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박석무 칼럼] 난세의 명재상 오리대감 이원익
    기명칼럼

    [박석무 칼럼] 난세의 명재상 오리대감 이원익 지면기사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재상이 생각나고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가 생각난다'라는 옛날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책임총리로 한 나라의 흥망성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는 조선시대의 영의정이야말로 국난을 극복하는 위대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역사적으로 위대한 재상들이 많기도 했지만, 그 중에서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가장 칭찬했던 대표적인 위기 극복의 명재상은 바로 '오리정승', '오리대감'이라 호칭되던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이었다. 요즘 정권교체기를 맞아 온갖 어려움에 처해 있는 나라의 형편을 지켜보면서, 400여년 전에 세상을 떠난 위대한 명재상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위기를 극복할 명재상이 오늘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리정승은 왕족으로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선산이 있는 오늘의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일대를 고향으로 여기고 자주 찾아 은거하기도 했지만, 생의 마지막을 또 그곳에서 마쳐 묘소도 그곳에 있고 기념시설 또한 그곳에 있어 경기도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경기도야말로 조선시대 인물의 보고인 지역이었다. 학자 정치인 율곡 이이, 우계 성혼 등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살았던 곳이요, 조선 후기 성호 이익, 순암 안정복, 다산 정약용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나왔지만, 정치가 한 사람을 꼽자면 당연히 이원익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어수선한 민심 수습 정치적 역량겸손함·자신 낮추는 위대한 능력 이원익은 1564년 18세에 생원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면서 원로 재상 동고 이준경의 사랑을 받는 청년이었고, 1569년 23세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하자 명재상 서애 유성룡의 신임을 얻어 벼슬살이가 승승장구로 열리기만 했다. 황해도 도사(都事) 벼슬에 부임하자 그곳 황해도 관찰사로 있던 율곡 이이의 눈에 들어 다시 중앙관서로 자리를 옮기면서 촉망받는 미래가 열리고 있었다. 당시 큰 정치가들인 이준경·유성룡·이이 등은 각자가 진영이 조금은 달라 서로 화합하지는 못하던 때인데, 이원익은 그들 모두에게 진영의 논리와는 관계없이 전폭적인

  • [윤인수 칼럼] 윤석열 정부 '진짜 민심'과 동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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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인수 칼럼] 윤석열 정부 '진짜 민심'과 동행하라 지면기사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이 오늘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5년 임기를 시작한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나라 전체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해야 할 날이다. 윤석열 정부를 축복하고 새 정권이 이끌어 갈 대한민국에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는 국민의 한 마음이 빚어낸 에너지로 가슴 뿌듯한 그런 날 말이다. 내가 반대한 대통령의 성공을 진심으로 원해야, 다음 대통령을 지지한 나의 선택을 존중받을 수 있다.아쉽게도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전날의 나라 분위기는 한껏 당긴 활시위처럼 끊어질 듯 말 듯한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취임식 단 하루마저도 화합의 이완 대신 대립의 긴장으로 숨조차 쉬기 힘들다. 윤석열은 최악의 상황에서 대통령직을 시작한다.정적은 강력하고 무자비하다. 슈퍼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172석의 완력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검수완박으로 보여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 정권은 자신의 정권과 비교될 것이라며 마법의 거울을 세워 놓았다. 'ㄸㄸㅇ'를 '짤짤이'라 해도 철석같이 믿는 진영의 결속은 철옹성 같다. 대선 경쟁자 이재명은 분당구 수내동 현관을 나와 인천 계양산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윤석열이 대장동 몸통'이라 다시 외친다. 완전히 대선 2라운드다. 계양을 출마 기자회견은 지난 대선 결과만큼 정권의 절반을 갖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거대 슈퍼야당·강력한 팬덤 주군 이재명前 정권 한 귀퉁이에서 정권 창업할 처지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초반에 자신의 권력으로 채울 정치적 여백을 누렸다. 대선 패배 후보와 전임 대통령은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어 권력의 마당을 비워주었다. 야당은 새 정부가 제대로 꼴을 갖출 수 있도록 패자의 호의를 베풀었고, 언론은 짧게나마 새정부와 대중의 허니문을 허용했다. 윤석열에겐 정권을 세울 한 치의 여백도 없다. 거대 야당과 강력한 팬덤에게 진정한 주군은 이재명이다. 새 대통령이지만 가설 천막을 세우고 전 정권 권력의 한 귀퉁이에서 정권을 창업해야 할 처지이다. 윤석열은 청와대 권력의 종식을 선언했지만 청와대 시절의 권력은 그에게 일말

  • [김헌수 칼럼] 尹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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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수 칼럼] 尹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지면기사

    대장동 투기 의혹과 법인카드 부정사용 등 상대후보 흠집내기에 말도 탈도 많았던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끝이 났다. 다수 국민들의 여망으로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도 내주 초에 열리는데 기대는 높고 희망차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뭐니뭐니해도 경제와 안보, 국민들이 큰 욕심 없이 먹고 사는 문제와 '일 잘하는 정부'에 크게 부응해야 한다.지론인 시장주의 경제현대화 실행세계최고 경쟁력 갖춘 선진국 기대 文 정부가 5년 전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국민들의 열망도 기대도 컸었다. 특히 대북 평화정책인 2018년 4·27 판문점 회담에서 미·북의 두 정상이 함께 손잡고 분단의 경계를 넘나들던 모습에서, 판문점 도보다리를 비추었던 푸른색 영상 속 대화 장면 등은 온 국민들을 울컥하게까지 했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지난달 16일 북한은 올 들어 13번째 무력시위로 신형 전술유도 무기를 시험 발사했다. 합참에서는 이날 1시간46분이 지나서야 "북한이 오후 6시쯤 함흥 일대에서 2발의 발사체를 포착했다"고 뒤늦게 발표했다. 이는 2017년 말에 천명한 핵모라토리엄(핵실험·ICBM 발사 유예)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파기한 것이다. 이어 지난달 25일 한밤중 열병식서 이제 핵무기 사용 위협을 공언하고 있다. 그간 정부가 대북한 평화정책 실행이라는 이름으로 5년 동안 북한의 도발을 감싸왔던 대가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렸다. 2019년 12월 초부터 시작된 중국 우한발 폐렴 및 코로나19 바이러스 관련 최근 '문재인 정부 국민 보고서'라는 코로나 백서에서 '전 세계가 감탄한 K-백서'라는 가당찮은 자화자찬은 선제적 방역을 제대로 취하지 않은 실책 중 하나다. 또 지난 2월 WHO의 한국이 연속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 최다'라는 보고서에 어떻게 답해야 하나.금번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였다. 일방적으로 28번이나 법을 고치고 전문가들이 정책 방향에 문제가 있다고 숱하게 지적하였으나, 국정 최고 책임

  • [방민호 칼럼] 페이스북을 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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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칼럼] 페이스북을 염려한다 지면기사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다. 국회는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지만 행정부, 국가 수반의 자리는 국힘에게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실험의 새 길에 들어섰다고도 할 수 있다.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사이에 문학인들도 바빴다. 특히 페이스북은 특정 정치인, 정치 세력을 지지하고 다른 입장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야말로 문학이 정치에 바싹 다가서다 못해 착 하고 달라붙는 형세가 되었다.과거에 필자도 '생각없이' 어느 분이 시장 재선을 하는데 지지선언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분이 권력의 음모에 희생될 상황이라고 생각했고, 아는 사람을 통해 그런 것을 해달라고도 하니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사람의 생각이란 알 수 없다. 더구나 정치적 판단이란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같으리라 생각할 수 없다. 불과 몇 년 지나지도 않는 사이에 나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워낙 몇 사람 안되는 사람들이 모여 지지를 표명한 것이었고, 뉴스에도 거의 오르내리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었다고나 할까. 진보·보수라는 이분법 절대화 방식선과 악 한쪽으로 모는일 지양돼야공론의 장 잘못 쓰면 나쁜것 될 수도 이번 대통령선거 때는 양상이 아주 달랐다. 문학인들 치고 '좌파' 아닌 사람이 얼마 없다고 할 정도로 현재의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넘치고 당선인 쪽을 지지한 사람들은 아주 적었다. 페이스북 같은 '공론장'에서 이런 분위기는 아주 두드러졌다. 대선은 분명 정치적 사안인데, 반드시 누구를 지지해야 사람다운 사람이라는 식의 극단적 태도가 공공연히 표명되기도 했다.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절대 누구는 안 되고 누구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언젠가부터 한국 정치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나의 기억에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였다. 그때 나는 이런 구분법을 심각히 우려했다. 이런 명명법이 '민주'와 '독재'라는 그때까지 유지되어 온 선명한 구분선을 흐리게 하고, 정의와 부정의를 변별할 수 없게 한다고 보았

  • [이남식 칼럼] 린디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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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남식 칼럼] 린디 효과 지면기사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었던 린디즈 (Lindy's)는 치즈케이크가 유명한 델리로 브로드웨이에 출연하는 코미디언들이 자주 들렀는데 1964년 앨버트 골드만이 뉴리퍼블릭이라는 잡지에 '린디 효과'라는 기고문에서 린디즈에서 브로드웨이 공연의 지속기간에 대하여 종종 100일 동안 공연된 작품이 100일간 더 공연되며 200일간 공연된 작품은 200일 더 공연될 확률이 더 높다는데 착안하여 이를 린디효과라 이름 지었다. 오래 된 기술일수록 더 오래 가는 법코로나 위기 불구 회복 탄력성으로재탄생 한다면 되레 기대수명 연장 린디 효과(또는 린디의 법칙 Lindy's law)는 기술이나 아이디어, 지식과 같이 부패하지 않는 것들(nonpershables)은 오래된 것일수록 잔존수명 또는 기대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노화가 되면 될수록 기대수명은 줄어들게 되는데 반하여, 부패하지 않는 것들은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 있는 것들은 강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어떤 기술이나 아이디어든지 나름대로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면 오히려 혼란이나 위기가 왔을 때 더 강해지는 반취약성(antifragile)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계적으로 살펴보자면 다양한 위기 속에서도 더 긴 기대수명을 갖는 것들을 판별하는 가장 합당한 기준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파레토의 법칙과도 합치하는 부분이 있는데 20%의 사람이 80%의 부를 소유하는 사회경제학적인 현상을 잘 설명하는 파레토분포와 같이 기술, 지식, 아이디어의 기대수명 분포는 파레토분포를 따르며 수학적 모형을 통하여 린디의 법칙이 잘 설명됨을 보였다. 즉 오래된 기술이나 아이디어일수록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결국 이를 지혜라고도 하고, 고전이라고 하기도 한다. 결국 베토벤의 음악이 비틀즈 보다는 미래에 더 오랫동안 들려질 것이라는 것을 린디의 법칙을 통하여 유추해 볼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것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데 중요한

  • [윤인수 칼럼] 경기도지사, 정치 말고 자치할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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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인수 칼럼] 경기도지사, 정치 말고 자치할 사람이어야 한다 지면기사

    6·1 지방선거가 대선 연장전으로 번지고 있다. 대선 승패는 갈렸지만 0.73%포인트라는 미세한 격차는 승리한 쪽이나 패배한 쪽 모두 개운치 않다. 5월 10일 출범할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긍정평가는 대선 득표율 언저리를 맴돈다. '졌잘싸' 이재명은 172석 민주당을 쥐락펴락하는 '재명이네 마을' 이장에 취임했다. 미래권력 윤석열은 행정부를 장악했고, 장외권력 이재명은 입법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의 대주주다.지방선거는 윤석열과 이재명에게 어정쩡한 대선 결과를 확실하게 자기 쪽으로 보정할 기회이다. 국민의힘이 승리하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동력은 상승한다. 민주당이 승리하면 정권 견제의 칼날이 예리해진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패배하면 윤석열 정부의 전반기는 입법권력과 지방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에 압도당한다. 민주당이 패배하면 당이 위험해진다.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이 대선 패배 책임론까지 소환해 '졌잘싸'로 유지했던 결속이 흔들린다. 총선을 앞둔 의원들은 제 살 길을 찾아 무리무리 갈라질 수 있다. 대선서 전국 승패 저울대 지역 된 '경기도'道에 대한 관심 제한적이었던 후보들 대결 이처럼 살벌한 정치공학적 배경에서 경기도가 핫코너로 부상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은 경상도 광역단체와 충청권 3개 광역단체 및 강원도에서 승리했다. 민주당은 전라도 광역단체와 세종·제주에서 이겼다. 수도권에선 국민의힘이 서울, 민주당이 경기·인천을 분점했다. 윤석열은 서울에서 31만700여표를 더 얻었다. 이재명은 경기도에서 46만2천800여표, 인천에서 3만4천700여표를 더 받았다. 대선이 24만7천여표의 득표차로 갈렸으니 경상도 득표율이 손톱만큼이라도 저조했거나, 충청·강원 광역 단체 한 곳에서만 실패했더라도 '윤석열 정부'는 없을 뻔했다. 경기도 득표율 차이 5.02%포인트가 대통령 선거를 뒤집을 뻔한 것이다.1천350만 인구의 경기도는 지난 대선에서 서울을 제치고 전국선거 승패의 저울대 지역이 됐다. 지역적 특성상 당연한 귀결이다. 경기도는 대한민국판 멜팅 팟이다. 도민의 대부분이 전국에서 유입됐다. 1

  • [윤상철 칼럼] 균열은 폭발하고 통합은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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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철 칼럼] 균열은 폭발하고 통합은 멀어 지면기사

    미국의 대학원에서 저명한 노교수의 사회학 강의를 청강한 적이 있다. 사회균열이 정당 및 정치적 대표성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강의 중간중간에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한 여학생은 젠더적 시각에서 이를 재해석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대부분의 경우에 교수는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정도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일이었지만, 교수와 여학생의 관점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에서 교수들은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자신의 강의를 감시하듯이 지켜보고 있다고 더러 푸념하기도 한다. 최근 벌어진 여성가족부 폐지를 둘러싼 거친 공방도 우리 사회의 젠더갈등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균열은 비단 젠더균열만이 아니다. 군부권위주의체제를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민주 대 반민주의 사회균열은 거의 30여 년을 지배했고, 그러한 균열에 기초한 정치적 언어들이 여전히 사용된다. 기득권 적폐세력이니 신적폐세력이니 하는 언어들은 상대를 경제적, 정치적 독점세력으로 다중적으로 규정하지만 민주 대 반민주의 프레임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이를 뒷받침하면서 한국 현대정치사를 가로지르는 가장 구조적인 균열은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는 지역균열이다. 이 지역균열은 보수 대 진보라는 프레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산업화기의 불균형발전과 광주의 역사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지역차별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발전단계가 부분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에 이르고, 경제가 저성장기조를 유지하면서 일자리와 주거공간을 둘러싼 세대균열 또한 엄청난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취업난과 불투명한 미래전망을 내세우지만 나이든 세대들은 그들의 지위를 과도한 기득권으로 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양 세대를 만족시키려는 포퓰리즘적 대안은 현 정부 하에서 그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내었다. 성장과 환경의 균형에 초점을 둔 생태주의적 균열 역시 그 뿌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결과 탈원전을 둘러싼 갈등은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대안도 없이

  • [전호근 칼럼] 언어와 인격
    기명칼럼

    [전호근 칼럼] 언어와 인격 지면기사

    오래 전 미국 일리노이 대학 언어학과 김진우 교수의 인터뷰를 접한 적이 있다. 언어학에 대한 소양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나는 그의 인터뷰를 통해 언어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층 넓힐 수 있었다. 인터뷰 중에서 내가 인상 깊게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비 오는 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중요한 서류를 학교에 놓고 온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학교로 가야 하는데 교통편이 없어서 남의 차를 빌려 타야 했어요. 길가에서 지나가는 차를 잡는데 때마침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어요. 천둥 번개가 치고 세찬 빗줄기가 쏟아져서 아주 곤란했는데 운 좋게도 제 앞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조수석에 타고 차 문을 닫았는데 차 안에는 바깥과는 달리 정적이 흐르더군요. 운전하던 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자 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더군요. '날씨가 조금 궂죠?' 학교에서 서류를 가지고 다시 집으로 오기 위해 또 길가에서 차를 잡아야 했습니다. 비는 여전히 억수 같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커다란 트럭 한 대가 제 앞에 멈추었습니다. 트럭에 올라탔는데 트럭 운전수가 제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 빌어먹을 비 좀 봐!' 제가 점잖게 표현해서 그렇지 실은 욕설이 섞여 있었어요. 퍼붓는 비는 승용차 운전자에게나 트럭 운전수에게나 똑같이 내렸는데도 승용차 운전자는 조용한 목소리로 점잖게, 트럭 운전수는 큰 소리로 거칠게 말한 것이지요. 그래서 흔히 승용차 운전자의 말은 고급언어고 트럭운전수의 말은 저급하다고 여기기 십상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승용차 운전자는 환경이 조용하니까 조용히 말해도 자신의 말이 전달됩니다. 그러니 소리 지를 필요가 없는 겁니다. 반면 트럭 운전수는 주변 환경이 시끄러우니까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자신의 말이 전달되지 않아요. 그래서 큰 소리로 거칠게 말하는 것일 뿐 그의 언어가 결코 승용차 운전자의 언어보다 저급하다 할 수 없어요." 30년은 족히 지난 일이라 표현까지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김진우 교수의 이야

  • [이재우 칼럼] 민주주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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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우 칼럼] 민주주의의 미래 지면기사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도 세계 많은 나라의 정치, 경제적 변화는 격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2021년에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로 교체되었고, 일본 역시 총리가 교체되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서 새로운 정부가 출현할 것이다. 한편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얀마는 민주화 항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은 21세기에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임을 확인해 주었다. 많은 학자가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면서 정보의 교류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누구나 정보를 쉽게 얻게 됨으로써 열린 거버넌스를 표방하는 정부 체제가 발전하고 글로컬라이즈가 심화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민주주의는 더욱 심화하고 민주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의 다양성, 사회적 이념의 고착화, 주도권을 잡은 세력의 견고성은 민주주의가 저절로 확산할 것이라는 믿음이 순진한 생각임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량 키웠지만아직 북유럽 선진국에 미치지 못해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포퓰리즘의 득세,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는 민주주의를 새롭게 되돌아보게 한다.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형성한 정치 체제 중에서 그래도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체제가 좋다고 하거나 나쁘다고 하는 것은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고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그래도 인류 보편의 가치에 비추어 보면 한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선거에 의해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다른 정치 체제보다 좋은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매해 '민주화 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2021년에 우리나라의 민주화 지수는 16위로 전 세계에서 완전한 민주주의가 실현된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우리나라, 대만, 일본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한 국가로 평가되었다. 우리가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믿고 있는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 조사 대상 167개국

  • [박석무 칼럼] 화성(華城), 그리고 정조와 다산
    기명칼럼

    [박석무 칼럼] 화성(華城), 그리고 정조와 다산 지면기사

    우리 연구소가 수원으로 옮긴 지 2년이 넘었다. 사무실에만 나오면 바라보는 화성(華城), 화성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은 정조와 다산이다. 50년이 넘도록 다산을 연구하느라 다산의 뛰어난 작품인 화성을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바라볼 때마다 그 견고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을 숨길 수가 없다. 그것도 230년 전에 완공된 성인데, 그 시절에 어떻게 저런 우람한 성이 축조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정조와 다산의 위대함 또한 회고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에 모셔놓고 정조는 아버지 묘소도 보호하고 백성들의 삶에 도움을 주려고 신도시 건설을 착상해냈다. 그래서 성을 쌓아 안전하고 방어하기 좋은 장소를 만들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생각하면 거대한 토목공사를 일으키기도 쉽지 않고 성의 축조에는 탁월한 기술력이 필요한데, 그 두 가지의 해결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몇 년 전에 한강의 배다리 건설에 능력을 발휘해준 정약용이 있으니, 기술의 문제는 가능하겠으나 경비문제는 역시 난제였다. 그러나 추진력이 강했던 정조는 조정의 반대파들의 주장을 잠재우면서 일을 시작하고 말았다. 상업·농업·공업·교육 등 지역 구별백성들 삶 변화 주려는 계획 신도시투기 등 차단 부정부패 철저히 관리 그 무렵, 다산은 아버지 상을 당해 고향 마재에서 형들과 함께 거려하면서 집상중에 있었다. 하필이면 기회도 좋았다. 선비들은 집상중에는 시도 쓰지 않지만, 예학이나 경서를 연구하는 일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걸 알아차린 정조는 다산에게 성제(城制)를 올리라는 분부를 내렸다. 머리 좋은 다산은 많은 참고자료를 검토한 뒤 화성의 성제를 임금께 올린다. 마침내 1794년 1월, 화성을 쌓는 기공식이 열렸다. 여러 사정을 감안해 볼 때 공기는 10년 정도로 보고 10년 안에는 축성을 완료하도록 했다. 그 때 정조의 아들 순조가 겨우 5세, 10년이면 15세의 나이가 되니 임금의 지위를 아들에게 양위하고 화성의 행궁으로 돌아와 상왕으로 있고 싶었던 정조의 꿈과도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