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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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후생가외(後生可畏)와 사반공배(事半功倍)의 가르침 지면기사
지난달 은사이신 상허(尙虛) 안병주(安炳周) 선생께서 타계하셨다. 선생은 유학의 우환의식(憂患意識)과 맹자 민본사상(民本思想)의 권위자일 뿐 아니라, 한국유교학회와 동양철학연구회를 창립하여 동양철학의 학문적 저변을 확대하고 퇴계학연구원장과 국제퇴계학회 회장을 지내며 퇴계학의 위상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민족문화추진회와 전통문화연구회를 통해 고전 번역의 초석을 놓았고 대학을 비롯한 각급 기관에서 수많은 제자와 후학을 길러낸 스승으로 한국 동양철학계의 태두라 할 만한 분이다.대학시절 나는 선생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공부했다. 학교의 정규 강의는 말할 것도 없고, 민족문화추진회와 퇴계학연구원 등 선생이 강의하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맹자와 논어를 비롯한 유학의 고전은 물론이고 묵자와 노자와 장자 등 제자백가서까지 배웠다. 내가 들었던 선생의 모든 강의는 다른 사람의 강의로는 대체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롭고 흥미진진했다. 특히 맹자를 강의하실 때면 맹자와 제자들, 당시의 임금들이 강의실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선생은 마치 스스로 맹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연기를 하며 강독하셨는데, 맹자와 대화를 나누던 제자가 실망스러워하는 대목에서는 스스로 그 제자가 되기라도 한 듯 입을 삐죽이 내밀며 강의하셨고 제나라 임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고 할 때는 선생의 안색도 따라서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지금도 맹자의 그 구절들은 선생의 표정과 목소리로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수많은 후학 기른 동양철학계 태두은사이신 상허 안병주 선생 '타계'선생은 자신이 이룬 학문적 권위에 기대는 법이 없었다. 고전을 함께 읽을 때 새로운 견해를 이야기하는 제자가 있으면 선생의 풀이와 다르더라도 아낌없는 칭찬으로 높이 평가하셨으며 제자가 작은 성취라도 보이면 언제나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씀으로 격려하셨다. 논어의 한 구절로 '두려워할 만한 존재는 후생(後生)'이라는 이 말씀은 아마도 제자의 성취에 대한 칭찬에 그치지 않고 선생 스스로 분발을 촉구하는 경계의 말씀으로 입에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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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칼럼] 하와이 이민자 꿈이 담긴 민족 대학교 '인하대학교' 지면기사
우리나라의 대학교 중에서 민족대학이라 부를 수 있는 대학이 몇 개나 있을까? 여러분의 머리를 스치는 대학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인천의 미추홀(인천의 옛 이름)구에 위치한 인하대학교는 진정한 민족대학이라 할 수 있다. 인하(仁荷)는 인천의 인(仁)과 하와이의 하(荷)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인하대학교는 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인천에 오래 살고 있는 인천 시민, 일반 국민, 심지어 인하대학교 출신 동문들에게 인하가 민족대학인 이유를 알고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은 모른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동포들 고된 노동 저임금에도 '기부'이승만 대통령 의지로 1954년 설립선각자들 '프런티어 정신' 담겨 있어 개척정신·독립운동 산물 되새겨져인천 넘어 세계 초일류 대학교 염원인하대학교와 하와이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19세기 말에 하와이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에서 생산하는 사탕수수가 주요 수입원이었다. 사탕수수 농장은 대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했으며 처음에는 중국 이민자를 받았고, 다음에는 일본 이민자를 받았다. 중국인과 일본인 노동자 숫자가 늘어나자 위협을 느낀 농장주들은 중국과 일본 이외의 국가에서 이민자를 물색했다. 그러던 중 하와이 농장주들은 대한제국의 미국 공사인 앨런 공사의 도움으로 대한제국에서 이민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앨런이 주선한 미국인 데쉴러는 인천에 동서개발 회사를 설립하여 이민자를 모집했지만, 지원자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는 인천 내리교회 존슨 목사의 도움으로 이민자를 많이 모을 수 있었는데 대부분 기독교 신자이고 제물포 거주자들이었다. 이렇게 모집된 이민자 121명은 1902년 12월22일에 마지막으로 제물포항을 눈에 담고 먼 이국땅을 향했다. 이들은 일본 고베에서 신체 검사를 받고 101명이 갤릭호를 타고 1903년 1월13일에 하와이에 도착했다. 이들의 비자에는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직인이 찍혔다. 하와이 이민은 1905년 을사늑약에 의해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될 때까지 실시되어 7천226명의 이민자가 이주하였다. 이민자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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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속이지 말고 대들며 간(諫)하라" 지면기사
세상이 시끄럽고 나라가 어지럽다. 일본이 핵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여 우리나라에도 그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부는 항의 한마디 못 하고 일본이 하는 대로만 지켜보고 있으니 세상이 조용할 수가 있겠는가. 독립운동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동상을 육사에서 옮기는 일을 공론에 부치지도 않고 한두 사람의 독단으로 결행하려고 하고 있으니 나라가 어지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뜻으로 '선제공격'이니 '힘의 평화' 등 전쟁 불사의 대북 외교를 끌고 가고 있으니 전쟁에 대한 불안이 가셔질 수가 있겠는가.오늘의 정치는 이렇게 시끄럽고 어지럽게만 진행되고 있으니, 이에 대한 해결책을 연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옛 성현의 말씀에서 나라의 난맥상을 해결할 방도를 찾지 않을 수 없다. '논어'에서 공자의 말씀을 들어보자.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임금 섬기는 도리를 공자에게 물었다. 옛날로야 임금을 섬기는 사람이란 3정승, 6판서에 6승지를 비롯한 고관대작이지만 지금이야 대통령을 보좌하는 내각의 총리나 장차관 및 대통령실 비서관 등에 해당하는 사람인 것이다. 참으로 짧은 대답, 공자 왈 '물기야이범지(勿欺也而犯之)'라는 내용이다. '(임금님을) 속이지 말고 얼굴을 맞대고 간쟁한다'라는 뜻이다. 대단히 높은 지혜를 가르쳐 준 말이지만 말 자체가 짧으니 주해(註解)도 짧다. 주자는 '범(犯)은 얼굴을 맞대고 간쟁한다'라고 간단히 풀이했다. '논어고금주'에서 다산은 짧게 보충의견을 더했다. '실정을 숨기고 은폐하는 것을 기(欺)라 하고, (윗사람의) 위엄을 무릅쓰고 간쟁하는 것을 범(犯)이라 한다'라고 말하고는 '예기'를 인용하여 자신의 풀이가 옳음을 증명했다. '임금을 섬김에는 대면하여 간쟁을 해도 숨김이 없어야 한다'라는 것을 제시했다. 핵오염수·홍범도 동상 등 나라 시끌'논어' '소학'선 잘못 지적을 중요시 공자의 짧은 답변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인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임금에게 어떤 일이건 숨김없이 말할 수 있고, 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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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수 칼럼] 당면한 양자시대 그 준비와 대안은 지면기사
지난해 10월 스웨덴 과학한림원(Kungliga Vetenskapsakademien)에서는 2022년도 노벨 물리학상이 '양자 얽힘'을 연구한 오스트리아의 안톤 차일링거 교수(Prof. Anton Zeilinger), 미국의 존 프랜시스 클라우저 교수(Prof. John Francis Clauser), 프랑스 알랭 아스페 교수(Prof. Alain Aspect)에게 수여됐다. 이들은 세계 양자 정보과학의 선구자이자 물리학자들로서 국내외 많은 언론 및 전문가들도 노벨상감이라고 진작 예상했었지만 한 분야에 세 사람이 동시에 노벨상을 받은 바가 거의 드문 일로, 이는 2016년 1월16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가 제4차 산업혁명의 주요 의제와 핵심 요소로 발표한 AI, Robotics, IoT, 3D, Big Data 등 다섯 가지에 일자리까지 언급한 것 못지 않게 큰 놀라움을 준 대사건이다.양자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아주 작은 입자들의 동작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 입자들은 때때로 파동처럼 행동도 한다. 이것을 '파동-입자 이중성'이라 하며 그 입자들은 특정한 에너지 상태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이는 레이저, 전자 기기, 나노 기술 등 현대 기술의 큰 기반을 제공하는 작은 입자로 미시세계에서 적용되는 규칙을 설명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작년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 얽힘'한 분야에 3명 동시 수상은 드문 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양자 얽힘'에 대해선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을 이해함이 우선일 것 같다. 이는 파동적인 성질이 있으며, 모든 물질은 고로 파동이면서 입자로서 그리고 파동도 입자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양자역학의 기초로 고유한 두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양자 중첩(superpostion)은 입자가 두 가지 이상의 상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즉 '0이면서 1인 상태'로 양자컴퓨터의 핵심이다. 양자 얽힘(entanglement)은 두 개 이상의 양자 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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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칼럼] 해바라기와 볼라드와 지방자치 지면기사
최근에 김동근 의정부 시장을 만났다. 그날 모임의 좌장이 시장직 할만하냐 물었다. 신나게 일한다고 했다. 두 발로 의정부 시내를 걷다보면 해결하고 바꿀 것 투성인데, 시장이라 해결하고 바꿀 수 있어 신난단다. 쓰레기산을 해바라기 정원으로 바꾸었다. 건설폐기물 26만t이 산처럼 쌓여 도심의 흉물이던 시유지 3만평. 쓰레기를 치운 자리에 국제테니스장 조성 등 시청의 계획이 무성했다. 걷기 마니아인 김동근은 아침 저녁으로 시민들을 만나 의견을 모은 뒤 해바라기 씨를 뿌렸다. 황금빛으로 가득찬 해바라기 정원 3만평, 시민 전체가 즐기기에 족하다.의정부 시내 도로에 설치된 볼라드를 1천개나 넘게 뽑아버렸다. 날마다 시내를 걷던 김동근에게 시민들, 특히 장애인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볼라드가 너무 많았다. 공무원에게 확인하니 예산이 원흉이었다. 이미 설치된 볼라드를 유지할 시예산이 해마다 편성됐다.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려면 볼라드는 자기 자리를 지켜야했다. 시민 편의 보다 신성한 예산과 예산집행이다. 뽑으라 했다. 시장이라 해결이 가능했다. 부활 30년 지방자치, 폐쇄적 권력 카르텔로시민 배제·브로커 활개에 부정·회의적 시선들 한국 지방자치는 1949년 공포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전쟁 중인 1952년 지방의회 선거로 시작했다. 박정희의 군사혁명위원회가 1961년 민심의 분열, 금품선거, 지방행정의 비효율을 명분으로 중단시켰다. 김대중이 1990년 13일 단식으로 30년 만에 부활시킨 지방자치가 1995년 완전체로 시행된 지 또한 30년이 다 됐다. 많은 국민들이 지방자치에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다. 이유는 놀랍게도 지방자치를 중단시킨 박정희 정권의 명분과 판박이다.부활 30년 지방자치는 폐쇄적인 권력 카르텔로 추락했다. 소수의 연고 집단이 30년 세월 동안 지방권력 카르텔을 형성해 장벽을 세우고 자치 주역인 시민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그들만의 자치 리그에서 지방권력과 예산을 농단한다. 중앙 정치권력은 지방권력을 집권의 도구로 계열화하고 후원한다. 자치 시민이 배제된 폐쇄적인 자치 구조다.열악한 재정도 자치의 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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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세월이 오래 가면 모든 것이 변한다 지면기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름은 같아도 그 성질은 달라지는 것이 많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가 탄생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신 세력이 집권하자마자 구정치세력과 선을 긋겠다고 열린우리당을 만들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급변했다. 민주와 반민주라는 오래된 구분선은 이 정부가 스스로 진보와 보수로 '전선'을 재편하고자 하면서 허물어져 내렸다.탄핵 국면이 열린당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지만 단 한 번의 기회를 뒤로 하고 큰 덩치를 두 쪽으로 나누어 버린 열린당은 그 후 선거 때마다 연전연패였다. 대통령이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가운데 차기 대통령 선거는 엄청난 표차로 당시 야당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 문제가 계급·계층 문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상수임을 무시한 데다가 스스로 민주·반민주의 구분선을 해체해 버린 결과였다.그 다음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면서 당시 야권은 가까스로 재통합을 이루며 선거 막바지 국면에 다다랐다. 이번에는 TV토론에 등장한 진보당 후보의 막무가내식 '선전'은 국민들을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 범죄혐의 정치인 체포동의안 가결찬성표 색출한다니… 무서운 세상말·행동의 자유가 민주주의 초석 사실은 이 선거 전부터 야당은 당내에 이질적인 분파나 정견을 허용하지 않고 주류파가 독주하는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야당은 전통적인 야권에 '386 세대'로 정치에 입문한 이른바 '운동권', 그리고 새로 등장한 안철수 세력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386', 이제 '586'이 된 운동권 정치인들에 의해 떠받들어진 지도부는 다른 분파들을 일방적으로 고사시키거나 쫓아내는 행태로 일관했다는 해석이 많다.18대 대통령의 시대에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분열된 야당을 상대로 유리한 국면에서도 국민 정서를 거스르며 참패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제1당으로 올라섰지만,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을 석권하면서 향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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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 지연된 공적 정의, '민주적' 사적 제재 지면기사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다. 헌법 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다. 재판이 길어질수록 소송당사자의 부담이 커지고 범죄 피해자의 구제가 늦어질 수 있는 만큼 재판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판사들이 워라밸을 중시하고, 판사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인사이동이 빈번하다는, 혹은 이른바 '사법민주화'로 인해 판사들의 업무 동기가 약해지고 유능한 판사들이 퇴직한다는 지연사유들이 거론되기도 한다.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전혀 다른 사안들에서 '지연된 정의'를 인식한다. 현 야당대표에 대한 수많은 범죄혐의는 수사, 기소, 재판, 국회체포동의 등에서 발목이 잡히고 있다. 그의 선거법 재판사건은 확정된 후에도 '재판거래'의 의혹을 받고 있다. 몇몇 간첩단사건은 변호인 측의 재판방해에 휘말렸고, 피의자들은 석방되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이 총동원된 울산시장 선거개입사건은 그 당사자가 임기를 마치고 나서야 1심 구형이 이루어졌고, 그나마 그 주역들은 수사와 기소에서 빠져버렸다. 전임 법무장관 재판은 공범인 부인이 형 확정으로 복역 중인데도 아직 1심 진행 중이고, 주범일 수도 있는 그의 성인 자녀는 이제야 기소되었다. 이에 조력한 한 국회의원의 재판은 임기를 다 마쳐가는 판국에 대법원에서 표류하고 있다. 정의가 지연되면서 정치적 공방만 거칠게 이루어진다.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검찰과 사법부에 의해서 유력한 정치인들의 재판은 법치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국민들도 어느 순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의 편에 서면서 법치주의에서 벗어난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임기 후 구형 등정의가 늦춰지면서 정치적 공방만사적 복수 허용땐 법치주의 붕괴돼현대에 이르러 시민과 시민사회의 사회적 행위 역시 공공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요구된다. 실제로 시민단체는 정당과는 다른 사회적 공공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익집단과 구별된다. 따라서 그들의 목소리는 공익을 담고 있다고 인식된다. 특히 이들은 정당체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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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칼럼] 대한민국 갈라치는 정치, 멈춰 세우자 지면기사
식민의 강과 전쟁의 강. 대한민국 현대사의 발원지다. 역사의 두물머리에서 대하로 합수해 대해로 흐르기에 넉넉한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모자랐다 해도 지금쯤이면 두물머리 근처에 도달하기엔 충분했다. 불운한 역사는 화해하기 힘든 법인가. 식민의 강과 전쟁의 강은 자기 물줄기를 고집하며 오늘도 대한민국을 갈라치며 흐른다.보수와 진보는 정체성을 길어 먹는 역사의 우물이 다르다. 전쟁의 강은 보수의, 식민의 강은 진보의 상수원이다. 서로 다른 물을 먹는 동안 한국 정치에 망조가 들었다. 역사를 편식한 여야의 정쟁 앞엔 과학도 상식도 무의미하다. 진보는 슬그머니 남침의 앞잡이 정율성의 기념공원을 조성하려다 들키고, 보수는 공개적으로 홍범도 흉상 이전을 결정해 스스로 역사의 편식을 증명한다. 진보와 보수는 식민의 강과 전쟁의 강에 댐을 세워 정쟁의 동력을 발전한다. 보수와 진보에게 두 역사의 합수는 존재의 상실이다. 대장동의 이재명이 살려면 윤석열은 일본의 앞잡이가 돼야 한다. 진보 정권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려면 공산전체주의에 호응하는 진보의 실체를 드러내야 한다. 합수한 정사(正史)가 없으니 야사(野史)가 판을 친다. 판을 치는 것도 모자라 정사를 왜곡해 현재를 오염시킨다.식민의 강과 전쟁의 강, 자기 물줄기 고집보수·진보에게 두 역사 합수는 존재 상실역사로 분리된 국민의 화합은 불가능하다. 역사적 적대는 전쟁의 서막이다. 역사의 거울을 따로 쓰는 정치 내전으로 국가의 정기가 탁해졌다. 대통령과 야당의 극한 대립으로 정부와 국회는 정상 국가의 행정·입법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됐다. 사법부도 붕괴됐다. 법원의 판결과 검·경의 수사는 정권에 부역한다. 문재인은 박근혜의 대법원장을 탄핵했고, 윤석열은 문재인의 대법원장을 탄핵할 기세다. 문재인의 검찰이 덮었던 수사를 윤석열의 검찰이 열심히 파고든다. 사법 정의가 무너진 자리에서 대중은 사적 복수를 열망하고 실행한다.언론의 붕괴는 결정적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사초를 목숨으로 지킨 사관들 덕분에 명실상부한 '실록'으로 남았다. 진실에 목숨을 걸었던 대한민국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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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이순(耳順)의 이명(耳鳴) 지면기사
지난해 환갑을 맞이하면서 귀에 이명이 찾아왔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서거나, 세수하다가 머리를 들 때, 운전을 마치고 차 문을 열 때면 귀에서 소리가 난다. 어떤 때는 시계태엽 감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쓰르라미 우는 소리 같기도 한데 자세히 들어볼라치면 또 들리지 않는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는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에 잠을 깼다. 집 주변에 기찻길이 없기 때문에 기차 소리가 들릴 턱이 없었지만, 분명히 레일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 소리와 똑같았다. 잠결에 이제는 귀에서 기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이명이 심해졌구나 싶었는데 깨어나 확인해보니 이삿짐 차량의 사다리에 연결된 운반용 트레일러가 오르내리는 소리였다.그다지 거슬리지도 않고 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라 딱히 치료할 마음까진 생기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냥 놔두면 청력을 잃을지 모른다고 겁을 주기에 가까이 지내는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에게 어떻게 치료하는 게 좋을지 물어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이명에는 별다른 치료법이나 특효약이 없고 그저 충분한 휴식과 잠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며 본인도 가끔 귀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덧붙인다.별다른 치료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은 병원을 오고 가며 이런저런 검사를 받는 일을 번거롭게 여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토록 시끄러운 세상에 나만 조용히 살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만 아는데 남들은 모르는 이명남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코골이 일찍이 연암 박지원은 이명과 코골이를 글 짓는 일에 비유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한 어린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갑자기 귀가 울자 놀라 기뻐하면서 이웃집 아이에게 말했다. '너 이 소리를 들어봐라. 내 귀에서 앵앵 소리가 나는데 마치 피리 소리 같아서 동글동글 별 같다.' 이웃집 아이가 귀를 기울여 서로 대보았지만 끝내 듣지 못하자 아이는 슬피 울면서 자기에게 들리는 소리를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했다.""한번은 시골 사람과 함께 잠을 자는데, 코 고는 소리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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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칼럼] 선진국으로 퀀텀 점프하는 방법 지면기사
요즘 대한민국의 국가 순위는 현란합니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인 Global Fire Power에 따르면 2023년에 대한민국은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2022년에는 1인당 GDP가 3만2천142달러로 전 세계에서 22위에 해당합니다. GDP 대비 연구 개발 비용 비중은 4.9%로 세계 2위입니다. 국제 수출시장에서는 2.8%의 점유율로 6위, 수입시장에서는 2.9%의 점유율로 8위입니다. 더불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는 2위(KOTRA)를, 배터리 생산순위에서는 5위(S&P Market Intelligence)를 기록하며, AI 분야에서는 7위(Tortoise Media)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표들을 보면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입니다.하지만 현실적으로, 선진국이라고 느끼는 국민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 질문에는 다양한 답이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방법 중 어떤 길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일까요? 대한민국이 현재의 위치에 도달한 것은 국민의 희생과 역량 덕분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 국민은 서로를 격려하며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가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1997년 IMF 위기 때에도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우리는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국가의 외화 부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중화학 공업에서 디지털 산업으로 전환할 때도 우리 국민은 민첩하게 대응하여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성취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 선진국 지표 가졌지만 문턱디지털 전환·첨단바이오산업 세상우리만의 제품 개발하는 '선도자' 우리의 급진적인 경제 발전은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는 저임금으로 제품을 생산하면서 선진국을 모방하는 추격자로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추격자에게 필요한 것은 응용과학과 공학 지식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개발한 것을 모방하거나 변형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