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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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사회적 민주주의로 문열기 지면기사
사회적 차별·지배 쉽게 발견되지만찰과 상처럼 취급돼 방치되기 쉬워미봉적 타협 불과한 민주주의조차제대로 실현하기에는 항상 어렵고깊은 민주주의 실현 더더욱 힘들다이른바 '제3의 물결' 민주화가 1970년대 중후반부터 20여년 이상 전 지구를 휩쓸었다. 대표적 민주주의 논자였던 길레르모 오도넬은 민주주의를 3차원으로 나누고, 정치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의 문열기에 불과하고 경제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민주주의로 확산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의례화한 최소요건 민주주의로 전락했다. 경제적 민주화는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지배상황에서 저항의 주체들이 약화되면서 정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민주주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민주화 이전의 상황을 보자. 권위주의적 가족 안에서 명령하는 아버지와 복종하는 자식이 있고, 어머니는 그 갈등관리에 지쳐 있다. 기업조직 안에서는 권위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임용 및 인사 과정의 시혜를 미끼로 성적 지배와 학대까지도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교회 안에서는 신처럼 군림하는 성직자와 힘없는 평신도들 사이에서 교리해석과 신앙행위에 대한 독점적 지배관계가 자연스럽다. 지역 간에도 패권주의적 지배와 실리적 복종이 요구된다. 학교 안에서도 봉건적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적 교환으로 구성되는 교사와 학생 간의 비민주적 관계가 발견된다. 세대 간에도 노동현장에서도 이 모든 전(前)민주주의적, 비민주주의적 관행이 여전하다. 우리가 아는 한, 체제의 이행은 단속적이다. 역전되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체제진전이 그들에게 준 자존감과 행복감을 기억하고 이행의 지속을 선호한다. 따라서 경제적 민주주의가 정체하더라도 사회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계속된다. 지역불균형 발전을 극복하고 지역차별과 패권을 철폐하는 일은 지속 될 것이다. 노동자이든 근로자이든 차이를 가르는 명명들이 존재할지라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감소될 것이다. #Me Too를 내걸든 #With You를 내걸든 권력과 결부된 성적 차별과 폭력은 결단코 사라져 갈 것이다. 기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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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빵과 물, 시인과 도둑 지면기사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안전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선교내 출입통제 강화하거나경찰관 배치하는게 아니라빵과 물 나누는 따뜻한 마음 필요얼마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인질극이 일어났었다. 많은 이들이 가슴을 졸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인질로 잡혔던 아이는 무사히 풀려났고 용의자도 검거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의 현명한 대응이 눈길을 끌었다. 사건을 보도한 기사를 읽어보았더니 경찰관은 용의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게 빵과 물을 건넸다. 이어서 용의자더러 아이에게도 빵과 물을 나누어주라고 청한 다음 틈을 노려 검거에 성공했다고 한다.인질극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아이가 안전하게 가족의 품에 돌아가기만을 빌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아이뿐 아니라 용의자 또한 무사히 검거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나에게는 경찰이 건넸다는 빵과 물이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무슨 숭고한 물건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 빵과 물은 인질극이라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에게도, 인질로 잡힌 아이에게도 건네져야 할 신성한 무엇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빵과 물은 예사 물건이 아니다. 용의자는 주림과 갈증을 해소하는 빵과 물을 건네받고, 또 그것을 아이에게 건네면서 순간이나마 마음이 느슨해졌을 것이다. 아이도 긴장과 공포와 갈증에서 잠깐 한숨 돌리는 순간이 되었을 테니, 둘 사이에 오간 팽팽했던 시간의 틈새가 극적인 해결을 가져왔으리라.그러다가 나는 만약 용의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누군가 그에게 빵과 물을 건넸다면 인질극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현실이 아닌 허구이지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에게 누군가 빵과 물을 건넸다면 어땠을까. 그가 빵을 훔쳐 감옥에 갈 일도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며칠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이 내 머릿 속에서 잊힐 무렵 마침 50주기를 맞이하여 새로 출판된 '김수영 전집(이영준 엮음·민음사)'을 펼쳤다가 저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김수영의 산문 '양계 변명'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북동에서 마포 서강 강변으로 이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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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칼럼]미래준비, 반복되는 위기의 고리 끊기 지면기사
미래에 도전 없으면 지배 당해구글·3M 등 혁신적 기업들자율적 과제 수행 요구 이유는탐색의 중요성 인정하기 때문정부·기업, 지금과 다른 새로운것시도해 볼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기시감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보았거나 경험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기시감보다는 '이미 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데자뷔라는 영화 제목이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금호타이어 매각 등 이전에 봤던 현상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느낌이다. 1997년 IMF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10여년 만에 또 위기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3년 연속 돈을 벌어도 빌린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외부감사 대상기업의 14.2%에 달한다. 한계기업의 대출 비중에서 대기업이 65.7%에 달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음에도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대마불사 좀비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IMF 위기는 국내 대기업들의 과잉 중복투자에 따른 구조조정 위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부동산의 과잉 신용을 담보로 한 중복소비에 따른 거품붕괴 위기였다. 그럼 현재의 위기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미래 준비의 위기라고 본다. 그 동안 우리 산업은 선진국의 산업을 모방해서 저렴한 생산비용으로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관리를 잘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기업은 경쟁자보다 싼 값에 물건을 더 팔 수 있어서 수익도 늘고, 임금도 오르는 성공의 과실을 맛보게 된다. 이 방식은 모방이 쉬워서 오래 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일본이 서양에서 배우고, 한국이 일본에서 배우고, 중국이 한국에서 배우고, 베트남이 중국에서 배우는, 물이 흐르듯이 주역이 바뀌는 구조이다. 성공의 과실도 넘어가고 위기도 반복된다. 반복되는 위기를 끊고, 성공의 과실도 계속 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미래에 대한 준비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우리 기업들은 성공의 과실을 따는 동안 투자를 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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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칼럼]대통령 사주 지면기사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라면아무리 좋은 사주라고 한들비극적으로 될 수 밖에 없어반복되는 역대 대통령 불행처럼나쁜 사주 만들지 않으려면권한 줄이는 헌법개정안 필요등에 업힌 아기를 본 노인이 "아이구, 그 녀석 대통령감일세"라고 하면 옛날 엄마들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대통령이 된다는 데 싫어할 엄마는 없을 것이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유모차에 애를 태우고 가는데 누군가 "대통령감"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 엄마들은 눈을 흘기며, 화부터 낸다고 한다.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을 떠올리면 웃음은커녕 우울하다 못해 슬퍼지려고 한다.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이국만리 머나먼 하와이에서 숨을 거뒀다. 지금은 그 누구도 초대 대통령의 유해를 이 땅에 모셔오자는 사람이 없다.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잊힌 인물이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장 믿었던 부하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과 그의 친구 노태우 대통령은 내란 음모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죄목으로 옥고를 치렀을뿐더러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당했다. 그래서 어느 방송에선 그냥 '전두환씨 노태우씨'라고 불리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대통령 시절 정말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감옥에 간 자식 때문에 편하게 눈을 붙이지 못하고 긴 밤을 뒤척여야 했다. 민주화 동지였지만 생전에 둘은 갈등하면서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허공에 육신을 던짐으로써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지금 그들은 모두 감옥에 있다. 그런데 금쪽같은 내 아이가 대통령이 될 상이나 사주를 갖고 있다면 좋아할 부모는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할 지경이다.대한민국 거의 모든 신문이 '오늘의 운세'를 싣는다. 우리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독자 중 기독교 신자도 많을텐데 그런 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날 신문 기사중 '오늘의 운세' 인기는 꽤 높은 편이다. 공표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많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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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칼럼]부부공존의 미학 지면기사
상대에게 뭔가 바라는건 욕심'너 아니면 죽는다'는 식의환상과 기대 갖기 때문에 불행배우자와 가까워질 수 있는 말은"나 요즘 왜 이렇게 힘들지?"별것 아니지만 상대방 마음 움직여신부로 살면서 결혼을 시킨 커플만 수십 쌍이다. 혼배성사 날짜가 잡히면 식전에 신랑을 불러 슬쩍 물어본다. "왜 이 여자랑 결혼할 생각을 했습니까?" 대부분 "잘은 모르겠는데 결혼은 이 여자랑 해야 한다는 감이 오더라고요"하고 대답한다. 신부에게도 따로 물어본다. "왜 하필 이 남자입니까?" 이런저런 대답이 나오지만 공통적으로 "다른 건 모르겠는데, 저한테 잘해줘요"라는 말이 나온다.그럴 때 속으로 '결혼하고 조만간 찾아오겠구나' 생각한다. 그 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십중팔구 못 살겠다며 찾아온다. 주례할 때 AS를 보증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여자가 미쳤나 봐요. 집안일은 하나도 안 하고 친구만 만나러 다녀요.""매일 회사로 데리러 오던 남편이 요새는 전화도 잘 안 받아요.""결혼 전이랑 너무 달라요.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굴더니, 사사건건 간섭만 해요."해결될 문제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결혼은 AS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애초에 고장 난 물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하자가 있었으니 되돌려 놔봐야 고물이다. 고칠래야 고칠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어떻게든 바꿔보겠다고 아우성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착각해서 결혼을 하고 망각해서 재혼을 한다. 좀 부실해도 고쳐 쓰면 될 거라는 착각 때문에 결혼하고, 결코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해서 재혼을 한다.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이혼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최소한 그놈 때문에, 그녀 때문에 내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거다. 결혼해서 한집에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인생은 각자 살아야 한다. 그걸 알고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결혼해서 사는 게 좀 힘들더라도 배우자 탓을 하지 않는다. 결혼 역시 자기 선택으로 결정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애걸복걸해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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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봄에 통영으로 지면기사
그리운 박경리 선생님의 고향홀로 원주서 25년 '토지'와 싸우던그분 생각하며 서피랑에 오른다깊이 세속 물든 속물 같은 사람이그래도 세상 끝에 와 서니 좋다맑은 바다에 몸 깨끗이 씻고 싶다3월 이른 봄에 통영에 간다. 박경리 고향 통영이다.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전혁림의 고장 통영이요, 문학연구가 김재용의 고향 통영이다. 아침 8시 25분 용산발 케이티엑스 열차다. 옛날에는 용산에서는 호남만 갔는데, 이제는 용산에서 마산도 가고 부산도 간다. 서울역에서 목포도 간다. 참 좋은 변화다. 옛날에 시인 백석이 통영 처녀 박경련을 사모해서 그곳에 갔다 했다. 그때 마산까지 가서 거기서는 배를 타고 갔다 했다. 친구 허준의 결혼식에서 만난 그녀를 그는 마음에 두었고, 그래 세 번이나 그녀를 만나러 그곳에 갔다 했다. 친구 신현중이라는 사람이 주선을 놓았다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그가 그녀와 맺어지고 말았다. 세상에는 이런 아이러니가 많다. 마산역에서 내려서는 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향한다. 한 시간 걸렸을까, 도착한 우리가 처음 찾아든 곳은 물론 식당,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점심 메뉴로 생선구이가 나왔다. 고등어는 알겠고, 나머지는 분명치 않아 묻는데, 어느 한 분께서 이건 돔이고 이건 서대고 이건 뭐라고 가르쳐 주신다. 아무래도 바닷가에서 자란 분만 같다. 이에 덧붙이는 말씀, 서대와 박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 궁금해들 하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서대는 검고 박대는 불그스름하단다. 또 말려서 찌면 서대는 박대보다 살이 깊단다. 마지막으로 서대는 남해안에서 나고 박대는 서해안에서 난다기도. 햐. 잘도 아신다. 그러자 시인 백석 생각이 바로 난다. 백석 수필 가운데 '동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백석은 운치 있고 맛깔스럽게 동해안 풍경을 읊어가다 말고 뜬금없이 툭 이런 말을 던진다. "……그대나 나밖에 모를 것이지만 공미리는 아랫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윗주둥이가 길지."하, 공미리라. 공미리가 뭐냐. 옛날에 이 수필을 읽고 백과사전을 찾아본즉, 공미리란 학꽁치의 다른 말이라 했다.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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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식 칼럼]징벌적 손해배상 지면기사
기업이윤 위해 사회적 책임 망각거짓말 일삼고 다시 영업한다면국제사회에서 낙인찍히게 될 것징벌적 피해보상제 서둘러 확립개인·사회적 피해 보상받도록개헌과 맞물려 심사숙고해야최근 미국의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인 넷플릭스에서는 '검은 돈'이란 일련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1970년대 1천700만대의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불과 3만8천대를 팔던 폭스바겐이 전세계 제1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하기 위해 가솔린 엔진 대신 디젤 직분사 TDI엔진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했다. 디젤엔진의 문제는 연비는 좋으나 미세먼지와 질소화합물을 배출하므로 가솔린 차량에 비해 공해를 많이 배출하게 된다. 따라서 벤츠나 BMW와 같은 회사에서는 요소수를 이용해 공해를 저감시키는 장치를 달았으나 기술특허의 문제와 20ℓ 요소수 통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기 위해 폭스바겐에서는 배출가스를 다시 태워서 공해물질을 저감하는 방식을 채택, 자신들의 엔진은 클린디젤로 가솔린엔진 보다 공해 물질을 덜 낸다고 오랜 기간 캠페인을 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게 됐고 결국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 판매하기에 이르렀다.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환경단체에서 디젤엔진이 가솔린 엔진보다 공해 배출이 적음을 보여 더욱 많이 사용토록하기 위해 실험하는 과정에서 전혀 예기치 않았던 결과를 얻게 된다. 즉 주행 중에 폭스바겐의 TDI엔진은 알려진 것보다 40배나 많은 질소화합물을 배출해 공기를 오염시키고 스모그를 생산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결국 오랜 공방을 통해 공해를 저감시키는 장치가 소프트웨어적으로 실제 주행이 아닌 공해측정 장치 위에서 측정 될 때에만 작동하도록 (즉 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검사 모드로 인식) 해 여러 가지 환경인증을 통과하는 조직적인 범죄를 장기간에 걸쳐 범했다. 1천100만대가 넘는 차량에 이런 TDI엔진이 장착돼 판매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이후에 판매된 폭스바겐 차량 중 약 20만대에 해당 엔진이 장착돼 그간 우리 사회에 입힌 폐해는 엄청나게 크다 할 수 있다.미국에서는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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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저녁이 있는 삶'은 가능한가? 지면기사
양극화·실업·고용불안정 속에서'저녁이 있는 삶' 같은 환상보다'국민성공시대' 같은 현실 택했던국민들 뭔가 다른 생각하기 시작물질적 욕구 다 채워졌을때주어지는 덤이 아니기 때문이다2012년 대선주자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자정을 넘어 귀가하기 일쑤인 회사원들과 대학입시 학원을 전전하는 고3들의 노곤한 일상까지 다독여주는 따뜻하고 품격있는 슬로건이었다. 개인의 자유, 삶의 질, 공동체에 대한 존중 등과 같은 탈물질적 욕구를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호소였다. 40줄을 넘어선 장년들은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돌아 고이시는" 장면을 상상했을 듯하다. 영화 '원더'에서 '옮음과 친절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선택하라'는 말처럼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성적 정의 대신에 감성적 친절을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민성공시대'를 내건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고, 그의 정의로운(?) 목표, 이른바 '747공약'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의 경제적 성공만을 목표로 국민들을 내몰았다.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자유를 앗아갔다. 외환위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신자유주의는 과거의 발전지상주의를 불러들이면서 더 정의로운 사회적 가치이자 삶의 양식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더 자본주의적이고, 더 시장지향적이며, 더 경쟁지상주의적인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도덕적 경건함, 행복과 즐거움, 휴식과 평안, 가족과 공동체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도 시장과 경쟁, 사적소유와 빈곤, 서열과 차별 등이 더 자연스러웠다. 신에 대한 경배,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용서, 자신의 죄악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공간인 교회에서는 더 많은 신도, 더 많은 헌금, 더 큰 교회당을 두고 경쟁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그 가족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빈소에서 그 자손들의 사회적 성공 네트워크를 드러내는 근조문구들이 경쟁한다. 결혼식장에서는 본인과 부모의 출신과 성공을 보여주는 화환들이 경쟁한다. 심지어 고단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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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이름 이야기 지면기사
고전 구절 인용 작명하는 이유는동아시아의 오랜 지적 전통을복원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내가 되살리고 싶은 것은오랫동안 지켜온 삶의 문법이고 그중 하나가 이름에 담겨 있다가끔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이름을 짓는 방식은 작명가들이 짓는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주로 고전 구절을 따서 이름을 짓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동아시아의 오랜 지적 전통을 복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통의 복원이라니까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권력으로서의 전통은 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되살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삶의 문법이다. 그중 하나가 이름에 담겨 있다.옛사람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명나라 말기의 학자 방학점(方學漸)은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방이지(方以知)'라는 구절을 따서 손자의 이름을 지었다. 올바른 도리를 지켜 지혜로워진다는 이름 덕택인지 방이지(方以智)는 고금과 동서의 지(知)를 망라하는 대지식인이 되었다. 그 자신의 이름인 학점(學漸)도 주역의 점(漸)괘에서 착안한 것으로 삼대가 주역학자였던 집안다운 이름 짓기라 하겠다.방학점의 선배격인 명나라 중기의 유학자 담약수(湛若水)의 이름은 장자의 군자지교담약수(君子之交淡若水)에서 따온 것으로 '담(淡)'을 자신의 성(姓)인 '담(湛)'으로 바꾼 것일 뿐이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맑다는 뜻인데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18세기 조선의 인물 중에는 멋진 이름을 가진 이가 많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다산 정약용이다. 그의 이름 '약용(若鏞)'은 서경에 나오는 말이다. 다만 '약용(若鏞)'이라는 표현 그대로는 안 나오고 '약금(若金)'으로 찾아야 나온다. 서경 열명편에는 은나라의 고종이 부열을 등용하면서 "만약 쇠붙이일 것 같으면 너로 하여금 숫돌이 되게 하리라(若金 用汝作礪)"고 했는데 여기서 '만약 쇠붙이라면'이라는 뜻인 '약금(若金)'을 취한 것이다. 다산의 아버지는 이에 착안하여 아들형제의 이름에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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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진 칼럼]가상화폐까지 간 욕망 지면기사
돈 추구하는건 나쁘지 않지만인생목표 1순위로 두는게 문제내 뜻대로 안된다는걸 인정하고부자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더 벌기위해 애쓰는것 보다자기삶 만족할줄 아는게 '부자'금의 보유량을 전제로 그 비율에 따라 달러라는 화폐를 만들었다. 이것은 금이라는 현실을 근거로 한 것이다. 화폐는 유가증권으로도 주식으로도 변할 수 있지만 그 근저에는 금이라는 현실이 있다. 그런데 최근 가상화폐의 관심은 매우 뜨겁다. 현실이 아닌 가상을 근거로 화폐를 만들고 그것을 유통하면서 인간이 이제 현실의 욕망을 넘어 가상의 욕망까지 탐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도대체 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돈만 있으면 인생은 정말로 행복한 것일까? 그렇다고 돈을 무시하고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일까?성경 구절 중에 신자들이 참 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자 청년에 관한 일화이다.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참고로 그 청년은 평소에 선행도 많이 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계명도 엄청 잘 지켰다). 그 질문에 예수는 "마지막으로 네가 가진 것을 전부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갔고, 예수는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오는 것이 더 쉽다"라고 말씀하셨다.현실적으로 보자면 참 갑갑한 이야기다. 어릴 적에 이 이야기를 듣고는 참 원망스러웠다. 그 부자 청년의 심정이 꼭 내 마음 같았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나는 부자가 아니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다' 하는 자조(?) 섞인 생각과, '바늘 귀 못 빠져나와도 좋으니 부자 한번 돼 봤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교차했다.솔직히 부자 되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만 해도 신부가 되기 전까지 가장 큰 소원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필 어릴 적 옆집에 살던 친구네가 엄청난 부자였는데, 2층 양옥에 연못까지 있는 그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이런 집에서 하루만 살아보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