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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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청렴은 나로부터… 지면기사
2014년 3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김영란법'이 지난 9월 27일 시행됐다. 김영란 법이란 공공부문의 부패로 인해 정부신뢰 저하 및 대외신인도 하락 우려로 기존 부패방지 관련 법률(형법, 공직자윤리법 등)의 한계를 보완하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를 위한 종합적인 통제장치 법제화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적용대상으로는 공직자, 공직자 등의 배우자, 공공기관의 의사결정 등에 참여하는 민간인, 일반국민(부패행위 제공 민간인) 등이 있다.전에 없던 강력한 부정부패 방지법이지만 이해관계가 얽혀 제도의 정착에는 많은 진통이 예상된다. 국내 청렴제도와 더불어 청렴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아보자.첫째, 2012년~15년까지 4년 연속 부동의 1위 덴마크는 북유럽 청렴국으로 국회의원 대부분이 의전 차량이 없어 자전거를 이용 출퇴근하고 있으며 국회의사당에 별도의 주차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언론기관은 '고발기자(investigative journalists)'라는 특수분야 기자를 양성해 덴마크의 부패사건은 대개 언론기관에 의해 적발되고 있으며 부패관련 사건이 알려지면, 사법당국은 예외 없이 수사를 하고 다시 언론을 통해 결과를 공표하고 있다.둘째, 기업과 공직자 모두 부패 발생은 곧 국민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는 인식 아래 철저한 청렴 실천으로 청렴이 습관이 된 핀란드는 2015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핀란드에는 "공무원에게는 따뜻한 맥주와 차가운 샌드위치가 적당하고 그 반대가 되면 위험하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셋째, 1766년 '출판언론자유법' 제정을 시초로 '행정의 모든 것을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을 70여개국에 전파한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정보공개를 성문화한 나라이며 뇌물을 주기로 약속만 해도 이메일·전화통화 등 증거가 있으면 범죄로 기소할 수 있는 등 공직비리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무관용으로 유명하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지난해 우리나라는 56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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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붕우지궤: 벗이 주는 음식 지면기사
"벗이 죽어서 돌아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빈소를 차리라'고 하셨고, 벗이 주는 선물일 경우 설령 수레나 말이라도 제사지낸 고기가 아니면 절하지 않으셨다." 공자가 평소 벗을 대하던 태도에 관한 '논어'의 기록이다. 앞의 한 장면은 아낌없이 주는 내용이고 뒤의 한 장면은 정 반대로 담담하게 받는 장면이다. 이에 대한 후대에 주석은 '의합(義合)'과 '통재(通財)'이다. '의합(義合)'은 의리로 합한 사이라는 것이고, '통재(通財)'는 재물을 통용하는 사이라는 뜻이다. 의리로 합한 사이이기 때문에 빈소가 없으면 자기 집안에 빈소를 마련해주고, 재물을 통용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귀중한 선물이라도 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제사의 경우는 벗의 조상을 자기의 조상을 대하는 공경의 예로 대하려 절을 하고 받았다는 것이다. 혈연으로만 따지자면 夫婦지간도 무촌이지만 벗도 무촌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벗 간의 웅혼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왔다. 고기 한 덩어리를 받아도 절을 하고, 말 한필을 받아도 덤덤히 받았던 그런 붕우의 이야기가 사라지면서 청렴의 이름으로 이제 3만원의 밥이 새롭게 등장했다. 벗 간에 덤덤해야 할지 절을 해야 할지 그런 고민은 이제 관심이 없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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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혁신의 성공과 기득권의 포기 지면기사
혁신에는 인내와 고통 수반성공하려면 우선 목표 명확해야미래변화 대비 뛰어난 예지력과정교한 실천전략 반드시 필요무엇보다 소유했던 여러형태의기득권 과감히 내려 놓는게 중요외국을 나가면 국내에서 느끼는 감정과 다를 때가 많다. 이른바 애국자가 된 듯 느낀다. 태극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비행기만 보아도 가슴이 뿌듯할 때가 많다. 항구에서뿐만 아니라 육상에서도 '한진과 현대'라는 영문명의 컨테이너 박스가 수십개 늘어선 것을 보면서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세계 무역에 우리나라의 역할이 제법 있구나' 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임에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근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고 조선업, 철강, 건설업계의 생사 여부가 불분명하게 나타나자 '혁신'이라는 용어가 넘쳐난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런 업종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고, 지금이라도 확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런 가운데 '왜 우리만, 왜 내가 나서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약 30년 전 미국에서 유학시절을 보냈다. 당시 학위가 끝나고 귀국할 때는 삼성 TV값의 2배 이상을 지불 하고서라도 일본의 소니 제품 TV를 가지고자 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의 IT산업이 세계를 리드하고 있고 가전제품의 품질도 우수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는가? 과거 어떤 기업의 회장이 외국을 방문하고 공항을 들어오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모두 바꾸어야만 한다고 했다. 아내만 놔두고. 그동안 우리 국민 너와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허리띠를 동여맸다. 처음에는 모방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우리의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의 방식이나 용량을 과감히 탈피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찾았다. 이른바 혁신이었다. 그때는 우리 제품 품질이 선진국에 크게 뒤떨어져 있었기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적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당시 전 세계를 움직이던 거대 기업 모두가 여기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전 세계를 장악하고 기득권을 갖고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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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DMZ에 국제기구와 4천500㎞에 코리아 둘레길을… 지면기사
우리나라는 1950년 6월 25일 동족 간 전쟁을 시작해 1953년 휴전을 하고서 60년이 넘도록 휴전선을 경계로 각 2㎞를 비무장지대(DMZ)로 지정,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정부를 각각 수립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다. 이때문에 비무장지대 내에는 남북간 군대는 물론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지구 상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비무장지대는 희귀동식물 보고로 보존 가치가 큰 곳이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 그런 곳이 어느 곳보다도 전쟁위험이 높다.지금 세계는 새로운 질서 재편에 휩싸여 요동치고 있다. 그중 가장 위험한 곳은 동남아와 동북아로 이 지역에는 인구 14억의 신흥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오랫동안 미국을 등에 업고 경제패권을 누려 온 일본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또 세계적인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기 개발에 몰두, 전쟁 준비만 하고 있는 북한이 있는가 하면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빌미로 러시아까지 중국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이렇게 이 지역은 그 어느 곳보다도 긴장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한 치 양보할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곳에서 전쟁이라도 발발하면 3차 세계대전으로, 핵전쟁으로 확대될 우려가 높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최대 재앙이 될 것이다. 가설이기는 해도 공룡이 화산폭발과 멕시코 만에 떨어진 운석 충돌로 멸종했다면 인류는 핵폭발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인류가 재기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기 위해선 동서로 펼쳐진 비무장지대에 중요한 국제기구를 유치, 국제평화와 인류 번영을 논의하는 장소로, 그리고 비무장지대를 생태공원으로 보존하는 것은 물론 정부가 추진 예정인 한반도 해안 길과 비무장지대를 포함한 4천500㎞ 코리아 둘레 길 (2016년 6월 17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문화관광산업 경쟁력 강화회의에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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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상] 접경지역도 우리 후손들 삶의 터전 지면기사
지원특별법 격상불구 규제 여전히 잔존 '주민 불만'군사보호구역 97.8%로 건축행위 軍 승인 받아야 '5천년 역사' 내고장 지켜온 군민들 노력에 박수지난 2011년 제정된 접경지역지원특별법은 평화통일기반 마련이 최대 목적이다. 접경지역 자연환경은 체계적인 보전·관리와 경제발전·주민복지 향상의 필요사항이 서로 상충(相衝)될 수 있지만, 4만5천여 주민들은 이곳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할 몫이 돼버렸다. 도내 최북단에서 남북이 긴장감 없이 평화유지만을 기대하며 반세기가 넘도록 안보 중심에 선 주민들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고령화 시대를 이루고 있다.30만년 전 구석기 인류문화의 기원부터 고대, 중세, 현대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후손에게 넘겨줘야 할 시점이 도래했는데 1970년대 6만~7만 인구는 1990년대 이후부터 점차 감소 추세가 두드러졌다.인구 유동은 주변 환경변화에 민감하고 수도권 내 대규모 신도시 조성 등이 그 사례로 친환경 저울 바늘이 보전·관리로 기울어질수록 발전은 무뎌져 인구 유입은 정체성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접경지역 발전 가속화는 평화통일기반마련 목적의 순기능을 제공한다. 2000년 제정된 접경지역 지원법이 11년만에 특별법으로 격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정비계획법,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등 하위 법률에 그쳐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정부 예산지원도 권고조항에 묶여 지난해까지 투자실적이 계획 대비 29.3%에 불과하다.뒤늦게나마 제정된 접경지역지원특별법이 국민에게 유익하지만 여전히 잔존해 있는 규제와 남북 관계긴장은 주민들을 불평과 불안 속으로 가두고 만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을 보호하고 군사작전을 원활히 수행하는 등 국가안전보장을 목적으로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군(郡) 전체 보호구역 면적은 97.8%이다. 이 지역에서는 누구든지 건축물 신·개축, 용도변경을 포함한 모든 행위에 대해 관할 군(軍) 부대장 승인을 받아야 한다.주민불안은 지난 2009년 9월 북한의 황강댐 무단방류로 야영객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후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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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자기고] 인천시, 고려 상정예문 책 찾기에 나서야 한다 지면기사
인천 근대 개항 이후 국내 거주 일본인들이 늘어나자, 일문으로 된 각종 인쇄물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1900년초 일본학자 아사미린에 의해 고려의 상정예문이 1232년 인천 강화도에서 금속활자로 출간된 책이라고 일본인들에 알려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1944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국내로 들어온 조선과학사라는 책에서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상정예문이 영국 국립박물관 도서관실에 소장돼 있다는 자료를 보게 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근거로 금속활자활자본 상정예문 책을 인천시가 주도적으로 나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지난 2013년부터 해왔다. 금속활자본 직지보다 145년 앞서 인천 강화도에서 인쇄 출간된 상정예문 책이 어떻게 멀리 영국에까지 나가야 했던 것인지, 그 경위를 알아보고 찾으려는 노력은 인천 문화의 자긍심이라는 주장 이었다.몽골의 침략으로 인천강화도로 천도한 고려는 1232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상정예문을 출간할 정도로 인쇄 문화를 발전시켰던 국가다. 인천 바닷길을 사이에 두고 몽골군과 대치 중에도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 상정예문을 세상에 내놓은 국가인 것이다. 금속활자본 상정예문은 고려국가의 예식과 생활로 전해오는 예법들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고려 학자 17인이 모여 엮어낸 50권으로 완성된 책이며 28부를 인쇄해 각 지역 관아에 배부했다는 기록만 있었을 뿐이었다. 본인도 나름대로 일본의 주요 책자에 소개된 상정예문에 관한 자료를 모아 여러 경로를 통해 찾아보려고 노력을 경주해 왔었다. 많은 노력과 시간, 비용이 드는 일이지만, 우리 인쇄 문화의 우수성과 인천의 상징물이 될 수 있는 고려의 금속활자본 상정예문 책 찾기를 멈출 이유가 없었다. 인천의 성격처럼 끈끈한 기운을 가지고 노력하던 중 상정예문 책 찾기에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놀라운 자료를 보게 되었다. 108년 전인 1908년에도 우리나라에 고려의 상정예문 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자료다. 국권이 약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여러 방면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자는 하뽀오정신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이, 국내에서 생활하면서 상정예문 책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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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음악, 인간으로 가는 문 지면기사
부평에 만들어지는 '음악도시'특정 장르나 몇몇 사람들의복안에 의지할게 아니라저마다 꿈·희망 모으는 과정 필요소원은 남이 이뤄줄순 없기에…음악과 인간 어우러진 공간 기대올초 재개봉했던 1994년 영화 '쇼생크 탈출'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보게 되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앤디는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도 감옥 환경을 개선하고자 자신의 능력을 다해 교도소장을 위해 일한다. 그러나 교도소장은 앤디의 무죄를 알고도 정의를 외면해 결국 앤디는 감옥을 탈출하고 교도소장의 죄상을 폭로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적강신화(謫降神話)나 '구운몽'처럼 '몽'자로 끝나는 설화와 비슷한 구조이다. 어떤 신선이 천상에서 죄를 짓거나 억울한 모함을 받아 지상으로 쫓겨났다. 신선은 지상에서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를 이겨내고 한층 더 성숙한 존재가 되어 천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기본 모티브이다. 이같은 구조를 염두에 두고 보면 외딴 바닷가에서 낡은 보트를 수리하고 있는 앤디와 그 너머로 펼쳐지는 짙푸른 태평양이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본향인 셈이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때 떠오르는 로망의 장소인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러한 설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자신을 잘 모르던 주인공이 꿈이나 도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내력을 이해하는 순간이다. 고통에 휘둘리던 존재가 고통을 넘어서는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도 같은 장면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3막에 등장하는 백작부인과 수잔나의 '편지이중창 - 저녁 산들바람은 불고'가 울려퍼지는 장면이다. 오페라에서 이 노래는 백작부인 로지나의 결단을 보여준다. 자신의 시녀 수잔나를 넘보는 남편 알마비바 백작의 바람기를 잡으려고 로지나는 여러 방법을 쓰지만 실패하고 결국 자신이 직접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로지나는 스스로 수잔나로 변장하고 남편이 외도하는 현장을 잡으려고 수잔나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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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의 음악살롱] 블랙스트링, 세계음악의 돌파구 지면기사
블랙 스트링(Black String)의 음반이 나왔다. 독일에서 나왔다. 한국그룹이다. 세계적인 재즈레이블 ACT가 그들을 선택했다. 아시아 뮤지션이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블랙스트링은 즉흥음악 앙상블이다. 재즈로 볼 수 있고, 월드뮤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장르적 경계를 허물면서, 독특한 자기 세계를 지향하는 즉흥음악 앙상블'이라고 보는 게 가장 맞다. 이런 블랙스트링을 한국의 음악계는 얼마큼 주목하고 있을까? 블랙스트링의 음반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구촌 곳곳에 존재하는 재즈와 월드뮤직의 마니아들만큼이나, 한국에서도 그들의 음악이 주목을 받게 될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음악의 가치를 우리가 모른다! 우리 뮤지션의 실력을 우리가 외면한다! 블랙스트링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블랙스트링이란 말 자체가 거문고(玄琴)를 뜻한다. 거문고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이 땅에만 존재한 악기다. 악기의 형태도 독특하고, 악기를 소리 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세계의 민족음악학자는 그래서 더욱 주목한다. 하지만 거문고는 한 때 국악에서도 홀대 받는 악기였다. 관현악에서 소외되기도 했고, 심지어 얼마지나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악기라고 했다. 블랙스트링의 리더이자 거문고의 명인 허윤정은 달랐다. '한계가 특성'이라는 자세로, 거문고만이 낼 수 있는 연주력의 최대치를 끄집어냈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거문고와 허윤정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블랙스트링은 허윤정을 중심으로 이이람(대금, 단소, 양금), 오정수(기타)의 세 명으로 출발했고, 황민왕(소리, 아쟁)이 참여하면서, 한국음악의 소재를 보다 넓혔다.새 음반의 여러 곡 중에서 한 트랙만을 선택하라면, 'Growth Ring'이다. 생장륜(生長輪) 또는 나이테로 풀이된다. 이 제목은 한국음악 자체의 그간의 성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블랙스트링의 음악적 행보를 말해주는 것 같다. 주목과 방관을 반복해오면서 안으로 단단해지고, 온기와 냉기를 거치면서 스스로의 활로를 모색하는, 토종적인 한국음악의 숙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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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연인] 떠 흐르는 수람(收攬) 지면기사
가을이 소나기처럼 지나간 그대 정원에 열매 하나가 세상의 맛을 한데 모아 뚝 하고 떨어지는구나 다 쭈그러든 모과 하나 조오현(1932~)모과는 오랜 시간 자신을 허공에 걸어 놓고 육체의 고통과 계절의 미혹에 찌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온전하게 한 곳에 집중한 '모과 얼굴'에서 상처와 향이 동시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을 건다는 것은 미혹의 즐거움과 상처의 고통을 억압하고 불순물이 제거된 그대로의 마음을 바친다는 것이며, 열매는 그것의 지난한 세월의 발자취가 아닐 수 없다. "가을이 소나기처럼 지나간 그대 정원에" 걸려 있는 저 모과 "열매 하나가 세상의 맛을" 품기 위하여 어떠한가. 마음을 한데 모으고 마음의 끝까지 가서 그 마음을 뛰어넘어, 비로소 노랗게 물든 작은 우주 하나 달려 있는 것같이, 가을비 속으로 "뚝 하고 떨어지는" "다 쭈그러든 모과 하나"를 보면 '압축의 언어'에 스며있는 '축척의 향기'에 취하고 싶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조오현(1932~)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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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익숙함을 거부하기 지면기사
'변화'와 '능숙함' 겪는 세대간 상호이해 쉽지않아새로운 기술·상품 선택해 경험하는 '얼리어답터'신기함·세상변화 실감하며 혁신을 소비하고 지원언제부터 '먹방'이 이렇게 유행한 걸까. 맛집 탐방이 대세고 멋진 셰프는 만인의 로망이다. 삶의 방식과 우선순위의 변화는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우리 곁에 나타난다. 그리움으로 추억하는 나의 유년기는 색다른 장면으로 가득하다. 먹을 게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먹기도 힘든 쌀로 술을 만드는 건 큰일 날 일이어서 동네에서도 가끔 밀주를 만들다가 적발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20세기 전반부의 미국 대공황 때 금주령이 선포된 후에 알카포네 같은 갱단이 밀주 유통으로 부를 축적했던 걸 연상시킨다.학교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서 아이들은 매일 도시락을 싸갔는데, 학교에서 도시락에 보리가 충분히 섞였는지 '도시락 검사'를 받았다. 보리밥도 못 먹는 사람들이 많은 판에 윤기 나는 쌀밥을 먹는 것은 부도덕한 일로 여겼으니까. 창이 있으면 방패가 나오는 법이다. 도시락 상층부에 보리를 얇게 도포하여 검사를 통과하는 기술은 족보가 되어 전수됐다. 요즘 어디 가서 이런 보리 혼식 얘기를 끄집어내면 꼰대소리 듣기 딱 좋다. 진부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공포심에 눌린 아재와 아주매는 그래서 이런 '부족했던' 시절 얘기를 피한다. 가르치려는 고질병이 또 도졌다는 소리까지 들으면 큰일이다. 세상에는 시류니 유행이니 하는 게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신세대에게 이런 예전 얘기는 진부하기만 하려니 생각하던 차라서 영화 '국제시장'의 성공은 사뭇 놀라웠다. 영화평론가들도 우호적이지 않았는데,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주제로 '궁상맞은 얘기는 진부하다'는 주류 프레임에 정면충돌했다. 지금 신세대에게 이런 시절을 살던 청춘의 궁핍함이 소통된다는 게 놀랍다. 그들에게도 예전 것에 대한 이해의 시선이 있는 건가. 그렇다고 신세대에게만 기성세대를 이해하라는 짐을 지울 수는 없다. 이질적 요소를 가진 두 그룹 간의 이해는 쌍방향이어야 한다. 변화의 한가운데서 몸으로 변화를 맞는 세