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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광명 밭 왕버들 지면기사
왕버들 나무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20m까지 자라고 둘레가 3~5m를 넘기도 한다. 한국·중국·일본 등에 분포하며 버드나무 중에 가장 크고 웅장하다. 다른 나무들과 함부로 섞여 살지 않으며, 개울가, 호숫가 등 물이 많은 습지를 좋아한다. 버들의 왕 다운 품격과 위엄을 갖췄다.어린 가지는 황록색이나, 나이가 들면 회갈색으로 깊게 갈라진다. 가지가 굵고 넓게 벌어지며, 비스듬히 누워 조경수로 쓰인다. 마을 숲과 궁궐, 경주 계림 같은 명소에 군락지가 있다. 수백 년을 사는 장수 수종으로, 특히 물속에서도 거뜬하게 살 수 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 빼어난 자태를 뽐낸 청송 주산지 물속 나무가 바로 왕버들이다. 수백 년 풍상을 이겨낸 질긴 생명력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목이 많다.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토지 보상업무를 하는 직원이 광명·시흥지구 밭을 사들여 갈아엎었다. 그 자리에 희귀수종으로 꼽히는 왕버들을 심었다. ㎡당 25주의 나무가 180∼190㎝ 간격으로 촘촘하게 심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이 나무는 3.3㎡(구 1평)당 1주가 적정 수준이라고 한다. 사정에 밝은 직원이 보상을 더 받으려 했다는 추측이다.뒤엎어진 땅은 번지수도 달라졌다. 광명·시흥에 땅을 산 LH 직원들은 토지를 1천㎡ 크기로 나눴다. 대토보상권을 노린 이른바 '쪼개기 수법'이다. 공공사업지구에서 1천㎡ 이상의 토지를 사업시행자에게 양도하면 통상 주거전용 단독주택용지를 일반 수요자에 앞서 우선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준다.보상전문가들은 희귀목 식재와 지분 분할을 두고 '나무 보상과 알박기 신공'이라 감탄한다. 왕버들은 성장 속도가 빠른 장점이 있다. 나무줄기가 굵을수록 보상비는 오르고, 이식비용도 늘어나게 된다. 토지 분할로 대토보상까지 챙긴다. 고수의 냄새가 나는 '타짜의 솜씨'라는 평이다.대통령이 나서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엄벌은 물론 부당이익을 모조리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정부의 주택정책 기조를 송두리째 흔들 대형 사고다. 서울·부산 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은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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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별의 순간' 지면기사
30여년 전 정치부 기자로 국회 출입을 했을 때 선배들에게 전수받은 정치인 판별법은 두고두고 취재의 방향타가 됐다. '항성론'이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과 같은 정치가를 주목하고 발굴하라는 지침이었다.이 기준으로 보면 1988년 당시 야당엔 두 개의 항성이 각축을 벌였다.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대중(DJ) 평화민주당 총재였다. 후보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정권 탄생에 일조했지만,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감은 여전했다. YS의 상도동과 DJ의 동교동 자택은 장·노년층 민주화 동지들과 청년층 정치지망생들과 그 숫자만큼의 기자들로 붐볐다. 이 많은 식객들이 아침을 함께 하며 정국의 풍향을 가늠하느라 소란스러웠던 상도동, 동교동의 조찬 풍경은 장관이었다.YS와 DJ가 차례로 집권하자, 그들의 주변을 공전하던 정치인들의 명암도 갈렸다. 두 항성의 후광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누구는 행성이 되고 누구는 위성이 됐으며, 또 누군가는 암흑 속에 사라지기도 했다. 발광체와의 거리가 반사체의 운명을 결정한다.YS와 DJ처럼 스스로 항성을 자처한 정치인들이 많았다. 이회창의 빛을 가렸던 이인제는 마지막 고비에서 신성 노무현의 발광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항성이 쇠락하면 반사체인 행성과 위성도 사멸한다. 노무현이란 큰 별이 지자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작은 별이 반짝 빛나다 갔다. 대선 때마다 잠깐 반짝이다 유성처럼 사라진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두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언급한 '별의 순간'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정권과 대립하던 그의 차기 대권후보 지지율이 30% 넘게 치솟자 김 위원장은 "별의 순간이 보일 것"이라며 '별이 될지 말지는 본인에게 달렸다'고 충고했다.내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로 새로운 별(항성)이 뜬다. 별이 빛을 내는 건 핵융합 반응으로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국민의 별이 되려면 민심을 융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대표에게는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융합로가 장점이자 한계다. 윤석열에게는 당이라는 융합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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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교복 은행 지면기사
1970년대, 시골 중학교 새내기들의 교복은 몸집보다 훨씬 컸다. 바지는 헐렁했고, 품이 큰 웃옷은 꺼벙했다.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자녀들 교복은 큰 부담이었다.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기, 딱 맞는 옷은 가성비가 떨어지기 마련. 무조건 한두 치수 큰 교복을 사 자녀에게 입혔다. 외모와 복장에 민감할 나이지만 비슷한 처지였기에 창피한 줄 몰랐다.고등학교 시절, 여름 하복은 청색 계열이었다. 다른 학교에 비해 촌스럽지는 않았으나 모자가 맘에 들지 않았다. 검은색 빵떡 모자였는데, 다른 동급생들도 교문을 나서면 가방 속에 처박았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쓰고 다니라 해도 따르는 학생은 드물었다. 등교할 때 잠깐 쓰는 애물이었으나 그렇다고 집에 두고 오면 혼쭐이 나기에 꼭 챙겨야 했다.1886년 이화학당 재학생들이 다홍색 무명천으로 된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녔다. 우리나라 교복의 시작이라고 한다. 10여 년 뒤 배재학당에서 남학생들이 처음 교복을 입게 됐다. 서양식 교복의 첫 수혜자는 1907년 숙명여학교 학생들이었다. 자주색 원피스와 분홍색 교모가 특징으로, 유럽풍 양장 형태다. 하지만 지나친 파격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3년 뒤 다시 자주색 치마저고리로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신학기를 맞아 중고 교복을 싼 가격에 판매하는 교복 은행이 인기몰이 중이다. 졸업생들의 교복을 기증받아 신입생이나 재학생들에게 저렴하게 파는 교복 물려주기 사업이다. 재킷은 5천원 안팎, 셔츠와 넥타이 등은 3천원 선에 살 수 있어 수요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경기도 내에만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교복 은행이 18곳에 달한다.형제자매가 많은 50·60대는 형님과 언니 교복을 물려받아 입는 게 자연스러웠다. 새 학기에 교복 사달라고 조르면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생떼를 썼다. 변변한 교복 한 벌 사주지 못하는 엄마의 속은 어떠했을까. 자식을 키우고서야 가슴 한구석 찌릿해진다.교복 은행의 성장엔 코로나19가 한 몫 단단히 했다고 한다. 몇 번 입지 않아 새것 같은 교복이 수두룩하다. 후배들에게 물려주자는 선배의 사랑이 애틋하다. 학부모와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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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윤석열 시즌2' 지면기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한 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검찰 인사로 모욕을 주고, 측근들을 좌천하고, 결국 징계위원회를 열어 2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윤 총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반격했고, 법원은 징계 효력을 정지시켜 윤 총장의 직을 유지시켰다. 이로써 '윤석열 시즌1'은 윤 총장의 완승으로 끝났고, 이 과정에서 차기 대선주자 1위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윤석열 시즌2'가 시작됐다. 이번엔 여당 내 검찰폐지론자들이 윤석열을 소환했다. 이들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법안 발의를 밀어붙이고 있다.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엔 부패, 선거, 경제 등 6대 범죄수사권만 남았다. 이마저 박탈하겠다는 얘기다. 소위 '검수완박'이고, 사실상 검찰청 폐지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전언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도 '속도 조절'을 요구했는데 아랑곳하지 않아 레임덕 논란이 일었다.윤 총장의 반격은 신속하고 전면적이다. 자신에 대한 징계는 법원의 판단에 맡겼는데, 검수완박 정국에 여론전을 불사하고 나섰다.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걸겠다"며 검수완박을 정면으로 반대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고 헌법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어제 대구고검 앞에선 '검수완박'을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규정했다. "권력층의 반칙에 대응하지 못하면 공정과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며 국민에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시라"고 부탁했다.'윤석열 시즌1'이 막을 내린 신년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은 30.4%까지 치솟았다(리얼미터). 하지만 드라마 종영으로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시청자들의 관심도 멀어졌다. 그 자리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독차지했다. 학습효과일까, 여권 인사들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일부 강경파 인사들은 독설을 날리지만, 때리면 때릴수록 커졌던 '시즌1'의 악몽이 재현될까 조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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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편의점 소녀와 치킨집 사장님 지면기사
세상이 각박할수록 작은 성냥불 같은 선행이 온 세상을 따뜻하게 데운다. 20년 넘게 연말이면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거액의 이웃돕기 성금을 놓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이제 전설이 됐다. 몇 해 전 양심 없는 도둑 2명이 전주 키다리 아저씨의 성금을 훔쳐간 사건이 발생했지만, 선행의 훈기만은 훔칠 수 없었다.최근 온라인을 통해 알려진 선행이 화제다. 선행은 작았지만 감동은 묵직하다. 하남시의 한 소녀는 편의점에서 만난 소년이 잔액이 부족해 물건값을 치르지 못하자, 대신 결제해 준 것은 물론 매주 토요일 만나 먹고 싶은 것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소년의 어머니가 너무 고마워 페이스북에 사연을 올렸다. 남편과 사별한 뒤 외벌이로 소년을 어렵게 키우던 어머니는 소녀의 성의를 갚겠노라 사연을 알렸다.소녀가 용기를 내어 답했다. "혹시 어머님이나 아가나 제가 하는 행동이 동정심으로 느껴져서 상처가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낯선 이의 호의를 받은 상대의 감정까지 배려하는 성숙한 인격이 더욱 감동적이다. "하남에서는 어머님과 아들분들이 상처받는 일이 없으시길 바란다"는 말에는 공동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스며있다. 나이도 학년도 모르는 어린 소녀에게 제대로 한 수 배운 기분이다.1년 전 선행이 알려져 홍역을 치른 홍대 치킨집 사장의 사연도 훈훈하다. 돈이 부족한 형제들에게 공짜 치킨을 대접한 사연을 고등학생 형이 프랜차이즈 본사에 편지로 알려 세상에 드러났다. 형제들과 대화도 나누고 어린 동생이 찾아올 때마다 치킨을 대접하고 머리도 깎아주었단다.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쇄도한 주문을 소화하지 못해 임시 휴업을 단행했다고 한다. 형제들 대신 보통 사람들이 치킨집 사장을 돈으로 혼쭐을 내주었다니, 그래도 살만한 세상 아닌가.하남 편의점 소녀나 홍대 치킨집 사장이나 언론 매체의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일이 민망했을 법하고, 자신들을 시끄럽게 칭찬하는 사회가 이상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 작은 선행을 선물하는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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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3·1절 태극기 지면기사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은 고통은 견딜 수가 없다/(중략)…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유일한 슬픔이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유관순 열사는 탑골공원과 남대문에서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다니던 이화학당에 임시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인 천안으로 가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으로 18세 나이에 순국, 국민 누나로 추앙된다.3·1운동은 일제의 강압 통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쟁취하려 분연히 일어선 한민족의 의거(義擧)다. 전국 1천500여단체, 참가 인원 200여만명, 사망자 7천500여명, 부상자 1만6천여명, 체포자 4만7천여명이었다. 방방곡곡 거리는 온통 태극기 물결로 뒤덮였다.국기(國旗) 제정은 1882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이 시작점이다. 어떤 형태인지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같은 해 수신사로 일본에 가던 박영효가 배 위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음 해인 1883년 5월 고종은 국기로 제정·공표했다. 이후 국민들과 멀어졌으나 3·1 만세운동을 통해 민족 정신의 상징이 됐다.태극기가 다시 거리로 나선 건 2002 한일월드컵대회를 통해서다. 광화문 거리에 내걸린 대형 걸개는 승리를 향한 국민 염원이었다. 태극 문양을 형상화한 의상과 모자가 유행했고, 벼락스타가 탄생했다. 기쁨과 환호, 좌절과 탄식의 순간에도 저마다 태극기를 흔들며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했다.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로 태극기를 보는 시각이 갈리게 됐다.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을 덮으면서다. 태극기가 보수와 진보를 가르고,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도구가 됐다. '극우'의 전유물로 각인되면서 다른 쪽 사람들에게 기피의 대상으로 전락했다.3·1절 102주년 기념일에 종일 비가 내렸다. 가뜩이나 보기 힘든 태극기 몇 개, 거리에 걸렸을 뿐이다. 괜한 오해를 살지 몰라 국기 게양이 꺼려진다는 가정도 있다. 거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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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삼일절과 표현의 자유 지면기사
오늘은 삼일절 102주년이다. 1919년 한민족이 하나 돼 '조선 독립'을 외치며 일제의 식민통치를 거부했다.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학생들은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3·1 독립운동은 들불처럼 번져 수개월간 지속됐다. 유관순은 4월1일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됐다. 화성 발안 장터 만세운동으로 제암리 학살사건이 발생한 건 4월15일이다. 경성 탑골공원에서 시작한 독립운동은 전국으로, 해외 한인거주지로 퍼져나갔다.3·1 독립운동의 역사적 파장은 컸다. 4월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독립된 국호로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중국의 항일 거사인 5·4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반일 국제전선을 형성한 것도 3·1운동의 공헌이다. 영국 식민통치에 저항한 인도의 독립 영웅인 간디와 네루는 3·1운동에 감명했고, 타고르는 식민지 대한민국을 '동방의 등불'로 읊었다.희생은 컸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운동의 범위가 워낙 넓고 희생의 기록을 일제가 장악한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년전 삼일절 100주년 경축사에서 한반도 전체 인구의 10%인 202만여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했고, 7천500여명이 살해됐고, 1만6천여명이 부상당했으며, 체포·구금된 숫자는 4만6천여명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이 1920년에 발표한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남긴 기록이다. 일본 외무성은 주일 한국대사관에 "다툼이 있는 숫자"라며 항의했다. 자신들이 축소하고 은폐한 만행의 역사를 논란에 가두려는 가소로운 역사 소인배의 행각이었다.우리 내부에서도 지난한 독립운동 과정에서 변절한 민족진영 인사가 적지 않았고, '태화관 낮술' 주장으로 민족대표 33인을 고주망태로 만든 스타강사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민족이 일제에 맞서 광장에서 결사 독립의지를 표현한 3·1운동은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운동이자 인권 시민운동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마침 삼일절에 보수단체가 신청한 광화문 집회에 대해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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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송도 세브란스병원 지면기사
지난해 3월 용인 동백 세브란스병원이 개원했다. 7만4천484㎡ 부지에 지하 4, 지상 13층, 연면적 11만1천633㎡ 규모다. 800병상 계획을 줄여 462병상으로 문을 연 뒤 점차 늘리기로 했다. 의료진과 인력을 2천100명까지 확충해 33개 진료과를 39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대학병원이 운영되면서 지역에 활기가 돈다고 한다. 의료서비스가 한 차원 업그레이드됐다는 평이다. 인구 100만명을 넘는 특례 용인시의 자존심이라는 말이 나온다.하지만 개원까지 여정은 험난했다. 연세대 의료원과 용인시가 의료사업 협약을 맺은 시점이 2005년이니, 15년이 지나서야 종착역에 닿은 셈이다. 2012년 건축허가를 받아 착공했다, 갑자기 중단돼 3년을 허송했다. 의료원 측은 처인구 소재 용인 세브란스병원 부지 개발과 첨단산업단지 개발 등을 시에 요구했다. 시가 이런 요구를 다 들어주고 행정 편의까지 봐주면서 공사가 재개됐다. '사학 명문대가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돌았다.인천 송도 세브란스병원 건립 공사가 지난 23일 첫 삽을 떴다. 지하 3층~지상 14층, 800병상 규모로 2026년 말 개원이 목표라고 한다. 연세대는 2006년 인천시와 '2010년 3월까지 1천 병상 병원과 교육 연구시설을 짓는'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병원은 짓지 않고 국제캠퍼스만 조성했다.협약 15년이 지나서야 기공식을 했다. 동백보다도 4~5년 늦은 진도다. 실제 공사는 내년 하반기에나 본격화할 것이란 예상이다. 건축허가 등 행정절차도 끝나지 않았다. 너무 오래 지체된 탓에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다. 약속 불이행에 따른 비판 여론을 의식해 삽질부터 한 것 아니냐는 불편한 시각도 있다.동백과 송도 세브란스는 지자체와 대학이 의기투합한 결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갑을 관계가 됐다. 싼값에 부지를 제공받은 대학은 급할 게 없고, 초조한 건 지자체들이다. 특혜 의혹과 먹튀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거진다. 종국에는 지자체가 '병상은 줄여도 좋으니 병원만은 지어야 한다'고 통사정을 한다. 2010년 문을 열겠다던 송도 세브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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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추신수, 신세계 구단, 그리고 인천 지면기사
아무래도 올해 프로야구판에서 화제의 중심은 인천이 될 모양이다. 지난달 26일 전격적인 SK 와이번스 인수 발표로 야구계를 충격에 빠트린 신세계그룹이, 이번엔 메이저리거 추신수 영입으로 야구 팬들을 놀래켰다. 추신수 영입을 발표한 23일 신세계그룹은 SK 와이번스 주식 100%를 인수하고 KBO(한국야구위원회)에 회원 가입을 신청했다. 신세계그룹은 프로야구 역사의 첫페이지를 '추신수 뉴스'로 장식한 셈이다. 유통 대기업다운 화려한 미디어 플레이다.추신수는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타자로는 독보적인 족적을 남겼다. 투수로서 박찬호가 누린 명성을 타자로서 만끽한 유일한 선수다. 2001년 부산고 재학 시절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갔다.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씹은 뒤 2005년 빅리그에 데뷔했고, 2013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간 1억3천만 달러라는 초대박 연봉계약을 터트렸다.통산 1천652경기에 출전해 아시아 출신 타자 최다 홈런(218개), 최타 타점(782점), 최초 사이클링 히트, 현역 최다 52경기 연속 출루 등 화려한 기록을 제조했다. 추신수는 자신이 야구를 시작한 조국에서 야구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올해로 만 39세. 야구선수로는 절정을 지나 야구인생을 정리할 나이다. 연봉 27억원은 KBO리그 역대 최고라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뿌리에서 화룡점정을 찍어 야구인생의 서사를 완결하려는 의지가 컸을 터이다. 연봉 중 10억원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계약 내용에서 그의 진정성이 보인다.추신수가 고향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 대신 신세계그룹 구단에 입단한 건 순전히 SK 와이번스의 지명권 때문이다. 짓궂게도 자이언츠는 신생 신세계그룹 구단의 처녀 경기 상대라고 하니 팬들의 관심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추신수를 바라보는 부산과 인천 팬들의 반응이 궁금하다.프로야구는 구단, 선수, 연고지 3박자가 어우러져야 한다. 이중 하나가 빠지면 반신불수가 된다. 인천 야구 팬들은 연고 구단의 잦은 교체로 마음의 상처가 깊다. 신세계그룹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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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최재형 선생' 고손자 '초이 일리야' 지면기사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다. 상해임시정부를 후원한 것은 물론이고, 1908년 독립운동단체인 동의회를 설립하고 산하에 연추 의병을 창설해 일본군과 무장투쟁을 벌였다. 연추 의병의 참모중장이 바로 안중근. 최 선생은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직접 지원했다. 대동공보를 인수해 항일 언론 투쟁을 벌였고, 연해주 한인마을엔 학교를 세웠다. 상해임시정부 재무총장과 블라디보스토크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이기도 했다. 1920년 일제는 연해주 토벌 작전을 벌여 최 선생을 즉결 처형했다.최 선생 순국 이후 유족들의 행적은 처참했다. 최 선생은 4남 7녀를 두었는데 소련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 일대에 뿔뿔이 흩어졌고, 피의 숙청이 난무했던 스탈린 시대에 희생당한 자식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는지 장손의 혈통만은 끊기지 않았다. 최 선생의 장남 초이 표트르(최운학)는 최 선생보다 먼저 사망했지만 초이 인노겐티를 남겼고, 그의 아들 초이 세르게이는 또 초이 일리야 세르게예비치(19)를 남겼다.초이 일리야는 현재 인천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다. 인천대가 순국선열의 후손에게 조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자는 뜻을 밝혀 성사된 유학이다. (사)최재형기념사업회가 일리야의 국내 후원을 대리했다. 그런데 일리야가 지난 설 연휴에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 신장 기능이 약해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데 의료보험이 안돼 수술비 걱정이 컸던 모양이다. 이런 걱정이 경인일보 보도(2월17일자 6면 '의료보험 혜택 못받는 독립운동가 후손')로 알려지자 바로 해결됐다. 수술비 전액을 인천시와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이 분담하기로 했다. 덩달아 일리야와 기념사업회에 대한 후원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니 흐뭇하다.광복회는 지난해 12월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에 이어 지난 1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최재형상'을 수여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기념사업회가 버젓이 운영 중인 최재형상을 광복회가 가로채 여권 인사에게 수시로 남발한다는 비판이었다. 일리야를 포함한 전 세계 최 선생의 유족들은 기념사업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