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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폐지론 지면기사
'사형'하면 아랍권과 중국이 난형난제(難兄難弟)다. 정부와 합세, 남편을 죽여 불사른 이란 여인이 흙구덩이에 묻힌 채 돌에 맞아 죽는 석살형(石殺刑)을 당한 것이 바로 지난 7월12일이었다. 그곳의 한 포르노 여배우도 간통 혐의로 지난 5월20일 석살형을 당했다. 간통 등 부정행위의 경우 여자는 겨드랑이까지, 남자는 목까지 땅에 묻힌 채 돌에 맞아 죽는 이슬람 율법에 의해서다. 지난 8월 20일 요우누스라는 파키스탄 의사도 함부로 예언자 행세를 해 마호메트를 모독한 죄로 교수형 선고를 받았다. 야한 옷이나 포르노 비디오를 팔아도 이슬람권에선 사형이다. 더욱 비정한 것은 18세 이하 미성년까지도 사형이 집행되는 나라가 이란 등 7개국이다. 중국 역시 횡령, 탈세, 납세 영수증 위조와 뇌물 수수, 음란물 출판, 지적재산권 침해, 홈뱅킹 범죄, 유해 음식 판매까지도 사형이다. 마약 소지나 거래범도 사우디가 참수형인데 비해 중국은 뒤통수 총살형인 점이 다를 뿐이다.범죄와의 '무차(無次) 전쟁' 중인 중국은 지난 4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무려 1천명이나 처형했다. 매일같이 33명 이상씩을 처형한 셈이다. 암흑가를 타파, 사회악을 제거한다(打黑除惡)는 목표는 특히 마약과 조직폭력에 가혹해 모조리 즉석 공개 총살형이다. 문혁(文革) 때는 유가족에게 실탄 값 지불을 명령할 정도였다지만 공개처형만도 매년 수천명에 이른다. 지난 6월 21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제1회 '세계사형제도폐지촉구대회'에 참가한 110국 정도가 사형을 반대하지만 더 많은 나라는 아직도 그렇지 않다. 미국도 38개 주가 실행 중이고 조지 부시 대통령도 텍사스주 지사 때인 6년 동안 152명의 사형 명령서에 서명했다.'살인+살인'의 중복 살인으로 범죄 예방에도 효과가 없다는 쪽과 범죄자 인권보다 피해자 인권이 먼저다, '사형'이라는 경종은 필요하다는 쪽의 찬반 양론은 팽팽하다. 하기야 법도 선고 절차도 없는 '무단 대형 사형집행장'인 전쟁터는 뭐란 말인가. 국회에 상정됐다는 '사형폐지안'이 왠지 한가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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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평등 지면기사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 상원의원 선거 때 일이다. 당시 주지사 게리(E Gerry)는 자신의 소속 정당이 불리해 보이자, 억지로 선거구를 뜯어 고쳐 간신히 선거에 승리한다. 그런데 그때 고쳐진 선거구가 마치 샐러맨더(salamander:도마뱀)처럼 기묘한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반대당에서 게리의 이름을 붙여 게리맨더(gerrymander)라 야유했고, 그때부터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부자연스럽게 정해지는 선거구를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 부르게 됐다. 딱히 게리맨더는 아니지만, 민주주의 산실이라는 영국서도 한때는 그에 못지않게 불합리한 선거구로 나뉘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유권자 50명도 채 안되는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2명을 선출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그런가 하면 인구 300만의 남부 10개주가 의회에서 236석이나 차지했던 반면, 인구 400만인 북부 6개주에 할당된 건 68석에 불과하기도 했다. 19세기 초의 일로서 급속한 산업화로 대규모 인구이동과 사회구조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옛날 인구기준에 따라 나눴던 선거구를 전혀 손질하려 하지 않았던 탓이다. 영국에서의 선거구 평등은 그 후로도 수십년이 지난 1885년에야 비로소 실현된다. 헌법재판소가 최근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 상·하한선 비율에 대해 ‘헌법 불합치’결정을 내렸다. 선거구중 인구가 가장 많은 곳과 가장 적은 곳의 편차가 3.65대 1에 이르는 등 국민 한 사람의 투표가치가 크게 달라 평등선거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법 개정시기를 2003년 말까지로 유예하는 한편, 인구 상·하한선 기준을 3대 1로 정하고 장기적으론 2대 1이 바람직하다는 권고조항도 내놓았다. 투표가치가 무려 4배 가까이 차이난다면 19세기 초 영국을 흉볼 처지도 아닌듯 싶다. 영국은 이를 고치는데 수십년이 걸렸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의 정치인들은 그들보다 훨씬 현명할테니 조만간 합리적 조정안이 나오리라 믿는다. 물론 난제가 한 둘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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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 테러 지면기사
우편물에 의한 백색가루 공포가 지구촌을 엄습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백악관 국무부 의회 대법원 군의학 연구소 등에 탄저균이 배달돼 감염자가 13명에 이르렀고 이중 3명이 숨졌다. 다행히 탄저균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국내에서도 한국화이자 직원 16명이 배달된 백색가루에 노출됐다 해서 한때 격리되는 등 전 지구촌에 그 파장이 심각하다.우편물에 의한 테러라면 미국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1978년의 유나버머(Unabomber)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 사건을 잊을 수 없다. 그는 17년동안이나 과학기술자들에게 사제폭탄물을 담은 우편물을 보내 3명을 숨지게 하고 29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주로 대학이나 항공사에 사제 폭탄을 보내 유나버머란 명칭이 붙었다. 검거된 후 그의 말이 어처구니 없다. “인간의 자유를 빼앗고 노예로 만드는 현대기술문명과 산업기술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미국은 우편물의 나라다. 출산 생일 등 가족 기념일에서부터 행정업무까지 우편물이 모든 의사표시의 수단이다 심지어 운전면허증 발급이나 환자의 입원 수술날짜까지도 모두가 우편으로 알린다. 연간 우편물 배달량이 2천여억통, 한국의 15억통에 비하면 무려 133배에 이른다. 국민 1인당 배달량을 보면 미국이 연간 748통, 한국의 37.5통에 비하면 20배가 넘는다. 대륙의 동서부간 시차가 3시간이나 될만큼 땅이 넓어 독립이전(1775년)부터 우편물이 대륙통일의 밑거름이 됐다. FEDEX나 DHL같은 세계적인 민간우편 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그래서 우편물이 없는 미국인의 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고 이를 이용한 테러는 미국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폭탄물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노리는 생화학균이라면 더 말할 나위없다. 미국이 반테러법을 신속히 제정하고 백색가루 우편물을 보낸 범인을 쫓고 있으나 미국뿐 아니라 전 지구촌이 언제 이러한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생화학테러나 우편물취급에 세심한 주의와 관심을 갖고 대비하는 것 만이 상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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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위신 지면기사
최강국 미국의 위신이 땅에 탁 떨어진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 고공 낙하, 소프트 랜딩(軟着陸) 중이 아니냐는 세계인의 견해가 높다. '즉각 아프간 보복 공격'을 참고 참아 26일간이나 뜸을 들일 때 지구인들은 예측했다. 할리우드의 전쟁·첩보 영화처럼 치밀한 정보 분석과 작전 계획, 전략을 짜고 다듬나 보다, 그래서 보복 공격 개시 1주일이나 열흘이면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지도자를 체포할 수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20일이 넘도록 그들은 꼭꼭 숨어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고 이제 곧 11월 17일부터 한 달간의 라마단과 함께 겨울은 닥친다. 그래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24일 그들을 체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그로모프 전 아프간 주둔 소련 사령관은 22일 “아프간 전체와 싸우면 미국의 승리 확률은 제로”라고 말한다.또한 탄저균은 의회, CIA, 대법원 등 미국의 중추 신경기관을 뚫고 백악관까지 침투해 '편지 끊긴 나라'를 만들어도 그 경로, 배후, 단서 하나 못잡고 이라크의 아무개 여성 세균박사를 지목하고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속수무책과 '속족무책(束足無策)'에다 신출귀몰과 '인출인몰(人出人沒)'의 대결이다. 게다가 탄저균 테러는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이라크의 비아냥과 함께 어이없게도 50년대 애리조나주 연구소에서 개발한 미제 에임즈(Ames) 균주(菌株)임이 밝혀졌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업자득이다. 오폭 시리즈도 미국의 위신을 구겨버린다. 칸다하르의 CNN 오피스, 헤라트 근교의 노인 시설과 주택지, 100명이나 사망했다는 헤라트 외곽 병원과 카불 북부 시장, 칸다하르의 버스와 이슬람 예배소, 어처구니없게도 두 차례에 걸친 적십자 창고, 카불 북부 마을과 유엔마약탐지견센터 등의 오폭이다. 한데 가장 위험한 오폭은 '라마단 공격'이 될 것이다.아프간 전쟁의 양쪽 피해와 전세계 파장은 상상을 넘는다. 신속한 테러 주범 체포로 전쟁은 끝나야 한다. 그리고 '미국은 왜 테러의 표적이 돼야 하는가'의 테마와 함께 노암 촘스키가 일컫는 이른바 '불량 국가(Rogue State)'의 오해도 씻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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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에 행장 지면기사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는 82년 10월 총리 취임이후 총리라는 호칭보다는 '독터'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했다고 한다. 독일 사회는 그만큼 학력중시사회다. 그러던 독일이 학력보다는 일의 성과를 중요시하는 미국식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중반 세계적인 기업인 훽스트사가 '미국을 지향한다'고 선언하면서 부터다. '일한 사람만 먹자'는 식의 미국식 경영 모델이 지구촌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일본 최대의 PC생산업체인 NEC는 97년 국내시장 70%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8시리즈 PC생산 중단을 선언,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미국의 IBM이나 매킨토시와 호환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경제 특히 기업경영에서는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곧 글로벌 스탠더드다. 기업경영의 글로벌화라는 것은 그래서 '미국 따라하기'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미국식 경영제도는 일부기업이 90년대 중반 부분적으로 도입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것은 97년 IMF 환란 이후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제일은행의 호리에 행장이 임기(3년)를 반이나 남겨둔 상태에서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고 한다. 그의 말로는 “은행경영이 안정을 찾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경영을 맡는게 좋다고 생각해 사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금융계는 그의 퇴진이 지난 9월 본사 감사팀에 의한 대대적인 감사이후 나온 결정이어서 하이닉스 반도체등 대기업 여신에 대한 잘못판단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경영잘못이 있을 경우 임기에 관계없이 문책 하는 것이 미국식 경영제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호리에 행장은 국내의 외국인 행장 1호이기도 하지만 경영에 책임을 지고 중도하차한 행장 1호이기도 하다. 큰 실수 없는 한 임기를 보장받는 국내 경영풍토와 비교하면 살벌하기 짝이 없다. 호리에 행장의 퇴진은 국내 금융기관뿐 아니라 일반기업에도 큰 선례가 되는 것은 물론 이러한 아메리칸 스탠더드 적용이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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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효떨어진 'A'자 지면기사
‘젊고 아리따운 여인 헤스터 프린은 늙은 남편과 떨어져 사는 동안 사생아 딸 펄을 낳는다. 그런데 헤스터가 사는 곳은 무섭도록 엄격한 청교도 마을이었다. 불륜이 용납될 리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분노했고, 결국 그녀는 간통을 뜻하는 어덜터리(adultery)의 첫 글자인 A자 주홍글씨를 평생 가슴에 달고 살라는 형을 선고받는다. 그래도 헤스터는 간통 상대가 누군지를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주위의 멸시속에 수치의 세월 7년이 지난 어느 날, 새로 부임하는 지사의 취임 축하 설교를 마친 그 마을 목사 아서 딤스데일이 헤스터와 펄을 불러놓고 자신의 가슴을 헤쳐보인다. 놀랍게도 그의 가슴에는 간통을 뜻하는 A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간통의 상대가 바로 자신임을 마을 사람들에게 고백하고 쓰러져 죽는다’.1850년 간행된 나다니엘 호손의 장편소설 ‘주홍글씨’의 줄거리다. 17세기 청교도 식민지 보스턴에서 일어난 간통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수치심을 억누르고 속죄의 나날을 보내는 고통과 아픔을 심오하게 그려나간 19세기 미국문학의 걸작이다.지난 8월 말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169명의 명단을 발표하려 했을 때 사회 일각에선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었었다. 현대판 주홍글씨로서 지나친 인권침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의 비뚤어진 성문화를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명단은 발표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같은 파렴치 범죄가 훨씬 줄어들 것으로 기대됐다. 특히 체면을 생명보다 더 중히 여겨온 국민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전혀 예상못한 결과가 나왔다. 청소년 성매매가 신상공개 직전인 지난 8월 한달동안 55건 발생했으나, 신상공개 뒤인 9월엔 78건이 발생, 오히려 41% 증가했다는 것이다. 미성년 매매춘도 8월 38건에서 9월엔 51건으로 늘었다고 한다.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우리 국민성이 그만큼 더 뻔뻔스러워진 것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신상공개가 되레 자극제로 작용했다고 보아야 할지. 그나 저나 이젠 또 어떤 새 방법이 나와야 될는지 그게 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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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 지면기사
'꽁치'하면 발음이 비슷한 중국 남제(南齊)의 괴짜 시인 공치규(孔稚圭)부터 연상하지만 꽁치의 가장 그럴싸한 어원은 '공(孔)치'다. 속어를 어원적으로 고증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 의하면 꽁치의 아가미 옆에 침을 놓은 듯한 작은 구멍(孔)이 있어 '공치'라고 불렀고 된소리로 변해 '꽁치'가 됐다는 것이다. '꽁치'의 '치'는 물고기를 뜻하는 접미사로 넓적한 물고기는 넙치, 날아다니는 물고기는 날치, 칼 같은 물고기는 갈치(칼의 古語는 갈), 검은 물고기는 가물치 등이다. 사람으로 치면 '그 치(그 사람)' '저 치(저 사람)'하는 3인칭대명사 '치(者, 物)'에 해당하고 장사치, 갖바치, 반빗아치(부엌데기) 등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그 '치'와 동격이다. 성골, 진골, 귀족도 아닌 신라의 평민에 해당하고 인도의 바이샤(일반 민중)나 수드라(천민, 노예)에 해당한다. 그래선가 삼치, 갈치, 준치, 참치, 가물치 등 '치'자 돌림 물고기처럼 제삿상이나 차롓상에도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섭씨 15도의 북태평양 냉수대에서 잘 잡히는 꽁치는 등쪽이 흑청색, 배쪽이 은백색인 몸매부터 아름답다. 양턱이 부리처럼 삐죽 나와 침어(針魚)과에 속하는 날렵한 체형에다 칼 모양으로 길어 추도어(秋刀魚), 가을 물고기라 하여 추광어(秋光魚)라고도 불리는 꽁치는 값도 싸고 맛도 좋다. 가장 맛있는 때가 바로 지금인 10월 11월이다. 고등어, 정어리, 참치 등 다른 등 푸른 생선이 그렇듯이 영양가도 만점이다. 단백가(蛋白價)가 96%에 이르고 붉은 살에는 빈혈과 갑상선에 좋다는 비타민 B가, 배 언저리엔 철분이 많다. 불포화지방산도 높아 고혈압, 동맥경화 등 성인병에도 좋다. 그런 꽁치를 못먹는다는 것은 아쉽고도 아쉽다. 지난 APEC 회담 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리 김대통령에게 남쿠릴 열도의 한·러 합작조업을 제안했지만 파노프 주일 러시아 대사는 사할린이나 연해주 근해 등 대체어장 제공을 검토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고 오늘과 내일 도쿄서 열리는 한·일 수산 실무자 회담 역시 기대난(難)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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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충성서약 지면기사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반공 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지난 1968년에 만들어졌던 ‘국민교육헌장’의 몇 구절이다.1960년대 말부터 70, 80년대를 살아온 우리 국민은 대부분 이 헌장에 대한 기억이 남다를듯 싶다. 특히 학교 또는 군대에서 이 헌장을 외우지 못해 벌이나 기합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 헌장은 1968년 12월 5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낭독하는 국가적 선포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뒤 국가행사나 학교행사 등에서는 이 헌장을 꼭 읽도록 했었다. 또 학생이나 군인은 의무적으로 외워야 하기도 했다.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를 그다지 이상하다거나 거북스럽게 여기진 않았다. 그 이전 자유당 시절부터 이미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로 시작되는 ‘우리의 맹세’를 외워본 경험이 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저 외우라면 외웠을 뿐, 이 헌장이 명문이든 추상적 낱말의 유희에 불과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으려 했다. 군사정권의 잔재로 일제시기 교육칙어를 본뜬 군국주의 교육지표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으나, 대개는 그다지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당시로선 달리 어찌해볼 수가 없기도 했겠지만.어떻든 그렇게 요란스럽던 헌장이었건만 박정희 정권 종말과 함께 점차 시들해졌고, 급기야 1995년 헌장선포 28주년을 끝으로 그 운명을 다하고 만다. 이런 식이었다 보니 과연 이 헌장이 우리의 국민의식에 얼마나 파고들어 무얼 남겼는지도 언뜻 판단하기가 어렵게 돼버렸다.뉴욕시 교육위원회가 최근 시내 모든 공립학교에서 ‘충성서약’을 암송토록 결의했다. 지난번 월드트레이드센터 등에 대한 테러사건을 계기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자는 취지에서라 한다. 얼핏 지난 시절 우리의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리게 해준다. 물론 그와는 조금 다를지 모르나, 미국 같은 사회에도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다니 왠지 신기하다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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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같은 사랑 지면기사
도내 광주 경찰서 경무과 민원실의 조성록경사. 그의 선행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봉속에서도 30여명의 장애아를 내집에 데려와 돌본 것이 벌써 3년. 부인과 딸이 이들의 식사 빨래 청소를 도맡고 있다고 한다. 나와 내 가족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가득찬 세태속에 그 누구도 손길을 주지 않는 이들 장애아들의 대부다. 대부분이 정신 장애자이다 보니 이들을 돌보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일부사람들이 음해성 투서를 해 수사기관의 조사까지 받았으니 그동안의 어려움이 짐작이 간다. 지난 토요일(20일) 경찰의 날을 맞아 수여된 경찰청장의 표창이 조경사에게 다소 위로가 됐을까.또 한사람. 지난 금요일 KBS-TV '베스트 친절시민을 찾아라'프로의 100번째 친절주인공인 내과의사 이민상씨. 산재(産災) 또는 질병으로 시달리는 외국인 근로자 80여명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약국까지 소개해주며 무료약을 받게 해준 이씨는 이들 외국인 근로자에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러한 이씨에게 미안한 마음에 오히려 이씨의 병원을 찾아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작은 도움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너무나 큰 고마움을 느껴 오히려 감사하기 이를데 없다”고 말하며 쑥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오늘의 히포크라테스를 보는 듯 하다.우리는 종종 매스컴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불우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또 다른 조경사나 의사 이씨를 만난다. 그리고 이 사회에 탁류속의 샘물처럼 희망을 갖는다. 유대인들은 착한 사람을 야자나무와 삼나무에 비유한다. 야자나무는 잘라내도 다음 날 때 까지 4년이 걸리며 삼나무는 아주 늠름하게 하늘 높이 솟아 있어 멀리서 봐도 잘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국민의 뜻과는 관계없이 정쟁을 일삼고 어떤 이권과 관련한 특혜의혹 등 자기이익만을 위해 이전투구하는 사람들은 조경사나 의사 이씨를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하고 혼탁해도 이러한 소시민들의 희생과 맑은 정신이 우리나라를 지탱시키고 있는 힘이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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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VIP 지면기사
VIP란 '대단히 중요한 사람(very important person)'이라는 뜻이지만 VIP도 VIP나름이다. 국가 원수쯤 되면 'very' 하나만 가지고는 모자란다. 더구나 미국을 비롯한 4대 강국이나 G7 국가 원수쯤 되면 'very'가 5개쯤은 붙는 '대단히 대단히 아주 대단히 중요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선가 어제 막을 내린 APEC 정상회담의 상하이(上海)는 사상, 지상 최대의 VIP 경호 작전을 펼쳤다. 20만 보안군이 철통같은 경계를 펼쳤고 상하이 상공엔 일체의 항공기와 글라이더, 열기구도 뜨지 못하게 했는가 하면 부시가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로 입국할 때는 8대의 수호이 27 전투기가 초계비행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아예 17∼19일의 연휴를 실시, 주 5일 근무제에 따라 20, 21일까지 5일 연휴가 되도록 한 것이다.APEC 관계자 외에는 개미새끼 하나 얼씬도 못하도록 상하이를 꽁꽁 얼어붙게 한 이유는 그럴 만하다. 미 테러 사건 후 첫 번째 열리는 APEC 정상회의인데다가 21개국 정상이 모이는 중국 건국이래 최대의 외교 행사라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신경이 쓰이는 건 very가 열 개쯤은 붙는 '중요하고도 또또또 중요한 인물'인 부시의 행차였다. 이번 테러전쟁에서 미국이 노리는 제1, 제2 과녁이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라면 그쪽의 첫 번째 표적이 바로 부시가 아닌가. APEC 회담장인 서교빈관(西郊賓館)은 덩샤오핑(鄧小平) 등 중국의 지도자가 자주 체재하던 곳이고 지난 1월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번 상하이 VIP 경호 '냉각사태'에 지하의 중국 지도자들도 으스스 추위를 탔을 것이고 20일 밤의 그 엄청난 불꽃놀이 폭음에도 놀라 꿈틀거렸을 것이다. APEC 행사도 VIP도 중요하지만 학교, 기업, 음식점 등 상하이 전체의 5일 연휴란 지나친 것 아닐까. 또 그런 대단한 행사를 시민들이 먼발치로나마 보지도 못하게 한 것도 좀 그렇다. 아무리 좋은 광경도 볼 수 있는 '가관(可觀)'이 좋은 것이지 볼 수 없는 '불가관(不可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