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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시대 주역' 국민? 재벌? 지면기사
요즈음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표현이다. 새 정부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정부론'은 여러 방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말은 '친기업'이지만, 그 혜택은 고스란히 몇몇 재벌대기업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인수위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출총제 폐지' '금산분리원칙 완화' '지주회사 규제완화' 등은 잘 알려진 것처럼 몇몇 재벌의 숙원사업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92%는 출총제 폐지에 아예 반대한다고 하니 사실 이런 제도개선은 중소기업들과는 그다지 큰 이해관계가 없다. 중소기업에 계열사 출자문제나 지주회사 규정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이며, 금산분리 완화라는 것도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몇몇 재벌기업의 이야기이지 중소기업이 은행 같은 금융기관을 사들일 엄두나 낼 일인가? 따지고 보면 새 정부는 재벌의 오래된 민원에 대해서는 일종의 '현찰'을 내밀고 있지만, 전체 고용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민원은 언제 현실화될지 모르는 '어음'으로 돌려막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핵심적으로 내놓은 정책이 중소기업지원펀드 조성이다.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행 매각대금으로 중소기업지원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이 5~7년 후, 즉 차기 정권에서나 현실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한 것이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불공정거래와 횡포를 차단하는 일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당선인이나 인수위의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돈이 될 만한 사업이면 대기업이 밀고 들어와 중소기업 문닫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하도급 과정에서 '일방적 계약해지'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훔쳐가기' 등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는 이만저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를 해결할 대안은 많이 나와 있다. '정부차원의 중소기업 법률지원, 대행'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납품가 원자재 원가연동제' 등이 그것이다. 재벌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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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에 대한 오해와 진실 지면기사
이명박 당선인이 선거공약으로 내 건 연 7% 경제성장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인수위는 고유가 등 대외 여건의 악화를 감안하여 올해 성장목표를 6%로 하향조정하였다고 한다. 어쨌든 경제성장이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가 원하는 성장은 대다수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을 가져오는 성장이다. 이러한 성장은 개인의 삶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거의 예외없이 더 많은 기회, 다양성에 대한 관용, 사회적 신분 상승 가능성 증대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 등 사회·정치·문화, 나아가서는 개인의 도덕적 성격을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배양하는 최상의 토양이다.미국에서는 2차 대전 후 60년대 전반까지의 활발한 경제 성장이 토대가 되어 케네디 대통령 이래 흑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되고 빈곤층 대상 복지 프로그램이 확대되었으며, 소수자의 가치관 존중 등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확산되었다. 반면, 1970년대 들어 지속된 경제침체의 영향으로 1980년대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들의 흑인에 대한 대학입학 할당제 폐지 등 소수자에 대한 배려 축소, 이민에 대한 반감 증가 등 그 동안의 정치·사회·문화적 발전을 되돌리는 현상이 나타났다.우리나라는 70년대 이후 외환위기 전까지 연 7%를 넘는 성장을 통해 1960년 50세에 불과하던 기대수명이 1980년 65.7세, 2000년 76세로 늘어나는 등 대다수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크게 향상시켜 왔을 뿐만 아니라 성장의 토대 위에 정치 민주화에 성공하였고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 배려 등 다양성에 대한 관용, 사회적 신분상승 기회제공 등 바람직한 정치·사회·문화적 발전을 이룩해 왔다.그러나 외환위기 후에는 경제성장이 연 4% 수준으로 크게 둔화된 가운데 일자리 창출도 연 30만개 이하로 줄어든 결과, 청년층 경제활동 인구가 2004년부터 4년 연속 감소하였으며, 15세 이상 인구의 고용률이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치는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청년층은 취업걱정, 장년층은 실직걱정에 시달리는 고달픈 상황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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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戊子年)의 국제정세 전망 지면기사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달이 지고 해가 뜨는 자연현상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부여하여 달력을 만들고 해(年)를 구분하는 것은 우리 인간만이 할 수 있으며 해가 바뀔 때 사람들은 앞일을 예측하면서 새 희망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무자년 새해도 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바람을 안고 기지개를 편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벽두부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고 있어 국민 모두를 안타깝게 하고 있지만 아직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10년만의 정권교체로 새 정부가 출범하는 우리에게 올 한해동안 국제정세는 과연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예측력을 동원하여 앞을 내다본다면 다음과 같은 네가지의 전망이 가능하다.우선 첫째,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프랑스·일본·호주 등 세계 주요국에서 정권교체 내지 정부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곧 이들 국가의 대외정책 노선 변화로 이어져 새로운 국제안보 환경이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2009년 미국 행정부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뀔 가능성은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문제, 북핵문제, 기후변화문제에의 대응 등 주요 국제현안에 대한 정책기조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중국·러시아 등 이른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부상함에 따라 미국중심의 '단극적 국제질서'에도 일정한 변화가 예고된다.안보환경의 변화 속에서 국제사회가 직면할 가장 중요한 현안은 기후변화에의 대응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기후변화가 환경·안보·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 감축문제는 선진국의 에너지 사용, 경제구조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 목표 설정과 이행방법을 둘러싸고 국가들간의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둘째, 세계경제 측면은 새해초부터 나타난 고유가 행진이 보여주듯 불안정성과 불균형성이 내연하는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고유가와 함께 중국·인도 등 신흥시장국가의 자원수요 급증, 유동성 과잉에 따른 투기적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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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인생 지면기사
새해 첫날, '삼국유사'를 편다. 고전(古典)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게는 읽어도 읽어도 또 읽고 싶은 책이 바로 고전이고, '삼국유사'는 항상 첫머리에 놓인다. 올해 내 눈길을 끈 대목은 인도까지 다녀온 신라 승려들이다. 아리나, 혜업, 현태, 구본, 현각, 혜륜, 현유 등이 당나라를 거쳐 인도로 갔고, 현태를 제외하곤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유학길에 올랐던 원효가 해골 물을 마신 후 발길을 돌린 일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왜 어떤 승려는 죽을 각오로 그 먼 오천축(五天竺)까지 가고 왜 어떤 승려는 토굴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몇 년을 두문불출할까. 마르코 폴로나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읽을 때도 비슷한 의문이 들었다. 이들을 평생 떠돌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지구촌 가족이니 글로벌 시대니 하는 단어들이 유행해도, 집 떠나면 고생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철저히 준비하고 나선 여행길도 작은 방심이나 뜻하지 않은 실수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때마다 따뜻한 고향 인심과 내 가족의 밝은 얼굴이 그립다. 당장 돌아갈 마음이 굴뚝같은데도, 여정을 접지 못하는 것은 낯선 길로 뛰어든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일상을 벗어던지고 이곳까지 왔는가. 자문자답의 밤이 길어진다.2007년 내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행가 혜초의 발길을 좇느라 분주했다. '왕오천축국전'을 펴들고 여름에는 2주 동안 인도를 돌았고 가을에는 또 2주 동안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지 못한다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따라 길게 뻗은 실크 로드를 다녔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혜초가 여행을 시작한 중국 광저우와 숨을 거둔 오대산을 살필 예정이다. 답사여행을 통해 나는 혜초의 단정하고 깊은 문장에 새삼 감탄했다. 가령 혜초는 이렇게 적는다. "다시 소륵에서 동쪽으로 한 달을 가면 구자국에 이른다." 소륵의 현재 지명인 카슈가르에서 구자국의 현재 지명인 쿠차까지는 기차로 15시간이 넘게 걸린다. 긴 사막 길을 가는 동안 혜초는 수많은 난관에 봉착했을 것이다. 현재 서점에 진열된 각종 여행기에는 낯선 길의 고통과 신기한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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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과 대작(代作)이라는 속임수 지면기사
연말 대선 등 정치기사에 치여서 크게 부각은 안 되었지만, 박사학위를 둘러싼 온갖 비리를 알리는 기사가 내 마음을 또 한 번 어둡게 하였다. 모 체육대학 강사로 일해 온 아무개 씨가 그 학교의 박사과정을 둘러싼 금품 거래와 논문 대필 등 비리 내막을 수사당국에 고발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나라 체육계 지도급 인사들도 여러 사람 연루되어 있다니, 예사롭지가 않다. 미술계 중진인 유명한 화가 한 분의 박사학위 논문 대필 의혹도 기사화되어 널리 알려졌다. 그런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박사 학위를 둘러싼 불미한 행태가 적잖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심 봉사 개천 나무라는 식으로 말하자면, 박사라는 '명예'가 문제의 근원이다. 그리고 정당한 노력과 성과 없이 가짜를 탐하는 그 허욕이 문제다. 그러지 않고서야 체육인이나 미술인까지도 굳이 그런 시비의 여지를 무릅쓰고 박사가 되려고 할 리가 없다. 심지어 성직이라 할 목사들 중에도 편법 내지 가짜 박사가 적지 않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거기에는 표절이나 대필이 으레 한몫을 하게 마련이다. 표절은 남의 글을 훔쳐다가 제 것처럼 써먹는 문화절도 행위다. 대필은 남을 시켜서 대신 글을 쓰게 하는 수법으로서, 대개 특수관계나 금전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표절하는 만큼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한층 더 나쁘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비법이 작용한다. 석·박사의 92%가 논문 부정을 저질렀거나 본 적이 있다고 하는 통계도 나왔었다.저작권법 분야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올해에 적지 않은 충격을 경험했다. 일년 내내 저작권 관련 기사가 매스미디어를 장식했다. 그 중에는 FTA 협상에 연관된 저작권법 개정 논의나 정보의 디지털화에 따른 법적 분쟁 대응 등 전향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낯부끄러운 구시대적 고질도 만만치 않았다. 표절과 대작의 치부가 언론과 사회의 일대 관심사로 부각되어 심지어 대대적인 톱뉴스로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특히 부총리나 대학 총장 같은 고위직 인사의 표절 의혹에 대한 융단폭격식 성토 기사는 우리나라 저작권 풍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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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권 대북정책의 과제 지면기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번 선거과정은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 제대로 된 정책 점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문제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정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부터 당선자의 정책에 대한 보다 꼼꼼한 검토와 비판 그리고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 대북정책은 핵심적인 논란거리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두번의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진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의 중심에는 핵개발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북한의 태도가 있었지만, 보다 꼼꼼히 따져보면 정권에 대한 반감이 대북정책을 매개로 표출된 점도 없지 않다. 다행히 북한의 태도변화와 미국의 정책 전환으로 핵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점증되고 있고, 더 나아가 북미관계 정상화 그리고 한반도 지역의 평화정착의 분위기가 강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들어서는 새로운 정부는 어떤 면에서 북한핵문제와 동거(?)하였던 현 정부보다 훨씬 유리한 입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NLL문제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고 북한 핵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착단계에 들어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등 기존 정부의 성과도 고스란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사실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남남갈등'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사회적 분란이 적지 않았지만, 평화와 협력을 바탕으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는 전략은 노태우 정부시절에 확정된 '한민족공동체방안'에서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2·13합의 이후 한나라당에서 현정부의 대북정책도 근본은 자신들의 통일방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올바른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대북정책을 정쟁의 도구로 삼았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오히려 정권이 교체되면 대북정책을 정쟁화하는 분위기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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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 우리와 남, 그 관계는 지면기사
'우리가 남이가!' 지난 날, 어느 대통령이 내놓고 큰소리 친 말이다. 그전서부터 누구나 자주 쓰던 이 말이 그 뒤로 새삼 유행어가 되다시피 하면서 사람들의 입길에 곧잘 오르내리기도 했다. '우리가 남이가!', 이 발언은 물론 얼마든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동지나 동료들 또는 동학들의 합심이 나쁠 턱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가 남이가!'를 함부로 나무랄 수 만은 없다. 흉볼 수 만은 없다. 그 말로 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경구(警句)가 힘을 얻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남이가!', 바로 그 말을 일방적으로 칭송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이 배타적인 뉘앙스도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남이야 어떻든 우리가 (내가) 알 게 뭐야!' '우리만 잘 어울리고 잘되면 그만이야. 남들이야 죽을 쑤든 밥을 굶든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어'. 이런 따위 뜻도 거기 진하게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이가!' 그 말이 지닌 양지와 음지, 그건 원칙적으로는 반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삶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 한국 사회 속에 껴들고 보면, 양지보다는 음지가 더 짙게 끼쳐져 있는 게 사실일 것 같다. 거리에서, 지하도 계단에서, 광장에서 또 슈퍼나 마트에서는 그 음지가 너무나 짙게 드리워져 있다면 과장일까? 도시의 횡단보도에서 좌우 통행을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좁은 계단 오르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무질서다. 앞에서 오고 있는 사람, 계단을 밟고는 마주 보고 오는 사람, 그들은 거의 안중에 없다. 나만 알아서 제 빨리 차고 나가면 그걸로 그만이다. 서로 부딪치건, 상대방 앞을 가로지르건 전혀 무관심하다. 제 갈 길 제 멋대로 가면 그걸로 그만이다.공공건물의 문을 드나드는 풍경은 더 문제가 많다. 들고 나는 사람 가운데 자신을 양보하거나, 비켜서거나 하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 하물며 자신이 들어서려다 말고 안에서 나오는 상대방을 위해서 이미 열린 문을 잡고는 기다리고 서 있는 사람을 본다는 것은 기적이다. 다들 제 깜냥대로다. 나만 있고 우리만 있고 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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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통령을 뽑는 딸에게 지면기사
사랑하는 딸아, 설레느냐? 12월19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느냐? 그날은 너의 손으로 처음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참 많이 컸구나.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아비로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너의 작은 손으로 정부를 세울 수 있으니 말이다.한편으로는 답답한 심정도 숨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일찌감치 후보의 정책과 비전을 보고 투표할 기회를 빼앗겨버린 탓이다. 오로지 후보의 이미지와 구호로만 편을 가르는 선거판을 지켜보며 나도 솔직히 흥이 나지 않는다. 어쩌겠느냐? 그 누구를 탓할 것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혹세무민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엄중히 한 표로 판단하는 일뿐이다. 너와 나의 한 표만이 희망이다.딸아, 머지않아 너에게 투표통지서가 배달될 것이다. 내가 너만 한 나이였을 때는 국가가 나에게 그 용지를 전해주지 않았다. 나는 국민이었으나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없었다. 군부독재자들이 허용하지 않았다. 투표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저항하는 이들에게는 철퇴가 내려졌다. 죽음의 시대였다. 죽음을 삶으로 가까스로 변환시킨 게 1987년 6월이었다. 그 당시 다섯 살 먹은 너를 안고 시위대 뒤를 쫓아가던 일 아느냐?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게 해달라는 것이었지. 항쟁이었다. 국민들의 염원을 최루탄으로 잠재우려던 세력들을 잊으면 안 된단다, 딸아. 그때 흘린 눈물은 핏물이었다.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사를 참고해야 한다. 너는 부디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한 표를 던져라.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다. 민족이 갈라선지 60년이 넘었다. 60년이 넘게 싸우고 으르렁대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세월을 보냈다. 남북의 체제와 이념과 문화의 이질성은 모두 분단으로부터 나왔다. 치고받고 싸우면서 둘 다 가슴에 멍이 들고 말았다. 가까스로 정신 차리고 손을 잡아보자고 한 게 겨우 10년이다. 천신만고 끝에 되찾은 10년이다. 아직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약을 상처에 발라야 한다. 경제나 국방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북한은 남한하고 맞장 붙을 상대가 아니다. 가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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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저작권과 어린 네티즌 지면기사
전남 담양의 한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한 소년을 애도하면서 이 글을 쓴다.열여섯 살 난 그 학생의 죽음이 하필이면 저작권법 위반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는 뉴스는 저작권학도인 나를 매우 침통하게 만들었다. 마침 저작권문화학교 강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어서 더욱 마음이 착잡했다. 그 고교생은 인터넷에서 한 편의 소설을 내려받은 일이 있는데, 경찰에서 저작권법 위반으로 출석요구서가 날아오자 고민 끝에 자살이라는 극한 수단을 택했다고 한다. 사실 지금 세상은 정보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로 엄청난 콘텐츠가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 중에는 사진, 영상, 영화, 소설 등 저작물이 홍수를 이뤄 파일공유 사이트나 인터넷 카페 같은 데서 네티즌들이 얼마든지 퍼올리거나 내려받아 듣고 볼 수 있다.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그 일을 무슨 준법의식으로 막기는 어렵다. 범죄를 옹호하거나 고소인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인터넷 범죄와 관련하여 몇 가지 짚고 넘어갈 사정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저작권 의식은 아직도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 교수들조차 대담하거나 지능적인 표절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드물지 않고, 더러는 그런 일을 약점삼아 마땅치 않은 상대방을 쓰러트리기도 한다. 그 상대방이 손을 들면 그것으로 끝이다. 대학생들은 어떤가? 부산의 한 대학 교수가 학생들의 리포트 채점을 하려고 보니, 110명의 학생 중 39명의 리포트가 똑같아서 표절로 처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학 교수와 대학생들의 저작권 의식이 이러할진대, 10대의 어린 세대들에 어른들도 외면하는 준법을 기대하기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우선 그들은 지능이나 지각 또는 판단력이 어른들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어디서 교육을 받거나 계몽을 받은 적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소년에게 경찰에서 난데없는 소환장(출석요구서)이 날아왔으니, 그 두려움이 어떠했겠는가?서울 어느 경찰서의 경우, 그런 종류의 저작권법 위반 사건의 고소가 한 달에도 300~500건이나 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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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지면기사
2007년 정상회담의 약속대로 남북 총리회담이 2박3일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비록 임기 말이고 선거 국면이라 관심의 초점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8개도 49개항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에 관한 제2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서'와 2개의 부속합의서를 채택할 정도로 성공적인 회담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합의서의 채택이라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회담 분위기도 좋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상회담의 합의사항들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도 앞으로의 전망을 밝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총리회담의 진행과정을 볼 때, 국방장관 회담을 포함하여 남북한간 다양한 회담은 순항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한 평화정착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남북한간의 대화가 활발해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려가 되는 것은 현재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회담간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핵심이 되었던 장관급 회담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총리회담이 정례화되면서 기존 장관급회담은 소멸되는 것인지 아니면 총리회담과 별개로 지속되는지가 불투명하다. 만일 국방장관 회담도 순항하면서 정례화되고, 부총리급이 주도하는 경제관련 회담이 성사된다면, 그리고 남북한간에 이미 합의가 되어 있는 사회문화협력추진위원회가 가동되면 통일부장관이 참여하였던 기존의 장관급 회담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 이산가족 문제 등 남북관계 전반에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총리급 회담을 비롯한 전문분야 회담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문제는 남아있을 수 있다. 2007년 정상회담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으면서도, 합의사항들이 지나치게 구체적이어서 회담의 격에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이 문제가 앞으로 진행될 각종 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