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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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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늪에서 띄우는 편지 지면기사
창녕 우포늪에 오면 1억4천만년 전 태고의 시·공간을 만날 수 있다. 여름의 우포늪은 온통 개구리밥, 마름, 생이가래 등 수생식물들로 덮여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늪가엔 수양버들이 군락을 이루고 늪은 꿈을 꾸는 듯 평화롭다. 여름의 늪은 왕성한 생명의 숨결로 차 있다. 소벌(우포), 나무벌(목포), 모래벌(사지포), 쪽지벌 등 4개 늪을 총칭하는 우포늪은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의 230만㎡에 걸쳐 분포하는 국내 가장 큰 내륙습지이다. 여름 방학 기간이라 초등생 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늪에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잠자리들이 공중으로 떠다니고, 미루나무 위에서 매미는 원시 공간을 짜르르 울리고 있다. 쇠물닭들이 수면을 첨벙거리며 물결을 튕긴다. 낙동강 유역 창녕, 함안지역은 늪지지역이 굉장히 넓었으나 대부분 매립되어 늪의 90%가 소실되었다. 그런데도 우포늪이 이나마 남아 있는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우포늪이 시멘트 공간으로 변하지 않고, 대단위 공업단지나 아파트단지가 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어딜 가서 우포늪 같은 태고의 공간을 찾으며, 생명의 보고(寶庫)를 볼 것인가.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사박물관이다. 금년 1월에 세계적인 자연사박물관인 워싱턴국립자연사박물관에 가 본 적이 있다. 공룡연구소까지 갖춘 이 자연사박물관엔 과학적인 시설과 자연계와 인류 역사를 테마로 한 1억2천400만점의 소장품이 있다. 선사시대 각종 동·식물을 비롯해 전 세계 각국의 자연사 유물들이 전시돼 관람객을 압도하지만,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자연사박물관은 이미 '자연'과 '생명'을 상실했다. 거대한 야수에서부터 작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는 생명을 상실하여 표본과 박제품이 되어 진열돼 있을 뿐이다. 관람객들은 동물들의 주검을 보면서 그들이 살았던 숲과 늪지를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자연사박물관을 메운 관람객 중에 6세의 소녀가 어머니 품속에서 울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소녀는 "이곳에 있는 동물들이 모두 죽어 있어요"라며 울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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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서 지면기사
소낙비가 지나간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매미들이 와르르 운다. 햇살은 지구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며, 지상에 따가운 햇볕을 보낸다. 이 세상 모든 나무와 풀들이 그 햇살을 받아들여 결실을 다듬어간다. 인간들이 아무리 '철'없이 곡식을 가꾸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생태와 순환을 조정하려 해도 오고 가는 계절은 어떻게 하지 못한다. 강가에 구절초 꽃이 핀다. 따라서 쑥부쟁이도 필 것이고, 마타리 꽃도, 물봉선화도, 고마리 꽃도 피어날 것이다. 억새도 패고, 강아지풀도 패고, 그 억센 바라구 풀도 꽃이 필 것이다. 봄여름 동안 피지 않았던 풀과 나무들의 꽃들이 다 핀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모든 나무와 풀은 다 꽃이 핀다. 한 떨기 가을꽃을 바라보는 것은 어김없는 자연을 보는 것이다. 어김없는 저 가을 앞에, 계절 앞에 고개 숙여라. 저 위대한 자연의 질서와 순환 앞에 무릎 꿇어라. 겸손하라. 올해는 소낙비가 유독 많았다. 비가 하도 국지적으로 그것도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기상청도 그 비의 게릴라성에 두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기상청의 날씨 오보를 가지고 말도 많았다. 그러나 기상청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우리 인간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사는 지구의 기후가 변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여름날 소낙비는 모든 곡식에게 거름이요 약이다. 특히 벼가 동 베어가는 8월 중순을 넘어서서 소낙비가 내리고 날씨가 확 들어버리면 햇살은 정말 뜨겁게 대지에 내리쬔다. 동네 어른들이 그런 날씨를 보며 "하따, 벼가 한 뼘씩은 커 불것다" 하시며 좋아하신다. 아닌 게 아니라 소낙비가 뚝 그치고 난 후 벼를 보고 있으면 벼가 쑥쑥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1년 중 가장 늦게 씨를 뿌리는 배추와 무씨를 뿌리고 쪽파를 심을 때다. 대개의 곡식은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을 하는데, 그 중에 무와 배추와 쪽파는 한여름에 씨를 뿌려 가을 늦게 거둔다.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배추 씨를 땅에 묻으며 물었다. "어매, 왜 이렇게 한구덩이에 여러 개의 씨를 묻어?" "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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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태극기 지면기사
광복 63주년과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은 8월이다. 연구실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언덕의 대형 태극기는 하늘에 계신 어머님과 태극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와함께 태극마크를 단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조국의 명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삼 조국의 의미를 생각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수없는 외침으로 짓밟히고 갈갈이 찢겨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우리 국민 특유의 민족혼이 자유민주주의와 맞물려 그 많은 상처를 치유했다. 아직은 분단의 아픔은 있지만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이 된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바로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들의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이었다고 생각한다. 보릿고개와 배고픔이 상식으로 통했고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였던 1960년대, 한국 젊은이들에게 외국 유학은 꿈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목표였다. 결핵으로 힘들었던 것을 털고 1969년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쥐어줄 100달러(당시 정부에서 허용한 돈)를 마련할 길이 없어 힘들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쩌면 아들의 유학은 유일한 희망이었고, 가난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삶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어렵게 마련해주신 100달러는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님의 애틋한 사랑 그 자체였다.그해 겨울 유난히 눈이 많았던 유학길에 오르기 전날 밤 어머니께서 내방에 들어오셨다. 떠나기 전 어머니께서는 내게 눈물과 정감을 나누어 주시는 대신 하얀 종이에 곱게 싼 것을 건네주시고는 조용히 방을 나가셨다. 순간 내 손안에 들려진 무게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은 무엇일까? 평소에 말씀이 적으셨고, 아무리 힘들어도 7남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주신 종이를 풀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깨끗한 태극기' 한 장이 얌전히 접혀 있었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펼쳐들고 오랫동안 어머니 마음 앞에서 가슴이 메는 통증을 느꼈다. 교육을 받지도 못한 어머니가 단돈 100달러를 가지고 유학을 떠나는 아들에게 주신 태극기에는 어떤 의미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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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눈' 지면기사
티베트를 비롯한 히말라야 일대의 사원에 가면 사원꼭대기에 커다랗게 한개의 눈이 그려져 있는 걸 흔히 보게 된다. 기념품 가게에서도 이 외짝눈이 새겨진 T셔츠나 돌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원 입구에서 쭉 찢어진 커다란 눈을 만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마치 숨기고 싶은 내 오장육부를 투사하는 듯한 눈빛이다. 이 눈을 흔히 '제3의 눈'이라 부른다. 이는 영혼의 눈이다. 티베트에서의 전통적인 수행방법은 일반적으로 존재의 근원인 절대적 본성을 똑바로 보는 정견이 그 첫째이고, 정견을 확고히 다져 끊이지 않는 체험으로 다지는 명상이 그 둘째이며, 그러한 정견과 명상을 우리의 실재, 또는 현실적인 삶 전체와 합일시키는 행위가 그 셋째이다. '제3의 눈'이란 말할 것도 없이 정견을 위한 눈이다.사람에겐 눈이 두개 있다. 좌우에 눈이 있는 것은 넓게 보자는 것보다 오히려 똑바로 보자는 뜻에 더 부합된다. 한쪽눈만 가지고선 아무래도 사물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개의 눈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보는 것은 우리가 흔히 사실이라고 믿는 현상에 불과하다. 객관적 현상을 똑바로 보자는 사실주의적 세계관이 바로 이 두개의 눈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현상은 곧 진실인가.사실주의적 세계관의 문제는 진실이 항상 사실이나 현상과 완전히 부합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고약하게도 사람은 보는대로만 알고 보는대로만 느끼고 보는데로만 삶을 운영하지 않는다. 사람은 두개의 눈으로 현상을 보지만 보이지 않는 '제3의 눈' 으로 현상 너머의 다른 본질을 또 본다. 그것이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거창하게 본성을 꿰뚫는 영혼의 눈이라고까지 갖다붙일 것도 없다. 문화적 인간과 야만적 인간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는 '제3의 눈'이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억의 눈과 상상력의 눈을 말하는 것이다. 사물을 볼 때 사람은 어떻게 보는가. 사람이 생물학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현상에 불과하지만 은밀한 내적 통로를 통하여 그는 그 현상을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기억과 상상력을 보태어 해석한다. 이를테면 숲을 보면서 수목장이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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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광장 지면기사
도시엔 광장, 집에는 거실이란 소통 공간이 있다. 도시나 가정이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인터넷시대가 되자 광장, 거실이란 소통 공간이 퇴조하고 만다. 한 공간에 함께 모여 의사교환을 하던 방법에서 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의사교환을 나누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일찍이 상상할 수 없던 변화를 가져왔다. 대중에게 가려지기 마련이었던 개인의 생각과 의견이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여론을 주도한다. 익명성을 지닌 인터넷이 온갖 의견과 생각을 쏟아 붓고, 성인이라면 거의 하나씩 휴대하고 있는 휴대폰과 디지털카메라가 순간을 포착하여 인터넷을 통해 유통시킨다. 광장과 거실이란 소통 공간의 효용성이 차츰 줄어들게 되었지만,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소통의 양(量)은 증폭되고 시·공간을 초월한다. 대표자를 뽑아서 민의를 반영하는 간접민주주의 제도에서, 인터넷시대의 도래는 소통의 혁명을 몰고 왔다. 대표자의 입 하나만을 바라보던 종전과는 달리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입이 생겨난 셈이다. 인터넷은 이제 소통의 광장이고 삶의 숨결이고 표정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사이버 광장이다. 직접 만나 얼굴 표정을 보면서 나누는 소통감과는 거리가 멀다. 소통의 원활과 거리낌 없는 방법에도 불구하고 현장과 체감의 결핍을 느낀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교감과 소통에서 늘 부족감을 지녔던 직접 만남과 소통의 결여를 보완한 형태가 다름 아닌 '쇠고기 촛불 집회'이다. 이번 촛불시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나의 사회적인 문화적인 혁명의 조짐을 지닌 이 현상을 두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이라고 보는 견해, 직접적인 민주주의의 서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에 이 같은 현상이 왜 나타나게 된 것일까. 인구밀도가 좁은 데다 인터넷 이용자가 많은 점, 정치 관심도가 높은 국민성, 보수와 진보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촛불집회의 시발로 앞으로 빈번하게 촛불이 시청 광화문 광장을 덮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중요한 이슈나 국가적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제대로 대안을 내놓지 못할 때, 촛불이 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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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나무 밑이 텅텅 비어간다 지면기사
남도 쪽 마을을 지나다 보면 마을 앞에는 여지없이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정자나무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 정자를 짓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을 앞에 있는 정자나무는 마을의 앞을 지켜주고 마을 뒤에 있는 느티나무는 마을의 뒤를 지켜 준다. 마을 앞 들 가운데에도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이 있는데, 이 나무는 들을 지켜 주는 나무다. 마을과 마을의 경계나 산마루에도 느티나무를 심어 가꾸기도 했다. 마을 앞 허전한 곳에 이 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주기도 했고, 마을 강가에 심어 강물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준다. 작고 조촐하고 가난한 마을의 뒤나 앞에 심어진 느티나무는 수령이 오래 가고 또 모양이 풍성해 보여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마을을 풍요롭게 가꾸어주기도 한다. 정자나무라고 하고 당산나무라고도 하는 이 나무의 종류는 대개 느티나무, 팽나무, 또는 서나무가 많다. 어떤 마을은 소나무나 참나무로 정자나무나 당산 나무를 삼은 마을도 있다. 우리 마을에는 네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마을 앞 강 언덕에 심어 가꾼 이 느티나무를 정자나무라고 부른다. 이 정자나무는 한 15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평생을 홀로 사셨던 서춘 할아버지가 심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여름이 되면 마을의 모든 남자들은 점심을 먹고 다 이 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잎이 무성한 이 나무는 그늘이 넓고 짙었다.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이 나무 아래 들면 바람이 일고 땀이 갰다. 나무 아래는 넓적한 돌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어서 사람들이 편히 누워 낮잠을 잘 수 있었다.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은 짚신을 삼기도 했고, 장기를 두기도 했고, 아이들은 모래를 가지고 놀기도 했고, 고누를 두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마을의 일로 대판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나무 아래에서는 마을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났다가 오랜 시간 동안 마을 사람들 입줄에 오르내린 후 이 나무 아래에서 또 해결이 되었다. 비유하기가 좀 '거시기' 하지만 이 나무는 마을의 '국회의사당'이었다. 우리 마을의 모든 역사를, 우리 마을 사람들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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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과(文史哲科)로 마음에 무지개 지면기사
이 시대를 과학기술이 역사를 선도하는 시대라 한다. 다양한 과학기술의 빠른 발달은 일반 대중은 물론 때론 과학자들의 생각마저 앞질러 갈만큼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100년 전에는 일상생활용품이 200여개였는데, 지금은 3만2천개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불확실성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그 불확실성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모든 분야에서 균형감각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환경문제, 자원문제 등 모든 것은 인간의 욕심으로 야기된 균형감각의 상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왜 무지개는 아름다운가!어느 날 '문사철과(文史哲科) 600'이란 글을 읽고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좀 아쉬웠던 것은 과학기술이 역사를 선도하는 시대에 과학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사철과(文史哲科) 700'을 권하고 싶다. 이는 문학서적 300권, 역사서적 100권, 철학서적 100권 그리고 과학서적 200권 플러스 좋은 시집들을 이삼십대에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사철(文史哲)에서 문학은 언어의 보고, 역사는 체험의 보고, 철학은 초월의 보고라고 한다면 과학은 전적으로 자연의 오묘한 질서에 의한 것으로 신비의 보고 혹은 진리의 보고라고 하고 싶다. 모든 학문을 통해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바로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인문·사회·과학 등 다양한 책들을 접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가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며 건강을 유지하듯이, 우리들의 생각도 다양한 지식을 통해서 균형 감각을 가지며 우리의 사고력과 상상력을 향상시켜, 지식을 지혜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혜는 지식보다 입체적이고 균형 감각이 있어 사물을 단순한 흑백논리보다도 다양한 색을 가진 무지개 논리로 판단하는 것이다(참고로 빛은 작게는 7가지 색으로, 많게는 수천가지의 색을 가지고 있으며 빛 속의 여러 가지 색으로 우주의 과거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는 곧 우리들의 생각에 아름다운 무지개 색깔을 칠하는 것으로 균형 감각이 있고 법과 질서를 지킬 줄 아는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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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에서 생각나는 것들 지면기사
등산로 입구엔 '보리밥집'이 꼭 있다. 손님들은 주로 장년과 노년층이다. 그들은 보리밥이 꼭 좋아서 먹으러 온다기보다 보통 추억을 쫓아서 보리밥집에 온다. 절대빈곤의 시절 눈물로 비벼먹던 보리밥에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내게는 위로 누나들만 네 분이었다. 어린시절, 어머니는 겉보리를 앉힌 무쇠 솥 한가운데 쌀을 한줌이나 될까 말까 하게 얹고 밥을 해서 쌀쪽만 푹 퍼내어 내 밥그릇에 담았다. 당연히 누나들은 모두 보리곱삶이 밥을 먹었고 나는 보리가 섞인 쌀밥을 먹었다. 한 번은 불만에 가득한 막내누나가 자신의 밥을 잿간에 내다버린 적도 있었다. 막내누나로선 억울한 분풀이를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보리곱삶이래도, 복터진 줄 알아야지!"어머니는 종주먹을 들이대며 말하곤 했다. 방귀 한두 번 뀌고 나면 뱃속이 툭툭 가라앉고 마는 게 보리밥이었다. 그러나 보리밥조차 배불리 못 먹을 땐 보릿가루나 밀가루 등으로 풀떼기를 쑤어먹었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맹물이나 마시며 끼니를 그냥 걸렀다. 어머니 젊었을 때는 왜인들이 거름으로 실어온 상한 깻묵으로 죽을 끓여먹기도 했다고 했다.나는 보리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나들한테 뒤통수를 쥐어 박히면서 쌀 섞인 보리밥을 먹고 컸지만, 어쨌든 보리밥은 여러모로 내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식량폭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카메룬에선 식량문제에 따른 폭동으로 수십 명이 죽었고 아이티 역시 사람이 죽고 총리까지 해임됐다. 식량폭동은 중남미와 아랍지역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까지 도미노처럼 나날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기름값이 치솟는데 따라 식량 값은 더욱 더 오를 것이다. 식량 생산비의 90% 이상이 석유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트랙터 운행은 물론이고 농약과 비료생산, 수확과 운송 저장 등 모든 생산과 유통과정에 기름이 필요하다. 오일쇼크는 보나마나 식량쇼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더구나 석유고갈에 대비해서 곡물을 발효시켜 자동차 등에 연료첨가제로 사용하는 마이오에탄올 개발에 선진국들은 이미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곡물생산량의 40%를 선진국에서 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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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현상학 지면기사
2008년의 우리 화두는 '촛불'로 집약된다. 한국에는 지금 촛불뿐인 듯하다. 촛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형국이다. 촛불 때문에 한 치의 앞을 내다볼 수도 없다. '당신들도 조용하게 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침착하게 빛의 일을 하고 있는 경쾌한 불꽃 앞에서 가만히 숨 쉬어 보라'.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시인인 가스똥 바슐라르(1884~1962)가 그의 저서 '촛불의 미학'에서 한 말이다. 촛불이 방안에 켜지는 순간, 촛불이 놓인 자리는 우주와 사색의 중심점이 된다. 촛불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바라보도록 강요하고 있다. 촛불을 함께 응시함으로써 우리는 이 순간 한 공간에 있음을 인식한다. "창조에 있어서 '삶'이라고 불려지는 것은 모든 형태, 모든 존재를 통하여 오직 하나의 동일한 정신, 즉 유일한 불꽃이다." 바슐라르는 촛불을 보면서 몽상과 철학과 존재의 미학을 탐구했다. 촛불은 아픈 사람을 간호한다든가, 누가 죽었을 때 추모하기 위해 밝혔다. 제의에서도 촛불은 사용된다. 초를 태워 빛을 만드는 것을 보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가 되며 집중력과 정신의 심지에서 촛불이 되어 타오르는 걸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촛불은 어느새 제의적이거나 미학적인 의미를 벗어나 항의, 저항, 농성의 시위행위로 바뀌었다. 큰 사건 때마다 촛불을 들고 모이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촛불문화나 촛불정치라는 말이 등장하고, 이제 이러한 집단행동이 정당화되고 미화되고 있다. 무슨 일에나 촛불만 들고 나가면 정당하고 의미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한 현실이 놀랍다. 이 촛불행사는 '촛불시위' 또는 '촛불집회'라고 하다가 이제는 '촛불문화(제)' '촛불정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바람에 꺼질듯 가냘프고 여린 의미의 촛불이 한국에서 시위나 저항, 공격 등의 거친 의미로 바뀌게 된 것은 한국인들의 강한 집단저항 성향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정부의 쇠고기 협상이 잘못 됐다고 생각하여 촛불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많겠지만, 남들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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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마거사를 생각하다 지면기사
촛불로 뜨거운 6월이다. 거리로 내려온 별무리처럼 총총 빛나는 불꽃을 따라, 어느 가난한 병자를 떠올린다. 그의 이름은 유마다. 작년 여름 인도를 떠돌 기회가 있어 바이샬리란 도시에 들렀다. 흙탕물 속을 헤엄치는 물소 곁에서 일분을, 한 시간을, 한나절을 흘려 보냈다. 홍수 탓에 길이 끊긴 저 건너 마을이 바로 내가 꼭 방문하고 싶었던 참 맑은 영혼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유마다.1980년대 유마는 종교적 색채와 무관하게 민중 속으로 들어가서 민중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지식인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마경' 곳곳에 보살의 대비심(大悲心)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뜨거웠다. "자식이 병들면 부모도 병들고 자식이 나으면 부모도 낫습니다. 보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중생을 마치 외아들처럼 사랑합니다. 중생이 병들면 보살도 병들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도 낫습니다."중생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는 유마의 목소리는 황지우 시인의 '늙어가는 아내에게'에서 놀라운 사랑 고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 몇 날 밤을 잠 못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같은 병을 앓고 싶다는 말보다 더 가슴 절절한 말이 있을까. 같이 '죽는' 일은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같이 '앓는' 일은 서로를 품고 이해하는 제법 긴 '동안'이다. 그의 병까지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에 감내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으리. 흔히 사랑 이야기에 질병이 동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병이 결핵이든 암이든, 사랑 이야기에는 궁극적으로 함께 아파하고픈 갈망과 더 이상 함께 아파하지 못하는 절망이 교차한다. '늙어가는 아내에게'를 읽은 후,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을 펼쳐드는 것도 이 도저한 은유에 매혹된 탓이다. "어느 날 밤 에이즈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그거라도 남겨 놓았는지 모르잖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질병일지라도, 사랑하는 이로부터 나왔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