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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舊 迎新 지면기사
또 한해가 저문다. 흐르는 세월은 모든 이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못다한 일들이 많고 해낸 일 조차 모자람이 있어서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 이러한 자기 성찰은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준다. 옛날 우리나라의 섣달그믐날은 수세(守歲)라 하여 온집안에 불을 밝혀놓고 조상신의 하강을 기다리는 성스러운 밤이었다. 조상신은 1년 내내 집안사람들의 선악을 지켜봤다가 옥황상제에게 고하고 이날 내려와 자손들을 심판하고 부족함을 깨우치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연말 일주일은 조상의 심판을 기다리며 경건하게 지냈다고 전해진다.우리나라의 조상신이 있다면 올 한해를 어떻게 심판할지, 그리고 무엇을 깨닫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각 언론사가 선정한 10대 뉴스를 보면 한두 가지를 제외하면 모두가 어두운 일 뿐이다. 연초 언론사 세무조사의 공방에 이어 공교육 붕괴로 인한 교육 이민바람, 남북관계의 냉각, DJP공조 파기에서 비롯한 정치권 혼란, 진승현·이용호·정현준·윤태식 게이트, 건강보험통합갈등 등으로 한해를 보냈으니 말이다. 세계는 동시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중국의 WTO(세계 무역기구)가입으로 새로운 경제질서를 모색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국내에서는 이러한 난제들을 두고 국익보다는 내년 대권승리를 위한 정쟁거리로만 삼아 허송세월한 느낌이다. 모두가 정치 경제 사회적 님비현상의 소산이다.이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새로운 시간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반성이 앞서야 한다. 또 자기반성 없이 미래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환자의 증상이 개선되고 병이 나으려면 환자의 정신적 신체적 자연치유력이 우선이다. 의학적 지식이나 의료기술은 이를 돕는 수단'이란 의료의 정설은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이러한 사회병리의 자연 치유력을 강화하려면 이해와 협력, 화해와 단합, 그리고 상호간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이것은 곧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반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식은 국민 모두의 생활신조로 정착돼야 한다.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송구영신(送舊迎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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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꼴 지면기사
부유층 권력층만을 대상으로 물방울 다이아몬드와 수억원대의 현금 등 전대미문의 절도행각을 벌여 화제를 모았던 조세형. 그는 마치 홍길동이라도 된 듯 도둑질한 금품 일부를 고아원이나 거지 등에게 나누어줘 대도(大盜) 의적(義賊)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일부 순진한 민초들은 그의 검거를 되레 애석해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15년 옥살이를 마치고 지난 98년 출소했을 때 또 한번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신앙인으로 거듭나겠다’면서 목회자의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에스원 범죄예방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찌 어찌하여 일본에까지 건너간 그가 대낮에 빈집을 털다가 검거됐다. 영락없는 좀도둑이었다. 지난 1월의 일이다.비슷한 모습을 보인 또 한사람이 있다. 한때 ‘양은이파’를 조직, ‘서방파’ ‘OB파’와 전국 폭력계를 3분하며 기세를 올렸던 조양은. 그 또한 15년 수감생활을 마치고 95년 출소하자 교회를 다니며 간증행사에 참여하는 등 자못 개과천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TV토크쇼에 출연하는가 하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한 영화 ‘보스’를 제작, 직접 주연까지 맡는 등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하지만 출감 1년 5개월만에 억대의 스키 회원권을 갈취한 혐의로 다시 구속된다.그뿐이 아니다. 2년 옥살이 끝에 98년 다시 출감한 그는 모 신학교에 입학했고, 실직 노숙자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에 참가하는 등 바뀐 모습을 보여주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이 역시 또 다른 범죄를 위한 제스처였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필리핀 카지노에서 수십억원대 도박판을 벌이며 거액의 외화를 밀반출했는가 하면, 영화 ‘보스’의 판권을 사실상 갈취한 혐의로 얼마 전 또 다시 구속된 것이다.조세형과 조양은, 두 사람이 그렇게 닮은 꼴일 수가 없다. 과연 두 사람은 새 삶을 찾는데 단순히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새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일까. 진실이야 어디에 있든 그들을 믿었던 수많은 이들에게 너무도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하기야 그같은 이들이 어찌 그 두 사람 뿐이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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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漢子' 지면기사
일본이 매년 연말에 선정하는 '올해의 한자'에 '싸움 전(戰)'자가 뽑혔다. 금년을 상징하는 한자 1자를 전국적으로 모집한 결과 '싸움 전, 두려워할 전, 벌벌 떨 전(戰)'자가 압도적이었다는 것이다. 사상 최대의 9·11 뉴욕 동시 테러로 전세계가 전쟁 분위기로 돌변, 일본 자위대까지 파병한 데다가 국내적으로는 리스토라와 실업, 광우병 등으로 전전긍긍한 1년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리스토라'란 영어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 즉 재구성이고 구조조정이다. 그리고 그 구조조정→감원→실업으로 인해 생긴 말이 '리스토라 이지메'…'감원 학대'다. 하기야 35세 이상의 감원을 앞장서 단행한 소니는 물론 14만 사원 중 무려 10만명을 지난달까지 감원한 일본 최대의 전화통신 회사 NTT의 예만 들더라도 '감원 학대'는 짐작할만한 일이다.스미토모(住友)생명이 공모한 사자성어(四字成語)도 화제가 됐다. 그 우수작이 '만국흉통(萬國胸痛)'이다. 9·11 참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만국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는 것이다. 우편분포(憂便粉包)와 심침퇴사(心沈退社)도 우수작으로 뽑혔다. 탄저균 공포로 인한 '근심스러운 우편 가루'와 구조조정 한파로 인해 '무거운 마음으로 퇴사'를 했다는 뜻이다.일본의 '올해의 한자'와 사자성어는 우리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세계적인 전쟁 공포로 전전긍긍, 벌벌 떨었고 그 여파로 남북관계마저 얼어붙어 아무리 햇볕을 쬐어주려 간청해도 나오지 않았고 녹지 않았다. 36만2천여명이 8천30억원의 실업급여를 받을만큼 숱한 실업자가 쏟아졌고 끼니를 거르는 어린이와 노인만도 10만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게다가 '무슨무슨 게이트' 시리즈의 부정부패와 정치권의 혼미는 국가적인 실조(失調)로까지 번졌다. 그래선가 우리 대학교수들이 며칠 전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에다가 점입가경(漸入佳境),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그럼 금년 1년 성인 한 사람 평균 145병이나 퍼마셨다는 '쐬주'가 모두 화풀이 술이었다는 말인가? 지는 해에게 정중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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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의 비극 지면기사
‘나 때문에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여. 나는 한번도 여러분을 떠난 적이 없어요. 때로는 어렵고 험하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약속은 늘 지켰어요. 나를 멀리하지 마세요.’ 빈한한 농부의 사생아에서 고귀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로 등극 (1945년),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에바 페론. 그녀를 그린 영화 ‘에비타’의 주제곡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첫 몇구절이다. 몇년 전 마돈나가 열연했던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상영돼 숱한 관객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그 에비타의 나라 아르헨티나가 지금 깊은 혼란에 빠져 있다. 대규모 군중시위와 폭동의 와중에서 대통령이 사임하고 새 임시대통령이 취임하긴 했으나, 파탄지경에 이른 경제난과 사회불안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를 않다. 한때는 남미 최대의 부국(富國)으로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을 자랑했다지만, 지금껏 그때의 영광을 기억하는 국민은 극히 드물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다다랐을까. 물론 여기엔 반세기 이상 거듭돼온 갖가지 정치 경제 사회적인 악순환들을 꼽을 수 있으나, 우선 가깝게는 전전 정권인 카를로스 메넴 정부의 실정부터 드는 이들이 많다. 만성적 재정적자에도 불구 국민의 인기만 인식, 지출을 확대하여 국고를 바닥냈다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지난 1999년 집권한 페르난도 델라루아 정부가 뒤늦게 초긴축 정책을 단행했지만, 그 고통은 온통 노동자와 연금생활자 등 빈곤층의 몫일 뿐이었다. 정부 부채가 무려 1천320억달러임에도 불구, 권력을 가진 부유층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기에 여념들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과다한 외채의존과 구조조정 실패, 국민고통을 외면한 정치권의 정쟁몰두 등도 국가 파탄에 한몫들을 톡톡히 했음은 물론이다.만성 재정적자, 인기성 지출 확대, 외채의존, 구조조정 실패, 부유층 재산 빼돌리기, 정쟁몰두 등등…, 개중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요인들도 꽤 있다. 그래서 그만큼 더 경계와 주의각성이 요구된다고도 하겠다. 비록 먼 나라 비극이지만,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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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사랑을··· 지면기사
메리 그리스마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 고요한밤 거룩한밤이 밝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성탄절이다. 이날은 비록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어떤 축복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갖는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가 이땅에 온 가장 큰 목적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대신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목숨을 거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사랑에는 자기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뜻한다. 성탄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더 테레사는 “사랑은 주어야 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고 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테레사 성녀는 그가 캘커타에서 경험한 인간의 참사랑을 어느 책에 소개한 적이 있다. 테레사 성녀가 8명의 자녀와 함께 아사직전에 있는 한 힌두교인의 가정을 방문했다. 이들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쌀을 가지고…. 이들 가족들은 뼈는 앙상하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힘없이 누워 있었다. 쌀을 건네받은 아이들의 엄마는 이를 두 몫으로 나눴다. 그리고 이중 한 몫을 들고 힘없는 다리를 이끌며 나갔다. 후에 테레사 수녀가 이 엄마에게 어디를 다녀왔느냐고 묻자 이엄마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앞집 이슬람교인의 집에 다녀왔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이슬람교인의 집에도 8명의 자녀가 모두 아사 직전의 같은 처지에 있다고 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이 엄마의 말을 들은 8자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기쁨으로 가득차 빛나고 있었다고 테레사 성녀는 전했다.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신문 방송 등 매스컴을 통해 자기몫 챙기기에만 열중하는 군상들을 너무 많이 본다. 한번쯤 주위를 살펴보자. 우리 주위에는 불우한 이웃들이 많다. 내일의 희망을 잃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수많은 소년소녀가장, 소외받은 불우 장애인, 돌보는 이 없는 사회시설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독거 노인들, 또 직장을 구하려다 지쳐 구직을 포기한 젊은 실업자군,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밀려나 실의에 차있는 중장년들도 있다. 모두 우리 사회가 사랑으로 보듬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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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지면기사
성탄절'이 꼭 예수의 생일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모든 성스러운 탄생과 탄일이 '성탄(聖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인(聖人)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 즉 '성탄절'이다. 예수를 포함해 삼성(三聖)이니 사성이니 일컫는 석가모니 부처님 오신 날도 '성탄절'이고 공자 탄일과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생일도 그 신도들에겐 성탄절이다. 불교에선 나반존자(那畔尊者)를 홀로 성자, 즉 '독성(獨聖)'이라 하고 마하살을 '큰 성자'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일은 '독성탄절' '대성탄절'쯤 돼야 할 것이다. 그리스 정교의 바실리우스, 라마교의 달라이라마, 조로아스터교의 조로아스터 생일도 그 신자들에겐 엄숙하고도 경건한 성탄절이다. 중세기의 성인전인 '황금전설'에 나오는 사람이나 옛날 임금들 생일도 성탄절이었다. 고려 강종(康宗)의 광천절(光天節), 선종(宣宗)의 천원절(天元節) 등이 모두 그랬다. '크리스마스'도 꼭 예수 축일만도 아니다. 보통명사 '크리스트(christ)'는 구세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mas는 절(節), 축일이다. 성탄절 날짜도 러시아 정교에서는 12월 25일이 아니라 1월 7일이다. 러시아 전통 달력, 그레고리오력으로는 로즈데스트바(성탄절)가 이날이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데드 마로스(얼음 할아버지)'라 부른다. 그들 10만명의 제복도 빨간 옷이 아닌 파란 옷이고 순록(사슴)이 아닌 여성 파트너 스네구로치키(눈의 요정)를 대동한다. 선물 배달 통로도 굴뚝이 아니다. 영국 등 서방 국가처럼 굴뚝이 크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탄절 행사도 요즘은 아주 다양해졌다. 25일까지 1주일간 백상어 등 4천마리의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일본 도쿄 선샤인국제수족관의 '에즈케' 행사는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다. 예수 그리스도 축일인 크리스마스가 또 내일이다. 급한대로 그의 탄생지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부터 빌어 본다. 그리고 온 세계에 화기와 화평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테러 없고 전쟁 없는 부드러운 세상이 열리도록 '크리스마스 별'이라는 저 하늘의 혜성부터 도와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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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至 한파 지면기사
오늘이 동지(冬至)다. 중부권이 섭씨 영하10도 등 전국이 영하권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밤도 1년중 가장 긴 날이다. 동짓달의 밤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으면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내어 /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 어른님 오시는날 밤에 구뷔 구뷔 펴리라'고 노래 했을까. 동짓달 밤이 길기도 하지만 님 기다리는 그리움의 깊이가 절절하다. 동짓달은 또 추위의 계절이다. 모든 생명들은 숨을 가라앉히고 때를 기다리며 슬픔과 괴로움을 달랜다.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를 통해 사랑의 이별과 슬픔을 표현했고 국내작가 최인호도 뮤지컬 겨울나그네에서 순결한 젊은 남녀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을 그렸다. 그러나 동지는 마냥 슬픔과 괴로움의 시기는 아니다. 동지 다음날부터 낮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듯 희망과 소생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신으로 삼고 있었던 미트라는 어둠을 몰아내는 광명의 신이다. 이 미트라신의 축일이 12월 25일이다. 옛 중국 주(周)나라에서는 동지를 새해의 시작 곧 설로 삼았고 우리나라에서도 다음해가 되는날 즉 아세(亞歲)라 하여 크게 축하하는 풍습이 있었다. 팥죽을 쑤어 국물을 곳곳에 뿌려 악귀를 몰아내며 새해를 맞는 준비를 한 것도 이날이다. 긴 암흑의 밤과 한파는 동지의 계절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작금의 우리 정치 경제 사회가 온갖 의혹사건으로 길고 암울한 밤을 헤매고 있다. 그뿐인가. 청년실업문제를 비롯한 경제적 어려움은 아직도 출구가 보이지 않고 남북 문제는 9·11 미 테러사태이후 더욱 악화돼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아 동지의 한파속에 얼어붙어 있다. 그러나 국민을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이를 대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다. 여야 모두가 내년의 대권승리만을 겨냥하고 이를 둘러싸고 정쟁만 일삼으며 이 기나긴 동지의 계절을 더욱 지루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 실종의 슬픈 동지다.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에서 이제라도 눈을 크게 뜨고 정치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아세의 희망을 가질수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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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럽다 지면기사
‘조선조 11대왕 중종 때 일이다. 권력을 둘러싸고 서로 할퀴고 뜯던 윤임 김안로 남곤 심정 홍경주 등 조정 중신들이 모처럼 뜻을 합쳤다. 그들 공통의 적으로 떠오른 중전 문정왕후를 제거키로 모의한 것이다. 그들은 우선 한 거상(巨商)으로부터 빼앗은 치부책(뇌물장부)을 근거로 중전의 오라비들이 거액을 수뢰했다고 참소한다. 그리고 국문을 통해 역모(逆謀)자금을 마련코자 뇌물을 챙겼음을 억지 토설받으려 한다. 일은 뜻대로 잘 풀려 드디어 중전을 폐출위기로까지 몰고간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거에 틀어지고 말았다. 김안로의 수중에 있던 거상의 치부책이 우여곡절 끝에 중전과 세자를 거쳐 왕에게 바쳐졌고, 왕이 이를 들춰본 결과 중전의 오라비들을 음해한 중신들이 되레 더 엄청난 뇌물을 챙겼음이 드러난 것이다.’ 요즘 한창 시청자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모TV 주말사극에서 한달여전 다뤄진 내용이다. 사실 여부야 어떻든 손에 땀을 쥐게하는 긴박감과 예상밖 대역전으로 많은 시청자들을 사로 잡았다.뇌물만큼 달콤한 유혹도 없다. 받는 사람은 힘 안들이고 치부할 수 있어 좋고, 주는 이 역시 뇌물 한 두번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고 소위 실력자 권력자 주변엔 항상 뇌물이 꾀이게 마련이다. 물론 뇌물이 사회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부패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첩경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뇌물이 통하지 않는 사회, 깨끗한 사회를 추구하고 표방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하지만 좀처럼 근절하기 어려운 것 또한 뇌물임은 새삼 거론할 나위도 없다.나라가 온통 무슨 무슨 게이트, 무슨 무슨 리스트, 설(說) 등으로 시끌벅적하다. 곳곳에서 돈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하도 여러가지가 얽히고 설키다 보니 조선조 중종 때의 ‘치부책 소동’ 따윈 아예 명함도 못내밀듯 싶다. 물론 아직은 의혹들일 뿐이라지만, 사회가 정작 맑고 깨끗했다면 이런 의혹들인들 감히 발을 붙일 수 있었을까. 그간 유난히도 드높였던 ‘개혁’ 소리가 차라리 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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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감 지면기사
도무지 대통령 감은 안돼 보이는 별의별 대통령이 다 있다. 라이베리아의 '서전트 프레지던트(육군 상사 대통령)'인 새뮤얼 캐년 도(Doe)부터가 그렇다. 미국 노예 출신인 일개 육군 상사가 검은 선글라스의 위풍당당한 얼굴로 80년 4월12일 쿠데타를 일으켜 대권을 거머쥔 것은 28세 때였다. '대통령'은 커녕 '중통령' '소통령'급도 안될 그는 톨베르트 대통령 등 숱한 인재를 무차별 학살, 라이베리아 권력의 뜨락과 뒤꼍을 온통 피바다로 만들었다. 더욱 기가 막힐 일은 그가 서울에 왔을 때 어느 명문 대학이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까지 주었다는 사실이다. '미친 개' '현대판 술탄' '아랍의 이단자'로 불리는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 원수가 69년 쿠데타로 대권을 잡았을 때도 27세였고 5·16때의 JP와 같은 육군 중령이었다. 90년 3월21일 취임한 나미비아 초대 대통령 삼 누조마(Nujoma)도 철도 노동자에다 게릴라전 투사 출신이었다.아이티 30년 독재세습의 뒤발리에 부자는 어떤가. '20세 이하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헌법을 뜯어고쳐 71년 19세의 세계 최연소 대통령이 된 장본인이 뒤발리에 2세인 베이비 독이었다. '소통령'급도 아닌 '최소통령'급쯤 될 그의 뒤를 이어 90년 취임한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도 37세였고 85년 취임한 알란 가르시아 페루대통령도 36세였다. 93년 대통령이 된 러시아 땅 칼미크 공화국의 일륨지노프는 30세에 불과했다. 남미쪽에도 괴짜 대통령은 쌨다. 잠수함 조타, 수상스키, 모터사이클 경주, 스카이다이빙, 가라데 등 만능선수로 89년 브라질 국민 앞에 혜성(?)처럼 나타난 페르난도 콜로르 대통령(39)은 어떻고 부부싸움 끝에 가출해 친구 집을 전전, 식객이 된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어떤가.그들에 비해 우리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분들은 수준도 차원도 다르다. 이번도 그렇다. 그러나 왠지 좀 불안하고 뭔지 좀 안타깝다. 아무리 뜯어봐도 '대통령' 감에는 못미친다 싶은 '중통령' '소통령'급이 아닌가 싶은 분들도 나서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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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不去 지면기사
얼핏 보면 조선시대 만큼 이혼이 쉬웠던 때도 또 없었을 성 싶다. 우선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만 보아도 그렇다. 이것은 처(妻)에게 일곱가지 잘못이 있을 때 쫓아낼 수 있다는 것으로, 그 내용을 열거하면 이렇다. 즉 처가 시부모를 잘 모시지 못하거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일, 음란 투기 나쁜병이 있는 일, 말이 많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 등 일곱가지다. 별 희안한 논리가 다 들어 있지만, 이쯤되고 보면 남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처를 내칠 수 있었을 법 하다.하지만 실제로는 이혼이 거의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른바 삼불거(三不去)라 하여 처가 쫓겨나면 돌아갈 곳이 없다거나, 부모의 3년상을 같이 치렀다거나, 가난할 때 시집와 뒤에 부유하게 되었다거나 할 때는 비록 칠거를 범했어도 처를 내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 조선조 말 고종 때에 이르러서는 삼불거 외에, 자식이 있으면 무조건 이혼할 수 없게 하여 사불거(四不去)가 됐다고도 한다.물론 이같은 일련의 조치가 여성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되레 여성들을 한없이 옥죄기 위한 정절이데올로기 때문이긴 했다. 다시 말해 여성의 정절을 지키게 하자니 재혼이 금지됐고, 또 재혼을 못하는 사회에서 이혼녀가 많아진다는 것은 곧 심각한 사회문제를 뜻했던 것이다. 당시 여성들이 가사(家事) 외엔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상황에서 이혼 양산은 곧 여성실업자 양산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그 덕분에 하루 아침에 가정이 깨지는 일은 상당히 막을 수 있지 않았나 싶긴 하다.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이혼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상위권인 8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작년 한국의 이혼율은 인구 1천명당 2.5쌍으로 이탈리아 보다 무려 다섯배나 높았다고 한다.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빛을 잃어서인지, 아니면 이제 우리나라도 먹고 살 만해졌고 남녀평등이 이뤄진 탓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자랑스러운 수치는 아니다. 이마저도 사회발전의 한 단면이라고 강변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