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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陳承鉉 게이트 지면기사

    호랑이가 여우를 잡아 먹으려 하자 여우가 말했다. “천제(天帝)께서 여우를 짐승들의 왕으로 정했으니 나를 잡아 먹으면 천제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내말이 거짓이라면 내뒤를 한번 따라 와 봐라. 모두 나를 보고 도망칠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를 따라 가 봤더니 과연 모든 짐승들이 겁에 질려 꽁무니를 빼는 것이었다. 그러자 호랑이는 “과연 네말이 맞구나” 하면서 여우를 놓아 주었다. 그런데 짐승들이 두려워 한 것은 정작 여우가 아니라 그 뒤를 따라오는 호랑이라는 것을 호랑이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이러한 우화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선왕이 북방에 있는 나라들이 모두 초의 재상 소혜휼을 두려워 한다고 하자 시중을 들던 강을(江乙)이라는 사람이 선왕에게 들려준 얘기다. 북방나라들이 두려워 한 것은 소혜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초나라와 선왕의 강한 군대 때문이라는 얘기를 비유해서 한 말이다.우리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여우의 꾀에 속아 일을 그르치는 일이 너무 잦다. 고위 고관들의 부인이나 비서, 그 주위인물들이 마치 자신들이 고위 고관인양 행세를 해도 통하는 사회다. 역대 정권마다 자주 일어났던 과거의 일들을 꺼낼 필요도 없이 최근의 진승현(陳承鉉)게이트의 정치 브로커가 그렇고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이나 전 아태재단 간부의 행태가 그렇다. 특히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 돈심부름을 했다는 최택곤씨는 여권실세들을 줄줄이 꿰는 화술을 바탕으로 막대한 로비자금을 받아 뿌리고 다녔는데도 처음 조사에서 이를 캐내지 못했다니 더욱 혼란스럽다.이와 관련 여야 모두가 철저한 수사와 진 리스트의 공개를 촉구하면서 정보채널을 총동원, 돈 받은 정치인의 명단 파악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권이 주장하는 리스트의 공개보다는 사태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다. 중국 촉나라의 옛군주였던 유장(劉章)이 우유부단한 나머지 잘못한 사람에 대해 이를 따지지 않고 어물쩍하게 정치를 하다 신하와 국민들 모두가 타락, 나라를 잃은 중국고사도 있다. 검찰의 여야, 지위고하 없는 철저한 수사와

  • ABM 파기 지면기사

    예수는 피로 약속했고 보혈(寶血)로 언약했다.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은 기독교 신자가 될 수 없다. 옛 중국인들도 약속을 하고 조약을 맺을 때 피를 마셨다. '계구마지혈(鷄狗馬之血)'이라고 해서 천자(天子)는 소나 말의 피를 마시며 조약을 엄수할 것을 맹세했고 제후(諸侯)는 개나 돼지 피를 마시며 언약을 했는가 하면 대부(大夫) 이하는 닭의 피를 들이켜며 맹약을 했다. 그 피의 총칭이 '사기(史記)'에 나온다. 또 피를 마시는 대신 혈판(血判)을 찍어 굳게 약속하기도 했다.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써 손도장을 찍는 게 혈판을 찍는 것이다. 그런 약속을 '피의 맹세' 즉 '혈맹(血盟)'이라고 한다.선인들이 그렇게 피의 약속을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약속이란 그만큼 중요하고 서약과 맹세란 그만큼 어려우며 위약과 파약은 그만큼 무섭기 때문이다. 흔히 장부의 한 마디를 '중천금'이라고 했다. 돈으로 치면 천금처럼 무겁다는 뜻이다. 천금이 얼마인가. 엽전 천냥이다. '일확천금'이라고 할 때의 그 천금이다. 또 사나이의 한 마디를 시효(時效)로 치면 '천년불개(千年不改)'라고 했다. 천년 동안 고칠 수 없는 게 장부의 한 마디요 약속이라는 뜻이다. 더구나 한 단체와 단체의 약속, 한 나라와 나라의 약속이란 말할 것도 없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탄도탄 요격 미사일(anti-ballistic missile) 협정이란 어떤 약속인가. 그것은 군비 확장 억제를 위한 세계 양극(兩極) 세력, 지구의 절반씩을 맡은 두 대표 국가 간의 막대하고도 막중한 약속이었다.그런데 '천년불개'의 '중천금'을 넘어 '만년불개(萬年不改)'의 '중만금(重萬金)'이 돼야 할 그 거창한 약속을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즉각 “그것은 실수”라고 단언했다. “황당한 결정”이라고 맹공을 퍼부은 '뉴욕타임스'의 사설을 비롯한 미국 지식층의 반대는 더 거세다. 부시측의 섣부른 약속 파기가 무모한 군비 경쟁을 촉발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 존경하는 직업 지면기사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그는 학창시절 백악관에서 케네디의 설득력있는 연설에 감동, 케네디를 존경하게 됐다. 그는 소탈하고 아무에게나 말을 거는 서민성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고 집회 참가자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판에 박은 듯한 답변이 아니라 상대방이 납득할 때까지 대답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것이 그가 대통령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일본의 고이즈미총리가 존경했던 사람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경이었다. 그러나 총리가 된 후 외교에 있어서 처칠과는 대조적으로 낙제점이란 평가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총리라는 자리까지 올라 성공을 거뒀다.사람은 젊은 시절 특히 학창시절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 누구이고 그 인물에 얼마만큼 심취했는지에 따라 인생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교육학적으로도 EQ(감성지수)를 계발하기 위해 반드시 존경하는 인물을 설정토록 유도한다. EQ가 높은 사람은 존경하는 사람을 설정해 놓고 자기도 그런 인물이 되도록 노력하기 때문이다.'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국의 정치인 필립 체스터필드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존경하는 인물의 행동과 생각, 말씨까지 관찰하고 복제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노력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그를 닮아 간다는게 그의 견해다. 대학 수능 논술고사나 회사신입사원 채용면접에서 응시자에게 존경하는 인물에 관한 장단점, 그 이유 등을 묻는 것도 이를 통해 응시자의 사상, 인생관, 가치관, 생활신조 등을 알아보기 위함이다.최근 인하대학교 김흥규교수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존경하는 직업 1위가 환경미화원, 2위 농어민, 3위 소방관이었다고 한다. 얼핏 믿겨 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꼴찌인 43위가 국회의원이라고 하니 쉽게 수긍이 간다. 대학생들은 국가 사회적 공헌도와 청렴도를 가장 우선해서 높은 점수를 줬기 때문이다. 그 직업을 택하는 것과는 별개라 하더라도 대학생들의 의식이 이처럼 살아 있는 한 우리 사회

  • 한심한 기록관리 지면기사

    옛 섬마을이나 어촌엔 기일(忌日)이 같은 아버지 남편 아들 등을 둔 가정이 적지 않았다. 남정네들이 몇척의 배에 나눠타고 고기잡이에 나섰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한꺼번에 수장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일이 반드시 정확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비록 같이 풍랑을 만났다 해도 더러는 며칠씩 물위를 떠다니다 숨을 거둔 경우도 있겠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그런 일까지 일일이 따지는 유족은 드물었다. 어느 날 풍랑이 심하게 일었으면 으레 그날을 어림잡아 기일로 삼는 게 고작이었다.그들은 그래도 거의 비슷한 시기를 기일로 잡을 수는 있었다. 반면 많은 남북한 이산가족들은 부모 형제의 기일을 비슷하게 잡을 수 조차 없다. 기껏해야 고인의 생일 등을 임시 기일로 삼을 수 있을 정도다. 반세기 넘게 헤어져 살다보니 생사여부를 확인할 길 없어, 나이가 많으면 고인이 된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제사를 지낼 뿐이다.그런데 정확한 기일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엉뚱한 날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있다. 일제강점기하 징용 징병자 가족 상당수가 그랬다. 일본 정부로부터 우리 정부가 넘겨받은 징용 징병자 37만여명의 기록이 유족 등에게 전혀 통보되지 않은 채 길게는 30년 넘게 기록보존소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1년부터 93년까지 네차례에 걸쳐 넘겨받은 문서가 분류조차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특히 71년 넘겨받은 ‘군인 군속 전사자 명부’에는 2만여명의 이름과 본적지 주소 사망일시와 장소까지 적혀 있다고 한다. 정부의 기록보존과 관리 수준을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기록보존 담당자들은 “창씨개명된 성이 적혀 있고 알아보기 힘든 글씨가 많았다” “본적지와 주소가 현재와 달라 일일이 연락하는 게 불가능했다”고 변명한다. 일본어를 아는 이들이 그렇게도 없었는지, 또 옛 본적지 주소 추적이 그토록 어려웠는지 모르겠지만, 누대의 정부가 손도 대지 않은 채 묵혀온 이유치곤 꽤나 궁핍해 보인다. 수없이 강조해온 정보화사회와는 너무도 걸맞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 폐암 지면기사

    심한 기침과 함께 새빨간 피를 토하는 폐병이야말로 '악질적(惡質的)인 악질(惡疾)' 중 하나다. 그 못된 질병은 숱한 천재의 목숨부터 앗아갔다.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와 체호프의 목숨을 각각 60세와 44세에 앗아갔고 괴테로부터 그의 절친한 친구 실러를 46세에 뺏아갔다.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58세에,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바르토크도 64세에 폐병으로 죽었다. 화가 반 고흐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을 각각 37세와 39세로 요절케 한 악질도 폐병이었고 천재 시인 이상(李箱)을 27세의 피 뜨거운 나이에 저승으로 데려간 것도 폐병이었다. 종교사상가 함석헌(咸錫憲)선생이 크게 영향을 받은 일본의 종교가 우치무라(內村鑑三)의 69세 인생을 마감케 한 것 또한 폐병이었다. 피아니스트며 작곡가인 리스트가 폐병으로 75세까지 산 것은 장수한 셈이었다. 일본 작가 이노우에(井上靖)처럼 여러 가지 노인성 질환을 정리해 죽음으로 안내하는 대표적인 질환 역시 폐병이다.'케 세라 세라'의 미국 작곡가 리빙스턴도 지난 10월 17일 LA의 한 병원에서 폐병으로 일생을 마감했다.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58)을 지난달 30일 명부(冥府)로 끌고 간 것도 폐암이라고 했다. 폐암으로 죽어간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역시 영화 '왕과 나' '십계(十戒)' 등의 까까머리 명배우 율 브리너일지 모른다. 그가 85년 10월 10일 뉴욕 코넬 메디컬센터에서 65세의 삶을 끝내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줄담배였다. 한데 어이없는 것은 75년 미국의 노벨 의학상 수상자 하워드 테민박사가 94년 2월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바로 최고의 암 연구가이자 철저한 금연운동가였기 때문이다. 한 때 후진국 병으로 여겼던 폐병이 담배 탓만은 아닌 것 같다.폐암이 위암을 제치고 한국인이 가장 잘 걸리는 암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한국인에게만 있다는 이른바 'K 결핵균' 때문인가 또 다른 이유 탓인가. 옛날에야 영양실조가 큰 원인이었다지만 요즘이야 아무래도 '환경 실조', 즉 환경 오염 때문일 것이다. 거국적인 방지책이 아쉽다.

  • 용산 미군기지 지면기사

    예부터 군사적 요충지로 알려진 서울의 용산지역은 나라가 외세에 짓밟힐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외국군의 주요한 주둔지가 되곤 했다. 700여년 전 고려를 침략한 몽고군은 이곳을 병참기지로 사용했으며, 임진왜란 때 평양전투에서 쫓겨온 왜군 병력도 이 일대에 주둔한 바 있다.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병력이 주둔했었고, 1894년 청일전쟁이 터졌을 때는 일본군이 머물렀었다. 또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은 이 일대에 수만명이 주둔할 수있는 병영을 세우기도 했다. 그후 일본은 여기에 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관저, 20사단 사령부를 세웠으며 약 2만명의 병력을 계속 주둔시켰다.그러나 이 지역의 기구한 운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그해 9월 미군이 진주하면서 이곳의 병영 일체를 접수했던 것이다. 미군은 6·25 이전 잠시 철수했으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재차 들어왔다가 휴전협정이 체결된 후 용산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고, 지난 1978년엔 이곳에 한미연합사령부를 세웠다.수도 한복판에 100만평이 넘는 외국군 기지가 있다는 것은 결코 상쾌한 일일 수없다. 더욱이 이로 인해 서울의 균형발전이 가로막힌다면 더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우리 정부와 국민은 줄기차게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을 촉구해왔다. 마지못해 미군측도 10년 전 이전을 약속, 한·미 양국이 합의각서까지 교환했다. 하지만 미군은 좀처럼 이 기지를 넘겨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약 100억달러로 추정되는 이전비용을 꼬투리 잡아 차일 피일 미루더니, 급기야 이곳 일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미군 장기주거용)를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연차적으로 10단계에 걸쳐 8층짜리 20개동 1천66가구분을 건설한다니, 완공까지 도대체 몇년이 걸릴지도 가늠이 안된다. 아무리 선의로 해석한다 해도 이는 분명 ‘이전 백지화’에 다름 아니다.어떤 생각에서 그처럼 엉뚱한 계획을 세웠는지 모르나, 우리 정부도 이번만큼은 반드시 단호한 조치를 내놓아야 겠다. 자칫 이 일이 반미감정의 기폭제로 작용할까 두렵다.

  • 왕릉 도굴 지면기사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한시간반쯤 걸리는 남쪽에 룩소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기원전 3천∼4천년전 왕족들의 묘 수백기가 즐비하다. 이근처 크루나라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은 또 그 아들에게 분묘 도굴 수법을 전수해가며 대대로 왕묘의 부장품을 훔쳐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이러한 사실은 1881년 한 미국인이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구입한 파피루스지(紙)를 본 고고학자들이 이 종이가 고대 이집트왕의 묘에서 나온 부장품임을 밝혀냄으로써 알려졌다. 당시 조사결과 3천년전에 왕들의 미라를 도굴꾼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여러곳에 흩어져 있는 40구의 미라를 옮겨 엄청난 부장품과 함께 비밀의 묘지를 조성했는데 한 도굴꾼이 이를 발견, 자손 대대로 도굴 수법을 가르치며 이곳의 부장품을 팔아 생활해왔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지금 이곳은 이집트 당국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최근 도내 고양시에 있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능이 도굴 됐다고 한다. 공양왕은 이성계 장군이 위화도 회군에 성공한후 우왕을 처형하고 그 아들 창왕을 폐한 다음 내세운 왕(王)씨 가문의 정창군이다. 이성계와는 사돈지간이다. 그는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며 생활을 즐기다 끝까지 왕위에 오르려 하지 않았으나 이성계의 위세에 눌려 어쩔 수없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후에도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내던 그는 목숨이라도 건지고자 이성계와 동맹을 맺기로 하고 이성계의 집으로 행차에 나선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왕이 정신을 잃어 임금의 도리를 않고 있으니 폐위 시켜야 한다'는 왕 대비의 교서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 난다. 1392년의 일이다.7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능이 도굴됨으로써 후세의 인간들에 의해 또 한번 수모를 겪은 셈이다. 유물은 당시 역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유물은 훼손돼선 안되고 도난 도굴은 더더욱이 안된다. 경기도는 서울과 인접한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고려 조선조의 왕릉이 많은 곳이다. 고분과 문화재 도굴에 대한 근본 대책은 없는 것일까.

  • 망년회 지면기사

    망년회의 '망년(忘年)'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나이 또는 나이 차이를 잊는 것과 그해의 괴로움을 잊는 것이다. 이 말이 쓰인 지는 오래다. 양귀비 시절의 당나라 시인 원결(元結)의 시와 그의 '원차산집(元次山集)'에도 나오고 그 이전인 '진서(陳書)'나 '한서(漢書)'에도 보인다. 따라서 망년 모임, 망년 연회, 망년 모꼬지를 뜻하는 '망년회(忘年會)'라는 것이 일본 풍습이라는 주장은 속단일지 모른다. 성격은 다르지만 자고로 우리 나라와 중국에도 비슷한 세모 모임, 연말 회합은 있어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보넨' 또는 '도시와스레'라 하여 '忘年'이라는 말도 쓰고 우리는 안쓰는 '年忘'이라는 말도 쓴다.한데 요즘의 '망년회' 풍습만은 일본식 그대로다. “잇키노미(一氣飮)!” “완샷(원샷)!”이라 외쳐가며 지독한 폭탄주를 단숨에 들이켜다가 까맣게 필름이 끊긴 채 큰 대(大)자로 아무 데나 쓰러져버리는 모습부터가 그렇다. 그렇게 깡그리 잊어버리는 '망년회'가 아니라 좋은 기억만은 살리는 '억년회(憶年會)'도 돼야 할 게 아닌가. 취기 끝에 묵은 감정을 쑤석거려 멱살을 잡거나 드잡이를 하는 액션도 그렇고 중년 이상 모임의 단골 메뉴인 속칭 '와이당 망년회'도 그렇다. '와이당'이란 '와이담(Y談)'이 아닌 일본말 '와이단(猥談)' 그대로다. 외설스런 이야기, 음담패설이란 뜻이다. 2라운드 또는 3라운드 끝에 반드시 들러야 하는 노래방 풍습도 일본식이다. 이른바 '가라오케 폴립' 즉 '성대 폴립(結節)'도 망년회 끝에 다발(多發)한다. 담배 연기 자옥하고 실내 공기 탁하고 건조한 밀실에서 목청껏 노래를 뽑다 보면 목구멍의 점막이 마르고 파손되면서 발생하는 인후암이 그것이다.더욱 피해야 할 것은 '미운 사람 욕하기' 등 114.7㏈ 세계 기록 깨기 소리 지르기 망년회나 '견공(犬公) 망년회' 등 탈선, 호화사치 망년회다. '망년회'가 아닌 망령부리는 '망령회'가 돼서도 곤란하다. 명칭 역시 '망년회' 말고 송년회, 연말회, 세모회, 세말회 등으로 바꾸는 게 좋을 듯싶다.

  • 초록 악마 지면기사

     1981년 2월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노팅햄 포레스트와 나쇼날 팀간에 유럽 남미간 최강 축구클럽을 가리는 도요타컵 결정전이 열렸다. 전반전이 끝난후 대기실로 들어온 양팀선수들의 불평이 쏟아졌다. “이봐, 이게 정말 국립경기장이야?” “이건 연습용 구장만도 못해.” 당시 일본 국립경기장측은 구장에 깔린 한국잔디가 겨울에 누렇게 시든 탓으로 볼품에 신경을 쓴 나머지 비료에 녹색의 도료를 섞어 그라운드에 착색을 했던 터였다. 당시의 관리인인 스즈키 노리요시(鈴木憲美)는 이같은 선수들의 불평을 들으며 부끄러워 견딜수 없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그후부터 4계절 푸른 한지형(寒地形) 서양잔디구장을 갖추기 위한 초종(草種)선택, 낯선기후와 토양에 맞는 관리방법 등 일본의 노력은 20여년동안 계속됐다. 2002 한일 공동개최 월드컵 축구경기장에는 잔디 그라운드아래에 온돌 난방시스템도 깔았다. 겨울밤에 항상 영상 3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래야만 잔디뿌리가 힘이 생겨 봄에 싹이 튼다고 한다. 이처럼 한지형 서양잔디는 우리나라와 일본 토양에서는 가꾸기가 까다롭고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 잔디사들은 이래서 잔디를 초록의 악마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일본은 2002년 월드컵구장의 잔디관리를 스타디움건설에 못지 않게 중요하게 인식,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 잔디에 관한 이런 얘기가 있다. 한 미국인이 영국의 아름다운 잔디구장을 보고 “어떻게 하면 이처럼 4계절 푸른 아름다운 잔디를 가꿀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이 영국인은 “그저 매일 물을 뿌려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미국인이 “그럼 잔디관리는 아주 간단하군요” 하고 말하자 영국인의 말 “하지만 100년전 부터랍니다.” 잔디관리는 이처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일화다. 월드컵 축구 조 추첨이후 최근 각 TV화면에는 국내 10개경기장의 초록 잔디모습이 한겨울속에서도 눈에 부실만큼 아름답게 비춰지는 일이 잦다. 월드컵 경기장공사를 하면서 대부분 지난 봄부터 서둘러 식재한 한지형 서양 잔디들이 이 겨울을 견뎌내고 내년의 월드컵본선과 그 후에도 잘 유지될수 있

  • 돈더미와 바구니 지면기사

    ‘한 할머니가 바구니에 돈을 가득 담고 장을 보러 가던 길이었다. 도중에 길가에 앉아 잠시 쉬고 다시 일어나려는데 옆에 두었던 바구니가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돈은 한 옆에 수북이 쌓여 있는데 바구니만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국 독일에서 겪었던 극심한 인플레이션 상황을 전한 일화다. 물가가 터무니없이 올라 휴지조각처럼 돼버린 돈더미 보다 실물인 바구니가 훨씬 소중히 여겨졌던 실상을 자못 현실감 있게 전해준다. 당시 독일은 전후 배상문제 등이 얽혀 마르크화를 남발한 결과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극심했으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중에도 음식값이 계속 치솟아 식사를 다 마쳤을 땐 이미 두배 세배 값이 올라 있더라는 이야기도 있다.한 시중은행이 지난 11월 한달간 동전교환에 수수료를 물리다가 고객들 반발이 심해지자 이달 1일부터 수수료 징수를 백지화했다고 한다. 다소 어처구니없어 보이지만 갈수록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니 저액권인 동전이 푸대접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1원짜리 5원짜리 동전이 사라진 건 옛날이고, 50원짜리 100원짜리 심지어 500원짜리마저 천덕꾸러기 신세이긴 매한가지다. 동전만으론 무엇하나 살 물건도 별로 없고, 기껏해야 공중전화를 걸거나 시내버스를 탈 때 등에나 쓰임새가 있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그런데 이젠 홀대받는 게 동전만이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한 버스회사가 승객들로부터 받은 1천원권 지폐 상당액을 들고 거래은행을 찾았다가 망신만 당했다고 한다. 취급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수납을 거부당했던 것이다. 마침내 1천원권 지폐마저 천덕꾸러기가 되었음을 일깨워준다. 하기야 요즘은 1만원권 지폐가 잔돈 취급을 받고, 10만원권 지폐를 발행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긴 하다. 굳이 은행만 탓할 처지도 아닐듯 싶다.그나 저나 이렇게 자꾸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면 우리도 ‘돈더미 보다 바구니를 먼저 챙기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지레 겁이 난다. 지나친 노파심일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