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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동해안 산불 지면기사
2019년 9월 2일 발생해 다음해 2월까지 다섯 달 넘게 이어진 호주 산불은 역사상 최악의 피해를 남겼다. 호주 남동부 해변지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면적의 85%이자 호주 전체 숲 면적의 14%인 1천860만㏊의 삼림이 잿더미가 됐다. 산불연기가 이웃인 뉴질랜드를 넘어 남아메리카 태평양 연안과 도쿄만까지 번졌다. 소방대원 10명 등 28명이 사망한 인명 피해도 안타깝지만, 계산 방식에 따라 5억에서 12억 마리로 추산되는 동물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불에 그슬린 채 구조된 코알라들의 처참한 영상들이 심금을 울렸다. 불은 결국 큰 비가 오고 나서야 잡혔다.이상기후 현상인 폭염이 지구촌 곳곳을 화염산으로 만들고 있다. 폭염으로 건조된 숲은 작은 불쏘시개를 만나면 재앙이 된다. 2018년 그리스 휴양도시 마티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은 100여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서부에서는 연례행사처럼 대형 산불이 발생한다.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별장들이 즐비한 부촌이 폐허로 변하면서 거주 기피지역이 됐다.올해도 어김없이 대형 산불이 동해안을 덮쳤다. 4일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이 삼척으로 번졌고, 5일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은 동해시로 번졌다. 울진-삼척 산불은 원인불명이나, 강릉-동해 산불은 60대 방화범의 고의적인 만행으로 밝혀졌다. 겨울 가뭄으로 바싹 마른 숲이 때마침 시작된 강풍을 타고 속절없이 번졌다.봄철 동해안 산림은 거대한 장작더미와 같다. 강수량이 가장 적은 계절에 최근 들어 심각해진 겨울 가뭄으로 숲이 바짝 마른 탓이다. 소나무와 잣나무 등 불에 잘 타는 침엽수림이 많고, 바다에서 산으로 치솟는 높새바람도 봄철에 분다. 이상기후가 아니더라도 산불에 취약한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 봄철 동해 산림이다. 역대 최대 산불인 2000년 동해안 산불과 낙산사와 보물인 동종을 전소시킨 2005년 양양 산불, 불씨들이 이산 저산 날아다녔던 2019년 고성-속초 산불이 모두 4월에 발생했고, 1~5월 사이 해마다 동해 산불은 그친 적이 없었다.연례적인 재앙인 만큼 예방과 대처에 빈틈이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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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진공폭탄' 지면기사
[IMG01]지상에 투하된 핵폭탄은 지면(地面)과 충돌하면서 기폭제가 터지고 2차로 폭약이 대기와 만나 충격파, 고온, 대기흡수현상을 유발한다. 순식간에 주변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닌 살상 효과를 낸다. 80여 년 전, 인류는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극한의 공포를 체험했다.핵무기 외에도 국제사회가 사용을 금하는 대량살상무기들이 있다. ‘진공폭탄’도 그중 하나다. 방사선이나 낙진 피해만 없을 뿐, 핵폭탄과 맞먹는 파괴 효과를 지녔다. 현존하는 살상무기 가운데 핵을 제외하고는 위력이 가장 세다는데 별 이견이 없다. 제네바 협약을 통해 금지 목록에 포함됐다.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거주지역에 진공폭탄을 썼다는 미국 언론보도가 나왔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의 주장을 인용한 기사다. 마르카로바 대사는 “러시아가 주거지역을 겨냥해 진공폭탄을 사용했다”며 “파멸적 가해는 거대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실제로 진공폭탄을 사용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고, 미국 정부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러시아가 민간에 집속탄을 쐈다는 증언도 있다. 유산탄이 포함된 집속탄은 탱크에 구멍을 내고 콘크리트를 관통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를 타깃으로 하거나 비행기 이착륙장, 다중집합장소 등 비무장 목표물에 참혹한 피해를 줄 수 있다. 베트남 전쟁과 캄보디아 내전에서 생화학 무기와 결합해 악명을 떨쳤다. 코소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 등 분쟁지역에 빠지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사용금지를 추진했으나 강대국들의 반대에 막혔다.전쟁이라도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을 살상하는 행위는 범죄에 해당한다. 진공폭탄을 사용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법으로 특별한 보호를 받는 학교와 병원에 진공폭탄을 쏘는 행위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2차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전쟁범죄를 저지른 각국 독재자와 추종세력을 단호하게 응징했다.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을 쓸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왔다. 러시아군은 핵무기 기지 경계를 강화했다. 총력 저항에 막혀 속전속결이 여의치 않자 핵 카드를 꺼내려 한다는 것이다. 대량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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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민주 정부 정통성 논란 지면기사
서울대생 박종철과 연세대생 이한열이 민주화 제단에 피를 흘린 덕분에 87체제가 시작됐다. 국민은 87 개헌 첫 직선제 대통령이 민주화 진영에서 나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해 12월 9일 13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유권자의 89.2%가 투표에 참여했다. 민정당 노태우 36.64%, 통일민주당 김영삼(YS) 28.03%, 평화민주당 김대중(DJ) 27.04%,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8.10% 순으로 득표했다. 5·18 쿠데타의 주역인 노태우가 민주화 운동의 열매인 87체제 첫 직선 대통령이 됐다.민주화 운동의 두 별인 YS와 DJ가 단일화했다면 질 수 없었던 선거 결과에 민주화를 열망했던 국민들은 땅을 쳤다. 선거전에 두 사람의 후보 단일화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두 사람은 선거를 겨냥해 어용 야당인 신한민주당을 탈당해 통일민주당을 공동으로 창당했다. 그런데 대권, 당권 분할 협상의 이견으로 골이 깊어졌다. DJ는 동교동계를 이끌고 통일민주당을 또 한 번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4자 필승론을 주장했다. 민주화 진영의 명망가들이 끝까지 단일화를 촉구했지만 두 사람은 듣지 않았다.결국 YS는 호랑이를 잡으러 간다며 3당 합당으로 정치 진로를 틀어 14대 대통령이 됐다. 그는 자신의 정부를 '문민정부'로 명명했다. 민주진영의 분열로 탄생한 노태우 정부를 민간정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15대 대통령이 된 DJ는 자신의 정부를 '김대중 정부'라 했다. YS가 선취한 '문민'을 부정하기 힘들었기 때문일 테다. 양김(兩金)의 분열로 민주진영은 87체제 첫 민주정부를 열어젖힐 영광을 잃어버린 셈이다. 역사는 의외의 사건으로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게 마련이다.김대중 정부를 첫 민주정부로 규정한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YS가 노태우 정부 하나를 건너뛰어 '문민'을 자부했다면, 문 대통령은 노태우, YS 두 정권을 뛰어넘어 김대중 정부에 민주의 정통성을 부여했다. 국민의 선택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똑같은 민주 선거로 선출된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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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SAG 수상한 '오징어 게임' 지면기사
한류가 또 한 번 낭보를 전해왔다. 지난 28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바커행어에서 열린 28회 미국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 SAG) 시상식에서 '오징어게임'이 모두 3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그리고 작품에 주어지는 상인 스턴트 앙상블상을 수상한 것이다. 한류문화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한 세기 전만 해도 개화파 인사들이 개화를 외치며 갑신정변(1884)을 일으켰고, 불과 40여 년 전인 박정희 시대에도 슬로건이 '조국 근대화'일 만큼 우리는 근대화와 서양 따라잡기에 골몰해 있었다. 개화와 근대화를 갈망했던 개화파(開化派)와 달리 재야의 개벽파(開闢派) 지도자들은 오히려 한국이 어변성룡(魚變成龍)의 운을 맞이하여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며 실의에 빠진 민중과 백성들에게 희망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탄허 스님(1913~1983)은 이미 50년 전에 한국과 한국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라고 예언했고, 일제가 극성을 부리던 1944년 정산 송규 종사(1900~1961)도 한시 한 구절로 우리의 국운을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 "계산에 안개 개면 울창하고 높을 지요/경수에 바람 자도 잔물결은 절로 있다/봄철 지나 꽃다운 것 다 시든다 말을 마라/따로이 저 중류에서 연밥 따는 철이 있다(稽山罷霧鬱嵯峨/鏡水無風也自波/莫言春度芳菲盡/別有中流採 荷)."그리고 이들보다 훨씬 앞서 민족종교의 창시자들인 수운 최제우(1824~1864), 증산 강일순(1871~1909),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등은 가장 엄혹한 시기에 '개벽'을 외치며 실의와 도탄에 빠진 민초들에게 국운이 상승하고 문명세계가 열릴 것이라 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SAG 수상에서 그치지 말고 한국과 한국문화가 미래를 위한 새로운 대안이자 세계평화의 전파자가 되면 더 좋겠다. 고 이건희 회장이 기업은 일류인데 정치는 사류라 한탄했다고 하는데, 정치가 경제와 문화를 방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요즘 국민들은 정치뉴스나 선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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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젤렌스키 대통령 지면기사
2015년 과테말라 대선에서 코미디언 출신 지미 모랄레스가 당선됐다. '나는 부패하지도 않았고, 도둑도 아니다'란 구호로 결선에서 70% 넘게 득표했다. 중남미 주변국들과 판박이로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에서 청렴을 외친 정치신인이 반사이익을 본 것이다. 정치를 희화화한다는 비난에,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시궁창 정치에 대한 혐오에 가렸다.우려는 현실이 됐다. 실정이 거듭되면서 교사들에게 GPS를 의무 착용하게 한다는 등 비현실적인 선거공약이 뒤늦게 소환됐다. '대통령이 장난이냐'는 비웃음과 함께. 중도층 지지를 기반으로 집권하고도, 우익 행보로 돌아서 비판을 받았다. 성범죄 연루 의혹까지 제기돼 치명상을 입었고, 2019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코미디언의 정치 실험은 끝내 웃지 못했다.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미사일 공격을 받은 수도 키예프는 참혹하다. 폭격당한 건물 밖에서 여성이 피를 흘리며 절규하는 모습이 생중계됐다. 지하 방공호로 피신한 시민들은 공포에 떨며 포성에 귀를 막았다. 밤하늘을 가르는 미사일 궤적과 폭음에 우크라이나 전역이 흔들린다.침공에 맞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내겐 도망칠 수단이 아닌 총알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이 도피처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전하자 항전 의지를 밝혔다. 25일에는 데니스 슈미갈 총리 등과 함께 영상을 찍어 "우리 모두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켜내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우리는 우리의 영토와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고 있다. 우크라이나로 돌아올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돌아와 달라"고 독려했다.대통령이 결사 항전을 외치자 시민들은 소총과 화염병을 들었고, 재외국민은 속속 고국으로 향하고 있다. 비무장 시민은 질주하는 탱크를 몸으로 막아냈다. 서방세계는 물론 아프리카 국가들까지 우크라이나 편을 든다. 코미디언 경력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는 '나라를 구할 영웅'으로 급치환되는 양상이다.국민 저항에 직면한 러시아군과 푸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사태 장기화는 베트남전 미군과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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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이어령'이 남긴 유산 지면기사
현대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이 26일 타계했다. 약관의 나이에 문학평론가로 사회에 참여한 그가 작가, 언론인, 교수, 행정가로 종횡무진하면서 남긴 정신적 족적의 크기는 가늠하기 힘들다.이어령은 우상파괴자(iconoclast)로 문단에 등장했다. 김동리를 비롯해 당시 문단을 장악한 기성 작가들을 구시대의 우상이라 비판하고 우상 파괴를 주장했다. '분지' 필화사건은 문학과 사상의 자유를 겁박하는 군사정권에 홀로 맞선 명장면을 남겼다. 작가 남정현의 단편소설 '분지'가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이어령은 법정에서 "장미가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지 사람에게 담배 파이프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작가를 두둔했다.이어령의 진가는 시대정신을 명명하고 다가올 시대를 예지하는 인문학적 통찰력에 있었다.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엮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3년)'로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화 시대의 기적을 '신바람 문화'로 규정했다. 그가 작명한 서울 올림픽의 구호 '벽을 넘어서'는 냉전 이후의 세계와 한국의 도약을 예견했다.이어령은 한국인에게 각인된 창조 DNA를 끊임없이 일깨웠다. "날 것도 익힌 것도 아닌 그 중간 항(項), 자연과 문명을 서로 조합하려는 시스템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 비빔밥"이라는 비빔밥 예찬론과 같이 직관적인 비유로 한국인의 자부심을 고양시켰다. 디지털 공동체와 아날로그 공동체를 이어주는 '디지로그' 시대의 주역도 한국인이라고 강조했다. 창조적 미래세대 육성을 위해 '창조학교' 설립 운동을 펼쳤다. 실제로 경기도에 창조학교 설립을 제안해, 안산시 선감도에 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맡았다.언론사는 해마다 신년 즈음이면 그를 찾아 시대의 좌표를 물었다. 미수(米壽·88세)를 누렸으니 애석하다 할 수 없건만, 나라가 어렵고 국민이 힘들 때마다 희망을 주었던 그의 지혜가 함께 유실된 건 큰 손실이다. 하지만 그의 말과 글은 남았다. 이어령의 마지막 지혜를 기록한 출판물도 쏟아질 것이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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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정치 방역' 지면기사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에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3·1 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의 악랄한 식민통치를 뒤엎고 대한민국의 건립을 알리는 대전환이었다. 대한민국 연호는 1919년을 원년으로 삼는다.한반도 전역을 휩쓴 만세 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수탈과 무단 통치에 대한 저항에서다. 1918년 일본에서 큰 흉년이 들자 조선에서 더 많은 쌀을 공출했고, 물가마저 폭등하자 불만이 고조됐다. 때마침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면서 식민지마다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그런데, 당시 전 세계가 공포에 떤 스페인 독감도 국민봉기의 동력이 됐다는 주장이 있다. 일제가 전년 말 유입된 스페인 독감에 검역을 부실하게 하고 방역대책에 실패한 책임을 조선인들의 생활 습관으로 돌리면서 반감이 커졌고, 만세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 전역에서 독감으로 10만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국내 코로나 19 신규 확진자가 일일 17만 명을 넘어섰다. 23일에는 17만1천452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독일(15만8천507명), 러시아(13만5천172명), 브라질(10만1천285명)을 앞질렀다. 미국의 하루 확진자(6만1천863명)보다도 크게 웃돈다. 24일 0시 기준 17만16명이다.정부는 뒤죽박죽 정책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오미크론은 치명률이 낮다며 지나친 걱정은 말라면서도 방역 기준은 찔끔 낮췄다. 10대 확진자가 늘자 온라인 수업이든 등교든 자율이라더니, 다시 추이를 지켜보잔다. 10대 2명이 코로나에 감염돼 숨졌다. 일일 사망자는 99명을 찍었고, 중증 환자도 늘고 있다.방역 당국은 확진자 증가의 정점을 가늠할 수 없다고 한다. 감염 전문가인 이재갑 한림대 교수는 '거리 두기 완화 방침'에 반대하며 일상회복위원회 자문위원직을 버렸다. "정부가 전문가들 의견을 듣지 않고 정치방역을 한다"고 비판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가)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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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우크라이나 사태의 교훈 지면기사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는 심경이 착잡하다. 국방력을 상실한 채 강대국의 선의와 외교에 운명을 맡긴 약소국의 비애와 수모가 남 일 같지 않아서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22일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 규모의 핵무기를 포기했다"며 "미국이 내놨던 안전 보장을 대가로 핵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안전보장을 약속받고 핵무기를 포기했으니 약속대로 러시아 침공을 막아달라는 요구이다.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졸지에 미·소에 버금가는 핵무장 강국이 됐다. 구 소련이 유럽 최전선인 우크라이나에 1천800여개의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배치해놓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핵무장국 우크라이나가 껄끄러웠던 미국, 영국,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과 정치독립을 보장하되 핵무기는 러시아로 넘겨 폐기한다는 '부다페스트 각서'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는 각서 한장에 핵무장을 해제한 셈이다.하지만 부다페스트 각서는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부가 친서방 시민세력의 봉기로 실각하자,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에 우크라이나에 주었던 크림반도를 점령했다. 친러 괴뢰 자치정부를 세우고 무력을 지원하는 방식은 교묘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비난했을 뿐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지켜주진 못했다. 다급해진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으로 유럽 집단안보에 의지하려 했다. 러시아는 이마저 용납하지 않고 친러계 주민 밀집지역인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을 크림반도와 같은 수법으로 점령하려 한다.미국은 러시아에 경제제재로 맞서고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지만 무력 개입은 망설인다. 우크라이나 파병을 반대하는 압도적인 여론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이 미국의 약속이행을 읍소하는 배경이다. 우크라이나가 그때 핵무장을 고수했거나, 시간을 두고 폐기했더라면 러시아에게 영토를 빼앗기고, 미국의 약속 불이행에 애끓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우리도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하고 비핵화공동선언도 했다. 우리는 1991년 미군 전술핵을 모두 거둬냈고 2022년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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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베이징 올림픽과 중화주의 지면기사
올림픽이 끝났어도 계속 여운이 남는다. 발리예바를 둘러싼 도핑파문도 그러하고, 한국 쇼트트랙의 자존심을 지켜낸 치킨왕자 황대헌과 곽윤기 선수의 위트 그리고 이상화 위원과 고다이라 선수 간의 끈끈한 우정도 화제다. 이런 미담들마저 없었다면 반쪽 올림픽이 될 뻔했다. 메달 숫자와 순위 등 우리 선수단이 거둔 성적표는 그리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국의 편파 판정·코로나19·도핑 파문·우크라이나 전쟁 위기 등 여러 악재와 어려움을 뚫고 거둔 성과이기에 박수 받기에 충분하다고 본다.올림픽은 매번 정치적이거나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베이징 올림픽도 충분히 정치적이었다. 올림픽과 연계된 시진핑 주석의 3번째 연임 같은 정치이슈는 내정 문제이기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서 보여준 중화주의는 과연 중국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는가에 커다란 의문부호를 남긴다.중화주의는 뿌리가 매우 깊다. 중국 사대기서의 하나인 '삼국지'만 해도 중화주의가 뚜렷하다. 유비를 정통으로 내세우고 중원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조조를 깎아내리는 옹유반조(擁劉反曹) 또는 유비의 촉을 정통으로 보는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 그러하고, '삼국지' 최고의 무장이었던 여포를 희화화하고 악인으로 그리는 것은 그가 한족(漢族) 출신이 아니라 변방 지역인 내몽골에 있는 구원(九原) 즉 바우터우 출신(일각에서는 위구르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이기에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주자 즉 주희가 남긴 '자치통감 강목'에서 '촉'을 정통으로 보고 '위'와 '오'를 참국(僭國)으로 내세우는 관점도 그러한데, 그 이유는 금에 밀려 남쪽으로 쫓긴 남송의 처지가 마치 한나라 말기 상황과 같은 유비관계로 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버리고 대국굴기를 내세우면서 자민족중심주의, 애국주의를 넘어 중화주의로 나가자 세계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BTS 계정에 악플을 달고,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편파판정을 한 것도 모자라 한국선수를 반칙왕으로 묘사한 영화를 만들어 유포하는 데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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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대도(大盜) 조세형 지면기사
"도둑질하러 들어갈 때 무엇이 있는지 바로 맞추는 게 성(聖), 남보다 앞장서 들어가는 게 용(勇),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 타격이 적은 곳을 터는 것이 지(智), 훔친 물건을 공평하게 나누는 게 인(仁)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전설적 도적인 도척(盜척)이 했다는 말이다. 비록 남의 물건을 훔치고, 약탈하는 죄인이나 나름의 지켜야 할 도(道)가 있다는 것이다.도척은 노나라 현인 유하혜(柳下惠)의 아우로, 태산에 본거지를 두고 도적질을 일삼았다. 부하 9천명을 휘하에 두고 제후를 공격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유하혜 친구인 공자(孔子)가 악행을 막겠다며 그를 찾아갔으나 외려 혼비백산 쫓겨나고 말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문밖을 나서 마차를 타려다 3번이나 고삐를 놓칠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고 한다. 동문 밖에서 마주친 유하혜가 "그놈이 혹시 선생의 뜻을 거스르지나 않았느냐"고 묻자 "사실이 그대로였다. 갑자기 달려가 호랑이의 수염을 따려 들었다가 하마터면 물려 죽을 뻔했다"고 했다. 장자(莊子)는 이 일화를 지어내 현실에만 매달리는 공자를 비판했다. 도척은 노나라 사람이나 공자보다 100여 년 앞서는 것으로 전해진다.대도 조세형(83)이 절도혐의로 또 구속됐다. 60대 공범과 함께 용인시 양지면 고급 전원주택단지를 돌며 3차례 3천300만원 상당 금품을 훔친 혐의다. CCTV를 통해 용의자가 특정됐고, 먼저 붙잡힌 공범 진술로 서울 자택에서 체포됐다. 2019년 서울 광진구 주택가에서 1천2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2년6개월간 복역하고 출소한 지 2개월 만이다.조씨는 1970~80년대 담장 높은 서울 부촌만 골라 털었다. 재판 중 '외국인과 가난한 사람의 돈은 훔치지 않는다'거나 '훔친 돈의 30~40%는 헐벗은 사람을 위해 쓴다'고 해 대도에, 의적(義賊)이라 불렸다. 5공 실세 부인 소유의 물방울 다이아몬드도 그의 손을 타 장물이 됐다. 당시 피해자 여럿이 부정축재를 감추려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다.한때 드라마에도 소개됐던 한국판 '괴도 뤼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