설이다. 상원은 정월 대보름, 상사는 삼짇날(음력 3월3일), 중구는 음력 9월9일, 팔관은 국가적인 제례 의식인 팔관회(八關會)였다. 팥죽 먹는 동지가 작은 설(亞歲)이니까 설은 동지의 형님이다.'음력 1895년 11월17일은 양력 1896년 1월1일'이라는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쓰기 시작한 양력으로부터 설을 되찾은 것은 1985년이었다. 명칭도 구정→민속의 날→조상의 날을 거쳤고 2중과세 설도 쏙 들어간 지 오래다. 하지만 앞으로만 내닫는 숨가쁜 현대인의 가지 끝 삶으로부터 '뒤로 돌아 앞으로' 부모→조부모→조상이라는 밑동과 뿌리로 회귀한다는 뜻, 뜨끈한 핏줄의 구심점으로 빨려든다는 의미가 왠지 갈수록 묽어지고 희미해진다는 느낌이다. 골프다 관광이다 해외로, 어디로 떠나는 숱한 발길들도 그렇고 유희(遊戱)본능만을 확인하며 즐기는 긴 연휴의 동적(動的) 시간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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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파월 지면기사
“그는 대학시절 성적도 나빴고 무엇인가 하려는 의욕도 없었다고 했어요. 이말은 그가 요령을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이란 걸 감안하면 정말 신통치 않은 그저 그런 학생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흑인인 워싱턴 포스트지의 윌리엄즈 기자가 91년 2월 걸프전의 영웅 콜린 파월에 대해 설명한 내용중 일부이다. 그는 같은 흑인으로서 콜린 파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1937년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뉴욕 시립대 학군단(ROTC)장교로 임관한 뒤 63년 베트남전 참전, 74년 주한미군2사단 대대장으로 동두천에서 근무, 91년 걸프전 영웅, 지금은 흑인 최초의 미국무장관인 콜린 파월의 학생시절 모습이다. “ROTC 시절에도 파월은 수업시간이나 그후에도 전혀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어요.” 이는 ROTC 동기인 케네스 몽고메리씨의 회고라고 한다. 윌리엄즈기자는 그래서 콜린 파월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로 성격을 규정했다. 상관보다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고 하극상을 통한 야망을 갖지 않는 것과 같은 군인으로서 요구되는 그런 확실한 인간상이라는 것이다. 윌리엄즈 기자는 워싱턴 포스트에 쓴 파월에 관한 기사에서 '기골과 성실성을 갖추고 정치적 편향성이 없는 노력가'라고 그의 성격을 압축했다. 파월은 그의 회고록에서 73년 봄, 주한미군 근무명령을 받았을 때를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로 기억하고 있다. 아내와 3자녀 등 가족과 떨어져 단신 부임해야하는 한국근무 특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74년 1년을 한국서 보내고 귀국할 때는 '한국서 새로운 군대를 창조해낸 지도자가 됐다'는 긍지와 함께 군경력중 가장 행복한 한해였다고 술회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 콜린 파월. 그는 지금 미 국무장관으로서 한반도 정책과 관련, 북한에 대한 강공의 가운데에 서있다. “북한국민은 악이 아니지만 정부는 악의 축이다. 악의 축이란 것은 군사개입이나 포용정책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북한과의 대화의 문은 계속 열어놓고 있다. 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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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밖의 발언 지면기사
1968년 7월 15일 정부는 하나의 교육혁명을 단행했다. 다음 해 즉 1969학년도부터 중학교 입학을 무시험제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7·15 어린이 해방’이라고까지 불렸던 이 조치의 목적은 무엇보다 중학교 입학을 둘러싼 과열경쟁을 해소하고 교육의 평준화를 이루자는데 있었다. 나름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엔 중학교 입시과열 대신 고등학교 입시 준비교육을 치열하게 하여 중학교 교육을 비정상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여기에 보다 좋은 중학 진학을 위한 초등학생들의 무더기 위장전입으로 수도권 인구집중까지 부추겼다. 마침내 정부는 또 한차례의 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고교평준화제도의 도입이 그것이다. 1973년 2월 28일 정부는 인문계 고등학교 입시를 학군별로 나누어 연합고사에 의한 추첨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974학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고교평준화 역시 중학교 무시험제도와 마찬가지로 과열 입시경쟁과 과외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대신 대학에 목을 매는 입시전쟁은 여전하고, 과외병도 사라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사교육비 부담만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유명 사설학원이 얼마나 몰려있는가에 따라 그 지역 집값이 좌우되는 기현상이 일고, 공교육을 믿지 못한 교육이민마저 극성을 부린다. 보다 못한 듯 최근 어느 부총리 한 분이 고교평준화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나섰다. 그는 “우리 교육의 문제는 지역·학교별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평준화 일변도로 끌어온데 있다”고 혹평했다. 거기까진 그런대로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킬만 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흥분해서였을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식밖의 말까지 쏟아놓고 말았다. “차라리 일제(日帝) 때의 교육이 지금보다 나았다”고. 그렇잖아도 역사왜곡을 하지못해 안달하는 일본이다. 그런 일본의 식민지 시절이 그립다는 듯 그들 교육이 더 좋았다고 했다. 그것도 부총리라는 분이. 일본인들 오죽이나 기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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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상설화 지면기사
신기한 일이다. '보통검사'는 할 수 없는 수사를 특별검사는 신통하게도 척척 해내는 비결은 무엇인가. 옷 로비 사건,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아무개 게이트를 비롯한 무슨무슨 게이트 등 수사가 모두 그렇다. 특검이라고 해서 힌두교의 신 시바(Siva)처럼 눈을 세 개씩이나 가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제대로 검사(檢)도 못하고 잘 살피지도(察) 못하는 '보통검사'의 존재 이유 여하에 상관없이 특별검사뿐 아니라 특별판사, 특별변호사, 특별경찰, 특별국정원 간부, 특별 청와대 비서관, 특별장관까지 필요한 건 아닐까.특검제란 미국 말고 달리 유례를 찾기 어렵다. 1875년 18대 그랜트 대통령 때 '세인트 루이스 위스키 링' 사건 수사를 위해 최초로 임명된 특별검사가 존 핸더슨이었고 1972∼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가 아키발드 콕스, 닉슨 대통령을 사임케 한 검사가 레온 재워스키였다. 그러나 그들은 '독립검사법'에 의해 임명된 검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로는 특검도 아니었다. 그 법은 78년에야 제정됐다. 또한 그들은 별로 성과도 거두지 못했고 제동 없는 독주 등 여러가지 문제점과 부작용을 초래했다. 클린턴의 화이트 워터 스캔들(지퍼 게이트)을 수사한 스타 검사도 '스타'답지 못했다.특검이 아닌 보검(보통검사)도 검사 나름이다. 전후 일본의 아시다(芦田均)내각을 7개월 만에 쓰러뜨린 이른바 '검찰 파쇼'가 아니더라도 록히드 사건의 다나카(田中角榮) 총리를 구속케 한 호리타(堀田力) 검사와 요시나가(吉永祐介) 총장, 가네마루(金丸信)를 잡아넣은 이가라시(五十嵐紀男) 검사도 특검은 아니었다. 94년 검사, 판사, 변호사, 신문기자 등 18명의 '악의 제국' 관련자를 체포한 이탈리아 검찰이나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의 주역 피에트르 검사도 보검이었고 94년 미국 O J 심슨 사건의 서릿발 여검사 마샤 클락도 보통검사였다. '특검의 상설화'라니! 상설화로 인한 사명감 희석으로 특검→보검화→특검→보검화의 악순환을 부를 것이 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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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라는 것 지면기사
입영을 앞둔 가수 유승준씨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영장이 나오면 곧장 군문으로 달려가 병역을 마치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던 그가 국적을 바꿔 병역의무에서 제외됐으니 사회가 분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를 사랑했던 많은 팬들은 깊은 배신감을 느꼈고, 성실하게 병역을 이행하는 다른 젊은이들은 상대적 소외감과 허탈에 젖었다. 특히 그가 자못 성실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해왔던 터라 충격은 더욱 컸다. 그러나 그의 행위에 법적인 하자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 영주권을 소지해왔고, 그의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도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유씨가 미국 시민권을 얻은 게 놀라운 일이었듯 우리 정부가 공항에서 그의 입국을 불허한 것 또한 다소 의외였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그가 예정대로 입국해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소한의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게 하고, 팬들에게도 그의 부도덕성을 추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아무리 사회가 분노했다 해도 입국까지 막은 건 조금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과잉대응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법적인 잘못은 없다고 한다. 출입국 관리사무소는 유씨가 출입국 관리법상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무슨 테러나 범죄용의자도 아닌 유씨를 국익이나 공공안전을 해칠 인물로 보는 것이 얼마나 적절한 시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합법적인 조치였다는 데엔 별다는 이론이 없는 것 같다.법이라는 게 참 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입영을 앞두고 약삭빠르게 미국 시민권을 얻어낸 유씨의 행위도 합법적이고, 적법행위자를 입국 거부한 것 역시 합법적인 조치다. 그러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셈이 된다. 그런데도 이를 보는 마음은 영 개운치를 못하다. 사회의 지탄도 그치질 않는다. ‘법 만능의 시대’라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