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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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수원화성을 찾은 명사(名士)들 지면기사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의 시 '풀'의 한 대목이다. '풀'은 민중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한 절창이면서 물리적 사실을 넘어선 감각의 진실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상식적으로 풀이 바람보다 먼저 눕거나 먼저 일어설 수는 없겠으나 바람에 흔들리는 풀을 계속 주시하다 보면 먼저 불어왔던 바람에 쓰러졌던 풀이 곧이어 다음에 불어오는 바람보다는 먼저 일어서는 것처럼 보인다. 흐르는 시냇물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시냇물은 가만히 있고 마치 내가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과 비슷한 현상이다.현상학의 핵심 개념으로 노에시스와 노에마가 있다. 노에시스는 의식 작용을, 노에마는 노에시스가 만들어낸 관찰 대상을 뜻한다. 이를 라캉의 '응시(gaze)' 개념으로 환원하면 시선은 주체의 소관이나 응시는 대상에 속한 것이다. 무엇이든 계속 응시하다 보면 김수영의 '풀'처럼 바라봄과 보여짐, 노에마와 노에시스의 역전이 발생한다.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이 같은 시적 경험은 주체의 시선이 멈추는 시점에서 생겨난다. 응시를 통해 세계와 대상이 물리적·인식적 현실로부터 풀려나는 순간, 그것들은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설계자 다산 유배길 수원까지 가족들 동행성호 이익, 이고와 선조들 성묘 수시로 찾아 수원문화재단이 운영을 맡고, 화성사업소가 관리하는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수원과 경기도를 넘어선 대한민국과 세계의 문화자산이다. 그런데 라캉의 응시의 맥락에서 보자면 재단과 사업소가 수원 화성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수원 화성이 재단과 사업소가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수원 화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수원 화성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다. 수원 화성의 바라봄은 현재적 시점에 고정되지 않고, 통시적이며 광범위하다. 수원 화성이 바라본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수원 화성의 바라봄은 깊고 넓다. 수원 화성의 기왓장과 여장과 성돌, 총안(銃眼) 속에는 온갖 역사적 기억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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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언어가 국력(國力)이다 지면기사
지난 8월 하순에 광주에서 개최된 초등학생 대상의 동요경연대회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광주MBC가 2014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정율성동요제로 참가자들은 의무적으로 정율성이 작곡한 1곡과 자유곡 1곡씩을 부른다. 광주 출신인 정율성은 해방 이전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사람으로 중국에서는 3대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공자학원도 눈길을 끌었다. 1회 행사는 호남대 공자학원과 공동개최했는데 요즘에도 시상식에는 중국 총영사 등이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학원은 중국정부가 세계 각국의 대학들과 교류해서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중국정부가 매년 운영비의 20∼30%를 부담한다. 국내에는 2004년에 세계 최초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세운 서울공자아카데미 등 대학 22곳과 중·고등학교 16곳 등 총 39곳에서 운영 중인데 강남의 공자아카데미는 스파르타식 중국어 교육으로 중국유학 및 취업준비생들에 인기가 매우 높다. 세계 곳곳에 설치된 공자학원은 '일대일로(一帶一路)'와 함께 중국 대외팽창정책을 견인하는 쌍두마차이다. 일대일로란 2013년부터 중국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현대판 실크로드사업으로 미국의 손길이 닿지 않는 개발도상국에 경제원조 명목으로 철도·도로·항만 등의 기반시설을 확충해서 미국중심의 세계평화질서(팍스 아메리카나)에 도전하려는 것이다.영어 사용 15억명 경제적 가치 6171조4천억중국어, 11억명… 영어가격 10분의 1 불과팍스 아메리카나를 든든하게 버티는 으뜸의 무기는 영어이다.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수는 약 3억5천만∼4억명,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인구수는 약 4억명 등 대략 15억명이다. 2위는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 등지에서 사용하는 중국어(만다린어)인데 사용 인구수는 11억명이다. 영어는 경제적 가치도 세계 최고로 2019년 기준 6천171조4천241억원이다.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이 10여 년 동안 세금 한 푼 안내도 나라살림을 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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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한국정치를 망친다 지면기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영장 심사는 분명 정치의 분수령이었다. 사법 영역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사건화한 '사법의 정치화'의 전형적 사건들로 이미 치환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민주당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야당 탄압과 정적 제거에 혈안이 된 윤석열 검찰 독재정권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윤석열 정권과 정치검찰의 무도한 왜곡 조작 수사는 법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제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비열한 검찰권 행사를 멈춰야 할 시간"이라는 논평을 냈다. 그리고 또 다시 내각 총사퇴와 국정기조의 대전환을 다시 껴내들었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있지도 않은 사법 리스크를 들먹이며,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방탄'의 딱지를 붙이기에 여념이 없었던 국민의힘도 사죄해야 한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불통의 폭정을 멈추고 국민 앞에 나와 머리 숙여 사죄하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결국 법원이 개딸에 굴복했다"며 "추상같이 엄중해야 할 법원의 판단이 고작 한 정치인을 맹종하는 극렬 지지층에 의해 휘둘렸다"는 논평을 냈다. 또한 "숱한 범죄 의혹으로 가득한 1천500페이지에 달하는 검찰의 의견서는 차치하더라도, 이 대표는 수사과정에서 대한민국 법치를 농락해왔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후 '여야 논평'정치 정상화 거부 여전히 적대·극한 대립 민주당과 국민의힘 논평 모두 이 대표 영장 기각을 변곡점으로 정치의 정상화를 바란다면 나오지 말았어야 할 주장들이다. 민주당은 영장 기각이 최종적으로 무죄라는 프레임을 동원하여 영장기각과 사법리스크의 완전 해소를 등치시키려 하지만 사법의 영역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낮은 수준의 정치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 역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성명을 내지 못하고 '강성 지지층에 의해 휘둘린 판단'이라는 논평을 냄으로써 집권세력으로서의 당당함과 의연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실종의 주범인 사법적 문제에 관한 법원의 영장 심사 결과를 과도하게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민주당과 법원을 폄훼하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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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1㎝의 혁명 지면기사
바이올린의 활이 현의 중앙 부위를 스치면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반면 브리지 근처에 활을 갖다 대면 중앙에 비해 거칠고 둔한 소리가 난다. 현의 위치에 따라 음색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이는 음이 발산하는 위치에 따라 파동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 연주자는 이를 활용해 음색에 변화를 주면서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이런 원리는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는 기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얼마 전 인천이 낳은 세계적인 클래식기타리스트 박규희의 연주를 직관한 적이 있다. 경인일보 기획물 '아임 프롬 인천'의 취재차 그를 인터뷰하면서 한 곡 연주를 부탁했는데, 이 글은 충격적(?)이었던 그날의 감상 후기다. 참고로 이해를 돕기 위해 클래식기타에서 사용되는 손가락 표기법을 소개한다. 오른손의 손가락 기호는 p(엄지), i(검지), m(중지), a(약지), ch(소지)다. 클래식기타리스트 박규희 '트레몰로' 연주네손가락 아닌 세손가락 주법 타의 추종 불허 클래식기타 주법 중에 '트레몰로'라는 게 있다. 기타를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란 곡에 사용되는 주법이다. 음을 고르게 유지하는 게 관건인 난도 높은 주법이다. 박규희는 '트레몰로의 여신'이라 불릴 정도로 이 주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 백년간 전해 내려오는 트레몰로의 정형화된 주법은 'p-a-m-i' 순서로 연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규희는 그날 약지(a)를 아예 쓰지 않는 'p-i-m-i'주법으로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연주했다. 네 손가락에 특화된 트레몰로를 세 손가락으로 구사한 것이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기타리스트 입장에서는 자동차에 운전대 대신 자전거 핸들을 갖다 붙이는 것에 비유할 정도의 파격이다. 박규희 또한 3년여 전까지만 해도 '네 손가락'주법으로 트레몰로를 연주했다. 그가 9차례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는 동안 이 주법은 그의 필살기였고, 트레몰로는 그의 상징이 되다시피 했다. 그런 그가 기존의 주법을 버렸다는 것은 충격 이상이었다. 혼신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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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또 다른 '인천상륙' 지면기사
인천시가 준비해온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가 끝났다. 이번 행사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극적으로 역전시킨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인천 앞바다 해상에서 역대 최대규모로 재연한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을 노르망디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노르망디가 나찌 독일을 대상으로 연합군이 싸워 이긴 전쟁의 일부였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연합군이 두 진영으로 갈라서 싸운 국제전이면서 한 민족이 갈라서서 싸운 내전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이 판이하다. 더 결정적인 차이는 노르망디 상륙 이후 독일은 패배를 선언했지만, 한국전쟁은 아직도 종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휴전에는 조인했으나 전쟁 당사자들인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중·러를 한 축으로 하는 진영은 70년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의연히 대치하고 있다는 점이다.청일전쟁·러일전쟁 때도 인천상륙 수차례세월속에 잊혔던 황태자 요시히토의 방한 그런데 '인천상륙'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이다. 1882년에는 임오군란으로 도피했던 하나부사가 군대를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되돌아 온 인천상륙이 있었다. 하나부사는 정부를 압박하여 일본인 사상자와 재산 피해 보상을 약속받고 제물포조약을 체결하게 했다. 12년 뒤인 1894년에는 청일전쟁 당시의 일본 오시마(大島義昌)가 이끄는 여단 8천명의 인천상륙이 있었으며, 1904년 러일전쟁의 첫 전투였던 제물포해전에서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하여 승리한 일본군 12사단, 5만5천명이 상륙하여 서울과 경운궁을 점령하고 용산에 진지를 구축했다. 이 사태는 우리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으로 이어졌다.하나부사의 제물포 상륙, 청일전쟁, 제물포해전에 이르는 무훈담은 일본인들에게 마르지 않는 신화의 원천이다. 그들은 이들 전쟁 이야기를 '우끼요에'(다색 목판화)와 석판화, 우편엽서로 제작하여 판매했다. 인천상륙이 거듭될 때마다 일본은 부상하고 조선은 침몰했으니 그들에겐 두고두고 환호작약할 이야깃거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 주목하지 않는 '인천상륙'이 있다. 1907년 메이지 천황의 황태자 요시히토(嘉仁)의 방한이다. 나중 다이쇼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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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참성단(塹星壇)의 현재적 의미 지면기사
우리에게는 두 개의 '참성단'이 있다. 하나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472.1m) 정상에 있는 제단 참성단이고, 다른 하나는 경인일보 18면 오피니언 난(欄)인 참성단이다. 강화도의 참성단은 국조(國祖)인 단군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천행사와 함께 전국 체전 같은 국가의 중요한 행사 때 성화를 채화하는 유서 깊은 사적이다. 참성단의 제천행사나 제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고려 원종 11년(1270년), 조선 인조 17년(1639년), 숙종 26년(1700년) 등에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로 미루어 참성단의 제천행사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기록상 참성단 천제에 대해 가장 빠른 것은 고려 원종 5년(1264년)으로 몽골에 입조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친초(親醮), 즉 국가 제사로 치러졌다는 기사다. 강화 마니산 제단 국가중요행사 성화 채화천원지방론 외에 주역의 '우주철학'도 반영 참성단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이른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모양이라는 고래(古來)의 사상에 따라 조성됐다. 제단 아래는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으로, 제단 위쪽은 땅을 상징하는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천원지방론(論)은 중국 후한 시대의 천문서인 '주비산경(周비算經)'에 처음 등장하며, 수원 화성의 용연을 포함해서 한국식 정원들은 모두 이 같은 천원지방의 원리에 따라 연못은 네모난 모양으로 그리고 연못 중앙의 섬은 둥근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참성단은 단지 천원지방론만을 따른 것이 아니라 '주역'의 우주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주역'은 '상경'과 '하경'에, 공자가 정리한 십익(十翼)을 포함하여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주역'의 '상경'에 등장하는 열한 번째 괘가 바로 지천태(地天泰)인데, 참성단이 바로 이 지천태괘 형상이다. 괘사는 '태괘는 작게 가고 크게 오는 모습으로 길하고, 형통하다(泰, 小往大來, 吉, 亨)'이다. '주역'에 따르면 하늘은 귀하고 높으며 땅은 낮고 비천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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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연구카르텔과 성장동력 지면기사
한국의 고도성장은 1997년말의 외환위기와 함께 끝났다. 이후부터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점차 둔화해서 노무현정부 말기인 2008년부터는 세계평균에도 못미치더니 메르스사태가 한창이던 2015년부터는 아예 2%대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올해의 분기별 성장률은 1%대에도 못미쳐 일본보다 낮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사반세기 만에 일본에 역전될 개연성이 크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기대에 못미치는 데다 주요국 경기회복 속도가 떨어진 탓이다.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의 영업실적을 들여다보면 심각하다. 지난달에 CEO스코어가 매출액 500대 기업 중 반기보고서를 제출한 305사의 실적을 분석한 결과 금년 상반기의 합계영업이익이 지난해 상반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주력산업인 반도체, 석유화학, 정유, 철강, 건설, 제약, 유통 등 대다수 업종이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 미국 등의 영향을 받은 자동차, 조선, 배터리산업이 선방했지만 전체 실적을 견인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 간판기업들의 성장세가 멈춘 것이다.尹대통령 카르텔 타파 언급에 과학계 어수선韓 장기침체 해법은 '신성장동력 확보' 불구 한국경제가 내년에도 1%대 저성장에 그칠 것이란 국제금융기관들의 전망에도 눈길이 간다. 한국의 1%대 저성장은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유례가 없다. 지난달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선진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1.3% 정도인데 제조업 중심인 한국의 성장률 1.4%는 경제파국으로 여겨질 만큼 비관적"이라며 "이미 우리나라는 장기 저성장구조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이 앞서 겪었던 잃어버린 20년, 30년 등과 같은 장기침체의 초입에 들어선 느낌이다.한국경제학회의 경고는 더욱 비관적이다. 학회가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용역을 받아 최근에 작성한 '한국경제 상장의 현황과 도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30년 1.68%를 기록한 후 2040년 이후에는 0%대로 쪼그라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바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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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 반공 이데올로기로 회귀하나 지면기사
21세기 탈냉전의 국제관계 속에서 동아시아·태평양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정책, 과도하게 미국과 일본에 경도되는 외교정책에 많은 우려가 따르지만 급기야 국내정치에 끼치는 영향이 과거회귀적 경향을 보이는 건 더욱 우려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적 역사인식의 일단은 각종 경축사와 발언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정부 비판 세력을 의식한 듯한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여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분단의 현실에서 이러한 반국가세력들의 준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시대착오적인 투쟁과 혁명, 그런 사기적 이념에 굴복하거나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우리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다"라고 대상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야당이나 이른바 운동권 경력을 가진 정치인이나 인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대상이 누가 됐건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이 통합의 메시지보다 대결과 철지난 반공주의를 소환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다. 특히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등의 흉상을 철거한다는 국방부의 방침에는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사와 한국현대사를 공부해보면 좌파의 항일투쟁이 훨씬 적극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때는 지금의 북한 정권의 존재는 당연히 없었고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북한 공산주의 정권과는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육사 교정서 옮기는건 해묵은 이념 논쟁과거 암흑·폭력의 시대 재구성 아니라면尹 정부의 극우 편향적 인식 바로 잡아야극한적 퇴행 인식이 정치를 억눌러 개탄 새삼 역사논쟁이라고 할 것도 없이 홍범도 장군과 독립투쟁을 한 순국선열들을 육사 교정에서 이전한다는 것은 명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묵은 이념 논쟁을 야기시킬 뿐이다. 정쟁이 없어서 또 다시 정쟁을 촉발시키는건지, 역사인식의 부재와 현대사에 대한 무지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공동체의 해체와 정치의 양극화는 물론 사회 전반의 격차가 심화되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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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종이거울'에 비친 삶 지면기사
우리는 거울과 함께 생활한다. 일어나면 거울을 보고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외출하며 돌아와서 손발을 씻고 이를 닦을 때도 거울을 본다. 거울은 몸을 비출 때만 쓰는 게 아니다. 한자문화권에서 거울은 역사의 비유어이기도 하다.'자치통감'이나 '동국통감'과 같은 역사서에도 거울 감(鑑)자를 썼다. 이 글자는 그릇의 수면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표상한 것이다. 역사의 거울을 편찬하는 데 나라마다 힘을 쏟은 것을 보면 개인은 물론 국가나 사회적 삶을 되돌아보는 거울이 필요하다는 반증이겠다. 사람들이 동물과 달리 거울을 곁에 두고 생활하는 것은, 거울을 보고 또 보는 것은 가다듬어야 할 게 많다는 것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은 다른 일이다.거울에 겉모습을 비추어 먼지를 털고 옷매무새야 가다듬을 수 있지만 삶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 보는 거울에 비친 모습은 물리적으로도 실제도 아니다. 좌우가 뒤바뀐 좌우반전상이기에 '셀카'로 찍은 자신의 얼굴이 낯설 때도 있다. '거울' 국가와 사회 돌아보는 '역사의 비유'김해자 시인, 영혼 들여다보는 글쓰기 소망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 있을까? 염라대왕의 업경대(業鏡臺) 같은 거울 말이다. 업경대는 사람의 평생을 주마등처럼 비춰 보이고 잘잘못을 심판하는 거울이다. 그런데 그 거울은 죽어서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나'와 세상을 비추는 거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본 사람은 고려의 문호 이규보이다. 이규보는 수필 '경설(鏡說)'에서 '흐린 거울'의 비유를 통해 세계와 나의 관계를 날카롭게 드러냈다.이 글은 늘 안개가 낀 듯 흐린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사'와 먼지 낀 거울을 들여다보는 '거사'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는 '손님'의 대화이다. 손님은 맑은 거울이라야 거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거사는 거울이란 겉이 흐려도 사물을 비추는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흐린 것은 흐린 대로 비추어 그 흐린 모습을 확인함으로써 반성하고 참모습을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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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로즈버드, 재나두, 그리고 판전(板殿) 지면기사
'시민 케인'은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영화는 지금부터 82년 전인 1941년 당시 25세였던 청년 오손 웰즈(1915~1985)의 작품이다. 웰즈가 제작·대본·감독 그리고 주연까지 1인 4역을 했다. 그러나 조선을 설계하고 세운 이가 이성계인지 정도전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이 영화를 놓고도 이것이 감독인 웰즈의 작품인지 극작가 허먼 J. 맨키비츠의 작품인지를 놓고 논란이 있기는 하다.영화는 찰스 케인이라는 언론 재벌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지인들의 회상을 통하여 서사화하는데, 서사의 핵심은 기억과 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절의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 있다.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 '시민 케인'하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단어는 바로 '로즈 버드(Rosebud)'다. 영화는 사람들의 기억들과 회상들을 모자이크처럼 긁어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스토리를 이어가는 영화 속의 작자며 화자는 찰스 포스터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인 '로즈버드'가 무엇인지를 추적하는 기자 제리 톰슨이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에게는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알려지지 못하며, 관객들에게만 그것이 쓰레기로 태워져 버린 어린 찰스 포스터의 눈썰매임을 슬쩍 보여준다.그런데 '로즈버드'는 영화 '시민 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로즈버드'는 눈썰매지만 그것은 고정된 의미를 지니지 못한 채 부유하는 텅 빈 기표와 같은 것으로써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형태와 의미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시민케인 '로즈버드' 주인공 눈썰매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절의 동심' 서사화 재나두(Xanadu)는 영화이면서 추억의 팝 스타 올리비아 뉴튼 존의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재나두는 14세기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가 중국의 이상향처럼 묘사하면서 유럽에 전파됐는데, 이곳은 베이징으로부터 약 300㎞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원나라 황제의 별장을 뜻한다. 정확히 말하면 몽골제국의 5번째 칸이면서 원나라 초대 황제가 된 쿠빌라이의 별장으로 한자로는 상도(上都)다. 중국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