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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따위 없는곳에 살고싶다 지면기사
누군지가 '정(政)'이 뭐냐고 묻자, 공자가 답했다. '정(正), 곧 바른 것, 정당한 것을 취하는 것이니라'.정(政)은 바를 정(正)에 움켜잡을 복()이 달라붙어 있으니 공자의 해석은 일단은 전적으로 옳은 것 같아 보일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다들 우리 현실이 전혀 그렇지 못함을 한탄하게 될 것 같다. 부정을 택하여서는 거기 악착같이 달라붙곤 하는 비중이 오늘날의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상대적으로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한데 공자의 해석은 지나치게 고지식하다. '政'이란 글자의 겉모양만 보고 내린 해석이기 때문이다. 워낙 그 엄밀한 어원을 캐면 , '正'과 '征'은 또 '政', 이들 세 글자는 모두 꼴불견의 개망나니들이다. 발음이 모두 같은데다 뜻도 셋이 모두 그게 그것이다. '正'을 '바를 정'이라고 미화한 것은 후대의 일이다. 그 으뜸의 의미는 남을 치고 부수고 뺏고 하는 폭력을 의미했었다. 그러기로는 정복의 '征'이 다를 것 없다. 그리고 정치의 '政'도 마찬가지다. 셋 다 다같이 깡패고 폭력이고 부당한 무력(武力)이다. 하긴 그렇다. 인류 역사에서 상고대부터 중세기까지 한 집단, 한 국가의 정사(政事) 중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였던 것이 침략이고 전쟁이고 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政'자 풀이가 오늘날에도 일부 국가 또는 일부 집단 전체의 규모에 걸친 정치로서 활개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 현실에서 '政'은 공자의 말을 따르고 있을까? 아니면 '征'과 통하고 부당한 폭력이나 싸움질과 통하고 있을까? 궁금해질 것 같다.아니 판단을 망설이고 뭔가를 궁금해 하고 할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워낙 '正'은 치고받고 하기 그 자체 또는 그 수단이나 방편을 의미했다. 거기에 박살내고 휘갈기고 한다는 뜻의 복()이 야합해서는 '政'자가 생겨난 것이다. 우리의 오늘날의 '政'은 이 본시 의미를 알뜰하게 살뜰하게 지켜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폴리티션'과 '스테이츠맨', 이 두 낱말을 구별한다. 어느 쪽이나 우리말로는 정치가라고 번역이 될 텐데도 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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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즐거움 지면기사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의 관절을 움직이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한 발자국을 옮겨 걷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때부터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걷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준비 태세를 갖춘다. 누가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몸 전체가 걷는 일에 기꺼이 복무하고자 한다.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걷기 시작해 보라. 우리의 몸은 막 시동을 건 엔진처럼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팔은 발걸음에 맞춰 저절로 흔들릴 것이며, 눈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샅샅이 탐색하며 나아갈 곳을 살필 것이며, 귀는 무한히 열리게 되고, 코는 벌름거리게 될 것이다.걷는다는 것은 혼자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발걸음을 떼는 순간, 이 세계는 우리의 걷기에 동참한다. 풍경은 우리가 떠나온 곳이 궁금해 천천히 뒤로 지나가고, 달빛과 별빛은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를 따라온다. 바람은 귀밑머리를 간질여 줄 것이며 땅은 발바닥을 떠받쳐 줄 것이다. 웅덩이는 웅덩이대로, 돌부리는 돌부리대로 유심히 우리의 걷기를 보살펴 줄 것이다. 승용차가 별로 없던 시절, 불과 한 2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참 많이 걸었다. 자동차는 걷기의 추억 따위를 옹호하지 않는다. 자동차는 수수밭머리에 해 지는 풍경도, 마른 수숫대 위에서 뛰는 방아깨비도 보여주지 않으며, 수숫대가 서로 몸을 비비며 서걱대는 소리도 들려주지 않는다. 단지 그것들은 차창 밖으로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일 뿐이다.자동차가 적으면 당연히 오래 걷기 마련이다. 북한을 방문해보면 부지런히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이불 보따리만한 등짐을 지고 걷는 할머니도 있고,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걷는 소녀도 있고, 앉은뱅이책상 같은 걸 어깨에 메고 걷는 소년도 있다. 이제 남쪽 사람들은 의식주를 위해 걷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걸을 필요도 없다. 어지간한 거리는 자동차의 바퀴가 걷는 다리의 수고를 덜어주니까 말이다. 남쪽 사람들이 걷는 이유는 딱 하나, 바로 건강을 위해서다. 비로소 도시의 강변이나 등산로는 아침저녁으로 걷는 사람들로 넘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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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납치사건과 일본의 책임 지면기사
이 글을 쓰던 중에 두 가지 변수가 생겼다. 한국 정보기관원에 의한 납치사건 피해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방문 중 지난번 국정원 진실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불만을 표시함과 동시에 일본정부의 처사에도 강력한 항의를 표시한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의 유명환 주일대사가 위 납치사건으로 일본의 주권을 침해한 데 대하여 일본 외무장관에게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이를 '사실상 사죄'라고 했다. 마침 일본 현지에서 이런 보도를 접하게 된 나는 쓰던 글을 처음부터 다시 고쳐 쓸 수밖에 없게 됐다.국정원의 진실규명위원회가 지난 달 24일 공표한 '김대중납치사건 조사결과'는 지금까지 34년간 은폐되어 왔던 권력범죄를 여러 제약 속에서 그만큼이라도 밝혀냈다는 점에서 대견스러운 일이었다. 그 조사보고는 의혹의 두 핵심에 관해서 결론을 내려놓았다.첫째, 범행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 둘째, 단순 납치가 아닌 살해 목적을 가진 범행이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 및 살해 목적의 유무가 국내적 관심사인데 반해서 범죄 발생지인 일본의 입장에서는 영토주권의 침해 문제가 주된 관심사가 되어왔다. 이번 진실규명위원회의 발표가 나온 뒤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고 나서는가 하면, 새삼스럽게 무슨 수사라도 할 듯한 제스처까지 보였다.지난 34년 동안, 한일 두 나라의 시민단체와 언론 등 각계에서 사건 진상 및 책임 규명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음에도 이를 묵살해온 일본이 한국정부의 진상조사 발표가 나오자 마치 처음 알게 된 듯이 피해자 '사정청취'와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본 당국은 1973년 8월 이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 신변 위험을 사전에 간파하고도 응분의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으며, 육로와 해상의 경비 검문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범인들의 도주 및 납치를 가능케 하였다. 당시 피해자는 한국의 최고 정치지도자로서 박정권의 탄압대상이 된 인물이었다. 일본정부는 그의 신변 안전을 비롯한 기본인권을 지켜 줄 법적인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도 일본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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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이후의 평양 지면기사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평양을 다녀왔다. 대북지원 단체 '남북어깨동무'가 평양 영유아들을 위해 마련한 '콩우유 공장' 준공식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대가 적지 않았다. 전세기를 타고 불과 1시간도 되지 않는 거리의 평양 순안 공항의 외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베트남의 국가수반의 방문으로 베트남항공 비행기가 대기 중이었는데, 최신 기종의 베트남 비행기와 초라한 북한 고려 항공의 비행기들이 대비되어 속은 편치 않았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북한은 전화에 시달리는 베트남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잘 살았는데, 지금의 처지는 비행기 차이만큼 역전되었기 때문이었다. 2년 만에 방문한 평양거리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일반 자동차를 포함하여 전차,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의 왕래 빈도가 높아졌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교통량의 증가는 시민의 유동성 증가를 의미한 것으로, 군밤과 군고구마를 파는 길거리 매대의 증가와 더불어 상업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동강 중간의 양각도의 호텔방에서는 강건너에 있는 시장이 보일 정도로 컸었고, 기념품점은 가는 곳마다 있어 남쪽 손님의 지갑을 탐내고 있었다. 그리고 상점의 점원들은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서 열심이었다. 밤거리는 이제 야경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밝아져 있었고, 새로운 건설 현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외양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양시민들이 활기를 되찾았다는 점이다. 지난번 방북때 함께 갔던 남한의 어린이들이 '소년궁전'의 북쪽 어린이들에게 말을 걸었을 때, 뒤로 빠지거나 쭈뼛거렸던 아이들도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응답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부담스러웠을 남한 손님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과거와 달리 남북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부딪치고, 담소하는 것을 막지 않은 북한 당국의 결정도 의미 있었지만, 평양의 공공장소나 묘향산의 등산길에서 만난 북한사람들 대부분이 남한사람들을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맞아주었다. 평양의 외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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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고통의 축제다 지면기사
작가들의 글쓰기를 흔히 출산의 고통에 비유한다. 예술 작품의 탄생이 그만큼 엄혹한 진통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또한 작가들은 생의 환희나 행복보다는 고통과 결핍에 관심을 갖는다. 이 세상이 아무런 아픔 없는 태평성대라면 문학은 존재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게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까.이렇듯 문학작품과 작가는 고통이 낳은 자식들이다. 다음달 8일부터 14일까지 전주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AALF)에 참가하는 외국작가들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이들의 생의 이력은 하나하나 기구하고, 아프고, 눈물겹다. 그야말로 고통의 축제를 보는 듯하다.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는 루이스 응코시라는 소설가가 있다. 그는 인종차별 정책이 극심하던 60년대에 흑인소년과 백인소녀 간의 성관계를 묘사한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의해 편도 기차표만 받고 강제추방을 당한다. 그렇게 고국을 떠난 후 30여년을 잠비아, 보츠와나, 말라위 등지의 인근 아프리카 지역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지로 유랑한 작가다. 그는 1994년 최초의 흑인 정권인 만델라 정권이 선 이후에야 조국을 찾을 수 있었다.1994년 벌어진 르완다 학살은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이다. 3개월간 거의 100만명의 목숨이 스러졌다. 이 사건의 생생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여성작가 욜란드 무카가사나가 이번 행사에 참여한다. 아프리카의 생소한 나라 기니 비사우에서 오는 작가 로우렐은 자국 내에 국제공항이 없어 인접국인 세네갈까지 버스 편으로 이동을 하고 세네갈에서 다시 유럽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대장정에 돌입한다. 아시아 작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베트남의 여성 소설가 레 밍 쿠에는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유소년 자원군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이력이 있다. 그녀는 5년의 군 복무 기간을 마친 뒤 1969년에 하노이에 돌아왔지만, 전장과 떨어진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정글로 돌아가 종전될 때까지 정글에서 군부대와 함께 작전을 수행한 전사다. 소련 연합군이 아프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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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능력과 서비스 지면기사
옛날이나 지금이나 적잖은 한국인들에게 권력은 매력 덩어리다. 그러기에 조선조 시대에 과거시험 보러 가곤 하던, 그 소위 '선비'란 이들이 남긴 전통이나 내림은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 같다. 이건 정말이다. 온 세계의 동화에서 소년 주인공은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탐색의 길', 곧 '참음의 길'에 오르게 되어 있다. 멀리 있을 무엇인가 매우 귀하고 희귀한 것을 혼자서 찾아 나서게 된다. 한데 한국의 동화에서는 정해 놓다시피 '과거'를 보러 나선다. 그 뻔한, 그 지천인 벼슬 찾아서, 권력 찾아서 나서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온 세계에서 가장 속된 동화가 이 땅의 동화라고 비아냥거리고 싶어진다. 사회적으로 소위 국가나 정치권력의 세가 크면 클수록 또 그 자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한 나라는 후진성을 면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할 때, 과거 보러가곤 하던 그 전통, 그 내림은 차라리 저주스럽다. 그게 지금껏 남아 있는 게 안타깝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의 고위층 비서관들이 두 사람씩이나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꼴로, 우리 한국 사회가 '권력만능사회'란 것을 너무나 또렷하게 보여준 것은 그 증거치고도 일급의 증거다. 그들은 각종 기관을 제 욕심대로 떡 주무르듯 했다. 그들에게 권력은 '도깨비 방망이'나 다를 게 없었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럴 경우, 방망이를 휘둘러대고 두들겨 댄 저 '사람 도깨비'들도 문제지만 그들 방망이질 따라서 춤춘 당사자들도 문제다. 우리의 권력은 이처럼 부리는 자에게서나 부림을 당하는 자에게서나 다같이 '요술 방망이'인 셈이다. 그런 게 지금 우리나라의 소위 권력이다. 그건 요컨대 괴물이고 요물이다. 워낙 권(權)은 나무 이름이다. 그러던 게 저울이 되고 무엇인가 방편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선 권은 속임수가 되었다. 다음으로 뭐든 헤아리고 측정하는 것도 권이 되었다. 이게 바로 권의 음지와 양지다. 사회의 독(毒)이 되고 악이 되는 한편으로 사회의 만사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권모술수(權謀術數)라든가 권사(權詐)라는 말은 권의 음지 중의 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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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의 미래, 오해 바로잡기 지면기사
법학전문대학원법(로스쿨법) 발효에 따라 로스쿨 인가경쟁은 한층 더 긴박한 단계로 접어들었다. 입학 총 정원의 책정에 이어 설립인가 심사가 시작되면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서 47개나 되는 대학이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나서는 과열현상은 보기에도 딱하다. 저러다가 인가에서 탈락되는 쪽에서 무슨 격한 반응이 나올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로스쿨도 어디까지나 대학원의 일종이다. 그런데도 그처럼 전력투구를 하는 것은 단순한 경쟁심리라고 이해할 수만은 없다. 이 나라의 법조인 양성제도가 올바른 법치주의나 국민을 위한 법률서비스 향상에 중요하다는 점을 투철하게 인식해서일까? 아니면 거기서 양성되는 판·검사, 변호사가 대단해서일까?어쨌든 로스쿨 인가를 못 받는 대학은 위상이 크게 추락하고 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야말로 올인을 하는 양상이다. 그러면서 일부에서는 기존 법과대학(또는 법학과)은 이제 무슨 강등이라도 당하거나 효용이 떨어진 듯이 안중에 두지 않는 것 같다.로스쿨 인가를 받은 대학에는 법과대학 또는 법학과를 둘 수 없고, 로스쿨 없는 대학에만 법대가 남게 된다고 해서 그 위상이 격하되는 것은 아니다.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겼다고 해서 의과대학의 존재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법대는 법대로서의 고유한 존재이유가 있고, 로스쿨의 선행 교육기관으로서 가장 일반적인 과정이 법대이다. 물론 로스쿨법에 따르면, 그 입학자격은 다양한 전공자 흡수를 위해 비법학 전공자에게도 문호를 열어 놓고 있다. 그리고 로스쿨 입시에서 법학시험을 치르지 않기 때문에 법대의 매력이 반감되는 이유로 보는지 모르겠다.그러나 이런 의견도 있다. 학부에서 법학 전공 4년에 로스쿨 3년, 도합 7년 동안 법학 공부를 한 사람과 로스쿨에서 3년만 법학 공부를 한 사람을 비교한다면, 그 중에 누가 변호사시험에 유리할까? 7 대 3으로 법대 졸업생이 우세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로스쿨법에 입학생의 3분의 1 이상을 비법학 전공자로 해야 한다는 규정의 의미를 뒤집어 생각하면, 법학 전공자가 사실상 입학에 유리하거나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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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논의 구조의 문제점 지면기사
며칠 후면 7년만에 남북 최고지도자들이 다시 만난다. 두 번째 만남인 까닭에 처음 만남만큼의 설렘은 없다고 하더라도, 남북한 모두에 그리고 더 나아가 한반도의 안정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2·13합의 이후 해결의 가닥을 잡고 있는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전쟁의 공포로 얼룩진 지난 반세기의 분단구조가 종식되어 평화체제로의 전환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을 가장 반기고 지원해야 할 남한내 분위기는 지나치게 가라앉아 있는 듯하다. 심지어 정상회담 개최를 반대하는 여론마저 적지 않은것 같다. 국가의 정책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 동안의 북한문제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논의 구조의 비정상적인 경향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여전하다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흔히 '남남갈등'으로 표현되는 북한관련 논의 구조는 대북정책 자체의 문제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북한문제를 국내정치로 환원시키는 문제를 갖고 있다. 좀 쉽게 말하자면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이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의 문제는 정책 자체에 있기 보다는 김대중과 노무현이 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즉 노무현과 김대중에 대한 공격의 일환으로 대북정책을 이용하여 왔다는 것이다. 사실 통일정책은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정립된 이래로 근본 철학이나 이념이 바뀐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골간은 전쟁이 아닌 화해와 협력을 통해서, 그리고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2·13합의 이후 한나라당 일각에서 포용정책이 원류는 자신들에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들이 만들었던 정책을 비판하였다는 논리적 모순을 고백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북정책이나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이 그동안의 포용정책이나 평화번영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밖에 없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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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사투리·표준어 따지는가 지면기사
서울을 떠나서 남행 열차 안에서 생긴 일이다. 막 서울역을 나서서 남행하기 시작한 열차의 어느 칸이 시끌벅적했다. 부산과 대구 등지의, 이른바, '남도 여성'들이 많이 탄,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 여성들이 귀를 틀어막고 견디고 있는 사이에 기차는 마침내, 동대구역에 닿았다. 대구 여성, 한 무리가 내렸다. 기차가 종착역, 부산을 향해서 출발하자, 여자들은 이젠 살았다고 귀를 막은 손을 내렸다. 한데 웬걸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견디다 못한 서울 여자 승객 한 사람이 친구들을 대표해서 부산 여자들이 모여 앉은 쪽으로 갔다. '그 좀 조용할 수 없을까요?' 부산 여성이 대뜸 받아서 소리쳤다. '그래, 이 칸이 말칸 니 칸이다 칸은 거가?' 서울 여자는 제 친구들에게로 돌아가서는 '저기 저 여자들 다 일본 사람이야?' 이렇게 투덜대고는 한숨을 토했다.이건 남도 사람들이 들으면 여간 재미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기 비해서 서울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못 알아듣고는 어리둥절할 게 뻔하다. 그래서 서울 여성 귀에 일본말로 들린 부산 여성의 발언을 서울 사람 알아듣기 쉽게 옮겨 보자. '그래, 이 (기차) 칸이 몽땅 네 칸이라고 말하는 건가?' 이쯤 될 테지만 그래 가지고는 흥겨운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은 눈곱만큼도 없을 것이다. 부산 여성의 발언은 짧은데도 '칸'이 자그마치 네 번이나 되풀이 되어 있다. '칸, 칸, 칸, 칸'의 반복이 신난다. '프랜치 캉캉'의 춤사위 같다. 일행시(一行詩)가 아니면, 무슨 경구나 속담처럼 재미있게 들린다. 하지만 그걸 서울말로 옮기고 보면, 영 맨송맨송해서, 무슨 맹꽁이 울음 같다. 그런데도 참 딱한 말버릇이 지금도 버젓이 활개 치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니고 서울 시민 가운데서도 중류의 말을 '표준어'라고 떠받들고, 서울 아닌 다른 고장의 말은 '사투리'라고 퉁을 주는 일이다. '사투리/ 표준어'의 이분법은 지금도 서슬이 퍼렇게 살아 있다. 아니, 망언을 떨고 망발을 해대고 있다. '사투리/ 표준어'로 온 나라 안의 말을 양단(兩斷)한 것은 일제 치하의 저 욕된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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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과 투정의 시대 지면기사
며칠 전 출근길에 모처럼 연탄을 싣고 가는 트럭을 보았다. 반가웠다. '연탄' 하면 줄줄이 떠오르는 기억이 셀 수도 없이 많은 까닭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가슴이 찡했다. 아직도 연탄으로 차가운 계절을 나야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직도 연탄으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물을 데우며 겨울을 나야 하는 가구가 20만이다. 북녘에서는 겨울나기 연료로 연탄마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한다. 엄살이 아니다. 나는 '연탄 한 장'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이 가을에 스스로 또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연탄 한 장인가?" 삼시 세 끼 배곯지 않고 먹고 살만 한 호시절이라는데, 한쪽에서는 영 글러먹은 세상이라고 삿대질로 세월을 다 보내고, 또 한쪽에서는 옛적보다 사는 게 수월찮다고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고 있다. 도처에 투정과 엄살이 넘쳐나고 있다. 경제를 탓하고 정권을 탓하지만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탓하지는 않는다. 이게 문제다. 귀성길에 고속도로가 막히면 길게 늘어선 다른 차들을 탓하지 자신의 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의 하나라는 걸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파트 시세의 급상승을 어찌 정부의 정책 부재 탓으로만 돌리는가? 자신의 세속적 욕망이 분명히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는가? 입으로 밥 들어가는 일도 투정 아니면 엄살이다. 잘 생각해보자. 더 맛난 것을 혀끝으로 찾으려는 욕망과 더 몸에 좋은 것을 섭취하려는 욕망의 부추김에 길들여지면서 우리는 점점 속물이 되어온 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